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33장
이 장의 자리 · 26–36장 · 새 세대와 땅 준비
지나온 길과 앞으로의 삶
이스라엘은 마침내 요단강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에게 곧바로 강을 건너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길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모세는 라암세스에서 숙곳으로, 숙곳에서 에탐으로, 에탐에서 피 하히롯으로 이동했던 일부터 차례로 적습니다. 그 뒤로도 수많은 지명이 이어집니다. 어떤 장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짧게 언급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 진을 쳤는지만 기록합니다.
이상한 기록입니다.
광야 사십 년은 이스라엘에게 평범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바다를 건넜고, 먹을 것이 없어 원망했고, 시나이산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여 한 세대가 광야에서 죽었고, 모세와 아론까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역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그 엄청난 사건들을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한 장소에서 출발해 다른 장소에 진을 쳤다는 문장을 반복합니다.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요?
처음에는 모세가 지나온 길을 기록합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앞으로 들어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령하십니다.
과거의 여정은 이미 끝난 이야기로 정리되지만, 그 여정을 이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왜 출발 지점들을 기록했는가
모세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그들의 여정별 출발 지점들을 기록했다. 그들의 출발 지점별 여정은 다음과 같았다.민수기 33:2 · 본디새김
‘여정별 출발 지점’과 ‘출발 지점별 여정’이라는 표현이 차례를 바꾸어 반복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두 낱말이 서로 자리를 바꿉니다. 하나는 어디에서 떠났는지에, 다른 하나는 떠나서 이동한 여정에 관심을 둡니다.
장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그다음 곳으로 출발했다는 사실과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출발하여’, ‘진을 쳤다’라는 동사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은 어디엔가 도착하지만, 그곳이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또 다른 곳에 진을 치지만, 거기서도 다시 길을 떠납니다.
이것이 이 장의 기본적인 리듬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모세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록이 이스라엘의 과거를 보존하고,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이 어디를 지나왔는지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각 장소에 특별한 영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다른 이야기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장소들도 이 목록에는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곳을 지나왔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 사십 년은 몇 가지 위대한 사건으로만 이루어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이동과 머묾의 날들이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록은 그 긴 시간을 장소들의 연속으로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떠나는 날, 이집트는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여정의 첫 장면은 라암세스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첫째 달, 곧 첫째 달 열닷샛날에 라암세스에서 출발했다. 유월절 다음 날, 이스라엘 자손은 모든 이집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나왔다.민수기 33:3 · 본디새김
출애굽기 12장에서는 유월절 밤에 이집트의 맏이들이 죽임당하고, 파라오가 이스라엘에게 떠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수기 33장은 그날 밤을 다시 서술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이 실제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한때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었던 백성이 이제는 이집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떠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장면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로 옮겨 갑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여호와야훼가 그들 가운데 쳐 죽인 모든 맏이를 매장하고 있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의 신들에게도 심판을 집행했다.민수기 33:4 · 본디새김
같은 날 한쪽에서는 해방의 행렬이 시작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12에서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분은 이집트의 맏이들을 치고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의 신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표현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집트의 군사력보다 강하시다는 선언을 넘어섭니다. 이집트가 의지하던 종교적 질서와 권위까지 여호와야훼의 심판 아래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한 승리의 축제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집트 사람들이 실제로 죽은 가족을 매장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이 이집트에 대한 심판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그 심판에는 인간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민수기는 그 죽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두 장면을 함께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출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이스라엘은 파라오와 협상하여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의 권세를 심판하시는 가운데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이후의 모든 여정은 이 해방에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당당하게 나왔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의 ‘높이 든 손으로’라는 관용구를 옮긴 것입니다. 자신감 있고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바다를 건넌 뒤에도 계속 출발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라암세스를 떠나 숙곳으로, 숙곳에서 에탐으로 이동합니다.
그들은 에탐에서 출발하여 바알 츠폰 맞은편에 있는 피 하히롯 쪽으로 되돌아갔고, 믹돌 앞에 진을 쳤다.민수기 33:7 · 본디새김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의 길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4:1~4에 따르면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방향을 돌려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파라오는 그들을 광야에 갇힌 사람들로 판단하게 되었고, 뒤이어 이집트 군대가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방향을 되돌리는 행동은 위험해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이집트를 떠났는데 다시 추격당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서술에서는 바로 그곳이 바다를 건너게 되는 사건의 무대가 됩니다.
그들은 하히롯 앞에서 출발하여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 광야로 건너갔다. 에탐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걸어 마라에 진을 쳤다.민수기 33:8 · 본디새김
출애굽기 14장에서 길게 서술된 바다 사건이 여기서는 한 문장으로 지나갑니다.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도,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가 물에 잠기는 장면도 다시 설명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은 여호와야훼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지 보여 줍니다. 민수기 33장은 그 사건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여정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바다를 건넌 것은 결정적인 구원이었지만,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5:23~25에 따르면 마라에서는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고, 여호와야훼께서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다음에 도착한 엘림은 전혀 다른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마라에서 출발하여 엘림에 도착했다. 엘림에는 샘 열두 곳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 진을 쳤다.민수기 33:9 · 본디새김
대부분의 지명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엘림만은 샘과 종려나무의 수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샘과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장로 일흔 명을 상징한다고 연결하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상징적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더욱 분명한 것은 광야를 지나던 백성이 물과 그늘을 얻을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는 사실입니다. 마라에서는 마실 수 없는 물이 문제였고, 엘림에서는 샘이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엘림에서도 계속 머물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출발하여 갈대 바닷가, 신 광야, 다프카와 알루시를 지나 르피딤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알루시에서 출발하여 르피딤에 진을 쳤다. 그곳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민수기 33:14 · 본디새김
엘림에는 샘이 열두 곳이나 있었지만, 르피딤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7:1~7은 르피딤에서 백성이 물 때문에 모세와 다투고, 여호와야훼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신 사건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은 해방과 구원을 경험한 뒤에도 계속해서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 안에서 여호와야훼는 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마라의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시며, 르피딤에서도 물을 공급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어려운 장소를 지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다음 장소는 시나이 광야입니다.
이곳에서 여정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생략된 여정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서 출발하여 키브롯 핫타아와에 진을 쳤다.민수기 33:16 · 본디새김
시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고, 성막을 세우게 하셨으며,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정하셨습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와 레위기 전체, 민수기 앞부분의 많은 사건이 시나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33장은 그 모든 일을 다시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본문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이곳에서는 하나의 장소가 됩니다. 시나이산에서 무엇을 받았는지보다, 이스라엘이 시나이에서 출발하여 다음 장소로 나아갔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를 떠났지만, 그곳에서 받은 율법과 성막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막은 그들의 진영과 함께 이동했고, 율법은 이후의 여정과 삶을 규정했습니다.
장소는 뒤에 남았지만, 그곳에서 맺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는 백성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원히 산 아래 머물도록 부름받은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받은 뒤, 그 말씀에 따라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나이 이후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등장하는 키브롯 핫타아와는 민수기 11:34에 기록된 장소입니다. 백성이 먹을 것을 탐하며 불평하다가 여호와야훼의 심판을 경험했던 곳입니다. 그곳의 이름은 욕망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묻은 사건과 연결됩니다.
이어지는 하체롯은 민수기 12:16에 등장합니다. 그 앞에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고, 미리암이 징계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민수기 33장은 그 사건들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키브롯 핫타아와에서 하체롯으로 이동했다는 말만 남깁니다. 이후 리트마부터 에츠욘 게베르까지는 긴 지명 목록이 이어집니다.
림몬 페레츠, 리브나, 릿사, 크헬라타, 셰페르 산, 하라다, 마크헬롯, 타핫, 데라, 미트카, 하슈모나….
이 가운데 상당수는 성경의 다른 이야기에서 독립적인 사건의 무대로 자세히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장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건은 여러 장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기간은 수많은 지명의 나열로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온 시간이 모두 똑같은 밀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민수기 13~14장에서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르네아와 연결된 지역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33장의 목록에는 가데스가 상당히 뒤인 36절에서야 명시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가데스에 두 번 왔던 것일까요? 또는 앞에 나오는 리트마가 가데스와 관련된 장소였을까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민수기 13:26의 바란 광야와 가데스, 20:1의 친 광야와 가데스, 그리고 33:36의 가데스를 정확한 현대 지리와 하나의 이동 경로로 대응시키는 일에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33:30~33의 모세롯, 브네 야아칸, 호르 학깃갓, 야트바타의 순서는 신명기 10:6~7에 나오는 브에롯 브네 야아칸, 모세라, 굿고다, 욧바다의 이동 순서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10:6은 아론의 죽음을 모세라와 연결하지만, 민수기 33:38은 호르 산으로 명시합니다.
두 이름이 인접한 지역을 가리키거나 이동 경로가 달랐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들은 그러한 설명을 직접 제공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여정 전승이 보존되었다고 보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정확히 어떻게 조화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민수기 33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정 기록이며, 그 지리적·연대기적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현대적 지도는 아닙니다. 다만 이 장의 문학적 흐름은 분명합니다.
시나이 광야에서 출발한 이스라엘이 수많은 장소를 지나 마침내 친 광야의 가데스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다음 장소에서 이야기가 잠시 멈춥니다.
수많은 장소 가운데 아론의 죽음만 날짜까지 기록되다
그들은 가데스에서 출발하여 에돔 땅 끝에 있는 호르 산에 진을 쳤다.민수기 33:37 · 본디새김
여기까지는 앞의 이동 기록과 같은 형식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세한 날짜와 인물의 나이가 등장합니다.
제사장 아론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호르 산에 올라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되는 해, 다섯째 달 초하루였다.민수기 33:38 · 본디새김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백스물세 살이었다.민수기 33:39 · 본디새김
출애굽의 날짜는 첫째 달 열닷샛날로 기록되었고, 아론의 죽음은 사십 년째 되는 해 다섯째 달 초하루로 기록됩니다. 여정의 출발과 한 지도자의 죽음이 정확한 날짜로 표시되는 것입니다.
아론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여러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세와 함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냈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도록 세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민수기 20:12~13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와 아론이 므리바 물 사건에서 자신을 신뢰하여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죽음은 그 말씀과 연결됩니다.
민수기 20:22~29에는 아론이 호르 산에 올라가 제사장 옷을 벗고, 그 옷을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힌 뒤 죽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33장은 제사장 옷의 계승이나 백성의 애도 장면을 다시 들려주지 않습니다. 아론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호르 산에 올라가 죽었다는 사실과 날짜, 나이를 기록할 뿐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가 곧 이스라엘 여정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아론이 죽은 뒤에는 엘르아살이 제사장 직무를 이어 갑니다.
이것은 지도자의 위대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함께 보여 줍니다.
아론이 죽은 뒤 40절에는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이 이스라엘이 온 소식을 들었다는 짧은 기록이 나옵니다. 민수기 21:1~3은 아랏 왕과 이스라엘 사이의 충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33장은 그 전투를 설명하지 않고 아랏 왕이 이스라엘의 접근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 언급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여정은 광야의 이동을 넘어 가나안 주변 민족들과 실제로 마주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아론은 죽었지만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호르 산에서 출발합니다.
마지막 진영은 어디에 있었는가
호르 산을 떠난 이스라엘은 찰모나와 푸논, 오봇, 이예하아바림을 지나 계속 북쪽의 모압 지역을 향해 이동합니다.
그들은 알몬 디블라타임에서 출발하여 느보 앞에 있는 아바림 산들에 진을 쳤다.민수기 33:47 · 본디새김
민수기 27:12~14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 이스라엘에게 주실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34:1~4에서는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약속의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지역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산 위에서 바라본 땅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이동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아바림 산들에서 출발하여 여리고 쪽 요단 가의 모압 평원에 진을 쳤다.민수기 33:48 · 본디새김
이곳은 민수기 후반부의 주요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가 이 지역을 배경으로 전개되었고, 브올에서의 배신 사건도 이 무렵에 일어났습니다. 새 세대의 인구 조사와 여러 상속지 규정도 요단 동쪽에서 주어졌습니다.
49절은 이스라엘의 진영이 벳 하예시못에서 아벨 핫시팀까지 펼쳐져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민수기 25:1~3은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무는 동안 모압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브올의 바알을 섬기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벨 핫시팀은 그 시팀과 연결되는 지명입니다. 정확히 동일한 지점인지, 더 넓은 지역 안의 서로 다른 장소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두 이름은 같은 지역의 지리적 배경을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수많은 장소를 지나 요단강 앞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진영이 있는 지역에서도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배신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민족들이 위험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신이 이미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에 넘어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진영은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자신의 실패를 기억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정 목록은 끝납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50절부터 본문의 형식이 완전히 바뀝니다.
지나온 길의 기록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명령으로
1~49절에서는 과거의 이동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50절부터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명령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민수기 33:51 · 본디새김
그런데 건넌 뒤에 해야 할 일이 미리 주어집니다.
「『너희 앞에서 그 땅의 모든 주민을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형상들을 파괴하여라. 그들이 부어 만든 모든 상들을 파괴하고, 그들의 모든 산당들을 없애 버려라.』」민수기 33:52 · 본디새김
우상을 파괴하라는 명령은 종교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반면 주민을 몰아내라는 명령은 실제로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거주와 삶을 다룹니다. 본문의 목적이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목적 때문에 사람들의 추방이라는 현실이 단순한 상징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축출과 폭력의 문제를 포함합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다른 민족이나 종교 집단을 배척하거나 추방하는 근거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명령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이라는 특정한 언약적·역사적 서술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 자체로 오늘날의 영토 분쟁이나 종교적 갈등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폭력 허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갑니다. 그곳은 단순히 더 좋은 생활 환경을 얻는 장소가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아가야 할 장소입니다.
따라서 땅의 소유와 예배의 문제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너희는 그 땅을 차지하여 그곳에 살아라.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도록 내가 너희에게 그 땅을 주었기 때문이다.』」민수기 33:53 · 본디새김
이스라엘에게는 땅을 차지하여 살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미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과 연결됩니다(창세기 12:7, 15:18~21).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행동이 이 문맥에서 서로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들어가야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셨기 때문에 그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그분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은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할 새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땅을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어떻게 나눌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제비뽑기와 인구수
「『너희는 씨족별로 제비를 뽑아 그 땅을 상속지로 차지하여라. 수가 많은 쪽에는 상속지를 많이 배정하고, 수가 적은 쪽에는 상속지를 적게 배정하여라. 각자에게 제비로 정해진 곳이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 너희 아버지들의 지파별로 상속지를 차지하여라.』」민수기 33:54 · 본디새김
제비뽑기는 각 지파나 씨족이 어느 지역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반면 인원수에 따라 많고 적은 몫을 조절해야 한다는 규정은 실제 공동체의 규모를 고려합니다.
이 두 원칙이 구체적인 시행 과정에서 어떻게 조합되었는지는 이 구절이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없애고 다른 한쪽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민수기 26:52~56에서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인원수가 많은 지파에는 더 큰 몫을, 적은 지파에는 작은 몫을 주며 제비를 통해 상속지를 정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오랫동안 이동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면 각각의 지파와 씨족이 실제로 생활할 터전을 가져야 합니다.
땅은 추상적인 약속으로만 남을 수 없습니다.
누가 어느 지역을 소유할 것인지, 규모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각 지파의 권리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민수기는 그 일이 단순히 힘센 지파가 좋은 지역을 먼저 차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땅의 약속은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어졌지만, 그 땅에서 실제로 살아갈 사람들은 각기 다른 규모의 가족과 씨족들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그렇게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나뉘어야 했습니다.
남겨 둔 주민들이 가시가 될 것이라는 경고
민수기 33장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기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땅의 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 가운데 너희가 남겨 둔 자들이 너희 눈의 가시와 너희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이며, 너희가 사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민수기 33:55 · 본디새김
가시는 몸에 박히면 작은 움직임에도 아픔을 일으킵니다. 특히 눈에 박힌 가시는 정상적으로 보고 생활하는 일을 어렵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가시는 제거되지 않은 문제가 지속적인 고통과 위협이 되는 상황을 비유합니다.
여호수아 23:12~13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민족들과 결합하고 그들과 혼인하며 그들을 따를 때, 그들이 올무와 채찍이 되고 눈의 가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사사기 2:1~3에서도 여호와야훼의 사자는 주민들과의 관계와 제단을 남긴 일을 책망하며, 주민들은 옆구리의 가시가, 그들의 신들은 올무가 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야훼를 저버리는 일이 반복됩니다. 민수기 33장이 우상들과 그 예배 장소를 파괴하라고 명령한 이유를 후대의 서술이 종교적 불충실의 문제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들에게 하려고 계획했던 대로 너희에게 하겠다.』」민수기 33:56 · 본디새김
여기에서 땅을 받는 사람의 지위가 결정적인 안전장치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광야에서 인도하셨으며,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실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사실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무조건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판단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을 구별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신도 여호와야훼께 불충실하다면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땅은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은 백성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8:19~20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잊고 다른 신들을 따르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신명기 28장은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복과 저주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훗날 열왕기하 17장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열왕기하 24~25장은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록합니다. 이 사건들을 설명하는 성경의 서술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저버린 문제를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신약의 고린도전서 10:1~12에서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을 회상하며, 구원의 경험이 불순종에 대한 경고를 불필요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민수기 33장을 직접 해설한 본문은 아니지만, 광야의 역사를 후대의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주제적 연결입니다.
뒤돌아본 여정이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
이스라엘의 여정은 이미 지나온 일이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미래와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는 백성은 자신들이 누구의 행동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 때, 그 선물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진영은 요단강 동쪽 모압 평원에 펼쳐져 있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그 땅을 주셨으니 안심하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명령과, 불순종한다면 자신들도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경고입니다.
이스라엘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나 강을 건너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여호와야훼께서 인도하신 길을 지나왔고, 이제는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했습니다.
모압 평원의 마지막 진영에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백성이 머물고 있습니다. 지나온 길의 기록은 끝났지만, 요단강 너머에서 살아갈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