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물은 나왔지만, 모세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민수기 20장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첫 절에서 미리암이 죽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론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모세는 자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는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바위가 물을 내고,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향해 다시 이동하려 합니다. 그러나 에돔이 길을 막으면서 그들은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민수기 20장은 생존에 필요한 물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둘러싼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곳에는 한 가지 질문이 흐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일을 오랫동안 수행한 지도자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분의 말씀을 자기 방식으로 바꾸어도 됩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수많은 위기를 겪었고,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맞설 때마다 그들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아론 역시 제사장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20장은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여정을 완성하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20장 본문 읽기 →

미리암의 죽음과 다시 찾아온 목마름

민수기 20:1–5 본문 →

20장은 시간과 장소를 짧게 알려 줍니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친 광야에 도착했다. 백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미리암이 죽었고, 그곳에 묻혔다.민수기 20:1 · 본디새김

미리암은 출애굽기 15:20–21에서 이집트의 군대가 멸망한 뒤 소고를 들고 여인들을 이끌며 여호와야훼를 찬양했던 사람입니다. 민수기 12장에서는 모세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출애굽의 중요한 순간들에 등장했던 미리암의 삶이 여기서는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본문은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신적 판결과 연결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죽음을 특정한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새로운 위기가 찾아옵니다.

회중에게 물이 없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맞서 모였다.민수기 20:2 · 본디새김

백성은 자신들뿐 아니라 가축도 죽게 될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생활이 불편하다는 불평이 아닙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는 이전의 불신앙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들이 나타납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말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숨질 때 우리도 숨졌더라면 좋았을 텐데요.」민수기 20:3 · 본디새김

이들이 가리키는 「우리 형제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앞선 심판 사건들에서 죽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특정 사건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 당신들은 우리를 이 몹쓸 곳으로 데려오려고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렸습니까? 이곳은 씨를 뿌릴 곳도,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나 석류나무가 있는 곳도 아니며, 마실 물도 없습니다.」민수기 20:5 · 본디새김

민수기 13:23에서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서 포도와 석류와 무화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은 바로 그 작물들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이 원했던 삶은 분명합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며 물을 마실 수 있는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불평은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아직 그런 땅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물이 필요하다는 요구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결핍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서 곧장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들의 불평을 듣고 여호와야훼께서 즉시 벌을 내리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을 주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첫째 달」이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33:38에 따르면 이 장 후반에 기록된 아론의 죽음은 출애굽 제40년 다섯째 달 첫날에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민수기 20장의 사건들은 광야 여정의 끝 무렵에 자리합니다. 다만 20:1 자체가 첫째 달의 연도를 명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위에게 말하여라」 —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방식

민수기 20:6–9 본문 →

모세와 아론은 백성의 불평을 듣고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갑니다.

그들은 백성과 계속 다투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자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구체적인 명령을 주십니다.

「너는 지팡이를 가져라.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아라. 너희는 그들의 눈앞에서 바위에게 말하여라. 그러면 바위가 제 물을 낼 것이다. 너는 그들을 위해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에게 마시게 하여라.」민수기 20:8 · 본디새김

출애굽기 17:5–6에서는 물이 없을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는 명령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바위를 쳤고 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명령이 다릅니다.

지팡이를 가져오되, 바위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이전에 바위를 쳐서 물을 얻은 경험이 이번에도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해야 할 일은 그 말씀을 믿고,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회중의 눈앞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조금 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내리시는 판결에서 드러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물을 얻는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신지를 보게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9절은 모세가 「여호와야훼 앞에서 지팡이를 가져왔다」고 기록하지만, 이것이 앞서 싹이 났던 아론의 지팡이와 동일한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지팡이의 정확한 정체를 확정하기보다, 여호와야훼께서 가져오라고 하신 지팡이를 모세가 가져왔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에게 물을 내 주랴?」 — 모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민수기 20:10–12 본문 →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바위 앞으로 모읍니다.

여기까지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모세가 백성을 향해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바위 앞으로 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거역하는 자들아, 들어 보아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에게 물을 내 주랴?」민수기 20:10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바위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기록하는 모세의 말은 바위가 아니라 백성을 향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자기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많은 물이 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이 마셨다.민수기 20:11 · 본디새김

이 사건의 의미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12절에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의 눈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데려가지 못할 것이다.」민수기 20:12 · 본디새김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거룩함을 알아보아야 할 자리에서, 그 거룩함을 마땅히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바위를 친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와 아론 두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믿지 않고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아론이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그 잘못에 참여했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습니다. 다만 바위에게 말하라는 명령이 두 사람에게 함께 주어졌고, 판결도 두 사람에게 함께 내려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일과,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그분을 신뢰하는 일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백성의 불평에 화가 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전에 바위를 쳤던 경험에 의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을 지나치게 앞세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본문의 관찰에서 출발한 해석이지, 본문이 직접 밝힌 동기는 아닙니다. 특히 모세가 「우리가」라고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과 아론이 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 표현은 모세와 아론이 실제로 물을 내는 행위의 수행자가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호와야훼께서 물을 주신다는 말씀 대신 자신들의 행동을 앞세워 말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두 번 쳤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횟수 자체를 문제 삼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한 번만 쳤다면 괜찮았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바위를 치라는 명령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51도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두 사람이 므리바 가데스에서 여호와야훼께 신의를 지키지 않았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시편 106:32–33은 백성이 모세를 격분하게 했고, 그 결과 모세가 자기 입술로 경솔하게 말했다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성경의 다른 본문은 모세의 말과 행동을 함께 고려하게 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한 동작만이 모든 잘못의 원인이었다고 좁히지는 않습니다.

물은 나왔지만 순종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민수기 20:13 본문 →

11절과 12절은 바로 이어서 읽어야 합니다.

많은 물이 나왔다는 사실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셨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 물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모세와 아론이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지도자가 저지른 잘못까지 승인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사건 안에서 백성을 향한 공급과 지도자를 향한 심판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것이 므리바의 물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에서 여호와야훼와 다투었고, 여호와야훼는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냈다.민수기 20:1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와 다투었기 때문에 그곳의 물은 므리바의 물이라고 불립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방식으로 여호와야훼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사건 안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백성에게 물을 공급하셨고, 자신의 말씀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한 지도자들에게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두 사건 모두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13절 마지막의 「그들 가운데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지, 앞서 언급한 물을 가리키는지는 문법적으로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핵심은 여호와야훼의 거룩함이 사람의 실패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모세가 수행한 모든 일이 무효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봉사와 지도력이 이번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없애 주지도 않습니다.

약속의 땅은 여전히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으로 백성을 데려가는 일을 모세와 아론이 완성하지는 못합니다.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 — 에돔에게 요청한 길

민수기 20:14–17 본문 →

물이 나오는 사건 뒤에 이야기는 갑자기 외교적인 협상으로 옮겨 갑니다.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들을 보냈다.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닥친 모든 고난을 알고 있습니다.』」민수기 20:14 · 본디새김

창세기 25:24–26에서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로 태어납니다. 창세기 36:1은 에서를 에돔이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에돔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두 민족의 조상에 관한 전승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외국 왕에게 통행 허가를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친족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앞세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간 일,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았던 일,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들을 괴롭힌 일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을 때 그분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자, 여호와야훼는 우리 목소리를 듣고 사자를 보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영토 끝에 있는 성읍 가데스에 있습니다.』」민수기 20:16 · 본디새김

여기서 「사자」가 누구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뒤이어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다는 동사의 주어를 여호와야훼로 읽을 수도 있고, 앞의 사자와 연결하여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여호와야훼께서 이끌어 내셨다는 쪽으로 옮겼습니다.

에돔에게 자신들의 고난을 상기시키고, 자신들이 정복자로 오려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고난을 지나 이동 중인 형제 민족임을 알리려는 외교적 호소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백성은 현재의 결핍 속에서 출애굽을 원망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에돔에게는 그 출애굽을 여호와야훼께서 고난을 들으시고 행하신 구원으로 설명합니다.

사자들은 이제 구체적인 요청을 전합니다.

「『부디 우리가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을 가로질러 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왕의 길로 가겠습니다. 당신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민수기 20:17 · 본디새김

여기서 「왕의 길」은 왕이 사용하는 길 또는 왕의 권한 아래 있는 주요 도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에돔의 농경지와 수자원을 침해하지 않고 정해진 통행로를 따라 지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읽힙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에돔의 땅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허락을 구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의 땅을 어디서든 마음대로 통과하거나 빼앗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열리지 않는 에돔의 길

민수기 20:18–21 본문 →

그러나 에돔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에돔이 그에게 말했다. 「내 땅을 지나가지 마라. 그러다가는 내가 칼을 들고 너를 맞으러 나갈 것이다.」민수기 20:18 · 본디새김

형제라는 호소도, 고난의 역사도, 우물물을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요청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큰길로 올라가겠습니다. 나와 내 가축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내가 그 값을 내겠습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저 내 발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민수기 20:19 · 본디새김

첫 요청에서는 우물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을 마시게 된다면 값을 치르겠다고 합니다. 이는 무조건 물을 사용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통행을 허락받기 위해 물 사용의 대가까지 지불하겠다는 추가 제안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돔은 다시 거절하고, 이번에는 실제로 많은 병력을 이끌고 나섭니다.

이제 통행 문제는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싸우지 않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도록 허락하기를 거절했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피해 방향을 돌려 떠났다.민수기 20:21 · 본디새김

여기서 본문은 에돔의 거절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직접적인 평가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싸우라는 명령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을 받았지만 길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길이 열리지 않자 방향을 돌립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이, 그 목적지에 이르는 모든 길이 원하는 순간에 열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에돔의 땅을 지나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방향을 돌려 떠난 뒤, 이스라엘은 더욱 큰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신명기 2:4–6과 함께 읽을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에서 자손의 영토를 지날 때 그들과 다투지 말고, 음식과 물을 값을 치르고 사라고 명령받았던 일을 회상합니다. 두 본문은 세부적인 장면과 강조점이 다르지만, 에돔의 땅을 무력으로 차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방향에서는 연결됩니다.

「아론은 자기 겨레에게로 모아들여질 것이다」 — 호르 산의 판결

민수기 20:22–26 본문 →

이스라엘은 가데스를 떠나 호르 산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에돔 땅의 경계에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론은 자기 겨레에게로 모아들여질 것이다. 너희가 므리바의 물에서 내 명령을 거역했으므로, 그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민수기 20:24 · 본디새김

그러나 이번에는 그 판결이 구체적인 죽음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죽음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아론에게서 그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혀라. 아론은 모아들여져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민수기 20:26 · 본디새김

여기서 그 옷은 단순히 개인이 평소에 입는 의복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론은 제사장이며, 그의 제사장 직분은 특별한 의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민수기 20장에서 아론의 옷을 엘르아살에게 입히는 행위는 제사장 직분의 계승을 나타냅니다.

제사장 직분은 아론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일이었고, 이제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일을 다음 세대에게 맡기십니다.

조금 더 깊이

「자기 겨레에게로 모아들여질 것이다」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죽음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창세기 25:8에서는 아브라함이, 35:29에서는 이삭이 자기 겨레에게로 모아들여졌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49:33에서는 야곱에게도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조상의 무덤에 함께 묻힌다는 뜻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는 실제 매장 장소와 별개로 죽음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죽음 이후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민수기 20장의 초점은 아론이 곧 죽게 되며, 그의 삶과 직무가 여기서 끝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28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때 입을 옷을 상세히 규정합니다. 출애굽기 29:29–30은 아론의 거룩한 옷이 그의 후손에게 이어지도록 규정합니다.

세 사람이 올라갔고, 두 사람이 내려왔다

민수기 20:27–29 본문 →

27절은 모세가 여호와야훼의 명령대로 했다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한 대로 했다. 그들은 온 회중의 눈앞에서 호르 산으로 올라갔다.민수기 20:27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회중의 눈앞에서 바위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온 회중의 눈앞에서」 행동합니다. 이번에는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아론의 제사장 의복을 엘르아살에게 넘겨주기 위해 산에 올라갑니다.

그 순종이 앞서 내려진 판결을 취소하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서 그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혔다. 아론은 그곳 산꼭대기에서 죽었다. 모세와 엘르아살은 산에서 내려왔다.민수기 20:28 · 본디새김

모세는 형을 잃었습니다. 엘르아살은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일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이제 온 회중이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온 회중이 아론이 숨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스라엘 온 집안이 삼십 일 동안 아론을 위해 울었다.민수기 20:29 · 본디새김

이것은 앞서 백성이 아론에게 맞서 불평했던 장면과도 대비됩니다. 그들은 아론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론이 죽자 온 이스라엘 집안이 그를 위해 웁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떠났다는 사실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약속은 사람의 생애보다 길다

민수기 20:1–29 본문 →

여호와야훼의 약속은 사람이 실패해도 계속되지만, 그 약속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사람의 실패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해 봉사했지만, 여호와야훼께서 하시는 일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꿀 권한까지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역사에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공동체의 미래가 그들의 생애에 갇혀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론이 평생 입었던 제사장 의복은 이제 아들의 몸에 있습니다.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온 집안이 아론을 위해 삼십 일 동안 웁니다. 그들의 슬픔은 실제이며, 아론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동체에는 여전히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땅도 여전히 여호와야훼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여정에는 끝이 있지만,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시는 일에는 아직 다음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세 사람이 올라갔던 산에서 두 사람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산 아래에는, 여전히 길을 가야 하는 백성이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