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45장
이 장의 자리 · 40–48장 · 새 성전 환상
하나님께 드린 땅과 백성의 몫
에스겔 45장에는 얼핏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땅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성소와 제사장, 레위 사람들, 도시와 통치자가 각각 받을 땅의 위치와 크기가 정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통치자들을 꾸짖으십니다.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을 그쳐라.」 그리고 곧바로 저울과 곡식 됫박, 기름을 재는 그릇, 무게의 기준을 설명하십니다.
왜 성전의 환상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하는 저울까지 다루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온 성전에서 올바른 예배가 이루어지려면 제사장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백성의 땅을 빼앗는 통치자가 있고, 곡식을 속여 파는 상인이 있으며, 백성에게서 거둔 몫을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 공동체는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은 성전 건물만이 아닙니다. 그 성전 주변에서 사람들이 땅을 소유하고, 물건을 거래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함께 예배하는 방식까지 새롭게 하십니다.
땅을 나눌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몫을 드리다
45장은 땅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제비를 뽑아 땅을 물려받을 몫으로 나눌 때에는, 그 땅에서 거룩한 몫을 따로 떼어 여호와야훼에게 바쳐야 한다. 길이는 이만 오천, 너비는 만이어야 한다. 그 경계 안의 땅은 사방 모두 거룩하다.』」에스겔 45: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각자 자기 몫의 땅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드릴 땅을 구별합니다. 여호수아 14:1–2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명하신 대로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눕니다. 에스겔 45장에서도 제비를 뽑아 물려받을 몫을 정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체 땅을 나누는 한가운데에 하나님께 드릴 특별한 구역이 놓입니다.
이스라엘은 땅의 절대적인 주인이 아닙니다
레위기 25:2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영구히 팔지 말라고 명하시면서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이스라엘은 그분 앞에서 나그네로 머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물려받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얻은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그 땅을 누리는 것입니다.
에스겔 45장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땅 자체가 하나님께 바치는 몫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살아갈 공간의 일부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제단에서 시작해 땅으로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땅을 어떻게 나누고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까지 포함합니다.
거룩한 몫의 치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절에서 거룩한 몫의 길이는 이만 오천, 너비는 만으로 주어집니다. 이 수치에는 단위가 명시되지 않습니다. 앞선 성전 측량에서는 규빗과 측량 장대가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어느 단위인지 문장 자체가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1절의 너비를 만으로 기록하지만, 칠십인역은 이만으로 기록합니다(칠십인역 에스겔 45:1). 칠십인역의 수치를 따르면 처음부터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두 구역을 합친 더 넓은 땅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두루새김이 따른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1–4절의 거룩한 몫을 제사장을 위한 구역으로 이해하고, 5절에서 레위 사람들의 구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그 안에 성소를 위한 정사각형의 땅이 마련됩니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오백이고, 그 둘레에는 쉰 규빗의 빈터가 있습니다. 이 정사각형은 에스겔이 앞에서 보았던 성전의 바깥 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쉰 규빗의 빈터는 성소를 다른 시설들과 구별하는 사이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소는 땅 가운데 놓이지만, 주변 공간과 아무 구별 없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사장에게는 거룩한 땅이면서 살아갈 집터입니다
「『이것은 땅에서 따로 구별한 거룩한 몫이다. 성소에서 일하며 여호와야훼를 섬기려고 가까이 나아가는 제사장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집을 지을 자리와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한다.』」에스겔 45:4 · 두루새김
앞 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자신이 그들이 물려받을 몫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44:28). 그러나 그 말씀이 제사장들에게 생활 공간을 주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45장에서는 그들이 살아갈 자리를 하나님께서 직접 마련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몫이 되신다는 약속은 현실의 주거와 생계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룩한 땅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질서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입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 성읍과 통치자의 땅
5절에서는 레위 사람들을 위한 땅이 추가됩니다.
길이는 이만 오천, 너비는 만입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사장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소에 가까이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도 별도의 땅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5절의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방 스무 개가 있어야 한다」는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칠십인역은 이 자리를 ‘거주할 도시들’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칠십인역 에스겔 45:5).
히브리어를 따르면 스무 개의 방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땅과 연결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칠십인역을 따르면 레위 사람들이 살아갈 도시들이 마련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민수기 35:2에서 레위 사람들에게 살아갈 도시를 주도록 한 규정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두 본문 전통 가운데 하나만이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는 제사장이나 통치자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너희는 거룩하게 바친 땅과 나란히 너비 오천, 길이 이만 오천인 땅을 도시의 땅으로 주어야 한다. 그 땅은 온 이스라엘 백성의 것이 되어야 한다.』」에스겔 45:6 · 두루새김
도시는 특정한 제사장 가문이나 통치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이 함께 살아갈 공간으로 마련됩니다. 에스겔 48:15–20에서는 이 도시와 그 주변 땅의 배치가 더욱 자세히 설명됩니다.
성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갈 백성들에게도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공동체에는 예배를 위한 장소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장소가 모두 필요합니다.
통치자에게도 땅이 주어집니다
7절에서는 통치자의 몫이 등장합니다. 그는 거룩하게 바친 땅과 도시의 땅 서쪽과 동쪽에 땅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설명한 직후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 땅이 이스라엘에서 통치자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나의 통치자들은 더 이상 내 백성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파별로 땅을 주어야 한다.』」에스겔 45:8 · 두루새김
통치자가 자기 몫의 땅을 받는 것은 단지 그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통치자가 자기 땅을 갖게 하여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못하게 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땅의 배치가 단순한 지리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로 바뀝니다.
「이제 그만하여라」 — 하나님이 통치자들의 토지 수탈을 멈추게 하시다
9절은 이 장에서 가장 강한 어조로 시작합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이제 그만하여라!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을 그쳐라. 공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여라. 내 백성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는 일을 그쳐라.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45:9 · 두루새김
여기서 가장 구체적인 고발은 백성을 쫓아내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던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
이 명령을 읽을 때 열왕기상 21장의 나봇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합 왕은 자신의 왕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그 땅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이므로 왕에게 넘길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물려받은 땅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과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거짓 증언과 불의한 재판을 이용하여 나봇을 죽게 했고, 아합은 그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왕의 욕망을 위해 한 사람의 생명과 물려받은 땅이 함께 빼앗겼습니다.
에스겔 45:9가 그 사건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같은 문제를 다룹니다.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백성이 물려받은 땅을 빼앗는 문제입니다. 미가 2:1–2에서도 권력 있는 사람들이 남의 밭을 탐내어 빼앗고, 집과 물려받은 땅을 강제로 빼앗는 일이 고발됩니다.
하나님은 통치자의 권력을 인정하시면서 동시에 제한하십니다
불의한 권력을 막으려면 지도자에게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와 재산의 경계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통치자는 공동체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지위를 이용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22:12에서는 예루살렘이 뇌물을 받고 피를 흘리며, 이자와 부당한 이득으로 이웃을 착취하는 도시로 고발되었습니다. 22:27에서는 지도자들이 먹이를 찢는 늑대처럼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 사람의 피를 흘린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에스겔 22장이 이스라엘이 어떤 공동체가 되었는지를 고발했다면, 45장은 회복될 공동체에서 어떤 질서가 세워져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땅을 빼앗는 폭력뿐 아니라, 거래할 때 사용하는 저울과 됫박까지 바로잡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라브 라켐은 글자 그대로 ‘너희에게 충분하다’, ‘너희가 많이 했다’는 뜻의 표현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통치자들의 악행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책망입니다.
하나님이 저울과 됫박을 정하시는 이유
10절에서 말씀은 아주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너희는 정확한 저울을 써야 한다. 에바와 밧으로 양을 재는 그릇도 정확해야 한다.』」에스겔 45:10 · 두루새김
이제 왕궁이나 땅 나누기가 아니라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에바는 곡식처럼 마른 물건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밧은 기름과 같은 액체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한 에바와 한 밧은 담는 양이 같아야 한다. 한 밧은 한 호멜의 십분의 일을 담고, 한 에바도 한 호멜의 십분의 일을 담아야 한다. 양을 재는 기준은 호멜에 맞추어 정해야 한다.』」에스겔 45:11 · 두루새김
마른 곡식과 액체는 서로 다른 그릇으로 재지만, 각각의 단위가 가리키는 양은 같은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단위를 만들어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입니다.
속이는 저울은 단순한 상업적 잘못이 아닙니다
아모스 8:4–6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상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곡식을 파는 그릇을 작게 만들고, 저울추를 속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미가 6:10–11에서도 속이는 저울과 거짓 추를 사용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됩니다.
거짓 저울은 단순히 정확하지 않은 계산 도구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받아야 할 몫을 속여 빼앗는 수단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손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거래가 반복되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왕은 권력을 이용하여 남의 땅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상인은 저울과 그릇을 조작하여 남의 곡식이나 돈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둘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남의 몫을 부당하게 차지한다는 점에서 같은 종류의 불의입니다.
거룩한 공동체는 성전 안에서만 정직한 공동체가 아니라, 곡식을 사고팔 때에도 정직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왜 한 미나를 복잡하게 설명할까요?
「『한 세겔은 스무 게라다. 스무 세겔과 스물다섯 세겔과 열다섯 세겔을 합한 것이 너희에게 한 미나가 되어야 한다.』」에스겔 45:12 · 두루새김
두루새김의 읽기를 따르면 한 미나는 예순 세겔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단순히 ‘한 미나는 예순 세겔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스무 세겔과 스물다섯 세겔과 열다섯 세겔을 나열하실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서로 다른 크기의 무게추를 합하는 방식과 관련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 수치만으로 실제 무게추의 구성이나 사용 방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 고대의 모든 지역과 시대에서 미나의 무게가 같았던 것도 아니므로, 이 수치를 고대 어디에서나 쓰던 무게 기준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확실한 것은 세겔과 미나의 관계를 분명한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해야 거래에서 사람마다 다른 수치를 적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45장에서 이 정확한 기준은 곧바로 다른 문제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바칠 몫을 얼마나 거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울과 양을 재는 그릇이 정확해야 하는 이유는 시장의 거래뿐 아니라, 예배를 위해 백성에게서 거두는 몫과도 관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의 봉헌물과 통치자의 책임 — 누가 제사를 마련하는가?
13절부터 하나님은 백성이 바쳐야 할 몫의 양을 정하십니다.
밀과 보리, 기름, 양과 염소 떼에서 일정한 몫을 내야 합니다. 각 항목에 적용되는 비율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 밀과 보리: 1/60, 약 1.67%
· 기름: 1/100, 곧 1%
· 양과 염소 떼: 1/200, 곧 0.5%
하나님은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백성이 예배를 위해 어느 정도의 몫을 내야 하는지 정해져 있습니다.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때마다 마음대로 더 많은 양을 요구하도록 남겨 두지 않은 것입니다.
바친 몫은 어디로 가나요?
「『그 땅의 모든 백성은 이 몫을 이스라엘의 통치자에게 내야 한다.』」에스겔 45:16 · 두루새김
이 문장만 보면 통치자가 백성에게서 곡식과 기름과 가축을 거두어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7절에서 그 목적이 밝혀집니다.
「『절기와 매달 첫날과 안식일, 곧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정해진 모든 날에 바칠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부어 바치는 제물은 통치자가 책임지고 마련해야 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하도록 속죄제물과 곡식 제물과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마련해야 한다.』」에스겔 45:17 · 두루새김
이것은 통치자가 백성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을 권한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받은 것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통치자가 받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재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해 맡기신 것입니다.
통치자는 제사장인가요?
통치자는 제물을 마련할 책임을 집니다. 실제 제단에서 피를 바르고 제사를 드리는 일은 제사장에게 속합니다. 19절에서도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문설주와 제단에 바르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앞부분에서 통치자의 잘못된 행동이 백성의 삶을 무너뜨렸다면, 이제 통치자의 올바른 행동은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공동체의 예배를 돕는 방향으로 제시됩니다.
권력의 목적이 백성에게서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에서, 백성을 위해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45장을 현대적인 경제 정책의 설계도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의 땅을 나누는 방식과 바칠 몫의 비율은 특정한 성전 환상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상황 안에서 주어진 규정입니다. 그 수치를 오늘날의 세율이나 국가 재정 제도에 직접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새해의 첫날에는 왜 성소를 정결하게 해야 할까?
18절에서 말씀은 달력으로 옮겨 갑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첫째 달 첫날에 너는 흠 없는 어린 수소 한 마리를 가져다가 성소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에스겔 45:18 · 두루새김
이제 하나님은 새롭게 회복된 공동체가 한 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이것은 절기의 시작을 단순히 축하하는 의식과 다릅니다.
제단만이 아니라 성전의 여러 경계에 피를 바른다
19절에서 제사장은 속죄제물의 피를 조금 가져다가 성전의 문설주와 제단의 단에 있는 네 모퉁이, 안뜰 문의 문설주에 바릅니다. 성소에서 예배가 이루어지는 여러 공간이 깨끗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에스겔 43장에서는 새로 마련된 제단을 하나님께 바쳐 예배에 사용하기 위해 칠 일 동안 깨끗하게 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45장에서는 해마다 돌아오는 한 해의 시작에 성소를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 제시됩니다.
43장에서 제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처음 제단을 예배에 사용하도록 구별하는 과정입니다. 45장의 규정은 회복된 예배 공동체가 해마다 지켜야 할 정결 의식의 일부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머무시기로 하신 성전이라 하더라도, 백성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거룩함을 계속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누구의 잘못 때문에 성전을 위해 속죄하는가?
「『그달 일곱째 날에도 실수로 잘못한 사람과 모르고 잘못한 사람 때문에 같은 일을 해야 한다. 너희는 이렇게 성전을 위해 속죄하여라.』」에스겔 45:20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위협하는 것은 언제나 의도적인 반역만이 아닙니다. 잘 알지 못해서 저지른 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잘 가리지 못해서 저지른 행동도 공동체의 제사 질서에 영향을 미칩니다. 레위기 4장에서도 모르고 저지른 죄를 위한 속죄 제사 규정이 자세히 나타납니다.
죄를 지은 사람만이 아니라 성전을 위해 속죄한다
그런데 성전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죄를 짓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 성전을 위해 속죄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서는 인간의 죄와 부정이 성소를 더럽히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레위기 16:16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죄악 때문에 성소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성소를 위한 속죄는 건물이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공간이 백성의 부정과 죄악으로부터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제사 의식의 표현입니다.
이 규정은 실수로 잘못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쫓아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생긴 문제를 공동체의 예배 질서 안에서 다루도록 하는 규정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잘못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지 않지만, 잘못한 사람이 있는 공동체가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도 마련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통치자도 자신을 위해 속죄 제물을 마련한다
2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가 등장합니다.
「『첫째 달 열나흗날에는 너희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칠 일 동안 지키는 절기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에스겔 45:21 · 두루새김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시고,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이집트를 떠날 준비를 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후 레위기 23:5–8에서는 첫째 달 열나흗날의 유월절과 열닷샛날부터 시작되는 칠 일 동안의 무교절이 구별되어 규정됩니다. 그런데 에스겔 45:21에서는 유월절과 칠 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가 한 문맥 안에서 설명됩니다.
왜 유월절이 이 장의 마지막에 등장할까?
이 장 앞부분에서는 통치자들에게 백성을 쫓아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이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기억하는 공동체에서 통치자가 백성의 땅을 빼앗아 그들을 쫓아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공동체는 자신들이 기념하는 구원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에스겔 45장이 땅을 빼앗지 말라는 명령과 유월절을 의도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대조했다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문맥을 따라 읽으면 둘 사이에 신앙적으로 이어지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다시 백성을 억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구원을 기억하는 방식은,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통치자는 왜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을 마련해야 할까?
「『그날 통치자는 자신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위해 수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마련해야 한다.』」에스겔 45:22 · 두루새김
통치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제사에 관한 책임을 지지만, 죄와 무관한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에스겔 45장의 통치자를 신약의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구별 없이 동일시하는 해석은 본문과 긴장을 일으킵니다.
에스겔 34:23–24와 37:24–25에서는 다윗과 연결된 한 목자와 통치자의 약속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본문들과 45장의 통치자 규정을 연결하여 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45:22는 이 통치자가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따라서 이 장의 통치자를 어떤 개인과 직접 동일시하기 전에, 본문이 묘사하는 역할과 책임을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날마다 일곱 마리의 수소와 일곱 마리의 숫양
칠 일 동안 날마다 흠 없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 그리고 속죄제물인 숫염소 한 마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따라서 칠 일 동안 번제물로 마련하는 수소와 숫양은 각각 마흔아홉 마리가 됩니다. 24절에서는 수소와 숫양 한 마리마다 곡식 제물 한 에바를 마련하고, 한 에바마다 기름 한 힌을 마련하도록 합니다.
이 양은 민수기 28:16–25에 나오는 무교절 제사 규정과 같지 않습니다. 민수기 28장에서는 절기의 하루 번제물로 수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 등이 규정되지만, 에스겔 45장은 날마다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분명히 말합니다.
에스겔이 보고 있는 것은 회복된 성전의 예배 질서를 설명하는 환상이며, 그 안에서 제물의 수량은 기존 제사법과 다른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왜 그 수량이 달라졌는지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숫자 일곱을 단순히 완전함의 상징으로 해석하여 실제 제사 수량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거나, 반대로 이 수량만으로 미래에 실제로 이루어질 예배의 체계를 모두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통치자가 공동체를 위해 상당한 양의 제물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물을 준비하는 책임은 백성에게서 바칠 몫을 거두는 권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이레’와 관련된 낱말이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있어 글자 그대로의 형태와 실제 절기의 기간을 어떻게 연결할지에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23절에서 칠 일 동안 제물을 바친다는 사실이 반복되고, 레위기 23장의 무교절 기간도 칠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루새김처럼 「칠 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일곱째 달의 절기 — 구원의 기억이 한 해를 감싼다
마지막 절은 일곱째 달 열닷샛날의 절기를 언급합니다.
「『일곱째 달 열닷샛날의 절기에도 칠 일 동안 같은 일을 해야 한다. 속죄제물과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기름을 똑같이 마련해야 한다.』」에스겔 45:25 · 두루새김
이 절기의 이름은 본문에 분명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23:34에서는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도록 규정합니다. 따라서 에스겔 45:25의 절기는 초막절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게 하는 절기였습니다. 레위기 23:42–4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초막에서 살도록 하시며, 이집트를 떠난 뒤 광야에서 그들을 초막에서 살게 하신 일을 기억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45장에서는 첫째 달의 유월절과 일곱째 달의 절기가 서로 대응하도록 놓입니다. 둘 다 통치자가 제물을 마련합니다. 둘 다 칠 일 동안 지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보고 있는 시대의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유배를 경험한 백성입니다. 그런 백성에게 하나님은 다시 절기를 지키는 삶을 보여 주십니다. 백성이 땅을 물려받고, 농사를 짓고, 제물을 준비하고, 정해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입니다.
유배로 무너졌던 공동체의 시간과 삶이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다시 절기의 날짜를 세고, 수확의 일부를 내고,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것입니다.
그런데 속죄일은 왜 언급되지 않을까?
레위기 23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일곱째 달 열흘의 속죄일이 이 장에는 분명하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첫째 달 첫날과 일곱째 날에 성소를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 나타납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에스겔의 절기 규정이 모세 율법을 단순히 그대로 반복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속죄일이 폐지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모든 절기와 예배 규정을 빠짐없이 나열한다고 밝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46장에는 안식일과 매달 첫날, 날마다 드리는 번제에 관한 규정들이 추가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회복된 성전의 예배가 이스라엘의 이전 제사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모든 세부 사항을 똑같이 반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전의 예배 질서를 보여 주지만, 그 모든 규정이 기존 율법의 각 조항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맺음말 — 저울을 바로잡은 뒤 맞이하는 유월절
하나님은 자신에게 드려지는 제물뿐 아니라, 그 제물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에스겔 45장의 저울은 성전의 제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저울은 이웃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지 않게 합니다. 거룩한 제단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몫을 하나님께 드리게 합니다.
이 장은 통치자가 실제로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까지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유월절 제사가 이루어진 뒤 백성이 기뻐하는 모습도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운 공동체가 어떤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에스겔 45장의 마지막에는 절기를 위해 마련할 수소와 숫양, 곡식과 기름이 남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물을 마련하는 통치자는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는 일을 그쳐라.」
그 명령 아래에서 비로소 회복된 이스라엘의 유월절이 준비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