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6–12장 · 가나안 성읍과의 싸움
승리한 백성이 다시 말씀 앞에 서다
여호수아 8장은 패배했던 전쟁을 다시 치러 승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장을 끝까지 읽으면 뜻밖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 성읍이 불타고 왕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승리를 축하하거나 다음 정복을 준비하는 대신 두 산 사이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상한 순서입니다. 이제 막 적을 물리쳤는데, 왜 전쟁 이야기는 율법을 읽는 장면으로 끝납니까? 더욱이 여호수아가 낭독하는 것은 승리를 약속하는 축복만이 아닙니다.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닥칠 저주까지 빠짐없이 읽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 패배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말씀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낙담하지 마라. 전투에 나설 온 백성을 데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아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여호수아 8:1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이 말을 이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뒤 여호와야훼는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여호수아 1:6–9). 처음에는 아직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지도자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패배를 경험한 지도자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아이를 얕보았습니다. 정탐꾼들은 온 백성이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적은 병력만 보내도 충분하다고 보고했습니다(7:3). 그러나 이스라엘은 패했고, 여호수아는 여호와야훼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의 장래를 물었습니다. 아간의 죄가 드러나 처리된 뒤에야 다시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의 첫 말씀은 새로운 전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관한 것입니다. 패배의 원인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패배를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다시 그 성읍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힘으로 이전의 패배를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씀을 받고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전투에 나설 온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지난번에는 적은 병력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지만, 이제 여호수아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네가 여리고와 그 왕에게 한 대로 아이와 그 왕에게도 하여라. 다만 그곳의 전리품과 가축은 너희 몫으로 약탈하여라. 성읍 뒤에 매복대를 배치하여라.」여호수아 8:2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아간은 여리고에서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을 자기 것으로 취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전리품과 가축을 이스라엘이 취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문제의 핵심이 전리품을 소유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누구의 말씀에 따라 그것을 취했느냐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유리한 일반 원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여리고에서의 명령을 모든 전쟁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도 안 되고, 아이에서의 허락을 이전의 불순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야훼는 새로운 기회를 주시지만, 이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전쟁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번에는 성읍 뒤에 매복대를 배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지난번의 패배가 이번에는 전략이 되다
여호수아는 용맹한 전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냅니다. 그들에게는 성읍 뒤에 숨어 기다리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여호수아 자신은 다른 병력과 함께 성읍 앞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계획은 적의 기억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온 백성과 저는 성읍으로 다가가겠습니다. 그들이 처음처럼 우리를 맞으러 나오면, 우리는 그들 앞에서 달아나겠습니다.」여호수아 8:5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아이 사람들이 지난번 전투를 기억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도망치는 모습을 이미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장면을 보면 자기들이 다시 이기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난번 이스라엘이 달아난 것은 실제 패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행동이 적을 유인하는 수단이 됩니다.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이번에는 상대의 판단을 그르치게 만드는 데 이용됩니다.
그렇다고 지난번 패배가 처음부터 이번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일어난 패배를 여호수아가 어떻게 새로운 전략에 활용하는지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성읍을 차지하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 성읍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여호수아 8:7 · 본디새김
매복은 인간이 만들어 낸 술책이지만, 이 이야기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도 매복과 전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전사들을 보내면서 여호와야훼의 말씀대로 행하라고 거듭 명령합니다. 여호수아서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뛰어난 지휘관이 적절한 전략을 선택했느냐가 아닙니다. 그 전략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대한 응답으로 수행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주력 병력은 성읍 북쪽에 나타나 적의 시선을 끌고, 매복 병력은 서쪽, 곧 벧엘과 아이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적을 성읍 밖으로 끌어내고, 매복대는 비어 있는 성읍을 점령할 것입니다.
성읍 주변의 지형은 이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호수아와 성읍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고, 병력은 서로 다른 방향에 배치됩니다. 아이의 왕은 성읍 앞에 나타난 이스라엘 군대를 보지만, 뒤편에 숨은 매복대는 보지 못합니다.
이제 승패를 결정할 것은 단순한 병력의 크기가 아닙니다. 누가 상황 전체를 알고 있으며, 누가 자신이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삼만 명을 밤에 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그가 오천 명쯤을 데려다가 다시 성읍 서쪽에 매복대로 배치했다고 말합니다. 9절에서는 여호수아가 백성 가운데서 밤을 보내고, 13절에서는 다시 그날 밤 골짜기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이를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삼만 명과 오천 명을 서로 다른 임무를 맡은 병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삼만 명을 먼저 파견하고, 그 가운데 일부 또는 별도의 병력 오천 명을 추가로 배치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10–13절이 앞서 설명한 전투 준비를 다시 서술하면서 병력 배치의 세부 사항을 보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오천 명은 앞에서 언급한 매복 병력과 별개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왕은 보았지만 알지 못했다
아이 왕이 이를 보자 성읍의 남자들, 곧 왕과 그의 온 백성이 서둘러 일찍 일어나 정해진 때에 아라바 앞쪽으로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갔다. 왕은 성읍 뒤에 자기를 노리는 매복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여호수아 8:14 · 본디새김
아이 왕은 자신이 보는 상황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성읍 앞에 나타났고, 지난번에는 그들이 달아났습니다. 이번에도 군대를 몰고 나가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본문은 왕의 속마음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매복대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 줌으로써, 왕이 내리는 판단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 장면에서 왕은 보고 있지만 알지 못합니다. 반면 독자는 여호수아가 미리 설명한 계획을 알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은 그들 앞에서 패한 체하며 광야 쪽으로 달아났다.여호수아 8:15 · 본디새김
아이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뒤쫓고, 점점 성읍에서 멀어집니다. 17절은 아이와 벧엘에 추격에 나서지 않은 남자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적을 쫓아 나가는 일에 집중하느라 자신들이 지켜야 할 곳을 비워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추격할수록 성읍으로부터 멀어지고, 승리를 확신할수록 자기들의 패배를 준비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의 히브리어 동사 자체만으로 위장 패배가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서 여호수아가 달아날 계획을 분명히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 이스라엘의 도주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마소라 본문은 벧엘 사람들의 전투 가담을 기록하지만, 이 구절만으로 벧엘 성읍까지 점령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실제로 점령과 파괴를 묘사하는 성읍은 아이입니다.
여호수아의 손과 아이 사람들의 손
전투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네 손에 든 투창을 아이 쪽으로 내뻗어라. 내가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여호수아가 손에 든 투창을 성읍 쪽으로 내뻗었다.여호수아 8:18 · 본디새김
매복대가 일어나 달리고, 성읍에 들어가 점령하고, 불을 지릅니다. 성읍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자 아이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깨닫습니다. 앞에는 도망치던 이스라엘 군대가 돌아서고, 뒤에는 매복했던 이스라엘 군대가 나옵니다.
앞서 이스라엘이 아이 사람들 앞에서 달아났던 것과 반대로, 이제 아이 사람들에게는 달아날 곳이 없습니다.
전투의 결정적인 계기는 불타는 성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입니다. 매복대는 그것을 통해 임무가 완수되었음을 알리고, 주력 병력은 그것을 보고 돌아섭니다. 반대로 아이 사람들은 같은 연기를 보고 자신들이 돌아갈 성읍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아이 왕은 산 채로 붙잡히고, 그의 군대는 무너집니다.
조금 더 깊이
아이 사람들이 자기 성읍이 불타는 것을 보았을 때, 본문은 그들에게 달아날 「힘」이 없었다고 말합니다(8:20).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힘」에 해당하는 표현에(יָד)도 손을 뜻하는 말이 사용됩니다. 문맥상 그것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아이를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여호수아는 그 손을 들어 군대를 움직입니다. 반면 아이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손을 들어 올린 행동은 앞서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승리가 전투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지가 됩니다. 여기서 출애굽기 17:8–13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말렉과 전투할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었고, 그의 손을 들어 올린 일이 전투의 진행과 연결되었습니다. 두 사건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8장의 투창은 매복대를 움직이게 하는 군사적 신호의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들어 올린 손을 통해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어 줍니다.
승리의 기록이 감추지 않는 것
전투의 결말을 기록하는 본문의 언어는 매우 가혹합니다.
이스라엘은 들판에서 추격자들을 죽인 뒤 성읍으로 돌아가 남은 주민들을 죽입니다. 25절은 그날 죽은 사람이 남자와 여자를 합쳐 만 이천 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본문은 전사한 군인들의 숫자만 보고하지 않습니다. 여자들까지 포함하여 아이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밝힙니다.
26절은 이것을 여호수아가 모든 주민을 「온전히 바쳐 없앨 때까지」 투창을 든 손을 거두지 않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아이에 대한 파괴를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수행된 행위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전쟁의 참혹함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이 사실을 단순히 악에 대한 영적 승리의 비유로 바꾸면 이야기에서 실제로 서술된 인간의 죽음을 지워 버리게 됩니다.
여기에는 구약의 전쟁 본문을 읽는 독자가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위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한 성읍의 주민들이 모두 죽임당할 수 있습니까?
여호수아서는 이 질문을 현대 독자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해명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사건을 여호와야훼의 명령과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지만, 그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별도의 윤리적 논증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이 사건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설명한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독자가 그 사건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으로 서술된 특정한 정복 명령을 오늘의 종교적 폭력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원칙으로 삼을 근거도 이 장에는 없습니다.
이 긴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본문을 정직하게 읽는 일입니다.
이어지는 27절에서 이스라엘은 가축과 전리품을 취합니다. 본문은 그 행위를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말대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전투의 파괴와 전리품의 취득 모두 앞서 주어진 명령의 범위 안에서 서술됩니다.
28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성읍을 불태워 폐허로 만듭니다.
그는 아이 왕을 나무에 매달아 저녁때까지 두었다. 해가 질 때 여호수아가 명령하자, 사람들이 왕의 시신을 나무에서 내려 성읍의 성문 입구에 내던지고 그 위에 오늘까지 남아 있는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여호수아 8:29 · 본디새김
앞 장에서는 아간의 죽음 이후 그 위에 큰 돌무더기가 세워졌는데(7:26), 이제 아이 왕의 시신 위에도 돌무더기가 세워집니다. 두 돌무더기의 의미와 맥락을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장의 마지막에 반복되는 이 모습은 이스라엘 내부의 불순종과 외부의 적에 대한 심판이 모두 이야기 속에서 엄중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전투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여기서 정복의 행렬을 계속 이어 가지 않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다시 돌을 사용합니다. 이번에는 죽은 사람 위에 쌓는 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의 돌입니다.
조금 더 깊이
26절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앞 장에서 다루어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과 연결됩니다. 히브리어 지명 ‘아이(עַי)’는 폐허 또는 무너진 더미를 뜻하는 말과 연결됩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마침내 그 이름이 떠올리게 하는 모습, 곧 폐허 더미가 됩니다. 왕의 시신을 해가 질 때 내렸다는 사실은 신명기 21:22–23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나무에 매달린 사람의 시신을 밤새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여호수아 8장은 이 행동의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지만, 시신을 당일에 내리는 행동은 그 규정과 일치합니다.
폐허의 돌에서 제단의 돌로
그때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여호수아 8:30 · 본디새김
에발 산은 그리짐 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두 산 사이에는 세겜 지역이 있습니다. 아이 전투의 중심 무대였던 벧엘 동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본문은 그곳까지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에발 산에 돌을 세우고 율법을 기록하며,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아 여호와야훼께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습니다(신명기 27:2–8).
여호수아는 이제 그 명령을 수행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기들의 승리로 새롭게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이미 모세를 통해 주어진 언약의 말씀에 응답합니다.
왜 하필 에발 산인가?
신명기 11:29와 27:12–13에 따르면 그리짐 산은 축복과, 에발 산은 저주와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은 축복의 산인 그리짐이 아니라 에발에 세워집니까?
우선 가장 분명한 대답은 모세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7:4–7).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자기 판단으로 예배 장소를 정하지 않습니다.
에발 산에 세워진 제단에서는 번제뿐 아니라 친교 제물도 바칩니다. 신명기 27:7은 친교 제물을 바친 뒤 여호와야훼 앞에서 먹으며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저주와 연결된 산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 앞에서 기뻐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배치를 지나치게 상징화하여 에발 산의 제단이 특정한 속죄 사건을 직접 예표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모세의 명령에서 에발 산은 저주의 선언만 들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그분 앞에서 기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다듬지 않은 돌에 새겨지는 말씀
여호와야훼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대로, 모세의 가르침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온전한 돌로 만든 제단이었다. 그들은 그 위에서 여호와야훼에게 번제들을 올리고 친교 제물들을 잡아 바쳤다.여호수아 8:31 · 본디새김
이 규정은 출애굽기 20:25 및 신명기 27:5–6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제단의 아름다움이나 규모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돌을 사용해야 하는지, 그 돌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서는 복잡한 전략을 세웠지만, 제단을 세울 때에는 모세에게 주어진 규정을 따릅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행동은 달라도, 그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곳 돌들 위에 모세의 가르침을 베껴 썼다.여호수아 8:32 · 본디새김
여기서 「베껴 썼다」(מִשְׁנֶה)에 해당하는 표현은 기존에 있는 가르침을 다시 기록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차지한 땅 안에 자신들의 전승과 삶을 규정할 말씀을 세웁니다. 땅은 군사력으로 점령할 수 있지만, 그 땅에서 살아갈 기준은 정복자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성읍을 무너뜨린 뒤, 그 땅에 자기 이름이 아니라 모세의 가르침을 기록합니다.
이 행동은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대신해 새로운 권위의 출발점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전한 말씀을 이어받아 그것이 다음 세대와 새 땅에서 계속 효력을 갖도록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7:2–8에서는 율법을 기록할 돌들과 제단을 위한 돌들을 함께 명령합니다. 여호수아 8:32는 그곳의 돌들 위에 율법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기록된 돌의 구체적 배치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모세의 가르침」을 정확히 어떤 분량으로 베껴 썼는지도 특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모세오경 전체를 모두 새겼다거나 십계명만을 새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1:7–8에서 이미 제시된 지도자의 모습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명령한 가르침을 떠나지 말고, 그 말씀을 밤낮으로 되새기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말씀을 들을 자리에 서 있는가
이제 여호수아 8장의 마지막 장면이 시작됩니다.
제단이 세워지고 가르침이 기록된 뒤, 이스라엘 백성이 두 산을 향해 모여 섭니다.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관들이 있고,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은 그리짐 산을 향하고, 다른 절반은 에발 산을 향합니다.
그 가운데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 배치는 이스라엘이 단순히 왕이나 군사 지도자의 명령 아래 있는 집단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 아래 있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조금 전까지 그는 투창을 든 군사 지휘관이었습니다. 이제는 백성 앞에서 가르침을 낭독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읽는 말씀은 축복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 여호수아는 가르침책에 기록된 모든 것에 따라 가르침의 모든 말, 곧 축복과 저주를 낭독했다.여호수아 8:34 · 본디새김
신명기 27–28장에 따르면 축복과 저주는 이스라엘이 언약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축복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과 연결되고, 저주는 그 말씀을 저버리는 삶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아이를 정복했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안전과 번영을 무조건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리고를 점령한 뒤 이스라엘이 아이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에게 경고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땅은 아무런 조건도 없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33절은 「거류민도 본토인도 함께했다」고 말합니다. 35절은 그 범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 가운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그들 가운데 함께 다니는 거류민 앞에서 낭독하지 않은 말은 하나도 없었다.여호수아 8:35 · 본디새김
여호수아가 전쟁을 준비할 때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전사들이었습니다. 군대의 전투 능력을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는 그들 모두가 회중 안에 포함됩니다.
본문이 굳이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거류민을 따로 언급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빠져 있으면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모였다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말씀 가운데 자기에게 편리한 부분만을 골라 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모든 말씀이 낭독됩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 중 자기 마음대로 취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이 장의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듣는 공동체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신명기에서 반복되는 공동체의 모습과도 연결됩니다. 신명기 29:10–15에서 모세는 지도자들뿐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진영 안의 거류민까지 여호와야훼 앞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31:10–13에서는 남녀와 어린아이와 거류민을 함께 모아 율법을 듣고 배우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수아 8장의 마지막 장면은 그 명령들이 실제로 실행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 24장에서 여호수아는 세겜에 이스라엘을 모으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회상하게 하며,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도록 요구합니다.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결국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삶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8장의 에발 산 집회는 여호수아서 전체의 방향을 미리 보여 줍니다.
승리한 뒤에 무엇을 듣는가
이스라엘은 아이에서 승리한 뒤에도 다시 말씀 앞에 섭니다. 그 자리는 승리를 보상받는 자리가 아니라, 승리했다고 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선 존재가 된 것은 아님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기에, 승리한 뒤에도 그분의 말씀 아래 머물러야 합니다.
이 장은 끝에서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투창을 들고 있던 여호수아의 손은 이제 가르침을 기록하고, 전쟁의 명령을 듣던 백성은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읍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던 장면은 사라지고, 두 산을 향해 선 회중이 마지막 장면을 채웁니다.
그곳에서는 전사들만이 아니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거류민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 앞에서 모세의 가르침을 읽습니다. 축복의 말씀도, 저주의 말씀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8장은 적을 무너뜨린 승리의 장면이 아니라, 승리한 백성 모두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