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2–15장 · 새로운 삶
밤이 깊었으니,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로마서 13장은 다소 당혹스러운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하던 바울은 갑자기 국가 권력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다스리는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며,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노를 집행한다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장의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명령이 등장합니다.
「도리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처음에는 세상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하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입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바울은 「서로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빚지지 마십시오」라는 선언을 놓습니다.
국가에는 세금과 존중을 주어야 합니다. 이웃에게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잠에서 깨어 그리스도를 입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세 가지 주제가 한 장에 모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으면 세 주제를 연결하는 질문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이 여전히 죄와 불의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는 누구에게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삶의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제도와 책임을 벗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이 삶의 마지막 주인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면서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이 왜 시급한 일인지 마지막에 설명합니다.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마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권세가 없고, 지금 있는 권세들은 하나님이 세워 두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3:1 · 본디새김
바울은 「사람마다」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예외가 제시되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로마의 교회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공적인 권세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의 수도에서 로마 제국의 법과 행정, 세금 제도 아래 생활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고 해서 그러한 사회적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든 바울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이유로 공적인 권세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복종해야 합니다」는 어떤 질서 아래 자신을 두거나, 정해진 관계에서 그 질서를 인정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 이유는 권세의 기원에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통치 권력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존재하는 독립적인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권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권세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과, 권세를 가진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은 같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권세들은 하나님이 세워 두신 것」이라는 강한 선언을 하나님이 정치 권력을 마지못해 허용하셨다는 말로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특정 통치자의 모든 정책과 결정이 하나님께 승인받았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이 세우시거나 사용하신 왕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2:21에서 하나님은 왕들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이지만, 다니엘서의 왕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모든 권세 위에 계시다는 사실은 세상의 어떤 통치자도 자신을 최종적인 권위로 내세울 수 없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권세에 거역하는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맞서는 것이고, 맞서는 이들은 자기 자신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서 13:2 · 본디새김
그런데 여기서 바로 어려운 질문이 생깁니다.
통치자가 악한 일을 명령해도 복종해야 합니까? 국가가 무고한 사람을 박해할 때에도 그 권세를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이유로 따라야 합니까? 실제로 로마서 13장은 역사 속에서 국가 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는 하나님께 충실하기 위해 인간의 통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출애굽기 1:15–2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했고(다니엘 3장), 사도들은 인간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5:29).
이 본문들은 로마서 13장의 명령을 무효로 만드는 구절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 권력에 대한 복종이 성경 전체에서 언제나 무제한적인 의무로 제시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해석상의 갈림이 있습니다. 한쪽은 명령 자체를 매우 강하게 받아들여, 통치 권력이 부당할 때에도 원칙적으로 복종의 의무가 있으며 예외를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쪽은 바울이 권세의 정당한 역할을 전제로 복종을 명령하므로, 권력이 그 역할을 배반할 때에는 복종의 한계가 드러난다고 봅니다.
두 관점 모두 성경의 다른 본문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자체에는 정당한 불복종의 조건이나 방식이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그 문제를 이 두 절만으로 완전히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말을 이해하는 단서는 권세의 역할을 설명하는 다음 절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로마서가 기록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서기 50년대 후반, 네로가 황제로 다스리던 시기로 추정됩니다. 다만 바울이 특별히 어떤 정치적 사건이나 조세 분쟁 때문에 이 단락을 기록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조세 문제와 정치적 긴장이 배경에 있다는 견해, 그리스도께 속한 새로운 공동체가 기존의 사회 질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일반적인 목회적 권면으로 이해하는 견해, 로마 제국과 바울의 관계를 보여 주는 정치적 신학의 표현으로 읽는 견해가 있습니다. 「복종해야 합니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휘포탓소(ὑποτάσσω)에서 온 말입니다.
칼을 찬 사람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다스리는 이들은 선한 일을 하는 이에게가 아니라 악한 일을 하는 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합니까?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 권세에게서 오는 칭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로마서 13:3 · 본디새김
실제 역사에서 다스리는 이들이 언제나 악한 사람만 처벌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을 거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사도행전 16:22–23). 바울이 모든 통치자가 언제나 선을 칭찬하고 악만 처벌한다는 경험적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성경 자체와 충돌하게 됩니다.
이 문장은 권세가 공적인 질서 안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설명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스리는 사람의 권한은 악을 억제하고 선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스리는 이는 그대에게 선이 되도록 하나님을 섬기는 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십시오. 그가 까닭 없이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이고, 악을 저지르는 이에게 진노로 갚는 이입니다.로마서 13:4 · 본디새김
바울은 통치자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거나, 권력을 무제한으로 행사하도록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대에게 선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이」는 시중드는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은 같은 단어를 로마서 15:8에서 그리스도께서 할례받은 이들을 섬기는 분이 되셨다고 말할 때 사용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와 세상의 통치자가 같은 종류의 사역을 맡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통치자는 궁극적인 주인이 아닙니다.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역할에는 강제력이 포함됩니다. 칼은 통치 권력이 지닌 강제력과 처벌의 권한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 구절 하나만으로 모든 종류의 형벌이나 사형 제도의 정당성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권력의 형벌 기능을 말하지만, 정당한 처벌의 한계와 절차까지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진노로 갚는 이」라는 표현은 앞 장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12:19에서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에 자리를 내주라고 했습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통치자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노로 갚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개인적인 복수와 공적인 처벌을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을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에게 악을 행한 사람에게 복수하는 일과, 공적인 권세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악을 처벌하는 일은 같은 행위가 아닙니다. 사랑은 악을 방치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구별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공적인 권력의 처벌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의 올바른 심판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치자가 선을 처벌하고 악을 장려한다면, 적어도 바울이 여기서 설명한 역할과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권력이 스스로 악을 행할 때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까지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우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이유로 공적인 질서와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는 데 있습니다.
벌이 두려워서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
그러므로 반드시 복종해야 합니다.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기도 합니다.로마서 13:5 · 본디새김
권세에 복종하는 이유가 오직 처벌이 두렵기 때문이라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을 때에는 복종할 이유가 사라질 것입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거나 적발되지 않을 것 같다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양심은 단순히 사회적 관습이나 개인적인 기분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깨닫고 판단하는 내적인 인식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이미 로마서 2:15에서 양심이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증언하며 때로는 고발하고 때로는 변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 양심이 공적인 책임과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만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려는 사람입니다. 다만 「양심 때문에」라는 말은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모든 명령까지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이 복종을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적 판단과 연결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은 세금도 냅니다. 다스리는 이들은 바로 이 일에 꾸준히 힘쓰는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3:6 · 본디새김
이것은 신학적으로 사소한 주제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살아가면서 공적인 권세와 관계를 맺는 매우 구체적인 자리입니다.
바울은 통치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부르는데, 앞의 「섬기는 이」와 다른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공적인 일을 맡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고,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교의 문맥에서는 제사와 예배의 봉사자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여기서 통치자의 직무를 제사장의 신성한 직무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치 역시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수행해야 할 공적인 일이라는 의미가 드러납니다.
모두에게 빚진 것을 갚으십시오. 세금을 내야 할 이에게 세금을 내고, 관세를 내야 할 이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할 이를 두려워하고, 존귀히 여길 이를 존귀히 여기십시오.로마서 13:7 · 본디새김
바울은 돈에 관한 의무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세금」은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조세나 공납을, 「관세」는 통행이나 거래 등에 부과되는 간접적인 부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제국의 조세 제도 전체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납부해야 할 것은 납부하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반드시 공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권한을 지닌 사람을 진지하게 대하고 그 지위를 인정하는 태도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존중이 곧 통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공적인 권한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처럼 높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은 최종적인 충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지만, 일상적인 시민의 책임을 불필요하게 회피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두에게 빚진 것을 갚으십시오」라고 말한 뒤, 다음 절에서 아무리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의 빚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의 일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레이투르고스(λειτουργός)입니다. 「세금」에 해당하는 말은 포로스(φόρος), 「관세」에 해당하는 말은 텔로스(τέλος)입니다. 로마 제국의 세금은 지역과 신분, 종류에 따라 복잡한 방식으로 부과되었습니다.
모두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
서로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빚지지 마십시오.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이는 율법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3:8 · 본디새김
왜 사랑은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일까요?
세금은 다 내면 해당 의무를 이행한 것이고, 빌린 돈도 약속한 조건에 따라 갚으면 채무를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사람을 도왔다고 해서 내일부터는 그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한 번 지급하여 관계를 정산하는 의무가 아닙니다.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요구되는 책임입니다.
따라서 8절을 모든 종류의 대출이나 금전적 채무를 금지하는 절대적인 경제 규정으로 읽는 데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먼저 갚아야 할 의무를 갚으라고 했고, 사랑은 결코 다 갚아 끝낼 수 없는 지속적인 의무라고 말합니다. 이 대조가 문장의 핵심입니다.
그다음에 바울은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이는 율법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끝이시라고 말했던 바울이 여기서는 사랑이 율법을 다 이룬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하는 계명도, 그 밖의 어떤 계명도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으로 다 요약되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3:9 · 본디새김
처음 네 계명은 십계명에 속하며(출애굽기 20:13–17; 신명기 5:17–21), 모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다룹니다. 다른 사람의 혼인 관계와 생명과 소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명령이고, 탐내지 말라는 명령은 남에게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는 욕망까지 다룹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는 레위기 19:18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레위기의 원래 문맥에서는 원수를 갚지 말고, 같은 백성에게 원한을 품지 말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웃 사랑 자체가 율법 안에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버린 뒤 사랑이라는 새로운 도덕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사랑이라는 말로 밝혀 줍니다. 「다 요약되기 때문입니다」는 여러 가지를 하나의 핵심 아래 모으거나 총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계명은 사랑과 동떨어진 외적인 규칙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 보여 주는 구체적인 표현들입니다.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의 혼인 관계를 침해하거나, 그를 해치거나, 그에게 속한 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로마서 13:10 · 본디새김
자기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마음과, 실제로 상대방에게 행하는 행동은 서로 모순될 수 있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면서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그를 해치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기만 하면 충분할까요? 앞서 바울은 굶주린 원수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원수에게 마실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사랑은 악을 피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웃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그를 존귀하게 여기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돕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처음과 중간의 두 권면이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국가 권력은 악을 억제하고 사람들에게 선이 되는 역할을 맡고,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추구합니다. 두 역할은 동일하지 않지만, 모두 선과 악을 분별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제에 관계합니다.
세금은 납부하면 끝납니다.
그러나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의무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이웃을 향한 사랑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또 한 번 방향을 바꿉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설명했고, 이제는 왜 지금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 요약되기 때문입니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아나케팔라이오오(ἀνακεφαλαιόω)입니다. 바울은 여러 계명이 서로 무관한 금지 규정들의 목록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요구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때를 알고 있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때가 이미 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지금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3:11 · 본디새김
바울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때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잠에 비유한 것입니다. 여기서 「때」는 단순히 시계나 달력으로 측정하는 시간보다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결정적인 시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때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구원이 아직 가까이 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울에게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셨고, 성령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직 죽을 몸이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몸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드러나는 일을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이 정확히 언제 완성될지 날짜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을 바꿉니다. 우리는 단순히 어제보다 하루 더 나이 든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무기를 입읍시다.로마서 13:12 · 본디새김
아직 밤입니다.
그러나 밤은 이미 많이 지났습니다.
낮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지만 가까이 왔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아닙니다. 바울은 환난과 박해와 죽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의 완성이 남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낮이 완전히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벗고, 지금 입으라고 말합니다. 다가올 낮에 속한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낮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에 합당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바울은 「빛의 옷」이 아니라 「빛의 무기」를 입자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무기나 전투 장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13에서도 같은 단어로, 몸의 지체들을 죄에게 내주어 불의의 무기가 되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 의의 무기가 되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몸을 누구에게 내어 줄 것인가의 문제가, 이제 어떤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이 표현을 세상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강제로 관철하라는 명령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앞에서 바울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며, 평화를 추구하라고 했습니다. 빛의 무기를 입으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전사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어둠에 속한 행위를 버리고 빛에 속한 방식으로 악에 맞서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싸움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악이 자기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결심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는 복음에 근거합니다. 그분께서 시작하신 새로운 시대가 이미 다가왔기 때문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카이로스(καιρός)이고, 「무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호플론(ὅπλον)입니다.
빛 가운데 걷고,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흥청거리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으며, 음란하지도 방탕하지도 않으며, 다투지도 시샘하지도 않으며 낮에 다니듯이 단정하게 걸읍시다.로마서 13:13 · 본디새김
바울은 여기서 세 쌍의 행동을 나열합니다.
앞의 두 쌍, 절제되지 않은 향락과 술 취함, 성적인 방종과 무절제함은 쉽게 어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다투지도 시샘하지도 않으며」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어둠의 일은 사적인 생활의 무절제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행동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를 판단하거나 자랑하는 태도를 여러 차례 경계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마지막 한 쌍은 공동체의 삶에 직접 연결됩니다. 서로를 시기하고 다투며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한다면, 그 역시 어둠에 속한 행동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술 자체나 모든 즐거움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취함과 흥청거림, 방탕함이라는 무절제한 행위를 문제 삼습니다.
「단정하게」는 남에게 보기 좋은 외모나 예절이 아니라, 품위 있고 올바르게, 마땅한 질서에 맞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만, 밤에는 남들이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추어진 욕망을 따르기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겉으로만 바르게 행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가 이미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그 미래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12:2의 「이 시대의 본을 따르지 마십시오」라는 권면과도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도리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을 위한 준비를 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3:14 · 본디새김
옷은 사람의 몸을 감싸고,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형성합니다. 어떤 옷을 입었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몇 가지 좋은 원칙을 골라 실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하셨는지가 그 사람의 행동과 관계와 가치 판단을 형성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2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말하며,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신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3장에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에게 다시 그리스도를 입으라고 권합니다. 신분을 얻었다는 사실과, 그분께 합당하게 살아가는 일이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을 일상에서 살아 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사실도 중요합니다. 이 장의 시작에서는 세상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맡은 존재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의탁하는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권세를 존중할 수 있지만, 그 권세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육」은 단순히 인간의 몸 자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미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지는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이나 휴식, 몸을 돌보는 일 자체를 금지하는 것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욕망을 채우려고」라는 목적입니다.
「준비」는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며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갑자기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만이 아니라, 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리 무엇을 계획하고 준비하는지도 문제 삼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간을 마련하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할 조건들을 만듭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은 단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순간마다 애쓰는 것보다 더 깊은 일입니다. 삶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12:2에서 바울이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원수였던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빛 가운데 사십시오」라고 말하는 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단정하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유스케모노스(εὐσχημόνως)이고, 「준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프로노이아(πρόνοια)입니다.
낮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로마서 13장은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이라는 어려운 문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질서를 잘 지키는 시민을 만들려고 이 장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금을 내고 공적인 권세와 관계를 맺으며 그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지만, 그 권세를 최고의 권위로 삼지 않습니다. 이웃에게는 끝나지 않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삶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면서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삶을 밤과 낮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 놓습니다. 어둠은 여전히 주변에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권세가 악을 행하는 현실도 마주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시기와 다툼과 욕망의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로 그 새벽의 문턱에 세웁니다.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무기를 입읍시다.」 그런데 그들이 입어야 할 것은 단지 새로운 행동 규칙이나 종교적인 외양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직 밤의 끝자락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이미 낮에 다니듯이 걷기 시작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