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4–24장 · 예루살렘 심판 예고
칼날 아래 놓인 예루살렘
에스겔 5장은 섬뜩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칼로 자신의 머리와 수염을 밀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잘라 낸 털을 저울에 달아 세 부분으로 나누고, 한 부분은 불태우고, 한 부분은 칼로 치고, 나머지는 바람에 흩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몇 가닥은 옷자락에 묶어 두어야 하고, 그중 얼마는 다시 꺼내 불태워야 합니다.
이 기이한 행동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앞 장에서 에스겔은 벽돌에 예루살렘을 새기고 그 도시가 포위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포위가 끝난 뒤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런데 도시의 운명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더 이상 벽돌이 아닙니다. 에스겔 자신의 몸에서 잘라 낸 머리카락입니다.
이 장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심판받는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도시를 심판하시며, 그 도시가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칼을 면도칼로 삼으라 — 한 도시의 운명이 머리카락에 담기다
왜 하필 칼로 머리와 수염을 미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평범한 면도칼을 사용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너, 사람의 아들아, 날카로운 칼을 가져와라. 그것을 가져다가 이발사의 면도칼로 삼고, 네 머리와 수염을 밀어라. 무게를 다는 저울을 가져다가 그 털을 나누어라.」에스겔 5:1 · 본디새김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는 머리카락의 삼분의 일을 치는 무기로 등장합니다. 이 두 장면을 연결하면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동 자체가 심판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는 행동은 애도나 수치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욥은 큰 재앙을 당한 뒤 머리털을 밀었습니다(욥기 1:20). 이사야 7:20에서는 하나님이 앗시리아 왕을 면도칼에 비유하시며 머리털과 수염이 깎이는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제사장이라는 사실은 이 행동을 더욱 충격적으로 만듭니다.
레위기 21:5는 제사장들이 머리에 대머리 자국을 만들거나 수염 가장자리를 깎는 일을 금합니다. 더구나 이 행동은 개인적인 미용이나 애도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심판을 나타내기 위해 수행됩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몸으로 도시의 수치와 상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왜 머리카락을 저울에 달아 나누는가
하나님은 잘라 낸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처리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머리카락은 가볍고 쉽게 흩어지는 물건입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것을 저울에 달아 정확히 나누어야 합니다.
「포위 기간이 다 차면 삼분의 일을 그 도시 한가운데서 불태워라. 다른 삼분의 일을 가져다가 그 도시 둘레에서 칼로 쳐라. 나머지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어라. 내가 칼을 뽑아 그들을 뒤쫓겠다.」에스겔 5:2 · 본디새김
여기서 삼분의 일이라는 구분이 정확한 인구 통계 예측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 주민의 수를 세거나 각 집단의 실제 사망자 수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심판이 미칠 여러 형태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보여 줍니다.
불, 칼, 흩어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포위와 함락을 겪으며 맞게 될 운명을 나타냅니다. 뒤의 12절에서 하나님은 이 상징의 뜻을 직접 설명하십니다.
바벨론으로 이미 유배된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특별히 무겁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흩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곧 심판에서 벗어났음을 뜻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십니다.
옷자락에 묶은 머리카락은 누구인가
3절에서 예상하지 못한 명령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몇 가닥을 가져다가 네 옷자락에 묶어 두어라.」에스겔 5:3 · 본디새김
옷자락에 묶인다는 것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흩어지지 않고 간직된다는 뜻입니다. 이 행동을 예루살렘의 심판 가운데 살아남는 소수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6:8–10에서는 여러 나라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운데서 다시 얼마를 가져다가 불 속에 던져 불태워라. 거기서 불이 나와 이스라엘 온 집안으로 번질 것이다.」에스겔 5:4 · 본디새김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최종적인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남겨진 머리카락 전부가 불태워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근거로 남은 자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불이 「이스라엘 온 집안」으로 번집니다.
이 표현은 심판이 예루살렘의 포위라는 한 사건으로만 제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재앙은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과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1:5의 규정과 에스겔에게 주어진 명령이 법적으로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레위기의 금지 규정을 모든 상황에서의 머리 손질 금지로 단순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서 「거기서」에 해당하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불에 던져진 머리카락에서인지, 불태우는 행위 전체에서인지 해석이 갈립니다.
민족들 한가운데 놓인 도시 — 특권이 어떻게 책임이 되는가
예루살렘은 왜 특별한 도시인가
5절부터 하나님은 머리카락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하십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내가 그 도시를 민족들 한가운데 두었고, 그 둘레에는 나라들이 있다.」에스겔 5:5 · 본디새김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고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심을 나타내신 도시입니다. 신명기 12:5–11은 하나님이 택하실 장소에서 예배하라는 명령을 기록하고, 열왕기상 8장은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의 특별함은 그 도시 자체의 위대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택하시고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예상과 반대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도시는 민족들보다 더 악하게 내 법도를 거역했고, 그 주위의 나라들보다 더 악하게 내 규정들을 거역했다. 그 도시 사람들이 내 법도를 버리고 내 규정들을 따라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에스겔 5:6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그 말씀을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말씀을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의 문제는 거룩한 장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거룩한 장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곳에서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주변 민족들의 법도대로도 행하지 않았다
7절에서는 고발이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너희 주위의 민족들보다 더 거칠게 굴었고, 내 규정들을 따라 걷지 않았으며 내 법도를 행하지 않았고, 너희 주위의 민족들의 법도대로도 행하지 않았으니,」에스겔 5:7 · 본디새김
이를 주변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규범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예루살렘이 타락했다는 고발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높은 기준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이 지키는 기본적인 질서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다른 읽기에서는 이 구절이 주변 민족들의 관습을 따랐다는 고발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다른 민족들의 우상숭배와 관습을 받아들였다는 구약의 여러 고발과도 연결됩니다.
본디새김은 「법도대로도 행하지 않았으니」라는 읽기를 택했습니다. 이 문면을 따르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행동이 주변 민족들과 비교해 보아도 변호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법도를 버렸습니다.
“나도 바로 너를 대적한다”
8절에서 심판의 선언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나도 바로 너를 대적한다.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네 안에 심판을 행하겠다.』」에스겔 5:8 · 본디새김
지금까지 예루살렘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벨론의 군대처럼 보였습니다. 성읍을 포위하고 공격할 외부의 적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가장 의지해야 했던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과 맺으신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말씀을 거스르는 삶을 지속하는데도, 하나님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 도시를 보호하신다면 언약의 의미는 무너질 것입니다.
이 역전은 11절에서 더욱 구체적인 이유를 얻게 됩니다.
더럽혀진 성소 —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전례 없이 참혹한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네 온갖 역겨운 짓 때문에, 내가 전에는 행하지 않았던 일을 네게 행하겠다. 앞으로도 그와 같은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않겠다.」에스겔 5:9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심판의 극심함과 이 사건의 특별한 무게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 그 참혹함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네 안에서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먹고, 자식들이 자기 아버지들을 먹을 것이다. 내가 네게 심판을 행하고, 네게 남은 이들을 모두 모든 바람에 흩어 버리겠다.」에스겔 5:10 · 본디새김
극심한 기근은 단순히 먹을 것이 부족한 상태가 아닙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의지하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먹이고 보호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생명을 받고 돌봄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뒤집히는 것입니다.
심판의 결정적인 이유는 성소의 더럽힘이다
11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맹세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네가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역겨운 짓으로 내 성소를 더럽혔으므로, 나도 반드시 너를 줄여 버리겠다. 내 눈은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나도 아끼지 않겠다.」에스겔 5:11 · 본디새김
성소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심을 나타내는 장소였습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에스겔 8장에 이르면 예언자는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증한 행위들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5장의 고발은 그 환상보다 앞서 성전의 오염을 심판의 핵심 이유로 제시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다는 사실을 안전의 근거로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소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도시를 보호하지 않으십니다. 성소가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의 모든 행위를 무조건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불순종을 정당화하는 보호막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예레미야 7:4–11의 성전 설교와도 연결됩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불의한 삶을 지속하는 모습을 책망합니다.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보여 주는 심판의 가장 깊은 이유는 군사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가 성소에서부터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6:29에는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에게 자기 아들과 딸의 살을 먹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옵니다. 신명기 28:53–57에도 성읍이 포위되었을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파괴되는 극심한 기근이 묘사됩니다. 에스겔은 바로 이런 언약의 경고가 예루살렘을 향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 19:9도 예루살렘의 포위 속에서 사람들이 자녀와 이웃의 살을 먹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이후 예레미야애가 4:10은 기근 속에서 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를 삶았다고 탄식합니다. 따라서 에스겔 5:10은 단순히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과장된 이미지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고대의 심각한 포위와 기근 속에서 실제로 두려워했던 인간적 참상을 언약의 심판 언어로 드러낸 것입니다.
삼분의 일씩 나뉘는 죽음 — 표징이 현실을 설명하다
처음에 나눈 머리카락의 뜻이 밝혀지다
12절에서 하나님은 머리카락의 세 부분이 무엇을 뜻하는지 직접 설명하십니다.
「네게 속한 이들의 삼분의 일은 네 안에서 역병으로 죽고 굶주림으로 스러질 것이다. 삼분의 일은 네 둘레에서 칼에 쓰러질 것이다. 나머지 삼분의 일은 내가 모든 바람에 흩어 버리고, 칼을 뽑아 그들을 뒤쫓겠다.」에스겔 5:12 · 본디새김
불태운 머리카락은 성읍 안에서 역병과 기근으로 죽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칼로 친 머리카락은 성읍을 둘러싼 전쟁 속에서 죽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바람에 흩어진 머리카락은 여러 곳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성읍 안에 남아 있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전쟁터에서 달아났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멀리 흩어졌다고 해서 모든 위험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다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3절은 이 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 분노가 다하고, 나는 그들에게 내 격노를 풀어 가라앉히고 위안을 얻겠다. 내가 그들에게 내 격노를 다 쏟을 때, 그들은 나 여호와야훼가 질투에 불타 말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에스겔 5:13 · 본디새김
이것을 하나님이 사람들의 고통을 즐기시거나, 고통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신다는 뜻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심판은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성소를 더럽힌 행위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 목적에 이르러 더 이상 분노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본문의 거친 표현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분노를 쏟으시고 위안을 얻으신다는 말에는 실제로 엄중하고 불편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질투하시는가
「질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에게 사용될 때에는 언약 관계의 배타성과 깊이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20:5에서 하나님은 다른 신들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4:24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삼키는 불이며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이 오직 여호와야훼를 섬기도록 부름받았음에도 다른 신들을 따르고 언약을 깨뜨리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5장의 질투는 성소를 더럽혔다는 앞선 고발과 직접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맺은 관계를 무관심하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질투를 인간의 통제욕이나 폭력적인 소유욕과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이 감정은 언약의 거룩함과 심판이라는 신학적 문맥 안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그 말씀이 단순한 위협이나 예언자의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위안을 얻겠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함 계열의 동사입니다. 문맥에 따라 위로받다, 후회하다, 뜻을 돌이키다 등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분노가 가라앉고 그 심판이 마무리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민족들의 수치거리가 된 예루살렘 — 뒤집힌 중심의 자리
민족들 한가운데 있던 도시가 조롱거리가 되다
14절에서 시선은 다시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민족들로 옮겨 갑니다.
「지나가는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를 네 주위의 민족들 가운데 폐허와 수치거리로 만들겠다.」에스겔 5:14 · 본디새김
이것은 앞의 5절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민족들 한가운데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도시가 주변 민족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가 하는 점입니다.
민족들 한가운데 놓였다는 위치는 예루살렘을 심판에서 숨겨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심판을 모든 이가 보게 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수치거리이면서 훈계의 대상
15절은 예루살렘이 주변 민족들에게 무엇이 될 것인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내가 분노와 격노와 격렬한 책망으로 네게 심판을 행할 때, 그 도시는 네 주위의 민족들에게 수치거리와 조롱거리, 훈계와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에스겔 5:15 · 본디새김
예루살렘의 멸망은 단순히 주변 민족들이 비웃을 만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경고가 됩니다. 이 도시가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도시였음에도 심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시는 방법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강하게 만들어 다른 민족들보다 높이는 일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십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의 수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설명됩니다.
기근의 화살과 부러진 지팡이 — 심판은 삶의 모든 곳에 미친다
기근이 화살이 되다
16절에서 하나님은 기근을 새로운 이미지로 묘사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파멸을 가져올 기근의 사나운 화살들을 쏠 때, 곧 너희를 파멸시키려고 그 화살들을 쏠 때, 나는 너희에게 기근을 더하고 너희 빵의 지팡이를 부러뜨리겠다.」에스겔 5:16 · 본디새김
이 비유는 기근을 단순히 자연스럽게 발생한 식량 부족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보내시는 재앙으로 나타냅니다.
「빵의 지팡이」는 앞 장에서도 등장했던 표현입니다(에스겔 4:16). 사람의 생명을 지탱하는 식량 공급이 무너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5장에서는 그 표현이 기근의 화살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와 결합됩니다.
빵은 생명을 지탱해야 합니다.
그런데 빵이 사라집니다.
그 결핍은 사람을 약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화살이 몸을 꿰뚫듯 생명을 위협하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적군이 성벽을 넘어오지 않더라도 사람은 죽을 수 있습니다. 굶주림과 역병이 이미 성읍 안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사나운 짐승과 역병과 칼
마지막 절에서는 여러 재앙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기근과 사나운 짐승들을 보내겠다. 그것들이 네 자식들을 앗아 갈 것이다. 역병과 피가 네 안을 지나갈 것이고, 내가 네게 칼을 들이닥치게 하겠다. 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에스겔 5:17 · 본디새김
레위기 26:22에서는 사나운 짐승들이 자녀들을 앗아 가는 심판이 나오고, 26:25–26에서는 칼과 역병, 식량 부족이 함께 등장합니다. 에스겔 5장의 마지막 목록은 이런 언약의 경고들이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선언 속에서 다시 등장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군사적 행동과 관계됩니다. 기근은 식량과 생존의 문제입니다. 역병은 질병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나운 짐승은 인간이 도시와 문명으로부터 어느 정도 차단해 왔다고 생각하는 자연의 위협을 나타냅니다.
성벽이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식량이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생활의 질서도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선언의 근원이 에스겔의 상상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마지막에 다시 확인됩니다.
옷자락에 묶인 몇 가닥의 머리카락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지,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지, 에스겔은 잘라 낸 머리카락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말씀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함께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장에서 심판받는 예루살렘을 오늘의 어떤 공동체와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은 특정한 역사적 시점의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어떤 신앙적 전통이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삶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장은 인간의 고통을 함부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규정할 권한을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재앙을 심판으로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직접 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누군가가 전쟁이나 기근, 질병을 겪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악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심판의 표징 안에 몇 가닥이 따로 묶여 있는 장면이 남습니다.
에스겔은 그 머리카락을 손으로 집어 옷자락에 묶었을 것입니다. 다른 머리카락들이 불과 칼과 바람에 맡겨지는 동안, 그것들은 그의 옷자락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머리카락 한 가닥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의지하던 성벽이나 성소의 존재만으로 안전해지지 않습니다.
큰 도시는 벽돌 하나에 새겨졌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운명은 몇 가닥의 머리카락에 담겼습니다.
에스겔 5장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그 작고 가벼운 머리카락들이 불과 칼과 바람 앞에 놓여 있는 광경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