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는 구원
사사기 3장에는 세 명의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세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다릅니다. 옷니엘의 승리는 간결하고 장엄하게 서술됩니다. 에훗의 이야기는 치밀한 속임수와 긴장,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삼갈의 이야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묻고 싶을 만큼 짧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인물들의 능력이나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을 통해 구원을 시작하시는 분은 동일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때,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통해 그들을 다시 구원하십니까? 그리고 그 구원은 이스라엘을 어디까지 변화시킵니까?
전쟁을 배우기 위해 남겨진 민족들
사사기 3장은 아직 이스라엘이 몰아내지 못한 민족들의 목록으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남은 민족들을 더 이상 몰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본문은 그 민족들이 남아 있는 또 다른 목적을 밝힙니다.
이는 오직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 가운데 전에 그 전쟁들을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만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사사기 3:2 · 본디새김
2장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여호와야훼와 그분이 행하신 일을 알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는 그 세대가 전쟁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두 가지 현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상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상들이 치른 전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단순히 전쟁 기술을 익히기를 바라셨던 것일까요?
이 민족들이 남아 있었던 것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시험하여, 여호와야훼가 모세를 통해 그들의 조상들에게 내린 명령들에 이스라엘이 순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사사기 3:4 · 본디새김
3:2는 전쟁을 알지 못한 세대가 전쟁을 배우게 된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3:4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가 드러난다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전쟁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 속에서 더 근본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것은 여호와야훼께 순종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시대의 승리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상들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자신들의 시대에 여호와야훼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세대의 승리가 다음 세대의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함께 사는 것에서 함께 섬기는 것으로
3:3에는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와 가나안 사람들, 시돈 사람들, 레바논 산지의 히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착이 완성되지 않은 지역이 남부 해안 지역에서 북부 산지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사람,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 가운데 살았다.사사기 3:5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그 민족들의 딸들을 아내로 삼고,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들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본문은 거주, 혼인, 신앙이라는 세 차원을 차례로 보여줍니다.
특히 신명기 7:3–4와 연결하여 읽으면 이 서술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신명기는 가나안 민족들과 혼인 관계를 맺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그 이유를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위험과 연결합니다. 사사기 3:6은 바로 그 경고와 대응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구절을 모든 민족 간 혼인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일반적인 선언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 자체에도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이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룻기 1:16–17에서 룻은 나오미의 백성과 하나님을 자신의 백성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합니다.
사사기 3장에서 문제 되는 것은 단순한 혈통의 혼합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되었다는 결과입니다.
이제 시험의 결과가 실제 역사 속에서 드러납니다.
옷니엘 — 구원의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이야기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잊고 바알들과 아셰라들을 섬겼다.사사기 3:7 · 본디새김
여기서 「잊고」라는 말은 단순히 기억에서 어떤 정보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더 이상 삶의 중심에 두지 않았고,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바알들과 아셰라들은 가나안 지역의 종교와 관련된 숭배 대상들입니다. 여기서 아셰라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아셰로트(אֲשֵׁרָה)라는 복수형입니다. 이 말은 여신 아셰라와 연결되지만, 문맥에 따라 아셰라를 상징하는 제의물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 절만으로 구체적인 숭배 대상의 형태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행동에 대한 결과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아람 나하라임 왕 쿠샨 리샤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십니다. 아람 나하라임은 이름 자체로는 ‘두 강의 아람’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연결됩니다. 하지만 쿠샨 리샤타임의 통치 영역과 역사적 신원을 이 구절만으로 정확하게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를 여덟 해 동안 섬깁니다.
구원자를 세우신 분과 그에게 능력을 주신 분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자,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웠고, 그 구원자가 그들을 구해 냈다. 그는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로, 갈렙의 아우였다.사사기 3:9 · 본디새김
옷니엘은 갑자기 처음 등장한 인물이 아닙니다. 사사기 1:13에서 드비르를 점령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사기 3장은 옷니엘의 과거 업적보다 새로운 사실에 주목하게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그 위에 임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전쟁에 나갔다. 여호와야훼가 아람 왕 쿠샨 리샤타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고, 그의 손이 쿠샨 리샤타임을 압도했다.사사기 3:10 · 본디새김
여기서 처음으로 재판관에게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하는 사건이 명시적으로 기록됩니다. 사사기에서는 앞으로 기드온(6:34), 입다(11:29), 삼손(13:25; 14:6, 19)과 관련해서도 여호와야훼의 영이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인물의 모든 행동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사기에서 영의 임재는 우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특정한 일을 이루시는 능력과 관련됩니다.
3:8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쿠샨 리샤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셨습니다. 3:10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쿠샨 리샤타임을 옷니엘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같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다시 구원하십니다. 적국의 왕이 이스라엘보다 강했기 때문에 모든 일이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버렸을 때 그들은 원수의 지배 아래 놓였고, 여호와야훼께서 구원자를 세우셨을 때 그 지배가 끝났습니다.
본문은 옷니엘의 구체적인 전술이나 전투 장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몇 명의 군사를 이끌었는지, 어디에서 싸웠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옷니엘의 이야기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영웅의 전투 기술이 아니라, 그를 세우시고 영을 주시며 적을 넘겨주신 여호와야훼의 행동입니다.
마흔 해의 평온과 한 사람의 죽음
그 땅은 마흔 해 동안 평온했다.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다.사사기 3:11 · 본디새김
여기서 평온했다는 말은 단순히 전쟁에서 한 번 이겼다는 뜻보다 넓습니다. 그 땅은 일정한 기간 동안 전쟁과 압제에서 벗어난 상태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평온은 옷니엘의 죽음과 함께 기록을 마칩니다.
옷니엘의 죽음 자체가 곧바로 다음 타락의 원인이라고 본문이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이 이스라엘의 재차 일어난 악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옷니엘 시대의 평온이 영구적인 해결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간결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많은 세부 장면을 보여줍니다.
에글론 — 강해진 왕이 차지한 종려나무 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여호와야훼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했다.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사사기 3:12 · 본디새김
옷니엘의 이야기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한 구원자가 적국의 왕을 압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모압 왕을 강하게 하십니다.
에글론은 암몬 자손들과 아말렉을 자기에게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성을 차지합니다.
종려나무 성은 신명기 34:3 등을 통해 여리고와 연결되는 명칭입니다(사사기 1:16 참조).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점령한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은 그 승리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가나안 정복의 출발점과 연결되는 장소가 다시 외부 세력의 지배 아래 들어간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겼다고 기록합니다. 앞선 쿠샨 리샤타임의 압제는 여덟 해였습니다. 이번에는 열여덟 해입니다.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람이 구원자가 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자,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웠다. 그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으로, 오른손을 쓰는 데 제약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손을 통해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보냈다.사사기 3:15 · 본디새김
이 표현은 그의 전투 능력을 직접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손의 사용 방식과 달랐다는 특징을 제시합니다.
히브리어는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אִטֵּר)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가 선천적으로 왼손잡이였는지, 오른손의 움직임에 실제 장애가 있었는지, 의도적으로 왼손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흥미롭게도 사사기 20:16에서도 베냐민 지파의 왼손 사용 전사들을 묘사할 때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곳에서는 이들이 물매를 던지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오른손 사용의 제약이 곧 전투 능력의 부족을 뜻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베냐민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창세기 35:18).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파에서 오른손 사용에 제약이 있는 구원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이 이 대조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름의 의미를 아는 독자에게는 인상적인 역설이 됩니다.
에훗은 처음부터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왕에게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람입니다. 조공은 종속된 집단이 지배자에게 바치는 재물입니다. 에훗이 조공을 운반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모압에게 굴복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바로 그 종속 관계를 수행하던 사람이 이스라엘의 해방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른쪽 넓적다리의 칼 — 에훗의 은밀한 계획
에훗은 자신이 사용할 칼을 만듭니다.
에훗은 자기가 쓸 칼을 만들었다. 그 칼은 양날이었고 길이는 한 고메드였다. 그는 옷 아래 오른쪽 넓적다리에 그 칼을 찼다.사사기 3:16 · 본디새김
에훗의 칼은 양날입니다. 어느 쪽으로 찔러도 날이 닿을 수 있는 형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칼이 옷 아래 감출 수 있는 무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으로 칼을 뽑는 사람은 반대편인 왼쪽 허리나 넓적다리에 무기를 차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에훗은 왼손을 사용할 것이므로 칼을 오른쪽에 둡니다.
본문은 에훗이 경비나 신체검사를 거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른손 사용 제약이 접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독자는 이 무기의 위치가 우연한 정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살찐 왕
그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쳤다. 에글론은 아주 살찐 사람이었다.사사기 3:17 · 본디새김
에글론의 살찐 몸은 에훗의 칼이 어떻게 그의 몸에 박히는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왕의 몸과 권력은 묘한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에글론은 조공을 받는 왕입니다. 그는 다른 민족의 재물을 거두어들이는 위치에 있고, 자신만의 시원한 다락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의 체형이 조공 때문에 생겼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공을 받는 통치자의 풍족한 모습과, 그에게 예속되어 조공을 바치는 백성의 처지는 자연스럽게 대조됩니다.
은밀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조공을 바친 뒤 에훗은 함께 온 사람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는 길갈 곁의 새긴 신상들이 있는 곳에서 돌아와 말했다. 「임금님, 은밀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조용히 하여라.」 그러자 왕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모두 그에게서 물러나 나갔다.사사기 3:19 · 본디새김
에훗이 원하던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왕의 결정은 에훗의 계획에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에훗은 경비병들을 힘으로 제압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스스로 그들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에훗이 왕에게 다가갔다. 왕은 자기의 시원한 다락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에훗이 말했다. 「왕께 전할 하나님의 말이 있습니다.」 그러자 왕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사사기 3:20 · 본디새김
이 말은 앞선 「은밀히 드릴 말」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킵니다. 처음에는 비밀스러운 정보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온 말이라고 선언합니다.
본문에는 그가 왕에게 전한 별도의 신탁이나 예언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말 뒤에 이어지는 것은 왕을 찌르는 행동입니다.
에훗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은밀한 계획과 속임수, 암살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고메드는 이곳에 등장하는 드문 길이 단위로, 정확히 현대의 몇 센티미터에 해당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흔히 한 규빗이나 그보다 짧은 길이로 이해하지만, 여기서는 본디새김처럼 원래 단위를 남겨 두는 것이 신중합니다. 에글론은 그 말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의를 표하려고 일어났을 수도 있고, 중요한 소식을 듣기 위해 반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왕의 생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 에훗이 자신의 칼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했다고 읽을 수는 있습니다. 왕을 향한 심판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전달된다는 문학적 해석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에훗에게 직접 에글론을 암살하라고 명령하셨다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에훗의 선언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발화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잠긴 방문 — 왕의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
에훗은 왼손을 뻗어 자기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뽑아 에글론의 배에 찔러 넣었다.사사기 3:21 · 본디새김
드디어 앞서 소개된 에훗의 특징과 칼의 위치가 하나의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칼자루까지 몸속으로 들어가고, 지방이 칼날을 둘러싸 덮습니다. 칼을 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디새김은 마지막을 「그리고 똥이 나왔다」라고 옮깁니다(3:22).
에훗은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잠급니다.
그가 나간 뒤에 왕의 종들이 왔다. 그들이 보니 다락방 문들이 잠겨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 「분명 시원한 방에서 용변을 보고 계실 거야.」사사기 3:24 · 본디새김
그들은 기다립니다.
계속 기다립니다.
그런데 왕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민망해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왕은 여전히 다락방 문들을 열지 않았다. 그들이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어 보니, 그들의 주인이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사사기 3:25 · 본디새김
왕의 신하들은 왕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왕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합니다. 그들이 왕의 권위와 사생활을 존중하며 기다리는 동안, 왕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왕의 권력을 유지하던 궁정의 질서가 오히려 왕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왜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가
이 이야기는 폭력적인 암살 사건입니다. 그러나 서술 방식에는 긴장과 함께 우스꽝스러운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살찐 왕, 배에 박힌 칼, 잠긴 문,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신하들, 민망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본문은 강력한 왕이 죽는 순간을 위엄 있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조공을 받으며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왕은 가장 무력하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발견됩니다.
처음에 에글론은 다른 민족의 재물을 받는 왕이었습니다. 에훗은 그에게 조공을 전달해야 하는 종속된 백성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자신의 방에서 홀로 죽어 있는 동안 에훗은 궁정을 빠져나갑니다.
높은 자리에 있던 왕은 바닥에 쓰러져 있고, 복종해야 했던 사람은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에훗의 암살 방법을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신앙적 행동의 본보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구약의 역사 서술은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고 설명하면서도, 그 사건에 등장한 인간의 모든 수단을 일반적인 윤리적 명령으로 승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이 죽은 뒤 에훗은 혼자 도망가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을 모아 모압의 지배 자체를 끝내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는 원어 해석상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파르셰도나는 이곳에만 등장하는 드문 표현으로, 배설물이나 내장과 관련된 말로 읽는 견해가 있는 반면, 이동 방향이나 건축 공간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뒤이어 에훗이 방에서 나가는 장면과의 구문 관계 역시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칼을 숨긴 사람에서 뿔나팔을 부는 지도자로
그는 도착하자 에브라임 산지에서 뿔나팔을 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와 함께 산지에서 내려갔고, 그가 앞장섰다.사사기 3:27 · 본디새김
에훗의 이야기는 여기서 결정적인 전환을 맞습니다.
뿔나팔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알리는 신호입니다. 개인의 은밀한 행동이 공동체의 공개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는 단순히 왕을 죽인 암살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이끌고 실제 전투에 나서는 사람이 됩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의 원수인 모압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들은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가 모압으로 가는 요단의 여울들을 점령했고, 아무도 건너가지 못하게 했다.사사기 3:28 · 본디새김
옷니엘 이야기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적국의 왕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에훗은 하나님께서 모압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합니다.
에훗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시작된 일이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싸움으로 확대됩니다.
에글론을 죽인 것만으로 모압의 지배가 자동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에훗은 실제로 사람들을 모아 군사 작전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요단의 여울을 점령하다
여울은 강의 수위가 낮아 건너갈 수 있는 지점을 말합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강을 건널 수 있는 장소를 통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모압의 본거지는 요단강 동쪽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여울을 장악했다는 것은 모압 군대의 이동과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훗의 첫 행동이 왕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행동은 모압 군대를 고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방에서는 문을 잠가 왕을 외부와 분리했습니다. 전투에서는 강의 건널목을 차지하여 모압 사람들의 이동을 막았습니다. 두 사건은 규모가 다르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전략적 특징을 가집니다.
그 결과 본문은 약 만 명의 모압 사람이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모두 살집이 좋고 힘센 사람들이었다고 묘사됩니다.
앞에서 에글론 왕 역시 아주 살찐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왕과 그의 군사들을 묘사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풍족하고 강한 몸을 가진 적들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한다는 서술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날 모압이 이스라엘의 손아래 굴복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땅은 여든 해 동안 평온했습니다.
여든 해의 평온은 무엇을 말하는가
옷니엘의 구원 뒤에는 마흔 해의 평온이 있었습니다. 에훗의 구원 뒤에는 여든 해의 평온이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를 통해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평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에훗 이야기의 절정은 에글론이 쓰러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조공을 바치던 백성이 더 이상 모압의 지배 아래 있지 않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3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든 해의 평온 다음에 단 한 절의 짧은 이야기가 추가됩니다.
삼갈 — 소를 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하다
에훗 뒤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었다.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쳐 죽였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해 냈다.사사기 3:31 · 본디새김
삼갈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간결합니다.
그가 어느 지파 사람이었는지,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 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이끌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했다는 말도 없고, 이스라엘이 부르짖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아낫의 아들이라는 이름
삼갈은 「아낫의 아들」로 불립니다.
아낫은 고대 가나안과 그 주변 지역의 신앙에서 전쟁과 관련된 여신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문자적인 부계 이름으로 볼 것인지, 특정한 지역이나 집단 또는 전사적 칭호와 연결된 이름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사사기 3:31은 삼갈의 혈통이나 종교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가 반드시 어떤 민족에 속했다거나 특정 여신을 숭배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옷니엘처럼 잘 알려진 가문의 인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에훗처럼 지파와 아버지의 이름을 넘어 신체적 특징과 구체적인 계획이 묘사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사기 저자는 그를 구원자로 기록합니다.
농기구가 전쟁의 무기가 되다
삼갈이 사용한 무기는 소를 모는 막대기입니다.
소를 몰거나 밭을 가는 과정에서 가축을 움직이도록 자극하는 데 쓰는 도구입니다. 일반적인 군사용 무기는 아닙니다.
에훗은 자기에게 맞는 칼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삼갈은 소를 모는 막대기를 사용했습니다. 도구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그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사사기 5:6에서도 삼갈의 시대가 언급됩니다. 그곳에서는 큰길이 끊기고 사람들이 돌아가는 길로 다니던 불안한 시대가 회상됩니다. 그러나 두 기록을 연결하여 삼갈의 활동 시기와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를 모두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독자에게 필요한 모든 세부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마지막 한마디로 삼갈의 자리를 정합니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해 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가 실제로 육백 명을 혼자 죽였는지, 그가 이끄는 집단이 그 전투에서 승리한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공적을 삼갈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한순간에 벌어진 전투였는지 여러 차례의 싸움을 요약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조공을 바치던 손이 뿔나팔을 불기까지
그리고 조공을 바치던 사람의 손을 통해 시작된 일이, 온 이스라엘이 원수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사기 3장은 이처럼 예상 밖의 구원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입니다. 그러나 원수의 지배에서 벗어난 일이 곧바로 하나님을 끝까지 충실하게 섬기는 삶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공동체의 지속적인 신실함으로 이어질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입니다.
에훗은 왕의 궁전에서 나왔을 때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러 뿔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와 함께 내려갔습니다.
오랫동안 조공을 바치던 백성이 이제 자기 발로 산지에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에훗은 그들 앞에 서서 외칩니다.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의 원수인 모압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려가 요단의 여울들을 차지합니다. 더 이상 원수들이 마음대로 그 강을 건너지 못합니다.
마침내 모압이 굴복하고, 그 땅에 평온이 찾아옵니다.
오랫동안 다른 왕을 섬기던 백성이,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구원으로 다시 자기 땅에서 살아갈 시간을 얻었습니다.
사사기 3장은 그들의 발걸음이 산지에서 강가로 내려가는 장면과 함께, 여든 해의 평온을 남겨 놓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