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5장
이 장의 자리 · 33–39장 · 회복의 약속
여호와야훼께서 그곳에 계셨습니다
한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성읍들은 폐허가 되었고, 많은 주민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산과 들에는 예전처럼 사람들이 살지 않습니다.
이 장은 이웃의 불행을 기회로 삼는 마음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오래된 적의는 폭력이 되고, 폭력은 땅에 대한 탐욕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탐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기뻐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에스겔 35장은 인간의 악의를 고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백성이 심판받고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때에도,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향한 다른 이들의 폭력과 모욕을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왜 에돔 왕이 아니라 세일 산을 향해 말하는가
여호와야훼께서는 에스겔에게 세일 산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예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세일 산을 향해 네 얼굴을 돌리고, 그 산을 거슬러 예언하여라.」에스겔 35:2 · 본디새김
세일은 사해 남쪽과 남동쪽에 펼쳐진 산악 지역과 연결되며, 구약에서 에돔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창세기 36:8–9에서도 에서는 세일 산에 거주하며 에돔의 조상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므로 세일 산은 단순한 산 하나가 아닙니다. 에돔이라는 민족과 그들이 살아가는 땅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15절에서 「세일 산아」라고 부른 뒤 「온 에돔도, 그 전부가」라고 덧붙이는 것도 이 점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런데 왜 여호와야훼께서는 에돔의 왕이나 군대가 아니라 산을 향해 말씀하실까요?
이 장이 다루는 문제가 단순히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땅을 둘러싼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땅을 차지하려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에돔의 땅을 황폐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두 나라의 땅이 서로 마주 서는 것입니다.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흩어진 양 떼를 이스라엘의 산들로 데려와 좋은 풀밭에서 먹이겠다고 하셨습니다(34:13–14).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세일 산을 향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이스라엘의 산들은 백성이 돌아와 살 곳으로 약속되고, 세일 산은 황폐해질 곳으로 선언됩니다.
더욱이 다음 장인 36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35장의 세일 산은 36장의 이스라엘 산들과 의도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순히 흩어진 백성을 모으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재난을 이용해 땅을 빼앗으려는 외부의 적의도 다루어야 합니다. 특히 에스겔 36:2–5에서는 에돔을 포함한 주변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땅을 자기 소유로 삼으려 했다는 문제가 다시 언급됩니다. 35장에서 드러난 에돔의 발언이 다음 장의 회복 약속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땅을 단순한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흩어지고 돌아오며, 다른 민족이 침범하고 차지하려는 실제 삶의 터전으로 다룹니다.
「그 산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세일 산아, 내가 네게 맞서겠다. 내 손을 네 위로 뻗어 너를 황무지와 경악의 대상으로 만들겠다.』」에스겔 35:3 · 본디새김
에돔의 행동에 대해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심판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에스겔서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손을 뻗으시는 행동은 여러 나라를 향한 심판의 선언에서 나타납니다. 에돔을 향한 앞선 예언인 25:13에서도 같은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4절에서는 세일의 성읍들이 폐허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을 향한 심판이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읍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5절에서 비로소 에돔의 죄가 드러납니다.
「그들이 재난을 당하던 때에」 — 오래된 미움이 폭력이 되는 순간
「『네가 오래도록 적의를 품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재난을 당하던 때에, 마지막 형벌을 받던 때에 그들을 칼의 손아귀에 내던졌으므로,』」에스겔 35:5 · 본디새김
미움을 품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 미움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스라엘이 가장 취약해진 순간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에돔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세기 25:23에서는 리브가의 태중에 있는 두 아들이 두 민족이 될 것이라고 예고됩니다. 창세기 27장에서는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과정에서 형제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러나 두 형제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미움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3장에서 에서는 돌아온 야곱을 만나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 장면을 기억하면 에돔과 이스라엘의 적의를 단순히 조상 때부터 피할 수 없도록 정해진 운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두 민족은 역사 속에서 갈등을 겪었고, 민수기 20:14–21에서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통과 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23:7에서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스겔 35장의 심판은 에돔이 에서의 후손이라는 혈통만을 이유로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에돔이 실제로 품었던 적의와 그 적의에 따라 행한 폭력을 심판의 이유로 제시합니다.
에돔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적의 칼에 희생되도록 내버려 두거나, 그들을 칼을 든 자들에게 넘겨주었다는 적극적인 가담을 나타냅니다.
오바댜는 에돔이 형제 야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고발합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재난을 당하던 날 그 불행을 기뻐하고, 성읍에 들어가 재물을 빼앗으며, 갈림길에 서서 도망하는 사람들을 막거나 살아남은 자들을 적에게 넘겨준 행동을 책망합니다. 에스겔 35:5와 오바댜 1:14는 이스라엘의 위기 속에서 에돔이 그들을 적에게 넘긴 행동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가깝습니다.
시편 137:7에도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날 에돔 사람들이 그 성읍을 완전히 허물라고 외쳤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 본문들은 에돔이 유다의 멸망을 단지 멀리서 지켜본 것이 아니라, 그 재난을 반기고 이용했다는 공통된 고발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제로 여호와야훼의 심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에돔이 그들을 해쳐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책임과 에돔이 행사한 폭력에 대한 책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더 큰 고통을 가할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에돔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야훼께서는 에돔이 선택한 폭력의 언어로 그들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내가 참으로 너를 유혈에 넘기겠고, 유혈이 너를 뒤쫓을 것이다. 네가 유혈을 미워하지 않았으니, 유혈이 너를 뒤쫓을 것이다.』」에스겔 35:6 · 본디새김
짧은 한 절에서 피와 유혈의 표현이 반복되면서, 에돔이 다른 사람에게 흘리게 한 피가 이제 자신을 뒤쫓는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에돔이 피 흘리는 일을 가볍게 여겼다면, 이제 자신들이 피 흘림의 대상이 되는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자기들에게는 남의 고통처럼 보였던 일이 이제 자기들의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마지막 형벌을 받던 때」라는 표현에서 히브리어 아온 케츠는 ‘죄악의 끝’으로도, 죄악에 대한 형벌이 절정에 이른 때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이스라엘이 재난을 당하던 때와 나란히 놓인 문맥을 따라 마지막 형벌의 때로 옮겼습니다. 「네가 유혈을 미워하지 않았으니」라는 부분은 맹세의 문법 때문에 다르게 분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디새김의 읽기에서는 에돔이 유혈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유혈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선언이 서로 대응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산에 주검이 쌓이다
7–9절에서는 심판의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세일 산을 황폐하고 또 황폐한 곳으로 만들고, 그곳에서 오가는 자를 끊어 버리겠다.』」에스겔 35:7 · 본디새김
「황폐하고 또 황폐한 곳」은 같은 계열의 표현을 반복하여 황폐함을 강조합니다. ‘오가는 자’라는 표현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시장에 가고, 이웃 마을을 방문하고, 물자를 운반하고, 길을 통해 서로의 삶을 연결합니다. 그런 왕래가 끊어진다는 것은 성읍이 일상적인 기능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산길에 더 이상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곳의 산들을 그곳에서 죽임당한 자들로 채우겠다. 네 언덕들과 네 골짜기들과 네 모든 물길에 칼에 죽임당한 자들이 쓰러질 것이다.』」에스겔 35:8 · 본디새김
에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재난을 당할 때 그들을 칼의 손아귀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들의 땅에서 칼에 죽임당한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9절에서는 세일의 성읍들이 회복되지 못하고 영원히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히’에 해당하는 표현은 심판의 철저함과 지속성을 강조합니다. 다만 이 구절만으로 세일 지역에 이후 어느 시대에도 사람이 전혀 거주하지 않았다고 역사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에돔의 권력과 삶의 터전을 향한 매우 강한 심판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에서 더 깊은 문제가 드러납니다.
에돔은 단지 이스라엘의 멸망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그곳에 있었는데도」 — 황폐한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여호와야훼가 그곳에 있었는데도 네가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내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차지하겠다.」라고 말했으므로,』」에스겔 35:10 · 본디새김
에돔이 차지하려고 한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곧 남북으로 나뉘었던 두 왕국과 그 땅으로 이해됩니다. 본문이 두 민족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는 않지만, 앞서 이스라엘 자손의 재난을 언급했고 뒤에서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차지하려는 발언이 이어지므로 이러한 해석은 자연스럽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고, 유다 역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을 잃었습니다. 에돔의 관점에서는 이제 그 땅을 차지할 기회가 찾아온 듯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그 땅을 인간의 소유 관계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조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여호와야훼와 그 땅의 관계까지 끝났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몰락을 여호와야훼의 약속까지 무효가 된 것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심판받는 동안에도 그 땅과 백성의 미래를 여전히 자신의 뜻 아래 두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지킬 힘을 잃었다는 사실이, 그 땅을 차지할 권리가 에돔에게 넘어갔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네 분노와 질투로 그들에게 행한 그대로 나도 네게 행하겠다. 내가 너를 심판할 때 그들 가운데서 나를 알리겠다.』」에스겔 35:11 · 본디새김
에돔은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미움은 단지 이스라엘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을 자기들이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발전했습니다.
질투는 다른 사람의 좋은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 좋은 것이 자기에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가진 것을 보며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 기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에는 에돔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의미도 있습니다.
에돔을 심판하시는 행동을 통해,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고통과 그들에게 행해진 불의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면서도, 그들을 해치는 자의 죄를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10–11장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35장에서는 왜 여호와야훼께서 그곳에 계셨다고 말할까요? 이 두 본문을 같은 방식의 물리적 위치 설명으로 읽으면 긴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에스겔 35:10의 핵심은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계속 성전 안에 머물렀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땅이 황폐해졌더라도 그 땅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권위와 뜻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에스겔 11:16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이 잠시 성소가 되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과 땅을 잃어버린 백성에게도 여호와야훼의 관계와 돌봄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들었다」 — 황폐한 산들을 향한 모욕이 하나님께 이르다
12절에서는 에돔이 이스라엘의 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너는 나 여호와야훼가 네 모든 모욕의 말을 들었음을 알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산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산들이 황폐해졌다. 우리에게 먹이로 주어졌다.」』」에스겔 35:12 · 본디새김
그들은 이스라엘의 땅을 단순히 새롭게 소유할 영토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먹고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깁니다.
이스라엘을 칼에 넘겼던 행동과 같은 적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에돔이 앞으로 그 땅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산들은 이미 황폐해졌습니다. 주민들은 흩어졌습니다. 그 땅을 지킬 왕도 군대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입으로 나를 거슬러 큰소리쳤고, 나를 거슬러 너희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들었다.』」에스겔 35:1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땅을 향한 모욕이 여호와야훼를 향한 모욕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땅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약속과 권위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약해진 틈을 타서 그들의 땅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은 에돔이 아니었습니다.
에돔은 자기들에게 심판이 닥칠 때 비로소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의 말을 들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몰랐던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남의 불행을 두고 큰소리칠 때에도, 그 말을 듣고 계신 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성읍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불행을 기뻐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모욕에 대답할 힘을 잃었을 때에도 여호와야훼께서는 침묵 속에서 모든 말을 듣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소리를 알아차리신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그 말의 배후에 있는 적의와 탐욕을 아시고, 그에 대해 심판하시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남의 황폐함을 기뻐했던 나라가 황폐해지다
에스겔 35장의 마지막 두 절은 기쁨과 황폐함을 서로 맞세웁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온 땅이 기뻐할 때, 내가 너를 황폐하게 만들겠다.』」에스겔 35:14 · 본디새김
15절은 그 대조의 근거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스라엘 집의 유산이 황폐해진 것을 두고 네가 기뻐한 그대로, 나도 네게 행하겠다. 세일 산아, 너는 황폐하게 될 것이다. 온 에돔도, 그 전부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5:15 · 본디새김
그들의 기쁨에는 다른 사람의 상실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기뻐했던 바로 그 상황을 에돔 자신이 겪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표현은 오바댜 1:15의 선언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에돔을 향해 행한 대로 받게 되고, 자신의 행위가 자기 머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인간이 서로에게 보복해도 된다는 명령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35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심판의 주체이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에돔을 향해 똑같은 적의를 품거나 그들의 고통을 즐기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본문은 에돔의 기쁨을 죄로 고발합니다. 그러므로 그 심판을 읽는 사람까지 에돔과 똑같은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본문의 윤리적 문제를 되풀이하는 셈이 됩니다.
15절은 이스라엘의 땅을 단순히 영토라고만 부르지 않습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차지하고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물건으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받은 유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땅에서 불의를 행했고, 그 결과 심판을 겪었습니다. 에스겔 33:25–26에서는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폭력과 우상숭배를 행하면서도 땅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책망받았습니다.
에돔 역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은 조상에게 주어진 약속을 근거로 자신의 불의를 정당화하려 했고, 에돔은 이스라엘의 몰락을 근거로 그 땅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땅의 소유에만 관심을 두면서, 그 땅을 주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야훼의 뜻을 무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땅은 자신의 힘이나 혈통만으로 무조건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틈타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닙니다.
2절에서는 세일 산 하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라는 명령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는 온 에돔으로 범위가 확장됩니다. 한 산을 향해 주어진 말씀이 나라 전체를 향한 심판 선언이 되었고, 그 결론은 여호와야훼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앎은 에돔이 자신의 땅을 더 넓히는 승리를 통해 얻는 지식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땅은 물론, 자신들이 안전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땅의 운명조차 자기 손에 있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온 땅이 기뻐할 때’라는 표현을 에돔의 몰락을 바라보는 온 땅의 기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회복과 다른 지역의 번영이 찾아오는 때에도 에돔은 황폐하게 남는다는 대조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기쁨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어느 사건 때문에 온 땅이 기뻐하는지를 확정하기보다는, 에돔이 겪게 될 황폐함이 다른 곳의 기쁨과 대조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폐허를 바라보며 기뻐하던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폐허가 에돔의 탐욕에 맡겨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기 이익의 기회로 여겼던 에돔은, 그 고통을 보고 계시던 하나님을 계산에서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황폐해진 산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 산들이 황폐해졌다. 우리에게 먹이로 주어졌다.」
그곳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의 말을 모두 듣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짧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들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