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32장
이 장의 자리 · 26–36장 · 새 세대와 땅 준비
먼저 얻은 땅과 남은 책임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이스라엘 가운데 두 지파가 뜻밖의 요청을 합니다. 자기들은 강을 건너지 않고 지금 머물고 있는 땅을 상속지로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축이 많았고, 눈앞의 땅은 목축에 적합했습니다. 더 멀리 갈 필요 없이 이미 차지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요청을 듣고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그들이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파멸시킬 수 있다고까지 경고합니다.
왜 그럴까요? 두 지파는 다른 신을 섬기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기들의 형편에 맞는 땅을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 장의 갈등은 땅의 위치보다 더 깊은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먼저 자기 몫을 얻은 사람이 아직 자기 몫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을 집니까?
눈앞에 나타난 좋은 땅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가축이 많았는데, 그 수가 아주 많았다. 그들이 야제르 땅과 길르앗 땅을 보니, 그곳은 가축을 기르기에 알맞은 곳이었다.민수기 32: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모압 평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 동쪽에 있으며, 강 건너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요단 동쪽에도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21:21~35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32장에 등장하는 길르앗과 그 주변 지역은 이러한 승리로 확보한 요단 동쪽의 땅과 연결됩니다.
이 지역은 산지와 고원, 목초지가 있는 곳으로 가축을 기르기에 적합했습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 가축이 많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이 이 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곧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치신 땅은 가축을 기르기에 알맞은 땅입니다.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습니다.」민수기 32:4 · 본디새김
두 지파는 자기들이 힘으로 얻어 낸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땅이 이스라엘의 승리와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 얻게 된 곳임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나옵니다.
그들이 말했다. 「저희가 당신의 호의를 입었다면, 이 땅이 당신의 종들에게 소유지로 주어지게 하십시오. 저희를 요단을 건너게 하지 마십시오.」민수기 32:5 · 본디새김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지파들은 여전히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주민들과 싸워야 하고, 그 땅을 차지한 뒤 각자의 상속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요청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지만,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지파가 처음부터 다른 지파들을 버릴 생각이었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5절은 그들이 요단을 건너지 않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말할 뿐, 다른 지파들의 전쟁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 그 가능성을 문제 삼습니다.
모세는 왜 가데스 바르네아를 떠올렸는가
모세의 첫 반응은 간결하지만 날카롭습니다.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말했다. 「너희 형제들은 전쟁에 나가는데 너희는 여기 머물겠다는 것이냐?」민수기 32:6 · 본디새김
모세는 그 땅이 정말 목축에 적합한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두 지파가 아니라 그들의 ‘형제들’을 먼저 언급합니다. 두 지파에게는 좋은 땅을 선택하는 문제였지만, 모세에게는 형제들이 아직 싸우고 있는데 자기들만 먼저 정착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을 돌려, 여호와야훼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하느냐?」민수기 32:7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을 돌리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려던 일을 포기하게 하거나 주저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살펴본 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민수기 13~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약속의 땅이 풍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 땅의 주민들이 강하고 성읍들이 견고하다는 사실도 보고했습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백성은 두려워하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 결과 출애굽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던 갈렙과 여호수아만 예외로 남았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올랐고, 그는 그들을 마흔 해 동안 광야에서 떠돌게 했다.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한 그 세대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였다.」민수기 32:13 · 본디새김
가데스 바르네아의 실패는 단순히 몇 사람이 잘못 판단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보고가 백성 전체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한 세대가 광야에서 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보고 두려워하며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반면 르우벤과 갓 지파는 이미 확보한 땅이 자기들의 필요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주민들을 두려워해서 머물려 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두 사건에서 공통되는 것은 동기가 아니라 공동체에 미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먼저 가야 할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지 않으면, 다른 지파들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일에 주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나아가는 일을 포기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너희가 그를 따르다가 돌아선다면, 그는 다시 이스라엘을 광야에 내버려 둘 것이고, 너희는 이 백성 전체를 파멸시킬 것이다.」민수기 32:15 · 본디새김
모세는 광야에서 한 세대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막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는 순간,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백성 전체의 파멸’은 가벼운 수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경험한 역사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두 지파는 자신들의 요구만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우려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듣고, 새로운 약속을 제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에도 7절과 같은 히브리어 어근에서 나온 동사가 사용됩니다. 7절에서는 두 지파가 백성의 마음을 돌릴 위험을 말하고, 9절에서는 과거 정탐꾼들이 실제로 백성의 마음을 돌렸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두 사건 사이에 의도적인 연결을 만듭니다.
머물고 싶었던 사람들이 앞장서겠다고 말하다
그들이 모세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희는 여기에 저희 가축을 위해 양과 염소 우리를 짓고, 저희 아이들을 위해 성읍들을 건설하겠습니다.」민수기 32:16 · 본디새김
두 지파는 여전히 요단 동쪽에 정착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결정적인 말을 덧붙입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처소로 데려다줄 때까지, 서둘러 무장하여 그들 앞에 나서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이 땅의 주민들 때문에 요새 성읍들에 머물 것입니다.」민수기 32:17 · 본디새김
처음에는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겠다고 약속합니다.
처음 요청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땅을 얻는 데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정된 제안에서는 다른 지파들이 자기 땅에 도달하도록 돕는 책임을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저마다 자기 상속지를 얻을 때까지 저희는 저희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민수기 32:18 · 본디새김
두 지파가 자기들의 땅을 얻었다고 해서 공동체 전체의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상속지를 얻어야 비로소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먼저 얻은 몫과 아직 얻지 못한 몫을 연결하는 약속입니다.
두 지파는 19절에서 자신들이 요단 서쪽에서 별도의 상속지를 받지 않겠다고도 밝힙니다. 그들은 동쪽의 땅을 얻고 서쪽에서도 다시 땅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상속지는 요단 동쪽으로 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요새 성읍에 남습니다. 두 지파는 그들이 그 땅의 주민들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차지한 땅이지만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제안한 대로라면 무장한 사람들은 가족을 뒤에 남겨 두고 다른 지파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야 합니다. 그들의 가족에게도 부담과 위험이 남습니다. 이 사실은 두 지파의 새로운 제안이 단순한 말의 수정이 아니라 실제 생활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아직 약속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에게 땅은 여호와야훼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2:7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에게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창세기 15:18~21에서는 그 땅의 범위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는 일은 단지 각자가 필요한 장소를 차지하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광야를 지나온 백성이 각자의 몫을 얻을 때까지 서로 책임을 지는 일과 연결됩니다.
형제들 앞에서 싸우는 것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싸우는 일이 되다
두 지파는 17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처소로 데려다줄 때까지’ 앞장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사용하는 표현은 조금 다릅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이 일을 한다면, 너희가 여호와야훼 앞에서 전쟁을 위해 무장하여 나선다면,」민수기 32:20 · 본디새김
「그리고 여호와야훼가 자기 원수들을 자기 앞에서 몰아낼 때까지 너희의 무장한 자가 모두 여호와야훼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고,」민수기 32:21 · 본디새김
모세는 두 지파의 군사적 협력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의무로 규정합니다.
다른 지파들과 함께 싸우는 일은 단순한 호의나 지파 사이의 정치적 타협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땅을 함께 차지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이스라엘 군인들이지만, 본문은 그 과정에서 여호와야훼의 행동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 표현이 가나안 정복에 수반되는 폭력을 윤리적으로 설명하거나 해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민수기의 이야기 안에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일을 인간의 독자적인 영토 확장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 땅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정복되면, 그 뒤에 너희는 돌아올 수 있고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 땅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너희의 소유지가 될 것이다.」민수기 32:22 · 본디새김
여기서 ‘책임에서 벗어나다’라는 표현은 제의적으로 정결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의무를 이행한 뒤 더 이상 그 의무에 매여 있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두 지파에게는 두 관계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야훼와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공동체와의 관계입니다.
모세는 둘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보아라, 너희는 여호와야훼에게 죄를 지은 것이다.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 알아라.」민수기 32:23 · 본디새김
특히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 알아라’라는 표현을 숨겨 놓은 죄가 언젠가는 모두 발각된다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모세가 경고하는 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밀스러운 잘못이 아닙니다.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들었는데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일입니다.
두 지파가 다른 지파들과 함께 전쟁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실제로는 요단 동쪽에 머무른다면 그들의 약속 위반은 여호와야훼께 대한 죄가 됩니다. 여기서 죄가 그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도 그 책임의 결과를 피할 수 없음을 강하게 표현합니다. 이 구절은 모든 죄가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공개된다는 법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아이들을 위해 성읍들을 건설하고 너희 양과 염소 떼를 위해 우리를 지어라. 너희 입에서 나온 말은 실행하여라.」민수기 32:24 · 본디새김
두 지파는 아직 요단 동쪽의 땅에 정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자기들의 말에 묶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땅을 얻는 일은 자신들이 약속한 책임을 이행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이제 땅의 문제가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신실함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에서 두 지파는 먼저 가축을 위한 우리를 짓고, 그다음에 아이들을 위한 성읍을 건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이들을 위한 성읍을 먼저 언급하고, 가축을 위한 우리를 뒤에 언급합니다. 이러한 순서의 변화는 가족의 안전을 재산보다 앞세우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모세가 두 지파의 가치관을 꾸짖기 위해 순서를 바꾸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대조를 지나치게 확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희 입에서 나온 말은 실행하여라.’ 이 명령은 바로 앞의 민수기 30장과 연결됩니다. 30:3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서원하거나 맹세하여 자신에게 의무를 지운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온 모든 말대로 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32장의 약속이 30장에서 규정한 형식적인 서원과 법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종류인지는 본문이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히 이어집니다.
모세는 왜 다른 지도자들 앞에서 조건을 다시 밝히는가
두 지파는 모세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이어지는 말에서 그들은 아이들과 아내들과 가축이 길르앗의 성읍들에 머물고, 무장한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가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다시 확인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약속을 자신과 두 지파 사이의 말로만 남겨 두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들에 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들에 속한 가문 우두머리들에게 명령했다.민수기 32:28 · 본디새김
민수기 27장에서 모세는 자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32장에서 두 지파가 약속한 일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한 뒤에야 완료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 자신은 그 약속이 끝까지 이행되는 과정을 직접 지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일은 단지 모세 개인의 기억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 약속은 다음 지도자들이 알고 집행할 수 있는 공동체의 결정이 됩니다.
특히 29~30절은 약속의 두 가지 결과를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무장한 사람들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다른 지파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고, 그 땅이 정복되면 길르앗 땅을 소유지로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장하여 너희와 함께 건너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 가운데 소유지를 얻어야 한다.」민수기 32:30 · 본디새김
약속을 어기면 땅을 전혀 얻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요청한 요단 동쪽의 상속지를 받지 못하고, 다른 지파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서 소유지를 얻도록 합니다.
그는 요단 동쪽이라는 장소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정착하려는 두 지파의 요구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책임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건을 붙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살 것인가보다, 그곳에 살기 위해 어떤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저희가 하겠습니다.」민수기 32:31 · 본디새김
처음에는 자신들의 가축과 땅의 적합성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저희는 무장하여 여호와야훼 앞에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겠습니다. 저희의 상속 소유지는 요단 동쪽에서 저희에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민수기 32:32 · 본디새김
처음 요청에서 부족했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새로운 약속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 22:1~9에 따르면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고, 자신들이 맡은 의무를 이행했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축복하며 요단 동쪽의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여호수아 22:10~34에서는 요단 동쪽 지파들이 요단강 근처에 큰 제단을 세우면서 새로운 갈등이 발생합니다. 서쪽의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 제단이 여호와야훼께 대한 반역의 표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쪽 지파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다른 제사를 드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요단강 양편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후대에 증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훗날 서쪽의 후손들이 동쪽의 후손들에게 요단강이 경계이므로 여호와야훼와 관계가 없다고 말할까 봐 염려했던 것입니다(여호수아 22:24~28). 민수기 32장에서 모세는 동쪽에 머물려는 지파들이 서쪽의 형제들을 버릴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2장에서 동쪽 지파들은 훗날 서쪽의 형제들이 자신들을 같은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을까 봐 걱정합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책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양쪽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 지파가 차지한 땅
이제 모세는 땅을 배정합니다.
모세는 그들, 곧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반 지파에게 아모리 사람들의 왕 시혼의 왕국과 바산 왕 옥의 왕국을 주었다. 그 땅과 그 경계 안의 성읍들, 곧 그 땅 사방의 성읍들을 주었다.민수기 32:33 · 본디새김
이 장은 므낫세 반 지파가 언제부터 이 협상에 참여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1~32절에는 그들이 두 지파와 함께 요청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39~42절에 이르면 므낫세 계통 사람들이 실제로 길르앗과 그 주변 지역을 점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키르의 자손들은 길르앗으로 가서 아모리 사람들을 몰아냈습니다. 야이르는 여러 천막 마을을 점령했고, 노바는 크낫과 그 딸린 마을들을 점령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단락은 두 지파의 상속지 협상에 이어, 요단 동쪽에서 므낫세 계통 사람들이 차지한 지역까지 함께 정리합니다.
다만 이 점령 활동들이 1~32절의 협상 이전에 일어났는지, 그 이후에 진행되었는지를 본문만으로 정확하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3:12~17은 이 지역의 분배를 다시 설명하면서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상속지를 구분합니다. 르우벤과 갓은 길르앗의 일부와 그 남쪽 지역을, 므낫세 반 지파는 길르앗의 다른 지역과 바산을 받습니다.
갓 자손은 디본과 아타롯과 야제르 등을 요새 성읍으로 건설하고 가축 우리를 만듭니다. 르우벤 자손도 헤스본과 엘알레와 키르야타임 등을 건설합니다. 본문은 느보와 바알 므온이 이름이 바뀐 성읍들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성읍을 ‘건설했다’는 표현은 반드시 그 장소에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미 존재했던 성읍을 재건하거나 요새화하는 일도 이 표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알 므온’이라는 지명에는 가나안 지역의 신 이름으로도 사용된 ‘바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름을 바꾸는 행위가 기존의 종교적 연관성을 피하려는 행동이었다고 해석할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38절은 느보와 바알 므온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할 뿐,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이름의 변경을 모두 우상숭배와 단절하려는 의도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본문은 바뀐 이름의 정확한 형태와 변경 시점을 모두 알려 주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야이르와 노바의 행동은 다른 특징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점령한 곳에 자기 이름을 붙입니다. 야이르는 점령한 마을들을 ‘하워트 야이르’라고 부르고, 노바는 크낫을 자기 이름을 따라 ‘노바’라고 부릅니다.
처음에 막연히 ‘이 땅’이라고 불렀던 곳이 이제 각 지파와 가문의 구체적인 생활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등장하는 ‘점령하다’, ‘몰아내다’라는 표현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는 이전부터 살던 아모리 사람들이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착은 그들을 몰아내는 과정을 수반했습니다.
민수기의 서술은 이 일을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하는 과정으로 다룹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땅을 잃은 사람들의 경험까지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의 주된 관심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부의 상속과 책임에 있지만, 그 상속이 이미 사람이 살고 있던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역시 본문에 남아 있습니다.
강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는 요청이, 앞서 건너겠다는 약속으로 바뀌다
이것은 한쪽이 자신의 요구를 완전히 포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의 책임을 중심으로 새로운 길을 찾은 이야기입니다. 땅의 분배에는 유연성이 있었지만, 공동체적 책임에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두 지파는 눈앞의 좋은 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땅은 가축을 기르기에 알맞았고, 그들의 가족이 살아갈 터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에게 강 건너편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곳에는 아직 자기 땅을 얻지 못한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두 지파는 결국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 성읍을 세우고 가축을 위한 우리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착할 땅을 뒤로한 채 무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은 처음에 원했던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머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기 몫을 먼저 얻었다는 사실이 형제들과 함께 끝까지 가야 할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