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21편
이 장의 자리 · 1–41편 · 첫째 권
왕관을 씌우시고 기쁨을 완성하시는 하나님
왕의 머리에는 순금 왕관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의 영광과 위엄을 노래합니다. 그가 바라던 것을 얻었고, 그의 생명은 보존되었으며, 그를 위협하던 원수들은 더 이상 승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시편 21편은 왕이 누리는 복을 풍성한 언어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 시를 자세히 읽으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왕의 영광을 노래하면서도, 정작 왕에게 영광을 돌리는 말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왕은 기뻐하지만 그 기쁨은 여호와야훼의 힘에서 나옵니다. 왕은 왕관을 쓰지만 하나님이 그 머리에 씌우십니다. 왕은 생명을 얻지만 하나님께 청하여 받았습니다. 왕에게 영예가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입혀 주신 것입니다.
심지어 시의 마지막에서도 왕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높아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왕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가 계속해서 우리의 시선을 왕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 놓습니다. 이 시는 왕이 누리는 권력과 영광이 어디에서 오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바로 앞의 시편 20편에서는 사람들이 왕을 위해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시편 21편은 그 간구가 응답받은 듯한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두 시가 실제로 한 전쟁의 출정과 귀환을 위해 짝지어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내용상 긴밀하게 이어지지만, 시편 21편은 구원받은 왕을 위한 감사와 앞으로의 보호에 대한 확신을 함께 담은 독립된 노래이기도 합니다.
시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왕에게 베푸신 복을 노래하고(2~7절), 왕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밝힌 뒤(8절), 원수들에게 닥칠 패배를 선언합니다(9~13절). 그리고 마지막에는 왕과 원수의 이야기를 지나 하나님의 능력만을 찬양합니다(14절).
왕이 기뻐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다
여호와야훼, 왕은 당신의 힘으로 기뻐합니다. 당신의 구원으로 얼마나 크게 즐거워하는지요.시편 21:2 · 본디새김
시편은 「왕이 승리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은 당신의 힘으로 기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왕이 누리는 기쁨의 이유가 자신의 군사력이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적과 싸웠고,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렸으며, 어떻게 승리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시인이 관심을 두는 것은 전쟁의 경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왕이 살아남았고,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왕을 높여야 합니까, 아니면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까?
이 시는 첫 문장부터 그 답을 정합니다.
당신은 그의 마음이 바라는 것을 그에게 주셨고, 그의 입술이 청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셀라.시편 21:3 · 본디새김
「마음」과 「입술」이 짝을 이룹니다. 마음은 사람이 품고 있는 소망을 나타내고, 입술은 그 소망을 말로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왕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던 것이 있었고, 그것을 하나님께 청했습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이 그 소망과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셨다고 노래합니다.
왕에게도 바라는 것이 있고, 청해야 할 것이 있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는 명령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만 하나님께는 명령하지 못합니다. 그의 권위가 아무리 커도, 생명과 구원은 자기 뜻대로 확보할 수 없습니다.
왕의 입술은 백성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입술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왕의 모든 욕망을 하나님이 승인하셨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시인이 회고하는 것은 구원을 바라며 하나님께 드린 간구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응답의 구체적인 모습이 다음 구절들에서 펼쳐집니다.
하나님이 왕관을 씌우시다
당신이 좋은 복으로 그를 맞이하시고, 그의 머리에 순금 왕관을 씌우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1:4 · 본디새김
여기서 시인의 눈은 왕이 받은 선물보다 먼저, 그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동에 머뭅니다.
「좋은 복으로 그를 맞이하시고」(קָדַם)로 옮긴 히브리어 표현은 앞서 나아가 누군가를 맞이하거나 마주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이 하나님께 다가가 복을 받는 모습보다는, 하나님이 먼저 왕을 맞이하여 복을 베푸시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순금 왕관은 왕권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왕이 왕관을 쟁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왕의 머리에 씌우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실제 대관식의 묘사로 볼 수도 있고, 전쟁에서 구원받은 왕의 권위가 굳게 세워진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왕관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특정한 즉위식이나 승전식을 배경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심 의미는 같습니다. 왕관은 왕의 머리에 있지만, 왕권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시인은 왕관보다 더 근본적인 선물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당신께 생명을 청했고, 당신은 그에게 영원무궁토록 긴 날들을 주셨습니다.시편 21:5 · 본디새김
순금 왕관은 왕의 지위를 나타내지만, 생명이 없다면 그 왕관을 누릴 사람도 없습니다. 왕이 생명을 청했다는 말은 그에게 죽음의 위협이 있었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구체적인 위험을 밝히지 않으므로 어떤 사건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 어려운 표현은 「영원무궁토록 긴 날들」입니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인데, 어떻게 왕에게 영원한 날들이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첫째, 왕의 장수를 최대한 크게 표현한 왕실 찬양의 언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열왕기상 1:31에서 밧세바가 다윗에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왕실의 경의 표현을 사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한 표현이 왕의 생물학적 불멸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둘째, 왕 개인의 삶을 넘어 그의 왕조가 지속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세우시고 그의 왕좌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만 5절 자체는 왕의 후손이나 왕조를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문맥을 참고하되, 「긴 날들」을 반드시 왕조라는 뜻으로 바꾸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왕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왕은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 큰 권력을 지닐 수 있지만, 자신의 생명을 영원히 붙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61:7~8도 왕의 날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며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앉아 있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시편 89:39~46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고, 왕관이 땅에 더럽혀지며, 왕의 영광이 사라진 현실을 탄식합니다. 따라서 시편 21편의 「영원무궁토록 긴 날들」과 「영원토록 복이 되게 하시고」라는 말은 단순히 모든 이스라엘 왕이 영원한 번영을 누렸다는 역사적 진술로 읽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왕조의 실제 역사 사이에서 계속 붙들고 씨름해야 했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누가복음 1:32~33은 예수에게 다윗의 왕좌와 끝나지 않는 통치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다윗 왕조의 지속을 향한 구약의 기대가 신약에서 발전하는 연결이지, 시편 21편의 각 장면이 예수의 생애를 하나씩 직접 예언한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왕이 받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인가
당신의 구원으로 그의 영광이 큽니다. 당신은 그에게 위엄과 영예를 입히십니다.시편 21:6 · 본디새김
4절에서는 하나님이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이제는 왕에게 위엄과 영예를 입히십니다. 시의 표현이 실제 의복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이 영예를 사람 위에 입히듯 베푸신다는 이미지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왕의 영광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구원으로 그의 영광이 큽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위엄과 영예가 있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에서 나옵니다.
당신이 그를 영원토록 복이 되게 하시고, 당신 앞에서 기쁨으로 그를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1:7 · 본디새김
「복이 되게 하시고」(בְּרָכָה)로 옮긴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그를 복들로 만드시다」에 가깝습니다. 복을 뜻하는 명사가 복수로 나타나며, 하나님이 그를 복과 연결된 존재로 세우신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왕이 영원토록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처럼 왕 자신을 복이 되는 존재로 세우신다는 뜻으로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후자의 읽기를 허용하지만, 그 복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미치는지는 이 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후자로 읽으면 왕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인 행복을 높이기 위한 일만은 아닙니다. 왕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삶과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왕이 받은 것들은 눈에 보이거나 삶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왕관, 생명, 위엄, 영예, 복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왕이 누리는 기쁨의 자리가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당신의 얼굴」(פָּנִים)을 뜻하는 표현이 쓰입니다. 하나님이 왕을 자신의 얼굴 앞에서 기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왕이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한다는 뜻보다는, 하나님의 호의적인 임재 안에서 기쁨을 누린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에게 생명과 영광을 주시는 목적이 왕을 하나님에게서 독립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왕은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누리면서 계속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왕이 받는 복은 왕을 하나님보다 높이지 않습니다. 왕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복이 되게 하시고」를 후자의 의미로 읽으면 창세기 12:2의 아브라함을 향한 말씀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 주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복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12:3에서는 땅의 모든 집안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등장합니다. 시편 72:17에서도 왕의 이름이 오래 지속되고 여러 민족이 그와 관련하여 복을 누리거나 복을 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72편은 왕이 가난한 사람을 공정하게 재판하고, 도움을 구하는 궁핍한 사람을 건지며, 압제와 폭력에서 약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시편 72:2, 12~14). 시편 21편이 왕에게 주어진 복과 원수들로부터의 구원을 강조한다면, 시편 72편은 그러한 왕권이 백성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또 「당신 앞에서」의 기쁨은 시편 16:11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이 노래됩니다.
왕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
이는 왕이 여호와야훼를 신뢰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인애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시편 21:8 · 본디새김
「신뢰한다」는 표현은 왕이 일회적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넘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앞에서 왕이 구원을 경험했다고 했다면, 여기서는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앞으로도 왕을 지탱할 관계가 드러납니다.
「인애」(חֶסֶד)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단순한 호감이나 일시적인 친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문맥에 따라 지속적인 사랑, 충실함, 관계 안에서 베푸는 신실한 호의를 나타냅니다.
왕은 자신의 능력으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애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도 잘 어울립니다. 사무엘하 7:15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향한 자신의 인애를 거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을 왕이 어떤 잘못을 해도 하나님이 무조건 그의 통치를 성공시켜 주신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7:14는 왕의 잘못에 대한 징계도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왕의 책임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시편 21편은 왕이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그의 성공 이력이나 정치적 권력에서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서 찾습니다.
여기서 시의 흐름이 전환됩니다.
앞에서는 왕이 이미 받은 복을 노래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어떻게 될지를 말합니다. 과거의 구원을 기억하는 찬양이 미래의 위협을 바라보는 확신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숨을 수 없고, 계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당신의 손이 당신의 모든 원수를 찾아낼 것입니다. 당신의 오른손이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낼 것입니다.시편 21:9 · 본디새김
이제 시편은 평안하고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에서 갑자기 전투와 심판의 장면으로 옮겨 갑니다.
9절부터 13절까지 반복되는 「당신」은 하나님입니까, 왕입니까?
앞의 2~7절에서는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면서 왕을 삼인칭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8절은 왕과 여호와야훼를 모두 삼인칭으로 언급합니다. 뒤이은 9절에서는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당신의 손」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본디새김처럼 하나님을 계속 부르는 것으로 읽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하나님이 원수들을 찾아내시고 심판하신다는 선언이 됩니다. 14절에서 다시 여호와야훼를 직접 부르는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둘째, 9절에서 말의 상대가 왕으로 바뀌었다고 읽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백성이 왕을 향해 장차 원수들을 이길 것이라고 선언하는 말이 됩니다. 특히 10절 중간에서 「여호와야훼는 진노하여 그들을 삼킬 것이며」라고 하나님을 삼인칭으로 언급하는 점이 이 읽기를 뒷받침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계속 가리킨다고 읽는 경우에는 10절 중간의 삼인칭 표현을 시적인 시점 변화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쪽도 불가능하지 않으므로 본문만으로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두 읽기는 공통된 신학적 방향을 가집니다. 왕이 직접 원수를 물리친다고 이해하더라도, 시편은 그 힘의 근원을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신다고 이해하면 그 관계가 더욱 명백합니다.
9절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숨어 있는 적을 알아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적에게 손이 미쳐 그들을 붙잡거나 제압하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손」과 「오른손」이 나란히 등장하며, 원수와 미워하는 자들이 반복됩니다. 이는 어떤 원수도 그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을 강조합니다.
당신이 얼굴을 드러내실 때, 당신은 그들을 불타는 화덕처럼 만드실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진노하여 그들을 삼킬 것이며, 불이 그들을 먹어 치울 것입니다.시편 21:10 · 본디새김
「얼굴을 드러내실 때」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읽으면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임재를 나타냅니다. 왕을 가리킨다고 읽으면 왕이 원수 앞에 나타나는 때를 뜻합니다.
불타는 화덕의 이미지는 피할 수 없는 파괴를 나타냅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단지 전투에서 패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완전히 무력화되고 사라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당신은 그들의 열매를 땅에서 멸하시고, 그들의 씨를 사람들 가운데서 없애실 것입니다.시편 21:11 · 본디새김
「열매」와 「씨」는 여기서 자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사람들 가운데서」라는 말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손은 한 사람의 이름과 집안이 계속 이어지는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따라서 자손이 끊어진다는 것은 단지 후손 몇 명을 잃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집안의 미래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왕에게 주어진 「영원무궁토록 긴 날들」과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쪽에는 하나님이 길게 이어 주시는 날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는 자손이 있습니다. 승리는 지금의 전투를 넘어서 미래의 지속 여부까지 관련된 문제로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11절의 폭력적인 표현을 단순히 악한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누그러뜨릴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실제로 원수들의 자손이 끊어지는 무서운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이 고대 왕실의 전쟁과 심판을 노래하는 문맥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시가 모든 적대자와 그 후손을 없애는 행동을 독자에게 명령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 또는 왕의 원수들에 대한 심판의 확신이 표현되어 있지만, 그 표현만으로 오늘날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해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계략을 짰지만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시편 21:12 · 본디새김
그들은 단순히 다른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해치려고 했다」와 「계략을 짰다」는 표현은 그들의 적대적인 의도가 우발적인 충돌을 넘어 계획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왕은 마음으로 바라고 입술로 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간구에 응답하셨습니다. 반대로 원수들은 악을 도모하고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편은 사람의 의도가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왕의 소망도 하나님의 응답이 있어야 이루어지고, 원수들의 계략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좌절됩니다. 왕의 영광은 단지 왕이 많은 것을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를 해치려던 계획들이 실패했다는 사실과도 연결됩니다.
등을 돌리는 원수, 얼굴을 겨누는 활시위
당신이 그들을 등 돌려 달아나게 하시고, 당신의 활시위로 그들의 얼굴을 겨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편 21:13 · 본디새김
앞에서는 원수들이 불에 삼켜지고 그들의 미래까지 끊어진다는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는 몸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등」 또는 「어깨」를 뜻하는 말이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원수들이 패주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표현에서는 그들의 얼굴이 등장합니다. 달아나는 사람들의 등과 그들을 겨누는 활시위 앞의 얼굴이 한 구절 안에 놓입니다.
다만 실제로 어떤 자세에서 화살이 겨누어지는지를 세밀하게 재구성하기보다는, 적들이 달아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에 주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원수들은 처음에 남을 해치기 위해 계략을 세웠지만, 마지막에는 스스로 위험에서 도망치는 처지가 됩니다. 그들이 계획했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피하려는 심판은 그들을 향해 다가옵니다.
여기서 시인은 더 이상 전투 장면을 확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적장이 쓰러졌는지, 전쟁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갑자기 시선을 돌려 하나님께 직접 노래합니다.
왕의 높아짐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높아짐으로 끝나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힘으로 드높아지십시오. 저희가 당신의 위력을 노래하며 찬양하겠습니다.시편 21:14 · 본디새김
시편은 「여호와야훼, 왕은 당신의 힘으로 기뻐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 당신의 힘으로 드높아지십시오」라는 말로 끝납니다.
두 절에 등장하는 「당신의 힘으로」는 히브리어에서도 같은 표현입니다. 시 전체를 하나님의 힘이라는 주제가 감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과 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왕이 하나님의 힘으로 기뻐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위력을 노래하며 찬양하겠다고 말합니다.
왕의 기쁨에서 시작한 시가 공동체의 찬양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 시의 앞부분에서 왕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이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셨으며, 위엄과 영예를 입히셨습니다. 왕이 높아지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 준 뒤, 시인은 마지막에 여호와야훼가 높아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위가 아직 충분히 높지 않으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셔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찬양의 언어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힘으로 높아지지만, 그 높아짐의 마지막 목적지는 왕 자신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왕관보다 오래 남는 노래
시편은 왕의 기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왕이 크게 즐거워한다고 노래합니다. 그에게 영광과 위엄이 주어졌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이유를 계속해서 하나님께 연결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뻐하되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삼지 않는 태도,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능력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아는 태도, 자신의 계획과 생명을 모두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이 시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왕은 하나님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복의 풍성함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기쁨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왕의 머리에는 순금 왕관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생명과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그를 해치려던 원수들은 물러나고, 왕의 기쁨은 백성의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노래는 왕관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 「여호와야훼, 당신의 힘으로 드높아지십시오」 하고 소리 높입니다.
왕관은 왕의 머리에 남아 있지만, 마지막 찬양은 왕관을 씌우신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