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6–12장 · 가나안 성읍과의 싸움
속임수로 맺은 언약도 지켜야 하는가
여호수아 9장에는 전쟁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충돌하지 않고, 성읍이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이스라엘은 이전 전투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어려움에 빠집니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평화를 청합니다. 그들은 먼 나라에서 왔다고 말하며, 오래 여행했다는 증거로 낡은 옷과 신발, 터진 포도주 부대와 마른 빵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말을 의심하고 출신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사흘 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거짓말에 속아 맺은 언약도 지켜야 합니까? 그 언약을 지키는 일이 하나님께 받은 다른 명령과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수아 9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정이 얼마나 복잡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잘못된 결정으로 맺어진 약속조차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남기는지를 보여 줍니다.
같은 소식을 듣고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다
이 장은 두 집단이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가나안 지역의 왕들이 이스라엘의 진격 소식을 듣습니다. 산지와 낮은 지대, 지중해 연안의 여러 왕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려고 연합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려고 한뜻으로 함께 모였다.여호수아 9:2 · 본디새김
이어서 기브온 주민들도 소식을 듣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한 일을 들었다.여호수아 9:3 · 본디새김
두 집단의 출발점은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여리고와 아이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대응은 정반대입니다.
여러 왕은 힘을 합쳐 싸우려고 합니다. 반면 기브온 주민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합니다. 다른 왕들이 군사적 연합을 준비할 때,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방법을 찾습니다.
이 대조는 앞으로 전개될 여호수아서의 두 방향을 미리 보여 줍니다. 가나안의 여러 왕이 군사적으로 저항하는 이야기는 10장과 11장에서 계속됩니다. 반면 기브온의 선택은 전쟁 없이 이스라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특별한 사례가 됩니다. 실제로 여호수아 11:19은 기브온 주민들을 제외하고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룬 성읍이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다른 선택을 한 가나안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여리고의 라합입니다. 라합도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와 요단 동쪽에서 행하신 일을 들었다고 말합니다(여호수아 2:9–11).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주며 자기 가족의 생명을 보존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두 이야기에는 두려움과 생존이라는 공통된 문제가 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릅니다. 라합의 이야기에서는 정탐꾼을 보호한 행동이 중심이고, 기브온 이야기에서는 자기들의 정체를 속여 언약을 맺은 행동이 중심입니다.
먼 나라에서 왔다는 거짓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브온 주민들이 준비한 물건들은 이상할 만큼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그들도 꾀를 써서 행동했다. 그들은 가서 여행 양식을 준비하고, 자기 나귀들에 실을 낡은 자루들과 낡고 터져서 묶어 기운 포도주 가죽 부대들을 챙겼다.여호수아 9:4 · 본디새김
낡은 신발과 옷도 준비하고, 빵도 말라 부스러진 상태였습니다. 이것들은 단순한 여행용품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도록 꾸며진 증거입니다.
오랫동안 걸어왔으니 신발이 낡았습니다. 먼 길을 지나왔으니 옷이 해졌습니다. 가죽 부대가 터지고 빵이 말라 버린 것도 오랜 여행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속임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낡은 물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길갈 진영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가서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먼 땅에서 왔습니다. 이제 우리와 언약을 맺어 주십시오.」여호수아 9:6 · 본디새김
왜 굳이 먼 땅에서 왔다고 해야 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신명기 20:10–18에 나타나는 전쟁 규정을 살펴야 합니다. 모세의 가르침은 멀리 떨어진 성읍과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 안의 성읍을 구별합니다. 먼 성읍에는 평화를 제안할 수 있고, 상대가 받아들이면 강제 노동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종속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에 속한 민족들의 성읍에는 전멸시키라는 별도의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신명기 7:2도 그 민족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 차이를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처음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혹시 당신들이 우리 가운데 살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들과 언약을 맺겠습니까?」여호수아 9:7 · 본디새김
그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정확히 던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먼 나라의 주민인지, 아니면 자기들이 차지할 땅에 사는 주민인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은 그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여호수아 9:8 · 본디새김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 이름도, 정확한 위치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왜 왔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종이라고 부르면서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정작 확인해야 할 사실은 계속 숨깁니다. 이스라엘은 올바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4절의 이어지는 여행 준비를 나타내는 동사는 읽기 전통과 해석에 따라 여행 양식을 챙겼다는 뜻으로도, 사절 행세를 했다는 뜻으로도 이해됩니다. 어느 쪽이든 뒤에 나오는 물품들이 그들의 계획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어떤 소식을 말하고 어떤 소식을 감추었는가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야훼의 이름 때문에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 때문에 아주 먼 땅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소문과 그분이 이집트에서 하신 모든 일,」여호수아 9:9 · 본디새김
그들은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과 요단 동쪽의 두 왕, 시혼과 옥이 패배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3절에 따르면 기브온 주민들이 실제로 들었던 소식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앞에서 말할 때는 여리고와 아이에 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생략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속임수와 연결하여 읽으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여리고와 아이의 최근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자신들이 실제로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의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들만 언급하면 먼 나라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이런 계산을 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그들이 선택해 말하는 내용 사이의 차이가 이들의 주장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일은 사실입니다. 시혼과 옥이 패배한 것도 사실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확인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먼 나라에서 왔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꾸며 낸 것이 아닙니다. 참된 사실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배열하여 거짓된 결론을 믿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이 그들의 말을 검토해도 일부 내용은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 사실이 맞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전체 이야기를 믿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12–13절에서는 낡은 물건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빵을 집에서 가져올 때는 뜨거웠고, 포도주 부대도 처음에는 새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옷과 신발이 낡은 것은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빵이 마르고 옷과 신발이 낡았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확인되는 상태입니다. 반면 그 물건들이 출발할 때 새것이었다거나 빵이 따뜻했다는 것은 기브온 사람들이 하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들은 낡은 물건을 보여 주며, 이스라엘이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과거를 믿게 하려고 합니다.
이 차이가 다음 절의 실패를 준비합니다.
그들은 양식을 살펴보았지만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았다
이 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장은 14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온 사람들의 양식 가운데 얼마를 취했으나, 여호와야훼에게 뜻을 묻지는 않았다.여호수아 9:14 · 본디새김
여기서 이야기는 기브온 사람들의 행동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앞부분은 기브온 사람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증거를 준비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술자는 이스라엘이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들었습니다. 낡은 물건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상대의 정체를 의심하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내리려는 결정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부합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에는 이미 모세를 통해 주어진 명령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언약을 맺을 수 있는지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선 정복 이야기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고 구체적인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은 기브온 사람들의 입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입에서 반복될 뿐, 여호와야훼께서 새로운 지시를 내리시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15절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고 그들을 살려 두기로 언약을 맺습니다. 회중의 지도자들도 맹세합니다. 지도자들의 맹세는 이 약속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상대방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식 가운데 얼마를 취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직접 먹었는지, 검사했는지, 받아들였는지는 표현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문맥에서 그들이 기브온 사람들의 제시물을 근거로 판단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그 행동과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은 행동이 대조됩니다.
사흘 만에 드러난 거짓말, 그러나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약을 맺은 지 사흘 만에 진실이 밝혀집니다.
그들과 언약을 맺은 뒤 사흘이 지나서, 이스라엘은 그들이 이스라엘 가까이에 있으며 이스라엘 가운데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여호수아 9:16 · 본디새김
이 장에서 반복되던 「소식을 듣다」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기브온 주민들의 정체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소식은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으로 이동합니다. 그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었습니다. 이 네 성읍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기브온 사람들의 실체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이 진격해 들어온 바로 그 지역에 여러 성읍을 두고 사는 주민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성읍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을 치지 않았다. 회중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고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온 회중은 지도자들에게 불평했다.여호수아 9:18 · 본디새김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그 언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도자들이 속임수에 넘어간 결과,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땅의 주민들이 보호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맹세를 취소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도자가 온 회중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고 그들에게 맹세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여호수아 9:19 · 본디새김
여기에는 두 가지 책임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가나안 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신명기 7:2). 둘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 두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모세의 가르침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거짓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하고(레위기 19:12), 여호와야훼께 맹세한 것을 가볍게 어기지 말라고 가르칩니다(신명기 23:21–23).
그들은 맹세를 어기면 자신들에게 진노가 닥칠 것을 염려하여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 두기로 합니다(9:20). 이때 진노를 염려한다는 것은 지도자들의 판단으로 제시됩니다.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나타나 그들의 결정을 승인하시는 장면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의 모든 판단이 옳았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도자들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결정으로 자신들이 떠맡은 책임까지 마음대로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이미 약속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또 다른 잘못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으로 기브온 주민들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은 정상적인 정보와 정직한 관계 위에서 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그들의 생명을 보장했습니다. 상대방이 거짓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름을 걸고 행한 맹세가 아무런 책임도 남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호수아 9장은 이 두 입장을 추상적인 법률 논쟁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21:1–2에서는 훗날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일이 언급됩니다. 다윗 시대에 기근이 계속되자 여호와야훼께서 사울 집안의 피 흘린 죄를 지적하시는데, 그 이유가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본문은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맹세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기억합니다. 즉, 사무엘하의 이야기에서는 오래전에 맺은 그 맹세가 여전히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두려움이 드러나다
언약을 유지하기로 한 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거짓말을 추궁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누구인지 숨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명하거나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분의 종 모세에게 온 땅을 여러분에게 주고 그 땅의 모든 주민을 여러분 앞에서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셨다는 소식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몹시 두려워하여 이 일을 했습니다.」여호수아 9:24 · 본디새김
따라서 그들의 두려움은 전쟁터에서의 죽음뿐 아니라, 자기들의 생존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기만이었지만, 그 기만을 낳은 배경에는 실제적인 생존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의 거짓말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단순히 재미있는 속임수로 적을 속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살 길을 찾으려는 주민들로 보게 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십시오.」여호수아 9:25 · 본디새김
처음에 그들은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했었습니다(9:8). 그때 그 표현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약을 얻어 내기 위한 외교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실제로 여호수아의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통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이스라엘이 믿어야 할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서 2장의 라합과 비교하면 기브온 주민들도 여호와야훼의 권능을 인정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 생존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9장은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상숭배를 버렸다거나 이스라엘의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을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이 제공하는 증거를 넘어섭니다. 반대로 생존을 위해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로 그들이 여호와야훼에 대해 가졌던 인식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신지에 관한 소식을 들었고, 그 소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응답에는 두려움과 기만이 함께 있었습니다.
저주받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들에게 저주를 선언합니다.
「이제 너희는 저주받았다. 너희 가운데서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종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여호수아 9:23 · 본디새김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은 공동체와 예배의 유지에 필요한 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일을 그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나 일시적인 봉사로 맡기지 않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계속 수행하도록 정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종이 그들 가운데서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 번 노동하고 끝나는 처벌이 아니라, 그 집단에 지속적으로 부과되는 종속적 처지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결말을 평등한 화해나 완전한 공동체의 수용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축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처벌을 기록하면서도 여호수아의 행동을 특별한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그렇게 했다. 그는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 냈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여호수아 9:26 · 본디새김
이 말은 여호수아를 예상하지 못한 위치에 세웁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속임수 때문에 책망하고 저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이 그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잘못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이유로 이미 맹세한 생명의 약속을 파기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직접 자비를 선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존은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이 내린 결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 사건 전체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특별한 구원의 방식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단 곁에 남게 된 기브온 사람들
그날 여호수아는 그들을 회중과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다. 그 일은 여호와야훼가 선택할 곳에서 오늘까지 이어졌다.여호수아 9:27 · 본디새김
이 장의 앞부분에서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거짓말에 설득력을 더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이스라엘의 삶 안에 계속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여호와야훼가 선택할 곳」이라는 표현은 신명기에서 반복되는 예배 장소에 관한 가르침과 연결됩니다(신명기 12:5, 11). 하지만 여호수아 9장은 그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봉사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오늘까지」라는 표현은 본문이 기록된 시점까지 그들의 봉사가 계속되었다는 뜻이지, 오늘날까지 실제로 같은 신분과 노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겨진 질문 — 진실과 약속 사이에서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은 분노하거나 약속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9장에서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맹세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결정을 잘못했을 때에도 그 결과로 발생한 책임을 무조건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 장을 모든 잘못된 약속을 어떤 상황에서도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규정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들과 맺은 언약과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한 맹세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을 다시 만납니다.
처음 길갈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낡은 신발과 해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아주 먼 나라에서 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그들과 언약을 맺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더 이상 먼 나라에서 온 사절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중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위해서도 그 일을 합니다. 그들의 생명은 보존되었지만, 그들을 살려 준 언약과 자신들이 행한 속임수의 결과를 함께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왔다고 거짓말했던 사람들이, 결국 여호와야훼의 제단 곁에 오래도록 남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9장은 바로 그들의 달라진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