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86편
이 장의 자리 · 73–89편 · 셋째 권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
시편 86편은 살려 달라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가난하고 궁핍하며,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목숨을 지켜 달라고, 원수들에게서 구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한가운데에서 뜻밖의 요청이 등장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도록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11절).
시인은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자신을 구해 달라는 기도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라고 요청할까요?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바깥의 위험이 사라지는 일이 아닙니다.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거나 갈라지지 않는 일입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그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경외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편에는 세 가지 움직임이 교차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탄원, 하나님만이 참으로 위대하시다는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배우고 그분을 온전히 경외하려는 소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차례로 등장했다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구원을 구하다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겼다가 다시 원수들의 위협을 호소합니다.
그가 처한 현실은 기도하는 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바라보는 자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
다윗의 기도. 여호와야훼, 당신의 귀를 기울여 제게 응답해 주십시오. 저는 가난하고 궁핍하기 때문입니다.시편 86:1 · 본디새김
시인은 자신의 궁핍함을 기도의 첫 번째 근거로 내세웁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 내세울 수 있는 공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두 단어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나타낼 수 있으며, 시편의 탄원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상태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사람으로 제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응답받을 자격을 주장하기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드러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언뜻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합니다.
제 목숨을 지켜 주십시오. 저는 당신께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당신의 종을 구해 주십시오. 당신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시편 86:2 · 본디새김
1절에서는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했는데, 2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께 신실하다고 말합니다. 이 두 고백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신실하다」는 말은 경건하거나 신실한 사람,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실한 사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 신실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나는 죄가 없으므로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라는 주장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5절에서 하나님이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실함이 어떤 관계 안에 있는지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소속과 신뢰의 언어가 거듭 등장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독립적인 능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종이며,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분께 보호를 구합니다.
이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표현은 「당신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위급할 때 잠시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가는 낯선 존재가 아니십니다. 시인이 평소에도 신뢰하며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시인의 확신은 자신에게 충분한 힘이 있다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이 신뢰하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데서 나옵니다.
이 고백을 마친 시인은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히브리어 아니 베에브욘입니다. 그렇다고 시인이 실제로 재산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은 그의 경제적 형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신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시드는 하나님의 인애를 가리키는 헤세드와 같은 어근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신실함이 언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지켜 달라는 기도에서 마음을 기쁘게 해 달라는 기도로
주,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온종일 당신께 부르짖기 때문입니다.시편 86:3 · 본디새김
당신의 종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십시오. 주, 제가 당신께 제 마음을 들어 올리기 때문입니다.시편 86:4 · 본디새김
시인은 온종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하는 것은 단지 위험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2절의 「제 목숨」(נֶפֶשׁ)과 4절의 「제 마음」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2절에서는 목숨을 지켜 달라는 기도에 사용되었습니다. 4절에서는 기쁘게 해 달라는 요청과 하나님께 자신을 들어 올리는 표현에 사용됩니다.
그는 단지 살아남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 올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내면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고통과 두려움 속에 있는 자신을 그대로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의 기쁨은 현실에서 이미 충분한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가 가능하다는 근거가 5절에 나타납니다.
주, 당신은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인애가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시편 86:5 · 본디새김
앞에서는 ‘제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르짖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당신은 선하시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인의 상황과 행동을 말하던 기도가 하나님의 성품을 고백하는 기도로 바뀝니다.
「기꺼이 용서하시며」는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거나 용서하기를 기꺼워하시는 성품을 나타냅니다. 그는 용서해 달라는 간청을 마지못해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시인은 지금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은 자기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인애가 풍성하십니다. 이 짧은 표현은 뒤에서 등장할 모든 민족의 예배를 미리 떠올리게 합니다.
6–7절에서는 처음의 간구가 다시 등장합니다. 시인은 「제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라고 다시 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제가 곤경에 처한 날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제게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편 86:7 · 본디새김
처음에는 「제게 응답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제게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는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보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응답을 기대하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시인은 응답을 확인한 다음에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때문에 응답을 기다리며 계속 기도합니다.
조금 더 깊이
「목숨」과 「마음」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네페쉬입니다. 네페쉬는 문맥에 따라 생명, 목숨, 자기 자신, 마음이나 욕구를 지닌 존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라는 뜻으로만 한정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모든 민족을 바라보다
주, 신들 가운데 당신 같은 이는 없습니다. 당신이 하신 일 같은 일도 없습니다.시편 86:8 · 본디새김
여기서 시편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자신을 구해 달라고 요청할 법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잠시 자신의 곤경에서 시선을 들어, 하나님의 유일한 위대하심을 바라봅니다.
이 표현은 다른 신적 존재들과 비교하여 여호와야훼가 비길 데 없는 분이심을 선언하는 언어입니다. 본문의 관심은 다른 존재들의 정체보다 여호와야훼의 독보적인 권능에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그분의 행하신 일과 함께 고백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단지 이론적으로 믿어야 하는 명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구원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그 하나님의 행동이 미칠 범위가 더욱 넓어집니다.
주, 당신이 만드신 모든 민족이 와서 당신 앞에 엎드리고,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시편 86:9 · 본디새김
시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만드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민족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민족이 그분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기대가 생겨납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지켜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미래를 노래합니다.
시인은 자기 문제만을 바라보는 데 갇혀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구하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의 위험을 잊어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무리 커 보여도 그들 역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10절에서 그는 그 이유를 분명히 합니다.
당신은 위대하시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며, 당신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시편 86:10 · 본디새김
하나님의 비길 데 없으심을 노래하던 시가 그분의 유일하심을 선언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위대한 하나님께 다시 자신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만 요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모든 민족의 하나님을 찬양하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힘입니다. 이것만으로 시인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어떤 철학적 의미에서 인정했는지까지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15:11을 떠올리게 합니다. 홍해를 건넌 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와 같은 이가 신들 가운데 누구냐고 노래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비길 데 없으심은 추상적인 능력의 우열로만 표현되지 않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손에서 건져 내신 하나님의 행동과 연결됩니다. 모든 민족의 예배는 시편 22:27–29에서 땅의 모든 끝과 민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엎드리는 모습과도 연결됩니다. 시편 86편에서는 이 보편적인 예배의 전망이 매우 개인적인 기도 가운데 등장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
여호와야훼,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신실함 안에서 걷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도록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시편 86:11 · 본디새김
시편 86편의 중심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두 가지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는 것과,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방식과 그분의 백성이 따라야 할 삶의 길을 모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분이 선하시고 용서하시며 인애가 풍성하시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길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다시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안다는 사실과 그분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가르침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 가르침을 구합니다. 「신실함」은 진실함, 신뢰할 만함, 충실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머릿속에서 이해하고 끝내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는 ‘제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더 많은 지식이나 더 강한 의지만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 자체가 하나로 모아지기를 구합니다.
왜 이런 기도가 필요할까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마음이 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위험이 닥치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놓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갈등 때문에 나뉘어 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라는 요청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그분을 경외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단지 처벌받을까 봐 겁내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인정하며, 그분 앞에서 마땅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노래한 뒤, 자신부터 그 이름을 온 마음으로 경외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온 세상이 하나님께 엎드릴 미래를 바라보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께 온전히 향해 있는지 묻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일에는 인간의 응답이 필요하지만, 그 응답을 온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도 필요하다는 고백입니다.
이어서 12절에서 시인의 기도는 감사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주, 저의 하나님, 제 온 마음으로 당신께 감사하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에 영원히 영광을 돌리겠습니다.시편 86:12 · 본디새김
11절에서는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제 온 마음으로」 감사하겠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라고 요청한 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게 된 온 마음으로 그분께 감사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원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잠시 강렬한 종교적 감정을 경험하는 일이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길을 걸으며 그분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가 왜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지는 13절에서 드러납니다.
저를 향한 당신의 인애가 크고, 당신이 제 목숨을 깊은 스올에서 건져 내셨기 때문입니다.시편 86:13 · 본디새김
구약에서 스올은 죽음과 죽은 자들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시편에서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절망적인 상태를 표현할 때에도 사용됩니다. 시인은 자기 목숨이 스올의 깊은 곳까지 내려간 것처럼 느껴질 만큼 심각한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건져 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인애가 크다고 고백합니다.
처음에 시인은 자신의 목숨을 지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 목숨을 건져 내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현재에도 생명의 위협이 있지만, 과거에 받은 구원의 기억이 그의 기도를 지탱합니다.
그 하나님의 인애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자기 삶도 그분께 온전히 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깊은 스올」의 히브리어 셰올 타흐티야는 스올의 가장 깊은 곳 또는 저 아래의 스올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본문만으로 그렇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 30:3–4에서도 하나님께서 시인을 스올에서 끌어올리시고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고백하며, 그 문맥에서는 죽음의 위험에서 구원받은 경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편 86편 역시 극심한 위험에서 구원받았다는 고백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가 어떤 사건을 경험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나뉘지 않은 마음에 대한 기도는 신명기 6:4–5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가 오직 한 분이심을 듣고,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시편 86편은 이러한 신앙의 요청을 개인의 기도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신도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그분을 경외하기를 바랍니다.
원수들은 하나님을 자기들 앞에 두지 않았다
하나님, 오만한 자들이 저를 거슬러 일어났고, 포악한 자들의 무리가 제 목숨을 노렸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자기들 앞에 두지 않았습니다.시편 86:14 · 본디새김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해서 원수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길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고 해서 상황이 즉시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당신을 자기들 앞에 두지 않았습니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존재를 단순히 지적으로 부정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도 되는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하나님의 뜻과 권위를 자신의 눈앞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11절과 함께 읽으면 대조가 나타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길을 배우고, 하나님의 신실함 안에서 걸으며, 그분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바랍니다. 반면 원수들은 하나님을 자기들 앞에 두지 않았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고자 합니다. 다른 한쪽은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힘을 따라 행동합니다.
시인은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 고발하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보호뿐 아니라 그분의 길을 배우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그는 원수들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을 직접 대조합니다.
그러나 주, 당신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와 신실함이 풍성하십니다.시편 86:15 · 본디새김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설명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이 모세 앞을 지나시며 자신의 이름과 성품을 밝히셨던 말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어떤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원수들의 오만함과 하나님의 자비가 나란히 놓이면서, 시인은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줍니다.
5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인애가 풍성하시다고 고백했습니다. 15절에서는 그 인애가 자비와 은혜, 오래 참음과 신실함이라는 더 풍성한 언어로 표현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신실함 때문에 다시 구원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끝까지 하나님을 부르는 이유는 자신의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자비롭고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여종의 아들을 구해 주십시오
제게 돌아서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종에게 당신의 힘을 주시고, 당신의 여종의 아들을 구해 주십시오.시편 86:16 · 본디새김
「제게 돌아서서」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관심과 호의가 자신에게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하고 계신다고 확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므로, 하나님이 자신을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한 종이며, 그 종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의 힘입니다. 시인은 스스로 강해져서 원수들을 물리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자신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왜 시인은 자신을 「당신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를까요? 문자적으로는 자신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여종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시인의 어머니에 관한 구체적인 역사적 정보를 제공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표현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종이라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는 언어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앞에서 모든 민족을 바라보던 우주적 전망을 지닌 시가 이제 한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소속 고백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지으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연약한 종이 부르짖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부르며 도움을 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116:16에서도 시인은 자신을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과 시인 사이의 깊은 소속 관계를 나타냅니다.
원수들이 보게 될 표징
제게 호의의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저를 미워하는 이들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하게 해 주십시오. 여호와야훼, 당신이 저를 도우셨고 위로하셨기 때문입니다.시편 86:17 · 본디새김
시편은 하나님의 표징을 구하는 기도로 끝납니다.
「표징」은 어떤 사실을 알려 주거나 확인하게 하는 표지, 징표를 뜻합니다. 시인은 「호의의 표징」을 구합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실제로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표징은 시인 혼자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하나님을 자신들 앞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시했던 하나님의 행동이 그들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 시인을 해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인을 도우신다면, 그들이 의지했던 힘과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부끄러움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오만함이 드러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표징이 정확히 무엇일지 말하지 않습니다. 극적인 군사적 승리일 수도 있고,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구원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호의가 드러나는 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힘이 원수들에게 있지 않다고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앞에서는 앞으로 보여 주실 표징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미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시고 위로하셨다고 말합니다. 본디새김처럼 과거의 도움과 위로를 고백하는 것으로 읽으면, 시인은 현재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새로운 호의를 구하면서, 이미 경험했던 도움과 위로를 기억합니다.
처음에 시인은 자신의 궁핍함을 고백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도우시고 위로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지금도 자신을 향한 호의를 보여 달라고 구합니다.
시인은 과거에 받았던 도움을 현재의 문제를 무시하는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그 도움을 기억하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의 손길을 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시는 여러 표징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시편 86편은 어떤 기적이나 구체적인 현상을 요구하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도우셨고 위로하셨기」의 히브리어 두 동사는 완료형입니다. 이를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를 회상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기도 안에서 앞으로 이루어질 도움을 확신하며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맥만으로 한 가지 시간적 의미를 절대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앞선 시편 85편과도 짧게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이전에 회복시키셨던 일을 기억하며 다시 회복을 구했습니다. 시편 86편에서는 한 사람이 이미 경험한 하나님의 도움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구원을 요청합니다.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의 나뉘지 않은 마음
시인의 기도에는 두 가지 갈망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받고 싶은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싶은 갈망입니다. 이 두 갈망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마음을 모두 하나님께 가져갑니다.
1절에서는 「저는 가난하고 궁핍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1절에서는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고백은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두 번째 기도는 자신의 마음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단지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교훈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충분한 결단력이 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시고, 그 길을 걷도록 도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신의 연약함과 생명의 위험을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위험과 고통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시편 86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온종일 부르짖고, 자신의 목숨을 지켜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던 시인은 다시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와, 「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 후에도 원수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처지가 바뀌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이 모두 사라졌다고도 선언하지 않습니다.
시편의 마지막에는 그 표징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도를 마치기 전에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얼굴은 여전히 그의 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보다 더 깊이 기억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자신을 도우시고 위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위험이 없는 삶만이 아닙니다. 위험 속에서도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속한 삶입니다.
시편은 아직 응답을 기다리는 한 사람의 기도로 끝납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겼고, 자신의 마음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