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4–24장 · 예루살렘 심판 예고

죽은 우상들 곁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다

에스겔 6장은 뜻밖의 청중을 향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아들아, 네 얼굴을 이스라엘의 산들로 향하고 그 산들에게 예언해라.」에스겔 6:2 · 본디새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백성을 모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왕이나 제사장에게 찾아가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산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 산들은 에스겔이 있는 바벨론에서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당을 없애고 제단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십니다.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의 시체를 우상 앞에 놓고, 뼈를 제단 둘레에 흩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산들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본문을 자세히 보면 심판받는 것은 산 자체가 아닙니다. 그 산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문제입니다.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 골짜기와 산꼭대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사를 바치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는 파괴의 선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를 남겨 두어」라는 말씀이 8절에 등장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져 하나님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은 곳은 고향이었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게 될 곳은 유배의 땅이었습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66장 본문 읽기 →

산들에게 선포된 심판 — 땅 전체가 증언하는 불순종

에스겔 6:1–3 본문 →

왜 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너는 이렇게 말해라. 『이스라엘의 산들아, 주 여호와야훼의 말을 들어라. 주 여호와야훼가 산들과 언덕들, 물길들과 골짜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나, 바로 내가 너희에게 칼을 들이닥치게 하고 너희 산당들을 없애겠다.』」에스겔 6:3 · 본디새김

히브리어에는 산들을 직접 부르는 호격 표현과 「들어라」(⁨שָׁמַע⁩)라는 명령형이 사용됩니다. 사람이 아닌 산들을 말씀의 청중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신명기 32:1에서 모세는 하늘과 땅을 불러 자신의 말을 듣게 합니다. 이사야 1:2에서도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증인처럼 부르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고발하십니다. 미가 6:1–2에서는 산들과 땅의 기초들이 여호와야훼의 논쟁을 듣도록 소환됩니다.

이 본문들은 산이나 땅에 인간과 같은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저버릴 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자체를 증인으로 부르는 예언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에스겔 6장에도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산들이 단순한 증인에 머물지 않습니다.

산들은 우상숭배가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들뿐 아니라 언덕들과 물길들과 골짜기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특정한 산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땅 곳곳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산당은 왜 문제가 되었는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높은 곳의 제의 장소가 언제나 동일한 성격을 지녔던 것은 아닙니다. 열왕기상 3:2–4에서는 성전이 세워지기 전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하던 상황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열왕기에서는 많은 산당이 우상숭배나 하나님이 명령하신 예배 질서의 위반과 연결되어 비판받습니다.

에스겔 6장의 산당은 그 성격이 분명합니다.

그곳에는 우상들과 우상에게 바치는 제단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행해진 일을 자신의 언약을 배반하는 행위로 판단하십니다.

문제는 누구를 예배했으며, 하나님이 주신 땅을 무엇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신명기 12:2–3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이 높은 산과 언덕, 푸른 나무 아래에서 섬기던 신들의 제단과 기둥들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6장에서는 바로 그런 시설들이 이스라엘의 산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받은 땅에서 우상숭배를 제거해야 하는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그 땅에 세운 우상숭배 때문에 심판받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산당을 무너뜨리는 일이 단지 외국 군대의 파괴 행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일을 자신의 심판으로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땅과 예배 장소에 기대었던 안전감은 하나님의 뜻과 분리되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36:1–15에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말씀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산들이 다시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와 그 땅에 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6장에서는 산들이 심판의 말씀을 듣습니다. 36장에서는 같은 산들이 회복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두 장을 함께 읽으면 산들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는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6장은 그 회복을 아직 보여 주지 않습니다.

우상 앞에 쓰러진 사람들 — 예배의 장소가 죽음의 장소가 되다

에스겔 6:4–7 본문 →

왜 시체를 우상 앞에 놓으시는가

4절과 5절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 줍니다.

「『너희 제단들은 황폐해지고, 너희 태양 기둥들은 부서질 것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 죽임당한 이들을 너희 우상들 앞에 쓰러뜨리겠다.』」에스겔 6:4 · 본디새김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시체를 그들의 우상들 앞에 놓고, 너희 뼈를 너희 제단들 둘레에 흩어 버리겠다.』」에스겔 6:5 · 본디새김

사람들은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풍요와 안전, 생명과 번영을 기대하며 그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우상 앞에 놓이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몸입니다.

그 우상들은 자신들을 섬기던 사람들을 지키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상의 무능력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시편 115:4–8은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입과 눈과 귀가 있어도 말하거나 보거나 듣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44:9–20도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을 신으로 섬기는 모순을 폭로합니다.

여기서 우상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의 장면에 겹쳐집니다.

제단 둘레에 흩어진 뼈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에서 죽은 사람의 몸과 접촉하는 일은 부정함을 가져왔습니다(민수기 19:11–16). 시체와 뼈는 생명의 상실을 나타낼 뿐 아니라, 정결과 부정의 구별에서도 중요한 대상이었습니다.

제단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의 예언에서는 그곳이 시체와 뼈로 가득한 장소가 됩니다.

이는 그 제의 장소가 더 이상 이전처럼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하 23:16에는 요시야가 벧엘의 제단 위에서 사람의 뼈를 불태워 그 제단을 더럽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스겔 6장 역시 사람의 뼈와 제단을 연결하여 우상숭배의 장소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사라진다

6절에서 파괴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산당들은 황폐해질 것이다. 이는 너희 제단들이 폐허가 되고 황폐해지며, 너희 우상들이 부서져 사라지고, 너희 태양 기둥들이 잘려 나가고, 너희가 만든 것들이 지워지게 하려는 것이다.』」에스겔 6:6 · 본디새김

그런데 목록의 마지막에는 「너희가 만든 것들」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앞에 나오는 제의 시설들과 연결되어,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종교적 대상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의지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서 나온 물건이 이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줄 존재로 여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지워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사람들이 죽임당해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6:7 · 본디새김

자신들이 신이라고 믿고 섬겼던 대상들이 아무런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 여호와야훼가 실제로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들이 기대한 일을 하지 못했고,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말씀하신 일을 이루십니다.

조금 더 깊이

「태양 기둥」은 태양 관련 제의 시설이나 향 제단으로 풀이되며, 구체적인 모양과 용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17:8과 27:9에도 관련된 표현이 등장합니다. 에스겔 6장에서 이 시설은 제단 및 우상과 함께 제거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유배의 땅에서 나를 기억할 것이다 — 심판 가운데 남겨진 사람들

에스겔 6:8–10 본문 →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8절은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를 남겨 두어, 너희가 여러 땅에 흩어질 때 너희 가운데 칼을 피한 이들이 민족들 가운데 있게 하겠다.』」에스겔 6:8 · 본디새김

살아남은 사람들의 존재는 단순히 심판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를 남겨 두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의 회복이 약속되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은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들은 고향에서 평안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땅으로 흩어져 포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목숨이 남아 있지만, 이전의 삶은 사라졌습니다.

「『너희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자기들이 포로로 잡혀 가 머무는 민족들 가운데서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나를 떠나 음행한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우상들을 뒤쫓아 음행한 그들의 눈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악, 곧 온갖 역겨운 짓 때문에 스스로를 역겨워할 것이다.』」에스겔 6:9 · 본디새김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 반응은 제사를 다시 드리는 일도 아니고,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도 아닙니다.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나를 기억할 것이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떠올린다는 뜻 이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떠나왔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악을 역겨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단순히 고향에서 드리던 예배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어떻게 배반했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이것을 고난 자체가 반드시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든다는 보편적 원리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은 여기서 하나님이 남겨 두실 특정한 사람들에 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땅이었지만, 다시 찾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나는 상처를 입었다” —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지금까지 하나님은 칼을 보내시고, 산당을 무너뜨리시며, 우상을 부수시는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상처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단순히 잘못된 종교 활동으로 묘사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음행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표현은 호세아 2장과도 연결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혼인 관계의 불충실함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단순히 명령을 내리는 통치자와 그 명령을 수행하는 백성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사랑과 신실함이 요구되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에스겔 6:9에서는 그 관계의 배반이 하나님의 상처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언약을 저버린 백성의 행동이 하나님께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관계적인 언어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일은 규칙을 어긴 사건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배반한 사건이었습니다.

마음은 떠났고, 눈은 우상을 뒤쫓았다

9절은 이스라엘의 음행을 설명하면서 마음과 눈을 나란히 놓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눈은 우상들을 뒤쫓았습니다.

우상숭배는 제단 앞에 서서 제사를 드리는 행동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행동 이전에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고, 눈이 다른 대상을 향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떠나고 눈이 다른 곳을 바라본 끝에, 사람의 몸은 우상 앞에서 예배하게 됩니다.

그 산당들과 제단들은 단순히 잘못된 종교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떠난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흔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단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의지하는지가 달라져야 합니다.

이 점에서 9절은 에스겔서의 이후 메시지를 준비합니다. 에스겔 11:19와 36:26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6장은 아직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사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가 드러납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행동을 역겨운 일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자신이 자신의 행동을 역겨워하게 됩니다.

판단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혐오를 권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악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일을 묘사합니다.

“내가 헛되이 말한 것이 아니다”

10절은 남겨진 사람들의 경험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 재앙을 내리겠다고 헛되이 말한 것이 아니다.』」에스겔 6:10 · 본디새김

앞의 7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식은 심판의 실현이었습니다. 그러나 10절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기들의 악을 깨닫는 일이 그 인식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자신들이 왜 그런 심판을 받았는지 깨닫는 것은 구별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경고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 경고는 근거 없는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이해하는 일과도 연결됩니다. 이전에는 단순한 불행이나 패배로만 보였을 사건을,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저버린 자신의 역사 속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등장했다고 해서 심판의 선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시 에스겔에게 몸으로 반응하며 경고를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의 「나는 상처를 입었다」에서 히브리어의 핵심 표현은 니쉬바르티(⁨שָׁבַר⁩)입니다. ‘부서지다, 깨지다’라는 동사의 수동형 일인칭 표현으로, 기본적으로 ‘내가 부서졌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본디새김이 채택한 읽기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상처를 입으신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충실한 마음과 눈이 하나님께 상처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해석은 뒤따르는 목적어 표현에 주목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음행하는 마음을 부수셨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이 경우 심판을 통해 백성의 완고한 마음이 꺾이는 데 강조점이 놓입니다. 여기서는 본디새김의 번역을 따라 하나님이 상처를 입으셨다는 의미로 읽되, 원문의 구문이 매끄럽지 않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남겨 두는 것이 적절합니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굴러라 — 기뻐할 수 없는 심판

에스겔 6:11–12 본문 →

손뼉은 기쁨의 표현인가, 슬픔의 표현인가

11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새로운 행동을 명령하십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굴러라. 이스라엘 집안의 온갖 악하고 역겨운 짓을 두고 『아』라고 말해라. 그들은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쓰러질 것이다.」에스겔 6:11 · 본디새김

그는 자신의 손과 발, 목소리로 그 말씀의 무게를 드러내야 합니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 행동은 우리에게 기쁨이나 흥분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런 행동은 다양한 감정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행동을 예언자가 심판을 즐기는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백성의 죄악과 다가올 재앙을 향한 격렬한 반응, 곧 분노와 탄식이 뒤섞인 몸짓으로 이해할 여지가 큽니다.

산들을 향한 예언이 처음에는 자연을 청중으로 삼는 독특한 말씀이었다면, 이제는 예언자의 몸까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됩니다.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까이 있는 사람도

12절은 심판의 범위를 다시 설명합니다.

「멀리 있는 이는 역병으로 죽고, 가까이 있는 이는 칼에 쓰러지고, 남아 있는 이와 포위된 이는 기근으로 죽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내 격노를 다 쏟겠다.」에스겔 6:12 · 본디새김

이 구분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칼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역병을 피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성읍 안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기근이 닥칩니다.

여기서 재앙들은 서로 다른 생존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나열됩니다.

이렇게 11–12절은 8–10절의 남겨짐이 어떤 현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지를 다시 보여 줍니다. 그것은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존이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역병이 휩쓰는 가운데 남겨지는 생존입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24:10에서는 발락이 분노하여 손뼉을 칩니다. 에스겔 25:6에서는 손뼉과 발 구름이 다른 민족의 재앙을 기뻐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 동작 자체만으로 감정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겔 6:11에서는 그 행동과 함께 「아」라는 외침이 나옵니다. 이 짧은 외침은 문맥에 따라 탄식이나 놀람, 강한 감정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외쳐야 하는 내용은 이스라엘의 악하고 역겨운 행위와 그 때문에 닥칠 죽음입니다.

향기를 바쳤던 자리에 시체가 놓이다 — 뒤집힌 예배의 풍경

에스겔 6:13–14 본문 →

왜 산꼭대기와 푸른 나무를 다시 열거하는가

13절에서 하나님은 우상숭배가 이루어지던 장소들을 다시 자세하게 열거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죽임당한 이들이 그들의 우상들 사이에, 그들의 제단들 둘레에, 모든 높은 언덕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잎이 무성한 모든 테레빈트나무 아래에, 곧 그들이 자기들의 모든 우상에게 달래는 향기를 바쳤던 곳에 있을 때,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6:13 · 본디새김

이 장소들은 생명력과 풍요를 떠올리게 합니다.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땅,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을 드리우는 커다란 나무는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자연의 모습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장소들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달래는 향기”의 역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을 기쁘게 하려고 향기를 바쳤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우상 앞에는 죽은 사람들이 놓입니다.

본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예언에서는 그 장소가 생명과 안전을 얻는 장소가 아니라 죽음과 심판을 드러내는 장소가 됩니다.

그들이 향기를 바치던 제단은 결국 그들에게 생명을 돌려주지 못하는 제단이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13절에서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라는 선언이 다시 등장합니다.

본문은 죽임당한 사람들을 삼인칭으로 설명하다가 갑자기 「너희는」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언을 듣는 사람들을 다시 그 장면 앞으로 불러오는 효과를 냅니다. 죽은 사람들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청중이, 이제 그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는 사람들로 직접 지목됩니다.

이 장에서는 예언의 대상이 산들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다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로 옮겨 갑니다. 따라서 「너희」가 구체적으로 어느 집단만을 가리키는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범위를 땅 전체로 확장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내 손을 뻗어, 광야에서 디블라까지 그들이 사는 모든 곳에서 땅을 황폐하고 참혹한 폐허로 만들겠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6:14 · 본디새김

「광야에서 디블라까지」라는 표현은 심판이 땅 전역에 미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땅 곳곳의 제의 장소에 흔적을 남겼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심판도 그 땅 곳곳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달래는 향기」는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향기’, ‘만족스럽게 하는 향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제사와 자주 연결됩니다. 창세기 8:21에서는 노아가 드린 제사와 관련하여 여호와야훼가 향기를 맡으시는 장면이 나오고, 레위기 1:9에서는 번제를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6장에서는 이 표현이 우상에게 바친 향기에 사용됩니다. 14절의 디블라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디블라가 전해지지만, 일부 히브리어 사본의 리블라라는 읽기를 따라 지명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블라는 열왕기하 25:6에 등장하는 지명입니다. 그러나 6장 자체만으로 디블라가 어디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산 위에 남겨진 것

에스겔 6:1–14 본문 →

에스겔 6장은 밖에 있는 제단과 사람의 안에 있는 마음을 함께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산들에는 수많은 제단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백성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반면 유배의 땅에는 그들이 의지하던 제단도, 익숙한 산당도 없겠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 시작됩니다.

제단은 무너지고, 우상은 부서지고, 그 둘레에는 사람들의 뼈가 흩어집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를 남겨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산 위의 제단을 지키며 살아남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땅을 떠나 다른 민족들 가운데 흩어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잊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것들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상실 속에서 자신들이 떠나온 분을 기억합니다.

산 위의 제단들은 무너졌지만, 유배의 땅에서 하나님을 기억할 사람들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