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19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지파별로 나눈 땅
모두가 땅을 받은 뒤 세운 여호수아의 집
여호수아 19장은 이스라엘의 땅 분배가 마침내 끝나는 장입니다. 남아 있던 여섯 지파가 차례로 상속 재산을 받고, 마지막에는 땅의 분배를 이끌었던 여호수아 자신도 한 성읍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모든 지파가 같은 방식으로 땅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 19장은 땅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보다, 주어진 땅이 어떻게 각 지파와 한 사람의 실제 삶의 자리가 되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시므온 — 유다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다른 지파의 땅 안에서 받은 상속 재산
첫 번째로 등장하는 지파는 시므온입니다.
두 번째 제비는 시므온에게, 곧 시므온 자손 지파에게 씨족별로 나왔다. 그들의 상속 재산은 유다 자손의 상속 재산 안에 있었다.여호수아 19: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베냐민이 첫 번째 제비를 받았으므로 시므온은 두 번째입니다. 독립된 경계로 둘러싸인 영역을 새롭게 설명하지 않고, 유다의 상속 재산 안에 있는 성읍들을 나열합니다.
브엘세바, 몰라다, 호르마, 치클락과 같은 성읍들이 등장합니다. 이 가운데 여러 성읍은 이미 여호수아 15장에서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 기록되었던 곳입니다. 19장 9절이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시므온 자손의 상속 재산은 유다 자손의 영토에서 나왔다. 유다 자손의 몫이 그들에게 너무 컸기 때문에, 시므온 자손은 유다 자손의 상속 재산 안에서 자기들의 몫을 받았다.여호수아 19:9 · 본디새김
이는 이스라엘의 토지 분배가 한번 경계를 정하면 그 결과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 지파들의 필요와 분배 규모가 고려되고 있습니다.
큰 몫을 받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일까?
유다의 몫이 크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특별한 이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크기를 무조건적인 축복이나 우월함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지파에게 그 일부를 배정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합니다.
그렇다고 유다가 자발적으로 땅을 양보했다는 장면이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는 유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몫을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거나 시므온과 협상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나의 지파가 받은 몫의 크기가 다른 지파에게 필요한 몫을 가리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시므온의 위치와 야곱의 오래된 말
시므온이 유다의 영토 안에 상속 재산을 받았다는 사실은 창세기 49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시므온과 레위를 향해 그들을 야곱 가운데 나누고 이스라엘 가운데 흩겠다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9:5–7). 그 말은 두 형제가 세겜에서 저지른 폭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창세기 34:25–31).
여호수아 19장에서 시므온은 다른 지파의 영토 안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레위는 독립된 지파 영토가 아니라 여러 지파의 성읍들 가운데 거주하게 됩니다(여호수아 21장). 이렇게 보면 야곱의 말과 이후 두 지파의 정착 형태 사이에 주제적인 연결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9장은 시므온이 유다의 땅 안에 정착한 이유를 야곱의 저주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이 직접 밝히는 이유는 유다의 몫이 지나치게 컸다는 것입니다.
성읍의 수가 맞지 않는 문제
2–6절에는 브엘세바와 셰바를 비롯한 성읍들이 나열되지만 합계는 열세 성읍으로 기록됩니다. 브엘세바와 셰바를 별개 성읍으로 세면 목록의 이름 수와 합계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두 이름이 동일한 장소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의 다른 목록에도 지명과 합계가 쉽게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은 이런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산정 방식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시므온은 유다의 상속 재산 안에서 실제로 살아갈 장소들을 받았습니다.
스불론 — 산과 골짜기 사이에 놓인 땅
세 번째 제비는 스불론에게 돌아갑니다.
스불론의 경계는 사리드에서 시작하여 서쪽과 동쪽으로 이어지고, 요크느암 부근의 개울과 타보르 일대의 지명들을 지납니다. 앞의 시므온과 달리 스불론의 몫은 가나안 북부의 산지와 골짜기들이 만나는 지역에 놓입니다.
해 뜨는 쪽으로 이어지는 경계
12–13절에서는 「동쪽으로, 해 뜨는 쪽으로」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는 히브리어에서 동쪽을 해가 떠오르는 방향과 연결하여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본문은 경계가 사리드에서 동쪽으로 돌아 키슬롯 타보르와 다브랏, 야피아를 지나고, 다시 가트 헤페르와 엣 카친을 거쳐 림몬 쪽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 지명들은 오늘날 모두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스불론이 가나안 북부의 중앙 산지와 골짜기 사이에 자리 잡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타보르산은 주변 평야에서 뚜렷하게 솟아 있는 산으로, 이후 사사기 4장에서 바락이 군대를 모으는 장소로 등장합니다. 이런 지형에서 산지와 골짜기는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이동과 전투, 정착의 조건을 결정하는 요소였습니다.
이곳에도 베들레헴이 있다
15절의 성읍 목록에는 「베들레헴」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을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유다의 베들레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불론의 성읍 목록에 등장하는 베들레헴을 유다의 베들레헴과 동일한 장소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성읍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13절에 등장하는 가트 헤페르는 열왕기하 14:25에서 예언자 요나의 고향으로 언급됩니다. 하나의 성읍이 어느 지파의 상속 재산으로 처음 기록되고, 훗날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잇사갈 — 넓은 골짜기의 성읍들
네 번째 제비는 잇사갈에게 돌아갑니다.
이 부분에서는 경계선을 길게 따라가기보다 성읍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영토를 설명합니다.
그들의 영토에는 이스르엘과 크술롯과 슈넴,여호수아 19:18 · 본디새김
처음 등장하는 이스르엘은 가나안 북부의 중요한 평야 지역과 연결되는 이름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가나안 중앙 산지와 북쪽 지역을 잇는 넓은 통로였습니다. 농경에 적합한 땅이 있었고, 군대가 이동하는 길로도 중요했습니다.
앞서 17장에서 요셉 자손은 이스르엘 골짜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여호수아 17:16). 그런데 이제 그 골짜기와 관련된 이스르엘과 슈넴이 잇사갈의 상속 재산 목록에 등장합니다.
이 점에서 땅의 분배는 각 지파가 완전히 고립된 영역을 받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지파의 경계와 성읍들이 중요한 골짜기와 교통로를 중심으로 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슈넴이라는 이름에 남아 있는 미래의 이야기
슈넴은 이후 사무엘상 28:4에서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친 장소로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4:8–37에서는 엘리사를 맞아들인 슈넴 여인의 이야기가 이곳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그 여인은 엘리사에게 머물 방을 마련해 주었고, 이후 아들의 죽음과 회복을 경험합니다.
한때 군대가 머무르고 전쟁이 벌어졌던 지역의 성읍이, 다른 시대에는 한 여인의 집과 가족의 삶을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여호수아의 성읍 목록은 전쟁의 역사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아가게 될 일상의 역사와도 연결됩니다.
잇사갈의 땅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잇사갈의 경계는 타보르와 벳 셰메스를 지나 요단에 이릅니다(22절). 여기서도 모든 지명의 정확한 위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넓은 골짜기와 산지, 요단 방향으로 이어지는 지역들이 잇사갈의 몫으로 제시됩니다.
스불론은 타보르 주변의 산지와 골짜기를 포함하고, 잇사갈은 이스르엘을 비롯한 중요한 평야와 그 주변 성읍들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19장은 어느 지파의 땅이 더 좋았다거나, 어느 지파가 더 큰 복을 받았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각 지파가 받은 몫을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아셀 — 큰 항구 도시들이 등장하는 경계
다섯 번째 제비는 아셀에게 돌아갑니다.
아셀의 경계는 북서쪽의 해안 지역과 연결됩니다. 갈멜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고, 큰 시돈과 요새 성읍 두로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두로는 일반적으로 두로라고 부르는 도시이며, 시돈과 함께 고대 페니키아 지역의 중요한 해안 도시였습니다.
「큰 시돈」과 「요새 성읍인 두로」
또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카나로 이어져 큰 시돈까지 이르렀다.여호수아 19:28 · 본디새김
그 경계는 라마로 돌아 요새 성읍인 두로까지 이르렀다. 그 경계는 호사로 돌아갔고, 그 끝은 악집 쪽 지역에서 바다로 이어졌다.여호수아 19:29 · 본디새김
이러한 도시들은 당시 지역의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이스라엘이 상속 재산을 받는다고 해서 쉽게 차지할 수 있는 장소들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아셀에게 돌아간 상속 재산의 범위와 그 경계에 포함되거나 경계와 관련된 성읍들입니다.
사사기 1:31–32에 따르면 아셀 자손은 악고와 시돈, 악집 등 여러 성읍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그 땅의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살았습니다. 아셀에게 배정된 땅의 범위와 아셀이 실제로 확보한 땅의 범위는 같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바다가 경계가 되는 땅
29절은 아셀의 경계가 악집 쪽 지역에서 바다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역」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벨(חֶבֶל)은 본래 줄을 뜻하며, 경계로 구별된 땅이나 일정한 구역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그 표현이 정확히 악집 주변의 어떤 지역을 뜻하는지, 혹은 경계가 그쪽으로 향하는 방향을 나타내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 이상으로 악집 주변의 정확한 경계선을 그리기는 어렵습니다.
바다에 가까운 땅이라는 사실은 다른 지역과 교류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기존 해안 도시들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지파가 받는 상속 재산에는 그 땅의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존재하던 도시와 주민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납달리 — 북쪽의 요새 성읍들
여섯 번째 제비는 납달리에게 돌아갑니다.
납달리의 경계는 스불론과 아셀을 접하고, 동쪽으로 요단에 이릅니다. 그 안에는 킨네렛과 하초르, 케데시 등의 성읍이 포함됩니다.
요새 성읍들은 칫딤과 체르와 함맛과 락캇과 킨네렛,여호수아 19:35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성읍들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방어 시설을 갖춘 도시였음을 나타냅니다. 납달리의 영토는 북쪽의 여러 세력과 접하는 지역이었고, 요단과 갈릴리 호수 주변의 통로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초르가 다시 등장하다
아다마와 라마와 하초르,여호수아 19:36 · 본디새김
여호수아 11:10은 하초르가 당시 여러 왕국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하초르를 점령하고 불태웠습니다(11:11–13). 한때 강력한 적대 세력의 중심지였던 성읍이 이제 이스라엘의 한 지파에게 배정된 성읍으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하초르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사사기 4:2에서는 다시 하초르의 왕 야빈이 등장하며,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세력과 관련됩니다. 이 후대의 기록을 고려하면 여호수아 11장의 하초르 정복이 그 지역의 모든 정치적·군사적 문제를 영원히 해결했다는 뜻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납달리의 경계에 왜 유다가 등장할까?
그 경계는 서쪽으로 돌아 아즈놋 타보르로 이어졌고, 거기서 후콕으로 나아갔다. 남쪽으로 스불론에 닿았고, 서쪽으로 아셀에 닿았으며, 해 뜨는 쪽으로 요단에서 유다에 닿았다.여호수아 19:34 · 본디새김
스불론과 아셀은 납달리 가까이에 있는 지파들이므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훨씬 남쪽에 있습니다. 납달리의 동쪽 경계가 어떻게 유다와 직접 맞닿을 수 있었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유다」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칠십인역의 주요 전승에서는 이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동쪽 경계인 요단을 중심으로 문장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유지하면서 유다와 연결된 어떤 동쪽 지역이나 지명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정확한 지리적 관계는 불분명합니다. 따라서 본문에 있는 「유다」를 임의로 삭제할 필요도 없고, 납달리와 유다가 실제로 직접 맞닿아 있었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납달리의 큰 위치, 곧 스불론과 아셀에 인접하고 요단 및 킨네렛 주변과 연결된 북쪽 지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마태복음 4:13–16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일을 설명하면서 이사야 9:1–2의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 그 예언에는 스불론과 납달리의 땅이 등장합니다. 이는 여호수아 19장이 직접 예수의 갈릴리 사역을 예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호수아 19장은 먼저 두 지파의 역사적 상속 재산을 기록합니다. 다만 이사야가 훗날 그 지역을 언급하고, 마태복음이 그 예언을 예수의 사역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여호수아의 성읍 목록에 나오는 지역이 성경 전체의 이야기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됩니다.
단 — 배정된 땅에서 벗어나 다른 땅을 차지하다
일곱 번째 제비는 단 지파에게 돌아갑니다.
40–46절에 등장하는 성읍들은 초르아, 에슈타올, 아얄론, 팀나, 에크론, 야포 맞은편의 영토 등입니다. 이 지명들을 보면 단이 처음 배정받은 땅은 가나안 북쪽 끝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와 에브라임의 서쪽 지역에 가까운 중앙 산지의 가장자리와 해안 평야 방향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초르아와 에슈타올은 이후 삼손의 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사사기 13:2–25에 따르면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단 지파 사람으로 초르아에 살았으며, 여호와야훼의 영은 초르아와 에슈타올 사이에서 삼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의 영토는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47절에서 갑자기 성읍 목록이 중단되고 짧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 자손의 영토는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단 자손은 올라가 레셈과 싸워 그곳을 점령하고, 그곳을 칼날로 쳐서 차지하고 거기에 살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레셈을 단이라고 불렀다.여호수아 19:47 · 본디새김
단은 처음부터 북쪽 끝의 레셈을 상속 재산으로 배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그곳으로 올라가 싸워서 차지했다고 기록합니다.
레셈으로 올라간 단 자손
이 사건은 사사기 18장에서 훨씬 자세하게 서술됩니다.
사사기 18장에서는 단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착지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사람들을 보내고, 라이스라는 성읍을 발견합니다. 그곳 주민들은 평온하게 살고 있었고, 외부 세력으로부터 즉각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사사기 18:7, 27–28).
단 자손은 그 성읍을 공격하고 불태운 뒤 재건하여 정착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단으로 바꿉니다(사사기 18:27–29).
사사기 18장은 이 사건에 또 다른 문제를 더합니다. 단 자손은 미가의 신상과 관련된 제사장을 데리고 가며, 새로 정착한 단에 우상을 세웁니다(사사기 18:14–20, 30–31).
여호수아 19장은 단 자손이 다른 성읍을 점령하여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 전체를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사사기 18장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 과정에 폭력과 우상숭배의 문제가 얽혀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성경의 역사 서술에는 사람들이 행한 일의 기록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러나 기록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행동을 승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장을 오늘날의 영토 확장이나 타인의 땅을 빼앗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본문이 허용하지 않는 적용입니다.
단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불완전한 정착
일곱 지파의 제비뽑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마지막 지파인 단은 자신의 처음 상속 재산 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성읍을 차지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분배는 하나의 경계를 제시했지만, 단 지파가 실제로 살아가게 된 역사는 그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단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 본문은 예상 밖의 사람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47절의 히브리어는 와예체 게불 브네 단 메헴입니다. 이를 문자적으로 옮기면 단 자손의 경계 또는 영역이 그들로부터 나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처음에 배정된 영토가 단 지파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이해합니다. 다른 읽기는 단의 영토가 그들에게 충분하지 않았거나 그들의 영역이 처음 경계를 넘어 확장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영토를 모두 상실했는지, 일부를 유지하면서 확장했는지, 단순히 땅이 좁아서 이동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사사기 1:34는 아모리 사람들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붙여 평지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이 기록은 단 지파가 처음 배정받은 지역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호수아 19장의 레셈과 사사기 18장의 라이스는 동일한 정착 사건과 연결되는 성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름의 형태가 서로 다르게 전해집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9:47의 사건이 사사기 1장과 18장의 모든 사건 사이에서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서의 분배 기록 안에 후대의 이동 사건이 함께 요약되어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 모든 사람이 받은 뒤에 자기 몫을 받다
그들은 그 땅을 경계별로 상속 재산으로 나누는 일을 마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자기들 가운데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상속 재산을 주었다.여호수아 19:49 · 본디새김
여호수아에게는 왜 땅을 주는가?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민수기 13:8, 16). 따라서 그의 가족도 에브라임의 상속 재산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호수아 개인에게 별도의 성읍이 주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수아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유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하는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그 땅을 상속받는 이스라엘의 한 사람입니다.
49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자기들 가운데서」 상속 재산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도 이스라엘 가운데 자신의 거주지를 갖게 됩니다.
「그 성읍을 세우고 거기서 살았다」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여호수아가 요청한 성읍, 곧 에브라임 산지의 팀낫 세라흐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그 성읍을 세우고 거기서 살았다.여호수아 19:50 · 본디새김
여호수아서 앞부분에서 그는 요단을 건너고, 성읍들을 공격하고, 여러 왕들과 싸우고, 전쟁을 이끕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성읍을 세우고 그곳에 삽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전쟁의 승리나 지도자의 권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주로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가 모든 지파의 분배가 끝난 뒤 자기 몫을 받았다는 배열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여호수아가 의도적으로 자기 몫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었다는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내면적인 동기나 절차상의 우선순위를 본문이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왜 특별히 팀낫 세라흐를 요청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세우다」는 문맥에 따라 성읍을 건설하거나 재건하고 정비하는 일을 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팀낫 세라흐가 그전에는 완전히 존재하지 않았고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새 도시를 창건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마무리된 분배
여호수아에게 상속 재산이 주어진 뒤, 본문은 마지막으로 땅 분배의 전체 과정을 정리합니다.
이것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별 가문 우두머리들이 실로에서, 여호와야훼 앞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제비를 뽑아 나누어 준 상속 재산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땅을 나누는 일을 마쳤다.여호수아 19:51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여호수아 18장에서 시작된 실로의 분배 장면을 마무리합니다. 그곳에 만남의 천막이 세워졌고, 여호수아는 아직 몫을 받지 못한 일곱 지파의 땅을 조사하여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제비를 뽑아 상속 재산을 분배했습니다.
누가 땅을 나누었는가?
엘르아살은 제사장으로서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을 담당했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였으며, 가문의 우두머리들은 각 지파와 씨족을 대표했습니다. 이러한 구성이 보여주는 것은 땅의 분배가 단순히 군사 지도자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분배하는 행위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이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상속 재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분배를 수행했습니다.
「마쳤다」는 말은 무엇의 완료를 뜻하는가?
49절과 51절에는 땅의 분배를 마쳤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완료된 것은 모든 성읍의 완전한 점령이 아니라 상속 재산의 분배입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자기 몫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분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파가 그 땅을 안정적으로 차지했고, 모든 주민과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앞으로 아무런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상속 재산으로 분배되었다는 선언과, 그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현실은 함께 존재합니다.
맺음말 — 팀낫 세라흐에 세워진 한 성읍
여호수아의 마지막 장면은 이 장의 여러 이야기를 하나로 묶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이르러 상속 재산이라는 말이 매우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땅은 경계선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집을 세우고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여호수아 19장을 오늘의 삶에 적용할 때, 지파마다 받은 땅의 크기를 개인의 재산이나 성공과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원하는 만큼의 재산을 주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특정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상속 재산의 분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지파의 몫이 정해진 뒤 여호수아에게 한 성읍이 주어집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의 팀낫 세라흐를 받습니다.
그 성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삽니다.
그곳은 화려하게 묘사되지도 않고, 다른 성읍보다 훌륭하다고 평가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그 성읍의 크기나 자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가 그 성읍을 요청했고,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그곳을 받았으며, 그 성읍을 세우고 거기서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마지막 절에서 실로의 만남의 천막 입구가 다시 등장합니다.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지파의 지도자들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상속 재산을 분배한 일이 모두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땅의 분배는 끝났고, 이제 그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19장은 그가 세운 팀낫 세라흐와, 실로의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끝난 땅 분배의 장면을 남기며 마무리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