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40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폭력의 손과 독을 품은 입술 앞에서

사람을 무너뜨리는 데 반드시 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삶을 뒤흔들 수 있고, 누군가 치밀하게 꾸민 계략이 한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공격하는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상대방이 무너지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편 140편의 시인은 바로 그런 위험 속에 있습니다.

그를 위협하는 사람들은 폭력을 일삼고, 마음속으로 악을 계획하며, 독사의 독처럼 해로운 말을 쏟아 냅니다. 그들은 시인이 지나갈 길에 덫을 숨겨 놓고, 넘어뜨릴 기회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는 뜻밖의 대비가 있습니다.

시인은 8절에서 「당신은 전투의 날에 제 머리를 덮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잠시 뒤 10절에서는 「저를 에워싼 자들의 머리를 그들 입술의 해악이 덮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합니다. 두 구절 모두 머리를 덮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머리를 덮는지는 정반대입니다.

시인의 머리는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원수들의 머리는 그들 자신의 입술에서 나온 해악이 덮기를 바랍니다. 악한 사람들은 남을 무너뜨리려고 자신의 힘과 지혜를 사용하지만, 시인은 그들의 악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개입하시기를 구합니다.

그런데 시편은 단순히 원수들이 벌을 받기를 바라는 기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시인이 확신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의 송사가 판결되고, 궁핍한 사람의 권리가 지켜지며,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위협에서 시작한 기도가 사회적 정의와 하나님 앞에서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 움직임을 따라가면, 시인이 바라는 구원이 무엇인지 조금씩 분명해집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140편 본문 읽기 →

혀는 독을 품고, 손은 폭력을 행한다

시편 140:1–4 본문 →

여호와야훼, 악한 사람에게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폭력을 일삼는 사람에게서 저를 지켜 주십시오.시편 140:2 · 본디새김

시인은 상황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자신을 공격하는지, 그 일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갈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는 곧장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건지는 것은 위험에 빠진 사람을 그곳에서 꺼내는 행동입니다. 지키는 것은 위험이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행동입니다. 그는 이미 위험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닥칠 위험에서도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원수들을 단순히 자신과 사이가 나쁜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타인을 해치는 부당한 행동과 억압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시인의 원수들은 우연히 화를 내거나 일시적으로 실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악한 일들을 꾀했고, 날마다 전쟁을 일으킵니다.시편 140:3 · 본디새김

그들의 악은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꾀했다」는 말은 계획하고 계산하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해로운 일이 우발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을 구상합니다. 더구나 그 일이 「날마다」 반복됩니다.

여기서 「전쟁」이 실제 무력 충돌을 뜻하는지, 지속적인 적대와 싸움을 묘사하는 표현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들이 끊임없이 갈등을 조성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시인에게 위험은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뱀처럼 자기 혀를 날카롭게 했고, 그들의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셀라.시편 140:4 · 본디새김

여기서 공격의 도구는 칼이 아니라 혀입니다.

칼날을 갈듯 혀를 날카롭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혀는 뱀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뱀의 공격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상처만 남길 수 있지만, 독은 몸속으로 퍼져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악한 말에도 그와 비슷한 파괴력이 있다고 봅니다.

말은 잠깐 들렸다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고발이나 중상모략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판단을 바꾸고, 한 사람의 명예와 관계, 삶의 터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구체적인 거짓말을 했는지는 본문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폭력적인 사람들인데, 시인은 그들의 혀를 먼저 묘사합니다.

이 시편에서 악한 말과 폭력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닙니다. 말은 폭력을 준비하거나 정당화하고, 사람을 해치는 행동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입으로 하는 말까지 도덕적으로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을 품은 입술의 이미지가 남겨진 채 첫 부분이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원수들의 공격은 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폭력」으로 옮긴 히브리어 단어는 창세기 6:11–13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홍수 이전의 땅은 폭력으로 가득 찬 곳으로 묘사되며, 하나님은 그 폭력이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40편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를 직접 가리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폭력을 단순한 개인적 성격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악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4절 끝의 「셀라」의 정확한 음악적·예전적 기능은 확정하기 어렵지만, 노래나 낭송의 흐름에 구분을 주는 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3:13에서 시편 140:4의 「그들의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말을 직접 인용합니다. 시편에서는 악한 원수들을 묘사하던 표현이지만, 바울은 이를 인간의 죄를 폭넓게 고발하는 문맥에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시편 140편의 본래 상황을 지우는 인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언어가 특정한 원수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전체가 돌아보아야 할 죄의 모습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을 읽는 사람은 자신을 언제나 시인의 자리에만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폭력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이 아닙니다. 폭력의 피해를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그 폭력의 방식이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살피는 것입니다.

길가에 숨겨진 덫 — 삶의 방향을 잃게 만드는 공격

시편 140:5–6 본문 →

여호와야훼, 악인의 손에서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폭력을 일삼는 사람에게서 저를 지켜 주십시오. 그들은 제 발걸음을 밀쳐 넘어뜨리려고 꾀했습니다.시편 140:5 · 본디새김

앞에서는 원수들의 혀와 입술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손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공격의 대상도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발걸음은 사람이 길을 따라 움직이는 행동입니다. 여기서 「넘어뜨리다」는 표현은 실제 신체적인 공격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려는 계략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저를 잡으려고 덫과 줄을 숨겨 놓았습니다. 길가에 그물을 펼쳤고, 저를 잡으려고 올무들을 놓았습니다. 셀라.시편 140:6 · 본디새김

시인은 원수들을 사냥꾼처럼 묘사합니다.

이러한 도구들은 공격 대상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붙잡기 위해 사용됩니다. 시인이 걸어가는 길은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들은 그 길에 덫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시인은 자기 앞에 놓인 위험을 모두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붙잡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골적인 적대는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진행되는 계획은 쉽게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보호를 요청합니다. 본문은 시인이 현실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이 기도는 시인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모든 위협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3절과 5절에서 반복되는 「꾀했다」는 표현에서, 원수들은 마음속에서 악을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시인의 길에 덫을 놓습니다. 악한 생각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인은 그들의 계획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처음에는 독을 품은 말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감추어진 덫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지나갈 길을 막는 함정입니다.

그런 위험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을 찾기보다 하나님께 직접 말합니다.

전투의 날에 머리를 덮어 주신 분

시편 140:7–9 본문 →

저는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당신은 제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야훼,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시편 140:7 · 본디새김

이 절은 시편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입니다.

앞에서는 원수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길게 설명했습니다. 이제 시인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밝힙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전쟁을 지켜보시는 구경꾼이 아니십니다. 시인이 직접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 하나님」이십니다.

7절의 「애원하는 소리」는 앞에 등장한 원수들의 입술과 대조됩니다. 두 편 모두 입을 사용하지만, 그 말이 향하는 방향과 목적은 정반대입니다. 악한 사람들의 언어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도구입니다. 시인의 언어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기도입니다.

여호와야훼, 주, 제 구원의 힘이시여, 당신은 전투의 날에 제 머리를 덮어 주셨습니다.시편 140:8 · 본디새김

고대 전투에서 머리는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중요한 부위였습니다. 투구나 방패를 떠올릴 수 있지만, 본문이 실제로 어떤 방어구를 가리킨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은 전투가 시작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막아 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날, 하나님이 자신의 머리를 덮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위험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이 실제로 닥친 가운데서도 경험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시인은 이 일을 과거의 경험으로 고백합니다. 이전에 자신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지금도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 경험이 다음 기도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께 악인의 소원을 들어주지 말라고 기도하다

여호와야훼, 악인이 바라는 것들을 들어주지 마십시오. 그의 계략을 이루어 주지 마십시오. 그랬다가는 그들이 높아질 것입니다. 셀라.시편 140:9 · 본디새김

시인 자신도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악인의 소원은 들어주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왜 그런가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입니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시인은 무너지고, 악한 사람들은 더욱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히브리어에서 이 마지막 구절과 앞뒤 문장의 연결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계획이 성공할 때 그들이 높아진다는 결과로 읽을 수도 있고, 다음 절의 원수들이 머리를 드는 이미지와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시인이 두려워하는 상황은 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성공시켜 더욱 기세등등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라는 것을 모두 얻는 것이 반드시 복은 아닙니다. 그 바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 계획이 좌절되는 것이 오히려 정의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의 소원을 막으시는 하나님을 구합니다.

이제 기도는 더욱 격렬해집니다.

자신이 만든 해악에 덮이는 사람들

시편 140:10–12 본문 →

저를 에워싼 자들의 머리를 그들 입술의 해악이 덮기를 바랍니다.시편 140:10 · 본디새김

8절에서 시인의 머리를 덮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10절에서는 원수들의 머리를 덮는 것이 그들 자신의 입술에서 나온 해악입니다. 같은 「머리」와 「덮다」라는 이미지가 정반대의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그들의 입술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입술에서 나온 해악이 자기 자신을 덮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악의 결과가 그 악을 행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주제는 구약의 여러 곳에서 반복됩니다. 시편 7:16–17에서는 악인이 구덩이를 파다가 자신이 판 구덩이에 빠지고, 자신이 꾸민 해악이 자기 머리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잠언 26:27도 구덩이를 파는 사람이 그곳에 빠지고, 돌을 굴리는 사람에게 그 돌이 도로 굴러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악이 언제나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는 자연법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행한 사람이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의의 원리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는 심판의 이미지가 더욱 거칠어집니다.

그들 위로 숯불들이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그들을 불 속에, 물구덩이들 속에 떨어뜨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시편 140:11 · 본디새김

이 표현은 분명히 파괴적인 심판을 바라는 말입니다.

단순히 원수들이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바꾸기를 기도하는 것으로 순화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독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본문에 없는 의미를 만들어 넣어서는 안 됩니다.

본디새김은 「그들을 떨어뜨리다」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읽습니다. 이 읽기를 따르면 시인은 하나님이 직접 원수들을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불과 물구덩이를 실제로 원수들이 불과 물속에 차례로 떨어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의 예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을 공격할 수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말로 해치는 사람은 끝까지 설 수 있는가?

혀로 해치는 사람이 땅에서 굳게 서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재앙이 폭력을 일삼는 사람을 사냥하여 거듭 밀쳐 넘어뜨리기를 바랍니다.시편 140:12 · 본디새김

여기서 처음에 등장했던 두 종류의 악이 다시 나타납니다. 하나는 혀로 해치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폭력을 행하는 일입니다.

「굳게 서다」는 단순히 두 발로 서 있는 행동 이상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상태를 표현합니다. 시인은 다른 사람을 말로 무너뜨리는 사람이 계속해서 안정된 지위를 누리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원수들은 시인을 잡으려고 덫을 놓는 사냥꾼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사냥당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남을 붙잡으려던 사람이 도리어 붙잡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혹한 심판을 바라는 기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이 기도는 악의 피해자가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를 숨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인이 실제로 어떤 감정 상태에 있었는지 모두 알려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위협을 사소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보여 줍니다.

동시에 시편은 이 심판을 시인 자신의 손에 맡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수들에게 어떤 복수를 실행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악인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기도에 담긴 모든 미움과 저주의 감정이 자동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수의 죽음과 파멸을 바라는 표현은 여전히 신중하게 읽어야 합니다. 다만 본문 안에서 시인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이 구별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심판에 대한 바람을 인간의 직접적인 보복과 구별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마지막 두 절은 이러한 심판의 기도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11절의 원문에는 문법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숯불이 떨어지는 동사의 형태와, 뒤따르는 「그들을 떨어뜨리다」라는 동사의 주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불과 물구덩이가 함께 나타나는 것도 독특합니다. 두 이미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파괴하는 위험을 나타냅니다. 12절 후반부의 히브리어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재앙」이 사냥하는 주체인지, 폭력적인 사람의 성격을 수식하는지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표현 역시 여러 차례 밀쳐 넘어뜨리는 행동이나 파멸에 이르는 타격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재앙이 폭력적인 사람을 뒤쫓아 거듭 넘어뜨리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이 읽기에서는 처음부터 시인을 쫓고 넘어뜨리려던 원수들의 행동이 그들 자신에게 돌아가는 모습이 더욱 선명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송사를 판결하시는 하나님

시편 140:13 본문 →

저는 여호와야훼께서 가난한 이의 송사를 판결하시고 궁핍한 이들의 권리를 지켜 주실 것을 압니다.시편 140:13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바랍니다」라는 소망과 「마십시오」라는 간청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압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시편 전체에서 가장 분명한 확신의 표현입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한 모든 사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망하게 될 것인지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의 파멸을 구하던 기도가 이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고백으로 옮겨갑니다.

왜 갑자기 가난한 사람이 등장하는가?

시인은 자신의 문제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겪는 부당함이라는 더 넓은 현실과 연결합니다. 그 자신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폭력을 당하고 위협받는 자신의 상황을 약한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는 문제와 연결하여 바라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보호할 힘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할 때 대응하기 어렵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송사를 판결하실 분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에는 재판의 언어가 사용됩니다. 「송사」(⁨דִּין⁩)와 「권리」(⁨מִשְׁפָּט⁩)에 해당하는 두 히브리어 단어 모두 법적 판단과 정의에 관련된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는 감정적인 진술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사정을 정당하게 판단하시고, 침해된 권리를 바로잡으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의 힘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폭력 때문에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송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시인은 그런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들이 머물게 될 것인지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주제는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과 깊이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23:6은 가난한 사람의 송사에서 정의를 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0:18은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82:3–4에서는 약한 사람과 고아의 권리를 지켜 주고,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악인의 손에서 건져 내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 단순한 친절이나 개인적 자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원수의 덫에서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시편 140:14 본문 →

참으로 의로운 이들은 당신의 이름에 감사드리고, 올곧은 이들은 당신의 얼굴 앞에 머물 것입니다.시편 140:14 · 본디새김

시편은 감사와 머무름이라는 두 장면으로 끝납니다.

앞에서는 폭력과 전쟁, 독사의 독과 덫, 불과 구덩이가 등장했습니다. 시편의 처음에서 시인이 바라는 것은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의로운 사람들은 단순히 원수들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 머뭅니다.

여기서 「당신의 얼굴 앞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그분이 사람을 바라보시고, 그분 앞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시편의 앞부분에서 시인은 안정적으로 머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원수들은 그가 지나가는 길에 덫을 놓고, 그의 발걸음을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더 이상 누군가 자신을 넘어뜨릴까 두려워하며 길을 살피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절의 「의로운 이들」과 「올곧은 이들」을 도덕적으로 아무런 결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에서 의로움과 올곧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바른 삶의 방향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자신의 힘과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하고 그분 앞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139편에서는 시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어디로 달아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시편 139:7). 그런데 시편 140편의 마지막에서는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 머물게 됩니다. 앞에서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가 강조되었고, 여기서는 그 임재 안에서 누리는 안전과 관계가 강조됩니다. 두 시편을 같은 사건의 연속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나란히 읽을 때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이미지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빛납니다.

덫이 놓인 길을 지나, 하나님의 얼굴 앞에

시편 140:1–14 본문 →

하나님은 전투의 날에 그의 머리를 덮어 주셨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의 송사를 판결하시고 궁핍한 사람의 권리를 지켜 주실 분이십니다. 악을 심각하게 여기기 때문에 심판을 구하지만, 그 심판을 자신의 손으로 확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끝에서 자신만의 승리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권리가 세워지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시편 140편의 첫 장면에서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의 주변에는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독을 품은 말로 공격하고, 그가 지나갈 길에 덫을 숨겨 놓았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두려움이 있고, 분노가 있고, 원수들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격렬한 소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시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원수들의 멸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시인은 처음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들리는 것은 독을 품은 입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구원은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악이 더 이상 사람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굳게 머무는 것입니다.

시편은 그가 어떤 길로 위험에서 벗어났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길의 끝에서 무엇을 바라보는지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