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31장 · 유능한 아내의 노래
지혜가 빛나는 삶
잠언의 마지막 장은 왕에게 주어진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왕은 말할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에게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명령을 내리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입을 열라고 합니다(「말 못 하는 이를 위해 네 입을 열어라」, 8절).
그리고 잠언의 마지막 부분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왕이 아니라 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양털과 아마를 구하고, 밭을 사들이고, 포도밭을 일구며, 물건을 만들어 팝니다. 집안사람들을 돌보고 먼 곳에서 양식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여러 활동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손바닥을 펴고, 궁핍한 이에게 두 손을 뻗는다」(20절).
왕에게는 입을 열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손을 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깊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또 하나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그 여인의 두 손이 맺은 열매를 그 여인에게 주어라」(31절). 왕에게는 입을 열라고 했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에게 그 여인의 행실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 장을 흔히 훌륭한 아내의 덕목을 나열한 말씀으로 읽습니다. 물론 가정과 일에 충실한 여인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보다 넓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그리고 어떤 삶이 참으로 칭찬받을 만합니까?
왕은 자기 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여인은 놀라운 역량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 역량의 가치는 재산을 불리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의 손이 누구를 돌보고, 그의 입이 어떤 말을 하며, 그의 삶이 무엇을 향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잠언 3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절은 르무엘 왕에게 어머니가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왕이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을 경계하고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10–31절은 역량 있는 여인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두 부분은 문학적 형식부터 다릅니다. 앞부분에는 어머니의 직접적인 호소와 명령이 있습니다. 아들을 세 번 부르는 절박한 목소리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의 송사를 판단하라는 명령에 도달합니다.
뒷부분은 히브리어 알파벳을 따라 구성된 시입니다. 10절부터 31절까지 모두 22절이며, 각 절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부터 마지막 글자인 타브까지 순서대로 시작합니다. 한글 번역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어 독자에게는 정교하게 구성된 완결된 시의 형태가 보입니다. 이것은 시편 119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알파벳시의 형식입니다.
두 부분이 원래부터 하나의 작품으로 쓰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뒤의 여인에 관한 시를 르무엘의 어머니가 직접 지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잠언의 마지막 장에서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여러 의미 있는 연결이 발견됩니다.
특히 앞부분의 「힘」과 뒷부분의 「역량」은 같은 히브리어 어근을 사용합니다. 또한 왕은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입을 열어야 하고, 여인은 지혜로 자기 입을 엽니다. 이러한 연결은 잠언의 마지막 장이 단순히 왕을 위한 교훈과 가정생활의 이상을 우연히 나란히 놓은 것 이상으로 읽힐 수 있게 합니다.
왕을 가르치는 어머니
왕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있다
르무엘 왕의 말, 곧 선언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말이다.잠언 31:1 · 본디새김
잠언 30장에서는 아굴이라는 낯선 지혜자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31장에서는 르무엘이라는 왕이 등장합니다. 르무엘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표제의 「선언」은 히브리어 마(מָה)사(מַשָּׂא)와 관련됩니다. 이 단어는 신탁이나 선언으로 읽을 수 있지만, 지명인 마싸를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따라서 르무엘을 특정한 이스라엘 왕으로 단정할 수 없으며, 마싸라는 지역의 왕으로 이해하는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확한 신원보다 이 장에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왕이 지혜를 배우는 사람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왕은 백성에게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그는 먼저 어머니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잠언의 시작 부분인 1:8에서도 아들에게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은 책 전체의 흐름과 잘 어울립니다. 왕의 지위가 어머니의 가르침을 무효로 만들지 않습니다.
왕에게도 자신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고, 자신의 권력을 평가할 기준이 필요합니다.
세 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어찌하랴, 내 아들아, 어찌하랴, 내 배에서 난 아들아, 어찌하랴, 내 서원의 아들아?」잠언 31:2 · 본디새김
히브리어 마는 일반적으로 「무엇」이라는 뜻의 의문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뒤에 이어져야 할 내용이 명시되지 않은 채 세 차례 반복됩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묻는 탄식으로 읽을 수도 있고, 아들의 행동을 염려하는 질문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절박하게 아들을 부르는 감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의 「어찌하랴」는 이 비어 있는 질문의 느낌을 살립니다.
어머니는 먼저 교훈을 명령문으로 쏟아 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부릅니다. 그것도 단순히 「왕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내 아들」이며, 「내 배에서 난 아들」이고, 「내 서원의 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왕이기 이전에 그가 한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왕권의 논리보다 더 깊은 관계에서 아들에게 말합니다. 그의 탄생과 삶을 기억하며,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려 합니다.
왕은 자신의 힘을 어디에 쓰는가
「여자들에게 네 힘을 내주지 마라. 왕들을 파멸시키는 일에 네 삶을 내주지 마라.」잠언 31:3 · 본디새김
이 구절을 모든 여성과의 관계가 왕을 파멸시킨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어머니의 관심은 왕이 자신의 힘과 판단을 잃어버리는 상황에 있습니다.
여기서 「힘」은 히브리어 하일(חַיִל)입니다. 문맥에 따라 힘, 능력, 재산, 용맹과 역량을 가리킬 수 있는 폭넓은 단어입니다. 어머니는 왕에게 자신의 힘을 파괴적인 관계와 행동에 소진하지 말라고 합니다.
왕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사적인 선택은 백성의 삶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왕이 여러 관계와 쾌락에 빠져 자신의 책임을 방치한다면, 그가 가진 권력이 크다는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의미는 10절에 이르면 더욱 뜻밖의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어머니가 왕에게 함부로 내주지 말라고 한 「힘」과 같은 어근으로, 뒤에서는 「역량 있는 여인」이 소개됩니다. 이것은 여성이 본질적으로 왕의 힘을 빼앗는 존재라는 뜻과 거리가 멉니다. 왕이 자신의 힘을 잘못된 곳에 소진하지 않도록 경계받는 반면, 뒤의 여인은 자신의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기 때문에 칭찬받습니다.
같은 힘이지만 사용되는 방향이 다릅니다.
힘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르무엘을 솔로몬과 동일시하는 해석도 있었지만, 본문만으로 그러한 동일성을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2절의 서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과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얻기 위해 어떤 서원을 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본문은 그 배경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1:1–8에서는 솔로몬이 여러 아내들을 사랑하면서 그의 마음이 다른 신들에게 돌아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잠언 31:3이 솔로몬의 일을 직접 가리킨다고 볼 근거는 없지만, 왕의 사적인 욕망이 신앙과 통치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왕이 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왕에게 술이 위험한 이유
「왕들이 할 일이 아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왕들이 할 일이 아니며, 『독한 술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은 통치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잠언 31:4 · 본디새김
그런데 단순히 술이 사람의 몸에 좋지 않다거나 품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절이 이유를 밝힙니다.
「마시고 정해진 법을 잊어, 고통받는 모든 이의 판결을 뒤바꿀까 염려되기 때문이다.」잠언 31:5 · 본디새김
여기서 어머니의 관심은 술을 마시는 왕 개인의 건강이나 평판에 그치지 않습니다. 왕이 술에 취했을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왕은 자신의 기호를 즐길 권한이 있더라도, 그 기호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5절의 「정해진 법」은 정해지거나 규정된 것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왕이 따라야 할 법적 기준과 연결됩니다. 왕이 술에 취해 그것을 잊으면 공정한 판단이 무너집니다. 특히 판결이 뒤바뀌는 사람들은 「고통받는 모든 이」입니다. 이것은 힘없는 사람들이 왕의 잘못된 판단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줍니다.
술에 대한 경고의 중심에는 왕의 개인적인 절제만이 아니라 공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포도주의 절대적인 금지로 읽는 것은 본문이 제시한 이유를 놓치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왕과 통치자가 자신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방식으로 술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술을 주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예상 밖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죽어 가는 이에게 독한 술을 주고, 마음이 쓰라린 이들에게 포도주를 주어라.」잠언 31: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왕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죽어 가는 사람과 마음이 쓰라린 사람에게 술을 주라고 합니다. 7절은 그 목적을 설명합니다.
「그가 마시고 제 가난을 잊으며, 제 고생을 더는 기억하지 않게 하여라.」잠언 31:7 · 본디새김
이 말씀은 두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 고통을 겪고 있거나 죽음에 가까운 사람에게 술을 주어 고통을 잠시 덜어 주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술이 고통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왕에게 주는 경고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한 수사적 대조로 읽는 것입니다. 술을 통해 고통을 잊으려는 행동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나 어울리지, 다른 사람의 생사를 판단해야 하는 왕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두 읽기는 반드시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구체적인 치료 방법이나 의료적 처방을 규정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 말씀을 가난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술을 주어 잊게 만들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어지는 8–9절에서 왕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입을 열고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명령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6–7절은 고통을 잊게 하는 일과 고통을 일으키는 불의를 바로잡는 일을 서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왕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판단력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이 대조가 향하는 곳은 다음 명령입니다.
왕이 입을 열어야 할 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말하라
「말 못 하는 이를 위해 네 입을 열어라, 스러져 가는 모든 이의 송사를 위해.」잠언 31:8 · 본디새김
왕의 말은 사적인 의견이 아니라 공적인 판결과 명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힘을 누구에게 사용해야 하는지 밝힙니다. 「말 못 하는 이」입니다.
여기서 말 못 한다는 것은 반드시 신체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능력이나 기회가 부족한 사람까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스러져 가는 모든 이」의 사라짐이 죽음에 이르는 위기인지, 사회적 처지의 몰락인지, 인간의 덧없는 처지 일반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의 「말 못 하는 이」와 다음 절의 「가난하고 궁핍한 이」를 함께 고려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권리가 중요한 관심사임은 분명합니다.
왕이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말을 못 하거나 자기 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는 권고보다 구체적입니다. 왕은 그들의 송사를 위해 자신의 권한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 번 더 반복되는 명령
「네 입을 열어 공정하게 재판하여라. 가난하고 궁핍한 이의 송사를 판단하여라.」잠언 31:9 · 본디새김
8절과 9절은 모두 「네 입을 열어라」로 시작합니다. 같은 명령이 두 번 반복되지만, 두 번째에는 그 입을 열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왕이 자기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과 공정하게 재판하는 것은 다릅니다. 억울한 사람의 편에 선다는 이유로 사실을 왜곡해서도 안 됩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이 가난하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왕은 자신을 위해 가장 크게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히려 자신을 위해 말하기 어려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합니다. 왕은 다른 사람 위에 있는 지위를 통해 자기 욕망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지위를 통해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왕은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가 없는 사람의 억울함이 들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잠언은 왕의 입에 관한 명령을 마친 뒤, 전혀 다른 공간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궁정과 재판의 자리에서 한 가정의 생활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의 관심사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힘을 사용하는 삶이 이제 한 여인의 일상에서 펼쳐집니다.
조금 더 깊이
「스러져 가는 모든 이」는 히브리어 브네 할로프를 옮긴 표현으로, 문자적으로는 「사라짐 또는 지나감의 아들들」에 가깝습니다. 출애굽기 23:6은 가난한 사람이 재판을 받을 때 그의 권리를 왜곡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19:15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당하게 편들거나 힘 있는 사람이라고 두둔하지 말라고 합니다. 잠언 31:8–9 역시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돌보는 일과 공정한 판단을 함께 요구합니다. 신명기 17:14–20은 왕이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을 가까이 두고, 자기 마음을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높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시편 72:1–4에서는 왕이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구원하기를 기도합니다. 잠언 31:8–9의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와 같은 왕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말씀(마가복음 10:42–45)은 권한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삶이라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잠언 31장을 그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역량 있는 여인은 누구인가
값비싼 보석보다 귀한 사람
역량 있는 여인을 누가 찾을 수 있겠는가? 그 여인의 가치는 산호보다 훨씬 높다.잠언 31:10 · 본디새김
10절부터는 새로운 시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시인은 곧바로 여인이 하는 일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먼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그런 여인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만큼 귀하고 가치 있다는 찬탄입니다.
여기서 「역량 있는 여인」은 히브리어 에셰트 하일입니다. 앞의 3절에서 왕이 여자들에게 내주지 말라고 경계받았던 「힘」과 같은 단어 하일이 등장합니다. 하일은 단순한 도덕적 착함이나 온순함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이 여인은 단순히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고, 판단력이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으로 실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룻기 3:11에서도 보아스가 룻을 같은 표현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룻은 부유한 집안의 여주인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남편을 잃은 뒤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삭을 줍던 여인이었습니다. 그가 역량 있는 여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많은 재산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임 있게 행동하고 신실하게 살아온 삶 때문이었습니다.
잠언 31장의 여인은 상당한 경제적 자원과 여종들을 거느린 가정에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이 시가 말하는 역량을 그러한 부유한 생활 조건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역량은 재산의 규모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산호보다 훨씬 높다」는 표현 역시 여인의 가치를 귀한 재물과 비교합니다. 「산호」(פָּנִין)로 옮긴 낱말이 정확히 어떤 보석이나 귀한 재료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값비싼 물건보다 훨씬 귀하다는 비교의 뜻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비교에는 역전이 있습니다. 뒤에서 이 여인은 재물을 얻고 물건을 만들어 팝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의 가치를 그가 벌어들이는 재물보다 먼저, 그리고 더 높게 평가합니다. 그가 재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재물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사람이기에 그의 활동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 여인을 신뢰한다
남편의 마음은 그 여인을 신뢰하며, 그 남편에게는 전리품이 모자라지 않는다.잠언 31:11 · 본디새김
남편은 아내를 감시하거나 그의 모든 결정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이 아내를 신뢰합니다. 이 신뢰는 막연한 감정이 아닙니다. 뒤에 나오는 여인의 행동을 통해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는 재료를 구하고, 물건을 만들고, 거래하며, 밭을 사들이고, 집안사람들의 생계를 돌봅니다. 남편은 이러한 책임을 아내가 능력 있게 수행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전리품」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집안에 충분한 재물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비유로 사용됩니다. 앞에서 이 여인을 설명할 때 힘과 용맹에도 쓰이는 하일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전쟁의 전리품을 뜻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시인은 가정생활을 묘사하면서 힘과 성취를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누군가를 정복해서 전리품을 얻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일과 지혜를 통해 집안을 풍족하게 합니다.
12절은 그의 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자기 삶의 모든 날에 남편에게 이로움을 베풀고 해를 끼치지 않는다.잠언 31:12 · 본디새김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여인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는가보다 그 일이 어떤 열매를 맺는가입니다.
이것을 여인의 존재 가치가 오직 남편에게 도움이 되는 데 달려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는 뒤에서 여인 자신의 판단력과 경제활동, 가난한 사람을 향한 돌봄, 공적인 명예까지 길게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시가 고대의 혼인과 가정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이 여인은 가족과 분리된 추상적인 개인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자녀, 여종, 가난한 사람, 상인과 공동체의 관계망 안에서 활동합니다.
그 관계들 속에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 그의 역량을 보여 주는 첫 번째 특징입니다.
그 여인의 손이 만들어 내는 세계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생산과 경영이다
13절부터 시는 여인의 행동을 빠르게 보여 줍니다.
양털과 아마를 구하고, 자기 손으로 기꺼이 일한다.잠언 31:13 · 본디새김
양털과 아마는 옷감과 직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직물 생산은 가정과 경제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옷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취미가 아니라 생계와 거래에 연결되는 생산활동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재료를 구하는 단계부터 직접 관여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일합니다. 본문은 노동이 그에게 무조건 고통스럽기만 한 일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모습입니다.
14절에서는 그의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집니다.
그 여인은 상인의 배들과 같다. 멀리서 자기 양식을 가져온다.잠언 31:14 · 본디새김
배는 먼 곳을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교역의 수단입니다. 이 비유는 여인의 활동이 눈앞에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데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필요한 것을 찾아 확보할 줄 압니다.
여기서 가정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 아닙니다.
집안의 먹을거리는 외부의 생산과 거래에 연결되어 있고, 여인은 그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아직 밤일 때 일어나는 이유
아직 밤일 때 일어나 집안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여종들에게 정해진 몫을 준다.잠언 31:15 · 본디새김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미리 마련합니다. 특히 집안사람뿐 아니라 여종들에게도 정해진 몫을 줍니다. 이 집에는 여종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여인이 모든 노동을 혼자 수행하는 가난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상당한 규모의 가정입니다.
「정해진 몫」이 먹을거리를 뜻하는지, 맡겨진 일을 뜻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먹을 것을 준다는 말이 나오므로 식량의 몫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집안의 일을 배분하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여인은 집안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살피고 마련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잠언 30장의 아굴이 구했던 「정해진 몫의 양식」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두 본문이 같은 표현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몫과 양식의 관계는 의미 있는 주제적 연결을 이룹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필요한 양식을 구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마련합니다.
하나님께 생계를 의탁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의 생계를 책임 있게 돌보는 행동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밭을 살펴보고 사들이는 사람
밭을 살펴보고 사들이며, 자기 두 손의 열매로 포도밭을 일군다.잠언 31:16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여인의 경제적 판단력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여기서 「살펴보고」는 단순히 눈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넘어, 그 밭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마련해 준 재산을 소비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성과를 다시 생산적인 일에 사용합니다. 직물을 만들던 여인이 땅을 사고 포도밭까지 일군다는 것은 그의 경제활동이 한 가지 일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이 모습이 당시 모든 여성의 일반적인 생활상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토지를 구매하고 포도밭을 일구는 데에는 상당한 자원과 권한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시인은 그런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여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실제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주어진 일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의 활동을 계획하고 새로운 기회를 판단합니다.
힘으로 허리를 동이다
힘으로 자기 허리를 동이고, 자기 두 팔을 튼튼하게 한다.잠언 31:17 · 본디새김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활동할 준비를 하는 모습입니다. 고대의 긴 옷을 입고 일하거나 움직일 때 옷자락을 정리해 허리띠로 묶는 행동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힘」으로 허리를 동입니다. 몸의 움직임과 내적인 역량이 함께 표현됩니다.
그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할 준비를 하고 자기 두 팔을 튼튼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18절은 그가 자신의 노동과 거래의 결과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자기 장사의 이익이 좋음을 맛보며, 그 여인의 등불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다.잠언 31:18 · 본디새김
「맛본다」는 표현은 실제 맛을 본다는 뜻에서 나아가 경험하고 확인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한 장사의 결과가 좋다는 사실을 압니다. 자신의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 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은 밤에도 일을 이어 가는 부지런함을 보여 주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 전체가 찬양의 형식이므로, 실제 생활의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과표가 아니라 그의 지속적인 활동성과 성실함을 인상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실감개와 가락바퀴를 붙잡는 손
두 손을 실감개 막대에 뻗고, 손바닥으로 가락바퀴를 붙든다.잠언 31:19 · 본디새김
이제 시인은 다시 직물을 만드는 현장으로 돌아옵니다. 실감개 막대와 가락바퀴는 섬유를 실로 만드는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들입니다. 13절에서 시작된 직물 생산의 장면이 19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특히 손이 강조됩니다. 앞에서는 「자기 손으로 기꺼이 일한다」고 했고, 「자기 두 손의 열매」로 포도밭을 일군다고 했습니다. 17절에서는 두 팔을 튼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손과 손바닥이 실제 도구를 움직입니다.
시인은 여인의 역량을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역량이 손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줍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그 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집니다.
실을 만드는 손에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손으로
가난한 이에게 손바닥을 펴고, 궁핍한 이에게 두 손을 뻗는다.잠언 31:20 · 본디새김
19절에서는 여인이 직물 제작 도구를 붙잡았습니다. 20절에서는 그 손을 가난한 사람을 향해 폅니다.
이러한 연결은 여인의 노동과 나눔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여 재산을 얻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얻은 것을 모두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손바닥을 편다」는 표현은 구체적입니다. 손은 무언가를 꽉 쥘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기 위해 펼 수도 있습니다. 이 여인의 손은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일할 때에는 도구를 붙잡고, 나눌 때에는 손을 폅니다.
그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유능하기 때문에 칭찬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열매를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하기 때문에 더욱 귀한 사람입니다.
왕과 여인은 서로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집니다. 왕에게는 재판하고 명령할 권한이 있습니다. 여인에게는 재물을 생산하고 관리하며 나눌 역량이 있습니다. 왕의 책임은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이고, 여인의 행동은 구체적인 돌봄으로 나타납니다.
둘 다 힘없는 사람을 향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합니다.
잠언 31장이 보여 주는 역량은 움켜쥐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펼 수 있을 때 그 역량의 가치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시는 이 여인의 나눔을 보여 준 뒤에도 그를 궁핍하게 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구절부터 그가 집안사람들을 얼마나 든든하게 돌보는지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는 19절과 20절에 손과 손바닥을 뜻하는 단어들이 교차하며 등장합니다. 이 모습은 신명기 15:7–11과 연결됩니다. 신명기는 가난한 형제가 있을 때 마음을 완고하게 하거나 손을 닫지 말고, 손을 열어 필요한 것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잠언 31장의 여인은 바로 그런 열린 손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눈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인
진홍색 옷을 입은 집안사람들
눈이 와도 집안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진홍색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잠언 31:21 · 본디새김
여기서는 날씨가 바뀝니다.
앞에서 여인은 양식을 마련하고 밭과 포도밭을 일구었습니다. 이제는 눈이 오는 날에도 집안사람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진홍색 옷」을 겹옷으로 읽는 해석도 있지만, 진홍색 옷으로 읽든 겹옷으로 읽든 여인이 집안사람들의 필요를 미리 살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인은 날씨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이 올 때를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자연의 어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개미가 여름에 양식을 준비하던 앞 장의 모습과도 어울리지만, 31장은 그 준비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책임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특별히 보여 줍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옷도 만든다
자기를 위해 덮개들을 만들며,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천을 옷으로 입는다.잠언 31:22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의 말씀과 중요한 균형을 이룹니다. 여인은 집안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옷을 만듭니다.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천은 값지고 품질 좋은 직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자주색 염료로 물들인 천은 고대 사회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물품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가난하게 살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포기하고 가족에게만 희생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동과 경제활동이 가져온 열매를 누리기도 합니다.
잠언 31장이 찬양하는 나눔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는 행위와 같지 않습니다. 여인은 가족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 좋은 옷을 마련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책임과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일을 반드시 대립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성문에 앉은 남편
그 여인의 남편은 성문들에서 알려져 있다.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앉을 때에 그러하다.잠언 31:23 · 본디새김
갑자기 남편이 등장합니다.
성문은 고대 이스라엘의 공적인 생활에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거래하고, 장로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하고, 법적인 일을 처리하던 공간입니다. 따라서 남편이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는다는 것은 그가 공동체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남편의 공적인 지위는 여인의 활동과 분리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인이 집안의 재산과 생활을 능력 있게 돌보는 상황 속에서 남편이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힘과 위엄을 옷으로 입다
24절에서 여인은 다시 상업활동을 합니다.
아마포 옷을 만들어 팔고, 허리띠를 상인에게 넘긴다.잠언 31:24 · 본디새김
앞에서 재료를 구하고 직물을 만들던 활동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와 연결됩니다. 여인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주체라는 점이 다시 드러납니다.
그런데 25절에서는 그의 옷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힘과 위엄이 그 여인의 옷이며, 다가올 날을 향해 웃는다.잠언 31:25 · 본디새김
22절에서는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천을 입었습니다. 이제는 힘과 위엄을 입습니다. 시인은 실제 옷에서 비유적인 옷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눈에 보이는 옷감도 훌륭하지만, 그 여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힘과 위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힘」은 17절에서 그가 허리를 동일 때 사용한 힘과도 연결됩니다. 그의 강함은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꾸려 나갈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포함합니다.
「다가올 날을 향해 웃는다」는 표현을 미래에 고난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태도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앞에서는 눈이 오는 상황까지 대비해야 했습니다. 삶에는 불확실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래를 무조건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살피고 준비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다가올 날을 향해 웃을 수 있습니다.
웃음은 무책임한 낙관이 아니라, 책임 있게 살아온 사람의 담대함을 표현합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의 「진홍색 옷」은 히브리어 샤님의 고정된 모음에 따른 읽기입니다. 이는 진홍색이나 붉은색 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같은 자음들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 겹옷을 뜻한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겹옷으로 읽으면 추위를 막기 위한 준비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진홍색 옷으로 읽으면 집안사람들이 잘 갖추어 입고 있다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본디새김은 진홍색 옷이라는 읽기를 따릅니다. 따라서 붉은 옷이 특별한 보온 기능을 가졌다고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23절의 성문과 관련해서는, 룻기 4:1–12에서 보아스가 성문에서 장로들과 함께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로 입을 열고 인애를 가르치는 여인
이 여인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혜로 자기 입을 열며, 그 혀에는 인애의 가르침이 있다.잠언 31:26 · 본디새김
이 구절에 이르면 시의 초점이 손에서 입으로 옮겨 갑니다.
여인은 양식을 준비하고, 옷감을 만들고, 밭을 사고, 포도밭을 일구고,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보여 줍니다. 앞에서 왕은 말 못 하는 사람을 위해 입을 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여인은 자신이 입을 열 때 지혜롭게 말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 연결이 의미 있는 이유는 잠언 전체에서 말이 지혜를 드러내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말은 사람을 속이고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살리는 데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인애는 단순한 친절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신실한 사랑과 자비, 상대방을 향한 지속적인 선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인애의 가르침」은 그저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만 한다는 뜻으로 좁힐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는 사람을 이롭게 하고 관계를 세우려는 신실함이 담겨 있습니다. 필요할 때 올바른 것을 가르칠 줄 알면서도, 그 가르침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치거나 짓누르기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시작 부분에서는 지혜가 거리와 성문에서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을 불렀습니다(잠언 1:20–21). 잠언 8장에서도 지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서는 한 여인이 지혜로 입을 엽니다.
지혜가 의인화된 여인과 마지막 장의 역량 있는 여인을 완전히 같은 인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중요한 연결은 분명합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혜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마지막에는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여인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합니다.
지혜는 이제 단순히 배워야 할 말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과 입술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가르침이 됩니다.
게으름의 빵을 먹지 않는다
집안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게으름의 빵을 먹지 않는다.잠언 31:27 · 본디새김
「살핀다」는 말은 단순히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집안의 여러 활동과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두고 전체를 돌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가정에는 여종들도 있고, 생산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여러 활동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여인의 역량에는 직접 노동하는 능력뿐 아니라 사람과 자원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능력도 포함됩니다.
반대편에는 「게으름의 빵」이 있습니다. 시인은 앞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여인의 활동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습니다. 먹을거리는 단순히 소비의 대상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이미지가 됩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의 노동에 무관심하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책임을 알고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시를 모든 여성이 모든 시간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워야 한다는 명령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시가 묘사하는 것은 한 여인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시간표가 아니라, 그의 성실함과 역량을 찬양하는 이상적인 초상입니다. 그가 가진 경제적 조건과 여러 사람의 도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현대의 모든 여성에게 같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것은 본문을 잘못 적용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여성이 덜 지혜롭거나 덜 훌륭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자녀가 없는 여성에게 이 본문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룻기 3:11에서 룻이 역량 있는 여인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보여 주듯, 지혜와 역량은 특정한 가정 형태나 부의 규모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의 활동이 지혜와 인애라는 기준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손은 부지런하지만, 단지 성과를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의 입은 지혜롭지만,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관계와 일을 책임 있게 돌봅니다.
조금 더 깊이
「인애의 가르침」은 히브리어 토라트 헤세드로, 가르침을 뜻하는 토라와 인애를 뜻하는 헤세드가 결합한 표현입니다. 잠언 1–9장에서는 지혜가 종종 여인으로 의인화되었습니다. 지혜는 길거리와 성문에서 사람들을 부르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의 길로 오라고 초대합니다(잠언 1:20–33, 8:1–36, 9:1–6). 반면 어리석음도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유혹합니다(잠언 9:13–18). 이 연결 때문에 마지막의 여인을 의인화된 지혜의 실제적인 초상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잠언 31장의 여인을 오직 상징적인 인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고대 사회의 구체적인 가정과 경제활동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실제 여성의 역량과 노동을 찬양하는 시이면서, 동시에 잠언 전체가 가르친 지혜의 모습을 집약하는 시로 읽을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여인을 칭찬하는가
자녀와 남편이 일어나 칭찬하다
자녀들은 일어나 그 여인을 복되다 하고, 남편도 그 여인을 칭찬한다.잠언 31:28 · 본디새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묘사되었던 행동에 대한 반응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앞에서 그 여인이 가족에게 베풀었던 여러 가지 수고와 연결됩니다. 그는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옷을 만들었으며, 집안의 여러 일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시는 그가 한 일을 당연한 의무로 취급하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녀와 남편이 그것을 인정하고 칭찬합니다. 지금까지 여인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 여인의 삶을 바라보고 그 가치를 말합니다.
그의 수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편의 칭찬
「많은 여인이 역량을 펼쳤지만, 당신은 그들 모두를 뛰어넘었소.」잠언 31:29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남편이 직접 아내를 칭찬하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칭찬의 표현은 10절과 연결됩니다. 10절에서는 역량 있는 여인을 누가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29절에서는 많은 여인이 역량을 펼쳤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두 구절은 같은 하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찬양합니다. 이는 다른 모든 여인의 가치를 낮추려는 비교라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리는 최상의 칭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 말하기 위해 더 큰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30절은 찬양의 기준을 결정적으로 밝힙니다.
아름다움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무엇인가
매력은 속임이며 아름다움은 입김이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여인, 그 여인이 칭찬을 받는다.잠언 31:30 · 본디새김
지금까지 시는 여인의 손과 팔, 입과 혀, 그가 입는 옷과 그의 활동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그 여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외모나 사회적 매력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태도입니다.
이 구절은 아름다움이 전혀 가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매력은 사람의 판단을 잘못 이끌 수 있고,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외적인 모습의 변화와 다른 차원의 가치입니다.
잠언 1:7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 잠언 전체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다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칭찬받습니다.
잠언의 시작에서는 지혜를 얻으려는 사람에게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지막에서는 그 지혜가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31장의 여인은 단지 성실하고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깊은 기준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우상처럼 숭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산이나 성공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의 노동과 경제활동, 가정을 돌보는 행동과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펴는 행위는 모두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삶과 연결된 것으로 제시됩니다.
잠언의 마지막이 칭찬하는 것은 가장 많은 일을 해낸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지혜가 자신의 삶 전체에 드러난 사람입니다.
그 여인의 두 손이 맺은 열매를 그 여인에게 주어라
너희는 그 여인의 두 손이 맺은 열매를 그 여인에게 주어라. 그 여인의 행실이 성문들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게 하여라.잠언 31:31 · 본디새김
잠언의 마지막 절은 뜻밖에도 명령으로 끝납니다.
이제 시인은 여인의 남편이나 자녀에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는」이라고 말합니다. 이 여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본 사람들이 그에게 마땅한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손이 맺은 열매」는 앞에서 반복해서 등장했던 그의 노동과 활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재료를 구했고, 직물을 만들었으며, 땅을 사고 포도밭을 일구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두 손을 뻗었고, 집안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마련했습니다.
단순히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돌려주고, 그의 행실을 인정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구절을 구체적인 임금 지급 규정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일한 사람이 그 열매에 대해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23절에서는 남편이 성문에서 장로들과 함께 앉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는 여인 자신의 행실이 성문에서 그 여인을 칭찬합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공적인 명예가 등장했지만, 끝에서는 여인의 공적인 명예가 나타납니다.
그 여인은 자기 집 안에서만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그의 삶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여인이 직접 자신을 자랑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의 행실이 그를 칭찬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누구를 돌보았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가 그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30절의 「입김」은 히브리어 헤벨로, 전도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헤벨은 입김이나 수증기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붙잡기 어려운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성문에 울리는 마지막 찬양
잠언 31장의 처음에서 왕은 자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할 힘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말 못 하는 사람을 위해 입을 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한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손으로 일하고, 집안사람들을 돌보며,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폈습니다. 지혜로 입을 열었고, 그의 혀에는 인애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위치는 다르지만, 그들의 힘이 자신만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리고 왕에게도 어머니의 가르침이 필요하며, 여인 역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태도로 칭찬받습니다. 지혜는 개인이 성공하기 위한 기술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능력을 다른 사람의 삶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시가 칭찬하는 핵심은 지혜로운 판단, 책임 있는 행동, 신실한 관계, 가난한 사람을 향한 돌봄, 그리고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태도입니다.
이 시를 누군가에게 끝없는 헌신을 요구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잠언의 마지막 명령은 그 여인에게 더 일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여인이 맺은 열매를 그 여인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그의 삶은 집안의 울타리를 넘어 성문에 이릅니다. 성문은 사람들이 모이고, 중요한 일을 논의하며, 공동체의 판단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여인의 행실이 그를 칭찬하게 됩니다.
잠언은 마지막에 왕의 업적이나 궁궐의 화려함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큰 재물을 얻은 사람을 칭찬하지도 않습니다. 한 여인이 자신의 두 손으로 이룬 열매와 그가 살아온 삶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잠언의 시작에서 지혜는 거리와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이제 책의 마지막에서 지혜의 가르침은 한 사람의 삶 속에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말합니다. 「너희는 그 여인의 두 손이 맺은 열매를 그 여인에게 주어라. 그 여인의 행실이 성문들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게 하여라.」
처음에는 지혜가 성문에서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마지막에는 한 여인의 지혜로운 행실이 성문에서 칭찬받습니다.
지혜의 가르침은 사람의 귀에 들리는 말로 시작했지만, 잠언의 마지막에서는 사람의 손이 맺은 열매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맺은 사람이 마땅한 인정을 받는 장면에서, 잠언은 책을 마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