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45장

이 장의 자리 · 40–48장 · 새 성전 환상

하나님께 드린 땅과 백성의 몫

에스겔 45장에는 얼핏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땅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성소와 제사장, 레위 사람들, 성읍과 통치자가 각각 받을 땅의 위치와 크기가 정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통치자들을 꾸짖으십니다.

「폭력과 파괴를 없애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라. 내 백성을 쫓아내는 너희 행위를 그쳐라.」 그리고 곧바로 저울과 곡식 됫박, 기름을 재는 용기, 무게의 기준을 설명하십니다.

왜 성전의 환상에서 상거래에 사용하는 저울까지 다루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은 성전 건물만이 아닙니다. 그 성전 주변에서 사람들이 땅을 소유하고, 물건을 거래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함께 예배하는 방식까지 새롭게 하십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945장 본문 읽기 →

땅을 나눌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몫을 드리다

에스겔 45:1–4 본문 →

45장은 땅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제비를 뽑아 땅을 상속 몫으로 나눌 때에는, 그 땅에서 거룩한 몫을 떼어 여호와야훼에게 봉헌물로 바쳐야 한다. 길이는 이만 오천, 너비는 만이어야 한다. 그 사방 경계 안의 땅은 모두 거룩하다.』」에스겔 45:1 · 본디새김

여호수아 14:1–2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명하신 대로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눕니다. 에스겔 45장에서도 제비를 뽑아 상속 몫을 정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체 토지 분배의 한가운데에 여호와야훼께 드릴 특별한 구역이 놓입니다.

이스라엘은 땅의 절대적인 주인이 아닙니다

레위기 25:2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영구히 팔지 말라고 명하시면서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이스라엘은 그분 앞에서 거류민과 체류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상속받습니다. 그러나 그 상속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얻은 소유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그 땅을 누리는 것입니다.

에스겔 45장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땅 자체가 봉헌물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살아갈 공간의 일부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제단에서 시작해 땅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땅을 어떻게 나누고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까지 포함합니다.

거룩한 몫의 치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절에서 거룩한 몫의 길이는 이만 오천, 너비는 만으로 주어집니다. 이 수치에는 단위가 명시되지 않습니다. 앞선 성전 측량에서는 규빗과 측량 장대가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어느 단위인지 문장 자체가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그 안에 성소를 위한 정사각형의 땅이 마련됩니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오백이고, 그 둘레에는 쉰 규빗의 빈터가 있습니다. 이 정사각형은 에스겔이 앞에서 보았던 성전의 외곽 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쉰 규빗의 빈터는 성소를 다른 시설들과 구별하는 완충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소는 땅 가운데 놓이지만, 주변 공간과 아무 구별 없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사장에게는 거룩한 땅이면서 살아갈 집터입니다

4절은 이 구역의 용도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땅 가운데 거룩한 몫이다.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 곧 여호와야훼를 섬기려고 가까이 다가가는 이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집을 지을 자리와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한다.』」에스겔 45:4 · 본디새김

앞 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상속 몫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44:28). 그러나 그 말씀이 제사장들에게 생활 공간을 주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45장에서는 그들이 살아갈 자리를 하나님께서 직접 마련하십니다.

거룩한 땅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질서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1절의 너비를 만으로 기록하지만, 칠십인역은 이만으로 기록합니다(칠십인역 에스겔 45:1). 칠십인역의 수치를 따르면 처음부터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두 구역을 합친 더 넓은 봉헌지를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본디새김이 따른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1–4절의 거룩한 몫을 제사장을 위한 구역으로 이해하고, 5절에서 레위 사람들의 구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따르더라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구별된다는 점은 같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 성읍과 통치자의 땅

에스겔 45:5–8 본문 →

5절에서는 레위 사람들을 위한 땅이 추가됩니다.

길이는 이만 오천, 너비는 만입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지만,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사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성소에 접근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도 별도의 소유지가 주어집니다.

성읍은 제사장이나 통치자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6절에서는 성읍을 위한 땅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거룩한 봉헌지와 나란히 너비 오천, 길이 이만 오천을 성읍의 소유지로 주어야 한다. 그것은 온 이스라엘 집안의 것이 되어야 한다.』」에스겔 45:6 · 본디새김

에스겔 48:15–20에서는 이 성읍과 그 주변 땅의 배치가 더욱 자세히 설명됩니다. 그러나 45장만으로도 하나님이 거룩한 구역과 공동체의 생활 공간을 함께 마련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성읍에서 살아갈 백성들에게도 자리가 있습니다.

통치자에게도 땅이 주어집니다

7절에서는 통치자의 몫이 등장합니다.

그는 거룩한 봉헌지와 성읍 소유지의 서쪽과 동쪽에 땅을 받습니다. 성소와 성읍의 양옆으로 이어지고, 이스라엘의 전체 영토 안에서 통치자에게 주어진 몫이 됩니다.

그런데 이 땅을 설명한 직후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 땅이 이스라엘에서 그의 소유지가 되어야 한다. 내 통치자들은 더 이상 내 백성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스라엘 집안에 지파별로 땅을 주어야 한다.』」에스겔 45:8 · 본디새김

통치자가 자기 소유지를 갖게 하여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못하게 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땅의 배치가 단순한 지리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런데 5절의 마지막에는 「거기에 방 스무 개가 있어야 한다」는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칠십인역은 이 자리를 ‘거주할 성읍들’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칠십인역 에스겔 45:5). 히브리어를 따르면 스무 개의 방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소유지와 연결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칠십인역을 따르면 레위 사람들이 거주할 성읍들이 마련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민수기 35:2에서 레위 사람들에게 거주할 성읍을 주도록 한 규정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두 본문 전통 가운데 하나만이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만이다」 — 하나님이 통치자들의 토지 수탈을 멈추게 하시다

에스겔 45:9 본문 →

9절은 이 장에서 가장 강한 어조로 시작합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이제 그만이다. 폭력과 파괴를 없애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라. 내 백성을 쫓아내는 너희 행위를 그쳐라.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45:9 · 본디새김

여기서 가장 구체적인 고발은 백성을 쫓아내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던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

이 명령을 읽을 때 열왕기상 21장의 나봇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합 왕은 자신의 왕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그 땅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상속지이므로 왕에게 넘길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상속받은 땅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과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거짓 증언과 불의한 재판을 이용하여 나봇을 죽게 했고, 아합은 그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왕의 욕망을 위해 한 사람의 생명과 상속지가 함께 빼앗겼습니다.

에스겔 45:9가 그 사건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같은 문제를 다룹니다.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백성의 상속지를 빼앗는 문제입니다.

미가 2:1–2에서도 권력 있는 사람들이 남의 밭을 탐내어 빼앗고, 집과 상속지를 강탈하는 일이 고발됩니다. 에스겔 45장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통치자에게 별도의 땅을 지정하십니다.

하나님은 통치자의 권력을 인정하시면서 동시에 제한하십니다

불의한 권력을 막으려면 지도자에게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행사되는 범위와 재산의 경계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통치자는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지위를 이용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생활 기반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이후 에스겔 46:18에서 다시 명확해집니다. 통치자는 백성의 상속지를 빼앗아 그들의 소유지에서 쫓아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22:12에서는 예루살렘이 뇌물을 받고 피를 흘리며, 이자와 부당한 이득으로 이웃을 착취하는 성읍으로 고발되었습니다. 22:27에서는 지도자들이 먹이를 찢는 늑대처럼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 사람의 피를 흘린다고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45장에서는 그러한 행위들이 구체적으로 금지됩니다.

에스겔 22장이 이스라엘이 어떤 공동체가 되었는지를 고발했다면, 45장은 회복될 공동체에서 어떤 질서가 세워져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땅을 빼앗는 폭력뿐 아니라, 거래할 때 사용하는 저울과 됫박까지 바로잡으십니다.

하나님이 저울과 됫박을 정하시는 이유

에스겔 45:10–12 본문 →

10절에서 말씀은 아주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너희는 정확한 저울과 정확한 에바와 정확한 밧을 갖추어야 한다.』」에스겔 45:10 · 본디새김

이제 왕궁이나 토지 분배가 아니라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에바는 곡식처럼 마른 물건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밧은 기름과 같은 액체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에바와 밧은 같은 용량이어야 한다. 밧은 한 호멜의 십분의 일을 담고, 에바도 한 호멜의 십분의 일을 담아야 한다. 그 용량은 호멜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에스겔 45:11 · 본디새김

마른 곡식과 액체는 서로 다른 용기로 측정하지만, 각각의 단위가 가리키는 용량은 공통된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단위를 만들어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입니다.

속이는 저울은 단순한 상업적 잘못이 아닙니다

아모스 8:4–6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상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곡식을 파는 용기를 작게 만들고, 저울추를 속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미가 6:10–11에서도 속이는 저울과 거짓 추를 사용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됩니다.

거짓 저울은 단순히 정확하지 않은 계산 도구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받아야 할 몫을 속여 빼앗는 수단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손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거래가 반복되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왕은 권력을 이용하여 남의 땅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상인은 저울과 용기를 조작하여 남의 곡식이나 돈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둘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남의 몫을 부당하게 차지한다는 점에서 같은 종류의 불의입니다.

거룩한 공동체는 성전 안에서만 정직한 공동체가 아니라, 곡식을 사고팔 때에도 정직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왜 한 미나를 복잡하게 설명할까요?

12절에서는 무게의 기준이 제시됩니다.

「『한 세겔은 스무 게라다. 스무 세겔과 스물다섯 세겔과 열다섯 세겔을 합한 것이 너희에게 한 미나가 되어야 한다.』」에스겔 45:12 · 본디새김

본디새김의 읽기를 따르면 한 미나는 예순 세겔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단순히 ‘한 미나는 예순 세겔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스무 세겔과 스물다섯 세겔과 열다섯 세겔을 나열하실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서로 다른 크기의 무게추를 합산하는 방식과 관련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 수치만으로 실제 무게추의 구성이나 유통 방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 고대의 모든 지역과 시대에서 미나의 무게가 동일했던 것도 아니므로, 이 수치를 보편적인 고대 무게 표준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확실한 것은 세겔과 미나의 관계를 명확한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해야 거래에서 사람마다 다른 수치를 적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45장에서 이 정확한 기준은 곧바로 다른 문제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드릴 봉헌물을 얼마나 거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울과 용량의 정확성이 필요한 이유는 시장의 거래뿐 아니라, 예배를 위해 백성에게서 거두는 몫과도 관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의 봉헌물과 통치자의 책임 — 누가 제사를 마련하는가?

에스겔 45:13–17 본문 →

13절부터 하나님은 백성이 바쳐야 할 봉헌물의 양을 정하십니다.

밀과 보리, 기름, 양과 염소 떼에서 일정한 몫을 내야 합니다. 각 항목에 적용되는 비율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밀과 보리는 각각 한 호멜 가운데 육분의 일 에바를 바칩니다. 한 호멜은 열 에바이므로, 한 호멜에서 육분의 일 에바를 내는 것은 전체의 육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과 같습니다.

14절에서는 기름 한 코르에서 십분의 일 밧을 바칩니다. 한 코르는 열 밧에 해당하므로, 전체의 백분의 일을 내는 셈입니다. 15절에서는 양과 염소 떼 이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내도록 합니다.

따라서 모든 생산물에 똑같은 비율을 적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백성이 예배를 위해 어느 정도의 몫을 내야 하는지 정해져 있습니다.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때마다 마음대로 더 많은 양을 요구하도록 남겨 두지 않은 것입니다.

봉헌물은 어디로 가나요?

16절은 이 봉헌물을 받는 사람을 밝힙니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은 이 봉헌물을 이스라엘의 통치자에게 내야 한다.』」에스겔 45:16 · 본디새김

이 문장만 보면 통치자가 백성에게서 곡식과 기름과 가축을 거두어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7절에서 그 목적이 밝혀집니다.

「『절기와 초하루와 안식일, 곧 이스라엘 집안의 모든 정한 때에 드릴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은 통치자의 책임이다. 그는 이스라엘 집안을 위해 속죄하도록 속죄 제물과 곡식 제물과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마련해야 한다.』」에스겔 45:17 · 본디새김

이것은 통치자가 백성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을 권한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그 자원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통치자가 받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재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해 맡기신 자원입니다.

통치자는 제사장인가요?

17절에서 통치자가 여러 제물을 마련한다는 표현 때문에, 그가 제사장과 같은 직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두 역할을 구별합니다. 통치자는 제물을 마련할 책임을 집니다.

실제 제단에서 피를 바르고 제사를 집행하는 직무는 제사장에게 속합니다. 19절에서도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문설주와 제단에 바르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앞부분에서 통치자의 잘못된 행동이 백성의 삶을 무너뜨렸다면, 이제 통치자의 올바른 행동은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동체의 예배를 돕는 방향으로 제시됩니다.

권력의 목적이 백성에게서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에서, 백성을 위해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로 바뀌고 있습니다.

새해의 첫날에는 왜 성소를 정결하게 해야 할까?

에스겔 45:18–20 본문 →

18절에서 말씀은 달력으로 옮겨 갑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첫째 달 초하루에 너는 흠 없는 어린 수소 한 마리를 가져다가 성소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에스겔 45:18 · 본디새김

제단만이 아니라 성전의 여러 경계에 피를 바른다

19절에서 제사장은 속죄 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성전 문설주와 제단의 네 모퉁이, 안뜰 대문의 문설주에 바릅니다. 성소에서 예배가 이루어지는 여러 공간이 정결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에스겔 43장에서는 새로 마련된 제단을 봉헌하기 위해 이레 동안 정결 의식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45장에서는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한 해의 시작에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제시됩니다.

43장의 제단 봉헌은 처음 제단을 예배에 사용하도록 구별하는 과정입니다. 45장의 규정은 회복된 예배 공동체가 해마다 지켜야 할 정결 의식의 일부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로 하신 성전이라 하더라도, 백성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거룩함을 지속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누구의 잘못 때문에 성전을 위해 속죄하는가?

「『그달 이렛날에도 너는 실수로 잘못한 사람과 분별없는 사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너희는 성전을 위해 속죄를 행해야 한다.』」에스겔 45:20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위협하는 것은 언제나 의도적인 반역만이 아닙니다. 잘 알지 못해서 저지른 잘못이나 분별이 부족해서 저지른 행동도 공동체의 제의적 질서에 영향을 미칩니다.

레위기 4장에서도 부지중에 저지른 죄를 위한 속죄 제사 규정이 자세히 나타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에스겔 45:20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고의적인 배교를 금하시는 것뿐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발생하는 잘못까지 다루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만이 아니라 성전을 위해 속죄한다

그런데 성전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죄를 짓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 성전을 위해 속죄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서는 인간의 죄와 부정이 성소를 더럽히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레위기 16:16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죄악 때문에 성소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성소를 위한 속죄는 건물이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간이 백성의 부정과 죄악으로부터 정결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제의적 표현입니다.

이 규정은 실수로 잘못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를 공동체의 예배 질서 안에서 다루도록 하는 규정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잘못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지 않지만, 잘못한 사람이 있는 공동체가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도 마련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통치자도 자신을 위해 속죄 제물을 마련한다

에스겔 45:21–24 본문 →

2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가 등장합니다.

「『첫째 달 열나흗날에는 너희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이레 동안 지키는 절기다.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에스겔 45:21 · 본디새김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시고,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왜 유월절이 이 장의 마지막에 등장할까?

이 장 앞부분에서는 통치자들에게 백성을 쫓아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이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가 등장합니다.

에스겔 45장이 토지 수탈의 금지와 유월절을 의도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대조했다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문맥을 따라 읽으면 둘 사이의 신학적인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다시 백성을 억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구원을 기억하는 방식은,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에스겔 45장은 아모스 5:21–24와도 중요한 주제적 연결을 이룹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드리는 절기와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며, 정의와 공의가 흐르기를 요구하십니다. 그 말씀은 예배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의를 행하면서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통치자는 왜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을 마련해야 할까?

「『그날 통치자는 자신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위해 수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마련해야 한다.』」에스겔 45:22 · 본디새김

통치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제의적인 책임을 지지만, 죄와 무관한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에스겔 45장의 통치자를 신약의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구별 없이 동일시하는 해석은 본문과 긴장을 일으킵니다.

에스겔 34:23–24와 37:24–25에서는 다윗과 연결된 한 목자와 통치자의 약속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본문들과 45장의 통치자 규정을 연결하여 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45:22는 이 통치자가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따라서 이 장의 통치자를 어떤 개인과 직접 동일시하기 전에, 본문이 묘사하는 직무와 책임을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날마다 일곱 마리의 수소와 일곱 마리의 숫양

23절에서는 제물의 양이 제시됩니다.

이레 동안 날마다 흠 없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 그리고 속죄 제물인 숫염소 한 마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레 동안 번제물로 마련하는 수소와 숫양은 각각 마흔아홉 마리가 됩니다. 24절에서는 수소와 숫양 한 마리마다 곡식 제물 한 에바를 마련하고, 곡식 제물 한 에바마다 기름 한 힌을 마련하도록 합니다.

제물을 준비하는 책임은 백성에게서 봉헌물을 거두는 권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백성에게서 받은 몫을 자기 소유처럼 쌓아 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공동체의 예배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후 레위기 23:5–8에서는 첫째 달 열나흗날의 유월절과 열닷샛날부터 시작되는 이레 동안의 무교절이 구별되어 규정됩니다. 그런데 에스겔 45:21에서는 유월절과 이레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가 한 문맥 안에서 설명됩니다. 본문의 히브리어는 하그 셰부오트 야밈이라는 다소 어려운 형태를 지닙니다. ‘이레’와 관련된 낱말이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있어 문자적인 형태와 실제 절기의 기간을 어떻게 연결할지에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23절에서 이레 동안 제물을 바친다는 사실이 반복되고, 레위기 23장의 무교절 기간도 이레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디새김처럼 이레 동안 지키는 절기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민수기 28장에서는 절기의 하루 번제물로 수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 등이 규정되지만, 에스겔 45장은 날마다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명시합니다. 에스겔이 보고 있는 것은 회복된 성전의 예배 질서를 설명하는 환상이며, 그 안에서 제물의 수량은 기존 제사법과 다른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왜 그 수량이 달라졌는지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숫자 일곱을 단순히 완전함의 상징으로 해석하여 실제 제사 수량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거나, 반대로 이 수량만으로 미래의 역사적 예배 체계를 모두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일곱째 달의 절기 — 구원의 기억이 한 해를 감싼다

에스겔 45:25 본문 →

마지막 절은 일곱째 달 열닷샛날의 절기를 언급합니다.

「『일곱째 달 열닷샛날의 절기에도 그는 이레 동안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속죄 제물도, 번제물도, 곡식 제물도, 기름도 똑같이 마련해야 한다.』」에스겔 45:25 · 본디새김

이 절기의 이름은 본문에 명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23:34에서는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키도록 규정합니다. 따라서 에스겔 45:25의 절기는 초막절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게 하는 절기였습니다. 레위기 23:42–4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초막에 거주하도록 하시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그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하신 일을 기억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45장에서는 첫째 달의 유월절과 일곱째 달의 절기가 서로 대응하도록 배치됩니다.

둘 다 통치자가 제물을 마련합니다.

둘 다 이레 동안 지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보고 있는 시대의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유배를 경험한 백성입니다. 그런 백성에게 하나님은 다시 절기를 지키는 삶을 보여 주십니다. 백성이 땅을 상속받고, 농사를 짓고, 제물을 준비하고, 정해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입니다.

유배로 무너졌던 공동체의 시간과 삶이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다시 절기의 날짜를 세고, 수확의 일부를 내고,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3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일곱째 달 열흘의 속죄일이 이 장에는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첫째 달 초하루와 이렛날에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속죄일이 폐지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모든 절기와 예배 규정을 빠짐없이 나열한다고 밝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46장에는 안식일과 초하루, 일상적인 번제에 관한 규정들이 추가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회복된 성전의 예배가 이스라엘의 이전 제사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모든 세부 사항을 동일하게 반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전의 예배 질서를 보여 주지만, 그 모든 규정이 기존 율법의 각 조항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맺음말 — 저울을 바로잡은 뒤 맞이하는 유월절

에스겔 45:1–25 본문 →

그래서 에스겔 45장의 저울은 성전의 제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저울은 이웃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지 않게 합니다. 거룩한 제단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몫을 하나님께 드리게 합니다. 그리고 회복된 공동체에서는 두 가지가 함께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45장을 현대적인 경제 정책의 설계도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의 토지 배분과 봉헌물의 비율은 특정한 성전 환상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상황 안에서 주어진 규정입니다. 그 수치를 오늘날의 세율이나 국가 재정 제도에 직접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은 통치자가 실제로 명령을 순종하는 장면까지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유월절 제사가 이루어진 뒤 백성이 기뻐하는 모습도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운 공동체가 어떤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첫째 달 열나흗날, 백성은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한때 자기 백성을 억압하던 통치자의 자리에, 이제 백성의 구원을 기념하는 예배를 책임져야 할 통치자가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땅에서는 예배를 위한 제물이 마련되는 것만큼이나, 이웃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에스겔 45장의 마지막에는 절기를 위해 마련할 수소와 숫양, 곡식과 기름이 남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여호와야훼께 드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물을 마련하는 통치자는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폭력과 파괴를 없애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라. 내 백성을 쫓아내는 너희 행위를 그쳐라.」

그 명령 아래에서 비로소 회복된 이스라엘의 유월절이 준비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