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6–12장 · 가나안 성읍과의 싸움

속임수로 맺은 언약도 지켜야 하는가

여호수아 9장에는 전쟁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충돌하지 않고, 성이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이스라엘은 이전 전투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어려움에 빠집니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평화를 청합니다. 그들은 먼 나라에서 왔다고 말하며, 오래 여행했다는 증거로 낡은 옷과 신, 터진 가죽 주머니와 마르고 곰팡이가 핀 빵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말을 의심하고 어디에서 왔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사흘 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거짓말에 속아 맺은 언약도 지켜야 합니까? 그 언약을 지키는 일이 하나님께 받은 다른 명령과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수아 9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정이 얼마나 복잡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잘못된 결정으로 맺어진 약속조차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남기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9장 본문 읽기 →

같은 소식을 듣고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다

여호수아 9:1–3 본문 →

이 장은 두 집단이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가나안 지역의 왕들이 이스라엘의 진격 소식을 듣습니다. 산지와 낮은 지대, 지중해 해안의 여러 왕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려고 모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려고 한뜻으로 모였습니다.여호수아 9:2 · 두루새김
기브온 주민들도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한 일을 들었습니다.여호수아 9:3 · 두루새김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대응은 정반대입니다.

여러 왕은 힘을 합쳐 싸우려고 합니다. 반면 기브온 주민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합니다. 다른 왕들이 함께 싸울 준비를 할 때,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방법을 찾습니다.

이 대조는 앞으로 펼쳐질 여호수아서의 두 방향을 미리 보여 줍니다. 가나안의 여러 왕이 군사적으로 저항하는 이야기는 10장과 11장에서 계속됩니다. 반면 기브온의 선택은 전쟁 없이 이스라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특별한 사례가 됩니다. 실제로 여호수아 11:19은 기브온 주민들을 제외하고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룬 성이 없었다고 돌아봅니다.

여호수아서에는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다른 선택을 한 가나안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여리고의 라합입니다. 라합도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와 요단강 동쪽에서 하신 일을 들었다고 말합니다(여호수아 2:9–11).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주며 자기 가족의 목숨을 지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 역시 여호와야훼의 일을 듣고 살 길을 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감춥니다. 두 이야기에는 두려움과 생존이라는 공통된 문제가 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릅니다. 라합의 이야기에서는 정탐꾼을 보호한 행동이 중심이고, 기브온 이야기에서는 자기들이 누구인지 속여 언약을 맺은 행동이 중심입니다.

먼 나라에서 왔다는 거짓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호수아 9:4–8 본문 →

기브온 주민들이 준비한 물건들은 이상할 만큼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그들도 꾀를 썼습니다. 사절로 꾸미고 길을 나서며, 나귀에 실을 낡은 자루들과 포도주를 담는 낡은 가죽 주머니들을 챙겼습니다. 가죽 주머니들은 터진 곳을 묶어 놓은 것들이었습니다.여호수아 9:4 · 두루새김

낡아서 기운 신과 낡은 옷도 준비하고, 빵도 말라 곰팡이가 핀 상태였습니다. 이것들은 단순한 여행용품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도록 꾸며진 증거입니다.

오랫동안 걸어왔으니 신이 낡았습니다. 먼 길을 지나왔으니 옷이 낡았습니다. 가죽 주머니가 터지고 빵이 말라 곰팡이가 핀 것도 오랜 여행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속임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낡은 물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길갈에 머무는 여호수아를 찾아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저희와 언약을 맺어 주십시오.」여호수아 9:6 · 두루새김

왜 굳이 먼 나라에서 왔다고 해야 했을까요?

모세의 가르침은 멀리 떨어진 성과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 안의 성을 구별합니다. 먼 성에는 평화를 제안할 수 있고, 상대가 받아들이면 강제로 일을 시키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둘 수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에 속한 민족들의 성에는 모두 없애라는 별도의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신명기 7:2도 그 민족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이 정말 먼 나라에서 왔다면, 이스라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없애야 할 주민들과 다르게 다룰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그 땅의 주민이라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 차이를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처음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히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우리가 들어온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여러분과 언약을 맺겠어요?」여호수아 9:7 · 두루새김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은 그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는 여호수아님의 종입니다.」 여호수아가 물었습니다. 「너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여호수아 9:8 · 두루새김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 이름도, 정확한 위치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왜 왔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종이라고 부르면서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정작 확인해야 할 사실은 계속 숨깁니다.

이스라엘은 올바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어지는 여행 준비를 나타내는 동사는 읽기 전통과 해석에 따라 여행 양식을 챙겼다는 뜻으로도, 사절 행세를 했다는 뜻으로도 이해됩니다. 두루새김은 「사절로 꾸미고 길을 나서며」로 옮겼습니다. 어느 쪽이든 뒤에 나오는 물품들이 그들의 계획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어떤 소식을 말하고 어떤 소식을 감추었는가

여호수아 9:9–13 본문 →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듣고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수아님의 종인 저희는 여호수아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듣고 아주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분의 소문과 그분께서 이집트에서 하신 모든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9:9 · 두루새김

그들은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과 요단강 동쪽의 두 왕, 시혼과 옥이 패배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3절에 따르면 기브온 주민들이 실제로 들었던 소식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앞에서 말할 때는 여리고와 아이에 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생략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속임수와 연결하여 읽으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여리고와 아이의 최근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자신들이 실제로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의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들만 언급하면 먼 나라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이런 계산을 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그들이 선택해 말하는 내용 사이의 차이가 이들의 주장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에서 하신 일은 사실입니다. 시혼과 옥이 패배한 것도 사실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확인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먼 나라에서 왔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꾸며 낸 것이 아닙니다. 참된 사실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배열하여 거짓된 결론을 믿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이 그들의 말을 검토해도 일부 내용은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 사실이 맞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전체 이야기를 믿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12–13절에서는 낡은 물건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빵을 집에서 가져올 때는 뜨거웠고, 포도주를 담은 가죽 주머니도 처음에는 새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옷과 신이 낡은 것은 너무 먼 길을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빵이 마르고 곰팡이가 피었으며 옷과 신이 낡았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확인되는 상태입니다. 반면 그 물건들이 출발할 때 새것이었다거나 빵이 뜨거웠다는 것은 기브온 사람들이 하는 주장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눈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기브온 사람들의 설명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 차이가 다음 절의 실패를 준비합니다.

그들은 양식을 살펴보았지만 여호와야훼께 묻지 않았다

여호수아 9:14–15 본문 →

이 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장은 14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가져온 먹을 것 가운데 일부를 받았지만, 여호와야훼의 뜻을 묻지는 않았습니다.여호수아 9:14 · 두루새김

여기서 이야기는 기브온 사람들의 행동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이스라엘은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들었습니다. 낡은 물건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의심하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내리려는 결정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맞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에는 이미 모세를 통해 주어진 명령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언약을 맺을 수 있는지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선 정복 이야기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고 구체적인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은 기브온 사람들의 입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입에서 반복될 뿐, 여호와야훼께서 새로운 지시를 내리시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15절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기로 하고 그들을 살려 두겠다는 언약을 맺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도 맹세합니다. 여기서 「언약」은 히브리어 브리트(⁨בְּרִית⁩), 곧 서로에게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관계로 묶는 약속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상대방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의 히브리어에는 「여호와야훼의 입」을 뜻하는 피 여호와야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여호와야훼의 입에 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권위와 뜻을 가리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여호와야훼의 뜻을 묻지는 않았습니다」로 풀어 옮겼습니다. 두루새김의 14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을 것 가운데 일부를 받았지만」이라고 말합니다. 원문의 표현만으로는 그것을 직접 먹었는지, 검사했는지, 받아들였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문맥에서 그들이 기브온 사람들이 내놓은 물건들을 근거로 판단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흘 만에 드러난 거짓말, 그러나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호수아 9:16–21 본문 →

언약을 맺은 지 사흘 만에 진실이 밝혀집니다.

언약을 맺고 사흘이 지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가까운 곳, 바로 자신들이 들어온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여호수아 9:16 · 두루새김

처음에는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기브온 주민들의 정체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소식은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 사람들의 성들로 이동합니다. 그 성들은 기브온과 크피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었습니다. 이 네 성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기브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이 진격해 들어온 바로 그 지역에 여러 성을 두고 사는 주민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고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온 백성은 지도자들에게 불평했습니다.여호수아 9:18 · 두루새김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의 뜻을 묻지 않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야훼를 두고 맹세했기 때문에 그 언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도자들이 속임수에 넘어간 결과,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땅의 주민들이 보호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도자가 온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고 그들에게 맹세했다. 그러니 이제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없다.」여호수아 9:19 · 두루새김

여기에는 두 가지 책임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가나안 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신명기 7:2). 둘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를 두고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 두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모세의 가르침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거짓되게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하고(레위기 19:12), 여호와야훼께 맹세한 것을 가볍게 어기지 말라고 가르칩니다(신명기 23:21–23).

그들은 맹세를 어기면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닥칠 것을 염려하여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 두기로 합니다(9:20). 지도자들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결정으로 자신들이 떠맡은 책임까지 마음대로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이미 약속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또 다른 잘못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으로 기브온 주민들은 일부러 거짓말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은 제대로 된 정보와 정직한 관계 위에서 맺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를 두고 그들의 목숨을 지켜 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여호수아 9장은 이 두 입장을 추상적인 법률 논쟁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이때 여호와야훼의 분노를 염려한다는 것은 지도자들의 판단으로 제시됩니다.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나타나 그들의 결정을 승인하시는 장면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의 모든 판단이 옳았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21:1–2에서는 훗날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일이 언급됩니다. 다윗 시대에 기근이 계속되자 여호와야훼께서 사울 집안의 피 흘린 죄를 지적하시는데, 그 이유가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본문은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맹세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즉, 사무엘하의 이야기에서는 오래전에 맺은 그 맹세를 이스라엘이 여전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다룹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두려움이 드러나다

여호수아 9:22–25 본문 →

언약을 유지하기로 한 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거짓말을 따져 묻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누구인지 숨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명하거나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수아님의 종인 저희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여호수아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분의 종 모세에게 이 땅 전체를 여러분에게 주고 그 땅의 모든 주민을 여러분 앞에서 없애라고 명령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저희는 여러분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몹시 두려워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여호수아 9:24 · 두루새김

따라서 그들의 두려움은 전쟁터에서의 죽음뿐 아니라, 자기들이 살아남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속임수였지만, 그 속임수를 낳은 배경에는 실제로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의 거짓말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단순히 재미있는 속임수로 적을 속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살 길을 찾으려는 주민들로 보게 합니다.

「이제 저희는 여호수아님 손안에 있습니다. 좋고 옳다고 여기시는 대로 저희를 대하십시오.」여호수아 9:25 · 두루새김

처음에 그들은 「저희는 여호수아님의 종입니다」라고 말했었습니다(9:8). 그때 그 표현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약을 얻어 내기 위한 외교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실제로 여호수아가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통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감추고, 이스라엘이 믿어야 할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서 2장의 라합과 비교하면 기브온 주민들도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인정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 살아남으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9장은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을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이 제공하는 증거를 넘어섭니다. 반대로 살아남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로 그들이 여호와야훼에 대해 알고 있던 것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신지에 관한 소식을 들었고, 그 소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응답에는 두려움과 속임수가 함께 있었습니다.

저주받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여호수아 9:26–27 본문 →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들에게 저주를 선언합니다.

「이제 너희는 저주를 받았다. 너희 가운데는 언제나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 오는 종들이 있을 것이다.」여호수아 9:23 · 두루새김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 오는 일은 공동체와 예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일을 그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나 일시적인 봉사로 맡기지 않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계속 하도록 정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종이 그들 가운데서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루새김은 「너희 가운데는 언제나」 그런 종들이 있을 것이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이것은 한 번 노동하고 끝나는 처벌이 아니라, 그 집단이 계속 다른 이들의 지배 아래 살아야 하는 처지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결말을 평등한 화해나 공동체가 그들을 완전히 받아들인 일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목숨은 지켜졌지만, 자유는 제한되었습니다.

이것은 축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말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기브온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서 구해 주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여호수아 9:26 · 두루새김

이 말은 여호수아를 예상하지 못한 위치에 세웁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속임수 때문에 꾸짖고 저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이 그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잘못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이유로 이미 맹세한 생명의 약속을 깨뜨리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았고, 백성의 불평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부담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직접 자비를 선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존은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이 내린 결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 사건 전체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특별한 구원의 방식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단 곁에 남게 된 기브온 사람들

그날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에서 온 백성과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 오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들은 오늘까지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여호수아 9:27 · 두루새김

이 장의 앞부분에서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거짓말에 설득력을 더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이라는 표현은 신명기에서 반복되는 예배 장소에 관한 가르침과 연결됩니다(신명기 12:5, 11). 하지만 여호수아 9장은 그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봉사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오늘까지」라는 표현은 본문이 기록된 시점까지 그들의 봉사가 계속되었다는 뜻이지, 오늘날까지 실제로 같은 신분과 노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겨진 질문 — 진실과 약속 사이에서

여호수아 9:1–27 본문 →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상황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그렇지만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결정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은 분노하거나 약속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9장에서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맹세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을 모든 잘못된 약속을 어떤 상황에서도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규정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들과 맺은 언약과 여호와야훼를 두고 한 맹세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을 다시 만납니다.

처음 길갈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아주 먼 나라에서 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그들과 언약을 맺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더 이상 먼 나라에서 온 사절이 아닙니다.

그들은 온 백성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 옵니다.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위해서도 그 일을 합니다. 그들의 목숨은 지켜졌지만, 그들을 살려 준 언약과 자신들이 행한 속임수의 결과를 함께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왔다고 거짓말했던 사람들이, 결국 여호와야훼의 제단 곁에 오래도록 남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9장은 바로 그들의 달라진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