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2장 · 다 차지하지 못한 땅
눈물 뒤에 잃어버린 기억
사사기 2장에는 두 종류의 슬픔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흘리는 눈물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책망하자, 백성은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들은 그곳을 「보김」, 곧 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고,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칩니다.
두 번째는 압제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을 섬기다가 원수들에게 짓밟히고, 고통 속에서 신음합니다. 그러면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재판관을 세워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두 장면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간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울었던 백성이 왜 다시 하나님을 버립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백성은 왜 재판관이 죽기만 하면 이전보다 더 타락합니까?
사사기 2장이 묻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 기억에 따라 살아갔느냐는 문제입니다.
길갈에서 보김으로 — 하나님은 무엇을 기억하게 하시는가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말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렸고,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려왔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영원히 깨뜨리지 않겠다.』」사사기 2:1 · 본디새김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뒤 진을 쳤던 곳입니다. 여호수아 4:19–24에서 이스라엘은 강에서 가져온 돌 열두 개를 길갈에 세웠습니다. 훗날 자녀들이 그 돌들이 무슨 뜻인지 물으면, 여호와야훼께서 요단강의 물을 마르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길갈에서는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가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킨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여호수아 5:2–12). 그러므로 길갈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출발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셨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으로 가나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그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옵니다.
보김의 정확한 위치는 이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술 안에서 두 장소가 이루는 대조는 뚜렷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불순종에 대한 책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첫 말씀은 책망이 아니라 자신의 신실함이다
여호와야훼의 사자는 곧바로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씀합니다.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리셨고,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데려오셨으며, 언약을 깨뜨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땅의 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무너뜨려라.』 그러나 너희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너희가 어찌 이런 일을 했느냐?」사사기 2:2 · 본디새김
두 문장에는 「언약」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언약에 따라 다른 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아야 했습니다.
언약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함과 이스라엘의 책임이 서로 마주합니다.
출애굽기 23:32–33과 34:12–16을 보면, 가나안 주민들과의 언약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일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합니다. 특히 제단을 무너뜨리라는 명령과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 함께 나타납니다.
따라서 사사기 2:2의 관심은 단순한 외교적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은 단순히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시는데 왜 땅을 주지 않으시는가
이어지는 말씀에는 긴장이 있습니다.
「또 내가 말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은 너희 곁에 있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사사기 2:3 · 본디새김
여기서는 언약을 지키신다는 말씀과, 언약을 어긴 백성이 어떤 결과를 겪을 것인가 하는 말씀을 구별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3:20–33에서 여호와야훼는 이미 이스라엘 앞에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동시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그들의 석상을 깨뜨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땅의 주민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사사기 2장에서 갑자기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에는 처음부터 그분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책임이 함께 있었습니다.
올무는 대상을 붙잡는 덫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단순히 종교적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얽어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앞 절에서 무너뜨려야 했던 것은 다른 신들의 제단이었습니다. 이제 그 제단들이 상징하는 종교적 질서가 이스라엘을 붙잡는 올무가 됩니다.
보김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자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들은 그곳의 이름을 보김이라고 부르고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칩니다. 사사기 2장은 보김의 눈물이 실제로 어떤 삶의 변화로 이어졌는지 설명하지 않은 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독자는 그 빈자리를 기억하며 이어지는 역사를 읽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정적으로 반응했으며, 그분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문은 그들이 다른 신들의 제단을 무너뜨렸다거나, 언약을 새롭게 지키기로 결단했다거나, 이전 행동을 구체적으로 바로잡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 눈물을 진정한 회개라고 확정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거짓된 눈물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눈물과 제사까지입니다.
모든 것을 보았던 세대 다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나다
갑자기 여호수아가 다시 등장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땅을 차지하려고 저마다 자기 상속지로 갔다.사사기 2:6 · 본디새김
그런데 사사기 1:1은 이미 여호수아가 죽은 뒤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2장에서 다시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고, 뒤이어 그의 죽음까지 기록하는 것일까요?
사사기 2:6–10은 여호수아 24:28–31의 내용을 되짚습니다. 이스라엘이 각자 상속지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되돌아가, 여호수아 시대가 끝난 뒤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가 끝나자 무엇이 사라졌는가
백성은 여호수아가 사는 동안 내내, 또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살아 있던 장로들이 사는 동안 내내 여호와야훼를 섬겼다. 그 장로들은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큰일을 모두 보았던 이들이었다.사사기 2:7 · 본디새김
그들에게 여호와야훼의 큰일은 조상들에게 들은 먼 옛날의 이야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살아온 역사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백열 살에 죽고, 그 시대의 장로들도 세상을 떠난 뒤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 세대도 모두 자기 조상들에게로 모였다. 그들 뒤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여호와야훼도,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일도 알지 못했다.사사기 2:10 · 본디새김
특히 이 문장은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했다는 말과 그분이 하신 일을 알지 못했다는 말을 나란히 놓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며, 그분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자기 삶의 토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보았던 세대가 사라지자, 그 일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세대도 사라졌습니다.
신명기 6:6–9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여호수아 4:21–24는 후손들에게 요단강을 건넌 일을 설명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세대 간에 하나님의 일을 전하는 책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2:10은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를 밝히지 않습니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았는지, 가르쳤지만 자녀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다른 사회적 변화가 있었는지는 여기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부모들의 교육 실패만으로 단정하는 것은 본문보다 앞서 나가는 해석입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을 다시 기록한 이유
본문은 여호수아를 「여호와야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2:8).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일했지만, 근본적으로 여호와야훼의 종이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왔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은 지도자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는 그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여호수아만큼 뛰어난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끄신다는 사실이 후대의 삶을 계속 규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다른 신들을 섬겼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고, 바알들을 섬겼다.사사기 2:11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이 표현은 사건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행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주변 민족들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보다 먼저 여호와야훼의 관점이 제시됩니다.
바알들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알은 본래 ‘주인’, ‘주’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며, 가나안 지역에서는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나 칭호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바알은 폭풍과 비, 풍요와 관련된 신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농경과 목축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비와 땅의 생산력은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지역 주민들의 신앙과 제의는 접촉하기 쉬운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본문은 이스라엘이 경제적 풍요를 얻으려고 바알을 섬겼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버렸다. 그들은 주위 민족들의 신들 가운데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에게 엎드려 절했고, 여호와야훼를 노하게 했다.사사기 2:12 · 본디새김
사자가 2:1에서 처음으로 상기시켰던 사실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 그분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구원하시고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을 떠나, 그 땅에서 만난 다른 신들에게 엎드려 절합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단순히 새로운 신을 추가한 일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린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원수들에게 넘겨주신다는 말
우상숭배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반응은 매우 강합니다.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올랐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기자,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사방의 원수들의 손에 팔아넘겼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자기 원수들 앞에서 버티지 못했다.사사기 2:14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는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1:2, 4).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넘겨지는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신명기 28:25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경우 원수들 앞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사사기 2:15도 그 일이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고 맹세하신 대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겪은 역사적 압제를 언약 위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오늘날 개인이나 공동체가 겪는 모든 불행을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처벌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과 여호와야훼 사이의 특정한 언약 관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손이 그들을 대적했다
그들이 나갈 때마다 여호와야훼의 손이 그들을 대적하여 해를 끼쳤다. 여호와야훼가 말한 대로, 여호와야훼가 그들에게 맹세한 대로였다. 그들은 몹시 곤경에 처했다.사사기 2:15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여호와야훼의 손에 의해 보호받고 인도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3:3에서 출애굽은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제 같은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대적합니다.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이 여호와야훼보다 강해서 원수들에게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들과 대적하는 위치에 서셨기 때문에 원수들 앞에서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은 바로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뜻밖의 행동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왜 반복해서 재판관을 세우시는가
여호와야훼가 재판관들을 세웠고, 그 재판관들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해 냈다.사사기 2:16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설명이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재판관을 세우셨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재판관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앞으로 등장하는 재판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합니다. 군사적 지도자로 싸우기도 하고, 백성을 다스리거나 분쟁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의 재판관들을 현대적인 의미의 판사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재판관은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왔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위해 행동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데도 백성은 듣지 않는다
이어서 예상과 다른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재판관들에게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신들을 뒤따라 음행하고 그들에게 엎드려 절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순종하며 걸었던 길에서 금세 벗어났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처럼 행하지 않았다.사사기 2:1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충성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배반당했다는 뜻에서 음행이라는 강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이스라엘이 반드시 특정한 성적 제의에 참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2:18에서는 또 다른 면이 드러납니다.
백성이 변해서 구원하신 것인가, 하나님이 가엾게 여기셨기 때문인가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위해 재판관들을 세울 때마다, 여호와야훼는 그 재판관과 함께 있었고 그 재판관이 사는 동안 내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해 내곤 했다. 그들을 억누르고 몰아붙이는 자들 때문에 그들이 신음하면 여호와야훼가 가엾게 여기곤 했기 때문이다.사사기 2:18 · 본디새김
2:16–18에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버리고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재판관이 세워졌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다만 이 요약문이 구원의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백성의 충실한 변화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가엾이 여기심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충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반복해서 필요하게 만들었지만, 그 구원을 일으킨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심판에는 언약을 어긴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고, 구원에는 고통받는 백성을 가엾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두 행동 모두 같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출애굽기 2:23–25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의 강제 노동 때문에 신음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사사기 2:18에서도 백성이 압제 때문에 신음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자기 백성의 신음을 들으시고 행동하신다는 주제가 연결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사사기에서는 그 고통이 백성 자신의 언약 위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백성의 신음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같은 자리를 도는가
재판관이 사는 동안 이스라엘은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 상황이 다시 무너집니다.
그러나 재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 자기 조상들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엎드려 절하곤 했다. 그들은 자기 행실과 완고한 길을 버리지 않았다.사사기 2:19 · 본디새김
흔히 사사기의 역사를 죄, 심판, 부르짖음, 구원의 순환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틀은 사사기의 여러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2:19를 자세히 읽으면 이것이 완전히 같은 상태로 되돌아오는 순환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경험이 그들의 오래된 행동 방식과 완고함을 끊어 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사사기의 역사를 단순한 원형보다 아래로 기울어지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2:11–19의 반복적인 흐름은 다른 신을 섬김, 압제와 신음, 여호와야훼의 구원, 더 심해진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재판관 이야기가 이 순서를 빠짐없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듯이, 재판관이 죽으면 백성은 다시 이전의 길로 돌아갑니다. 특정 지도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공동체가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그 지도자가 사라진 뒤에도 지속될 신실함이 자리 잡지 못한 것입니다.
사사기는 앞으로 여러 재판관을 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2장은 미리 알려줍니다. 재판관 한 사람의 등장만으로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가엾게 여기곤 했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나함(נָחַם)의 수동·재귀형 용법입니다. 문맥에 따라 마음을 돌리다, 뜻을 누그러뜨리다, 위로받다 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억압받는 백성의 신음에 마음이 움직여 구원에 나서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표현을 하나님이 잘못된 판단을 하셨다가 뒤늦게 후회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아 있는 민족들은 왜 남아 있는가
마지막 부분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올랐고,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이 민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한 내 언약을 어기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나도 여호수아가 남겨 두고 죽은 민족들 가운데 누구 하나 더는 그들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사사기 2:20–21 · 본디새김
이 말씀은 1장에서 드러났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지역에서 주민들을 몰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장은 그 미완성된 현실을 단순히 군사력 부족이나 작전 실패로만 이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판단이 그 현실에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한꺼번에 몰아내려고 하셨는가
출애굽기 23:29–30에서 여호와야훼는 가나안 주민들을 한 해에 모두 몰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황폐해지고 들짐승이 많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점진적인 정복은 하나님의 계획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2:21에서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남은 민족들을 더 이상 몰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주민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언제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일정한 기간에 걸쳐 땅을 차지하도록 하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땅에 가나안 주민이 남아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남겨진 민족들은 시험이 된다
여호와야훼는 그 민족들을 남겨 두시는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 민족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이 지켰던 것처럼 여호와야훼의 길을 지켜 그 길로 걸어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시험하려는 것이다.」사사기 2:22 · 본디새김
2:17에서는 이스라엘이 조상들이 걸었던 길에서 금세 벗어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2:22에서는 그들이 여전히 그 길로 걸어가는지를 시험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지키고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신명기 8:2에서도 여호와야훼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드러내셨다고 말합니다. 사사기 2장의 시험도 그와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그분이 행하신 구원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주변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민족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누구를 섬길 것인지가 실제로 드러날 것입니다.
시험은 이스라엘이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풀리지 않는 질문도 있습니다.
2:20–21에서는 남은 민족들을 몰아내지 않는 일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으로 제시됩니다. 2:22에서는 같은 일이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과 연결됩니다. 2:23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그 민족들을 서둘러 몰아내지 않으셨다고 서술합니다.
이 표현들을 하나의 시간표로 완벽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점진적으로 남겨진 민족들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불순종 이후 더 이상 몰아내지 않으시겠다는 선언도 나타납니다.
본문은 이 모든 사건의 세부적인 시간 순서를 밝히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 남은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경험하는 언약 위반의 결과와, 앞으로 이스라엘의 충실함을 드러낼 시험이라는 두 측면에서 제시됩니다.
이것은 모든 어려움에 하나님의 숨겨진 시험이라는 의미를 임의로 부여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사기 2장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하여 그 목적을 명시적으로 밝히는 본문입니다. 오늘의 모든 고난에도 같은 설명을 적용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김에서 흘린 눈물과 다음 세대가 잃어버린 기억
이스라엘은 보김에서 울었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가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실제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이 장의 처음에 여호와야훼의 사자는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습니다.
길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는 돌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보김에서는 백성이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울었습니다.
그 두 장소 사이에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긴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보김에서 눈물을 흘린 백성 앞에 여전히 다른 신들의 제단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울었습니다. 제물도 바쳤습니다.
이제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가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