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2–13장 · 성벽 봉헌과 개혁

성벽 위를 걸어 하나님의 집으로

느헤미야 12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성벽 위를 걸으며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느헤미야 4:3에서 도비야는 유다 사람들이 쌓고 있는 성벽을 조롱했습니다. 여우 한 마리만 올라가도 돌담이 무너질 것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조롱받던 성벽 위에 이제 사람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두 개의 큰 감사 합창대와 지도자들, 백성들이 그 위를 따라 움직입니다.

한때는 여우 한 마리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받았던 성벽이,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성벽의 견고함을 과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합창대는 성벽을 따라 걸은 뒤 하나님의 집에 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성벽을 기념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성벽 봉헌식으로 곧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오래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을 길게 기록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명단에서부터 이 장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12장 본문 읽기 →

성벽 봉헌식 앞에 놓인 오래된 이름들

느헤미야 12:1–11 본문 →

12장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시대를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올라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다음과 같았다. 스라야, 예레미야, 에스라,느헤미야 12:1 · 본디새김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 이후 귀환한 공동체의 초기 지도자들입니다. 에스라 2:2에는 귀환자들의 지도자 가운데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기록되어 있고, 에스라 3:2에서는 두 사람이 성전의 제단을 다시 세우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 12장의 첫 명단은 성벽이 완성된 당대의 인물들만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앞서 성전 재건이 시작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서 처음 등장하는 에스라라는 이름을 8장에서 율법을 낭독했던 서기관 에스라와 곧바로 동일인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름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두 인물이 같다고 판단할 수 없으며, 명단의 시대적 배경도 다릅니다.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 빈누이, 갓미엘, 세레뱌, 유다, 맛다냐였다. 맛다냐와 그의 형제들은 감사의 노래를 맡았다.느헤미야 12:8 · 본디새김

성벽 봉헌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감사의 노래를 맡은 사람들과 그들의 전통이 소개됩니다. 9절에서는 박부갸와 운니가 그들의 형제들과 조별로 마주 섰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이 노래를 번갈아 불렀는지, 함께 노래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노래가 개인적인 즉흥 연주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직된 직무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어지는 10–11절에서는 예수아부터 얏두아까지 이어지는 제사장 가문의 계보가 기록됩니다.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았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았으며,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았다.느헤미야 12:10 · 본디새김

느헤미야 3:1에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이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초기 귀환 세대와 느헤미야 시대를 하나의 제사장 계보 안에서 연결합니다. 더 뒤의 인물들도 등장하므로 명단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보존되고 정리된 기록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일정한 기간의 집중적인 공사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어느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의 제단을 다시 세우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감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벽을 봉헌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2장의 첫 명단은 봉헌식에 참석한 사람들 뒤에 이미 긴 역사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맡겨진 일은 이어졌다

느헤미야 12:12–26 본문 →

12절부터는 요야김 시대의 제사장 가문 우두머리들이 기록됩니다.

앞부분에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 시대의 제사장 우두머리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그 가문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서 우두머리가 된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스라야 가문의 므라야, 예레미야 가문의 하나냐, 에스라 가문의 므술람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개인의 이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어느 가문에서 그 사람이 나왔는지도 함께 기록합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직무가 개인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라, 가문과 계보를 통해 이어지는 제도 안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명단의 모든 항목이 완전하게 보존된 것은 아닙니다.

17절에는 미냐민 가문에 대응하는 우두머리의 이름이 없습니다. 원래 있던 이름이 전승 과정에서 빠졌을 수 있고, 뒤에 나오는 빌대가 두 가문과 관련되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 세대의 기록이 한곳에 모이다

22–23절에서는 명단을 기록한 시대에 관한 설명이 나옵니다.

레위 사람들의 조상 가문 우두머리들은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시대에 명부에 기록되었고, 제사장들은 페르시아 사람 다리오의 통치 때에 기록되었다.느헤미야 12:22 · 본디새김

페르시아에는 다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여럿 있었습니다. 본문은 어느 다리오를 말하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통치 때에」에 해당하는 원문 표현을 그 통치 기간 동안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때까지라는 시간적 범위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계보에 나오는 요나단과 요하난의 관계에도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10–11절의 계보와 22–23절의 표현은 이름과 세대 관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이 명단만으로 각 제사장이 언제 직무를 맡았는지, 모든 인물이 정확히 어떤 순서로 활동했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23절에는 이들이 연대기에 기록되었다는 설명도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대기는 반드시 오늘날 성경의 역대상·하를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가문을 기록한 자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은 다시 그들이 수행했던 일로 돌아갑니다.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였다. 그들과 그들 맞은편의 형제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에 따라 조와 조가 서로 마주 보며 찬양하고 감사했다.느헤미야 12:24 · 본디새김

역대상 16:4–7과 25:1–8에는 다윗이 레위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직무를 조직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느헤미야 시대의 찬양은 아무런 전통 없이 새롭게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경배 전통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은 노래하는 사람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5절에는 문들에 딸린 창고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성전의 찬양이 계속되려면 노래하는 사람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의 물품을 보관하고 관리하며, 정해진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봉사의 일부를 담당했습니다.

이제 오래된 명단의 시간이 끝나고,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벽의 봉헌식으로 옮겨 갑니다.

봉헌식은 성벽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느헤미야 12:27–30 본문 →

27절부터 장면이 크게 바뀝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할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려고 레위 사람들을 그들이 사는 모든 곳에서 찾았다. 심벌즈와 하프와 수금에 맞추어 감사하고 노래하며 봉헌식을 거행하고 기뻐하려는 것이었다.느헤미야 12:27 · 본디새김

노래하는 사람들도 예루살렘 주변의 마을과 들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이는 성벽이 예루살렘에 있는 건축물이었지만, 그 봉헌을 기뻐하는 공동체는 예루살렘 안에만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벽의 봉헌은 단순히 공사가 끝났다는 사실을 발표하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성벽을 하나님 앞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행위였습니다.

성전은 제사와 경배의 중심 장소였고, 성벽은 성읍을 둘러싼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봉헌식은 그 성벽도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성읍을 위한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예상 밖의 행동이 나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자신들을 정결하게 한 다음, 백성과 문들과 성벽을 정결하게 했다.느헤미야 12:30 · 본디새김

봉헌식을 집행하는 사람들 자신도 정결함의 요구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정결함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정결의 대상은 백성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성문과 성벽도 포함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경배가 사람의 내면과 외적인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벽을 봉헌하기 전에 먼저 정결하게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건축물의 완성만큼이나 하나님 앞에서 그 건축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사람들은 정결하게 한 성벽 위로 올라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정결하게 했다」는 말은 단순히 돌에 묻은 먼지를 닦고 성문을 청소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구체적인 의식의 절차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제물을 사용했는지, 물을 뿌렸는지, 어떤 기도문을 읽었는지 등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감사 합창대가 서로 다른 길을 걷다

느헤미야 12:31–40 본문 →

31절에서 이야기의 시점이 바뀝니다.

나는 유다의 지도자들을 성벽 위로 올라가게 하고, 큰 감사 합창대 둘을 세워 행진하게 했다. 한 무리는 성벽 위를 따라 오른쪽으로 쓰레기 문을 향해 갔다.느헤미야 12:31 · 본디새김

앞부분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을 전하는 기록이었지만, 이제 느헤미야가 자신이 행한 일을 직접 이야기합니다. 앞서 명단에 등장했던 사람들의 직무가 이제 큰 공동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첫 번째 합창대

첫 번째 무리는 성벽 위에서 오른쪽으로, 쓰레기 문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뒤에는 호사야와 유다 지도자들의 절반이 따라갑니다. 제사장 자손들은 나팔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윗의 악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들고 뒤따랐다. 서기관 에스라는 그들 앞에 있었다.느헤미야 12:36 · 본디새김

에스라는 앞서 백성에게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쳤던 인물입니다. 이제 그는 성벽 봉헌식의 행진에서도 앞장섭니다.

그 무리는 샘 문을 지나 다윗 성의 계단을 올라가고, 다윗의 집 위쪽을 지나 동쪽 물 문까지 나아갑니다. 그들이 걷고 있는 장소는 단순히 새로 건축된 성벽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의 오래된 기억을 품은 성읍이었습니다.

두 번째 합창대

이어서 두 번째 무리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두 번째 감사 합창대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나는 백성의 절반과 함께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를 걸어 화덕 망대를 지나 넓은 성벽까지 갔다.느헤미야 12:38 · 본디새김

첫 번째 무리 앞에는 에스라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무리 뒤에는 느헤미야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무리는 화덕 망대와 넓은 성벽, 에브라임 문과 옛 문, 물고기 문, 여러 망대와 양 문을 지나 경비 문에 이릅니다.

두 감사 합창대가 하나님의 집에 섰다. 나도 섰고, 관리들의 절반도 나와 함께 섰다.느헤미야 12:40 · 본디새김

그들은 자신들이 완성한 성벽을 따라 행진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성벽을 바라보며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성벽을 따라 나아간 두 길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한곳에서 끝났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감사라는 말이 감사를 드리는 무리 자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당시 성벽의 정확한 경로와 모든 문들의 위치는 오늘날 하나의 지도 위에 완전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왜 한 무리가 아니라 두 무리였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성벽의 여러 구간을 행진에 포함할 수 있었을 것이고, 두 무리가 감사하며 행진하는 모습 자체가 성벽 봉헌식의 중요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행진 경로가 성벽 전체를 완전히 한 바퀴 돌도록 계획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 48:12–14에서는 시온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며 성벽과 요새를 살피라고 합니다. 그 목적은 그 성읍의 견고함을 자랑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심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 있습니다. 느헤미야 12장의 행진은 시편의 이 말씀을 직접 실행했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읍의 성벽을 둘러보는 행동이 하나님께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는 시편 127:1과도 연결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시편은 여호와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건축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야훼께서 성읍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깨어 있어도 헛되다고 말합니다. 느헤미야 12장이 이 시편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건축과 경비라는 인간의 수고가 하나님의 돌보심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만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다

느헤미야 12:41–43 본문 →

두 합창대가 하나님의 집에 선 뒤, 본문은 다시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제사장들은 나팔을 들고 있었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감독자의 지휘 아래 소리를 높였습니다. 긴 명단으로 시작했던 장이 이제 실제로 그 사람들이 맡은 일을 수행하는 장면에 이른 것입니다.

그날 그들은 많은 희생 제물을 잡아 바치고 기뻐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자들과 아이들도 기뻐했고, 예루살렘의 기뻐하는 소리는 멀리서도 들렸다.느헤미야 12:43 · 본디새김

그들은 성벽을 완성했습니다. 실제로 돌을 쌓고 성문을 달았으며, 어려움 속에서 공사를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성벽의 완성을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기쁨의 근원을 하나님의 행동에서 찾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하나님의 도우심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실제로 일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이룬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 안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앞선 행진에서 본문은 주로 지도자들과 제사장,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절정에서는 여자들과 아이들도 분명하게 언급됩니다.

성벽은 지도자들만을 위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는 가정과 아이들,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삶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멀리까지 들린 소리

느헤미야서의 앞부분에서 예루살렘은 수치와 비웃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느헤미야 2:17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해져 있고 성문들이 불탔으며 자신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4장에서는 적들이 성벽 건축을 조롱하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에서 들려오는 것은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들의 탄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소리입니다.

성벽은 안과 밖을 구별하는 구조물입니다. 그러나 그날 성벽 안에서 울려 퍼진 기쁨의 소리는 그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에는 「기쁨」과 「기뻐하다」라는 표현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표현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셨다는 사역적 동사가 사용됩니다. 그들이 모두 성벽 위의 행진에 참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함께 기뻐했다는 사실만을 명시합니다.

왜 성벽 봉헌식 뒤에 저장 방 이야기가 나올까?

느헤미야 12:44–47 본문 →

43절에서 장이 끝났다면 매우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날 예물과 첫 수확물과 십일조를 쌓아 둘 저장 방들을 맡을 사람들이 임명되었다. 그들은 성읍들의 밭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율법으로 정해진 몫을 거두어 그 방들에 모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유다 사람들이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두고 기뻐했기 때문이다.느헤미야 12:44 · 본디새김

43절에서도 「그날」 그들이 많은 희생 제물을 바치고 기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4절에서도 「그날」 저장 방들을 맡을 사람들이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본문은 큰 기쁨이 있었던 날과 실무적인 책임을 정한 날을 연결합니다.

봉헌식은 단지 감격적인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행사를 가능하게 한 성전 봉사가 앞으로도 지속되도록 책임을 정하는 일이 뒤따랐습니다.

기쁨이 실제적인 지원으로 이어지다

백성은 단순히 성벽이 완성된 사실만을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맡은 일을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두고도 기뻐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그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율법으로 정해진 몫을 공급할 책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10장의 약정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0장에서는 예물과 첫 수확물과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기로 약속했습니다. 12장에서는 그것들을 저장할 방들을 맡을 사람들을 임명하고, 각 성읍의 밭에서 정해진 몫을 거두도록 합니다.

이 일의 세부적인 운영 방식까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성읍들의 밭에서」라는 표현이 실제 수집 장소를 가리키는지, 각 밭을 기준으로 정해진 몫을 가리키는지에는 해석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몫을 모아 보관하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봉사가 지속되도록 하려는 목적은 명확합니다.

기쁨은 단지 노래하는 순간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성전의 창고는 성벽 위의 합창대만큼 눈에 띄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배를 위해서는 그 창고도 필요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기억하다

45–46절에서는 다시 과거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임무와 정결하게 하는 임무를 지켰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도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지켰다.느헤미야 12:45 · 본디새김

이어서 다윗과 아삽 시대부터 찬양과 감사의 노래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윗은 제사와 찬양의 직무를 조직했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역대하 5:11–14와 7:1–10에는 솔로몬 시대의 성전 봉헌과 찬양, 희생 제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정치적 상황은 과거와 같지 않았습니다. 왕국의 영광도 그대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는 특정한 시대의 정치적 번영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그날의 몫을 주었다

마지막 47절은 다시 현재와 과거를 함께 묶습니다.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에 온 이스라엘은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그날의 몫을 주었다. 또 레위 사람들의 몫을 거룩하게 구별했으며, 레위 사람들은 아론 자손의 몫을 거룩하게 구별했다.느헤미야 12:47 · 본디새김

성벽 봉헌식은 특별한 날에 이루어진 큰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행사가 끝난 뒤에도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은 계속 맡은 일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몫도 날마다 공급되어야 했습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얻은 것 가운데 일부를 구별하여 레위 사람들의 몫으로 삼았고, 레위 사람들은 다시 아론 자손의 몫을 구별했습니다. 이것은 민수기 18:21–28에 규정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몫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에 이러한 공급과 구별의 관행이 있었다고 요약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이의 모든 기간에 어떠한 중단이나 문제도 없이 제도가 완벽하게 운영되었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벽 위의 노래와 성전 창고의 곡식

느헤미야 12:1–47 본문 →

처음에는 성벽 위를 가득 채웠던 감사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집에서 계속 봉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일상의 질서가 남습니다. 그날의 기쁨은 성벽 위에서 크게 울려 퍼졌고, 그 기쁨이 가리키는 신실함은 날마다의 몫을 나누는 일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성벽 위의 두 합창대는 행진을 마쳤습니다. 나팔 소리도 언젠가는 멈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는 다음 날에도 사람들이 찾아와야 합니다.

누군가는 노래해야 하고, 누군가는 문을 지켜야 하며, 누군가는 그들이 맡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몫을 가져와야 합니다.

봉헌식에서 울려 퍼진 기쁨은 바로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공동체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