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6–12장 · 가나안 성읍과의 싸움

무너진 성벽 뒤에 감추어진 것

여호수아 7장은 승리의 여운을 단 한 문장으로 뒤집습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77장 본문 읽기 →

여리고에서는 성벽이 무너졌지만, 아이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무너진다

여호수아 7:1–5 본문 →

이스라엘 자손이 온전히 바친 것을 두고 신의를 저버렸다. 유다 지파에 속한 제라흐의 아들 잡디의 아들 가르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것 가운데서 가져갔다.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타올랐다.여호수아 7:1 · 본디새김

그런데 첫 문장은 아간이 죄를 지었다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물건을 가져갔는데, 서술자는 이스라엘 전체가 신의를 저버렸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저지른 일을 왜 온 백성의 문제로 말합니까?

더욱이 이스라엘은 아직 그 사실을 모릅니다. 여호수아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독자는 첫 절에서 이미 범인의 이름과 사건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이 장의 긴장은 단순히 누가 물건을 훔쳤는지를 밝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미 밝혀진 죄가 어떻게 이스라엘 전체의 위기로 나타나고, 하나님이 그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시는지를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신의를 저버린 행동

여리고에서 하나님은 성 전체와 그 안의 물건들을 특별하게 처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죽임을 당하고, 성은 불태워지며, 은과 금과 금속 기물은 여호와야훼의 보물 창고에 들어가야 했습니다(여호수아 6:17–19, 21, 24).

그런데 아간은 그 가운데 일부를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잘못은 단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된 물건을 자기 것처럼 취한 것입니다.

여리고에서 승리한 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으로 그 성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아간은 그 명령을 어기고 공동체가 지켜야 할 약속을 깨뜨렸습니다.

여기서부터 한 사람의 은밀한 행동과 공동체 전체의 운명이 연결됩니다.

작은 성읍을 향한 자신감

이야기는 곧바로 다음 전투로 이동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에서 아이로 정탐꾼들을 보냅니다. 아이는 벧엘 동쪽에 있는 성읍으로 소개됩니다. 여리고에서 아이로 향하는 것은 요단 저지대에서 서쪽 산지 쪽으로 올라가는 이동입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돌아와 말했다. 「온 백성이 올라가게 하지 마십시오. 이천 명쯤이나 삼천 명쯤 올라가 아이를 치게 하십시오. 온 백성을 그리로 가게 해서 지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수가 적습니다.」여호수아 7:3 · 본디새김

그들은 아이가 여리고보다 상대하기 쉬운 성읍이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여호수아는 약 삼천 명을 보냅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입니다.

여리고에서는 성벽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이에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적을 피해 달아납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녹아내린다

아이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서 서른여섯 명쯤을 쳐 죽였다. 그들은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쫓아 내리막길에서 쳤다. 백성의 마음은 녹아 물이 되었다.여호수아 7:5 · 본디새김

앞서 라합은 가나안 주민들의 마음이 이스라엘 때문에 녹아내렸다고 말했습니다(여호수아 2:9, 11). 요단강을 건넌 뒤에도 아모리 왕들과 가나안 왕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5:1).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여기에 7:5는 ‘물이 되었다’는 표현까지 덧붙입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던 적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제 이스라엘 자신에게 일어납니다.

두려움의 방향이 뒤바뀐 것입니다.

이 장은 그 이유를 군사력의 변화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찾습니다. 문제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지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언약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정탐꾼들의 자신감이 패배의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지나치게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패배하게 하셨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리고에서의 승리가 다음 전투를 쉽게 판단하게 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해석자의 추론입니다. 이 구별을 놓치면 여호수아 7장을 ‘방심하면 실패한다’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축소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패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걱정한다

여호수아 7:6–9 본문 →

패배 소식을 들은 여호수아는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야훼의 궤 앞에 엎드리고, 저녁까지 그 자리에 머뭅니다. 그들은 머리에 흙먼지를 얹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옷을 찢고 머리에 흙먼지를 얹는 행동은 깊은 슬픔과 충격, 애통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기도는 매우 격렬합니다.

여호수아가 말했다. 「아, 주 여호와야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기어이 요단을 건너게 하셨습니까? 저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신 것입니까? 저희가 요단 건너편에 머물기로 하고 그대로 살았더라면 좋았겠습니다.」여호수아 7:7 · 본디새김

하나님은 요단강을 말리셔서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그 일을 후회하는 듯한 말을 합니다.

그의 말에는 두려움과 혼란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포기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께 따지는 기도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호수아의 기도가 향하는 곳

처음에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패배와 멸망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관심은 더 넓어집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이 듣고 저희를 에워싸서 저희 이름을 땅에서 끊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큰 이름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여호수아 7:9 · 본디새김

이 구절에는 두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면 그들의 이름이 땅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나님의 이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묻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민족이 자신의 강한 손을 알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요단강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여호수아 4:24). 그런데 이스라엘이 작은 성읍 앞에서 패배하고 결국 멸망한다면, 그 소식을 듣는 민족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논리는 모세의 중보기도에서도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32:11–12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하시면 이집트 사람들이 그분의 구원 의도를 의심할 것이라고 간구했습니다. 민수기 14:13–16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면 여러 민족이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능력이 없으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를 알고 하나님께 중보했던 장면들과 달리, 여호수아는 아직 자신들이 왜 패배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적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위험을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바라보고 있는 위험과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위험이 서로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탄식은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에서 들렸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민수기 14:2–3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주민들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 땅으로 데려가셔서 칼에 죽게 하려 하시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을 완전히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 14장에서 백성은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하신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서 여호수아는 이미 하나님을 따라 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패배를 경험한 뒤 언약궤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패배하게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고 답하신다

여호수아 7:10–13 본문 →

여호수아가 저녁까지 엎드려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너는 이렇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느냐?」여호수아 7:10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이제 그가 엎드린 자리에 계속 머무르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 또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내 언약을 어겼다. 또 온전히 바친 것 가운데서 가져갔다. 또 훔쳤다. 또 속였다. 또 자기들의 물건들 사이에 넣어 두었다.」여호수아 7:11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여러 잘못을 나열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한 가지 행동이 지닌 여러 측면을 차례로 드러내는 고발입니다.

‘자기들의 물건들 사이에 넣어 두었다’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된 것을 자기 물건처럼 취급했다는 뜻입니다. 그가 가져간 물건이 얼마나 비쌌는가보다, 본래 누구에게 속하도록 정해져 있었는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든다는 것

여리고는 일반적인 전리품으로 분배될 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를 넘겨주셨지만, 이스라엘이 그 결과를 자기 마음대로 소유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간은 그 경계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 전체를 주어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고대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사고방식이 나타납니다. 언약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사적인 계약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고, 그 공동체의 삶은 언약 아래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하나님께 구별된 물건을 부당하게 취하는 일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서술됩니다. 다만 이것을 모든 구성원이 아간의 행동에 동의하거나 공모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첫 절은 범인이 아간이라고 명시합니다. 본문은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가 훔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과 그 죄의 결과를 함께 겪는 사람은 이 장에서 일치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의 패배로 이어지는가?

하나님은 패배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자기 원수들 앞에 맞설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원수들 앞에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이 온전히 바칠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온전히 바친 것을 없애 버리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너희와 함께하지 않겠다.」여호수아 7:12 · 본디새김

여기에는 여호수아 6:18의 경고가 그대로 연결됩니다. 당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온전히 바쳐진 것을 가져가면 이스라엘 진영까지 온전히 바칠 대상이 되고 재앙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그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서 초반에 하나님은 반복해서 자신이 여호수아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자신이 함께하지 않으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 없애 버리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은 그분의 명령을 무시한 채 무엇을 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이제는 엎드려 있을 때가 아니라 일어날 때다

「일어나 백성을 성별하고 이렇게 말하여라. 『내일을 위해 자신을 성별하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가운데 온전히 바친 것이 있다. 너희 가운데서 온전히 바친 것을 치워 버릴 때까지 너는 네 원수들 앞에 맞설 수 없다.』」여호수아 7:13 · 본디새김

여기서 10절의 ‘일어나라’가 반복됩니다. 여호수아는 더 이상 패배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제 그는 백성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앞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3:5). 그때는 하나님이 행하실 놀라운 일을 앞두고 자신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공동체 안에 있는 죄를 밝히고 제거하기 위한 절차를 앞두고 성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문제의 원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범인을 직접 지목하고 즉시 처벌하라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모아 단계적으로 한 사람을 가려내도록 명령하십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할 것

여호수아 7장에서 패배의 원인이 아간의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그 사실을 직접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공동체에 불행이나 실패가 일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그 안에 누군가의 감추어진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어떤 사람이 고난을 겪으면 반드시 죄를 저질렀다는 공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각 사람의 죄책을 구별하지 않거나, 죄가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처벌을 가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실제로 잘못한 사람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동시에 그 잘못이 미친 영향이 얼마나 넓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감추어진 한 사람을 찾아내다

여호수아 7:14–19 본문 →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낼 절차를 알려 주십니다.

먼저 이스라엘 전체가 지파별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다음 한 지파가 가려지고, 그 지파 안에서 씨족이 가려지며, 다시 집안이 가려집니다. 마지막에는 개별 남자들이 나아오게 됩니다.

독자는 이미 이름을 알고 있다

16절에서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을 모읍니다.

유다 지파가 가려집니다.

제라흐 씨족이 가려집니다.

잡디가 가려집니다.

마침내 아간이 가려집니다.

그가 잡디의 집안을 남자별로 가까이 나오게 하자, 유다 지파에 속한 제라흐의 아들 잡디의 아들 가르미의 아들 아간이 가려졌다.여호수아 7:18 · 본디새김

1절에서는 독자에게만 알려져 있던 정보가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 앞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계보는 아간을 고립된 개인으로만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지파와 씨족과 집안이 있습니다.

서술자는 이스라엘이 신의를 저버렸다고 말했지만, 그 일을 실제로 행한 사람의 이름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그 결과를 겪는 것과, 구체적인 행동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이 장은 그 둘을 동시에 다룹니다.

‘내 아들아’라는 부름

아간이 가려지자 여호수아는 그에게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말했다. 「내 아들아, 부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께 찬양을 드려라. 부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내게 말하여라. 내게 숨기지 마라.」여호수아 7:19 · 본디새김

이 호칭은 연장자가 젊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친근하거나 부드러운 부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호수아가 아간을 용서하기로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은 분명한 사실 고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뒤에 나타날 물건의 발견과 함께 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을 좋게 보이게 만드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었던 사실을 더 이상 감추지 않는 것입니다.

라합은 성 밖으로 나왔고, 아간은 공동체 안에서 드러났다

라합은 원래 이스라엘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여리고의 주민이었고, 성매매 여성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을 인정하고 정탐꾼들을 보호했으며, 그들과 맺은 맹세를 통해 구출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여호수아 6:25).

반면 아간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계보는 유다 지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그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가려져 처벌을 받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삶 전체를 평가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조되는 것은 본문이 보여 주는 구체적인 반응입니다. 이 대조는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외적인 지위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일이 언제나 자동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절차를 제비뽑기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에는 제비를 사용하여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가려내는 장면들이 실제로 있습니다(사무엘상 14:41–42). 그러나 여호수아 7:14–18은 어떤 도구로 가려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선별의 방법보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지목하신 사람을 찾아간다는 사실입니다. 19절에서 ‘찬양’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토다(⁨תּוֹדָה⁩)입니다. 이 말은 감사나 찬양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문맥에 따라 어떤 사실을 인정하거나 고백하는 행위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찬송을 부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사실대로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보았다, 탐냈다, 가져갔다, 숨겼다

여호수아 7:20–23 본문 →

아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제가 전리품 가운데서 시날의 좋은 겉옷 한 벌과 은 이백 셰켈과 무게가 오십 셰켈인 혀 모양의 금덩이 하나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탐내어 가져갔습니다. 보십시오. 그것들은 제 천막 안 땅속에 숨겨져 있고, 은은 겉옷 아래에 있습니다.」여호수아 7:21 · 본디새김

이 고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의 가치보다 행동의 순서입니다.

아간은 보았습니다.

탐냈습니다.

가져갔습니다.

숨겼습니다.

보고 탐낸다는 것

그는 하나님께 구별되어 자기 소유로 취해서는 안 되는 물건들을 탐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져갔습니다. 아간의 고백은 인간의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때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는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보물은 어디에 있었는가?

아간은 가져간 물건들을 자기 천막 안 땅속에 숨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된 물건이 이제 아간의 사적인 생활 공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가 겉옷과 은과 금을 숨겼다는 사실은 단순한 보관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은 아간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는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은과 금을 자기 재산이라고 내세울 수도 없습니다. 귀한 겉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닐 수도 없습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가져왔지만, 자기 것이라고 드러낼 수 없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가 손에 넣은 것은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을 증명하는 숨겨진 물건이었습니다.

천막 안의 비밀이 온 이스라엘 앞에 드러나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을 아간의 천막으로 보냅니다.

그들은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간이 말한 대로 물건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천막 안에서 가져다가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져왔고, 여호와야훼 앞에 쏟아 놓았다.여호수아 7:23 · 본디새김

아간의 행동은 은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일의 결과는 공동체 전체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공동체가 겪은 재앙의 원인도 공동체 앞에서 밝혀집니다.

아간이 단지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그가 지목한 장소에서 물건들이 발견되는 과정이 기록됩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 안에서 진행되는 신적 판별과 고백, 물증의 확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던 처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처벌의 대상에는 아간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소유물까지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시날’은 창세기 11:2에도 등장하는 지역 이름으로, 바빌로니아 지역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 옷이 실제로 어디에서 제작되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여리고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셰켈은 무게 단위입니다. 당시의 무게 체계와 현대 단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오늘날의 금전적 가치로 단순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창세기 3:6과의 연결이 눈에 띕니다. 그곳에서 여자는 나무의 열매가 먹기에 좋고 보기에 탐스러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낼 만하다고 보고, 열매를 가져다가 먹습니다. 두 본문은 모두 보는 일과 바라는 일, 그리고 취하는 행동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탐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어근도 같습니다.

아코르 골짜기 — 한 사람의 죄와 가족의 운명

여호수아 7:24–25 본문 →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에게 속한 것들을 아코르 골짜기로 데려갑니다.

여호수아가 제라흐의 후손 아간과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그의 소와 나귀와 양 떼를 데려가고, 은과 겉옷과 혀 모양의 금덩이와 그의 천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가져갔다. 온 이스라엘이 그와 함께했다. 그들은 그 사람들과 가축을 데리고 물건들을 가지고 아코르 골짜기로 올라갔다.여호수아 7:24 · 본디새김

그는 좋은 겉옷과 은과 금을 탐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원했던 물건들뿐 아니라, 원래부터 그에게 속해 있던 것들까지 모두 골짜기로 옮겨집니다.

그가 남몰래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일이 결국 그가 가진 모든 것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든 것입니다.

아간의 아들들과 딸들도 죽임을 당했는가?

여호수아가 말했다. 「어찌하여 네가 우리에게 재앙을 끼쳤느냐?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너에게 재앙을 끼치실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불로 태우고 그들에게 돌을 던졌다.여호수아 7:25 · 본디새김

한 가지 읽기는 아간과 그의 가족, 가축과 소유물 전체가 처벌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아간 자신이 돌에 맞아 죽었고, 뒤의 복수형은 가축과 물건들을 포함한 그의 소유물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아간의 가족이 골짜기로 함께 데려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이 아간의 잘못에 공모했는지, 훔친 물건을 숨기는 일을 도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그들이 물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전혀 몰랐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공동체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신명기 24:16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는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녀를 죽이거나, 자녀의 죄 때문에 아버지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에스겔 18:20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7장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죄 때문에 그 자녀까지 죽이는 일이 일반적으로 정당하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여호수아 7:24–25의 어려운 표현을 신명기 24:16과 반드시 일치하도록 억지로 고쳐 읽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과 우리가 다른 본문을 통해 확인하는 정의의 원칙을 각각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아이 전투에서 약 서른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아간의 물건을 훔치는 데 가담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행동 때문에도 다른 사람의 행동이 만들어 낸 피해를 겪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은 그런 일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다고 서술합니다. 그러나 그 피해가 어떻게 모두 정의로운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까지 논증하지는 않습니다.

아간의 고백은 그를 구원했는가?

본문은 그의 고백을 용서받기 위한 간구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간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인정하고, 무엇을 훔쳤으며 어디에 숨겼는지 말합니다. 그러나 용서를 요청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죄를 용서하셨다거나 여호수아가 형을 감해 주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고백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고백을 통해 이미 용서받았으므로 처벌이 부당했다고 본문이 말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고백의 심리적 진정성보다 감추어진 일이 공개적으로 확인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처리 절차가 수행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모든 죄는 고백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보편적인 원칙으로 바꾸는 것 역시 본문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그의 고백 이후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하나님과의 최종적인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재앙을 끼치다’와 아코르라는 이름

그러므로 이 장소의 이름은 아간이 이스라엘에게 끼친 재앙과 그에게 임한 재앙을 기억하게 합니다. 한 사람이 공동체에 재앙을 끼쳤고, 이제 그 사람에게 재앙이 임했다는 이야기의 핵심을 장소의 이름에 새깁니다.

조금 더 깊이

먼저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쳤다고 말합니다. 목적어가 남성 단수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불태우는 행동과 다시 돌로 치는 행동에서는 ‘그들을’이라는 복수형이 사용됩니다. 가족까지 처벌의 대상이었다는 읽기는 24절에서 아간의 아들들과 딸들이 명시적으로 골짜기로 데려가졌고, 25절에서 복수형으로 불태우고 돌로 쳤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소유물을 가리킨다는 해석은 ‘그를’이라는 단수형이 명시되어 있고, 마지막 26절에서도 ‘그의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다고 단수로 돌아간다는 점을 근거로 합니다. 칠십인역의 여호수아 7:25에는 이스라엘이 아간 ‘그를’ 돌로 쳤다는 말이 있지만, 현재의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에 있는 뒤쪽의 불태우고 다시 돌로 쳤다는 복수형 문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간의 가족이 실제로 함께 죽임을 당했는지는 본문 전승과 대명사의 해석이 갈리는 지점입니다. 호세아 2:15에서 하나님은 아코르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응답하게 되는 회복의 문맥 속에서 아코르 골짜기가 등장합니다. 다만 호세아의 말씀을 여호수아 7장에 그대로 되돌려 넣어, 아간 자신이 어떤 회복을 경험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호세아는 이미 알려진 재앙의 장소를 후대의 회복 약속 안에서 새롭게 사용합니다.

돌무더기 아래 감추어진 일은 더 이상 감추어져 있지 않다

여호수아 7:1–26 본문 →

이야기는 아간 위에 큰 돌무더기가 세워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들은 그의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그 돌무더기는 오늘까지 남아 있다. 여호와야훼는 타오르던 분노에서 돌아섰다. 그 때문에 그곳의 이름을 아코르 골짜기라고 불렀고, 오늘까지 그렇게 부른다.여호수아 7:26 · 본디새김

그것은 한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 한 사람의 비밀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가 가져간 물건은 그의 천막에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한 재앙은 온 이스라엘에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그쳤다는 사실과 공동체가 치른 대가는 모두 이야기 안에 남아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은 이스라엘이 다시 승리하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 성은 아직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패배한 군대가 다시 정비되어 공격에 나서는 모습도 나오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다시 기뻐하는 장면조차 없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 장소는 아코르 골짜기입니다.

그곳에는 큰 돌무더기가 쌓여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아간의 천막 안 땅속에 숨겨져 있던 물건들이 온 이스라엘 앞에 드러났고, 이제 그 사건의 결과가 골짜기의 돌무더기로 남습니다.

그 아래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무더기를 지나며 이스라엘은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들을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그 승리 속에서 자신의 말씀을 저버린 일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