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지파별로 나눈 땅
죽은 사람의 피와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
사람을 죽인 사람이 도망쳐 왔다. 성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까?
여호수아 20장은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받은 직후, 그 땅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사건 가운데 하나를 다룹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은 피의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칩니다. 그가 성읍의 성문 앞에 도착하여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의도적인 살인이었는지,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는지는 아직 판단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는 억울함이 있고, 도망쳐 온 사람에게는 복수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20장의 중심에는 두 가지 생명을 모두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지만, 누군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사람을 재판 없이 죽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질서는 이스라엘이 이제 막 상속 재산으로 받은 땅 위에 실제로 세워져야 했습니다.
땅을 나눈 뒤,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20장은 짧고 분명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여호수아 20:1 · 본디새김
이 한 문장은 앞선 땅 분배 기록과 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여호수아 19장에서는 모든 지파의 상속 재산이 정해졌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자신도 팀낫 세라흐를 받았습니다. 이제 땅을 나누는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모세를 통해 너희에게 말한 도피 성읍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라.』」여호수아 20:2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받았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피 성읍에 관한 명령은 여호수아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1:12–14에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과 계획적인 살인을 구별하는 규정이 등장합니다. 민수기 35:9–34에는 여섯 도피 성읍을 두라는 상세한 명령이 나오고, 신명기 19:1–13에서는 도피 성읍의 설치와 살인의 고의성에 따른 구별이 설명됩니다.
모세는 땅을 차지하기 전에 그 땅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한 뒤 그 가르침을 구체적인 성읍의 지정으로 실행합니다.
상속 재산에는 경계가 필요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에는 정의를 실현할 질서도 필요했습니다.
살인자도 피할 수 있는 성읍
「『살인자, 곧 실수로 알지 못한 채 사람을 쳐 죽인 사람이 그곳으로 달아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 성읍들은 너희에게 피의 복수자로부터 피할 곳이 될 것이다.』」여호수아 20:3 · 본디새김
오늘날 한국어에서 살인자라고 하면 흔히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구절의 히브리어 로체아흐(רָצַח)는 문맥에 따라 사람을 죽인 자를 가리키며, 그 자체로 고의성을 확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죽음이라도 모든 사건이 같지는 않습니다
신명기 19:5는 이를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도끼를 휘둘렀는데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 다른 사람을 맞혀 죽게 합니다.
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남겨진 가족의 슬픔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른 사람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반면 신명기 19:11은 다른 상황을 제시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을 미워하여 숨어 기다렸다가 공격해 죽이고, 도피 성읍으로 달아난 경우입니다.
두 사건에는 모두 죽은 사람이 있고,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건은 의도하지 않은 사고이고 다른 사건은 계획적인 살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차이를 무시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 20장이 보호하려는 사람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보복으로 죽임을 당할 위험에 놓인 사람입니다.
피의 복수자는 누구입니까?
이런 사회에서 살인은 단순히 개인 두 사람 사이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가족과 친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습니다.
피의 복수자는 그 죽음에 대한 보복을 수행할 수 있는 친족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를 단순히 법을 무시하는 범죄자나 아무 관계 없는 폭력배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죽은 가족의 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법적 역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역할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복수자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고의적인 살인이었는지 우발적인 사고였는지는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가 분노 속에서 사람을 죽인 뒤에야 사실관계가 밝혀진다면 이미 늦습니다.
신명기 19:6은 피의 복수자가 분노하여 뒤쫓다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며, 원래의 사망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사형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도피 성읍은 바로 이 위험을 막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그 제도는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가 공적인 판단에 앞서 최종적인 결과를 만들어 버리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습니다.
성문 앞에서 시작되는 보호
왜 성문에서 이야기해야 합니까?
「『그는 이 성읍들 가운데 하나로 달아나 그 성읍의 성문 입구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이 듣도록 자기 사정을 말해야 한다. 그들은 그를 자기들이 있는 성읍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살 곳을 주어야 하며, 그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여호수아 20:4 · 본디새김
성문은 고대 성읍에서 단순히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구만은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장로들이 판단을 내리는 공적인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도피 성읍은 범죄 혐의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숨기도록 마련된 장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목숨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정해진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입니다.
장로들은 그를 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호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실제로 머물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읍 공동체가 그를 자신의 보호 아래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도망친 사람만이 아니라 성읍 주민들에게도 책임이 생깁니다. 그들은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도망자를 무조건 내쫓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듣자마자 최종적으로 무죄라고 선언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은 먼저 그 사람의 생명이 보전되도록 해야 합니다.
복수자가 찾아와도 넘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5절은 성읍의 보호가 실제로 시험받는 순간을 상정합니다.
「『피의 복수자가 그의 뒤를 쫓아오면, 그들은 그 살인자를 피의 복수자의 손에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그가 알지 못한 채 자기 이웃을 쳐 죽였으며, 전부터 그 이웃을 미워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여호수아 20:5 · 본디새김
「전부터 그 이웃을 미워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살인 사건에서 의도와 관계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발적인 사고와 계획적인 살인은 결과가 같아도 그 과정은 다릅니다.
과거에 미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살인이 자동으로 우발적인 사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과거에 다툰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의적인 살인을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공동체가 사건의 성격을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근거들입니다.
여호수아 20장은 그 판단에 앞서 복수자가 도망자를 죽이는 일을 막습니다.
조금 더 깊이
룻기 4:1–11에서는 보아스가 성문에서 장로들을 불러 친족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문제를 처리합니다. 신명기 21:18–21에서도 장로들이 성문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는 모습이 나옵니다. 민수기 35:20–23에서도 미움 때문에 밀치거나 일부러 물건을 던진 경우와, 미움 없이 예상하지 못하게 사람을 죽게 한 경우를 구별합니다.
재판이 끝나도 곧바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구절은 6절입니다.
「『그는 재판을 받으려고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그 당시에 재임 중인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읍에 머물러야 한다. 그때 살인자는 자기 성읍, 곧 자기가 도망쳐 나온 그 성읍과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여호수아 20:6 · 본디새김
재판은 의도적인 살인이었는지 판단합니다
여호수아 20장만 읽으면 두 시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소 압축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35:24–28은 이 절차를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민수기 35장에 따르면 회중은 사람을 죽인 자와 피의 복수자 사이에서 사건을 판단합니다. 사건이 우발적인 것이었다고 인정되면 회중은 그를 복수자의 손에서 구하고, 그가 도망쳤던 도피 성읍으로 돌려보냅니다.
고의적인 살인이라면 도피 성읍이 끝까지 그를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 19:11–13에서는 계획적으로 이웃을 죽인 사람이 도피 성읍으로 달아난 경우, 장로들이 그를 데려와 피의 복수자에게 넘기도록 명령합니다.
또한 재판은 단순히 복수자의 말만 듣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민수기 35:30은 살인 사건에서 증인의 증언을 중요하게 다루며,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도피 성읍은 재판을 피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재판이 이루어질 때까지 생명을 지키는 장소입니다.
왜 대제사장이 죽어야 집으로 돌아갑니까?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판단을 받았다면 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요?
민수기 35:25–28에 따르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도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기 전까지는 도피 성읍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사람이 도피 성읍의 경계 밖으로 나갔을 때 피의 복수자가 그를 만나 죽이면, 그 복수자에게 피 흘린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까지 규정합니다(민수기 35:26–27).
그는 생명은 보호받지만 자유로운 거주에는 제한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 사건이 우발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는 엄중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죽음이 왜 그러한 제한을 끝내는 기준인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직접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이 공동체 안에서 한 시기의 끝을 나타내어, 도피자가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된다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또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거룩한 직분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이 죄와 피 흘림의 문제에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의 죽음 자체가 살인 사건을 속죄하기 위한 제사였다고 여호수아 20장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왜 바로 그 죽음이 귀환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여호수아 20:4–6의 성문에서의 진술, 장로들의 보호,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의 거주 규정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반면 칠십인역의 주요 그리스어 본문에는 이 세 절에 대응하는 상세한 내용이 없고, 3절에서 도피자가 회중 앞에 서서 재판받을 때까지 피의 복수자로부터 보호된다는 내용을 전합니다. 어느 형태가 여호수아 20장의 더 이른 본문을 보존했는지는 이 차이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디새김이 따르는 히브리어 본문의 상세한 규정은 민수기 35장에 제시된 법과 내용상 연결됩니다.
여섯 성읍 — 보호는 실제로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본문은 도피 성읍의 이름들을 기록합니다.
요단 서쪽의 세 성읍
케데시 — 납달리 산지
갈릴리 북쪽의 산지에 있는 성읍입니다. 여호수아 19:37에서 납달리에게 배정된 성읍 목록에도 등장합니다.
세겜 — 에브라임 산지
가나안 중앙 산지에 있는 성읍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여호와야훼의 약속을 들었던 장소와 연결됩니다(창세기 12:6–7).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 — 유다 산지
갈렙이 상속 재산으로 받고 아낙 자손들을 몰아낸 성읍입니다(여호수아 15:13–14).
요단 동쪽의 세 성읍
베체르·라못·골란은 고대 지명의 현대 위치를 정확하게 확정하기 어려우므로, 본문의 지역 구분을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 베체르 — 르우벤 지파의 광야 평지: 요단 동쪽의 고원 지대와 연결되는 성읍입니다.
· 라못 — 갓 지파의 길르앗: 요단 동쪽의 길르앗 지역에 속합니다.
· 골란 — 므낫세 지파의 바산: 요단 동쪽 북부의 바산 지역에 있습니다.
여섯 성읍은 요단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세 곳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요단 서쪽에서는 북쪽의 케데시, 중앙의 세겜, 남쪽의 헤브론으로 이어집니다. 동쪽에도 북쪽의 골란, 길르앗의 라못, 더 남쪽의 베체르가 있습니다.
너무 멀면 보호받기 전에 죽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19:3은 도피 성읍에 이르는 길을 마련하고 땅을 세 지역으로 나누어, 사람을 죽인 자가 그곳으로 달아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19:6에 나옵니다. 도피 성읍이 너무 멀면 피의 복수자가 분노하여 뒤쫓아 와 그 사람을 따라잡고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피할 권리가 있다는 규정이 있어도 실제로 그곳까지 도달할 수 없다면 보호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섯 성읍의 배치는 이 현실적인 문제와 연결됩니다. 생명을 보호하라는 명령은 실제로 달아나 도착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도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하고, 그 장소에 도착하면 받아들여 주는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이미 익숙한 성읍들이 새로운 역할을 받습니다
세겜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에서 등장한 장소입니다(창세기 12:6–7; 33:18–20).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거주했고, 그의 가족들이 묻힌 막벨라 굴과 관련된 장소입니다(창세기 23:17–20).
그런데 여호수아 20장에서 이 성읍들은 새로운 역할을 받습니다.
이제 그 장소들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의 복수자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이 됩니다. 특히 헤브론의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여호수아 15장에서 헤브론은 갈렙이 아낙 자손들을 몰아낸 성읍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차지한 장소가 이제 보호의 기능을 맡습니다.
「성별했다」와 「내주었다」
7절과 8절은 도피 성읍을 지정하는 행동에 서로 다른 동사를 사용합니다. 7절은 서쪽 세 성읍을 「성별했다」고 말하고, 8절은 동쪽 세 성읍을 「내주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도피 성읍으로 특별히 구별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신명기 4:41–43에서는 모세가 이미 요단 동쪽에 베체르, 라못, 골란을 도피 성읍으로 구별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20장은 모세가 동쪽에서 시작한 도피 성읍의 지정을 서쪽으로 확장하여 여섯 성읍의 체계를 갖추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여섯 성읍은 민수기 35:6–7에 따라 레위 사람들에게 배정되는 마흔여덟 성읍 가운데 포함됩니다. 그 구체적인 성읍 배정은 다음 장인 여호수아 21장에서 기록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거류민도
이 장의 마지막 절은 도피 성읍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밝힙니다.
이것들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을 위해 지정한 성읍들이었다. 실수로 사람을 쳐 죽인 모든 사람이 그곳으로 달아나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복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여호수아 20:9 · 본디새김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받은 상속 재산과 같은 지위가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사건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 배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속 재산을 받지 않은 사람도 생명의 보호를 받습니다
14–19장은 지파별 상속 재산을 길게 기록했습니다. 어느 지파가 어떤 성읍을 받고, 어떤 경계 안에서 살아갈지를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거류민은 그러한 지파별 상속 구조와 동일한 방식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지파별 상속 재산을 받았느냐가 도피할 수 있는 자격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건이 우발적인 것이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민수기 35:15도 여섯 도피 성읍이 이스라엘 자손과 거류민을 위한 것이라고 명시합니다.
이스라엘의 상속 재산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부당한 피의 복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레위기 19:33–34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류하는 사람을 학대하지 말고, 그를 자기들 가운데 태어난 사람처럼 여기며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근거는 이스라엘도 이집트에서 거류민이었다는 기억입니다. 여호수아 20장은 같은 문제를 생명의 위협이라는 상황 속에서 다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죽은 사람의 피를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십니까?
이 제도를 단순히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베푸는 관대함으로만 이해하면 본문의 중요한 절반을 놓칩니다.
민수기 35:33–34에서 여호와야훼는 피 흘림이 땅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므로 그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단순히 가족이나 공동체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피를 흘려 생명을 빼앗는 일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땅의 질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고의적인 살인을 처벌하는 일과 부당한 복수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목적이 아닙니다. 둘 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늘날의 형사법과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도피 성읍 제도는 피의 복수자에게 특정한 역할을 인정하고,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대제사장의 죽음까지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고 규정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법질서입니다. 오늘날의 재판 절차와 구금 제도에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습니다.
맺음말 — 도피자를 받아들이는 성문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의 피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사람의 피도 판단 없이 흘려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20장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사람들을 향해 막연히 자비롭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호할 성읍을 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 20장에는 실제로 도피 성읍을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장은 아직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앞으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령합니다.
그러나 4절의 장면은 구체적입니다.
한 사람이 성문 앞에 섭니다. 그는 누군가를 죽게 한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쫓기고 있으며,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자신도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읍의 장로들에게 자기 사정을 말합니다. 그가 설명하는 사건이 어떤 판단을 받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장로들에게는 이미 주어진 명령이 있습니다.
그를 받아들이고, 살 곳을 주고, 그들과 함께 살게 해야 합니다. 피의 복수자가 찾아와도 정해진 보호를 함부로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땅에는 그런 성문이 여섯 곳 마련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