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빼앗는 자에게 닥칠 일
높이 쌓은 제국과 끝내 남는 말씀
하박국 2장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끝없이 높아지려는 제국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정해진 때를 향해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국은 자기 둥지를 높은 곳에 놓고, 피로 도시를 세우며, 모든 민족을 자기 아래 모으려 합니다. 자신의 힘이 커질수록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당장 눈앞에 실현되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하고,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앞 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이 왜 악한 정복자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이제 그는 대답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복자가 언제 멸망할 것인지 날짜를 알려 주시는 대신, 그의 힘이 왜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 주십니다.
그 대답은 파수대에서 시작해 다섯 차례의 「화가 있다」라는 선언을 지나, 온 땅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잠잠해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파수대에 선 예언자에게 주어진 명령
나는 내 파수 자리에 서겠다. 방벽 위에 자리를 잡겠다. 그가 내게 무엇을 말할지, 내 항변에 관해 내가 무엇이라 답할지 지켜보겠다.하박국 2:1 · 본디새김
하박국은 성벽 위의 파수꾼처럼 자신을 묘사합니다.
고대 성읍에서 파수꾼은 높은 곳에 서서 먼 곳을 살폈습니다. 적이 다가오는지, 위험한 움직임이 있는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이 기다리는 것은 적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파수꾼이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위험을 살피듯,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그는 항변을 제기했지만, 자신의 이해가 마지막 판단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야훼가 대답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내게 대답하며 말했다. 「환상을 기록하여라. 그것을 읽는 이가 달릴 수 있도록 판들 위에 또렷하게 적어라.」하박국 2:2 · 본디새김
하박국이 받은 대답은 즉시 실현될 사건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알려 주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사람들 가운데 보존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 환상은 아직 정해진 때를 기다리고, 끝을 향해 숨을 몰아쉬며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디 오더라도 그것을 기다려라. 반드시 올 것이며 늦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하박국 2:3 · 본디새김
마치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사람처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박국이 파수 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 동안, 환상은 정해진 끝을 향해 다가옵니다.
「더디 오더라도」와 「늦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모순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더디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할 때를 놓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두 가지를 함께 요구하십니다. 눈앞의 상황만 보고 말씀을 거짓이라고 판단하지 말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성취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말 것입니다.
하박국은 악한 제국이 언제까지 폭력을 휘두를 것인지 물었지만, 하나님은 정확한 기간을 알려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기다리는 동안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내 항변에 관해 내가 무엇이라 답할지」라는 말은 그의 기다림이 어떤 성격인지 보여 줍니다. 이 표현은 자신이 하나님께 제기한 항변에 관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로 읽을 수 있고, 하나님께 책망을 받은 뒤 자신이 무엇이라 답할 것인지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소유 표현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박국은 자신의 질문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검토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읽는 이가 달릴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은 두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은 사람이 그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달린다는 뜻일 수도 있고, 글이 분명하여 읽는 사람이 막힘없이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은 두 동사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풀어 오른 욕망과 의로운 사람의 신실함
「보아라, 그의 욕망은 부풀어 있고, 그 사람 안에서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로운 이는 자기의 신실함으로 살 것이다.」하박국 2:4 · 본디새김
히브리어 에무나(אֱמוּנָה)는 신실함, 충실함, 굳게 의지할 만한 성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문맥에 따라 신뢰하는 태도와 신뢰에 걸맞게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함께 포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신실함으로 살 것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사실이 참이라고 머리로 인정하면 생명을 얻는다는 뜻으로 축소하기 어렵습니다.
하박국이 처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의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는데도, 그 말씀을 신뢰하며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실함을 인간이 스스로 쌓아 올리는 도덕적 업적으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정해진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환상은 더디게 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사이에 자신이 무엇을 신뢰하고 있는지 드러내게 됩니다. 눈앞의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을 향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정의 때문에 정의로운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의 신실함은 기다림 속에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살 것이다」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문맥상 그것은 단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계산이 아닙니다. 정복자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삶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모든 의인이 역사적 재난에서 반드시 육체적으로 살아남는다는 보장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더구나 포도주는 배신한다. 거만한 사내는 머물지 못한다. 그는 스올처럼 자기 욕망을 넓혔고, 죽음 같아서 배부를 줄 모른다. 그는 모든 민족을 자기에게 모았고, 모든 백성을 자기에게 모아들였다.」하박국 2:5 · 본디새김
포도주와 거만한 사람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문장 구획과 어휘 해석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도주의 배신성을 독립적인 진술로 읽을 수도 있고, 거만한 정복자의 불안정함을 설명하는 데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스올(שְׁאוֹל)은 죽은 자들이 내려가는 세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표현입니다. 여기서 스올과 죽음은 끝없이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무엇인가 부족해서 다른 민족을 정복하기 시작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복할수록 부족함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커집니다. 하나의 나라를 차지하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나라를 자기 아래 모으려 합니다.
그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더 많은 힘을 얻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다시 더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끝없는 욕망을 가진 자에게 화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하박국 2:4는 신약에서 로마서 1:17과 갈라디아서 3:11에 직접 인용되고, 히브리서 10:37–38에서도 2:3–4의 기다림과 믿음에 관한 말씀이 사용됩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의와 믿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고, 히브리서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내와 연결합니다. 이것은 하박국의 말씀을 새로운 구원사적 문맥에서 읽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2장 자체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폭력적인 제국이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화 — 빼앗은 것이 자기 것이 된다고 믿는 사람
6절에서 본문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이들 모두가 그를 두고 비유를 읊고, 그를 향해 조롱과 수수께끼를 늘어놓지 않겠는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불리고, 담보물로 제 짐을 무겁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겠는가?」하박국 2: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정복자가 모든 민족을 자기에게 모았습니다. 이제 그 민족들이 정복자를 향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정복자는 그들을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까지 영원히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복당한 사람들이 도리어 정복자를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이어지는 다섯 차례의 「화가 있다」는 선언은 이 조롱 노래의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어디까지를 민족들의 노래로 볼지,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의 선언이 직접 나타나는지 원문만으로 모두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복자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계속 쌓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속했던 재산과 영토를 강제로 빼앗아 자기 소유로 만듭니다.
그런데 그가 쌓아 올린 것은 자신의 부만이 아닙니다. 「담보물로 제 짐을 무겁게」 한다는 표현에는 뜻밖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담보물은 빚과 관련된 물건입니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았던 것을 끊임없이 늘려 가는 정복자가 마치 갚아야 할 빚을 떠안는 사람처럼 묘사됩니다.
「너를 물어뜯는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고, 너를 뒤흔드는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너는 그들의 약탈거리가 될 것이다.」하박국 2:7 · 본디새김
「네가 많은 민족을 약탈했으므로, 남은 백성들이 모두 너를 약탈할 것이다. 사람의 피를 흘리고,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폭력을 가했기 때문이다.」하박국 2:8 · 본디새김
정복자는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저지른 행위를 심판의 근거로 삼으십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결코 정당한 소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빼앗은 것이 손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을 가질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물어뜯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공격하는 적들을 가리킬 수 있으며, 앞의 담보물과 연결해 빚을 받아 내는 자들의 이미지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물어뜯는 행위와 이자를 받는 행위가 연결되는 어휘적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화 — 안전을 위해 높이 쌓은 집이 자신을 고발하다
첫 번째 화가 빼앗아 쌓은 재산을 다루었다면, 두 번째 화는 그렇게 얻은 재산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보여 줍니다.
「자기 집을 위해 악한 이익을 취하여 자기 둥지를 높은 곳에 놓고 재앙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자에게 화가 있다.」하박국 2:9 · 본디새김
「둥지」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새의 둥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 짐승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장소에 둥지를 지으면 안전할 것처럼 보입니다.
정복자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그런 안전장치로 생각합니다. 다른 민족을 짓밟아 얻은 재산으로 자신과 자기 집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계산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많은 백성을 잘라 내어 네 집에 돌아갈 수치를 꾀했고, 너 자신에게 죄를 짓고 있다.」하박국 2:10 · 본디새김
그가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합니다. 타인에게 가한 폭력이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보호를 위해 저지른 불의가 자기 파멸의 근거가 됩니다.
「벽에서 돌이 외치고, 목재 사이에서 들보가 그 돌에 응답할 것이기 때문이다.」하박국 2:11 · 본디새김
본문은 구체적인 말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그 집이 무엇을 증언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건물을 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가한 불의가 건물 자체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정복자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영원히 남길 증거로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이 자신의 죄를 증언하는 증거가 됩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권력으로 억누를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건물은 그 고통과 무관해지지 않습니다.
정복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자기 집의 벽이 증언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화 — 피로 세운 도시와 온 땅을 채울 영광
세 번째 화에서는 시야가 개인의 집에서 도시 전체로 넓어집니다.
「피로 도시를 세우고, 불의로 성읍을 굳게 세우는 자에게 화가 있다.」하박국 2:12 · 본디새김
고대의 강대국은 거대한 도시와 성벽, 궁전과 신전을 통해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도시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가 집중되는 장소였고, 그 규모와 화려함은 통치자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도시가 얼마나 큰지, 성벽이 얼마나 높은지 먼저 묻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세워졌는지를 물으십니다.
「피로」 그리고 「불의로」 세워졌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정복과 강제적인 수탈, 폭력을 통해 도시의 권력과 부가 형성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보아라, 백성들은 불에 타 버릴 것을 위해 수고하고, 민족들은 헛된 것을 위해 지쳐 간다. 이것은 만군의 여호와야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냐?」하박국 2:13 · 본디새김
수많은 사람이 일했습니다. 긴 시간을 바쳤고, 무거운 짐을 짊어졌으며, 자신의 삶을 소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습니다.
본문은 노동 자체가 헛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피와 불의 위에 세워진 권력의 영속성을 부정합니다.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제국의 건설 사업이 결국 허무한 것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듯이, 땅이 여호와야훼의 영광에 대한 앎으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하박국 2:14 · 본디새김
바벨론은 자신의 영광으로 세계를 채우려 했습니다. 도시를 세우고, 민족을 정복하고, 다른 왕들을 굴복시킴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영광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본문은 단순히 영광이 온 땅에 퍼질 것이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정복자는 자기 힘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은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강한 자가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짓밟도록 영원히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은 강자의 힘에 가려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마지막 판단의 권위를 가진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물이 바다를 덮듯이」라는 표현 역시 중요합니다. 바다는 특정한 한 지역만 물로 덮인 공간이 아닙니다. 물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앎도 이처럼 온 땅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국이 만들려는 세계는 모든 사람이 한 권력에 굴복하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세계는 온 땅이 참된 주권자가 누구인지 아는 세계입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51:58에도 바벨론의 성벽과 문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불에 탈 것을 위해 수고한다는 매우 가까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두 본문은 바벨론이 세운 거대한 문명적 성취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영원한 기반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4절의 선언은 이사야 11:9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이사야에서는 여호와야훼를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할 때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박국은 그와 매우 가까운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일이 폭력적인 제국의 영광과 대비되도록 합니다.
네 번째 화 — 남을 부끄럽게 만든 자가 수치를 마시다
네 번째 화에서는 도시와 민족의 거대한 규모가 잠시 사라지고,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자기 이웃에게 마실 것을 주는 자야, 너는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보려고 네 가죽 부대를 그에게 갖다 대어 취하게까지 하니, 네게 화가 있다.」하박국 2:15 · 본디새김
그는 다른 사람의 무방비 상태를 자신의 즐거움이나 우월감의 근거로 삼습니다.
이것은 앞서 묘사된 제국의 행동과 닮아 있습니다. 정복자는 다른 민족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들이 자신 앞에서 수치를 당하도록 했습니다. 힘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방의 존엄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서 상황이 뒤집힙니다.
「너는 영광 대신 수치로 배불렀다. 너도 마셔라. 할례받지 않은 몸을 드러내라. 여호와야훼의 오른손에 있는 잔이 네게 돌아오고, 치욕이 네 영광을 덮을 것이다.」하박국 2:1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정복자가 다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마셔야 합니다.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벌거벗음을 보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이 드러납니다.
앞에서는 자신의 영광을 높이려 했습니다. 이제는 수치가 그 영광을 덮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이 충분하지 않아 더 많은 정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쌓은 것은 자신의 수치였습니다.
「레바논에 가한 폭력이 너를 덮고, 짐승들의 파멸이 그것들을 겁에 질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를 흘리고,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폭력을 가했기 때문이다.」하박국 2:17 · 본디새김
여기서 레바논에 가해진 폭력이 구체적으로 어느 전쟁이나 벌목 행위를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서 짐승들의 파멸이 언급되므로, 정복의 폭력이 사람뿐 아니라 그 땅의 생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점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절은 8절의 마지막 부분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앞에서는 약탈에 대한 심판의 이유로 제시되었던 말이 여기서는 수치를 당하는 이유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는 제국의 여러 악행을 하나의 근원으로 묶습니다. 재산의 약탈과 권력의 남용, 사람에게 가하는 모욕과 땅에 가하는 폭력이 모두 같은 지배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국의 영광을 말하던 자들은 승리의 규모를 셌지만, 하나님은 그 승리가 무엇을 파괴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의 일부 표현은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본디새김에서 「네 가죽 부대를 그에게 갖다 대어」라고 옮긴 부분은 어휘와 문장 구성을 달리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특정한 형태의 성적 폭력이나 구체적인 음주 관습에 대한 확정적인 기록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여호와야훼의 오른손에 있는 잔」은 심판의 이미지를 드러냅니다. 예레미야 25:15–29에서는 민족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박국에서도 여호와야훼의 잔은 정복자가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나타냅니다. 레바논은 고대에 특히 백향목으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열왕기상 5:6–10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 사용할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공급받는 일을 전합니다.
다섯 번째 화 —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구하는 사람
다섯 번째 화에서는 갑자기 우상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만든 이가 깎아 낸 우상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 부어 만든 상, 거짓을 가르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 그것을 빚은 이가 말 못 하는 우상들을 만들면서 자기가 빚은 것을 의지하기 때문이다.」하박국 2:18 · 본디새김
이것은 새로운 주제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처럼 보이지만, 사실 앞의 모든 행동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깊은 믿음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정복자는 자기 힘을 신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승리를 보장한다고 생각했고, 그 승리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납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본래 제작자는 자신이 만든 물건보다 앞서 존재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재료로 이루어졌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만든 물건이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본문은 우상을 「거짓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우상이 실제로 말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뒤에서 우상들이 말하지 못한다고 밝힙니다.
그 우상에 의지하는 행위 자체가 거짓된 이해를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을 궁극적인 보호자라고 믿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에게 『깨어나라』 하고, 말 없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 그것이 가르칠 수 있겠느냐? 보아라, 그것은 금과 은으로 입혀져 있지만, 그 안에는 숨결이 조금도 없다.」하박국 2:19 · 본디새김
11절에서는 집을 이루는 돌과 들보가 외치고 대답했습니다. 그것들은 불의하게 쌓아 올린 권력을 고발하는 증인처럼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은 나무와 돌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게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불의로 지은 집의 돌은 죄를 고발하지만, 금과 은으로 장식한 신상은 그 안에 숨결조차 없습니다.
우상은 가난하고 초라해서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듣거나 말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의지하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대상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깁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자신을 의탁합니다.
마지막 장면 — 온 땅이 잠잠하다
「여호와야훼는 자기의 거룩한 궁전에 있다. 온 땅아, 그 앞에서 잠잠하여라.」하박국 2:20 · 본디새김
사람이 만든 우상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거룩한 자리에서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거나 움직이게 해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바벨론은 왕들을 조롱하고 자신의 권위를 모든 민족 위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 제국을 포함한 온 땅 위에 계시는 참된 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잠잠하라는 명령을 받는 대상은 하박국 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다른 민족을 굴복시켰던 강대국도, 그 힘에 짓눌려 고통받았던 민족들도 모두 여호와야훼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의 침묵을 억울한 사람이 항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 자체가 예언자의 항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이 질문했다는 이유로 그의 입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대답하시고 환상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20절의 침묵은 그런 질문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권위 앞에서 자신의 권력과 판단을 절대화하지 않는 태도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조금 더 깊이
「궁전」으로 옮겨진 히브리어 헤칼은 왕궁과 성전을 가리킬 수 있는 낱말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를 나타냅니다. 본문은 이 장소가 지상의 성전인지 하늘의 거처인지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므로, 어느 한쪽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바냐 1:7에서도 여호와야훼의 날이 가까웠다는 선언과 함께 주 앞에서 잠잠하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하박국 2장의 마지막 침묵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자리와 연결됩니다.
결론 — 파수대에서 시작된 기다림, 성전 앞에서 끝나는 소란
정복자는 자신이 이미 손에 넣은 것을 믿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제국은 자신이 영원히 서 있을 것처럼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권세가 끝날 수 있음을 선언하십니다.
마침내 온 땅을 향해 한마디 말씀이 울립니다.
「온 땅아, 그 앞에서 잠잠하여라.」 이 침묵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한 정적이 아닙니다. 참된 주권자 앞에서 제국의 오만한 소리가 멈추는 침묵입니다.
파수대에 선 하박국은 여전히 정해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높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만이 끝내 거짓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