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47장

이 장의 자리 · 40–48장 · 새 성전 환상

생명의 강과 낯선 사람의 땅

에스겔 47장에는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성전 문턱 아래에서 흘러나온 작은 물줄기가 강이 되고, 그 강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물고기가 살 수 없던 바다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생겨나고, 강가에는 달마다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자랍니다.

그런데 13절부터 이야기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강과 나무가 사라지고, 북쪽과 남쪽의 경계선이 등장합니다. 낯선 지명들이 길게 나열되더니, 마지막에는 땅을 누구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지 규정합니다.

왜 생명의 강에 관한 아름다운 환상이 땅의 경계와 상속권에 관한 규정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47장 본문 읽기 →

문턱 아래에서 시작된 물 — 성전은 생명이 흘러나오는 곳이다

에스겔 47:1–2 본문 →

그가 나를 성전 입구로 다시 데려갔다. 보니, 성전 문턱 아래에서 물이 동쪽으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성전 정면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물은 성전 오른쪽 측면 아래, 제단 남쪽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에스겔 47:1 · 본디새김

43장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던 에스겔은 이제 그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봅니다. 성전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오른쪽은 남쪽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본문은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물줄기에는 일반적인 하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설명이 없습니다. 수원지가 되는 산이나 샘을 소개하지 않고, 어디에서 빗물이 모이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환상이 독자에게 보여 주는 출발점은 오직 성전입니다.

에스겔 43:7에서 여호와야훼는 성전을 자신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에스겔이 보아 온 성전은 주로 경계와 출입, 거룩함의 구별을 통해 설명되었습니다. 누가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어느 공간은 거룩한지, 어떤 제물을 어디에서 다루어야 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47장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거룩한 성전은 세상과 구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세상을 살리는 생명이 흘러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가 나를 북쪽 대문으로 데리고 나가 바깥길로 돌아서 동쪽을 향한 바깥 대문에 이르게 했다. 보니, 오른쪽 측면에서 물이 졸졸 흘러 나오고 있었다.에스겔 47:2 · 본디새김

앞서 에스겔 44:1–2에서 동쪽을 향한 바깥 대문은 여호와야훼께서 들어오신 문이므로 닫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의 이동 경로는 그 규정과 어울립니다.

그런데 사람은 동쪽 대문을 자유롭게 통과하지 못하지만, 물은 그 방향으로 흘러나옵니다.

더욱이 여기서 물은 「졸졸」 흘러나옵니다. 곧이어 나타날 거대한 강을 생각하면 의외로 작은 시작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서 37:26–28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성소가 백성 가운데 영원히 있을 것이며,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자신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엘 3:18(히브리어 성경의 절 구분으로는 4:18)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에 물을 댑니다. 스가랴 14:8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흘러나와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로 흐르며 여름에도 겨울에도 계속된다고 합니다. 두 본문은 에스겔과 모든 세부 사항이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곳에서 생명을 주는 물이 흘러나온다는 공통된 주제를 보여 줍니다.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 사람이 건널 수 없게 된 강

에스겔 47:3–6 본문 →

그 사람이 손에 측량줄을 들고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천 규빗을 측량하고, 나를 물속으로 건너가게 했다. 물은 발목까지 왔다.에스겔 47:3 · 본디새김

성전 환상에서 측량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40장부터 성전의 대문과 벽과 뜰을 재는 장면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건물이 아니라 강을 따라 이동하며 거리를 측정합니다.

네 차례에 걸쳐 천 규빗씩 측량합니다. 그리고 매번 물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첫 번째 천 규빗 지점에서는 발목까지 물이 찹니다. 두 번째에서는 무릎까지, 세 번째에서는 허리까지 올라옵니다.

그런데 네 번째 측량에서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가 다시 천 규빗을 측량하니, 내가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물이 불어나 헤엄쳐야 하는 물이 되었고, 누구도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에스겔 47:5 · 본디새김

본문의 표현도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물의 깊이를 신체의 특정 부분과 비교했지만, 이제는 물이 어떤 깊이인지보다 사람이 그 물을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에스겔을 인도하는 사람은 계속 거리를 측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더 이상 그 강을 자신의 힘으로 건널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 사이에 다른 큰 강이 합류했다거나 많은 비가 내렸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물이 어떻게 이렇게 급격하게 불어났는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환상은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처음부터 분명하게 보여 주었고, 이제 그 물이 얼마나 놀랍게 커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사람의 아들아, 보았느냐?」 그러고는 나를 이끌어 강가로 다시 데려갔다.에스겔 47:6 · 본디새김

이 질문은 단순히 물의 깊이를 확인하는 말이 아닙니다. 에스겔이 방금 목격한 일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이끄는 전환점입니다. 지금까지 에스겔은 물속에 들어가 그 깊이를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강 밖에서 그 물이 어떤 일을 일으키는지 보아야 합니다.

강의 놀라움은 단지 깊어진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놀라움은 그 강이 흘러가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흔히 이 네 단계의 물 깊이를 신앙생활의 네 단계에 대응시키기도 합니다. 발목은 초보적인 믿음, 무릎은 기도, 허리는 헌신, 헤엄치는 강은 온전한 순종이라는 식입니다. 그러한 비유는 개인적인 묵상에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본문 자체가 그런 의미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에스겔은 물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도록 명령받아 영적 성숙을 이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인도자의 안내에 따라 강을 건너다가, 마침내 건널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강을 목격하는 사람입니다. 이 장면의 초점은 에스겔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성전에서 나온 물이 얼마나 커졌는가에 있습니다.

죽은 바다가 살아나다 — 물이 가져오는 치유

에스겔 47:7–11 본문 →

강가로 돌아온 에스겔은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발견합니다.

조금 전까지 에스겔의 관심은 물의 깊이에 있었습니다. 이제 시선이 물 밖으로 옮겨 가자, 강의 양쪽에 자라는 수많은 나무가 보입니다. 그는 이제 물의 규모뿐 아니라 그 물이 만들어 내는 세계를 봅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이 물은 동쪽 지방으로 흘러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고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바다로 흘러 나가면 그 바닷물이 치유될 것이다.」에스겔 47:8 · 본디새김

본문은 단지 「바다」라고 하지만, 물이 내려가는 방향과 10절에 등장하는 엔게디라는 지명을 보면 사해가 그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해는 염분 농도가 매우 높은 내륙 호수입니다. 일반적인 물고기가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며, 오늘날에도 그 특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나온 물이 바로 그 바다에 들어갑니다.

본문은 바닷물이 어떤 화학적 과정을 거쳐 변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닷물이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두 물줄기가 이르는 곳마다 우글거리는 모든 생물이 살 것이다. 물고기도 매우 많아질 것이다. 이 물이 그곳으로 들어가 그곳의 물이 치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강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 것이다.」에스겔 47:9 · 본디새김

분명한 것은 물의 수량이나 갈라지는 방식보다, 그 물이 생명을 일으킨다는 점이 강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물가에 어부들이 설 것이다. 엔게디에서 엔에글라임까지 그물을 펼치는 곳들이 될 것이다. 그곳의 물고기는 종류마다 큰 바다의 물고기처럼 매우 많을 것이다.」에스겔 47:10 · 본디새김

물고기는 「큰 바다」의 물고기처럼 종류가 많고 풍성할 것입니다. 여기서 큰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생명이 돌아온 바다는 사람의 생활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회복은 생명이 살아남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생명이 풍성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에스겔 36:33–36에서 여호와야훼는 황폐해진 성읍들이 다시 사람이 사는 곳이 되고, 황무지가 에덴동산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7장에서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듯이, 생명이 살 수 없던 바다는 물고기로 가득한 바다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장면 한가운데 예상 밖의 예외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늪들과 웅덩이들은 치유되지 않고 소금을 위해 남겨질 것이다.」에스겔 47:11 · 본디새김

생명의 강이 흐른다고 해서 사해 주변의 모든 지형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풍성한 생명과 남겨진 소금 지대가 함께 묘사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말하는 아라바는 요단 계곡과 사해 일대를 포함하는 지형적 지역입니다. 본문에는 「두 물줄기」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나할라임은 형태상 쌍수로 볼 수 있어 두 물줄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실제로 갈라진 두 줄기의 강을 뜻하는지, 풍성한 물의 흐름을 나타내는 특수한 형태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뒤에서는 다시 단수인 「이 강」을 말하므로, 이 한 표현만으로 두 강의 경로를 따로 그리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 기슭의 오아시스로 알려진 곳입니다. 엔에글라임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 늪들과 웅덩이가 왜 치유되지 않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곳들이 강물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인지, 특별한 목적에 따라 남겨진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 늪과 웅덩이들을 죄인이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비유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곳을 심판받아 버려진 장소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소금은 고대 사회에서 음식의 맛을 내고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물질이었습니다. 소금이 남겨진다는 표현은 해당 지역이 소금을 얻는 장소로 유지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경제 활동이나 그 목적까지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 나무 —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

에스겔 47:12 본문 →

강을 따라 이어지던 장면은 다시 강가의 나무들로 돌아옵니다.

「그 강의 이쪽저쪽 강가에는 먹을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가 자랄 것이다. 그 잎은 시들지 않고 그 열매는 다하지 않을 것이다. 달마다 새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물이 성소에서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 그 열매는 먹을 것이 되고 그 잎은 치유에 쓰일 것이다.」에스겔 47:12 · 본디새김

일반적인 과일나무는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는 계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결실이 특정한 계절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달마다」라는 표현은 계절의 정상적인 순환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공급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소에서 나온 물 때문입니다.

강의 출발점이 다시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물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를 보여 주었고, 이제는 그 물이 왜 이토록 지속적인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물이 바다를 치유합니다. 그리고 그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의 잎은 다시 치유에 사용됩니다. 성소에서 나온 생명의 물이 주변의 생명을 회복시킬 뿐 아니라, 그 물로 자란 나무들이 다른 생명을 유지하고 돌보는 데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회복은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사건으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먹이고 치유하는 공급이 계속됩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물의 이미지

이 장면은 창세기 2:10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덴에서는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에서 갈라져 여러 강을 이룹니다. 에스겔에서는 성소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이 되고, 그 강가에 생명을 공급하는 나무들이 자랍니다.

두 본문이 동일한 지형을 묘사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 공급을 강과 나무의 모습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36:35에서는 황폐해진 땅이 에덴동산처럼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47장에서 에스겔은 그와 어울리는 모습을 실제 환상 가운데 봅니다.

또한 시편 1:3의 시냇가에 심긴 나무도 떠오릅니다. 그 나무는 제철에 열매를 맺고 잎이 시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스겔 47장의 나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풍요를 인간의 욕망을 무제한으로 충족시키는 약속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부의 축적이나 사치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나무의 열매와 잎은 먹고 치유하는 데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은 생명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풍성함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부터는 강이 아니라 땅을 나누는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는 전혀 관계없는 주제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그 땅이 어떤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인지 보여 주었다면, 이제는 그 땅에서 누가 살아가게 될 것인지 밝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요한계시록 22:1–2에도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과 달마다 열매를 맺고 잎이 치유에 쓰이는 생명나무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는 에스겔 47장의 이미지를 후대의 종말론적 환상 속에서 뚜렷하게 다시 사용하는 사례입니다. 다만 에스겔 47장 자체의 주된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땅과 성전, 생명과 공동체의 회복을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나누어 주시는 땅 — 회복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는다

에스겔 47:13–14 본문 →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너희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땅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줄 경계다. 요셉에게는 몫들이 돌아간다.』」에스겔 47:13 · 본디새김

13절에서 새로운 신탁이 시작됩니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시대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땅을 안정적으로 소유하며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땅은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 땅은 여호와야훼께서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너희는 저마다 자기 형제와 똑같이 그 땅을 상속받아야 한다.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주려고 손을 들어 맹세한 땅이다. 이 땅이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돌아갈 것이다.』」에스겔 47:14 · 본디새김

여기서 「손을 들어 맹세한」이라는 표현은 맹세를 나타내는 몸짓을 가리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약속하신 땅을 말씀하시는 문맥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20:5–6, 28, 42).

백성은 땅을 잃었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맹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상속의 형평성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정당한 상속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 표현을 모든 개인이 정확히 같은 면적의 토지를 소유한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48장의 분배 방식은 지파별 토지 배분을 다루고 있으며, 개인별 소유 면적을 모두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지파는 완전히 배제되고 다른 지파만 땅을 독점하는 식의 분배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13절에 요셉의 몫이 복수로 표현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 가운데 하나지만,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각 이스라엘의 지파로 간주되었습니다(창세기 48:5). 에스겔 48:4–5에서도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상속지를 받습니다.

다만 47:13의 히브리어는 「몫들」(⁨חֶבֶל⁩)이라는 복수형이므로, 이 절 자체만으로 반드시 두 몫이라는 숫자를 직접 명시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지파 배분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밝혀 줍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의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땅을 분배합니다.

사방에 그어진 경계 — 약속의 땅은 막연한 이상이 아니다

에스겔 47:15–21 본문 →

15절부터는 지명들이 길게 이어집니다.

헤들론, 스닷, 하맛, 베로다, 시브라임, 하살핫티콘, 하살에논, 하우란, 길르앗, 요단, 다말, 므리봇가데스, 르보하맛.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낯선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 지명들은 땅의 범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지리적 표지였습니다.

본문은 북쪽부터 시작하여 동쪽, 남쪽, 서쪽의 경계를 차례로 밝힙니다.

| 북쪽 | 큰 바다에서 헤들론 길과 하맛·다마스쿠스 인근의 여러 지명을 거쳐 이어지는 경계 (15–17절) |

| 동쪽 | 하우란과 다마스쿠스 방면에서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의 요단을 따라 동쪽 바다로 이어지는 경계 (18절) |

| 남쪽 | 다말에서 므리봇가데스의 물을 거쳐 시내를 따라 큰 바다에 이르는 경계 (19절) |

| 서쪽 | 큰 바다를 따라 르보하맛 맞은편까지 이어지는 경계 (20절) |

큰 바다는 지중해를, 동쪽 바다는 사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일부 고대 지명은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완전한 경계선을 현대 지도에 확정적으로 그릴 수 없습니다.

이 경계 묘사는 민수기 34:1–12에 나오는 가나안 땅의 경계 규정과 닮아 있습니다. 두 본문 모두 북쪽과 동쪽, 남쪽과 서쪽의 경계를 나열하고, 바다와 지형과 성읍을 이용해 약속의 땅의 범위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모든 지명과 구간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에스겔 47:18에서는 요단이 동쪽 경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하는데, 여호수아 시대에는 일부 지파들이 요단 동편에서도 상속지를 받았습니다(민수기 32장, 여호수아 13장).

여호와야훼께서 조상들에게 주셨던 땅의 약속이 다시 제시되지만, 구체적인 분배는 새로운 환상의 질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특히 북쪽 경계에 나타나는 지명 가운데 일부는 정확한 위치가 불확실합니다. 르보하맛도 이름의 뜻은 하맛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관계되지만, 그 위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근거로 현대 국가들의 국경이나 영토 범위를 직접 확정하는 것은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생명은 풍성하게 흘러야 하고, 그 생명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삶의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경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배제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경계는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공간을 분명하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두 절에서 뜻밖의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환상을 오직 먼 미래에 대한 지리적 예언으로만 읽는 견해도 있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창조와 공동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환상으로 읽는 견해도 있습니다. 강의 깊이가 급격히 증가하고 사해가 치유되며 나무가 달마다 열매를 맺는 모습은 일상적인 자연 현상을 넘어섭니다. 반면 땅의 경계에는 실제 지명이 등장하고, 상속에 관한 규정은 현실적인 공동체의 삶을 다룹니다. 그러므로 환상의 모든 요소를 문자적인 지형 변화로 확정하는 것도, 반대로 구체적인 땅과 사람들의 삶을 모두 추상적인 상징으로 바꾸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거류민에게도 상속 재산을 주어라 — 약속의 공동체가 넓어지는 자리

에스겔 47:22–23 본문 →

「『너희는 이 땅을 너희와, 너희 가운데 거주하며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거류민들에게 제비를 뽑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들은 너희에게 이스라엘 자손인 본토인과 같아야 한다. 그들도 너희와 함께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상속 재산을 제비로 받아야 한다.』」에스겔 47:22 · 본디새김

여기서 거류민은 잠시 여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하며 그 사회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특히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거류민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생활하고, 가정을 이루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이미 거류민을 보호하도록 명했습니다. 출애굽기 22:21에서는 거류민을 괴롭히거나 억압하지 말라고 했고, 레위기 19:33–34에서는 함께 사는 거류민을 본토인처럼 대하고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명했습니다. 신명기 10:18–19에서는 하나님께서 거류민을 사랑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스라엘도 거류민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47장은 그 보호의 원칙을 상속 재산이라는 영역에까지 적용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토지는 단순한 거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조상과 가문, 지파의 역사와 연결되는 상속 재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보호하거나 함께 살도록 허용하는 것과, 지파의 상속 재산 가운데 몫을 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47:22는 후자를 명합니다.

「『거류민이 함께 거주하는 지파에서, 바로 거기서 그에게 상속 재산을 주어야 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47:23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로 거기서」입니다. 거류민에게 땅을 주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지 않는 외딴곳에 따로 정착시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거류민이 실제로 관계를 맺고 살아온 공동체가 그의 상속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영원히 주변인으로 남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공동체의 삶에 뿌리내릴 자리를 갖게 됩니다.

다만 본문이 모든 민족과 모든 외국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즉시 상속권을 부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령의 대상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하고 자녀를 낳은 거류민입니다. 또한 본문은 지파라는 구분 자체를 없애지 않습니다. 거류민은 여전히 특정 지파 안에서 상속 재산을 받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지파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그 질서 안에서 누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규정입니다.

거류민의 상속은 이스라엘의 약속을 약화시키는가?

여호와야훼께서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과 거류민이 함께 상속받는다면, 조상들에게 주신 특별한 약속의 의미가 약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13–14절은 여전히 열두 지파와 조상들에게 주신 맹세를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역사 안에서 거류민에게도 상속 재산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이 폐기되기 때문에 거류민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호와야훼께서 회복하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떤 사람들을 품어야 하는지가 새롭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레위기 25:23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땅을 영구히 팔아서는 안 된다고 명하시며, 그 이유를 땅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히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궁극적인 땅의 주인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속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땅을 소유한 최초의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땅을 주신 여호와야훼께서 거류민에게도 상속 재산을 주라고 명하시면, 그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은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의 권리만이 아니라, 그 선물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하는 책임도 결정합니다.

장의 후반부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땅을 나누어 주라고 명하십니다. 생명을 공급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그 땅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거류민에게도 상속 재산을 주는 일은 공동체가 실천해야 할 명령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다는 믿음은 사람이 해야 할 정의로운 행동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행동의 근거가 됩니다.

에스겔 47장이 현대의 모든 이주 정책이나 토지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공동체에서 거류민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분명히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창세기 12:3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물론 에스겔 47:22–23이 창세기 12:3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이 다른 민족과 무관하게 폐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본문은 서로를 비추어 줍니다.

마치며 — 강이 닿는 곳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곳마다

에스겔 47:1–23 본문 →

성전에서 시작된 생명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어 갈 땅을 받는 규정으로 끝납니다. 강에는 물고기가 살아갈 곳이 마련되고, 강가에는 나무가 자랄 곳이 마련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살아온 거류민에게도 자신의 가족과 함께 살아갈 자리가 주어집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살아난 생명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까지 마련하십니다.

그리고 에스겔 47장은 마지막으로 바로 그 자리를 가리킵니다.

「바로 거기서 그에게 상속 재산을 주어야 한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