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2–15장 · 새로운 삶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14장에는 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고기를 먹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거리낌 없이 먹습니다.

다른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는 채소만 먹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렇게 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믿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판단합니다.

바울은 어느 쪽이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14절에서 「나는 그 자체로 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주 예수 안에서 알고 있으며 확신합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쪽에 바울 자신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생각을 버리라고 명령하지 않을까요? 왜 옳은 판단을 내린 사람에게 오히려 자기 자유를 제한하라고 요구할까요?

그 대답은 15절의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람을 그대의 먹을 것으로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에 있습니다. 바울은 식탁 위의 음식에서 시선을 돌려 그 음식을 앞에 둔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사람은 단순히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내주신 사람입니다.

로마서 14장의 중심에는 바로 이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앞 장에서 사랑이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이 실제로 시험받는 자리를 보여 줍니다. 서로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 사이가 아닙니다. 똑같은 주님을 믿으면서도 무엇이 옳은지 서로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들 사이입니다.

이 장에서 바울은 판단 자체를 없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를 바꿉니다. 형제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일에서, 내가 그 형제 앞에 걸림돌을 놓고 있는지 판단하는 일로 말입니다.

읽는 시간 26분소단락 714장 본문 읽기 →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

로마서 14:1–4 본문 →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되, 의견을 두고 따지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로마서 14:1 · 본디새김

바울의 첫 명령은 「가르치십시오」도, 「설득하십시오」도 아닙니다.

「받아들이십시오」입니다.

여기서 「받아들이다」는 사람을 자기에게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계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단서를 붙입니다. 겉으로는 환영하면서 실제로는 그 사람의 생각을 따져 묻고 고치려는 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가 결국 자기 생각에 동의하기 전까지는 온전한 동료로 인정하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조건부 환영을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약한 이」는 누구입니까?

어떤 이는 무엇이든 먹어도 된다고 믿고, 약한 이는 채소만 먹습니다.로마서 14:2 · 본디새김

여기서 약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는 문제에서 신앙적 거리낌을 느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특정한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피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음식과 정결에 관한 율법적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에게는 고기가 어떤 방식으로 도살되었는지, 부정한 음식과 접촉하지 않았는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과 관련이 없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기를 아예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것이 신앙적 거리낌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약한 사람들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고기를 피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느 쪽을 「약한 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그는 두 판단이 완전히 동일하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의 차이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먹는 이는 먹지 않는 이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이는 먹는 이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먹는 이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3 · 본디새김

먹는 사람은 자신이 더 자유롭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을 미숙한 사람으로 낮춰 볼 수 있습니다. 먹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죄인처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양쪽 모두에게 멈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뜻밖입니다. 하나님이 먹는 이를 이미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이신 사람을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 공동체에서 밀어낼 수는 없습니다.

남의 집 종을 판단하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은 자기 주인 앞에서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세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4 · 본디새김

종은 자기 주인에게 속해 있습니다. 다른 집 사람이 그 종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그 종이 잘 서 있는지, 넘어졌는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려 한다면, 그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을 주인처럼 다루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남을 판단하는 행동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을 마치 자기에게 속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람의 서고 넘어짐을 결정하는 능력을 인간의 판단에 두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이 그를 완벽하게 가르치고 바꾸어 놓아야만 그가 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를 붙드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물론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권면하거나 잘못을 바로잡는 모든 일을 금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여러 편지에서 공동체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다루는 것은 복음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웃에게 명백한 악을 행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에 관하여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식탁에서 시작된 논쟁은 음식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을 특별하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판단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는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지 말아야 할 동물에 관한 규정들이 나옵니다. 약한 이들에 대해서는 유대교의 음식 규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다는 해석, 우상숭배와 관련된 음식에 대한 염려를 강조하는 해석, 당시 로마 사회의 식사 관습과 금욕적인 생활 방식,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로마 공동체의 공동식사에서 음식 제공자와 그 음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 사이의 사회적 압력이 갈등을 심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해석도 있고, 특정한 음식 문제가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바울이 그 문제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더 넓은 공동체적 일치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고 보는 읽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재구성들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당시 식탁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같은 주님을 위해 서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로마서 14:5–9 본문 →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이는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이는 모든 날을 같게 여깁니다. 저마다 자기 마음속으로 온전히 확신할 일입니다.로마서 14:5 · 본디새김

이번에는 날에 관한 문제입니다.

유대교의 안식일이나 절기와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본문은 구체적인 날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그리스도인이 어떤 요일에 예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거나, 특정한 절기를 지키는 모든 행위를 옳거나 그르다고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판단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저마다 자기 마음속으로 온전히 확신할 일입니다.」 이 확신은 아무런 근거 없이 자기 취향을 절대화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행하는지 깨닫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책임 있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날을 특별히 여기는 이는 주님을 위하여 그리 여깁니다. 먹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먹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로마서 14:6 · 본디새김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하나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같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먹는 행위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선물을 누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먹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께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감사한다는 사실은, 행동의 바깥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행한다는 이유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도 형제를 망하게 하는 행위를 분명하게 금지합니다. 여기서 인정되는 차이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동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판단의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차이가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 될까요?

우리 가운데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7 · 본디새김

조금 전까지는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우리가 살면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으면 주님을 위하여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께 속합니다.로마서 14:8 · 본디새김

그리스도인은 자기 욕망과 판단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관계는 특정한 음식이나 절기에 대한 견해보다 훨씬 근본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먹고 어떤 사람은 먹지 않을 수 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이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과 산 이들에게 주인 노릇 하시려는 것입니다.로마서 14: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로마서 14장의 신학적 중심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목적을 그리스도의 주되심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가르침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새로운 관계 안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을 자신에게 속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그가 공동체에 속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려 합니다.

문제의 크기가 전혀 다릅니다.

바울은 식탁에서 무엇을 먹는지가 아니라, 그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주님이시라면, 다른 사람은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실을 설명한 뒤 더욱 엄숙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재판석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유대인의 신앙적 관습을 계속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특정한 날을 지키는 문제 역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절기 문제로 보는 견해 외에도 당시 로마 사회의 종교적·사회적 달력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는 표현이 모든 종교적 절기를 전부 폐지한다는 뜻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상의 논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재판관이 아니다

로마서 14:10–12 본문 →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대의 형제를 판단합니까? 또 그대는 어찌하여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재판석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10 · 본디새김

앞에서는 남의 집 종을 판단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그 종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판단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제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을 설명해야 할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이사야의 말씀으로 뒷받침합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 주가 말한다 — 모든 이가 내게 무릎을 꿇을 것이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고백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11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이사야 45:23을 인용한 것입니다. 원래 이사야 45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시며, 모든 사람이 결국 여호와야훼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그 말씀을 사람들 사이의 판단 문제에 적용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의 최종적인 재판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셈을 내놓을 것입니다.로마서 14:12 · 본디새김

바울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관한 셈을 하나님께 내놓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에 관하여 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단락에서 바울이 문제 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양심과 신앙을 자신이 최종적으로 판정하려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는 데 몰두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에게 묻습니다. 그 사람의 판단을 맡기 전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기서 공동체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옳은지를 증명하는 것에서, 자신이 주님 앞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음 절에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시 판단하라고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45장에서 우상들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지만, 여호와야훼는 땅끝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바라보고 구원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이사야 45:20–22). 바울은 앞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곧바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재판석 앞에 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하나님의 심판을 서로 경쟁하는 권위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0–11에서는 이사야 45:23의 무릎 꿇는 이미지가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만 본문의 「하나님의 재판석」을 문맥상의 모든 구별 없이 곧바로 「그리스도의 재판석」으로 바꾸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함께 제시합니다.

판단하지 말고, 이것을 판단하십시오

로마서 14:13–16 본문 →

그러니 우리가 더 이상 서로 판단하지 맙시다. 도리어 이렇게 판단하십시오 — 형제 앞에 걸림돌이나 올무를 놓지 말자고.로마서 14:13 · 본디새김

앞의 「판단하지 맙시다」(κρίνω)와 뒤의 「판단하십시오」는 원문에서 같은 동사입니다. 바울은 같은 동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용합니다.

서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이렇게 판단하십시오.

자신의 행동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지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판단 능력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판단의 방향을 바꾸라는 명령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을 재단하는 데 사용하던 분별력을, 이제 자신의 행동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데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자체로 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주 예수 안에서 알고 있으며 확신합니다. 다만 무엇이 속되다고 헤아리는 이에게는 그것이 속됩니다.로마서 14:14 · 본디새김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신학적 판단을 숨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속된」은 유대교의 정결 문맥에서 의례적으로 속되거나 오염된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절은 음식이 위생적으로 깨끗한가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어떤 음식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가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이 확신을 「주 예수 안에서」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과 그분께 속한 삶에 근거하여 음식 자체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올바르게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음식 자체가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음식을 하나님 앞에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그 음식을 먹는 일은 신앙적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진리가 사람마다 달라진다는 상대주의가 아닙니다. 바울은 음식 자체에 관한 자신의 확신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다만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의 판단과 양심 역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음식을 먹는 일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에 자기 판단을 거슬러 억지로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상황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대의 먹을 것 때문에 그대의 형제가 마음 아파한다면, 그대는 더 이상 사랑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람을 그대의 먹을 것으로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4:15 · 본디새김

어떤 사람은 음식 자체가 깨끗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가지고 있어도,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 아파한다」는 말은 누군가 기분이 상했다는 뜻으로만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앞뒤 문맥에는 형제가 걸려 넘어지고, 믿음에서 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위험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에 실제적인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한쪽에는 먹을 것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사람이 있습니다. 먹을 것은 먹고 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하신 일은 그분의 죽음입니다.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는 불쾌하게 만들지 말라는 말보다 강합니다. 잃어버리거나 멸망시키는 일을 가리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단락의 목적은 구원을 잃는 조건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자유를 무책임하게 행사하면 다른 사람의 신앙에 얼마나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단순히 「그대의 형제를 해치지 마십시오」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람」이라고 말했을까요?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특정한 음식에 대해 바울보다 잘못된 판단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음식의 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개인의 권리가 아닙니다.

사랑의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좋은 것이 비방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로마서 14:16 · 본디새김

「여러분의 좋은 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고,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은혜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소유한 더 넓은 선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두 해석 모두 문맥과 연결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사랑 없이 행사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면, 자유라는 좋은 선물조차 비방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그 자유를 폐기하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데 사용되도록 하라고 권합니다.

먹고 마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바울이 음식 자체가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점은, 마가복음 7:14–23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바깥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가르치신 말씀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속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코이노스는 본래 일반적이거나 공동의 것을 뜻하며, 이 단어가 지닌 의례적 의미는 로마 공동체의 식사 갈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15절의 「망하게 하다」(아폴뤼미)가 형제가 실제로 최종적인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지, 신앙을 심각하게 해치는 위험을 강한 언어로 경고하는 것인지는 구원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따라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으로 드러나는가

로마서 14:17–21 본문 →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거룩한 영 안에 있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17 · 본디새김

고기를 먹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적 절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양쪽 모두에게 묻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가 무엇을 먹는가로 드러납니까, 아니면 그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로 드러납니까?

바울은 음식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말하고, 그 나라를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는 세 단어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의」는 개인이 도덕적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로마서에서 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구원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올바른 삶도 포함되지만, 그 삶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새로운 관계 안으로 부르신 일에 근거합니다.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함께 받았으며, 이제 서로를 받아들이고 세워 가는 관계를 포함합니다. 「기쁨」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만족감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함께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거룩한 영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이상적인 공동체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자기 백성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새로운 현실입니다.

바울은 식탁에서 일어난 갈등을 설명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해 그 나라의 성격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자기 권리를 위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 식탁에는 평화와 기쁨이 무너집니다. 반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의 신앙적 양심을 존중하고,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며, 함께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그 자리에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와 기쁨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 노예 노릇 하는 이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18 · 본디새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최종적인 주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기 때문입니다」를 모든 사람이 언제나 그리스도인을 칭찬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바울 자신이 박해와 반대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이 사람들 사이에서 선하고 인정할 만한 행위로 드러난다는 일반적인 방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이루는 일과 서로를 세우는 일을 뒤쫓읍시다.로마서 14:19 · 본디새김

「뒤쫓읍시다」는 평화가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라는 뜻입니다. 그 평화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억지로 숨기는 데서가 아니라, 서로를 세우는 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우다」라는 표현은 4절과 이어집니다. 4절에서는 주님이 그를 세우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자기 백성을 세우시는 분이시라면, 그분께 속한 사람들도 서로를 무너뜨리는 대신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먹을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깨끗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먹는 일이 걸림돌이 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먹는 것이 나쁩니다.로마서 14:20 · 본디새김

「무너뜨리다」는 건물을 허무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기를 먹을 권리를 행사하는 일을, 하나님이 다른 사람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일과 비교하게 합니다. 서로를 세우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바울은 자신의 판단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음식 자체는 깨끗합니다. 그러나 음식 자체가 깨끗하다는 판단과, 그 음식을 먹는 행동이 언제나 옳다는 판단은 같지 않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 행동은 나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며, 그대의 형제가 걸려 넘어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로마서 14:21 · 본디새김

바울은 고기와 포도주를 금지하는 새로운 음식 규정을 만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는 방식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신앙적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 자유를 절제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자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언제나 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만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기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 속한 사람이 자기 형제를 위해 한 끼의 고기를 포기하는 일조차 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여기서 바울의 주장이 한쪽 사람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불편해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행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규칙이 아닙니다. 문맥의 핵심은 형제의 신앙적 양심을 거스르게 하거나 그를 실제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또한 바울은 앞에서 양쪽 모두에게 서로 판단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자신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넘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가의 문제를 다룹니다.

의심하면서 먹는 사람

로마서 14:22–23 본문 →

그대가 지닌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그대 혼자 지니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두고 자기를 그르다고 판단하지 않는 이는 복이 있습니다.로마서 14:22 · 본디새김

바울은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확신하던 사람에게 다시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전체에서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일을 중요하게 말했으므로, 믿음을 혼자 지니라는 명령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자체를 감추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맥상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특정한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확신을 포함합니다.

그 확신을 하나님 앞에서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유를 입증하기 위해 그것을 과시하거나, 모든 사람이 자기와 똑같이 행동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판단하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절에서 반대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이가 먹으면 유죄로 판결받은 상태입니다. 그 먹는 일이 믿음에서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나지 않은 것은 모두 죄입니다.로마서 14:23 · 본디새김

한 사람이 고기를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는 그 음식을 먹는 일이 하나님께 합당한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먹고 있고, 자신만 먹지 않는 것이 눈에 띌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이 장면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공동체의 압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장면입니다.

그가 결국 음식을 먹었다면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요?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했고, 그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죄는 음식 자체에 있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거슬러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믿음에서 나지 않은 것은 모두 죄입니다」는 문맥을 떠나면 너무 넓게 이해되기 쉽습니다. 어떤 행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무조건 죄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순한 정보 부족이나 모든 형태의 심리적 불확실성을 죄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을 수 있다고 진지하게 판단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압력이나 자신의 욕망 같은 다른 이유 때문에 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항상 정확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양심은 잘못된 정보나 익숙한 관습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바울은 믿음이 약한 사람의 판단이 객관적으로 옳다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이 아직 확신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그를 억지로 행동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성숙하게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그가 언제쯤 자유롭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인가만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도록 다른 사람이 압력을 가하는 일입니다. 그 압력을 가하는 사람이 자신이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도 그 지식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죄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이 가장 경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아들이신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로마서 14:1–23 본문 →

로마서 14장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판단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신앙적 관용의 교훈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견해가 똑같이 옳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음식 자체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확신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장이 요구하는 것은 판단을 포기하는 무관심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알고 자신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별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올바른 지식도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그 식탁을 바라봅시다.

고기가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는 감사하며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그 음식을 먹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그 사람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증명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식탁 앞에서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바꾸어 놓습니다. 음식이 깨끗한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먹는 일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형제는 다른 사람이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울의 말대로,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람」입니다.

그 식탁 위에는 먹을 것보다 귀한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