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삼손과 블레셋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다

사사기 13장에는 이상한 침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마흔 해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저 움직이십니다.

그분의 사자는 군사 지도자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한 여자에게 찾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관해 말합니다.

사사기 13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이름 있는 남편이 아니라 이름 없는 아내입니다.

이 여자는 단순히 장차 유명해질 삼손을 낳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장 먼저 듣고, 그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끝까지 붙드는 인물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시작을 읽어야 합니다. 그의 힘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의 행동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구별된 삶에 대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13장 본문 읽기 →

마흔 해의 압제, 그러나 부르짖음은 없다

사사기 13:1 본문 →

이야기는 사사기의 익숙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마흔 해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었다.사사기 13: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기본적인 흐름은 이전과 같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마흔 해 동안 지배했습니다. 이는 사사기에서 한 차례의 외적 압제를 설명하는 기간으로는 매우 깁니다.

그들은 고통받고 있지만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제로 아무도 기도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모든 종교적 행동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백성의 부르짖음이 구원자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계기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나타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 남서부의 해안 평야에 여러 도시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가드가 중요한 블레셋 도시들로 등장합니다(여호수아 13:3).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초르아와 에슈타올은 단 지파의 영토와 관련된 지역으로, 블레셋 세력과 이스라엘 산지 사이의 경계 지대에 가까웠습니다(여호수아 19:41). 따라서 삼손의 이야기는 어느 먼 곳에서 침략군이 한 차례 몰려왔다가 돌아가는 상황보다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지속해서 맞닿아 살아가는 지역적 현실 속에서 펼쳐집니다. 이 점은 뒤에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그들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13장은 아직 그런 사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의 압제를 끝내기 위해 먼저 군대를 모으지 않으십니다.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름 없는 여자에게 먼저 주어진 약속

사사기 13:2–5 본문 →

초르아에 마노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초르아 출신으로 단 사람의 씨족에 속한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으며, 아이를 낳은 적이 없었다.사사기 13:2 · 본디새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 표현으로 강조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출생이 인간의 평범한 기대를 넘어서는 사건임을 준비합니다.

사라는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이삭을 낳았고(창세기 18:10–14; 21:1–3), 리브가도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창세기 25:21–26). 라헬 역시 아이를 낳지 못하던 상황에서 요셉을 낳았습니다(창세기 30:22–24). 이 이야기들에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여자에게 어떤 특별한 죄가 있다는 증거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마노아의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그녀가 무엇을 잘못해서 아이를 낳지 못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상태를 하나님의 벌이라고 해석할 근거도 없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 말했다. 「보아라, 너는 아이를 낳지 못하며 아이를 낳은 적이 없지만,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사사기 13:3 · 본디새김

이 아이의 출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진 사건입니다.

「그러니 이제 부디 조심하여라.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아라.」사사기 13:4 · 본디새김
「보아라, 너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다.」사사기 13:5 · 본디새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민수기 6:1–21에는 나실인에 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규정의 대표적인 특징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삼가는 일, 서원 기간에 머리털을 자르지 않는 일, 시체에 가까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나실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되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머리털을 자르지 않는 것도 그런 구별의 표지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나실인 서원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민수기 6장의 규정은 사람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는 경우를 다룹니다. 반면 삼손은 스스로 서원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나실인으로 정해집니다.

삼손이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구별하셨습니다.

그가 성장한 뒤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는지는 이미 선언되었습니다.

여자는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않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태어날 아이의 구별된 삶이 어머니의 임신 기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어머니 자신에게 삼손과 똑같은 모든 나실인 규정이 적용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에게 머리털을 자르지 말라는 지시는 나오지 않으며, 사자가 반복해서 명령하는 것은 그녀가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사항입니다. 또한 삼손에 대한 13장의 명령이 민수기 6장의 모든 나실인 규정을 하나씩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히 강조된 것은 머리털에 면도칼을 대지 않는 일입니다.

「구원할 것이다」가 아니라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맡은 일은 실제적인 구원의 시작이지만, 반드시 그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완성되는 구원은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앞으로 삼손의 이야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의 충돌이 계속되지만,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단서가 됩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특별한 힘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하도록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의 힘과 행동은 앞으로 이 목적에 비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13:3의 히브리어 문장은 임신을 장차 일어날 일로 예고하는 것으로도, 이미 임신한 상태를 알리는 것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본문이 강조하는 핵심은 같습니다. 이 아이의 출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진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은 사람은 누구인가?

사사기 13:6–14 본문 →

여자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뒤 남편에게 돌아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와서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왔어요. 그는 하나님의 사자처럼 보였고 몹시 두려운 모습이었어요. 나는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았고, 그도 내게 자기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어요.」사사기 13:6 · 본디새김

서술자는 처음부터 그 방문자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였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예언자나 하나님께 속한 사명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여자는 방문자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처럼 두려웠다고 말하지만, 그의 정확한 신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사자는 아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3:5). 그런데 여자는 남편에게 전하면서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3:7).

여자가 별도로 듣지 못한 말씀을 임의로 덧붙였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 사자의 말도 아이의 나실인 신분에 종료 시점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그 약속이 평생의 구별을 뜻한다고 이해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자는 아이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는 말씀은 남편에게 전하는 기록 속에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보고에서는 아이의 군사적 사명보다 그 아이가 하나님께 구별되어 있다는 사실과 어머니에게 주어진 생활의 지시가 전면에 나옵니다.

마노아는 여호와야훼에게 간청하며 말했다. 「주님, 간청합니다. 주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이 저희에게 다시 와서, 태어날 아이에게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게 하십시오.」사사기 13:8 · 본디새김

그의 기도에는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식은 뜻밖입니다.

하나님은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여자에게 다시 왔다. 그 여자는 들에 앉아 있었고,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않았다.사사기 13:9 · 본디새김

하나님은 남편의 기도에 응답하시면서도, 처음 말씀을 맡기셨던 여자를 다시 찾아오십니다.

여자는 서둘러 남편에게 달려가 사자가 다시 나타났음을 알립니다.

이번에는 마노아가 아내의 뒤를 따라갑니다.

본문은 사회적 지위나 성별에 따라 누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정해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하신 사람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노아는 그 말씀을 들은 아내를 통해 사자를 만납니다.

아이에 대해 물었는데, 사자는 왜 어머니의 규정을 되풀이하는가?

마노아가 말했다. 「이제 하신 말씀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아이가 따를 규범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사사기 13:12 · 본디새김

이 질문은 아이의 생활 방식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묻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길러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마노아의 관심은 태어날 아이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뜻밖에도 아이의 미래에 관한 상세한 계획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말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말한 모든 것에 대해 그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사사기 13:13 · 본디새김

그리고 어머니가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고,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않으며,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을 전합니다. 마노아에게 직접 대답하면서도, 여자가 지켜야 할 일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자의 의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마노아는 아이의 미래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원했지만, 사자는 이미 주어진 말씀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알려 줍니다.

미래의 모든 일을 알아야만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노아가 원하는 모든 설명을 받지 못했더라도, 부모가 현재 해야 할 일은 이미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처음부터 여자에게 전달되어 있었습니다.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려 했는데,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다

사사기 13:15–20 본문 →

마노아는 방문자를 잠시 머물게 하여 새끼 염소를 준비하겠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중요한 환대의 행위였습니다. 마노아는 특별한 소식을 전한 방문자를 정성껏 대접하려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붙잡아 두더라도 나는 네 음식을 먹지 않겠다. 번제를 드리려거든 그것을 여호와야훼에게 바쳐라.」 마노아는 그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인 줄 모르고 있었다.사사기 13:16 · 본디새김

여기서 사자는 자신을 향한 환대와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제사를 구별합니다. 마노아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존경을 표현하려 하는지보다, 제사를 누구에게 드려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승리를 얻으면 무엇인가를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11:30–31). 그러나 이 장에서 마노아는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상태에서 제물을 준비합니다. 사자는 그 제물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며, 여호와야훼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마노아의 제물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결정을 바꾸려는 거래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제사 역시 평범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어째서 내 이름을 묻느냐?」

마노아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에게 말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면 저희가 당신을 공경하겠습니다.」사사기 13:17 · 본디새김

마노아는 이름을 통해 방문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그에게 말했다. 「어째서 내 이름을 묻느냐? 그 이름은 신묘하다.」사사기 13:18 · 본디새김

그러나 사자는 자신을 하나의 이름으로 파악할 수 있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가 행하는 일이 드러납니다.

이름이 신묘한 분이 행하시는 신묘한 일

19절은 마노아가 새끼 염소와 곡식 제물을 바위 위에서 여호와야훼께 바쳤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신묘한 일을 행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불꽃이 제단 위에서 하늘로 올라갈 때,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제단의 불꽃 속에서 올라갔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이를 지켜보다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사사기 13:20 · 본디새김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던 자리가 하나님의 신비로운 현현을 목격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사사기 6:21에서 여호와야훼의 사자는 지팡이 끝으로 고기와 무교병에 손을 대고, 바위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사르게 합니다. 그제야 기드온은 자신이 여호와야훼의 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6:22). 두 장면에서 제물과 불은 방문자의 특별한 정체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기드온은 직접 구원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장차 구원하기 시작할 아이의 출생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부부가 신비로운 광경을 목격한 뒤 무엇을 이해했는지가 이제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신묘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펠리(⁨פִּלְאִי⁩)는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대답을 「신묘」가 사자의 고유한 이름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문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는 그 이름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로운 것임을 알리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2:29에서 야곱이 자신과 씨름한 존재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그가 이름을 알려 주지 않고 오히려 야곱을 축복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름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던 존재의 신비가 그가 행하는 사건 속에서 드러납니다. 다만 19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누가 신묘한 일을 행했는지에 관해 약간의 해석 여지를 남깁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신 일로도,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행한 일로도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이 그 주체를 더 세밀하게 구별하려는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광경을 보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다

사사기 13:21–23 본문 →

사자가 불꽃 속에서 올라간 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자, 마노아는 비로소 그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였음을 깨닫습니다.

마노아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죽을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에요.」사사기 13:22 · 본디새김

마노아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과 마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전혀 다르게 대답합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다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곡식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지도 않으셨을 것이며, 지금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시지도 않으셨을 거예요.」사사기 13:23 · 본디새김

그러나 그녀는 그 경험을 하나님의 목적에 비추어 해석합니다.

아내의 판단을 이루는 세 가지 근거

그녀가 제시하는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셨다는 것,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출생을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을 이루기도 전에 부모를 죽이시려는 것이 이번 방문의 목적일 리 없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논리는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행동하신다는 신뢰에 기초합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고 죽음을 예상했지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현현과 이미 주어진 약속을 함께 기억하며 생명을 예상했습니다.

이 대조는 앞에서 마노아가 아이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요청했을 때 사자가 이미 아내에게 전한 말씀을 반복했던 장면과 연결됩니다. 마노아는 더 많은 설명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에게는 이미 주어진 말씀을 통해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은 같은가?

마노아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긴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했으며, 제물을 드렸습니다. 신비로운 광경 앞에서는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 준 두려움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내의 대답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외가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태도와 함께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신앙적인 두려움이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경외는 구약에서 중요한 덕목입니다.

이야기는 마노아의 죽음이 아니라 약속된 아이의 출생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3:20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도 환상 가운데 여호와야훼를 뵈었을 때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외칩니다(이사야 6:5). 서술자는 그 방문자를 계속 「여호와야훼의 사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마노아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뵈었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여호와야훼의 사자 이야기에서는 사자가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현존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묘사됩니다(출애굽기 3:2–6; 사사기 6:11–24). 그렇다고 이 장만을 근거로 여호와야훼의 사자의 존재 방식이나 신적 정체에 관한 모든 문제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그 존재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보다, 마노아 부부가 하나님의 거룩한 현현을 경험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있습니다.

삼손이 태어나다 — 아직 아무런 업적도 없는 구원자

사사기 13:24–25 본문 →

24절은 단순하고 조용합니다.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삼손이라고 불렀다. 그 아이가 자랐고,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복을 주었다.사사기 13:24 · 본디새김

여기서도 어머니가 중심에 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처음에 이름이 없는 여자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을 처음 듣고, 남편에게 전하고, 두 번째 방문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했으며, 마침내 약속된 아이를 낳아 이름을 부르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여호와야훼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습니다. 한나는 그 아이를 여호와야훼께 드리겠다고 서원했고, 사무엘은 이후 이스라엘의 중요한 지도자가 됩니다. 삼손의 어머니와 한나의 이야기는 모두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자가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아들을 낳는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먼저 여호와야훼께 아이를 구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아이를 구하는 기도가 기록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한나는 아들을 여호와야훼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자신이 서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이를 구별하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차이는 사사기 13장에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동이 얼마나 강조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절은 삼손의 미래를 조용히 예고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초르아와 에슈타올 사이에 있는 마하네 단에서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사사기 13:25 · 본디새김

본문은 그때 삼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싸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능력을 경험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아직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이 이제 삼손의 삶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꽃이 올라간 뒤에도 남아 있던 약속

사사기 13:1–25 본문 →

그녀는 불꽃을 보았지만, 불꽃보다 먼저 들었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이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올바르게 요청했기 때문에 비로소 시작된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스라엘의 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마흔 해의 블레셋 압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의 시작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가 전한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노아가 두려워했던 불꽃의 자리에 죽음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초르아와 에슈타올 사이, 아직 블레셋의 지배가 끝나지 않은 그 땅에서, 여호와야훼의 영이 삼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