에스겔 풀어 읽기 · 38장
이 장의 자리 · 33–39장 · 회복의 약속
땅을 덮는 구름과 드러나는 하나님
에스겔 38장은 불편한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죽은 뼈들을 살리시고,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며, 갈라진 왕국을 하나로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거대한 군대가 등장합니다.
그 군대는 사방의 민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합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 온 군사 강국이 아닙니다. 황폐했던 땅에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 군대를 이끌어 내겠다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회복시키신 백성을 공격하러 오는 군대인데, 어째서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실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적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적이 나타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뜻인가?
곡은 누구인가? — 먼 곳에서 몰려오는 군대
「사람의 아들아, 마곡 땅의 곡, 로스와 메섹과 두발의 통치자에게 네 얼굴을 돌리고 그를 향해 예언하여라.」에스겔 38:2 · 본디새김
에스겔은 이미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이집트 등을 향해 예언했습니다(25–32장).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역사적 관계가 있는 민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곡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그를 마곡 땅의 통치자로 소개하지만, 그의 아버지나 왕조, 통치 연대, 역사적 업적은 전혀 알려 주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와 구스와 붓, 고멜과 도갈마가 등장하고, 메섹과 두발도 곡의 통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이름들 가운데 일부는 창세기 10장의 민족 목록에서도 발견됩니다. 마곡, 메섹, 두발, 고멜은 야벳의 자손들 가운데 등장하며(창세기 10:2), 도갈마는 고멜의 자손으로 언급됩니다. 그 족보의 구스와 붓 외에 페르시아도 등장하여 군대의 지리적 범위를 넓힙니다.
구스는 대체로 이집트 남쪽의 누비아 지역과 연결되고, 메섹과 두발은 고대 근동의 기록에서도 소아시아 방면의 민족 이름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곡과 곡의 정확한 역사적 정체는 이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 로쉬(רֹאשׁ)는 일반적으로 ‘머리’, ‘우두머리’를 뜻하지만 지명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뒤따르는 메섹과 두발에 나란히 놓인 지명으로 읽어 「로스와 메섹과 두발의 통치자」라고 옮겼습니다. 반면 이를 보통명사로 읽으면 ‘메섹과 두발의 우두머리 통치자’라는 뜻이 됩니다.
두 읽기 모두 문법적으로 논의할 여지가 있지만, 어느 쪽도 이 이름을 오늘날의 특정 국가와 동일시할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곡이 다양한 민족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강력한 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화려한 군대와 두 턱의 갈고리
「『내가 너를 돌려세우고 네 두 턱에 갈고리들을 걸겠다. 너와 네 모든 군대, 말들과 기병들을 이끌어 내겠다. 그들은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 큰 무리를 이루며,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갖추고 모두 칼을 쥐고 있다.』」에스겔 38:4 · 본디새김
곡은 많은 민족을 거느린 통치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정작 자신이 갈고리에 걸려 끌려가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갈고리 이미지는 에스겔 29장 4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이집트의 파라오를 나일강의 거대한 생물로 묘사하시며, 그 턱에 갈고리를 걸어 끌어내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가 아무리 큰 군대를 모으더라도 자신이 역사의 최종적인 주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갈고리를 걸어 이끌어 내신다는 말씀은 곡에게 협력하거나 그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곡을 심판의 대상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준비하여라’는 명령의 역설
「『준비하여라. 너와 네게 모인 네 모든 무리는 채비하여라. 너는 그들을 지키는 자가 되어라.』」에스겔 38:7 · 본디새김
곡은 자기 군대를 준비시키고 지키는 책임자가 됩니다. 그는 자신의 병력을 정비하고 수많은 민족을 이끄는 지휘관입니다.
그런데 다음 단락에서 곡이 공격하려는 대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곡은 철저히 무장했지만, 이스라엘은 성벽 없이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 때 침공이 시작되다
「『많은 날이 지난 뒤 너는 소집될 것이다. 세월의 끝에 너는 칼의 재앙에서 회복된 땅으로, 줄곧 폐허였던 이스라엘의 산들로 올 것이다. 그곳에는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여든 이들이 살 것이다. 그 땅의 백성은 민족들 가운데서 이끌려 나왔고, 그들은 모두 안전하게 살 것이다.』」에스겔 38:8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폐허 속에서 고통받을 때 곡의 군대가 공격해 온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미 회복되고 안전하게 살아갈 때 침공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회복된 삶이 다른 세력의 탐욕을 자극합니다.
「『너는 올라와 재앙처럼 닥치고, 땅을 덮는 구름처럼 될 것이다. 너와 네 모든 부대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그러할 것이다.』」에스겔 38:9 · 본디새김
구름은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뒤덮습니다. 곡의 군대도 이스라엘의 땅을 가득 덮을 만큼 거대한 세력으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과거의 파괴를 되돌리는 일이었다면, 곡의 침공은 그 회복 자체를 다시 무너뜨리려는 시도입니다.
그렇다면 곡은 왜 이런 땅을 공격하려 할까요? 본문은 그 답을 곡의 마음속에서 찾습니다.
성벽 없는 마을을 바라보는 두 시선
10절에서 예언은 곡의 외적인 군사력에서 그의 내면으로 이동합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그날에는 여러 생각이 네 마음에 떠오르고, 너는 악한 계획을 꾸밀 것이다.」에스겔 38:10 · 본디새김
그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 군대를 움직입니다. 11절은 곡의 속마음을 직접 들려줍니다.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성벽 없는 마을들의 땅으로 올라가겠다. 평온히 지내며 안전하게 사는 자들에게 가겠다. 그들은 모두 성벽 없이 살며, 빗장도 성문도 없다.』」에스겔 38:1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성벽 없이 살아갈 만큼 평안을 누립니다. 곡은 성벽이 없으니 쉽게 약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곡의 눈에는 약탈할 기회로 보입니다.
곡은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들의 평화를 빼앗을 수 있다면, 그 평화는 이용할 수 있는 기회일 뿐입니다.
여기서 곡의 악함은 군대의 규모나 무기의 종류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회복시키신 것이 곡에게는 전리품이 되다
「이는 전리품을 약탈하고 노획물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다시 사람이 사는 폐허와, 민족들 가운데서 모여 가축과 재산을 마련하고 땅의 중심에 사는 백성을 향해 네 손을 돌리려는 것이다.」에스겔 38:12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회복은 추상적인 종교적 상태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축을 기르고, 재산을 마련하며, 살 곳을 갖게 되는 구체적인 삶의 회복입니다.
그러나 곡은 바로 그 결과물을 빼앗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황폐했던 땅에 다시 사람들이 살게 하셨습니다.
곡은 그 사람들이 마련한 재산을 차지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모으셨습니다.
곡은 그 모인 백성을 공격하려 합니다.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그것을 파괴하려는 곡의 행동이 정면으로 대립합니다.
‘땅의 중심’은 어디인가?
12절의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땅의 중심」에 산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중심에 자리 잡은 땅이라는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곡은 먼 곳에서 군대를 모아 그 땅으로 향합니다. 사방에서 모인 백성이 자신들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곳이 침략의 목표가 됩니다.
상인들은 왜 등장하는가?
13절에서는 군대가 아니라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들과 그곳의 모든 젊은 사자들이 네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전리품을 약탈하러 오는 것입니까? 노획물을 빼앗으려고 당신의 무리를 모았습니까? 은과 금을 가져가고 가축과 재산을 빼앗아 큰 전리품을 약탈하려는 것입니까?』」에스겔 38:13 · 본디새김
스바와 드단은 아라비아 방면의 교역과 관련된 이름들입니다. 다시스는 구약에서 먼 바다와 해상 교역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열왕기상 10:22; 에스겔 27:12). 이 대화에서 전쟁은 교역 세계의 눈에도 경제적 약탈의 문제로 드러납니다.
다만 이 상인들이 곡의 침공을 찬성하는지, 비판하는지, 혹은 이익을 기대하는지는 본문이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젊은 사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지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곡이 자신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이 이야기의 최종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곡은 자기 계획으로 오는가, 하나님이 데려오시는가?
에스겔 38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곡의 악한 계획이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10절에서는 곡이 악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16절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땅을 덮는 구름처럼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올 것이다. 날들의 끝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너를 내 땅을 치러 오게 하겠다. 곡아, 내가 민족들의 눈앞에서 너를 통해 내 거룩함을 드러낼 때, 그들이 나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에스겔 38:16 · 본디새김
본문은 이 긴장을 없애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곡의 악함을 조장하신다고 단순히 결론 내리는 것은 본문의 표현을 넘어섭니다. 본문은 악한 계획을 곡의 마음에 돌리면서, 그가 실행하려는 침공을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시는 사건으로 이끄신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이 그 침공을 허락하셨다는 이유로 곡의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곡을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셨고, 18절 이후에는 그를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곡이 계획한 악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으십니다.
다만 곡이 자신의 계획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까지 좌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두지 않으십니다.
‘날들의 끝’은 언제인가?
8절에서는 「세월의 끝」이라는 표현이, 16절에서는 「날들의 끝」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두 표현 모두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의 미래를 가리킵니다. 특히 16절의 표현은 구약의 다른 예언에서도 미래의 일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창세기 49장 1절과 이사야 2장 2절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8장은 분명히 먼 미래의 회복된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느 역사적 시기인지, 이 장에 묘사된 전쟁의 각 요소를 어느 사건과 대응시켜야 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는 이 예언을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특정한 침공에 관한 예언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독법은 민족 이름, 군대의 움직임, 전쟁과 심판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를 중요하게 봅니다.
다른 하나는 곡의 거대한 연합군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적대 세력의 집약된 모습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독법은 민족들의 광범위한 결집과 뒤이어 등장하는 우주적 심판의 이미지에 주목합니다.
본문에는 역사적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와 일상적인 전쟁 묘사를 넘어서는 요소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오래전 예언자들을 언급하시는가?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가 옛날에 내 종들인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말했던 그자냐? 그들은 그때 여러 해 동안 내가 너를 데려다가 이스라엘을 치게 하리라고 예언했다.」에스겔 38:17 · 본디새김
그런데 본문은 그 예언자들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어느 예언을 가리키는지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1장 14–15절이나 6장 22–23절처럼 북쪽에서 적이 내려오는 심판을 묘사한 예언들과 주제적으로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문들이 직접 곡이라는 이름을 예언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과거 예언을 하나로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곡은 자신이 새로운 계획을 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등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말씀과 관련되어 있었음을 밝히십니다.
곡에게는 자신의 계획이 새로운 기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예상하지 못하신 사건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요한계시록 20장 7–10절에서도 곡과 마곡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들이 모이는 마지막 반역의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이는 에스겔의 곡 전승을 후대에 다시 활용한 사례로 볼 수 있지만, 두 본문의 모든 세부 사항을 일대일로 대응시켜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땅을 뒤덮은 군대 앞에서 땅 자체가 흔들리다
「그날,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는 날에, 내 분노가 격렬하게 치솟을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38:18 · 본디새김
이제 예언의 분위기가 급격히 바뀝니다.
그런데 18절 이후에는 더 이상 곡의 군사적 위용이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그에 따른 땅의 반응이 중심이 됩니다.
「바다의 물고기들과 하늘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것들과 땅 위의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다. 산들이 허물어지고, 가파른 비탈들이 무너지고, 모든 성벽이 땅에 쓰러질 것이다.」에스겔 38:20 · 본디새김
이 장면은 단순한 전투의 묘사를 넘어섭니다.
성벽 없는 마을과 무너지는 모든 성벽
곡은 앞서 성벽이 없는 이스라엘의 마을들을 공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38:11). 그는 성벽이 없다는 것을 군사적 약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모든 성벽이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곡이 성벽의 유무로 판단했던 전쟁에서, 하나님은 성벽을 포함한 땅의 견고한 것들까지 흔드십니다. 곡은 이스라엘이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보고 공격했지만, 자신이 의지하는 모든 힘도 하나님 앞에서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곡은 평온히 살아가는 백성을 약탈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땅을 파괴하려는 침략에 맞서 분노하십니다.
이 심판은 곡의 탐욕에 대한 응답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목록은 창세기 1장에서 묘사되는 생물들의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과 하늘과 땅에 사는 생물들이 모두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물들이 생겨났다면,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모든 생물이 떨고 있습니다. 예언 문학에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심판을 묘사하면서 산이 흔들리고 땅이 무너지는 거대한 자연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적의 칼이 자기편을 향하다
「내가 내 모든 산에 칼을 불러 그를 치게 하겠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각자의 칼이 제 형제를 향할 것이다.」에스겔 38:21 · 본디새김
본문은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수나 병력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에스겔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구원의 근거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월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행동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전염병, 우박, 불과 유황
「나는 전염병과 피로 그와 송사를 벌이겠다. 그와 그의 부대들과 그와 함께한 많은 백성 위에 쏟아지는 비와 우박 덩이와 불과 유황을 퍼붓겠다.」에스겔 38:22 · 본디새김
「송사를 벌이겠다」는 표현은 심판을 무작위적인 파괴가 아니라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과 연결합니다. 곡이 공격하는 대상은 단순히 군사적으로 취약한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가해진 침략에 하나님이 직접 응답하십니다.
다만 이 장면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오늘날 특정 민족이나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심판하는 것은 곡이라는 이름 아래 묘사된 침략과 약탈의 악입니다. 이스라엘이 적들에게 직접 보복하라는 명령도 여기에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7장 22절에서 미디안 군대는 혼란에 빠져 서로 칼을 휘두릅니다. 사무엘상 14장 20절에서도 블레셋 진영이 혼란에 빠져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9장 22–26절에서 우박은 이집트에 내려진 재앙의 하나였습니다. 창세기 19장 24절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내립니다.
하나님은 왜 자신의 거룩함을 이렇게 드러내시는가?
에스겔 38장은 하나님의 선언으로 끝납니다.
「나는 내 위대함을 드러내고 내 거룩함을 드러내며, 많은 민족의 눈앞에서 나를 알리겠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8:23 · 본디새김
처음에는 곡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려 했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십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의 땅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6절에서 그 땅을 「내 땅」이라고 부르셨고, 21절에서는 그 산들을 「내 모든 산」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이 표현은 에스겔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때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지고, 때로는 다른 민족들에게 주어집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사건이, 오히려 여러 민족에게 여호와야훼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이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단순히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하는 능력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복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안을 약탈하려는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강력한 세력도 하나님의 목적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맺으며 — 땅을 덮은 구름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에서 악한 의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그 악이 하나님의 회복을 최종적으로 무너뜨릴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오늘날 모든 피해자가 반드시 즉각적으로 구출되거나, 모든 전쟁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라는 설명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겔 38장은 특별한 예언의 장면 안에서 하나님이 곡을 심판하실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자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땅이 진동하고 산들이 흔들립니다. 성벽들이 무너지고, 적의 칼이 자기편을 향합니다. 곡이 의지했던 군사적 질서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너집니다.
땅을 덮는 구름처럼 몰려온 군대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땅과 자신의 백성을 향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행동으로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군대가 뒤덮었던 바로 그 땅에서, 많은 민족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