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11장 · 문서로 세운 약속
성벽 안에 살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느헤미야 11장은 뜻밖의 문제를 다룹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완성되었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겠다고 엄숙히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성읍에는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이 문제는 느헤미야 7:4에서 이미 제기되었습니다. 「성읍은 넓고 컸지만, 그 안에 사는 백성은 적었고 집들도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느헤미야 7:4의 내용)
성문을 지키고 성전을 섬길 사람이 있어야 했고, 가정을 이루고 생업에 종사하며 성읍의 삶을 유지할 주민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1장은 성벽이나 성전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은 여기서 「거룩한 성읍」이라고 불립니다. 거룩한 성읍이라는 명칭을 가진 곳에 왜 사람들이 자원하여 몰려들지 않았을까요?
예루살렘에 살기 위해서는 다른 성읍에서 누리던 생활 기반을 떠나야 했을 수 있습니다. 밭과 포도원, 친족과의 관계, 익숙한 생업을 두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건된 성벽이 모든 위험을 없애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본문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살기를 꺼렸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루살렘의 거주 인구를 늘리기 위해 공동체가 특별한 조치를 시행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거룩한 성읍은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이름만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성읍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제비에 뽑힌 사람들과 자원한 사람들
예루살렘 거주자를 정하기 위해 백성은 제비를 뽑았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살았다. 나머지 백성은 제비를 뽑아 열 명 가운데 한 명을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살게 하고, 열에 아홉은 다른 성읍들에 살게 했다.느헤미야 11:1 · 본디새김
이 비율을 예루살렘에 전체 인구의 정확히 10%가 살았다는 통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지도자들과 기존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나머지 백성 가운데 일부를 선발하여 예루살렘에 살도록 하는 조치가 설명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본래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었다는 뜻을 가집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성전이 있는 곳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시편 46:4와 48:1–2에서도 하나님의 도성과 거룩한 산이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제비뽑기 다음에 또 다른 행동이 등장합니다.
백성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한 모든 사람에게 복을 빌었다.느헤미야 11:2 · 본디새김
제비는 공동체가 책임을 배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것은 각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맡은 자리를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살아갈 마음도 필요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일은 그 사람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살면 성읍에 사람이 늘어나고, 공동체의 중심지가 실제로 기능할 수 있게 됩니다.
백성은 그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은 그 사람 혼자 감당해야 할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인정하고 축복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공동체가 누군가의 헌신으로 유지된다면, 그 공동체는 그 헌신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자원한」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놓거나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사사기 5:2과 5:9에서 백성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을 찬양하는 표현과 같은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전쟁에 자원하여 참여하는 사람들의 헌신을 말하지만, 느헤미야에서는 성읍에 거주하는 일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물론 자원한 사람들이 제비에 뽑힌 사람들과 완전히 별개의 집단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제비에 뽑혀 기꺼이 응한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제비뽑기와 별도로 자원한 사람들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비뽑기는 이스라엘 전통에서 사람의 이해관계를 넘어 결정을 맡기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잠언 16:33은 제비를 뽑는 인간의 행동과 그 결과를 주관하시는 여호와야훼를 연결합니다. 여호수아 14:2에서도 약속의 땅을 분배할 때 제비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11장은 이번 제비뽑기의 각 결과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였다고 별도로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선정된 것을 하나님께서 그 개인에게 특별한 사명을 직접 계시하신 사건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름과 숫자가 말해 주는 것
이제 본문은 길고 복잡한 명단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예루살렘에 거주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이 등장합니다. 아타야와 마아세야의 조상이 차례로 소개되고, 살루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오늘의 독자에게는 낯선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누구의 자손이며 어느 가문에 속했는지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의 땅에 걸쳐 있는 특별한 성읍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5:8에서는 유다의 경계를 설명하면서 예루살렘 남쪽의 힌놈 골짜기를 언급하고, 여호수아 18:28에서는 예루살렘을 베냐민의 성읍 목록에 포함합니다. 사무엘하 5:6–9에 따르면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자신의 도성으로 삼았습니다.
느헤미야 11장은 다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유다와 베냐민의 가문들을 앞세웁니다. 특히 유다 자손 가운데 베레스의 후손이 등장합니다. 베레스는 창세기 38장에서 유다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며, 룻기 4:18–22에서는 다윗의 조상으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명단에서 베레스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가계 정보 이상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유다의 역사와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이 이 사람들 모두를 다윗 왕가의 후계자로 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끌려갔지만, 유다와 베냐민의 역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손들이 이제 다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습니다.
명단은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 줍니다.
숫자가 가리키는 사람들
6절은 베레스 자손이 468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8절은 베냐민 자손이 928명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숫자들은 막연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집단의 규모를 기록합니다.
다만 두 숫자를 곧바로 합쳐 예루살렘에 거주한 일반 백성의 전체 수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대표적인 가문과 그에 속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모든 주민이 빠짐없이 같은 방식으로 집계되었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특히 8절의 숫자가 정확히 어느 범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지에도 해석상 여지가 있습니다.
6절은 베레스 자손을 「힘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문맥에 따라 군사적 용맹을 뜻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역량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을 무조건 군인이라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읍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9절에서는 구체적인 감독 체계도 나타납니다.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을 감독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성읍을 다스리는 둘째 책임자였다.느헤미야 11:9 · 본디새김
다만 「둘째 책임자」라는 표현은 성읍의 두 번째 책임자를 뜻할 수도 있고, 성읍의 둘째 구역과 관련된 직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압축된 표현만으로 어느 쪽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사실은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실제적인 행정과 감독의 조직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명단의 이름들을 보면 사람은 한 명씩 등장하지만, 각 사람 뒤에는 가족과 가문,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 성벽은 한 세대가 쌓을 수 있지만, 그 성벽 안에 살아가는 공동체는 여러 세대의 삶이 이어져 형성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 9:2–17에도 예루살렘의 주민과 제사장, 레위 사람, 문지기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목록에는 비슷한 가문과 이름들이 나타나지만, 세부 이름과 숫자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항목을 반드시 같은 개인과 같은 시점의 기록으로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공통점은 두 본문 모두 예루살렘 공동체를 이해할 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가문과 역할을 보존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유다와 베냐민 자손의 명단이 끝나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문지기들의 명단이 이어집니다.
제사장 가운데는 「하나님의 집 책임자」가 있었고, 하나님의 집에서 실제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레위 사람 가운데는 성전의 바깥일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기도와 감사의 시작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들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있었습니다.
성전에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제사가 계속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변의 여러 일을 감당할 사람들도 필요했습니다.
성전의 바깥일도 누군가 맡아야 했다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삽브대와 요사밧은 하나님의 집에 딸린 바깥일을 맡았다.느헤미야 11:16 · 본디새김
성전의 바깥일이 정확히 어떤 업무를 모두 포함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전 시설과 관련된 외부 업무나 관리 활동을 가리킬 수 있지만, 구체적인 직무 목록을 확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예배가 지속되려면 눈에 보이는 종교적 행위뿐 아니라 그 주변의 실무도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본문은 그 일의 책임자들까지 이름으로 기록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
또 맛다냐가 있었다. 맛다냐는 미가의 아들, 미가는 삽디의 아들, 삽디는 아삽의 아들이었다. 맛다냐는 기도할 때 감사를 시작하는 우두머리였고, 박부갸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둘째였다. 또 압다가 있었다. 압다는 삼무아의 아들, 삼무아는 갈랄의 아들, 갈랄은 여두둔의 아들이었다.느헤미야 11:17 · 본디새김
아삽은 다윗 시대의 성전 찬양 전통과 연결되는 인물입니다. 역대상 16:4–7에서는 다윗이 레위 사람들을 세워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한 일이 기록됩니다. 그 가운데 아삽이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누군가가 감사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응답하거나 이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실제 예배의 순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재구성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응이지만,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이끄는 일에는 준비와 책임이 필요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절기 동안 잠시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으로만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거주하며 맡은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명단에 포함됩니다.
성전의 경배가 계속되려면 그런 봉사를 감당할 사람들도 예루살렘에 살아야 했습니다.
문들을 지키는 사람들
문지기인 악굽과 달몬과 그들의 형제들, 곧 문들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 172명이었다.느헤미야 11:19 · 본디새김
역대상 9:17–27에 따르면 문지기들은 하나님의 집의 출입과 관련된 일을 맡았고, 성전의 방과 물품에 대한 책임도 일부 담당했습니다. 느헤미야 11장은 그 모든 일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문지기들이 실제로 문들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명시합니다.
성문을 세우는 일과 그 문을 지키는 일은 다릅니다.
성벽과 성문이 완성되었다 해도,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성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공간을 마련하는 일과 그 공간에서 필요한 일을 지속하는 것은 구별됩니다.
건물을 세우는 일에는 완공의 순간이 있지만, 그 건물의 목적을 지키는 일에는 매일의 책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는 어떤 질서가 형성되었는가
20절에서는 시선이 다시 예루살렘 밖으로 옮겨 갑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유다의 모든 성읍에 흩어져 저마다 자기 상속지에서 살았다.느헤미야 11:20 · 본디새김
예루살렘은 중요한 중심지였지만, 모든 사람이 그곳에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은 예루살렘 한곳에만 집중되지 않았습니다.
오벨에 거주한 성전 봉사자들
21절은 성전 봉사자들이 오벨에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오벨은 예루살렘의 성전 지역과 다윗성 사이의 지형과 관련된 장소입니다. 성전 봉사자들이 이 지역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생활과 성전 봉사가 공간적으로 가까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시하와 기스바가 성전 봉사자들을 맡아 다스렸다고 기록합니다. 성전 봉사자들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과 구별되는 집단으로 등장합니다. 에스라 2:43–54에도 이들의 가문이 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기원과 법적 지위를 모두 정확하게 재구성하기는 어렵지만, 성전의 봉사 체계에서 별도의 집단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누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뿐 아니라, 어디에 살았는지도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성전의 봉사가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장소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령 아래 있는 노래하는 사람들
22–23절에서는 예루살렘의 레위 사람들을 감독하는 웃시가 등장합니다. 웃시는 아삽 자손인 노래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하나님의 집의 일을 감독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왕의 명령이 내려져 있었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이 날마다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느헤미야 11:23 · 본디새김
「왕의 명령」이 정확히 어느 왕의 명령을 가리키는지 본문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다윗 시대에 정해진 성전 찬양의 규정을 떠올릴 수도 있고, 느헤미야 시대의 페르시아 왕권과 관련된 조치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역대상 25:1–8에는 다윗이 노래하는 사람들의 직무를 조직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느헤미야 11:24에서는 곧바로 왕 곁에서 백성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문맥 때문에 페르시아 왕의 명령으로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왕의 명령이 무엇을 정했는지 역시 해석이 갈립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일일 직무를 규정했다는 이해와,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날마다 제공하도록 했다는 이해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후자의 의미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 구체적인 지원 물품이나 지급 주체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절기에만 모여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봉사는 지속되어야 했으며, 이를 위한 규정과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는 왕과 유다 백성 사이의 관계가 등장합니다.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으로, 왕 곁에서 백성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맡았다.느헤미야 11:24 · 본디새김
느헤미야 시대의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당시의 제국 통치와 유다 공동체 사이의 행정적 관계를 보여 주는 기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브다히야의 정확한 권한이 무엇이었는지, 왕의 궁정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어떤 개별 사건을 처리했는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9장에서 백성은 외국 왕들이 자신들을 다스린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11장에서는 바로 그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정치적 독립을 회복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성읍에 주민을 배치하고, 성전의 봉사를 조직하고, 백성의 일을 담당할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의 삶은 제약을 받았지만, 그 제약 가운데서도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밖에도 이스라엘이 살고 있었다
25절부터 마지막까지는 성읍과 마을의 이름이 길게 이어집니다.
기럇아르바, 디본, 여갑스엘, 몰라다, 브엘세바, 시글락, 라기스, 아세가 등이 등장합니다. 이어서 베냐민 자손들이 거주한 게바, 미그마스, 벧엘, 아나돗, 라마, 로드, 오노와 같은 곳도 기록됩니다.
왜 예루살렘에 살 사람들을 선정하는 이야기에서 다른 성읍들의 이름을 이렇게 길게 기록했을까요?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면, 그곳에 거주한 사람들의 명단에서 끝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루살렘 밖으로 시선을 넓힙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공동체의 중심지였지만, 그 공동체 전체가 예루살렘에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유다의 성읍들
25–30절은 유다 자손의 거주지를 소개합니다.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 라기스와 그 밭들, 아세가와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었다.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힌놈 골짜기까지 자리 잡았다.느헤미야 11:30 · 본디새김
브엘세바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남쪽 지역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명입니다. 사무엘상 3:20에서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땅의 남북을 나타냅니다. 느헤미야 11장은 그보다 좁은 범위에서 유다 사람들이 거주한 남쪽 지역을 설명합니다.
힌놈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의 지형과 연결됩니다. 여호수아 15:8에도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를 설명하면서 등장합니다.
다만 이 목록을 당시 유다 지방의 정확한 행정 경계나 완전한 영토 지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열거된 성읍들의 위치 가운데는 오늘날 정확한 지점을 확정하기 어려운 곳도 있고, 명단이 모든 정착지를 빠짐없이 기록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밭이 딸린 마을들에도 유다 자손 가운데 일부가 살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기럇아르바와 거기에 딸린 촌락들, 디본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느헤미야 11:25 · 본디새김
그곳은 사람들이 주소를 두고 있는 장소일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출을 얻는 장소였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 10장에서 공동체가 약속한 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은 첫 수확물과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한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땅을 경작하고 수확물을 얻는 사람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가 계속되고 성전 봉사가 유지되는 데는,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생활도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밖에 사는 사람들을 공동체의 주변적인 구성원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들 역시 이스라엘의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냐민의 성읍들
31절부터는 베냐민 자손의 거주지가 기록됩니다. 게바와 미그마스, 벧엘, 아나돗, 놉과 라마 등은 이스라엘의 오래된 역사에 등장하는 이름들입니다.
미그마스는 사무엘상 13–14장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시대에 블레셋 사람들과 관련된 사건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아나돗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고향이었습니다(예레미야 1:1).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유다의 죄를 고발했던 사람입니다.
놉은 사무엘상 21–22장에서 제사장들이 살던 곳으로 등장합니다. 사울은 놉의 제사장들이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죽이게 했습니다. 물론 느헤미야 11장은 이러한 오래된 사건들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이 지명들을 통해 과거의 모든 이야기를 떠올리도록 의도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공동체는 완전히 새로운 땅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상들이 살았던 땅, 왕들과 예언자들의 역사가 남아 있는 성읍들에 다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복구되었다는 소식만으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다시 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 회복의 일부였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레위 사람들
36절은 짧고 다소 모호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레위 사람들 가운데 유다 소속의 몇몇 조는 베냐민에 배속되었다.느헤미야 11:36 · 본디새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동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이 유다에 속해 있던 레위 사람들의 일부가 베냐민 땅으로 이동했다는 뜻인지, 아니면 베냐민 지역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뜻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레위 사람들의 역할이 유다와 베냐민의 여러 지역에 걸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 21장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여러 지파의 땅 가운데 성읍들을 받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지파처럼 하나의 독립된 큰 영토를 상속받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느헤미야 11장에서도 그들은 예루살렘에만 거주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예루살렘에 사람을 모으는 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성벽 안팎에 펼쳐진 사람들의 삶
성벽은 돌로 세워졌지만, 그 성읍의 삶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맡아 살아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모두 한곳에 살 필요는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자기 몫을 감당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이 일상의 행정과 생활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벽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유다와 베냐민의 여러 지역에 배치된 레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습니다. 긴 이름과 숫자와 지명의 기록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만이 아니라, 그 도시와 연결된 수많은 마을과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성벽 안에는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성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벽 밖에는 밭과 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곳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과 거주지가 하나의 기록 안에 놓여 있습니다.
느헤미야 11장은 그렇게, 다시 세워진 성읍 안팎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