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그늘을 약속한 가시나무의 불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가시나무는 기꺼이 왕이 되겠다고 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올리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을 내어주지만 왕이 되기를 거절합니다. 정작 왕이 되겠다고 나선 가시나무는 그늘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가시나무 아래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쉴 수 있을까요?

자신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을 내어 가장 크고 훌륭한 나무들까지 태워 버리겠다고 위협합니다.

보호해 주겠다며 권력을 얻은 존재가 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에게 파멸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9장의 비극은 한 악인이 권력을 차지했다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를 왕으로 세우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그의 악에 참여했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계셨을까요? 이 장에는 새로운 구원자를 부르시는 말씀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명령도 없습니다. 대신 마지막에 이르러 서술자는 그 모든 파멸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합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109장 본문 읽기 →

「그는 우리 형제다」 — 혈연으로 시작된 왕권

사사기 9:1–6 본문 →

아비멜렉은 아버지 여룹바알, 곧 기드온이 죽은 뒤 세겜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그의 외가 친척들이 있었습니다.

앞 장에서 기드온이 왕위를 거절했으면서도 왕실을 연상시키는 큰 집안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 집안의 한 아들이 실제 왕권을 차지하려 합니다.

아비멜렉은 먼저 외삼촌들과 외가 친족들을 설득합니다. 그는 세겜 주민들에게 다음 질문을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세겜의 모든 주민이 듣도록 부디 말해 주십시오.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 모두가 여러분을 다스리는 것과 한 사람이 여러분을 다스리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여러분에게 좋습니까? 그리고 제가 여러분의 뼈와 살임을 기억하십시오.」사사기 9:2 · 본디새김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이 실제로 세겜을 다스리려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비멜렉은 존재한다고 확인되지 않은 위협을 먼저 제시하고, 자신이 그 위협을 해결할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합니다.

일흔 명과 한 명이라는 숫자의 대조는 선택을 단순하게 만듭니다. 여러 사람에게 지배받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지배받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방식으로 다스릴 것인가는 질문에서 빠져 있습니다.

그가 내세운 결정적인 자격은 혈연입니다.

‘뼈와 살’은 가까운 친족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창세기 29:14에서 라반은 야곱에게 비슷한 말로 혈연관계를 확인합니다. 사무엘하 5:1에서도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윗과 자신들이 같은 혈육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이 관계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권력을 얻을 근거로 사용합니다.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세겜의 모든 주민에게 그를 두고 이 모든 말을 전했다. 주민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을 따르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들이 「그는 우리 형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사사기 9:3 · 본디새김

그들은 아비멜렉의 성품이나 지도력을 검토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기들과 같은 집안에 속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자신들의 형제라는 이유로 그를 선택했고, 아비멜렉은 그 선택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에게 형제라는 관계는 권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때에는 강조할 가치가 있었지만, 권력을 나누어 가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호해야 할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신전에서 가져온 은과 한 돌 위의 형제들

세겜 주민들은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세겔을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줍니다. 바알브릿은 앞 장에서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던 존재입니다(8:33). 이제 그 신전의 재물이 아비멜렉의 권력 획득에 사용됩니다.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쓸모없고 무모한 사람들」을 고용합니다. 단순한 군인이라기보다 일정한 보수를 받고 위험한 일에 가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오프라로 가서 자기 형제들을 죽입니다.

그는 오프라에 있는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들, 곧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을 한 돌 위에서 죽였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탐은 숨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사사기 9:5 · 본디새김

그러나 여러 형제를 한 돌 위에서 죽였다는 묘사는 살해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잔혹했는지를 강조합니다.

아비멜렉은 형제들을 죽인 뒤 세겜의 기둥 곁에 있는 테레빈나무에서 왕이 됩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백성에게 여호와야훼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게 하고 언약을 세웠습니다(여호수아 24:1, 25). 그는 하나님의 집 곁에 있는 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워 언약의 증거로 삼기도 했습니다(24:26–27).

과거에는 이스라엘이 누구를 섬길 것인지 결정했던 곳에서, 이제 사람들은 형제들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웁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특별히 「한 돌 위에서」라는 표현을 남깁니다. 이것이 어떤 용도의 돌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제단이나 처형 시설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은 칠십 세겔과 형제 일흔 명의 숫자도 나란히 놓입니다. 이 대응은 독자가 한 사람을 죽이는 데 은 한 세겔이 쓰인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돈의 실제 사용 내역을 그렇게 나누어 설명하지 않습니다. 일흔 명을 죽였다고 기록하면서도 막내 요탐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본문은 이 숫자를 예순아홉으로 고치지 않습니다. 일흔을 집안 전체를 가리키는 수로 쓴 것인지, 생존자의 예외를 따로 밝힌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숫자들의 긴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사사기 9장의 테레빈나무가 그때의 바로 그 나무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내는 나무들은 왜 왕이 되기를 거절하는가?

사사기 9:7–15 본문 →

학살에서 살아남은 요탐은 그리짐산 꼭대기에 올라가 세겜 주민들을 향해 외칩니다.

그리짐산은 세겜 가까이에 솟아 있는 산입니다. 여호수아 8:33–35에서는 에발산과 함께 이스라엘이 율법의 복과 저주를 듣는 장소로 등장합니다. 그런 산에서 요탐은 세겜 사람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 말합니다.

대신 그는 나무들이 왕을 세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무들은 먼저 올리브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올리브나무는 거절합니다.

「올리브나무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과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데 쓰이는 제 기름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서 흔들거려야 하겠습니까?』」사사기 9:9 · 본디새김

올리브기름은 고대 이스라엘의 일상생활과 예배에서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몸에 바르고, 등불을 밝히며, 거룩한 용도로도 사용했습니다(출애굽기 27:20; 30:22–30).

그다음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요청합니다. 무화과나무 역시 자기의 단맛과 좋은 열매를 포기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세 번째는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제 새 포도주를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서 흔들거려야 하겠습니까?』」사사기 9:13 · 본디새김

그들이 내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름과 무화과와 포도주는 다른 존재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들은 이미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므로 그 일을 버리고 다른 나무들 위에 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이 단순히 왕의 활동을 가리키는지, 높은 자리에 올라 우쭐대는 모습을 풍자하는지는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화 안에서는 실제적인 열매를 내는 일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대조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올리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자신이 높아지는 것보다 자신이 내는 유익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찾아갑니다.

가시나무의 그늘과 레바논의 백향목

가시나무는 앞의 세 나무와 달리 자신이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위에 왕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에 피하여라. 그렇지 않다면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삼키기를 바란다.』」사사기 9:15 · 본디새김

가시나무가 제공하겠다는 그늘도 의심스럽습니다. 무성한 큰 나무가 아니라 가시나무 아래에서 다른 나무들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는 약속은 역설적입니다.

가시나무는 누구에게나 그늘을 제공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진실로 왕으로 인정하는 나무들에게만 보호를 약속합니다.

보호는 조건부입니다.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 나옵니다.

백향목은 높이 자라고 훌륭한 목재를 제공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5:6에서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의 백향목을 요청합니다.

작고 볼품없는 가시나무가 가장 크고 위엄 있는 나무까지 태우겠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말했고, 가시나무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했습니다.

요탐이 직접 비판하는 것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의 선택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좋은 열매를 보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형제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왕권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될 것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기름이 「존귀하게 한다」는 표현의 정확한 관계에는 약간의 해석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하나님」으로 옮긴 말의 문법적 형태는 복수 신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를 정확히 어떤 식물로 식별할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불은 가시나무에게 실제적인 위협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마른 가시덤불은 쉽게 타오르고 다른 것에 불을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탐의 우화에서 좋은 나무들은 모두 왕이 되기를 거절하고, 가장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왕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왕권 자체에 대한 강한 풍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풍자를 이스라엘의 모든 왕권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만 해석하면 문맥이 좁아집니다. 신명기 17:14–20은 왕이 세워지는 경우를 다루면서 그 왕이 자신을 형제들 위에 높이지 말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도록 요구합니다. 사사기 9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이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가 형제들을 죽여 권력을 얻었고, 백성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 살해에 참여했으며, 이후 권력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탐의 저주는 무엇을 예고하는가?

사사기 9:16–21 본문 →

요탐은 우화를 끝내고 세겜 주민들에게 직접 말합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이 진실하고 온전하게 행동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다면, 또 여룹바알과 그의 집안을 선하게 대했다면, 또 그가 자기 손으로 한 일에 걸맞게 그에게 갚았다면,」사사기 9:16 · 본디새김

요탐은 왕을 세운 행위만을 따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왕을 세우기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함께 묻습니다.

「제 아버지는 여러분을 위해 싸웠고, 자기 목숨을 내던져 여러분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해 냈습니다.」사사기 9:17 · 본디새김

그런데 그들이 이 구원에 보답한 방식은 구원자의 아들들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요탐은 이 행동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행한 것인지 묻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하나님의 백성다운 신실함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안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대했다면,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십시오. 그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기를 바랍니다.」사사기 9:19 · 본디새김

이 말은 겉으로는 축복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요탐은 바로 앞에서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폭로했습니다. 따라서 이 축복은 강한 반어가 됩니다.

이제 진짜 경고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주민들과 벳 밀로를 삼키기를 바랍니다. 또 세겜 주민들과 벳 밀로에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삼키기를 바랍니다.」사사기 9:20 · 본디새김

가시나무 우화에서는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다른 나무들을 삼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탐은 그 불이 반대 방향으로도 타오르기를 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비멜렉이 처벌받을 것이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그를 왕으로 세운 사람들과 왕 사이의 관계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요탐은 아비멜렉을 죽이지도, 세겜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말을 남기고 달아납니다. 브에르로 피신한 뒤로 이 장에서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야기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에서 「만약 여러분이 진실하고 온전하게 행동했다면」이라는 조건을 내세운 뒤, 17–18절에서 아버지의 희생과 형제들의 죽음을 길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19절에서 다시 같은 조건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 — 심판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사사기 9:22–25 본문 →

아비멜렉은 세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을 세 해 동안 다스렸다」고 하지만, 실제로 묘사하는 정치적 활동은 세겜과 그 주변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후대의 통일 왕국처럼 이스라엘 전역을 조직적으로 통치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 통치에는 다른 사사들의 이야기에서 반복되던 평온의 선언이 나오지 않습니다.

세 해가 지난 뒤, 사건의 방향이 갑자기 바뀝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주민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냈다.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을 배신했다.사사기 9:23 · 본디새김

앞부분에서 사람들은 서로 설득하고, 돈을 주고, 고용하고, 살해하고, 왕을 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동은 서술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술자는 그들의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밝힙니다.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에게 가해진 폭력이 그들을 죽인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그가 자기 형제들을 죽이도록 그의 손에 힘을 보탠 세겜 주민들에게 되돌아가게 하고, 살해된 아들들의 피의 책임을 이들에게 지우려는 것이었다.사사기 9:24 · 본디새김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한쪽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살해를 실행한 자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자에게 모두 책임을 묻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함께 세운 악한 권력이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이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것은 반드시 모든 심판이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일반 법칙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사기 9장이 설명하는 바로 이 사건의 의미입니다.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을 노려 산꼭대기들에 사람들을 매복시켰다. 매복한 사람들은 그 길로 자기들 곁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약탈했다. 이 일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졌다.사사기 9:25 · 본디새김

처음에 세겜 사람들은 한 사람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편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질서는 이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합니다.

가시나무의 그늘 아래 들어가려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루아흐 라아는 문자적으로 ‘악한 영’ 또는 ‘해로운 영’을 뜻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특정한 종류의 악령이 어떤 방식으로 활동했는지를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두 집단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는 인간적 상황으로만 바꾸어 읽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내셨다고 명시하기 때문입니다.

포도 수확의 잔치가 반란의 무대가 되다

사사기 9:26–41 본문 →

세겜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입니다.

세겜 주민들은 그를 신뢰합니다. 그들은 포도를 수확하고 포도를 밟아 짠 뒤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신전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우화에서 포도나무는 자신이 내는 새 포도주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며 왕이 되기를 거절했습니다. 이제 실제 세겜 사람들은 포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면서 그 포도주를 마시고, 신전 안에서 자기들이 세운 왕을 저주합니다.

포도나무는 좋은 열매를 내지만, 그 열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동까지 선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가알은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말했다. 「아비멜렉은 누구이고 세겜은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 그는 여룹바알의 아들이고, 즈불은 그의 관리가 아닙니까?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사람들을 섬기십시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를 섬겨야 합니까?」사사기 9:28 · 본디새김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같은 혈육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제 가알도 누가 이 지역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를 물으며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 합니다.

세겜 사람들의 충성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가알은 자신에게 이 백성을 맡겨 주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는 아비멜렉에게 「네 군대를 늘려서 나와라」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이 도전은 곧 현실이 됩니다.

성문 앞에서 드러난 가알의 허세

세겜의 우두머리 즈불은 가알의 말을 듣고 분노합니다. 그는 아비멜렉에게 전령을 보내 반란 상황을 알리고 밤중에 매복하도록 권합니다. 아비멜렉은 네 부대로 나누어 세겜을 향해 접근합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가알은 성문 입구에 서 있습니다. 성문은 성읍 안팎의 사람들이 오가고, 성읍의 중요한 공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가알은 바로 그곳에서 적군이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가알이 그 사람들을 보고 즈불에게 말했다. 「보시오, 사람들이 산꼭대기들에서 내려오고 있소.」 즈불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산 그림자를 사람들로 보고 있소.」사사기 9:36 · 본디새김

그는 적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가알의 판단을 흐리려 합니다. 가알은 다시 보이는 병력을 가리킵니다. 그제야 즈불은 자신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즈불이 그에게 말했다.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라고 말하던 당신의 입은 이제 어디 있소? 이들이 당신이 업신여기던 사람들이 아니오? 자,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워 보시오.」사사기 9:38 · 본디새김

가알이 잔치 자리에서 자신 있게 내뱉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가알은 성읍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 싸웁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에게 패하고 도망칩니다. 많은 사람이 죽어 쓰러지고, 가알과 그의 형제들은 결국 세겜에서 쫓겨납니다.

여기서 본문은 가알을 정당한 해방자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의 반란도 세겜의 정의를 회복하는 운동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새로운 권력을 얻으려 했고, 아비멜렉은 기존의 권력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은 세겜 주민들입니다.

조금 더 깊이

28절의 「세겜」은 성읍과 주민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의 정확한 대상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창세기 34:2에는 하몰의 아들 세겜이 등장합니다. 가알은 이 지역의 오래된 혈연적·지역적 정체성을 내세워 아비멜렉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네 군대를 늘려서 나와라」라는 말이 실제로 아비멜렉과 직접 마주 서서 한 말인지, 자리에 없는 상대를 향해 던진 도전인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은 자신을 세운 성읍을 없애 버린다

사사기 9:42–45 본문 →

가알이 쫓겨났다고 해서 세겜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세겜 사람들이 들로 나갑니다. 아비멜렉은 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을 세 부대로 나눈 뒤 매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가알의 군대가 아니라 들로 나간 세겜의 주민들입니다.

아비멜렉은 성문 입구를 장악합니다. 다른 부대들은 들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성문은 성읍으로 돌아가는 통로이므로, 이것을 장악하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날 온종일 성읍을 공격하여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 안에 있는 백성을 죽였다. 그는 성읍을 허물고 그곳에 소금을 뿌렸다.사사기 9:45 · 본디새김

그가 지키려는 것은 세겜이 아니라 자신의 왕권이었습니다. 세겜이 자신의 권력을 거부하자, 세겜은 더 이상 보호할 백성이 아니라 제거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늘을 약속했지만, 그 그늘은 왕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성읍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는 그곳을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상징적 행동으로 읽힙니다. 다만 실제로 땅 전체를 영구히 불모지로 만들 수 있는 양의 소금을 뿌렸다는 뜻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늘 대신 불 — 요탐의 우화가 현실이 되다

사사기 9:46–49 본문 →

세겜의 성읍이 파괴되는 동안 세겜 탑의 주민들은 엘브릿 신전의 지하 방으로 피신합니다.

처음에 바알브릿 신전의 은은 아비멜렉의 왕권을 세우는 자금이 되었습니다. 이제 세겜 사람들은 신전으로 들어가 아비멜렉에게서 자신들을 보호받으려 합니다.

권력을 세우는 데 이용했던 종교적 공간이 그 권력으로부터 도망치는 피신처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신전의 지하 방도 그들을 구하지 못합니다.

아비멜렉이 찰몬산으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도 올라갔다. 아비멜렉은 손에 도끼들을 들고 나뭇가지를 잘라, 그것을 들어 자기 어깨에 메었다. 그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을 보았으니, 서둘러 나처럼 하여라.」사사기 9:48 · 본디새김
모든 사람도 저마다 자기 나뭇가지를 잘라 아비멜렉을 따라갔다. 그들은 나뭇가지들을 지하 방 위에 놓고,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그 지하 방에 불을 질렀다. 세겜 탑의 모든 사람도 죽었다. 남자와 여자가 약 천 명이었다.사사기 9:49 · 본디새김

나무는 더 이상 열매나 그늘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태우는 연료가 됩니다.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다른 나무들을 삼키겠다는 말이 실제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왕권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여 형제들을 살해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직접 살해의 방법을 보여 줌으로써 더 큰 규모의 참사를 일으킵니다.

이는 24절이 아비멜렉과 세겜 주민들에게 공동의 책임을 물었던 것과도 연결됩니다. 악한 권력은 한 사람의 결심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명령에 동조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더 큰 피해를 일으킵니다.

요탐의 저주 가운데 첫 번째 불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불은 어떻게 아비멜렉을 삼킬 것입니까?

조금 더 깊이

엘브릿은 ‘언약의 신’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명칭입니다. 앞서 등장한 바알브릿과 매우 가까운 종교적 이름이지만, 두 명칭이 정확히 동일한 신전이나 같은 제의 시설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불을 지르려던 왕이 맷돌에 쓰러지다

사사기 9:50–55 본문 →

세겜을 파괴한 뒤 아비멜렉은 테베츠로 진군합니다.

아비멜렉은 테베츠를 점령합니다. 주민들은 튼튼한 탑으로 피신합니다.

성읍 안에는 튼튼한 탑이 있었다. 모든 남자와 여자, 성읍의 모든 주민이 그곳으로 달아났다. 그들은 자기들 뒤로 문을 닫고 탑의 지붕으로 올라갔다.사사기 9:51 · 본디새김

아비멜렉은 같은 방법을 시도합니다.

아비멜렉은 그 탑까지 와서 공격했다. 그는 탑을 불태우려고 탑 입구까지 다가갔다.사사기 9:52 · 본디새김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한 여자가 맷돌 위짝 한 조각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수었다.사사기 9:53 · 본디새김

아비멜렉은 한 돌 위에서 여러 형제를 죽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통치가 끝나는 순간에는 한 여자가 던진 맷돌 조각에 머리가 부서집니다.

더욱 뜻밖의 것은 아비멜렉의 마지막 반응입니다.

그는 자기 무기를 드는 젊은이를 급히 불러 말했다. 「네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자가 그를 죽였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그의 젊은이가 그를 찔렀고, 그는 죽었다.사사기 9:54 · 본디새김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명성을 통제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시도 역시 실패합니다.

아비멜렉은 사람들이 그 일을 말하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성경은 그 일을 지워 버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사무엘하 11:21에서는 아비멜렉이 여자가 던진 맷돌에 맞아 죽었다는 사건을 다시 언급합니다. 그의 죽음은 그가 감추고 싶어 했던 방식으로 기억됩니다.

아비멜렉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처소로 돌아갑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했다는 선언이 없습니다. 땅에 평온이 찾아왔다는 말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흩어집니다.

한 사람이 왕권을 차지하려고 시작한 전쟁이 그의 죽음과 함께 멈춘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왜 이 성읍까지 공격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테베츠가 세겜과 어떤 정치적 관계였는지, 그곳 주민들이 아비멜렉에게 무엇을 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공격을 세겜의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처벌하려는 것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맷돌 위짝의 온전한 부분을 던진 것인지 갈라진 조각을 던진 것인지도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본디새김은 맷돌 위짝에서 나온 한 조각으로 옮겼습니다. 두 돌이 같은 의미의 종교적 상징이라고 본문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놓인 돌의 이미지는 강한 문학적 대조를 만듭니다. 고대의 전사 문화에서 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남성 전사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사사기 4장에서 시스라는 드보라가 예고했던 대로 한 여자의 손에 넘겨집니다(4:9, 21). 강한 군사 지도자가 예상하지 못한 여자에게 죽는다는 주제가 반복됩니다. 다만 두 이야기에서 여자들이 맡은 역할은 다릅니다. 야엘은 도망치는 시스라를 자기 장막에서 죽였고, 테베츠의 여자는 탑을 공격하는 아비멜렉에게 맷돌 조각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그들의 머리로 되돌리셨다

사사기 9:56–57 본문 →

이 장의 마지막 두 절은 앞선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악을 되갚았다.사사기 9:56 · 본디새김
또 하나님은 세겜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악을 그들의 머리로 되돌렸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탐의 저주가 그들에게 닥쳤다.사사기 9:57 · 본디새김

이 두 문장은 23–24절과 함께 사사기 9장의 신학적 틀을 형성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셨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들의 악을 각자에게 되돌리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비멜렉의 세겜 학살 자체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정당한 처벌이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민들을 불태우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한 일은 여전히 악이며, 그 역시 그 악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악한 행동까지 심판의 과정 속에 사용하신다는 것과, 그 악한 행동을 승인하신다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특히 아비멜렉에게 살해된 형제들과 세겜과 테베츠에서 죽은 사람들 개개인의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의 심판 선언으로 그들의 모든 고통이 해명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이 성공적으로 성립했다는 사실이 그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종교적 자금까지 동원되고, 실제로 몇 해 동안 통치가 유지되었다고 해도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7:15–16에는 악인이 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 자신이 빠지며, 자신이 행한 폭력이 자기 머리로 돌아온다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잠언 26:27도 함정을 파는 사람이 그 안에 빠진다는 유사한 생각을 전합니다. 또한 요탐의 저주가 성취되었다고 해서 요탐이 사건을 조종했다고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요탐은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서 세겜의 악을 고발했고, 서술자는 하나님이 그 악에 책임을 물으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늘을 찾아간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

사사기 9:1–57 본문 →

세겜 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은 「우리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질문은 그가 자기들과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냐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형제들에게 어떤 행동을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사기 9장에서 하나님은 권력의 성공보다 그 권력이 흘린 피에 책임을 물으십니다.

테베츠의 주민들은 탑 안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탑까지 쫓아와 다시 불을 지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탑 입구에 다가간 순간, 위에서 맷돌 조각이 떨어졌습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불로 삼키겠다고 위협하던 왕이, 불을 지르기도 전에 쓰러졌습니다.

그늘을 약속한 가시나무는 끝내 누구에게도 안전한 그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일으킨 불은 자신을 왕으로 세운 사람들을 삼켰고, 불을 지르려던 그의 마지막 발걸음은 탑 아래에서 멈추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