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지파별로 나눈 땅
아직 받지 않은 일곱 지파의 땅
여호수아 18장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땅은 정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일곱 지파는 아직 자신들의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두 문장이 나란히 놓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호수아 18장은 땅을 빼앗는 전쟁보다, 이미 주어진 땅을 어떻게 공동체의 상속 재산으로 만들어 가는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땅의 분배가 단순한 행정 업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 앞에서 수행하는 공동체의 일이라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실로에 세워진 만남의 천막
왜 실로에 모였을까?
이 장의 첫 장면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이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 거기에 만남의 천막을 세웠다. 그 땅은 그들 앞에서 정복되어 있었다.여호수아 18:1 · 본디새김
여호수아서 앞부분에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진영은 길갈이었습니다. 여호수아 4:19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넌 뒤 여리고 동쪽 길갈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냈고(5:10),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길갈이 중요한 거점으로 등장했습니다(9:6; 10:15).
그런데 18장에서는 온 회중이 실로에 모이고, 그곳에 만남의 천막을 세웁니다.
실로는 가나안 중앙 산지에 있는 장소입니다. 이 장은 왜 그곳을 선택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그곳에 만남의 천막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만남의 천막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던 때부터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하심을 나타내는 중심 장소였습니다. 출애굽기 40:34–38은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그것을 가득 채웠다고 기록합니다.
이제 그 천막이 광야가 아닌 가나안 땅의 실로에 세워집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이동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가나안에서는 정착하여 살아갈 땅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땅은 그들 앞에서 정복되어 있었다」
이 표현을 모든 가나안 주민이 이미 쫓겨나고 모든 성읍이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왔다는 뜻으로 읽으면 곧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앞 장에서는 므낫세 자손이 여러 성읍의 가나안 주민들을 몰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17:12). 그리고 이 장의 여호수아는 아직 땅을 차지하지 않은 일곱 지파를 책망합니다.
따라서 18:1의 정복은 가나안 전체에서 조직적인 저항 세력이 제압되고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땅이 이스라엘 앞에서 굴복하거나 제압된 상태를 표현합니다.
땅을 분배할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되었지만, 땅을 받아 실제로 차지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성막이 세워진 곳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드러난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아직 자기들의 상속 재산을 나누어 받지 않은 지파가 일곱 남아 있었다.여호수아 18:2 · 본디새김
만남의 천막이 세워졌다는 것이 곧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실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인 동시에,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상속 재산을 여호와야훼 앞에서 분배하는 장소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살아갈지, 누구에게 어느 땅을 줄지 결정하는 일도 여호와야훼 앞에서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장에서 엘카나와 그의 가족은 해마다 실로에 올라가 여호와야훼께 예배하고 제사를 드립니다. 한나가 아들을 달라고 간구한 장소도 실로입니다(사무엘상 1:9–11). 그곳에서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여호와야훼를 섬기며 자라납니다(사무엘상 2:11, 18). 그러나 실로의 역사에는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서는 엘리의 아들들의 죄와 이스라엘의 패배,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예레미야 7:12–14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과거 실로에서 일어난 일을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경고하는 근거로 제시하십니다. 성막이 있는 장소라는 사실만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는 보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까지 미루고 있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에게 던진 질문에는 책망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여러분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는 일을 언제까지 미루고 있겠습니까?」여호수아 18:3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단순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진행해야 할 일을 계속 지체하고 있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왜 미루고 있었는지는 본문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미 주셨는데, 왜 차지하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은 이미 주어진 약속을 가리킵니다. 차지한다는 말은 그 약속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땅을 주시지 않았으니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주셨기 때문에 지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1:3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고 땅을 차지하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다만 이 장에서 요구되는 행동은 앞선 정복 이야기와 다릅니다.
여호수아는 이 지체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무장한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땅을 살펴보고 기록할 사람들을 보냅니다.
여기서 이야기의 중심이 전쟁에서 분배를 위한 조사로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에서 여호수아가 문제 삼은 것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백성에게 주신 땅을 그들이 아직 차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독자가 자신의 소망이나 목표를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과 동일하게 생각할 근거는 없습니다. 창세기 17:8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거류하는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여러 세대가 지난 뒤 공동체의 실제 생활 공간을 결정하는 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신약에서는 땅의 상속보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유업이라는 주제가 나타납니다(로마서 8:17; 히브리서 11:8–16). 이는 여호수아 18장이 직접 신약의 유업을 예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약속과 상속이라는 주제가 이후 성경에서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수아 18장 자체의 중심은 분명하게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역사적 사건에 있습니다.
세 사람씩 땅을 돌아다니게 하라
땅을 나누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
여호수아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지파마다 남자 세 사람씩 마련하십시오. 제가 그들을 보내겠습니다. 그들은 일어나 그 땅을 두루 다니며 자기들의 상속 재산에 따라 그 땅을 기록하고 제게 와야 합니다.」여호수아 18:4 · 본디새김
여기서 중요한 동사는 「두루 다니다」(הָלַךְ)와 「기록하다」(כָּתַב)입니다. 그들은 땅의 상태를 살피고 성읍들을 기록해야 합니다. 어떤 성읍들이 있고, 그 지역이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 지파별로 몫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일곱 몫으로 나누되, 이미 받은 땅은 그대로 둔다
5절은 분배의 기본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그 땅을 일곱 몫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유다는 남쪽의 자기 영토에 머물고, 요셉 집안은 북쪽의 자기 영토에 머물러야 합니다.」여호수아 18:5 · 본디새김
이 명령은 새로운 분배가 모든 땅을 처음부터 다시 나누는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유다는 이미 남쪽의 상속 재산을 받았고, 요셉 집안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자신들의 몫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경계는 유지됩니다.
여기서 「일곱 몫」은 반드시 면적이 똑같은 일곱 부분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민수기 26:53–56에서는 인구에 따른 분배 원칙과 제비뽑기가 함께 제시되었습니다. 여호수아 18장은 남은 땅을 구체적으로 어떤 크기와 기준으로 일곱 부분으로 나누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진 몫을 인정하면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몫을 나누는 것입니다.
레위 사람들에게는 왜 같은 방식의 몫이 없는가?
7절에서는 분배에서 제외되는 집단들을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이 레위 사람들의 상속 재산이어서, 그들에게는 여러분 가운데서 돌아갈 몫이 없기 때문입니다.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건너 동쪽에서 자기들의 상속 재산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입니다.」여호수아 18:7 · 본디새김
레위 사람들에게는 다른 지파들과 같은 형태의 독립된 영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민수기 18:20–24에서는 레위 사람들의 소유와 생계가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 및 이스라엘의 십일조와 연결되어 설명됩니다. 다만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땅 안에 전혀 거주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호수아 21장에서는 여러 지파의 영토 가운데 레위 사람들의 성읍들이 배정됩니다.
땅의 분배는 각 집단이 받은 역할과 이미 이루어진 약속을 고려하면서 진행됩니다.
이제 조사를 수행할 사람들과 일곱 몫을 나눌 원칙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어느 지파가 어느 몫을 받을 것입니까?
조금 더 깊이
이후 여호수아 19:9에서는 시므온 지파의 몫이 유다의 상속 재산 가운데서 나오게 되는데, 그 이유는 유다의 몫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처음 이루어진 분배가 모든 현실적 조정의 필요를 없앤 것은 아닙니다.
땅은 사람들이 기록하고, 제비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던진다
여호수아는 6절에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 땅을 일곱 몫으로 기록하여 여기 제게 가져오십시오. 제가 여기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 여러분을 위해 제비를 던지겠습니다.」여호수아 18:6 · 본디새김
이 말은 8절과 10절에서 반복됩니다. 땅을 기록하는 일과 제비를 던지는 일은 하나의 과정 안에 놓여 있지만, 두 행동의 성격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조사를 생략하지 않는다
제비뽑기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사람들을 보내 땅을 살피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조사한 자료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했다면 굳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제비를 던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둘 다 요구합니다.
그들은 실제 땅을 조사해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책임 있게 준비하고, 그 준비 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속 재산을 받아들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전체의 지도자이지만, 자신이 마음대로 지파마다 땅을 지정하지 않습니다. 지파들이 사람을 내어 조사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제비를 던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러한 절차는 땅을 분배하는 일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만듭니다.
말씀이 행동으로 바뀌는 과정
8–10절은 여호수아의 명령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차례로 보여줍니다.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을 두루 지나며, 성읍별로 일곱 몫으로 나누어 문서에 기록했다. 그들은 실로의 진영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왔다.여호수아 18:9 · 본디새김
「문서」라는 표현은 조사 결과가 단순히 사람들의 기억이나 구두 보고에만 의존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10절에서는 그 기록을 가지고 돌아온 뒤 여호수아가 제비를 던집니다.
지체하고 있던 공동체가 구체적인 행동을 시작하고, 그 행동이 실제 분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16:33은 제비를 던지는 일을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8장의 제비뽑기를 모든 시대와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제비뽑기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한 땅을 지파별로 분배하는 특정한 역사적 절차입니다.
베냐민의 몫 — 두 큰 지파 사이의 땅
일곱 지파 가운데 첫 번째로 상속 재산을 받는 지파는 베냐민입니다.
베냐민 자손 지파에게 씨족별로 제비뽑기로 정해진 몫이 돌아갔다. 그들에게 제비뽑기로 돌아간 몫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 사이에 놓였다.여호수아 18:11 · 본디새김
이어지는 경계 설명을 보면 베냐민의 땅에는 여리고, 벧엘, 기브온, 예루살렘과 같은 중요한 성읍들이 포함됩니다. 베냐민의 영역은 요단 계곡과 중앙 산지를 연결하고, 북쪽의 요셉 자손과 남쪽의 유다를 이어 주는 위치에 있습니다.
베냐민의 경계는 어디를 지나가는가?
12–20절은 베냐민의 사방 경계를 기록합니다.
북쪽 경계는 요단에서 시작하여 여리고 북쪽을 지나 벧엘과 아래 벳 호론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서쪽 경계는 벳 호론 남쪽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연결됩니다.
남쪽 경계는 네프토아의 샘과 힌놈 골짜기를 지나 엔 로겔과 아둠밈 비탈길 부근을 통과하여 소금 바다 북쪽에 닿습니다. 동쪽 경계는 요단 강입니다.
동쪽에는 요단 계곡이 있고, 서쪽으로 갈수록 산지가 펼쳐집니다. 특히 북쪽의 벳 호론과 남쪽의 예루살렘 일대는 중앙 산지의 이동로와 연결됩니다.
다만 본문의 모든 지명을 오늘날 정확한 위치에 대응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5절에서 남쪽 경계를 설명하면서 「서쪽으로 나아갔고」라고 말하는 부분도 지리적으로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이 방향 표현을 임의로 다른 방향으로 고쳐 읽기보다, 본문이 전하는 경계 설명과 현대의 지리적 복원 사이에 불확실성이 남는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루즈, 곧 벧엘
그 경계는 거기서 루즈로, 곧 루즈의 남쪽 비탈로 지나갔다. 루즈는 벧엘이었다. 그 경계는 아래 벳 호론 남쪽의 산에 있는 아트롯 아다르로 내려갔다.여호수아 18:13 · 본디새김
창세기 28:19에서도 벧엘의 옛 이름이 루즈였다고 기록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던 사건은 베냐민의 상속 재산에도 연결됩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막내아들이며 요셉과 같은 어머니 라헬에게서 태어났습니다(창세기 35:16–18; 30:22–24). 이제 요셉의 자손들이 받은 땅 남쪽에 베냐민의 몫이 놓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배치가 혈연관계를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제비뽑기의 결과라고 기록할 뿐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가족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요셉과 베냐민의 관계가 다시 떠오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형제였던 두 사람의 후손들이 이제 서로 맞닿은 지역에 상속 재산을 받습니다.
오랜 가족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지리 속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어느 지파에 속하는가?
베냐민의 남쪽 경계를 설명하는 16절에서는 힌놈 골짜기와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이 등장합니다.
그 경계는 벤 힌놈 골짜기를 마주 보며 르파임 골짜기 북쪽에 있는 산의 끝으로 내려갔다. 이어 힌놈 골짜기를 내려가 여부스 사람들의 남쪽 비탈에 이르렀고, 엔 로겔로 내려갔다.여호수아 18:16 · 본디새김
이 경계는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를 설명한 여호수아 15:8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28절에서 베냐민의 성읍 목록에는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 곧 예루살렘」이 포함됩니다.
그렇다고 베냐민이 당시 예루살렘을 완전히 차지하고 지배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사기 1:21은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베냐민의 상속 재산에 예루살렘이 포함되었다는 사실과 그곳 주민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경계 설명을 마치고, 베냐민의 성읍들이 하나하나 등장합니다.
열두 성읍과 열네 성읍
베냐민의 성읍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기록됩니다.
21–24절에는 열두 성읍과 그에 딸린 마을들이 나옵니다. 25–28절에는 열네 성읍과 그에 딸린 마을들이 나옵니다. 본문이 명시하는 두 수를 더하면 스물여섯 성읍입니다. 다만 마지막 목록의 기브앗과 키르얏을 별개 성읍으로 읽는지, 하나의 복합 지명으로 읽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으므로 각 이름을 구분하는 방식에는 불확실성이 남습니다.
여리고 — 무너진 성읍도 상속 재산의 이름으로 남는다
21절의 첫 성읍은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는 여호수아서 6장에서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점령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었습니다. 그때 성읍은 불태워졌고, 여호수아는 그 성읍을 다시 세우는 사람에게 저주를 선언했습니다(여호수아 6:24–26).
그런데 18장에서는 여리고가 베냐민의 성읍 목록에 등장합니다.
이것이 반드시 그 시점에 여리고가 이미 완전히 재건되어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리고라는 이름은 성읍이 있던 장소나 그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명칭으로 계속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정복 이야기에서 등장하던 지명이 정착과 분배의 기록에 다시 나타납니다.
기브온 — 전쟁으로 끝나지 않은 만남
25절에는 기브온이 등장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 왔다고 속여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고 그들과 언약을 체결했습니다(여호수아 9:14–15). 나중에 그들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맺은 맹세 때문에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여호수아 9:26–27).
이제 그 기브온이 베냐민의 성읍 목록에 포함됩니다.
기브온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땅 분배가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맺어진 언약과 기존 주민들의 처지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기브앗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의 장소
28절에는 기브앗이 등장합니다.
사사기 19–21장에서는 기브앗에서 일어난 끔찍한 폭력 사건이 이스라엘 전체의 내전으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상에서는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합니다(사무엘상 10:26; 11:4).
그러나 여호수아 18장에서는 그런 미래의 사건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같은 성읍이 상속 재산으로 주어진 장소가 될 수도 있고, 훗날 심각한 죄와 폭력의 현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대의 의미를 여호수아 18장이 이미 말하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가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 연결입니다.
목록의 마지막 표현
28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첼라와 엘레프와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 곧 예루살렘과 기브앗과 키르얏으로, 열네 성읍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었다. 이것이 베냐민 자손의 씨족별 상속 재산이었다.여호수아 18:28 · 본디새김
이 문장은 11절에서 시작한 베냐민의 분배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11절에서는 베냐민이 제비뽑기로 몫을 받았다는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12–20절에서는 그 땅의 경계를 설명했습니다. 21–28절에서는 그 안의 성읍들을 기록했습니다.
추상적인 지파의 몫이 실제 지역과 성읍과 마을들의 이름으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맺음말 — 실로로 돌아온 사람들
이 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삶의 자리가 되는 과정은, 땅을 돌아다니며 성읍을 기록하고 실로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18장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의 책임 있는 행동을 하나의 과정 안에서 보여줍니다.
그들이 실로로 돌아왔을 때, 아직 분배되지 않았던 땅은 더 이상 막연한 넓은 땅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성읍별로 기록된 일곱 몫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이 놓인 자리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던져진 제비를 통해 베냐민의 상속 재산이 정해졌습니다.
여호수아 18장은 이렇게 실로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베냐민의 성읍 목록으로 마무리합니다. 아직 자기 몫을 받지 못했던 일곱 지파 가운데 하나가, 이제 자신이 살아갈 땅의 이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