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2–13장 · 성벽 봉헌과 개혁
성벽 위를 걸어 하나님의 집으로
느헤미야 12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성벽 위를 걸으며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느헤미야 4:3에서 도비야는 유다 사람들이 쌓고 있는 성벽을 조롱했습니다. 여우 한 마리만 올라가도 돌담이 무너질 것이라고 비웃었습니다.
한때는 여우 한 마리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받았던 성벽이,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성벽은 백성이 수고하여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기뻐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룬 일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며, 그 성벽 안에서 살아갈 공동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장은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으로 곧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오래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을 길게 기록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벽 봉헌식 앞에 놓인 오래된 이름들
12장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시대를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장들로는 스라야, 예레미야, 에스라,느헤미야 12:1 · 두루새김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 돌아온 공동체의 초기 지도자들입니다. 에스라 2:2에는 돌아온 사람들의 지도자 가운데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기록되어 있고, 에스라 3:2에서는 두 사람이 성전의 제단을 다시 세우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 12장의 첫 명단은 성벽이 완성된 당시의 인물들만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앞서 성전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서 처음 등장하는 에스라라는 이름을 8장에서 율법을 읽어 주었던 서기관 에스라와 곧바로 같은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름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두 인물이 같다고 판단할 수 없으며, 명단의 시대적 배경도 다릅니다.
레위 사람들로는 예수아, 빈누이, 갓미엘, 세레뱌, 유다, 맛다냐가 있었습니다. 맛다냐와 그의 동료들은 감사 노래를 맡았습니다.느헤미야 12:8 · 두루새김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감사 노래를 맡은 사람들과 그들의 전통이 소개됩니다. 9절에서는 박부갸와 운니가 그들의 동료들과 조별로 맞은편에 섰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이 노래를 번갈아 불렀는지, 함께 노래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 노래가 개인이 그때그때 부르는 노래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맡겨진 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어지는 10–11절에서는 예수아부터 얏두아까지 이어지는 제사장 집안의 계보가 기록됩니다.
예수아는 요야김의 아버지이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의 아버지이며, 엘리아십은 요야다의 아버지였습니다.느헤미야 12:10 · 두루새김
느헤미야 3:1에서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에 참여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이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처음 돌아온 세대와 느헤미야 시대를 하나의 제사장 계보 안에서 연결합니다. 더 뒤의 인물들도 등장하므로 명단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보존되고 정리된 기록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의 제단을 다시 세우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일을 맡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벽은 한 번의 건축으로 완성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의 삶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맡겨진 일은 이어졌다
12절부터는 요야김 시대의 제사장 집안 우두머리들이 기록됩니다.
앞부분에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 시대의 제사장 우두머리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그 집안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서 우두머리가 된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스라야 집안의 므라야, 예레미야 집안의 하나냐, 에스라 집안의 므술람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개인의 이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어느 집안에서 그 사람이 나왔는지도 함께 기록합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일이 개인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집안과 계보를 통해 이어지는 제도 안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명단의 모든 항목이 완전하게 보존된 것은 아닙니다.
17절에는 미냐민 집안의 우두머리 이름이 없습니다. 원래 있던 이름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빠졌을 수 있고, 뒤에 나오는 빌대가 두 집안과 관련되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 세대의 기록이 한곳에 모이다
22–23절에서는 명단을 기록한 시대에 관한 설명이 나옵니다.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시대에 레위 사람들의 집안 우두머리들이 명부에 기록되었습니다. 제사장들도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다스리던 때에 기록되었습니다.느헤미야 12:22 · 두루새김
페르시아에는 다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여럿 있었습니다. 본문은 어느 다리오를 말하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다스리던 때에」에 해당하는 원문 표현을 그 통치 기간 동안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때까지라는 시간적 범위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계보에 나오는 요나단과 요하난의 관계에도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10–11절의 계보와 22–23절의 표현은 이름과 세대 관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이 명단만으로 각 제사장이 언제 일을 맡았는지, 모든 인물이 정확히 어떤 순서로 활동했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23절에는 이들의 이름이 「그동안 일어난 일을 적은 기록」에 올랐다는 설명도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록은 반드시 오늘날 성경의 역대상·하를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집안을 기록한 자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은 다시 그들이 맡아 했던 일로 돌아갑니다.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였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조별로 서로 마주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명령한 대로 한 일이었습니다.느헤미야 12:24 · 두루새김
24절은 그 일을 다윗의 명령과 연결합니다. 역대상 16:4–7과 25:1–8에는 다윗이 레위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맡을 일을 조직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은 노래하는 사람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5절에는 성전 문들에 딸린 창고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성전의 찬양이 계속되려면 노래하는 사람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의 물품을 보관하고 관리하며, 정해진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이제 오래된 명단의 시간이 끝나고,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으로 옮겨 갑니다.
봉헌식은 성벽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27절부터 장면이 크게 바뀝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을 치를 때가 되자, 사람들은 레위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에서 그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려 했습니다. 심벌즈와 하프와 수금에 맞추어 감사하고 노래하며 기쁘게 예식을 치르려는 것이었습니다.느헤미야 12:27 · 두루새김
노래하는 사람들도 예루살렘 주변의 마을과 들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이는 성벽이 예루살렘에 있는 건축물이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기뻐하는 공동체는 예루살렘 안에만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은 단순히 공사가 끝났다는 사실을 발표하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성벽을 하나님 앞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예상 밖의 행동이 나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자신들을 정결하게 하고, 백성과 성문들과 성벽도 정결하게 했습니다.느헤미야 12:30 · 두루새김
예식을 진행하는 사람들 자신도 정결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정결함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예배가 사람의 마음과 바깥의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도시와 그 시설까지 하나님 앞에서 구별하려 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정결하게 한 성벽 위로 올라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으로 풀어 옮긴 히브리어는 하누카(חֲנֻכָּה)입니다. 무엇인가를 특별한 목적을 위해 바치거나 사용하기 시작하는 일을 나타냅니다. 에스라 6:16에서도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을 가리킬 때 같은 말이 사용됩니다. 여기서 「정결하게 했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히 돌에 묻은 먼지를 닦고 성문을 청소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타헤르(טָהֵר)는 의식을 통해 정결하게 하거나 정결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다만 구체적인 의식의 절차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 감사 합창대가 서로 다른 길을 걷다
31절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시점이 바뀝니다.
나는 유다의 지도자들을 성벽 위로 올라가게 하고, 감사 노래를 부르는 큰 합창대 둘을 세웠습니다. 한 합창대는 성벽 위를 따라 오른쪽으로 쓰레기 문을 향해 행진했습니다.느헤미야 12:31 · 두루새김
앞부분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을 전하는 기록이었지만, 이제 느헤미야가 자신이 행한 일을 직접 이야기합니다. 원문에서는 감사라는 말이 감사를 드리는 무리 자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앞서 명단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맡은 일이 이제 공동체가 함께하는 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첫 번째 합창대
첫 번째 무리는 성벽 위에서 오른쪽으로, 쓰레기 문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뒤에는 호사야와 유다 지도자들의 절반이 따라갑니다. 제사장 자손들은 나팔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윗의 악기를 들었습니다.
스가랴의 동료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들었습니다. 서기관 에스라는 그들 앞에서 갔습니다.느헤미야 12:36 · 두루새김
에스라는 앞서 백성에게 율법을 읽어 주고 가르쳤던 인물입니다. 이제 그는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의 행진에서도 앞장섭니다.
그 무리는 샘 문을 지나 다윗 성의 계단을 올라가고, 다윗의 집 위쪽을 지나 동쪽 물 문까지 나아갑니다. 그들이 걷고 있는 장소는 단순히 새로 건축된 성벽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의 오래된 기억을 품은 도시였습니다.
두 번째 합창대
이어서 두 번째 무리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두 번째 합창대는 반대쪽으로 갔습니다. 나는 백성의 절반과 함께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를 걸었습니다. 우리는 화덕 망대를 지나 넓은 성벽까지 갔습니다.느헤미야 12:38 · 두루새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무리와 함께 성벽 위를 걷습니다. 두 번째 무리는 화덕 망대와 넓은 성벽, 에브라임 문과 옛 문, 물고기 문, 여러 망대와 양 문을 지나 경비 문에 이릅니다.
두 합창대가 하나님의 집에 섰습니다. 나도 그곳에 섰고, 관리들의 절반도 나와 함께 섰습니다.느헤미야 12:40 · 두루새김
그들은 자신들이 완성한 성벽을 따라 행진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성벽을 바라보며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성벽을 따라 나아간 두 길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한곳에서 끝났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당시 성벽의 정확한 경로와 모든 문들의 위치는 오늘날 하나의 지도 위에 완전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시편 48:12–14에서는 시온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며 성벽과 요새를 살피라고 합니다. 그 목적은 그 도시의 튼튼함을 자랑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심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 있습니다. 느헤미야 12장의 행진은 시편의 이 말씀을 직접 실행했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성벽을 둘러보는 행동이 하나님께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로 연결됩니다. 여기에는 시편 127:1과도 연결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시편은 여호와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건축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야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않으시면 지키는 사람이 깨어 있어도 헛되다고 말합니다. 느헤미야 12장이 이 시편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건축과 경비라는 인간의 수고가 하나님의 돌보심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로 만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다
두 합창대가 하나님의 집에 선 뒤, 본문은 다시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제사장들은 나팔을 들고 있었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끄는 이스라히야와 함께 소리를 높였습니다. 긴 명단으로 시작했던 장이 이제 실제로 그 사람들이 맡은 일을 하는 장면에 이른 것입니다.
그날 사람들은 많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자들과 아이들도 기뻐했고,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는 소리는 멀리서도 들렸습니다.느헤미야 12:43 · 두루새김
그들의 수고와 하나님의 도우심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실제로 일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이룬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 안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앞선 행진에서 본문은 주로 지도자들과 제사장,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절정에서는 여자들과 아이들도 분명하게 언급됩니다.
성벽은 지도자들만을 위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는 가정과 아이들,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삶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멀리까지 들린 소리
느헤미야서의 앞부분에서 예루살렘은 수치와 비웃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느헤미야 2:17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해져 있고 성문들이 불탔으며 자신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4장에서는 적들이 성벽 건축을 조롱하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에서 들려오는 것은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들의 탄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소리입니다.
성벽은 안과 밖을 구별하는 구조물입니다. 그러나 그날 성벽 안에서 울려 퍼진 기쁨의 소리는 그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왜 성벽 봉헌식 뒤에 저장 방 이야기가 나올까?
43절에서 장이 끝났다면 매우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절은 갑자기 성전의 물품을 보관하는 방과 예물과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날 예물과 첫 수확물과 십일조를 보관하는 방들을 맡을 사람들이 세워졌습니다. 이들은 여러 도시의 밭에서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을 거두어 그 방들에 모아 두는 일을 맡았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을 유다 사람들이 기뻐했기 때문입니다.느헤미야 12:44 · 두루새김
43절에서도 「그날」 사람들이 많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기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4절에서도 「그날」 물품을 보관하는 방들을 맡을 사람들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본문은 큰 기쁨이 있었던 날과 실제 일을 맡을 책임을 정한 날을 연결합니다.
기쁨이 실제적인 지원으로 이어지다
백성은 단순히 성벽이 완성된 사실만을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맡은 일을 하는 것도 기뻐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그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율법으로 정해진 몫을 공급할 책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10장의 약속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0장에서는 예물과 첫 수확물과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기로 약속했습니다. 12장에서는 그것들을 보관하는 방들을 맡을 사람들을 세우고, 여러 도시의 밭에서 정해진 몫을 거두도록 합니다.
이 일의 세부적인 운영 방식까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특히 「여러 도시의 밭에서」라는 표현이 실제 수집 장소를 가리키는지, 각 밭을 기준으로 정해진 몫을 가리키는지에는 해석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몫을 모아 보관하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봉사가 계속되도록 하려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성전의 창고는 성벽 위의 합창대만큼 눈에 띄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 창고도 필요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기억하다
45–46절에서는 다시 과거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에 따라 자기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정결하게 하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도 그 명령에 따라 맡은 일을 했습니다.느헤미야 12:45 · 두루새김
이어서 다윗과 아삽 시대부터 찬양과 감사의 노래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윗은 제사와 찬양을 맡을 일을 조직했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역대하 5:11–14와 7:1–10에는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하나님께 바친 예식과 찬양, 제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다스림 아래 있었습니다. 정치적 상황은 과거와 같지 않았습니다. 왕국의 영광도 그대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그날의 몫을 주었다
마지막 47절은 다시 현재와 과거를 함께 묶습니다.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에 온 이스라엘은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그날의 몫을 주었습니다. 또 레위 사람들의 몫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따로 떼어 놓았습니다. 레위 사람들도 아론 자손의 몫을 그렇게 떼어 놓았습니다.느헤미야 12:47 · 두루새김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은 특별한 날에 이루어진 큰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행사가 끝난 뒤에도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은 계속 맡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몫도 날마다 공급되어야 했습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얻은 것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따로 떼어 레위 사람들의 몫으로 삼았고, 레위 사람들은 다시 아론 자손의 몫을 그렇게 떼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민수기 18:21–28에 정해진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몫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에 이러한 공급과 따로 떼어 놓는 관행이 있었다고 요약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이의 모든 기간에 어떠한 중단이나 문제도 없이 제도가 완벽하게 운영되었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벽 위의 노래와 성전 창고의 곡식
처음에는 성벽 위를 가득 채웠던 감사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집에서 계속 봉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일상의 질서가 남습니다. 그날의 기쁨은 성벽 위에서 크게 울려 퍼졌고, 그 기쁨이 가리키는 신실함은 날마다의 몫을 나누는 일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성벽 위의 두 합창대는 행진을 마쳤습니다. 나팔 소리도 언젠가는 멈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는 다음 날에도 사람들이 찾아와야 합니다.
누군가는 노래해야 하고, 누군가는 문을 지켜야 하며, 누군가는 그들이 맡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몫을 가져와야 합니다.
예식에서 울려 퍼진 기쁨은 바로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공동체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