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풀어 읽기 · 60장

이 장의 자리 · 56–66장 · 다시 세워질 시온

도성 위에 떠오른 빛

이사야 60장은 두 개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이 도성은 한때 버림받고 미움받아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던 곳입니다(15절). 성벽은 다시 쌓아야 하고, 멀리 떠나간 자녀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괴롭힘과 멸시를 당한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 도성을 향해 하나님은 먼저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성벽을 다시 쌓으라고도, 잃어버린 재물을 되찾으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빛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에게 자신의 힘으로 빛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빛이 왔기 때문에 빛나라고 하십니다.

시온이 빛나게 되는 이유는 시온 자신이 위대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그 위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장은 폐허가 된 도성이 세계의 중심처럼 변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단순히 한 민족이 다시 강대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한 도성 위에 나타날 때 그곳의 사람들과 다른 민족들, 도시의 질서와 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 주는 장대한 회복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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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왔기 때문에 일어나라

이사야 60:1–3 본문 →

60장 첫머리는 시온을 한 여성처럼 부릅니다.

일어나라, 빛나라. 네 빛이 왔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기 때문이다.이사야 60:1 · 본디새김

‘일어나라’, ‘빛나라’는 두 동사 모두 여성 단수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이후에도 ‘네 아들들’, ‘네 딸들’, ‘네 성벽’, ‘네 성문’이라는 표현이 계속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장의 ‘너’는 처음부터 막연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으로 의인화된 시온, 곧 예루살렘 도성을 향한 말씀입니다.

이 의인화는 이사야에서 익숙한 표현입니다. 이사야 49:14에서는 시온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탄식하고, 49:21에서는 잃어버렸던 자녀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이사야 54:1에서는 자녀가 없던 여인이 기뻐 노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60장의 ‘일어나라’는 단순히 잠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보다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한때 상실과 수치를 경험한 도성이 이제 다른 상태로 들어서라는 부름입니다.

보아라, 어둠이 땅을 덮고 짙은 구름이 뭇 백성을 덮겠지만, 네 위에는 여호와야훼가 떠오르고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것이다.이사야 60:2 · 본디새김

1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떠오릅니다.

2절에서는 여호와야훼 자신이 떠오르십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본래부터 밝고 의로우며 다른 민족들은 본래부터 어둡고 악하다는 선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 장인 이사야 59장에서 시온의 백성도 죄 때문에 빛을 기다리면서 어둠 속을 걸었습니다(59:9–10). 정의와 진실이 무너진 것은 그들 자신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므로 60장의 빛은 시온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도덕적 우월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찾아오심으로써 시작되는 회복의 빛입니다. 이사야 59:19–21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구원과 언약이 약속된 뒤, 60장에서는 그 구원이 밝아 오는 아침처럼 묘사됩니다.

민족들이 네 빛을 향해 걸어오고, 왕들이 네 떠오르는 광채를 향해 걸어올 것이다.이사야 60:3 · 본디새김

고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흔히 강력한 왕이나 제국의 수도를 찾아갔습니다. 권력과 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묘사하는 중심은 단순히 군사적으로 가장 강한 도시가 아닙니다.

한때 황폐했던 시온이 여호와야훼의 영광 때문에 민족들과 왕들이 찾아오는 곳이 됩니다.

이사야 2:2–4에서도 민족들이 여호와야훼의 산으로 모여들어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마침내 전쟁을 멈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60장은 그 약속을 새로운 이미지로 확장합니다. 민족들이 빛을 따라 오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돌아오며, 그들의 재물이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이동합니다.

멀리 떠났던 자녀들이 돌아오다

이사야 60:4–5 본문 →

그런데 4절에서 하나님은 시온에게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사방을 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 왔다. 네 아들들은 멀리서 오고, 네 딸들은 옆구리에 안겨 올 것이다.이사야 60:4 · 본디새김

이 장면에서 시온은 단순한 도시가 아닙니다. 자녀를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묘사됩니다. 오랫동안 자녀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먼 길을 걸어온 강한 사람들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보호받으며 돌아오는 딸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흩어진 백성의 귀환이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가족이 다시 만나고, 끊어진 관계가 이어지며, 잃어버렸던 공동체가 회복되는 일입니다.

그때 너는 보고 환해지며, 네 가슴은 떨리고 활짝 펴질 것이다. 바다의 풍부한 재물이 네게로 돌아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네게 올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60:5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이 떨린다는 표현은 공포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을 마주했을 때의 강렬한 감정을 나타냅니다. 마음이 넓어진다는 표현은 답답함이 풀리고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 차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너진 성벽이 복구되더라도 돌아올 자녀가 없다면 시온의 슬픔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온을 영화롭게 하시는 첫 번째 구체적인 모습은 바로 사람들의 귀환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49:18–22에서도 이와 매우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시온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흩어진 자녀들을 모아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낙타와 배가 몰려오는 도성

이사야 60:6–9 본문 →

5절 후반부터 본문은 거대한 행렬을 보여 줍니다.

수많은 낙타, 곧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들이 너를 덮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스바에서 와서 금과 유향을 나르고, 여호와야훼를 향한 찬양을 기쁜 소식으로 전할 것이다.이사야 60:6 · 본디새김

미디안과 에바는 아라비아 지역과 연결되는 이름들입니다. 창세기 25:4에서도 에바는 미디안의 자손으로 등장합니다. 스바는 구약에서 먼 지역의 교역과 풍요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열왕기상 10:1–10에서는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하면서 많은 향료와 금을 가져옵니다.

금은 값비싼 재물이고, 유향은 예배와 향료의 세계에서 귀하게 사용되던 물품입니다. 그들은 단지 재물을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향한 찬양을 기쁜 소식으로 전할 것’입니다.

「게달의 양과 염소 떼가 모두 네게 모이고, 느바욧의 숫양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그것들은 기꺼이 받아들여져 내 제단에 오르고, 나는 내 영광스러운 집을 영화롭게 하겠다.」이사야 60:7 · 본디새김

게달과 느바욧은 창세기 25:13에서 이스마엘의 아들들로 등장합니다. 이사야 60장에서는 그들의 가축이 시온으로 모여드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앞에서는 금과 유향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제단에 바쳐지는 짐승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도시의 부가 증가한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회복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6:6–7에서 하나님은 자신과 결합한 이방인들이 자신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되고 그들의 제물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60장은 그러한 약속을 더 넓은 세계의 행렬로 그립니다.

시온의 회복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폐쇄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민족들도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알고, 그분을 찬양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 장을 오늘날의 다원적 종교 공존을 직접 설명하는 구절로 읽는 것은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다른 민족들이 오는 중심은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제단과 성소입니다.

구름과 비둘기처럼 돌아오는 사람들

구름처럼 날아오는 이들은 누구인가, 제 창으로 날아드는 비둘기 같은 이들은?이사야 60:8 · 본디새김

이것은 앞에서 멀리서 돌아오던 자녀들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목적지도 없이 떠도는 새들이 아닙니다. 돌아갈 곳을 향해 날아오는 새들입니다.

「해안 땅들이 나를 기다리고, 다르시스의 배들이 앞장설 것이기 때문이다. 네 아들들을 멀리서 데려오되, 그들의 은과 금도 그들과 함께 가져오려는 것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위해서다. 그가 너를 영화롭게 했기 때문이다.」이사야 60:9 · 본디새김

다르시스는 구약에서 먼 바다와 해상 교역을 연상시키는 이름입니다. 열왕기상 10:22에서는 다르시스의 배들이 먼 곳의 귀한 물품을 실어 오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육지에서는 낙타들이 옵니다.

목축 지역에서는 양과 염소 떼가 옵니다.

바다에서는 배들이 옵니다.

하늘에는 돌아오는 비둘기 같은 무리가 보입니다.

이처럼 이사야는 서로 다른 공간과 이동 수단을 사용하여 한 장면을 만듭니다.

세상의 먼 곳들이 시온을 향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의 마지막에서 그 이유가 다시 밝혀집니다. ‘그가 너를 영화롭게 했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그 사실을 반복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재물의 화려함에서 그 재물이 향하고 있는 분께로 돌립니다.

낮에도 밤에도 닫히지 않는 성문

이사야 60:10–12 본문 →

10절에서 도시의 모습을 바꾸는 약속이 이어집니다.

「외국인들이 네 성벽을 쌓고,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지만, 호의를 품고 너를 가엾이 여겼기 때문이다.」이사야 60:10 · 본디새김

성벽은 고대 도시의 안전과 존속에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습니다. 적의 침입을 막고 주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무너진 성벽은 단순히 건축물이 파손되었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그 도성이 군사적 패배와 수치를 경험했다는 표시가 될 수 있습니다.

한때 다른 민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도성이 이제 다른 민족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세워집니다.

시온이 경험한 황폐함을 하나님은 단순히 우연한 불행으로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진노와 연결하십니다.

그러나 그 진노가 마지막 말씀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호의와 긍휼이 회복의 근거가 됩니다.

시온이 완전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 잘못도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셨던 백성을 다시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54:7–8에서도 나타나는 심판과 회복의 대조입니다.

11절에서는 더욱 뜻밖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네 성문들은 늘 열려 있어 낮에도 밤에도 닫히지 않을 것이다. 민족들의 재물이 네게 들어오고, 그들의 왕들이 이끌려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다.」이사야 60:11 · 본디새김

고대 도시에서 성문은 통행과 교역, 공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위협이 있을 때 성문을 닫는 것은 안전을 위한 중요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문이 열린다는 약속에는 풍요뿐 아니라 두려움에서 벗어난 도시의 안전도 담겨 있습니다.

15절에서는 이 도시가 한때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던 곳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문을 밤낮으로 열어 두어야 할 만큼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한때 아무도 들어오지 않던 도시가 이제 문을 닫을 필요가 없는 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민족이 같은 방식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과 왕국은 망할 것이며, 그 민족들은 반드시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60:12 · 본디새김

따라서 이 장의 민족들에 관한 약속을 현대적인 의미의 동등한 국가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류로만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시온의 높아짐과 다른 민족들의 복종이라는 이미지가 들어 있습니다.

전쟁과 파괴를 경험한 도성이 회복을 꿈꿀 때, 자신을 압도하던 강대국의 왕들이 이제 자기 앞에 나아와 섬기는 모습은 권력관계의 극적인 역전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패배와 굴욕을 경험한 백성에게 주어지는 회복과 명예의 언어입니다.

이 구절을 오늘날 특정 민족이나 국가가 다른 민족을 강제로 지배해도 된다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본문의 예언적 장면을 현대의 정치적 권리로 직접 바꾸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는 시온과 그에 대항하는 민족들의 운명을 말합니다. 그 약속을 현재의 어떤 국가가 그대로 행사할 권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장의 회복은 분명히 강력한 정치적 역전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역전의 궁극적인 주체는 시온의 군사력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2:2–4에서는 민족들이 시온으로 와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쟁을 그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56:6–7에서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받아들여집니다. 반면 60:12는 시온을 섬기지 않는 민족의 멸망을 선언합니다. 이 두 방향을 하나로 쉽게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멸시하던 도성이 여호와야훼의 도성이라 불리다

이사야 60:13–16 본문 →

13절에서는 건축 재료가 등장합니다.

「레바논의 영광이 네게 올 것이다. 측백나무와 느릅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와서 내 성소가 있는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나는 내 발이 놓이는 곳을 영광스럽게 하겠다.」이사야 60:13 · 본디새김

레바논의 귀한 나무들이 성소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하나님은 성소를 ‘내 발이 놓이는 곳’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사야 66:1에서 하나님은 하늘을 자신의 보좌로, 땅을 자신의 발판으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소를 하나님의 발이 놓이는 곳으로 부르는 것은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4절에서는 도시의 이름이 바뀝니다.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아들들이 몸을 굽히고 네게 오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네 발바닥 앞에 엎드릴 것이다. 그들은 너를 여호와야훼의 도성,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시온이라 부를 것이다.」이사야 60:14 · 본디새김

이는 과거의 권력관계가 뒤집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이 몸을 굽히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새로운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야훼의 도성.’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시온.’

이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닙니다. 이 도성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네가 버림받고 미움받아 지나가는 이도 없었던 대신, 나는 너를 영원한 자랑거리로, 대대로 이어질 기쁨으로 만들겠다.」이사야 60:15 · 본디새김

앞에서 다른 민족들의 재물과 왕들의 복종이 등장했지만, 여기서는 도성이 경험했던 깊은 상실이 드러납니다.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도시. 그것은 교역과 경제활동이 멈춘 장소일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관계가 끊어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도성이 이제 대대로 이어질 기쁨의 대상이 됩니다.

이 표현은 5절에서 돌아오는 자녀들을 보고 시온의 마음이 활짝 펴지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도시의 회복은 그곳에 다시 사람이 살아가고, 기쁨을 누리며, 다음 세대가 이어지는 일입니다.

왕들의 젖가슴이라는 낯선 표현

「너는 민족들의 젖을 빨고, 왕들의 젖가슴을 빨 것이다. 너는 내가 여호와야훼, 너의 구원자이며, 너의 구속자, 야곱의 힘센 이임을 알 것이다.」이사야 60:16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왕들과 민족들이 시온의 생존과 회복을 위한 자원을 공급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젖은 생명을 유지하고 자라게 하는 양식입니다. 특히 어린아이에게 젖은 스스로 생산하거나 확보할 수 없는 생명의 공급입니다.

과거에는 시온이 강대국들에게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강대국들의 자원이 시온을 섬기는 데 사용됩니다. 왕들의 젖가슴이라는 독특한 표현은 그 역전을 강렬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단순히 다른 민족들의 부를 마음껏 착취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으로 일어나는 극적인 지위의 전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이미지에서 모든 긴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이 공급자의 역할을 맡는 동시에 시온에 종속된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시온이 얻게 될 모든 풍요와 회복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는 사건입니다.

특히 ‘구속자’라는 표현은 이사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가까운 친족이 가족의 잃어버린 권리와 기업을 되찾아 주는 역할에서 발전한 언어로, 이사야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되찾으시고 회복하시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중심은 시온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는가가 아닙니다.

한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백성이 자신의 구속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레바논은 고대 근동에서 좋은 목재를 얻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5:6–10에서도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의 목재를 확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 등장하는 세 나무의 정확한 수종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특정한 나무를 오늘날의 어떤 식물과 일치시키는 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금보다 놀라운 변화 — 감독이 평화가 되다

이사야 60:17–18 본문 →

17절은 처음에는 도시의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하는 것처럼 시작합니다.

「구리 대신 내가 금을 가져오고, 철 대신 내가 은을 가져오며, 나무 대신 구리를, 돌 대신 철을 가져오겠다. 내가 평화를 네 감독으로 세우고, 의를 네 노역 감독으로 세우겠다.」이사야 60:17 · 본디새김

도시의 건축과 생활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더 좋은 것으로 대체되는 이미지입니다. 이 표현은 풍요와 번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다음 문장이 이 구절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왜 하나님은 금과 은을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감독과 노역 감독을 언급하실까요?

앞부분에서는 도시가 얼마나 화려해질 것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는 그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원문은 평화와 의를 마치 실제 사람처럼 그 자리에 임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좋은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정도의 약속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지배하던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사람을 몰아붙이던 자리에 의가 들어옵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관리하던 자리에 평화가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도성은 단지 더 부유해지는 도성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원리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화려한 성벽을 쌓아도 그 안에서 사람이 억압당한다면 회복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이 들어와도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저버린다면 도시는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네 땅에서는 더 이상 폭력이 들리지 않고, 네 경계 안에서는 파괴와 부서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네 성벽을 구원이라 부르고, 네 성문을 찬양이라 부를 것이다.」이사야 60:18 · 본디새김

성벽은 원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시설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성벽을 ‘구원’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이것은 도시의 안전이 단지 견고한 돌과 높은 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달려 있음을 드러냅니다.

또한 성문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이제 그곳의 이름이 ‘찬양’이 됩니다. 한때 두려움과 파괴를 경험했던 도시가 이제 구원과 찬양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도시의 모습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도 바뀝니다.

이사야 59:3–4에서는 거짓말과 불의한 변론이 공동체에 퍼져 있었습니다. 이제 회복된 도성에서는 폭력과 파괴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건축의 이미지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도시인지까지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감독’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일을 맡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노역 감독’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58:3에서 금식하는 사람들이 일꾼들을 몰아붙인다는 고발에 사용된 것과 같은 어근을 지닙니다. 앞에서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평화를 감독으로, 의를 노역 감독으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해와 달이 필요하지 않은 도성

이사야 60:19–20 본문 →

60장 마지막 부분에서 본문은 지금까지의 이미지들을 넘어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해가 더 이상 네 낮의 빛이 되지 않고, 달도 그 광채로 너를 비추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야훼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고,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될 것이다.」이사야 60:19 · 본디새김

하나님 자신이 그 도성의 빛이 되십니다.

「네 해는 다시 지지 않고, 네 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야훼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애도의 날들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60:20 · 본디새김

여기서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말과 애도의 날들이 끝난다는 말이 나란히 놓입니다. 시온이 경험했던 상실과 슬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빛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는 매일 떠오르지만 다시 집니다. 달은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자연의 빛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주기를 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온에게 주시는 빛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 빛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빛’은 시온이 누리게 될 지속적인 회복과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이사야의 빛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이사야 9:2에서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42:6에서는 하나님의 종이 민족들의 빛으로 세워집니다. 이사야 49:6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도록 종을 민족들의 빛으로 삼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60장에서는 그 빛이 시온 위에 떠오른 여호와야훼의 영광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모두 완전히 같은 상황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가 빛으로 나타난다는 공통된 주제를 지닙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21:23–26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도성을 비추므로 해와 달이 필요하지 않으며,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 다니고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져오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는 이사야 60:3, 11, 19의 표현과 이미지를 뚜렷하게 받아 사용한 후대의 정경적 전개입니다. 다만 요한계시록이 이러한 언어를 새 예루살렘의 환상에 적용한다는 사실과, 이사야 60장이 본래 시온의 회복을 선포한다는 사실은 구별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19절은 처음 읽으면 해와 달이 사라지는 우주적 사건을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반드시 실제 해와 달이 물리적으로 소멸한다는 예언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다음 절이 그 이미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이 의로워지는 도성

이사야 60:21–22 본문 →

빛과 영광의 약속 뒤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람들입니다.

「네 백성은 모두 의로워 영원히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심은 싹이며,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다. 내가 영광을 얻으려고 한 일이다.」이사야 60:21 · 본디새김

‘네 백성은 모두 의로워.’ 이 표현은 이사야 59장을 기억할 때 특별한 무게를 지닙니다. 앞 장에서는 정의가 뒤로 밀려났고, 의는 멀리 서 있었으며, 진실은 광장에서 비틀거렸습니다.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도성에서는 의가 공동체 전체의 특징이 됩니다.

성벽과 성문에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불의하다면 그 이름은 공허할 것입니다. 도시의 진정한 회복은 건축물의 완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심으신 싹

21절 후반에서는 백성을 나무의 싹에 비유합니다. ‘그들은 내가 심은 싹(⁨נֵצֶר⁩)이며,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표현은 시온의 백성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만들어 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사야 11:1에서도 ‘싹’이라는 단어는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나는 싹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60:21에서는 그 싹이 특정한 왕이나 한 인물이 아니라 시온의 백성 전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싹은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아직 커다란 나무처럼 단단한 줄기나 넓은 가지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싹에는 자라날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싹을 심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이사야 5장의 포도원 노래와도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룹니다. 이사야 5:1–7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포도원을 정성껏 가꾸셨지만, 그곳에서는 좋은 열매 대신 나쁜 열매가 나왔습니다. 그 포도원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가리켰으며,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정의 대신 피 흘림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60장에서는 하나님이 새롭게 심으신 싹과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심으신 백성이 맺어야 할 열매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새롭게 하셔서 결국 의로운 공동체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영광을 얻으려고 한 일이다.’ 이 장의 첫 절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시온 위에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백성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을 비추었습니다.

이제는 회복된 시온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가장 작은 자가 강대한 민족이 되다

「가장 작은 이는 천 명이 되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는 강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때가 되면 그 일을 서둘러 이루겠다.」이사야 60:22 · 본디새김

‘천 명’이라는 숫자는 큰 규모로 불어나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을 각 개인이 정확히 천 명의 자손을 얻게 된다는 산술적인 예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작고 약한 공동체를 크게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시간에 관한 독특한 표현으로 끝납니다.

‘때가 되면 그 일을 서둘러 이루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생각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때 하나님이 신속하게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이루신다는 말은 반드시 인간이 기대하는 것보다 빨리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으며, 그때가 오면 하나님이 직접 일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떠오른 빛

이사야 60:1–22 본문 →

하나님의 영광은 시온의 변화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온 위에 빛을 비추시고, 그 빛 아래에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도시가 회복되고, 정의로운 삶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빛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버림받은 도성을 다시 살리고 그곳에 정의와 평화가 머물게 하시는 행동으로도 드러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상은 시온이며, 약속의 내용은 그 도성과 백성의 회복입니다. 따라서 ‘민족들의 재물이 네게 올 것’이라는 구절을 모든 신자에게 반드시 재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본문의 본래 범위를 넘어섭니다.

한때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던 도성에 자녀들이 돌아옵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도시의 성문이 밤낮으로 열려 있습니다. 슬픔에 잠겼던 곳이 대대로 이어지는 기쁨의 장소가 됩니다.

시온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자신이 버림받았는지를 묻는 도성이 아닙니다.

그 위에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온에게 주신 것은 단지 더 밝은 날이 아닙니다. 빛이 다시 사라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날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