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4장

이 장의 자리 · 33–39장 · 회복의 약속

양을 잡아먹던 목자들, 양을 찾아 나서시는 하나님

목자는 양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양이 먹을 풀을 찾아 주고, 위험에서 보호하며, 길을 잃으면 찾아 나섭니다. 양들은 목자의 돌봄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에스겔 34장에는 이상한 목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양을 먹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양의 기름을 먹고, 양털을 입으며, 살진 양을 잡아 죽입니다. 양들이 병들어도 치료하지 않고, 길을 잃어도 찾지 않습니다. 결국 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들짐승의 먹이가 됩니다.

그러나 이 장은 나쁜 지도자들을 책망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회복은 단순히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양 떼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자와 백성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백성들 사이의 관계까지 새롭게 하십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834장 본문 읽기 →

목자는 누구를 먹여야 하는가 — 뒤집힌 돌봄의 관계

에스겔 34:1–4 본문 →

에스겔 34장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향한 고발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고 그들에게,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아, 자기 자신을 먹여 온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목자라면 양 떼를 먹여야 하지 않느냐?』」에스겔 34:2 · 본디새김

고대 근동에서 왕은 자기 백성을 돌보는 목자에 비유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왕과 지도자들이 백성을 먹이고 보호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사무엘하 5:2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다윗에게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다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시편 78:70–72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마음의 온전함과 능숙한 손으로 이끈 목자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에스겔이 고발하는 목자들은 우선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들을 비롯해 백성을 이끌 책임이 있던 지도자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을 한 가지 직책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권력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그 목적이 정반대로 뒤집혔습니다.

그들은 목자로서의 일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먹이는 일은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먹이는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양 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너희는 기름을 먹고 양털을 입으며, 살진 양을 잡아 죽이면서도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에스겔 34:3 · 본디새김

기름은 양에게서 얻는 풍부한 먹거리를, 양털은 의복과 경제적 이익을 나타냅니다. 살진 양을 잡는 일 역시 목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목자들이 양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취하면서도, 정작 양을 먹이고 보호하는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양은 목자에게 유익을 주지만, 목자는 양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습니다.

돌봄을 통해 유지되어야 할 관계가 일방적인 수탈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너희는 약해진 양들을 튼튼하게 해 주지 않았고, 병든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뼈가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았다. 쫓겨난 양을 데려오지 않았고, 잃어버린 양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폭력을 쓰며 가혹하게 그들을 다스렸다.』」에스겔 34:4 · 본디새김

양이 스스로 이겨 낼 수 없는 상황일수록 목자의 돌봄은 더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바로 그때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단지 어려움에 빠진 양을 외면한 것이 아닙니다. 양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때 이집트에서 가혹한 지배를 받았던 백성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그 지배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자기 백성을 가혹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자처럼 다스렸습니다.

따라서 이 단락의 죄는 단순히 지도자로서 성과가 부족했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을 부여받은 목적 자체를 거꾸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목자가 없어서 흩어졌다」 — 양들이 버려진 이유

에스겔 34:5–10 본문 →

5절에서는 목자들의 잘못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졌고, 들의 온갖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흩어졌다.』」에스겔 34:5 · 본디새김

앞에서는 분명히 목자들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제는 목자가 없어서 흩어졌다고 말할까요?

목자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목자의 존재는 이름이나 지위만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양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그 역할을 잃어버린 목자는 이름만 목자일 뿐입니다.

5–6절에서는 흩어졌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양들은 모든 산과 높은 언덕을 헤매고, 온 땅 위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 장면은 바벨론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겪은 이스라엘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유배되었고, 공동체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흩어짐을 외부 제국의 군사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도자들이 모든 역사적 재난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에스겔서는 백성 전체의 죄와 책임도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34장에서는 특별히 지도자들의 책임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내 양 떼는 모든 산과 모든 높은 언덕에서 헤매고 있다. 내 양 떼는 온 땅 위에 흩어졌다. 돌보는 자도 없고 찾는 자도 없다.』」에스겔 34:6 · 본디새김

이 문장이 특히 슬프게 들리는 이유는 양들이 잘못된 곳으로 갔다는 사실보다, 그들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은 양이 자신을 구원할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양을 돌보도록 맡겨진 사람이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은 관계 자체의 실패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흩어진 양들을 반복해서 「내 양 떼」라고 부르십니다. 목자들이 양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양들이 주인 없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양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살아 계심을 걸고 목자들의 죄를 고발하십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직접 행동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가 그 목자들에게 맞서겠다. 그들의 손에 있는 내 양 떼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그들이 양 떼를 먹이는 일을 그치게 하겠다. 목자들이 더는 자기 자신을 먹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건져 내겠다. 내 양 떼가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34:10 · 본디새김

원래 양을 들짐승의 입에서 구해야 할 사람들이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양을 구해 내야 할 곳은 바로 목자들의 입입니다.

양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양을 잡아먹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양들을 착취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에게서 양을 돌볼 권한을 거두어들이십니다.

하나님은 목자들의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양들을 희생시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양들을 구하기 위해 목자들의 지위를 끝내십니다.

그렇다면 목자들이 사라진 뒤에 양들은 어떻게 될까요?

11절에서 전혀 다른 목자가 등장합니다.

「내가 직접」 —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는 순간

에스겔 34:11–16 본문 →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보아라,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찾고 살피겠다.』」에스겔 34:11 · 본디새김

앞에서는 돌보는 자도 없고 찾는 자도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맡겨졌던 목자의 일을 여호와야훼께서 친히 수행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선언은 단순히 새로운 지도자를 보내겠다는 약속보다 앞섭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이 양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목자가 흩어진 자기 양 떼 가운데 있는 날에 그 떼를 찾아 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찾아 살피겠다. 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에 그들이 흩어졌던 모든 곳에서 내가 그들을 건져 내겠다.』」에스겔 34:12 · 본디새김

‘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은 백성이 흩어졌던 재난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집트와 여러 나라에 대한 심판에서 어둠은 몰락과 재난의 이미지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에스겔은 그 어둠을 이스라엘이 흩어진 날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둠이 마지막 장면이 아닙니다.

양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 돌아와야 비로소 받아 주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먼저 찾아 나서십니다.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 가운데서 데리고 나오고 여러 땅에서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이스라엘 산들과 물길들,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에스겔 34:13 · 본디새김

양을 찾는다는 것은 단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일이 아닙니다. 흩어져 있는 곳에서 데리고 나와 다시 살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에스겔의 청중에게 이 말씀은 구체적인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유배되어 있었고, 자신들의 땅과 공동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흩어진 나라들에서 다시 모여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내가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그들의 거처는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거기 좋은 거처에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들의 기름진 풀밭에서 풀을 뜯을 것이다.』」에스겔 34:14 · 본디새김

양에게 좋은 풀밭은 생존을 위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풀밭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나운 짐승이나 위험한 목자에게 쫓기는 양은 풀이 충분하더라도 편안히 누울 수 없습니다.

양이 누워 쉰다는 것은 당장 먹이를 찾아 헤매거나 위험을 피해 달아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장면은 시편 23:1–3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여호와야훼는 목자가 되셔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두 본문에서 목자의 돌봄은 단지 양을 살아 있게 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양이 안전하게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내가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그들을 눕히겠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4:15 · 본디새김

처음에는 목자가 양을 먹여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목자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나님이 친히 하십니다.

「『잃어버린 양은 내가 찾고, 쫓겨난 양은 내가 데려오며, 뼈가 부러진 양은 내가 싸매 주고, 병든 양은 내가 튼튼하게 하겠다. 그러나 살진 양과 힘센 양은 내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정의에 따라 양 떼를 먹이겠다.』」에스겔 34:16 · 본디새김

4절에서 목자들이 하지 않았던 일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목자들은 찾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찾으십니다.

목자들은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데려오십니다.

목자들은 싸매 주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싸매 주십니다.

목자들은 병든 양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튼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악한 목자들이 저버린 책임을 실제로 회복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왜 하나님은 병들고 약한 양을 돌보시면서, 살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고 하실까요?

본문이 건강하거나 힘이 센 존재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17–21절을 읽어야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힘센 양들 가운데 다른 양들을 밀치고, 뿔로 받아 내쫓으며, 약한 양들이 먹을 풀과 마실 물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돌봄은 단지 약한 양들을 치료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해치는 자들을 심판하는 일까지 포함합니다.

이것이 16절 끝의 「정의에 따라」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양 떼를 돌보시되, 양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불의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돌봄과 정의는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닙니다.

약한 양을 진정으로 보호하려면 그 양을 짓밟는 힘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합니다.

양들 사이의 심판 — 좋은 풀을 먹은 뒤 남은 풀을 짓밟는 자들

에스겔 34:17–22 본문 →

17절부터는 심판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너희, 내 양 떼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가 양과 양을, 숫양들과 숫염소들을 가려 심판하겠다.』」에스겔 34:17 · 본디새김

백성은 잘못된 지도자들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백성 안에 아무런 불의도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압제 아래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힘과 자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공동체의 문제를 지도자와 백성이라는 두 집단의 대립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백성 내부에도 힘의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가 불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너희는 좋은 풀밭에서 풀을 뜯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너희 풀밭의 나머지까지 너희 발로 짓밟느냐? 맑은 물을 마시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남은 물을 너희 발로 더럽히느냐?』」에스겔 34:18 · 본디새김

풀을 모두 먹어 치웠다는 말이 아닙니다. 남아 있는 풀을 짓밟았습니다. 물을 모두 마셔 버렸다는 말도 아닙니다. 남아 있는 물을 더럽혔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독점하는 행동과,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것까지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행동은 구별됩니다. 에스겔이 보여 주는 강한 양들의 문제는 후자까지 포함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배불리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양들이 먹고 마실 수 있는 조건까지 파괴했습니다.

「『내 양 떼는 너희 발에 짓밟힌 것을 먹고, 너희 발에 더럽혀진 것을 마신다.』」에스겔 34:19 · 본디새김

이 공동체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어서 굶주리는 양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먼저 누린 자들이 다른 양의 몫까지 더럽히기 때문에 고통받는 양들이 있습니다.

불의는 누군가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은 좋은 조건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훼손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납니다.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치고, 약해진 양들을 모두 너희 뿔로 받아 마침내 그들을 바깥으로 흩어 버렸으니,』」에스겔 34:21 · 본디새김

이것은 경쟁에서 조금 앞서려는 행동 정도가 아닙니다. 약한 양들을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는 행동입니다. 결국 그들은 양 떼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5–6절에서 양들이 흩어진 이유는 목자들이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1절에서는 다른 이유가 드러납니다. 강한 양들이 약한 양들을 밖으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흩어짐은 외부의 위협과 지도자의 실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압제와 배제도 그 흩어짐의 원인이었습니다.

20절과 22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양과 양 사이를 심판하겠다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양을 똑같이 대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해쳤는지, 누가 좋은 것을 누리고 누가 그 결과로 피해를 입었는지를 구별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약한 양과 강한 양이 같은 풀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정한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풀밭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내 양 떼를 구하겠다. 그들이 더는 약탈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양과 양을 가려 심판하겠다.』」에스겔 34:22 · 본디새김

여기서 구원과 심판은 하나의 목적을 향합니다. 양들이 더 이상 다른 존재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돌봄은 공동체의 바깥에서 닥치는 위험을 막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불의까지 바로잡는 일입니다.

「내 종 다윗」 — 하나님이 직접 돌보시는데 왜 다시 목자를 세우시는가

에스겔 34:23–24 본문 →

23절에서 새로운 약속이 등장합니다.

「『내가 그들 위에 목자 하나, 내 종 다윗을 세우겠고, 그가 그들을 먹일 것이다.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가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에스겔 34:23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이미 자신이 직접 양 떼를 찾고 먹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다시 사람인 목자를 세우십니까?

「『나 여호와야훼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가운데서 통치자가 될 것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에스겔 34:24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새로운 목자가 여호와야훼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가 가진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독립적인 권력이 아닙니다. 양 떼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행사되어야 할 권력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를 ‘다윗’이라고 부르실까요?

다윗이라는 이름은 다윗 왕조의 회복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치를 나타내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다윗은 목자로 등장합니다.

그의 첫 번째 역할은 양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앞에서 심판받은 목자들의 잘못이 바로 양 떼를 먹이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목자가 진정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은 왕좌에 앉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양을 먹이는 일을 통해 증명됩니다.

왕은 백성을 소유하거나 그들의 삶을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며, 공동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23절의 「목자 하나」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에스겔서 37:22–24에서는 흩어진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고, 그들 위에 한 왕을 세우며, 다윗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 다시 나타납니다. 따라서 한 목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지도자가 한 명이라는 숫자상의 의미를 넘어, 흩어지고 분열된 백성이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모이는 미래와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이 이 말씀을 전할 때 역사적 다윗 왕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다윗이 그 시대에 살아 돌아와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직접적인 역사 서술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왕조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다윗 왕조의 왕이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그 약속의 미래는 심각한 의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34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윗의 이름을 다시 부릅니다. 이 약속은 예레미야 23:1–6과도 가깝습니다. 예레미야 역시 양 떼를 흩어 버린 목자들을 책망하고, 하나님이 흩어진 양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어 다윗을 위한 의로운 가지가 일어나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기독교의 정경적 읽기에서는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 이해해 왔습니다. 요한복음 10:11–16에서 예수는 자신을 좋은 목자로 말씀하시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시며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에스겔 34장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지만, 에스겔 본문이 처음부터 예수의 생애를 직접 서술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이 약속은 무너진 이스라엘의 왕권과 공동체를 하나님이 어떻게 새롭게 하실 것인가에 관한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잠들고 숲에서 쉬는 양들 — 평화의 언약

에스겔 34:25–29 본문 →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맺고, 해로운 짐승을 그 땅에서 없애겠다. 그들은 광야에서 안전하게 살고 숲에서 잠들 것이다.』」에스겔 34:25 · 본디새김

양에게 광야와 숲은 위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먹을 것을 찾기 어렵거나 사나운 짐승을 만날 수 있고, 목자의 보호 없이 지내기에는 불안한 곳입니다.

자는 동안에는 주변의 위험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안전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보다 깊은 평안을 뜻합니다.

이 장의 처음에서 양들은 온 땅에 흩어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들짐승의 위협이 사라지고, 광야와 숲에서도 안전하게 쉴 수 있습니다.

처음의 재난을 가져왔던 조건들이 하나씩 바뀌는 것입니다.

26절에서는 제때 비가 내립니다. 27절에서는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출을 냅니다. 28절에서는 다른 민족의 약탈과 짐승의 위협이 사라집니다. 29절에서는 기근으로 죽지 않고 다른 민족에게 당하는 수모를 더 이상 짊어지지 않게 됩니다.

먹을 것이 있습니다.

노동의 열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치와 공포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마음이 평안해지는 상태가 아닙니다.

공동체 전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모든 믿는 사람이 언제나 풍성한 수확과 물질적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개인적 보장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흩어진 공동체를 향해 선포된 회복의 약속입니다.

「『들의 나무는 열매를 내고, 땅은 소출을 낼 것이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안전하게 지낼 것이다. 내가 그들의 멍에 막대들을 부수고,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낼 때,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4:27 · 본디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목자뿐 아니라 해방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앞에서 목자들은 백성을 가혹하게 다스렸고, 강한 양들은 약한 양들을 밀어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공동체는 외부의 압제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내부의 착취와 폭력이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평화의 언약은 압제자가 바뀌는 약속이 아니라, 압제받는 삶 자체가 끝나는 약속으로 그려집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이름난 재배지를 마련하겠다. 그들은 그 땅에서 더는 기근으로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며, 민족들에게 당하는 수모를 더는 짊어지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34:29 · 본디새김

그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거나, 다른 양에게 밀려나거나, 굶주림과 수치를 견뎌야 하는 일이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평화의 언약은 양 떼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약속으로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6:3–13에서도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하여 제때 내리는 비, 풍성한 소출, 땅의 평안, 해로운 짐승의 제거, 압제의 멍에에서 해방되는 일이 함께 등장합니다. 에스겔 34장은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언약의 복을 다시 누리는 모습을 이러한 언어로 그립니다. 멍에는 짐승에게 짐을 지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압제하고 강제로 복종시키는 권력을 나타내는 이미지로도 사용됩니다. 레위기 26:13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멍에의 막대를 꺾고 똑바로 걷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4장의 약속은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름난 재배지’는 히브리어 마타 레셈이라는 표현으로, 심는 곳과 명성을 뜻하는 말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풍요롭고 이름난 경작지에 대한 약속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정한 나무나 특별한 인물을 상징한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본문은 바로 뒤에서 기근이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풍성한 땅이 마련된다는 의미가 자연스럽습니다.

「너희는 사람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 비유가 끝나는 마지막 말씀

에스겔 34:30–31 본문 →

에스겔 34장의 마지막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인 나 여호와야훼가 그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 곧 이스라엘 집이 내 백성임을 알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4:30 · 본디새김

양들은 단지 좋은 풀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하나님이 누구이며,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지를 다시 알게 됩니다.

백성은 우상을 섬겼고, 지도자들은 백성을 착취했으며, 성전과 성읍은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34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을 「내 양 떼」라고 부르십니다.

흩어져 있어도 내 양입니다.

병들어 있어도 내 양입니다.

쫓겨났어도 내 양입니다.

좋은 목자를 만나지 못했어도 여전히 내 양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31절에서 비유가 갑자기 풀립니다.

「『너희, 내 양 떼, 내 목장의 양 떼야, 너희는 사람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4:31 · 본디새김

이 표현은 목자와 양의 비유가 실제로 누구에 관한 말씀인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양들은 가축이 아닙니다. 살아가야 할 땅을 잃고, 지도자들에게 착취당하며, 강한 사람들에게 밀려났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 구절을 단순히 비유를 해설하는 문장으로만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 전체의 흐름을 고려하면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납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먹이로 삼았습니다. 강한 양들은 약한 양들을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십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의 돌봄 아래 함께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의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은 그 관계의 다른 한쪽을 보여 줍니다. 그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려 했던 인간 목자들이 그들의 최종적인 주인이 아닙니다.

양 떼의 주인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기 백성을 착취하는 목자가 아니라 찾아 나서고 먹이고 쉬게 하는 목자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잃어버린 양이 누워 쉬는 날

에스겔 34:1–31 본문 →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잘못된 왕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세우는 정치적 변화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회복하시고, 그들이 다시는 서로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관계의 질서를 세우십니다.

마침내 양들은 좋은 풀밭에 이릅니다.

제때 비가 내리고, 나무는 열매를 맺으며, 땅은 소출을 냅니다. 더 이상 다른 민족의 약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힐 걱정도 없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도 안전하게 살고, 숲에서도 잠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장면은 거대한 왕좌도, 강한 군대도 아닙니다.

좋은 풀을 먹은 양들이 조용히 누워 쉬는 목장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먹이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섰던 목자가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