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9장

이 장의 자리 · 33–39장 · 회복의 약속

칼은 땔감이 되고, 하나님의 얼굴은 다시 백성을 향하다

에스겔 39장에는 전쟁이 끝난 뒤의 풍경이 길게 펼쳐집니다.

이스라엘의 산들에는 곡의 군대가 쓰러져 있습니다. 성읍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버려진 무기들을 거두어들입니다. 활과 방패와 창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지 않고, 집에서 불을 피우는 연료가 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났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땅에는 수많은 시신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곱 달 동안 죽은 자들을 묻습니다. 누군가 뼈 하나를 발견하면 그 옆에 표지를 세워 두고, 매장하는 사람들이 와서 처리하게 합니다.

에스겔은 왜 승리 이후의 뒷정리를 이렇게 자세히 묘사할까요?

하나님의 승리는 단순히 적을 쓰러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이 남긴 것까지 처리하고, 그 땅이 다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게 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왜 포로로 끌려갔는지 다시 설명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배신을 저질렀으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숨기셨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전쟁의 흔적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가로막았던 단절이 사라집니다.

전쟁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것은 전쟁이 아닙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939장 본문 읽기 →

무기를 쥔 손에서 무기가 떨어지다

에스겔 39:1–8 본문 →

「『내가 네 왼손에서 네 활을 쳐서 떨어뜨리고, 네 오른손에서 네 화살들을 떨어뜨리겠다.』」에스겔 39:3 · 본디새김

앞 장에서 곡은 수많은 민족을 거느린 거대한 군대의 지휘관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군대가 어떻게 패배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한 손의 활과 다른 손의 화살이 떨어지는 장면은 거대한 군대가 무너지는 일을 한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처럼 보여 줍니다. 본문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곡과 맞서 싸우는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곡을 무장 해제시키는 행동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4절에서는 곡과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산들에서 쓰러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곡은 이스라엘의 땅을 약탈하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쓰러집니다.

그가 소유하려던 장소가 그의 패배를 보여 주는 장소로 바뀝니다.

들판에 버려지는 통치자

「『너는 들판에 쓰러질 것이다.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9:5 · 본디새김

곡은 여러 민족을 거느린 통치자입니다. 그에게는 군대와 권력이 있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왕궁이나 개선식이 아닙니다.

특히 4절에서 하나님은 그와 그의 군대를 맹금과 들짐승에게 먹이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시신이 매장되지 못하고 들짐승이나 새들에게 먹히는 일은 극심한 패배와 수치를 나타내는 이미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곡을 심판하시지만, 이스라엘에게 적의 시신을 모욕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뒤에서는 그 시신들을 매장하여 땅을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멀리 있는 마곡까지 미치는 심판

6절에서는 심판의 범위가 전쟁터를 넘어섭니다.

「『내가 마곡에, 또 해안 지역에서 안전하게 사는 자들에게 불을 보내겠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9:6 · 본디새김

침공의 표적이 된 이스라엘도 안전하게 살고 있었습니다(38:8, 14). 이제는 멀리 있는 지역에서 안전하게 사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을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이 구절의 마곡과 해안 지역은 곡에 대한 심판의 범위 안에서 언급됩니다. 다만 본문은 그 해안 지역 사람들이 곡의 군사 행동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특정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로 유죄라는 주장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며, 사람들은 여호와야훼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그 목적을 밝히십니다.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리고, 내 거룩한 이름이 더는 더럽혀지게 하지 않겠다. 민족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이며 이스라엘 가운데 거룩한 이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9: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무너졌을 때 주변 민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행동을 통해 그 이름이 더는 모욕받지 않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보아라, 그 일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루어질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 이것이 내가 말한 그날이다.』」에스겔 39:8 · 본디새김

예언자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자신의 말씀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그 승리의 결과가 일상의 아주 평범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불을 피웁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8장 26절에서도 언약을 어긴 백성에게 닥칠 심판 가운데 하나로, 시체가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되지만 아무도 쫓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39장에서는 이 이미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곡에게 적용됩니다.

전쟁의 무기가 집을 따뜻하게 하는 땔감이 되다

에스겔 39:9–10 본문 →

「『이스라엘의 성읍들에 사는 이들이 나가서 무기, 곧 방패와 큰 방패, 활과 화살, 손에 쥐는 막대기와 창을 태워 불을 지필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로 일곱 해 동안 불을 피울 것이다.』」에스겔 39:9 · 본디새김

곡의 손에서 떨어진 무기가 백성의 손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다시 전쟁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제작된 물건이 이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됩니다.

이사야의 환상에서는 전쟁 도구가 농사를 짓는 도구로 바뀝니다. 에스겔의 장면에서는 전쟁 도구가 불을 피우는 연료로 바뀝니다. 두 장면은 동일하지 않지만, 공통으로 무기의 본래 용도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에서는 특별히 그 무기가 완전히 소모됩니다.

농기구로 바뀐 무기는 새로운 형태로 남아 있지만, 불에 탄 무기는 연료가 되어 사라집니다. 이스라엘은 곡이 가져온 무기를 다음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보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소모하면서 일상의 삶을 이어 갑니다.

왜 일곱 해 동안 불을 피우는가?

9절은 무기로 불을 피우는 기간을 「일곱 해」라고 말합니다.

본문이 확실히 보여 주는 것은 곡이 남긴 무기의 양이 엄청나며, 이스라엘 주민들이 오랜 기간 그것을 일상의 자원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들에서 나무를 가져오지도 않고 숲에서 나무를 베지도 않을 것이다. 무기로 불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약탈한 자들을 약탈하고, 자기들에게서 빼앗은 자들에게서 빼앗을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9:10 · 본디새김

곡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전리품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38:12). 이스라엘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군대가 오히려 자신의 무기를 남겨 놓습니다.

빼앗으려던 자들이 빼앗기는 자가 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회복된 삶을 자신의 부를 늘릴 수단으로 삼으려 했지만, 자신이 준비한 군사력이 도리어 그들의 생활에 쓰이게 됩니다.

무기는 치웠지만, 전쟁터에 쓰러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더 깊이

우선 본문은 실제로 일곱 해라는 기간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적인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는 정확한 연대 예측을 제공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이나 충만함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장에서도 뒤이어 일곱 달 동안 시신을 매장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일곱 해와 일곱 달이라는 표현은 곡의 패배가 얼마나 철저하며, 그 결과를 처리하는 일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를 강조하는 수사적 기능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숫자 일곱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기간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무기를 불태워 일상의 연료로 사용하는 모습은 이사야 2장 4절과 미가 4장 3절에서 전쟁의 도구가 농사의 도구로 바뀌는 평화의 비전과 주제적으로 이어집니다.

땅에 남은 뼈 하나까지 찾아 묻다

에스겔 39:11–16 본문 →

「『그날 내가 곡에게 이스라엘 안에 무덤으로 삼을 자리를 주겠다. 바다 동쪽에 있는, 지나가는 이들의 골짜기다. 그 골짜기는 지나가는 이들을 가로막을 것이다. 사람들이 곡과 그의 온 무리를 그곳에 묻고, 그곳을 하몬곡 골짜기라고 부를 것이다.』」에스겔 39:11 · 본디새김

곡은 이스라엘에 들어와 땅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곡이 바라던 것은 살아서 차지할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죽어서 묻힐 자리입니다.

많은 민족을 거느렸다는 사실이 곡의 자랑이었다면, 이제 그 수많은 무리가 한곳에 묻혔다는 사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합니다. 원래 그곳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이제 거대한 매장지 때문에 지나가는 이들의 길이 가로막힙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초점은 곡의 수치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왜 죽은 적들을 묻어야 하는가?

「『이스라엘 집은 땅을 깨끗하게 하려고 일곱 달 동안 그들을 묻을 것이다.』」에스겔 39:12 · 본디새김

민수기 19장 11–16절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뼈에 접촉하는 것은 의례적 부정함과 관련됩니다. 특히 16절에서는 들에서 죽은 사람이나 사람의 뼈와 접촉하는 상황을 언급합니다. 에스겔 39장의 매장 명령은 이러한 정결의 배경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뼈가 흩어진 땅은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살게 하시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군의 시신을 묻는 일은 전쟁이 남긴 죽음의 흔적을 처리하여 땅을 정결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이 곡의 시신을 맹금과 들짐승에게 먹이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시신들을 매장합니다.

맹금의 먹이가 되는 모습은 곡에게 닥친 철저한 패배와 수치를 드러냅니다. 매장하는 모습은 그 패배 이후 이스라엘의 땅이 다시 정결해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온 백성이 참여하는 매장

「『그 땅의 온 백성이 그들을 묻을 것이다. 내가 영광을 받는 날, 이 일은 그들에게 명예가 될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9:13 · 본디새김

여기서 말하는 명예를 적의 시신을 모욕하며 승리를 즐기는 데서 얻는 명예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그 일에 부여하는 목적은 분명히 땅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9장은 전쟁의 결과를 특정 지도자나 군대만의 업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성읍 주민들이 무기를 거두어들이고, 온 백성이 시신을 묻습니다. 회복된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그 땅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뼈 하나 옆에 세워 놓는 표지

14–15절에서 매장의 과정은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처음에는 일곱 달 동안 대규모 매장이 이루어집니다. 그 기간이 지난 뒤에는 남아 있는 시신과 뼈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계속됩니다. 특별히 담당하는 사람들이 세워지고, 그들은 땅을 두루 다니며 남겨진 것들을 찾습니다.

「『두루 다니는 이들이 땅을 지나다닐 것이다. 누군가 사람의 뼈를 보면 매장하는 이들이 그 뼈를 하몬곡 골짜기에 묻을 때까지 그 곁에 표지를 세워 둘 것이다.』」에스겔 39:15 · 본디새김

곡의 군대는 땅을 덮는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그 군대가 남긴 죽음은 너무 많아 일곱 달 동안 매장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뼈 하나까지 찾아서 처리합니다.

이 작은 행동은 이 장이 말하는 회복의 철저함을 보여 줍니다. 거대한 적을 쓰러뜨리는 일만큼이나, 그 적이 남긴 죽음의 흔적을 하나씩 처리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단락의 마지막 말은 곡도, 그의 군대도 아닙니다.

「『또 한 성읍의 이름은 하모나일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땅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에스겔 39:16 · 본디새김

이 문장은 11절에서 시작된 매장 장면의 목적을 다시 확인합니다. 곡의 군대가 남긴 마지막 흔적까지 처리한 뒤, 땅은 다시 정결해집니다.

그런데 예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에스겔은 또다시 새와 들짐승들을 향해 말씀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을 거대한 잔치에 초대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하몬은 무리나 큰 군중을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 따라서 하몬곡이라는 이름에는 곡의 거대한 무리가 묻힌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바다 동쪽」이 어느 바다를 가리키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또 이 골짜기를 오늘날의 특정 지형과 동일시할 충분한 근거도 없습니다. 맹금의 먹이가 되는 모습과 매장하는 모습, 이 두 이미지를 문자적인 시간표로 조합하여 새들이 언제 먹고, 사람들이 언제부터 매장해야 하는지 계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언은 곡의 패배를 서로 다른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식탁에 초대되는가?

에스겔 39:17–20 본문 →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날개 달린 온갖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말하여라. 『모여서 와라. 사방에서 모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잡는 나의 제물,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서 잡는 큰 제물 곁으로 모여라. 너희는 살을 먹고 피를 마실 것이다.』」에스겔 39:17 · 본디새김

에스겔은 이 장면을 단순히 들짐승이 시신을 먹는 자연 현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마련하신 제물과 식탁의 이미지로 그립니다.

제사의 언어가 심판의 언어로 바뀌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행위였습니다. 제사의 종류에 따라 일부 제물은 제사장이나 제물을 드린 사람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이 새와 짐승들을 위해 제물을 마련하십니다.

더구나 그들이 먹는 것은 가축이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한 통치자와 군인들입니다. 18절은 그들을 숫양과 어린 숫양, 숫염소와 수소에 비유합니다. 군사적인 힘과 지위를 자랑하던 통치자들이 이제는 잡혀 먹히는 가축처럼 그려집니다.

그들의 지위가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피를 마시는 잔치

「『내가 너희를 위해 잡은 나의 제물에서 너희는 배부르도록 기름을 먹고, 취하도록 피를 마실 것이다.』」에스겔 39:19 · 본디새김

하나님의 심판을 제사의 언어로 묘사하되, 그 제사에 초대된 손님과 음식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곡의 군대가 완전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섬뜩한 이미지입니다.

「『너희는 내 식탁에서 말과 기병, 용사와 모든 전사를 먹고 배부를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9:20 · 본디새김

하나님의 식탁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우리는 거룩한 예배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식탁이 곡의 군대에 대한 심판을 보여 주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희생제물로 받으시며 기뻐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곡의 패배를 제사의 언어로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새와 짐승들이 다시 등장하는가?

4절에서는 곡에게 내려진 판결의 일부로 이 말씀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17–20절에서는 시선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은 이제 곡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새와 들짐승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곡의 군대는 더 이상 명령을 듣는 대상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새와 짐승들이 이야기의 청중이 됩니다.

한때 많은 민족을 소집했던 곡은 사라지고, 이제 하나님이 새와 짐승들을 소집하십니다.

곡이 군대를 모았을 때 그 목적은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새와 짐승들을 모으실 때 그들은 곡의 패배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잔치를 지나치게 아름답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의도적으로 무섭고 불편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 불편함은 침략의 악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 가지 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무조건 의로운 승리자로 여기고, 다른 민족들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1절부터 하나님은 바로 그런 단순한 구분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바산은 구약에서 좋은 목초지와 살진 가축을 떠올리게 하는 지역입니다. 신명기 32장 14절에서도 바산의 숫양이 풍요로운 먹거리의 하나로 언급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서는 피를 먹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레위기 17:10–14).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새와 들짐승들이 피를 마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마시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비슷한 심판의 이미지가 이사야 34장 6절에도 등장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의 심판은 희생제물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19장 17–21절에는 하늘의 새들이 모여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의 살을 먹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에스겔 39장 17–20절의 이미지를 후대의 묵시적 심판 장면에서 활용한 뚜렷한 문학적 연결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39장의 본래 의미는 먼저 곡의 패배와 이스라엘 땅의 정결,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회복 약속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하나님의 무능 때문이 아니었다

에스겔 39:21–24 본문 →

「내가 민족들 가운데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모든 민족이 내가 집행한 심판과 내가 그들 위에 놓은 내 손을 볼 것이다.」에스겔 39:21 · 본디새김

21절에서 예언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곡에게 무엇이 일어날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밝혀질지를 설명하십니다. 22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23절에서는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유배에 관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한때 실제로 패배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로 끌려갔습니다. 그렇다면 곡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은 왜 이전에 이스라엘이 무너지는 일을 막지 않으셨을까요?

「민족들은 이스라엘 집이 자기들의 죄악 때문에 유배되었음을 알 것이다. 그들이 내게 배신을 저질렀으므로 나는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숨겼다. 내가 그들을 그 적들의 손에 넘겼고, 그들은 모두 칼에 쓰러졌다.」에스겔 39:23 · 본디새김

하나님은 곡을 심판하신 뒤에도 이스라엘의 과거를 숨기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곡에 대한 심판을 듣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아무 잘못 없는 백성으로 여기는 것을 막습니다.

이스라엘은 곡의 침략에 대해서는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에서 언제나 의로운 백성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던 백성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악을 당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모든 잘못을 없애 주지는 않으며,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새로운 악을 당해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곡이 이스라엘을 약탈할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유배를 해석하는 특정한 예언의 문맥에 속합니다. 모든 민족의 전쟁이나 개인의 고난을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판단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얼굴을 숨겼다’는 말의 의미

23–24절에서 같은 표현이 두 번 반복됩니다.

히브리어에서 얼굴을 숨긴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호의적인 임재와 보호를 거두시는 상황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신명기 31장 17–18절에서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돌아설 때,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숨기시겠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에스겔 39장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숨겨졌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라보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호의를 상실한 심판의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시 얼굴을 숨기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면, 그것은 단순히 백성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다는 선언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약속이 마지막 단락에서 등장합니다.

수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짊어질 수 있게 되는 사람들

에스겔 39:25–26 본문 →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야곱을 포로살이에서 되돌리고 온 이스라엘 집을 불쌍히 여기며,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해 질투하겠다.」에스겔 39:25 · 본디새김

25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유배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역사를 거친 백성을 다시 모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행위로 회복을 요구할 수 있는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다시 모으십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한 열심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질투’는 다른 존재가 가진 것을 탐내는 인간적인 시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과 백성에게 맺으신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그것이 훼손된 상태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안해진 뒤에 수치를 짊어지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안전하게 살고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않을 때, 자기들의 수치와 내게 저지른 모든 배신을 짊어질 것이다.」에스겔 39:26 · 본디새김

여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충분히 부끄러워하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른 뒤에야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자기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상황과, 자신들의 수치를 짊어지는 일을 연결합니다.

이 표현은 번역상 갈림이 있는 부분입니다. 히브리어 자음 본문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수치를 짊어지다’와 ‘수치를 잊다’라는 서로 다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수치를 짊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가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에 끝없이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포로살이에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자기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과거에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잊지 않습니다.

회복된 백성은 과거의 죄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그 죄를 없었던 일처럼 꾸밀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기들이 저질렀던 배신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과거의 죄를 지워서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정직하게 기억하면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들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민족이 그 회복을 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은 본문에 제시된 읽기를 따라 「짊어질 것이다」라고 옮겼습니다. 따라서 이 해설에서는 회복된 백성이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의미로 읽겠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에스겔 16장 61–63절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언약을 다시 세우실 때 자신의 길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

에스겔 39:27–28 본문 →

「내가 그들을 백성들 가운데서 돌아오게 하고 그 적들의 땅에서 모아들일 때, 나는 많은 민족의 눈앞에서 그들을 통해 내 거룩함을 드러내겠다.」에스겔 39:27 · 본디새김

여기서 에스겔 39장은 곡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의 더 큰 회복 약속 안에 놓습니다.

곡의 군대를 심판하시는 일은 악의 힘을 무너뜨리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는 일은 잃어버린 백성을 회복시키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행동을 통해 모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악을 심판하시는 행동에서 드러나고, 자격 없는 백성을 다시 불쌍히 여기시는 행동에서도 드러납니다.

유배시키신 분과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 같다

「내가 그들을 민족들에게 유배시켰다가 그들의 땅으로 모아들일 때,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 그들의 하나님임을 알 것이다. 나는 그들 가운데 아무도 더는 그곳에 남겨 두지 않겠다.」에스겔 39:28 · 본디새김

유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실 능력을 잃으셨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또 귀환은 하나님이 이전의 심판을 잘못된 결정으로 여기시고 취소하시는 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심판과 회복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백성이 배신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모으십니다.

과거의 패배를 하나님이 무능하셨다는 증거로 보지 않게 됩니다. 현재의 회복도 자신들이 특별히 훌륭했기 때문에 얻은 보상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회복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아무도 남겨 두지 않겠다

15절에서는 사람이 뼈 하나를 발견해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뼈가 매장될 때까지 표지를 세워 두었습니다. 28절에서는 흩어진 백성 가운데 아무도 남겨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장면에서 모두 남겨진 것을 끝까지 처리하거나 찾아 모으는 행동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죽은 적군의 뼈는 땅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매장됩니다.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은 그 땅에서 살아가도록 다시 모아집니다.

땅에 남은 죽음의 흔적은 제거되고, 다른 땅에 흩어진 백성은 돌아옵니다.

물론 「아무도 남겨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특정 역사적 귀환에서 사람 한 명도 예외 없이 이동했는지를 계산하는 통계적 진술로 축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회복하시는 일이 부분적인 수습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약속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과 영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얼굴과 부어지는 영

에스겔 39:29 본문 →

「나는 더는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숨기지 않겠다. 내가 이스라엘 집 위에 내 영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9:29 · 본디새김

23–2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숨기셨다고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배신에 대한 심판을 나타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시는 같은 단절을 겪지 않는 상태로 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백성에게 한순간 힘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을 그들 위에 부으시는 행동과, 더 이상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는 약속을 연결하십니다.

이전에는 무엇이 쏟아졌는가?

하나님은 이전에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격분을 쏟으셨습니다. 이제는 그 백성 위에 자신의 영을 쏟아부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숨기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기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향한 심판의 관계를 끝내시고, 자신의 영을 주시는 새로운 관계를 약속하십니다.

왜 전쟁 이야기의 마지막이 영인가?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는 일만으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곡이 완전히 사라져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지 못한다면 회복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평안은 단순히 적이 사라졌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숨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7장 8절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자신의 격분을 쏟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20장 8절과 13절에서도 하나님의 격분을 쏟는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물론 히브리어에서는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동사가 사용되기도 하므로, 모든 ‘쏟아붓다’를 하나의 동일한 어휘 반복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심판과 회복을 묘사하는 이미지의 대조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는 약속은 이사야 44장 3절과 요엘 2장 28–29절의 영에 관한 약속들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맺으며 — 남겨진 뼈 하나, 그리고 더 이상 숨겨지지 않는 얼굴

에스겔 39:1–29 본문 →

에스겔 39장은 무기가 떨어지는 장면으로 심판을 시작하고, 하나님의 영이 쏟아지는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두 장면 사이에 한때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했던 땅이 다시 정결해집니다.

에스겔 39장의 여러 장면 가운데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뼈 하나 옆에 세워 놓는 표지입니다.

일곱 달 동안 사람들이 시신을 묻었습니다. 그런데 매장이 끝난 뒤에도 누군가 땅을 지나다 사람의 뼈를 발견합니다. 그 사람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표지를 세워 둡니다.

담당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 뼈를 묻을 때까지 그곳을 표시해 둡니다. 하나님은 곡의 군대를 쓰러뜨리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군대가 남긴 것까지 처리하게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땅에 살아갈 백성에게 자신의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나는 더는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숨기지 않겠다. 내가 이스라엘 집 위에 내 영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