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87편
이 장의 자리 · 73–89편 · 셋째 권
하나님이 새로 기록하시는 출생지
시편 87편에는 한 문장이 세 번 등장합니다.
4절의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 5절의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안에서 태어났다」, 6절의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입니다.
이상한 말입니다. 사람의 출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이집트 출신이고,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벨론 출신입니다. 아무리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오래 살아도 실제로 태어난 장소까지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시편 87편에서는 하나님이 민족들의 이름을 기록하시면서 누군가의 출생지를 새롭게 선언하십니다.
그곳은 시온입니다.
그 선언과 연결되는 민족들은 라합, 바벨론, 블레셋, 두로, 쿠시입니다.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대립했거나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나라들입니다.
시편 87편의 놀라움은 시온이 특별한 도시라는 사실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도시가 이전에는 그곳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고향으로도 불리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앞의 시편 86편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민족이 그분 앞에 엎드릴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86:9). 시편 87편은 이 보편적인 예배의 전망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민족들 가운데서 온 사람들이 시온에 속한 자로 불리는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시편은 매우 짧지만 독특한 움직임을 지닙니다. 먼저 하나님이 시온을 사랑하신다고 선언합니다(1–3절). 이어서 예상하지 못했던 민족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시온에서 태어났다는 선언이 반복됩니다(4–6절). 마지막에는 노래하는 사람들과 피리 부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시온을 자신의 모든 샘이 있는 곳이라고 고백합니다(7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고라 자손의 시편. 노래. 그의 터는 거룩한 산들에 있다.시편 87:1 · 본디새김
시편은 매우 압축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원문이 명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어지는 시온이라는 도시의 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음 절에서 이 터가 시온과 연결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터」는 기초나 토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도시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기반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도시의 건물이나 거리보다 그 도시가 세워진 터부터 언급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도시의 특별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밝힙니다.
여호와야훼는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한다.시편 87:2 · 본디새김
왜 시온은 특별할까요?
시온이 다른 도시보다 크거나, 더 풍요롭거나, 군사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시온은 도시 자체가 지닌 힘 때문에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자신의 임재와 연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읍으로 불립니다.
시편 78:68–69에서도 하나님이 유다 지파와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셔서 자신의 성소를 세우셨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32:13–14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시온을 택하셔서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시온의 특별함은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시온」 전체가 아니라 특별히 「시온의 문들」을 언급할까요? 고대 도시에서 문은 단순히 성벽에 난 출입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였으며, 때로는 재판과 공적인 거래, 공동체의 중요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룻기 4:1–11).
따라서 도시의 문을 언급하는 것은 도시 전체를 나타내는 시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시온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말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시편 전체를 읽은 뒤 이 표현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의미가 살아납니다. 이 도시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은 시온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불릴 것입니다.
시인은 처음부터 도시의 문을 언급하고, 뒤에서는 그 도시에 속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여 줍니다. 그 두 장면이 반드시 의도적인 상징 관계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함께 읽으면 시온이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속하게 되는 도시라는 점이 선명해집니다.
3절은 이 도시를 직접 부릅니다.
하나님의 성읍아, 너에 관해 영광스러운 일들이 이야기된다. 셀라.시편 87:3 · 본디새김
도시가 마치 한 인격처럼 불립니다. 이러한 표현은 뒤에서 사람들이 시온을 자신의 출생지라고 부르는 장면과 잘 어울립니다. 시온은 단순한 건축물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 도시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공동체로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시온에 관해 이야기되는 영광스러운 일들이란 무엇일까요? 높은 성벽이나 장엄한 건축물, 강력한 군대에 관한 이야기일까요? 시인은 그런 것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음 절에서 그가 보여 주는 영광은 뜻밖에도 외국 민족들의 이름입니다.
조금 더 깊이
1절의 「거룩한 산들」이라는 복수 표현을 반드시 서로 다른 여러 성소가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온을 이루는 산지의 지형을 가리키거나, 거룩한 산악 지역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라합과 바벨론이 등장하는 이유
「나는 나를 아는 이들 가운데 라합과 바벨론을 언급하겠다. 보아라, 블레셋과 두로, 그리고 쿠시다.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시편 87:4 · 본디새김
시편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지금까지 시온에 관해 말하던 노래 가운데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본디새김은 이를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특별히 「나를 아는 이들」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원문은 여기서 화자가 하나님으로 바뀐다고 명시적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인의 선언으로 읽는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으면, 하나님이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언급하시는데, 거기에 이스라엘이 아닌 나라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먼저 라합입니다.
이곳의 라합은 여호수아 2장에 등장하는 여리고의 라합과 구별해야 합니다. 이 이름은 이 문맥에서 이집트를 가리키는 시적 이름으로 이해됩니다. 이사야 30:7에서도 이집트가 라합이라는 이름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집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이 종살이하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셔서 자신의 백성을 건져 내신 곳입니다. 출애굽 이야기에서 이집트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시편 87편에서는 라합이 하나님을 아는 이들과 관련하여 언급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놀라움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역사에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했으며 많은 사람을 유배시킨 제국입니다(열왕기하 25장). 시편의 정확한 작성 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정경 안에서 이 이름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라는 기억을 강하게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시편 137편에서는 바벨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우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에게 바벨론은 고향을 잃게 만든 땅입니다. 그런데 시편 87편에서는 그 바벨론의 이름이 시온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등장합니다.
시온을 파괴한 나라로 기억되는 바벨론이, 시온에 속한 사람들의 출신지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 나라가 더 등장합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여러 차례 충돌했던 지중해 연안의 민족입니다. 두로는 페니키아 해안의 중요한 상업 도시였으며, 이스라엘과 교역하고 협력한 역사도 지니고 있습니다. 쿠시는 주로 이집트 남쪽의 나일강 상류 지역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이 명단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여러 나라가 등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나라들의 성격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억압의 기억을 지닌 이집트가 있고, 강대한 제국 바벨론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충돌했던 블레셋이 있고, 해상 교역으로 알려진 두로가 있으며, 먼 남쪽의 쿠시가 있습니다.
시온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한 장면에 모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나라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했는지, 이스라엘의 증언을 들었는지, 특별한 사건을 경험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특정한 역사적 선교 활동이나 집단 개종 사건의 기록으로 이해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읽기에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범위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성경에서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분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4에서도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새로운 언약의 관계와 연결됩니다.
시편 87편은 그러한 하나님을 아는 관계가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에게도 열릴 수 있음을 노래합니다. 시온의 영광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하나님을 아는 이들로 불리는 데서 더욱 놀랍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4절의 마지막 문장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는 이 영광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이 말은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요?
조금 더 깊이
이사야 51:9에서는 라합이 하나님께 패배한 강력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라합이라는 표현에는 교만과 강대한 힘의 이미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시편 83편에서는 여러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이름을 지워 버리려는 원수들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87편에서는 서로 다른 민족들의 이름이 시온의 영광과 연결됩니다. 두 시편이 동일한 역사적 상황을 다룬다고 볼 근거는 없지만, 정경 안에서 나란히 읽을 때 그 대비는 분명합니다. 민족들 사이의 적대가 성경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어난 곳이 달라진다는 말
4절의 「거기서」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해석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한 가지 읽기는 바로 앞에 나열된 나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은 여러 나라를 언급하시면서 각각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키십니다. ‘이 사람은 이집트에서 태어났고, 저 사람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는 식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5절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 시온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4절의 「거기서」가 이미 시온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이집트와 바벨론을 비롯한 여러 민족 가운데서 온 사람들이 처음부터 시온 출생자로 선언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거기서」의 장소를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든 5절과 6절을 함께 보면 시편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해집니다.
시온에 관해서는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안에서 태어났다.」 지극히 높은 이가 친히 그곳을 굳게 세울 것이다.시편 87:5 · 본디새김
여기서는 더 이상 장소가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라는 말은 시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불리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닙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는 직역하면 ‘사람과 사람’이라는 반복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사람들을 하나씩 짚어 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다음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도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단순히 여러 민족이 시온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듯한 방식으로 그 소속을 표현합니다.
4절에서는 나라들의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라합, 바벨론, 블레셋, 두로, 쿠시. 그러나 5절에서는 그 나라들보다 작은 단위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입니다.
시온에 속하는 문제는 추상적인 국가들의 관계만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각 사람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도시는 멀리서 온 사람들을 단지 방문객으로 받아들이는 곳을 넘어, 그들의 출생지라고 불릴 만큼 깊이 속하게 되는 곳으로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시온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문자적인 출생을 뜻할까요? 본문의 흐름상 그렇게 읽기는 어렵습니다. 앞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나라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시온에서 태어났다는 새로운 선언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실제 출생의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소속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시적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사람이 어느 땅에서 태어났는가는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으로 인정받는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 변화를 출생이라는 언어로 표현합니다.
이 말이 외국인의 출신 민족과 문화가 모두 지워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편은 오히려 그 나라들의 이름을 분명하게 보존합니다. 라합과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블레셋과 두로와 쿠시도 언급됩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시온에 속한 사람으로 불립니다. 이것은 차이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출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동의 소속이 주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소속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5절 후반의 「지극히 높은 이가 친히 그곳을 굳게 세울 것이다」에 등장합니다. 시온이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도시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직접 그곳을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절에서는 시온의 터가 거룩한 산들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5절에서는 그 도시를 굳게 세우시는 분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 두 표현이 서로 어울립니다. 시온의 안정은 인간의 성벽이나 군사력만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도시를 세우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시온의 소속을 새롭게 선언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갈라디아서 4:26에서도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이는 시온을 출생과 소속의 이미지로 표현한 시편 87편과 비교할 수 있지만, 시편 87편을 직접 인용한 구절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출생을 기록하시다
여호와야훼가 민족들을 기록할 때 이렇게 헤아릴 것이다.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 셀라.시편 87:6 · 본디새김
이 절은 시편 87편의 절정입니다.
앞에서는 사람들이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선언을 누가 확정하는지가 밝혀집니다. 여호와야훼입니다.
「헤아리다」(סָפַר)는 세거나 헤아리는 일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여기에 기록한다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어, 하나님이 민족들을 기록하시면서 각 사람을 헤아리시는 장면을 만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 사회가 이미 인정한 출생 기록을 확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선언이 새로운 소속을 드러냅니다.
이 장면을 이해할 때에는 4절부터 6절까지 반복되는 문장의 주체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4절에서는 출생에 관한 선언이 민족들의 목록과 함께 나타납니다.
5절에서는 시온에 관하여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6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직접 그 사람을 헤아리신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반복을 통해 이 선언의 권위를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 자신의 판단에 도달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이의 출신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에서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선언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누군가가 다른 공동체에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은 오랫동안 외부인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그곳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수 있고, 그곳의 역사를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속을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87편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오래된 출신 구분보다 더 깊은 소속을 선언하십니다. 그 사람을 시온에서 태어난 이로 헤아리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4절의 「나를 아는 이들」이라는 표현도 다시 중요해집니다. 이 시편이 말하는 새로운 소속은 단순히 어느 도시에 물리적으로 거주하게 되었다는 뜻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관계를 맺으며, 그분이 사랑하시는 도시에 속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시편은 모든 사람이 아무런 관계의 변화 없이 자동으로 시온에 속하게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시온 출생자로 헤아리시는지 그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편을 보편적 구원이 이미 자동으로 확정되었다는 선언으로 읽는 것은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속하게 될지를 인간의 예상에만 맡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헤아리십니다. 시온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도시라는 사실은 그 도시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영원히 밖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과 선택을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소속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시온의 경계를 마지막으로 결정하시는 분은 시온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온을 세우시고 민족들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특별함은 어떻게 모든 민족의 복이 되는가
하나님은 왜 하필 시온을 중심으로 이러한 일을 이루실까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목적이라면, 특정한 도시가 이렇게 특별한 지위를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창세기 12:1–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아브라함 개인과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함께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한 사람과 한 민족에게 집중되지만, 그 선택을 통해 이루어질 복은 모든 민족을 향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사야서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사야 2:2–4에서는 여러 민족이 여호와야훼의 산으로 올라와 하나님의 길을 배우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의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배우기 위해 나아옵니다.
이사야 56:3–8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과 결합한 이방인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분리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시고 자신의 기도하는 집에서 기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집이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으로 불릴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그러나 시편 87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특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단지 시온에 올라오거나 그곳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선언됩니다.
방문객은 어느 장소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 장소와 맺는 관계가 훨씬 깊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이 주제는 이사야 19:23–25와도 인상적으로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이스라엘과 함께 복을 받는 날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이집트를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아시리아를 자신의 손으로 만드신 존재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소유로 언급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특별함이 사라진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이 가진 목적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시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온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특별한 도시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특별한 도시가 다른 민족들에게도 고향이 됩니다.
하나님이 시온을 택하셨다는 사실과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도시가 모든 민족을 향한 은혜의 중심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3절에서 말한 「영광스러운 일들」의 특별한 내용입니다.
시온의 영광은 그곳이 얼마나 많은 민족을 굴복시켰는가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뜻밖의 사람들을 그곳에 속한 자로 인정하시는가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세계에서 족보와 인구 기록은 사람들이 어느 공동체에 속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 2:59–63에는 귀환한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가문과 혈통을 입증하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특히 제사장 가문에 속한다고 주장했던 일부 사람들은 계보를 확인할 수 없어 제사장 직무에서 제외됩니다. 그 기록에서는 혈통과 출신을 증명하는 일이 실제 공동체의 자격과 연결됩니다. 시편 87편의 장면을 현대적인 국적 취득 절차와 정확히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은 법률적 자격이나 제도적인 등록 방법을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사람의 신분과 소속이 새롭게 인정되는 일을 출생이라는 가장 강한 언어로 표현합니다. 신약의 에베소서 2:11–22에서는 이전에 이스라엘의 시민권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이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한 집안이 되는 일을 설명합니다. 이는 시편 87편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한 한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주제적 연결입니다.
나의 모든 샘이 네 안에 있다
노래하는 이들도 피리 부는 이들도 이렇게 말한다. 「나의 모든 샘이 네 안에 있다.」시편 87:7 · 본디새김
시편의 마지막에는 새로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민족들을 기록하시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노래하는 사람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명단을 기록하던 장면에서 축제의 장면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시온에 속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셨다면, 그 사람에게 시온은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닙니다. 그곳은 노래할 수 있는 자기 집이 됩니다. 「피리 부는 이들」이 연주자인지 춤추는 이들인지와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시인이 마지막에 기쁨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뜻밖에도 샘에 관한 것입니다. 「샘」은 땅에서 솟아나는 물의 근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샘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아닙니다. 생명이 지속되는 근원을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나의 모든 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풍성하게 하는 근원이 모두 시온에 있다는 고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시온 자체가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전체에서 시온의 특별함은 하나님이 그곳을 사랑하시고 세우신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그곳에 샘이 있다는 고백 역시 하나님이 자신의 도시에 베푸시는 생명과 복의 풍성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고백입니다. 앞에서는 여러 나라들의 이름이 나열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선언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는 그 사람들의 축제 가운데서 「나의」라는 말이 들립니다.
다만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앞에서 언급된 외국 출신 사람들만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노래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신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 절들의 흐름을 고려하면, 시온에 속한 이들이 자신의 생명과 기쁨의 근원을 그곳에서 발견한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새로운 소속을 주신다는 것은 단지 그를 명단에 받아 적으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그곳을 자신의 생명과 기쁨이 솟아나는 자리로 고백할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표현은 시편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시온을 사랑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시온을 자신의 모든 샘이 있는 곳이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특별해진 도시가, 그곳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러운 고향이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피리 부는 이들」로 옮긴 히브리어 홀렐림은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춤추는 사람들과 연결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반드시 피리 연주와 노래만으로 이루어진 음악 공연이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도시에서 샘은 생존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특히 건조한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었습니다. 시편 36:8–9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함을 누리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하나님께 생명의 샘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46:4–5에서는 강의 여러 물줄기가 하나님의 성읍을 기쁘게 한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성읍은 단지 안전한 성벽으로 보호받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이 흘러나오는 장소로 노래됩니다.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
시편 87편은 하나님의 도시를 노래하는 짧은 찬양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출신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일이 결정적입니다. 시인은 한 사람이 자기 출생지와 소속을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인정받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새로운 공동체의 문이 열린다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의 출발점은 사람들의 관대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시고, 그 도시를 굳게 세우시며, 그곳에 속할 사람들을 직접 헤아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들이 어디에서 생명과 기쁨을 얻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시인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온에 도착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왔는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한 사람을 가리켜 「이 사람은 거기서 태어났다」고 선언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선언을 들은 뒤 시온은 더 이상 그 사람과 아무 관계 없는 먼 도시가 아닙니다.
그에게도 자신의 샘이 있는 곳이 됩니다.
시편 87편이 노래하는 시온의 영광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도시가, 전에는 낯선 사람이었던 이들에게도 자기 고향이 되는 데 있습니다.
시편은 출생지를 묻는 하나님의 기록과, 자신의 모든 샘이 시온에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남기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