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48장

이 장의 자리 · 40–48장 · 새 성전 환상

마지막에 남는 이름, 「여호와야훼가 거기에 있다」

에스겔서는 놀라운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이 드러나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갑니다. 골짜기에 널린 마른 뼈들이 살아나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새로운 성전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 긴 책의 마지막은 의외로 조용합니다.

에스겔 48장은 기적이나 심판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땅을 나누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소유지를 정하고, 성읍의 크기와 문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으로 책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야훼가 거기에 있다.」

이 이름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수많은 숫자와 지파의 이름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이름을 알고 나면 앞에 놓인 숫자와 지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스겔서가 궁극적으로 보여 주려는 것은 성전의 규모나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 그토록 자세한 토지 분배와 도시 설계가 필요했을까?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지파들과 그들 가운데 정착한 거류민에게 땅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48장은 그 분배가 실제로 어떤 형태를 가지는지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848장 본문 읽기 →

북쪽에서 시작되는 일곱 지파 — 과거의 지도를 그대로 되돌리지 않는다

에스겔 48:1–7 본문 →

「『지파들의 이름은 이러하다. 북쪽 끝, 헤들론 길을 따라 르보하맛과 하살에난으로 이어지는 곳, 다마스쿠스 경계 북쪽으로 하맛 곁에 이르는 곳에서, 동쪽 면부터 서쪽 면까지 이어지는 땅이 단의 한 몫이다.』」에스겔 48:1 · 본디새김

헤들론, 르보하맛, 하살에난 같은 지명은 앞 장에서 제시된 경계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 지명들의 정확한 위치와 연결 방식에는 불확실한 부분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 경계가 단 지파에게 주어질 땅의 북쪽 한계를 이룬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단 지파의 땅은 동쪽 면부터 서쪽 면까지 이어집니다. 이어서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의 땅이 같은 방식으로 배치됩니다.

이 배열은 여호수아 시대의 토지 분배와 상당히 다릅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지파들의 땅이 강과 산지, 골짜기, 기존 성읍들의 위치에 따라 복잡하게 구분됩니다. 요단 동쪽에도 지파들의 상속지가 있었고, 서쪽의 지파들도 반드시 동서로 평행한 띠 모양의 땅을 소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여호수아 13–19장).

그러나 에스겔 48장에서는 각 지파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이어지는 한 구역을 받습니다. 각 구역의 남북 폭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명시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평행한 띠들이 차례로 놓이는 질서정연한 배치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공동체의 땅이 이전과 다른 질서로 다시 배열되고 있습니다.

단 지파는 여호수아 19:40–48에서 처음에는 남서쪽 지역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18장에는 단 사람들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을 단이라고 부르게 된 사건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우상 숭배와 관련된 성소도 세워졌습니다(사사기 18:30–31).

그런 단 지파가 에스겔의 회복된 땅에서는 가장 북쪽에 자기 몫을 받습니다.

이 배치를 단 지파에 대한 특별한 용서의 상징이라고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단은 회복된 이스라엘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에게도 분명한 상속 재산이 주어집니다.

한편 가장 남쪽에 놓인 유다 지파는 중앙의 거룩한 구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유다는 다윗 왕조와 관련된 지파입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유다의 땅 안에 성소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땅과 구별된 구역에 성소가 놓입니다.

각 지파는 자기 몫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땅 전체의 중심에는 어느 지파의 이름도 붙지 않은 특별한 구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땅입니다.

한가운데 따로 떼어 놓은 땅 — 성소는 누구의 소유인가

에스겔 48:8–14 본문 →

「『유다의 경계에 맞닿아 동쪽 면부터 서쪽 면까지 너희가 따로 떼어 바칠 땅이 있을 것이다. 너비는 이만 오천이고, 길이는 지파들의 몫 하나처럼 동쪽 면부터 서쪽 면까지다. 성소는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에스겔 48:8 · 본디새김

일곱 지파의 땅이 차례로 나열되던 흐름이 여기서 멈춥니다.

여덟 번째 지파가 등장할 차례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에 놓이는 것은 여호와야훼께 따로 떼어 바치는 땅입니다. 지파마다 자기 땅이 있지만, 그 모든 지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것은 특정 지파의 권력이나 소유지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성소가 그 공동체의 중심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중앙 구역도 하나의 공간으로 뭉뚱그려지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땅과 레위 사람들의 땅, 성읍을 위한 땅으로 나뉩니다.

충실하게 직무를 지킨 제사장들의 몫

「『그 땅은 사독의 자손 가운데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의 것이다. 그들은 내가 맡긴 직무를 지켰다. 이스라엘 자손이 빗나갔을 때 레위 사람들은 빗나갔지만, 그 제사장들은 빗나가지 않았다.』」에스겔 48:11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는 땅의 크기를 설명하던 말씀이 잠시 사람들의 과거 행동을 평가하는 말씀으로 바뀝니다. 사독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으로 등장합니다(사무엘하 8:17; 열왕기상 1:38–39). 에스겔의 성전 환상에서는 그의 자손들이 특별한 제사장 직무를 맡습니다.

에스겔 44:10–16을 보면 레위 사람들 가운데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를 때 함께 빗나간 사람들은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는 직무에서 제한을 받습니다. 반면 사독의 자손 가운데 여호와야훼의 성소를 지키던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께 가까이 나아가 섬길 수 있습니다.

48장은 그 구별을 토지 분배에 다시 반영합니다.

이것은 레위 사람들이 모두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별도의 땅이 주어집니다. 다만 제사장에게 맡겨진 직무와 그 밖의 레위 사람들이 맡은 직무가 구별됩니다.

옛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저지른 잘못은 회복의 환상 속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취급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누가 맡은 직무를 지켰고 누가 빗나갔는지를 기억하십니다.

회복은 과거의 모든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책임을 다시 세우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바치는 땅에서 떼어 낸 몫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며 레위 사람들의 경계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에스겔 48:12 · 본디새김

놀랍게도 여기서 「지극히 거룩하다」는 표현은 성전의 지성소가 아니라 제사장들에게 구별하여 주는 토지 구역에 적용됩니다. 물론 그 땅 전체가 지성소와 동일한 출입 규정을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생활하고 직무를 수행하도록 마련된 땅이 여호와야훼께 특별히 구별된 영역임은 분명합니다.

거룩함은 성전 건물의 가장 깊은 방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사람들의 생활 공간과도 관계됩니다.

팔거나 넘길 수 없는 땅

「『그들은 그 일부를 팔아서는 안 된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 땅의 첫 몫을 바꾸거나 넘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호와야훼에게 거룩하기 때문이다.』」에스겔 48:14 · 본디새김

이 땅은 단순히 사적인 재산으로 취급할 수 있는 토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특별한 몫이므로, 개인이 마음대로 거래하거나 다른 용도로 넘길 수 없습니다.

14절의 「첫 몫」이라는 표현도 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땅의 품질이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앞에서 여호와야훼께 구별하여 바친 몫이라는 의미에 무게가 있습니다.

어떤 땅을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는 사실이, 그 땅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까지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레위기 25:23에서는 땅이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께 속해 있기 때문에 영구히 팔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제시됩니다. 에스겔 48장은 특별히 구별된 땅에 관하여 더욱 엄격한 제한을 둡니다.

민수기 35:1–8에서는 레위 사람들에게 여러 지파의 땅에 흩어진 성읍과 목초지를 줍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레위 사람들에게 하나로 이어진 구역이 주어집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직무에 속한 땅으로 구별되고, 처분에도 제한이 따릅니다.

그런데 중앙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뿐이 아닙니다.

다음에는 일반 사람들이 살아갈 성읍이 등장합니다.

거룩한 땅 곁에 놓인 평범한 성읍 — 모든 지파가 함께 살아갈 자리

에스겔 48:15–20 본문 →

「『길이 이만 오천에 걸쳐 남은 너비 오천의 땅은 성읍을 위한 일반 용지로, 거주지와 빈터가 될 것이다. 성읍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에스겔 48:15 · 본디새김

앞에서는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바친 땅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와 나란히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할 땅을 마련합니다.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갈 수 있는 땅입니다.

이것은 성읍이 거룩함과 무관한 장소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성소와 제사장들의 땅처럼 특별한 제사 직무에 구별된 공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의 구역 가운데에 놓이고, 성읍은 그와 구별된 일반 용지 가운데에 놓입니다. 따라서 성소와 성읍은 완전히 같은 공간에 겹쳐 있지 않습니다.

회복된 이스라엘에서 예배와 일상생활은 연결되어 있지만, 모든 공간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숫자 속에서 발견되는 질서

전체 정사각형 구역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이만 오천입니다(20절). 그 남북 방향의 구분은 제사장들의 땅 만, 레위 사람들의 땅 만, 성읍을 위한 땅 오천으로 이루어집니다.

성읍을 위한 땅 안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성읍 자체의 각 변은 사천오백이고, 그 사방에는 이백오십씩의 빈터가 놓입니다. 이렇게 하면 성읍과 그 사방의 빈터가 일반 용지의 남북 너비 오천 안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동서 방향에는 성읍을 위한 중앙 부분의 양쪽으로 만씩 남는 땅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오는 소출은 성읍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됩니다.

이 숫자들은 단순히 신비로운 상징으로만 읽어야 할 숫자가 아닙니다. 서로 맞물려 실제 공간을 구성하는 치수이기도 합니다. 특히 20절에서 전체 구역을 정사각형으로 구별하라고 한 말씀은 앞의 숫자들이 어떻게 하나의 배치를 이루는지 보여 줍니다.

본문이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은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땅과 사람들이 생활하는 땅이 혼란스럽게 뒤섞이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갖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읍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성읍을 위해 일하는 이들,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온 이들이 그 땅을 경작할 것이다.』」에스겔 48:19 · 본디새김

이것은 중앙의 성읍이 어느 한 지파의 전용 거주지나 노동 공간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각 지파는 자기 땅을 가지고 있지만, 중앙의 성읍에는 여러 지파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일합니다.

앞서 37:15–22에서는 유다와 요셉을 상징하는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는 환상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의 민족이 되고, 더 이상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48장의 성읍은 그 하나 됨을 일상적인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한 나라가 되었다는 선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파의 사람들이 한 성읍을 위해 함께 일하고, 그 성읍의 생활을 유지합니다. 그 성읍에는 거주지와 빈터가 있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생산하는 땅이 있습니다.

성읍의 질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된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공동체에는 거룩한 예배를 위한 자리뿐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고 먹고 살아갈 자리도 있습니다. 성소가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일상생활을 하찮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생활이 여호와야훼께서 회복하시는 공동체 안에서 정당한 자리를 갖도록 합니다.

중심을 둘러싼 통치자의 땅 — 왕권도 제자리를 가진다

에스겔 48:21–22 본문 →

「『거룩하게 바치는 땅과 성읍의 소유지 이쪽저쪽에 남은 땅은 통치자의 것이다. 바치는 땅의 이만 오천인 면을 따라 동쪽 경계까지 땅이 이어진다. 또 서쪽으로는 이만 오천인 면을 따라 서쪽 경계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지파들의 몫과 나란히 놓인 땅이 통치자의 것이다. 거룩하게 바치는 땅과 성전의 성소는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에스겔 48:21 · 본디새김

중앙의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소유지가 정해진 다음에야 통치자의 땅이 설명됩니다.

그 결과 유다의 땅과 베냐민의 땅 사이에는 성소와 성읍을 위한 구역이 있고, 그 양옆에 통치자의 소유지가 놓입니다. 22절은 레위 사람들의 소유지와 성읍의 소유지를 제외한 땅이 통치자의 것임을 밝힙니다. 동시에 그 소유지들이 통치자의 땅 가운데 놓여 있다는 공간적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권과 성전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준비했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역대상 22장; 열왕기상 6–8장). 왕들은 성전의 운영과 종교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회복된 공동체에서는 통치자의 땅이 성소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배치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에스겔 45:7–9에서 이미 제시된 통치자의 토지 규정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통치자에게 땅을 따로 마련해 주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백성을 더 이상 억압하거나 소유지에서 몰아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48장은 이제 그 원칙을 공간적으로 보여 줍니다.

통치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땅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땅과 다른 사람들에게 구별된 땅 사이에는 경계가 있습니다. 통치자의 삶과 직무는 여호와야훼의 성소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치자가 성소의 주인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중심에 가까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그 중심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왕권을 없애는 질서가 아니라, 왕권의 자리를 바로잡는 질서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문장의 연결 방식에는 약간의 모호함이 있습니다. 특히 「제외한」과 「가운데」에 해당하는 표현들의 관계를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 문장 구성에 차이가 생깁니다. 하지만 21–22절 전체에서 통치자의 땅이 중앙 구역의 양옆에 있으며, 그 구역의 특별한 소유지들과 구별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남쪽의 다섯 지파 — 흩어진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의 땅을 받는다

에스겔 48:23–29 본문 →

중앙 구역 바로 남쪽에는 베냐민 지파의 땅이 놓입니다.

이어서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의 땅이 차례로 나옵니다. 북쪽에 일곱 지파, 남쪽에 다섯 지파가 배치되므로 모두 열두 지파의 몫이 완성됩니다.

여기서 열두 지파를 셀 때 레위는 별도의 동서 방향 상속 구역을 받는 지파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반면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각각 자기 몫을 받습니다.

에스겔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분열은 오래된 현실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지파들의 역사는 정치적 분열과 정복, 추방을 거치며 복잡하게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회복된 땅에서는 지파들이 다시 이름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도 있고, 르우벤과 유다도 있으며, 시므온과 갓도 있습니다. 에스겔 37: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자손을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오고, 그 땅에서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8장은 그 약속을 토지 분배의 형태로 구체화합니다.

여기서 회복은 과거의 역사적 차이를 모두 없애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파들의 이름은 보존됩니다. 각 지파에는 고유한 몫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서로 다른 왕국을 이루지 않고, 하나의 성소를 중심으로 배열된 하나의 땅을 상속받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 됨은 각 지파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파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갖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28절에서는 갓 지파의 남쪽 경계를 따라 전체 땅의 남쪽 한계를 다시 설명합니다. 이렇게 북쪽에서 시작된 토지 분배가 남쪽 끝에 도달하자 여호와야훼께서 말씀을 맺으십니다.

「『이것이 너희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제비를 뽑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줄 땅이다. 이것들이 그들에게 나뉘어 돌아갈 구역들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48:29 · 본디새김

「제비를 뽑아」라는 표현은 여호수아 시대의 토지 분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수아 18:10에서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제비를 뽑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비뽑기는 단순한 추첨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땅의 상속이 인간 지도자의 임의적인 선택에만 달려 있지 않으며,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루어지는 분배라는 사실과 연결되었습니다. 에스겔에서도 지파들에게 돌아갈 구역이 정해진 다음 제비뽑기를 통한 상속이 명령됩니다.

한편 47:22–23에서 주어진 거류민의 상속권은 여기서 별도로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규정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류민은 자신이 함께 거주하는 지파 안에서 상속 재산을 받도록 명령받았으므로, 지파별 분배는 그들을 위한 몫도 포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 다섯 절에서 시선은 다시 중앙의 성읍으로 돌아옵니다.

사방으로 열린 열두 문 — 모든 지파의 이름이 성읍에 남는다

에스겔 48:30–34 본문 →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이다. 북쪽에 문이 셋, 르우벤 문 하나, 유다 문 하나, 레위 문 하나가 있을 것이다.』」에스겔 48:31 · 본디새김

토지 분배가 끝나자 성읍의 출구들이 소개됩니다.

성읍은 정사각형이며, 네 면의 길이는 각각 사천오백입니다. 각 면에는 문이 셋씩 있어 모두 열두 문이 됩니다.

네 면이 각각 사천오백인 성읍의 북쪽에는 르우벤, 유다, 레위 문이 있고(48:31), 동쪽에는 요셉, 베냐민, 단 문이 있으며(48:32), 남쪽에는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문이 있고(48:33), 서쪽에는 갓, 아셀, 납달리 문이 있습니다(48:34). 이는 48:30–34에 나오는 문 이름의 배치이며, 문들의 정확한 모양이나 간격은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자기 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읍의 문에는 므낫세 문이나 에브라임 문이 없습니다. 대신 요셉 문 하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앞의 열두 상속 구역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레위가 성읍의 문 이름에는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헤아리는 방식에는 두 가지 전통적인 구성이 있습니다. 토지 상속을 다룰 때에는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각각 하나의 지파로 헤아리고, 별도의 제사 직무를 맡은 레위를 일반적인 상속 구역에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을 기준으로 열두 지파를 열거할 때에는 요셉을 하나로 헤아리고 레위를 포함합니다.

에스겔 48장은 이 두 구성을 서로 다른 자리에 사용합니다.

성읍의 문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이름들이 빠짐없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성읍을 특정 지파의 이름으로만 부르지 않고, 사방의 문에 여러 지파의 이름을 붙입니다.

앞에서 지파들은 자기 땅을 따로 받았습니다. 이제 성읍에서는 그 이름들이 하나의 도시를 둘러싼 문들에 함께 놓입니다.

그 성읍은 회복된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문들의 이름이 모두 소개된 다음, 정작 성읍 자체의 이름이 처음으로 밝혀집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요한계시록 21:12–13에서도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문이 있고, 그 문들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이는 에스겔 48장의 성읍 이미지와 뚜렷하게 연결됩니다. 다만 요한계시록 21:22에서는 그 성읍에 별도의 성전이 없다고 말하므로, 두 환상의 세부적인 공간 구성은 같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거기에 있다」 — 에스겔서의 마지막 말씀

에스겔 48:35 본문 →

「『둘레는 만 팔천이다. 그날부터 그 성읍의 이름은 「여호와야훼가 거기에 있다」가 될 것이다.』」에스겔 48:35 · 본디새김

마지막에 남는 것은 성읍의 이름입니다.

성읍의 이름이 하나님의 임재를 선언하다

에스겔서 1장에서 에스겔은 바벨론 유배지의 그발강 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 분이면서도, 유배된 백성에게서 완전히 멀어지신 분은 아니셨습니다.

하지만 8–11장에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득한 우상 숭배와 죄악이 드러났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환상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10:18–19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동쪽 문으로 이동합니다. 11:23에서는 그 영광이 성읍을 떠나 동쪽 산 위에 머뭅니다.

성전은 여전히 건물로 존재할 수 있었지만,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자동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관계가 죄악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은 실제로 함락되었습니다. 성전은 무너지고 백성은 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43:1–5에서 반대 방향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동쪽에서 돌아와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떠나셨던 분이 돌아오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48장에서는 그분이 계신 공동체의 땅과 성읍이 제시됩니다. 에스겔서의 가장 큰 위기는 단지 정치적 독립을 잃거나 성전을 파괴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죄악으로 무너졌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전이 아니라 성읍의 이름인가?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돌아온 곳은 성전이었습니다(43:4–5). 그렇다면 마지막에는 성전의 이름이 「여호와야훼가 거기에 있다」라고 선언되어도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성전의 이름을 새로 짓지 않습니다.

성읍에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48장의 공간 배치를 떠올리면 성소와 성읍은 같은 건물이 아닙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에게 구별된 땅 가운데 있고, 성읍은 그와 나란히 놓인 일반 용지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을 성전의 거룩함과 구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40–48장은 끝까지 성소와 다른 공간의 차이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임재가 공동체의 삶과 무관한, 성전 안의 고립된 사건으로 남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성소의 가장 깊은 공간에 관한 선언에 머물지 않고, 그분의 백성이 함께 살아가는 성읍의 정체성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37:27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그분의 거처가 백성 가운데 있으며, 자신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자신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48장의 마지막 이름은 바로 그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도시의 이름으로 표현합니다.

이름으로 끝나는 예언서

에스겔서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시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특히 심판과 회복의 예언에서 「그들이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라는 선언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과 여러 민족은 여호와야훼의 심판과 구원을 통해 그분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야훼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말보다,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를 성읍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오직 그 성읍에만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에스겔 자신도 유배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후대의 연결에 앞서 에스겔 48장이 자기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성전을 잃었고, 땅에서 쫓겨났으며, 공동체가 흩어지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 백성에게 하나님은 각 지파가 땅을 받는 모습을 보여 주셨고, 모든 지파의 이름을 가진 문들이 있는 성읍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성읍의 마지막 이름은 하나님의 부재가 더 이상 공동체의 현실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성읍의 네 면은 각각 사천오백이므로, 둘레는 정확히 만 팔천입니다. 더욱이 본문은 그 성읍을 직접 「예루살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떠올리게 하지만, 새로운 토지 분배와 공간 배치 안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성읍을 이전 예루살렘의 지형과 건축 배치를 그대로 복원한 도시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5:8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9:45–46에서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목적을 밝히십니다. 레위기 26:11–12에서도 여호와야훼의 거처가 백성 가운데 있게 되고, 그들 가운데 다니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이 나옵니다. 출애굽 이후 성막을 통해 표현되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성전의 파괴를 지나, 회복된 공동체의 마지막 이름으로 다시 선언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떠나셨던 분이지만, 유배지에 있는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11:16에서 여호와야훼는 흩어진 백성이 머무는 나라들에서도 자신이 그들에게 성소가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1:3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선언이 나옵니다. 에스겔의 마지막 이름과 주제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마치며 — 사라지지 않은 이름들, 그리고 새롭게 주어진 이름

에스겔 48:1–35 본문 →

땅의 분배는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마지막 시선은 성읍에 머뭅니다. 지파들의 상속 재산과 제사장의 거룩한 땅, 통치자의 소유지와 사람들이 살아갈 성읍은 서로 구별되지만, 하나의 회복된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 모든 질서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에스겔은 그 성읍의 문들을 봅니다.

북쪽에 세 문, 동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문마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과거에 서로 나뉘었고, 땅을 잃었으며,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의 이름들이 이제 한 성읍의 사방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읍 자체에도 새로운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저 그 성읍이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릴 것인지 전합니다.

「여호와야훼가 거기에 있다.」

이것이 에스겔이 본 마지막 성읍의 이름이고, 에스겔서가 남기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