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8–9장 · 유딧의 등장
하나님께 정해 드린 닷새
베툴리아는 물이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시리아 군대는 도시를 포위했고, 주민들은 갈증으로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지도자 웃시야는 백성에게 닷새만 더 기다리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도시를 적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듣고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은 군사 지도자도,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지 삼 년 사 개월이 지난 한 여인이었습니다.
유딧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꾸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행동하셔야 할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 드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로 그 여인이 자신은 그 닷새가 지나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어떻게 이 두 말을 함께 이해해야 할까요?
지붕 위의 장막에서 — 유딧은 누구인가
유딧이 등장하는 첫 문장은 뜻밖에도 긴 족보로 이어집니다. 아버지 므라리로부터 시작해 여러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이스라엘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독자는 거대한 아시리아 군대와 그 지휘관들, 베툴리아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도시 전체가 위기에 빠진 순간, 이야기는 한 여인의 가계로 시선을 좁힙니다.
족보 끝에 나오는 셸루미엘과 추리샤다이는 민수기 1:6에서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와 그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유딧이 9:2에서 시므온을 자기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계보와 연결됩니다.
이로써 유딧은 단순히 베툴리아에 사는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에 속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뒤에서 그녀가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족보 다음에 소개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업적이 아니라 상실입니다.
남편 므낫세는 보리를 수확하던 때에 들에서 일꾼들을 감독하다가 심한 더위를 맞아 죽었습니다. 유딧은 그 뒤로 삼 년 사 개월 동안 과부로 지냈습니다. 지붕 위에 장막을 치고, 허리에 굵은 베옷을 두르고, 대부분의 날에 금식했습니다.
유딧은 안식일과 이스라엘의 명절, 기쁜 날들에는 금식을 멈추었습니다(8:6). 그녀의 애도는 오래 지속되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날까지 지워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상실은 그녀를 고립시켰지만, 그 상실이 그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끊어 놓지는 못했습니다.
유딧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남긴 금과 은, 종들, 가축과 밭을 관리하며 지냈습니다. 뒤에서 지도자들을 부르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일에도 이러한 독립적인 생활 기반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재산은 분명하게 언급됩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가 존중받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녀를 두고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하나님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유딧기 8:8 · 본디새김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다음 절에서는 사람들이 지도자를 향해 쏟아 낸 ‘나쁜 말들’이 등장합니다. 유딧에게는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도시 안에는 나쁜 말이 가득해진 것입니다.
유딧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온 여인이지만, 이제 그 신뢰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도시 전체의 절망이 그녀의 조용한 삶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맹세 — 지도자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유딧은 백성이 낙심한 소식과 웃시야의 맹세를 듣자 즉시 행동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문으로 달려가거나 백성 앞에 나서지는 않습니다. 몸종을 보내 장로들을 자기 집으로 부릅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오자 유딧이 그들에게 말했다. 「베툴리아 주민들의 지도자 여러분, 부디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백성 앞에서 하신 말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한 맹세를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세우고, 그날들 안에 주께서 여러분에게 도움을 보내지 않으시면 이 도시를 우리 원수들에게 넘겨주겠다고 하셨습니다.」유딧기 8:11 · 본디새김
주민들은 실제로 물이 없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앞 장에서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갈증으로 기력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까지 나타납니다(7:20–22). 웃시야가 닷새를 제안한 것도 당장 항복하라는 백성을 설득하여 조금이라도 더 버텨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문제는 그가 기다리는 시간을 정했다는 사실 자체만이 아닙니다. 그 기간 안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항복하겠다고 맹세한 데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대체 누구이기에 오늘 하나님을 시험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보다 위에 서 있습니까?」유딧기 8:12 · 본디새김
지도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평가할 기준을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닷새 안에 도우시면 희망이 있고, 그때까지 돕지 않으시면 항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과 시간 안에서 행동하셔야 하는지 조건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13–14절에서 ‘하나님을 심문한다’는 말로 발전합니다. 유딧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다 알아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다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가 정한 날까지 내가 예상한 방식으로 도우셔야 한다는 생각은 같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그 닷새 동안 우리를 돕고자 하지 않으시더라도, 원하시는 날에 우리를 감싸 지키거나 우리 원수들 앞에서 우리를 멸하실 권한은 그분께 있기 때문입니다.」유딧기 8:15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결과를 낙관하는 신앙과 다릅니다. 유딧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이 원하는 결과를 보장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구원하실 수도 있고 심판하실 수도 있는 주권자이십니다.
「여러분은 주 우리 하나님의 뜻을 볼모로 잡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처럼 위협을 받으실 분도 아니고, 인간처럼 흥정에 응하실 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유딧기 8:16 · 본디새김
하나님의 뜻을 마치 인간 사이의 거래에서 맡겨 놓거나 담보로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처럼 다루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맹세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세웠지만, 그 맹세가 하나님께 의무를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에게서 오는 구원을 기다리며, 우리를 도와 달라고 그분께 부르짖읍시다. 그분께서 좋게 여기시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유딧기 8:17 · 본디새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은 믿음이지만, 구원이 이루어질 조건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은 믿음과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7:1–7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 가운데 계시는지를 문제 삼습니다. 물이 없는 상황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백성에게는 실제로 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그분의 임재를 입증하라는 요구로 바뀔 때,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유딧 역시 물이 떨어져 가는 도시에서 같은 문제를 마주합니다.
베툴리아의 운명은 왜 온 이스라엘의 문제가 되는가
유딧은 여기서 논의를 넓힙니다.
지금까지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이제 그녀는 베툴리아가 항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야기합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이 손으로 만든 신들을 섬겼고, 그 때문에 조상들이 적의 칼과 약탈에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유딧은 자기 세대가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8:18–20).
이 고백의 배경에는 신명기와 예언서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이 결국 나라의 패망과 포로 생활로 이어졌다는 역사 해석입니다. 열왕기하 17:7–23과 예레미야 25:4–11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유딧은 자신들이 그 역사를 알고 있으며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리라고 기대합니다. 유딧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신실함에 반드시 구원으로 보상하셔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자유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로잡히면 온 유대도 똑같은 처지가 되고, 우리의 성소도 약탈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성소가 더럽혀진 책임을 우리의 피로 물으실 것이며,」유딧기 8:21 · 본디새김
유딧은 항복이 주민들의 고통을 끝내는 쉬운 해결책이 아니라 더 큰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21–23절에는 형제들의 살해, 땅의 황폐화, 이방 민족 아래서의 종살이, 치욕이라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경험했고 두려워하는 패망과 포로 생활의 언어입니다.
특히 22절의 ‘상속지’는 단순한 부동산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땅을 잃는 일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재와 기억을 위협합니다.
「그러니 이제 형제 여러분, 우리 형제들에게 본을 보입시다. 그들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려 있고, 성소와 성전과 제단이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유딧기 8:24 · 본디새김
조금 전 유딧은 하나님보다 위에 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결정할 권한은 인간에게 없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이웃을 지킬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들은 백성의 압박에 밀려 항복할 날짜를 정했습니다. 유딧은 바로 그 지도자들에게 백성의 목숨이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다시 일깨웁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기한을 정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과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
이 장의 가장 중요한 전환은 25절에서 일어납니다.
「이 모든 일에 더하여, 우리 조상들을 시험하신 것처럼 우리도 시험하시는 주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유딧기 8:25 · 본디새김
유딧은 앞에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8:12).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시험하신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시험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시험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이 정한 조건을 충족하시는지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딧은 정반대의 방향에서 현재의 고난을 바라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믿음이 드러나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유딧이 불러오는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았습니다(창세기 22:1–19). 이삭 역시 아버지의 시험 이야기에서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외삼촌 라반의 양들을 치던 시절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9–31장에서 야곱은 오랜 세월 라반을 위해 일하며 속임수와 갈등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이 단번에 평탄한 삶을 만들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고난이 곧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분께서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시려고 그들을 불로 단련하신 것과 똑같이 우리를 단련하신 것은 아니며, 우리에게 보복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께서는 그분께 가까이 오는 이들을 훈계하려고 채찍질하십니다.」유딧기 8:27 · 본디새김
하나님께 가까이 오는 이들이 겪는 고난에는 훈계와 단련의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딧이 말하는 것은 모든 고통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훈련이라는 보편적 원칙은 아닙니다. 그녀는 지금 자신들의 상황을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에 비추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을 해석하는 이 말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말로 기능합니다.
아직 물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군대가 물러난 것도 아닙니다. 유딧은 구원받은 결과에 감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들을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로 여기지 말자고 요청합니다.
조상들의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기적을 되풀이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조상들을 이끄셨던 하나님을 지금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27절은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번역상 주의가 필요한 구절입니다. 본문에는 조상들을 불로 단련하신 일과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보복하지 않으신 일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스어 문장에서 부정이 걸리는 범위와 생략된 비교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조상들과 자신들이 받는 시련의 차이를 강조하는 읽기와 보복이 아님을 강조하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어느 읽기를 택하든, 이 문맥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유딧이 현재의 고통을 단순히 하나님의 보복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들은 그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한다
유딧의 말이 끝나자 웃시야는 반박하지 않습니다.
웃시야가 그녀에게 말했다. 「하신 말씀은 모두 선한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그 말씀에 반박할 사람은 없습니다.」유딧기 8:28 · 본디새김
그는 유딧의 지혜가 오늘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백성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분별력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의 다음 말은 앞선 인정과 어긋납니다.
「그러나 백성은 몹시 목이 말랐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에게 한 말대로 행하고 스스로 맹세를 짊어지도록 강요했습니다. 우리는 그 맹세를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유딧기 8:30 · 본디새김
그의 문제는 지식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옳은 말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따라 행동할 길을 찾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31절에서 웃시야는 유딧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녀가 경건한 여인이므로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물웅덩이를 채워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주민들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비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웃시야는 여전히 구원이 어떤 방식으로 와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대하는 해결책은 비가 내려 물웅덩이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유딧은 그 요청을 듣고도 비를 구하겠다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제 손을 통해」 —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행동
유딧이 내놓은 계획은 놀랄 만큼 간단합니다.
유딧이 그들에게 말했다.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우리 민족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질 일을 하겠습니다.」유딧기 8:32 · 본디새김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하던 유딧이 갑자기 자신의 행동을 선언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일과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일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밤 성문에 서 계십시오. 저는 제 몸종과 함께 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이 도시를 우리 원수들에게 넘겨주겠다고 하신 그날들이 지나기 전에, 주께서 제 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찾아 돌보실 것입니다.」유딧기 8:33 · 본디새김
유딧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자신의 행동과 아무런 관계없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할 일이 있다고 믿으며,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웃시야는 닷새 안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항복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맹세는 하나님의 도움을 특정한 기한과 연결하고, 그 기한이 지나면 항복이라는 결과를 실행하도록 지도자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반면 유딧은 하나님께서 닷새 안에 움직이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행동할 계획을 세우고, 그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웃시야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정하고 기다립니다. 유딧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움직이려 합니다.
그렇다고 이 차이가 모든 긴장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유딧 역시 구원이 이루어질 시기를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아직 그녀가 어떻게 그런 확신을 얻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본문은 그 확신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증하셨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선언을 모든 신앙인이 따라 할 수 있는 확실한 성공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장면에서 그것은 유딧 자신의 대담한 믿음의 표현이며, 그 판단이 어떻게 실현될지는 아직 이야기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려는 일을 캐묻지는 마십시오. 제가 하는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유딧기 8:34 · 본디새김
앞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을 완전히 알아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지도자들이 유딧 자신의 계획조차 알지 못한 채 그녀를 보내야 합니다. 물론 유딧의 비밀스러운 계획과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뜻을 같은 차원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은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미리 파악하고 통제해야만 일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드러냅니다.
유딧은 자신이 감당할 책임을 맡고,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의 몫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성문에 서 있어야 합니다.
웃시야와 지도자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십시오. 주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가셔서 우리 원수들에게 보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유딧기 8:35 · 본디새김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며 누군가를 길 위로 보내는 자리로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 돌보신다는 것은 단순히 멀리서 그들의 사정을 알고 계신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 돌보심은 실제적인 구원의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 백성을 찾아 돌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이끄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50:24–25). 출애굽기 4:31에서도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시고 그 고통을 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두 본문의 칠십인역에도 같은 동사 계열이 등장합니다. 사사기 4장에서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위기 앞에서 바락을 불러 행동하도록 합니다. 사무엘상 14:6에서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으로든 적은 사람으로든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동에 나섭니다. 이 이야기들은 서로 같은 사건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인정하는 믿음이 인간의 행동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유딧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무력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히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발전합니다.
유딧의 말을 들은 지도자들이 지붕 위 장막을 떠나 각자 맡은 자리로 돌아갑니다. 도시 바깥에는 여전히 적군이 있고, 안에는 물이 부족합니다. 밤이 오면 성문 앞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베툴리아의 형편은 아직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닷새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찾아 돌보시기를 기다리면서, 자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한 여인은 그 문을 지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