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45장

이 장의 자리 · 34–45장 · 무너지는 예루살렘

무너지는 때에 바라는 것

예레미야 45장은 단 다섯 절입니다.

그렇다면 바룩은 무엇을 잃게 되는 것일까요? 그는 무엇을 얻으려 했기에 하나님께서 큰 것들을 구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목숨을 건지는 것이 어째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됩니까?

앞 장에서 이집트에 정착한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45장은 그 사건을 이어 가지 않고 훨씬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여호야김 왕 사 년째, 바룩이 예레미야의 말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던 때입니다.

바룩의 개인적인 고통이 나라 전체의 무너짐과 만나면서, 이 짧은 장은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읽는 시간 12분소단락 545장 본문 읽기 →

이야기가 과거로 돌아간 이유

예레미야 45:1 본문 →

요시야의 아들인 유다 왕 여호야김 사 년째에, 바룩이 예레미야가 입으로 불러 주는 이 말들을 두루마리에 적을 때, 예언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한 말이다.예레미야 45:1 · 본디새김

이 절은 예레미야 36장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야김 왕 사 년째에 여호와야훼는 예레미야에게 자신이 전해 오신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36:1–2).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그 말씀을 입으로 불러 주었고, 바룩은 그것을 기록했습니다(36:4).

이후 바룩은 성전에서 두루마리를 읽었습니다. 관리들은 그 말씀을 듣고 놀랐지만, 여호야김 왕은 여후디가 두루마리를 읽어 가는 대로 잘라 화로에 던져 불태웠습니다(36:21–23). 왕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붙잡으라고 명령하기까지 했습니다(36:26).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한 문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예레미야에게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셨고, 바룩은 다시 그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이전 두루마리의 말씀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말들도 많이 더해졌습니다(36:32).

그의 손으로 기록한 첫 번째 두루마리는 불탔지만, 그가 감당하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45장은 예레미야서의 역사적 사건들이 기록된 긴 부분을 마무리하고, 46장부터 시작되는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 선언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다음 장 46:2도 여호야김 사 년째를 언급합니다. 45장의 과거 회상은 뒤따르는 열방에 관한 말씀과도 시간적으로 연결됩니다.

독자는 바룩이 기록한 말씀의 상당 부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이미 읽었습니다. 그달랴의 죽음과 이집트로 떠난 백성의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 말씀을 처음 기록하던 바룩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게 됩니다.

바룩은 자신이 기록한 말씀 바깥에서 안전하게 역사를 관찰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 흔들리는 역사 안에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45:1이 가리키는 시점은 두루마리를 기록하던 여호야김 사 년째입니다. 36장에서 두루마리를 공개적으로 낭독한 사건은 왕의 오 년째에 일어났습니다(36:9). 따라서 바룩이 45장에서 탄식한 직접적인 원인을 왕이 두루마리를 불태운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의 적대적인 반응은 바룩이 맡은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보여 주는 이후의 사건입니다.

말씀을 기록한 사람의 탄식

예레미야 45:2–3 본문 →

「너는 『아, 내 신세야. 여호와야훼가 내 고통에 슬픔을 더했기 때문이다. 나는 탄식으로 지쳤고, 쉼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예레미야 45:3 · 본디새김

바룩이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직접 호소하는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룩이 했던 말을 그에게 되돌려 들려주시는 장면입니다. 그의 탄식이 정확히 언제, 누구 앞에서 나왔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을 알고 계십니다.

무엇이 그의 첫 번째 고통이었고, 거기에 어떤 슬픔이 더해졌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룩이 받아 적은 말씀에는 유다의 죄에 대한 고발과 앞으로 닥칠 재앙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36:2–3). 그 말씀은 바룩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어둡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슬픔을 더하셨다

바룩은 자신의 고통을 단순히 주변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더 괴로워졌다고 느낍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예언자 자신도 비슷한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자신에게 치욕과 조롱을 가져온다고 탄식했습니다(20:7–9).

바룩의 탄식과 예레미야의 탄식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 말씀을 직접 전해야 하는 고통을 말했고, 바룩의 탄식은 훨씬 짧아서 그 구체적인 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마음의 평온이나 삶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이 사랑하는 공동체의 멸망을 선포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말씀을 전하고 기록하는 일 자체가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룩에게 먼저 더 열심히 일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탄식을 금지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가 자기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금 자신이 온 땅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말씀하십니다.

그 응답은 뜻밖에도 바룩 개인의 문제보다 훨씬 큽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이 「아, 내 신세야」라고 옮긴 것은 이 말이 여호와야훼께 직접 드리는 기도의 형식이라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말이라는 점을 살립니다. 이 문맥에서 「쉼을 찾지 못했다」는 단순히 잠깐 쉬지 못했다는 말보다,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하나님이 허무신다

예레미야 45:4 본문 →

「그에게 이렇게 말해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세운 것을 내가 허물고, 내가 심은 것을 내가 뽑아 버린다. 그것은 온 땅이다.』」예레미야 45:4 · 본디새김

이 말씀은 바룩의 탄식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하시거나 곧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자신이 하고 계신 일을 말씀하십니다.

세우고 심는다는 말의 무게

‘세우다’와 ‘심다’, ‘허물다’와 ‘뽑다’는 예레미야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언어입니다.

예레미야가 처음 예언자로 부름받았을 때, 여호와야훼는 그를 민족들과 나라들 위에 세워 뽑고 허물며 또한 세우고 심게 하셨습니다(1:10).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심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을 하나님께서 허무십니다.

친히 심으신 것을 친히 뽑으십니다.

이스라엘은 우연히 형성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언약을 맺으셨으며,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시편 80:8–9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가져와 심으신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백성과 그들의 땅에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셨다는 사실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영원히 안전하다는 보증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역사적 심판을 바룩의 개인적인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온 땅이다」는 무엇을 뜻하는가?

「온 땅」이 유다의 온 땅을 가리키는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더 넓은 세계를 가리키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문의 중심은 심판의 정확한 경계보다 그 심판의 주체에 있습니다.

지금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우연히 붕괴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고 심으신 것까지 심판하시는 때가 왔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에레츠는 문맥에 따라 ‘땅’, ‘나라’, ‘온 세상’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유다를 중심으로 읽을 근거는 분명합니다. 바룩은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고, 앞서 세우고 심는다는 표현도 유다의 운명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면 더 넓은 세계를 생각할 근거도 있습니다. 다음 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시고, 바로 다음 장부터 여러 민족에 관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두 읽기는 서로 배타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유다에서 시작하여 여러 민족으로 확장되는 심판의 관점 속에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난해한 구문만으로 특정한 지리적 범위를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너 자신을 위해 큰 것들을 구하느냐?

예레미야 45:5 본문 →

「『그런데 너는 너 자신을 위해 큰 것들을 구하느냐? 구하지 마라. 보아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앙을 내리려 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네 목숨을 네게 전리품으로 주겠다.』」예레미야 45:5 · 본디새김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것을 허물고 심으신 것을 뽑으신다고 말씀하신 직후, 바룩에게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두 문장을 연결하는 「그런데 너는」이라는 전환은 대조를 만듭니다.

바룩이 원했던 큰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본문은 그 큰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문맥을 고려하면 바룩이 자신에게 돌아올 특별한 성취나 안정된 미래를 기대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에도 그에 걸맞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랐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룩을 야심 많은 출세주의자로 단정하는 것은 본문을 지나치게 좁히는 해석입니다.

그는 이미 탄식으로 지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큰 것들을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지금은 큰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바룩에게 그가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나라와 민족들이 심판을 받는 때입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와 안정이 흔들리는 때입니다.

이 말씀을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큰 꿈이나 성취를 추구하지 말라는 일반적인 금지 명령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45장은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서 바룩 개인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을 바라보는 것보다 자기 삶에 주어질 성취를 더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금지만 내리시지 않습니다.

목숨이 전리품이 된다는 말

전리품은 전쟁에서 승리자가 빼앗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본래 위험과 충돌이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룩에게 주시는 전리품은 다른 사람의 재산이 아닙니다.

그 자신의 목숨입니다.

이것은 그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을 지나게 될 것이라는 뜻을 암시합니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건져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심판이 임하는 시대에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은 바룩이 어느 한 장소에서만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예레미야와 함께 유다에서 활동했습니다. 여호야김 왕이 그들을 붙잡으려 했을 때에는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36:26).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에도 예레미야와 함께 있었으며, 남은 백성이 이집트로 이동할 때에도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43:6–7).

바룩의 삶은 한 장소에 안정적으로 머물며 평온을 누리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는 정치적 격변과 전쟁, 유배와 이주의 역사에 휘말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은 특정한 왕의 보호나 한 지역의 안전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인간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룩에게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심판의 역사 한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개인을 잊지 않으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탄식은 들렸고, 그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하시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바룩이 높은 관직을 원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기를 바랐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명해지고 싶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해석으로 제시될 수는 있지만, 본문이 확인해 주는 사실은 아닙니다. 「모든 육체」는 여기서는 재앙의 범위가 바룩 한 사람이나 유다 왕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모든 개인이 예외 없이 죽는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뒤에서 바룩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약속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1:9에서 여호와야훼는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는 사람이 자기 목숨을 전리품으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8:2에서도 같은 약속이 반복됩니다. 이 말씀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재산을 보존할 것이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39:18에서는 에벳멜렉에게 그의 목숨이 전리품처럼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에벳멜렉은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해 준 인물입니다(38:7–13). 하나님은 그에게도 모든 위험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대신, 생명을 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맺음 — 두루마리를 기록하던 사람에게 남겨진 약속

예레미야 45:1–5 본문 →

하나님은 그 시대의 심판을 멈추고 바룩 한 사람을 위해 세상의 질서를 다시 안정시키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시대에 바룩의 생명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때에 바룩이 얻을 전리품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자기 생명이었습니다.

이 장은 그가 이후 얼마나 편안하게 살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이 어떤 성공으로 끝났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자의 시선을 다시 여호야김 사 년째의 그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러 주고, 바룩은 그것을 두루마리에 적고 있습니다. 그가 적어 내려가는 것은 나라와 민족들에 대한 무거운 말씀입니다.

바룩의 손에는 자신이 기록해야 할 두루마리가 있고, 그의 앞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시대의 혼란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남겨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바로 그의 생명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