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보리밭의 이삭줍기
낯선 여자를 알아봐 준 사람
룻기 2장은 독자에게 먼저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밭으로 나가는 룻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녀는 보아스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받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른 채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서술자는 그 밭에 도착하는 일을 뜻밖에도 「우연히」라고 표현합니다.
독자는 보아스가 누구인지 알지만 룻은 모릅니다. 그리고 나오미 역시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 룻이 누구의 밭에서 일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장의 긴장은 하나님이 어떤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인가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에 일어나는 만남이 어떻게 두 여자의 삶을 바꾸어 놓는가에 있습니다.
룻이 알지 못했던 친척
보아스가 먼저 소개되는 이유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 친척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집안의 유력한 사람이었고, 이름은 보아스였다.룻기 2:1 · 본디새김
사사기에서는 군사적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사사기 6:12; 11:1), 룻기 2장에서 보아스의 전쟁 경력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밭을 소유하고 여러 일꾼을 거느리며 그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아스가 영향력과 자원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보아스가 부유하다는 사실보다 먼저 그가 나오미의 남편 쪽 친척이라는 관계를 밝힙니다.
보아스의 재산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나오미에게 특별한 미래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엘리멜렉 집안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가족의 재산과 생계를 회복하는 문제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반면 룻은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룻은 친척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갔다
룻이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했다. 「제가 밭에 가서 저를 좋게 보아 줄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워도 될까요?」 나오미가 말했다. 「가거라, 내 딸아.」룻기 2:2 · 본디새김
룻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곡식입니다.
여기서 이삭을 줍는 일은 남이 베어 놓은 곡식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추수하는 사람들이 거둔 뒤 남겨진 이삭을 모으는 일입니다. 레위기 19:9–10과 23:22는 수확할 때 밭의 가장자리와 떨어진 이삭을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해 남겨 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24:19–22는 거류민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수확물의 일부를 남겨 두도록 합니다.
특히 신명기 24:22는 이런 명령의 이유를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던 경험과 연결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약자의 처지에 있었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땅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이 양식을 얻을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토지 소유자는 자기 밭의 모든 수확물을 마지막 이삭까지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도 수확에 참여하여 자신의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이 내키면 베푸는 자선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과 수확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공동체의 의무입니다.
룻은 바로 이 제도의 보호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이스라엘에 들어온 외국인이며, 당장 생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율법이 약자에게 이삭을 주울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해서 모든 밭에서 그 일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녀는 누구든 자신의 권리를 당연히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좋게 보아 줄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룻에게 필요한 것은 이삭을 주울 수 있다는 규정만이 아니라, 그 규정을 존중하며 자신을 안전하게 일하도록 해 줄 사람이었습니다.
「우연히」라는 말이 남겨 놓는 질문
3절은 룻의 발걸음을 따라갑니다.
룻은 나가서 밭에 이르러 곡식을 베는 일꾼들 뒤에서 이삭을 주웠다. 룻이 우연히 이른 곳은 엘리멜렉 집안의 보아스에게 딸린 밭이었다.룻기 2:3 · 본디새김
룻이 보기에 그것은 일할 수 있는 밭을 찾다가 마주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미 1절에서 그 밭의 주인이 누구인지 들었습니다.
바로 이 정보의 차이 때문에 우연한 만남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야기 전체의 흐름에서 그 만남을 하나님의 돌보심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3절 자체가 하나님이 룻의 발걸음을 직접 그곳으로 이끄셨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밭에 들어갔다고 해서 룻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밭의 주인이 그 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입니다.
「이 젊은 여자는 누구네 사람이냐?」
축복의 말로 시작되는 보아스의 등장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밭으로 옵니다.
그가 일꾼들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명령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때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 곡식을 베는 일꾼들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빈다.」 그들이 대답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인님께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룻기 2:4 · 본디새김
이 짧은 대화는 앞으로 보아스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볼 출발점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언급하는 사람입니다. 서술자는 곧바로 보아스가 가장 약한 처지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 줍니다.
보아스가 곡식을 베는 일을 감독하는 자기 일꾼에게 물었다. 「이 젊은 여자는 누구네 사람이냐?」룻기 2:5 · 본디새김
원문의 표현은 직역하면 ‘이 젊은 여자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에 가깝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흔히 가족이나 집안, 공동체와의 관계를 통해 설명되었습니다.
곡식 베는 일을 감독하던 일꾼이 대답했다.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젊은 모압 여자입니다.」룻기 2:6 · 본디새김
그녀는 이 공동체에서 여전히 외국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오미와의 관계를 통해 알려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보아스는 아직 그녀의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이제 그녀가 어느 이야기에서 온 사람인지는 듣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노동은 노동이다
「이 여자가 『곡식을 베는 일꾼들 뒤를 따라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고 모으게 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와서 지금까지 줄곧 일하고 있습니다. 집 안에서 앉아 쉰 것은 잠깐뿐입니다.」룻기 2:7 · 본디새김
룻기는 그녀의 노동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삭줍기는 거저 주는 음식을 받아 오는 일이 아닙니다. 추수하는 사람들을 뒤따라가며 곡식을 찾고, 주운 것을 모으고, 나중에는 낟알을 털어 내야 하는 일입니다.
룻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밭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일꾼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밭의 주인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보아스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여 룻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의 마지막 히브리어 문장은 구조가 까다롭습니다. 본디새김처럼 잠깐 건물 안에서 쉬었다고 읽을 수 있지만, 서 있거나 기다린 상황으로 읽는 견해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어느 건물에서 얼마나 쉬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낯선 여자를 알아봐 주다
보아스가 처음 제공한 것은 곡식이 아니라 안전이었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말했다. 「내 딸아, 내 말을 들어 보지 않겠느냐?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이곳을 떠나지도 마라. 여기서 내 여자 일꾼들 곁에 붙어 있어라.」룻기 2:8 · 본디새김
그는 곡식을 얼마나 가져가도 되는지부터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어디에서 일해야 하는지, 누구 곁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곡식을 베는 밭을 눈여겨보고 여자 일꾼들을 따라가거라. 내가 남자 일꾼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일러두지 않았느냐? 목이 마르거든 그릇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남자 일꾼들이 길어 온 물을 마셔라.」룻기 2:9 · 본디새김
외국인 여자이자 과부인 룻은 낯선 일꾼들 사이에서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밭에서 어떤 모욕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보아스가 직접 보호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안전 문제가 실제로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룻은 물을 얻기 위해 따로 수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보아스의 배려는 추상적인 호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일하는 장소, 함께할 사람, 신체적 안전, 마실 물까지 구체적으로 이어집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곡식을 남겨 두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곡식을 주우러 온 사람이 모욕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법이 의도한 보호는 충분히 실현되지 못합니다.
보아스의 친절은 룻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뿐 아니라, 룻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할 것인가까지 포함합니다.
「외국 여자인 저를 왜 알아봐 주시나요?」
룻의 반응은 놀라움입니다.
룻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보아스에게 말했다. 「저는 외국 여자인데, 어째서 저를 좋게 보시고 알아봐 주시나요?」룻기 2:10 · 본디새김
그녀가 놀라는 이유는 단순히 보아스가 자신에게 친절해서만이 아닙니다. 자신은 이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여자이고, 특별히 인정받을 만한 지위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아봐 주다’는 단순히 얼굴을 알아보거나 이름을 기억한다는 뜻을 넘어, 상대를 주목하고 중요하게 대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룻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자신을 특별히 대우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의 대답은 룻이 예상하지 못했을 법한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보아스는 룻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지를 말한다
보아스가 대답했다. 「네 남편이 죽은 뒤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모든 일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 너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네가 태어난 땅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왔구나.」룻기 2:11 · 본디새김
감독은 룻을 모압 여자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을 평가하는 근거로 그녀의 출신을 들지 않습니다.
룻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보아스의 대답에서 중심이 됩니다.
이것은 룻에게 중요한 위로였을 것입니다. 그녀가 감당했던 상실과 결심을 누군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를 따라온 행동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신실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러 온 사람
보아스는 이어서 룻을 축복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네가 한 일에 보답해 주시기를 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분의 날개 아래로 피하러 온 네게 온전한 보상을 주시기를 빈다.」룻기 2:12 · 본디새김
여기서 ‘피하다’는 말은 위협을 피해 도망친다는 소극적 의미만 가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켜 줄 분에게 삶을 맡기고 그분의 보호 아래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룻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보아스 자신은 룻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보호를 구하면서 룻을 위험한 밭에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일꾼들에게 명령했고, 마실 물을 제공했으며, 안전하게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과 기도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보상」이라는 표현을 룻이 선행을 했으니 반드시 물질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거래 관계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보아스는 룻의 신실한 행동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녀의 앞날을 선하게 돌보시기를 빕니다.
여기서 신명기 10:18–19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본문은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에게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해 음식과 옷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도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룻기 2장은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삶을 요구하는지 보여 주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룻에게는 말도 위로가 되었다
룻은 보아스에게 대답합니다.
룻이 말했다. 「주인님, 저를 계속 좋게 보아 주세요. 주인님께서 저를 위로하시고 이 여종의 마음을 다독이는 말씀을 해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주인님의 여종들 가운데 하나만도 못해요.」룻기 2:13 · 본디새김
룻이 자신을 여종보다 못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기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는 신학적 선언이 아닙니다. 보아스의 집안에 속한 일꾼도 아닌 외국인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룻에게 보아스의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겪은 일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선택한 길을 인정했으며, 앞으로 하나님이 그녀를 돌보시기를 빌었습니다. 그는 룻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 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를 새롭게 들려주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룻에게는 그것 역시 실제적인 도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의 친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보아스가 말한 「아버지와 어머니와 네가 태어난 땅」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12:1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땅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사건을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았고, 룻기에는 하나님이 룻에게 직접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떠났고, 룻은 나오미와 함께하며 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택했습니다.
배불리 먹고도 남긴 음식
이삭을 줍던 여자가 식탁에 초대받다
식사 시간이 되자 보아스가 룻을 부릅니다.
식사 때 보아스가 룻에게 말했다. 「이리 와서 빵을 좀 먹어라. 빵 조각을 식초에 찍어 먹어라.」 룻은 곡식을 베는 일꾼들 곁에 앉았다. 보아스가 볶은 곡식을 건네주자 룻은 배불리 먹고도 남겼다.룻기 2:14 · 본디새김
조금 전까지 그녀는 일꾼들 뒤를 따라가며 남은 이삭을 줍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일꾼들과 같은 자리에서 식사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일할 수 있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먹는 자리로 초대합니다.
앞 장에서 두 여자는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룻이 처음 밭에 나간 날, 그녀는 배불리 먹습니다. 서술자는 단순히 ‘룻이 충분히 먹었다’고 끝내지 않습니다. 굳이 남긴 음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 이유는 18절에서 드러납니다.
이삭을 주울 권리보다 더 많은 것을 얻다
룻이 이삭을 주우려고 일어나자, 보아스가 자기 남자 일꾼들에게 명령했다. 「그 여자가 곡식 단 사이에서도 이삭을 줍게 두어라. 그 여자를 부끄럽게 하지 마라.」룻기 2:15 · 본디새김
「또 그 여자를 위해 곡식 묶음에서 일부러 이삭을 뽑아 남겨 두어라. 그 여자가 줍게 하고 꾸짖지 마라.」룻기 2:16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이삭줍기를 허락하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율법은 수확 때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남겨진 곡식을 거두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이 구절에서 보아스는 거둔 곡식 가운데 일부를 의도적으로 남겨 두게 합니다. 그는 룻이 더 많은 곡식을 얻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합니다.
보아스는 곡식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닙니다. 룻이 그 곡식을 얻는 과정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도 신경 씁니다.
룻은 밭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 밭의 곡식에 대해 마음대로 결정할 권한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이삭줍기의 범위를 넘어선 행동을 일꾼들이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런 갈등을 막으려고 미리 명령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자기 처지를 부끄럽게 느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 앞에서 끊임없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돕는 일에는 무엇을 주느냐뿐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받을 수 있게 하느냐도 포함됩니다.
그렇다고 룻의 노동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보아스가 곡식을 남겨 주었지만, 룻은 여전히 밭에서 일했고, 주운 곡식을 두드려 낟알을 털어 냈습니다. 그 결과 보리가 한 에파쯤 되었습니다.
룻이 가져온 것은 두 가지였다
18절은 룻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자세하게 그립니다.
룻은 주운 보리를 들고 성읍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낮에 먹고 남겨 둔 음식도 나오미에게 줍니다. 곡식은 룻이 하루 동안 밭에서 일하여 얻은 것입니다. 남은 음식은 보아스가 점심때 그녀에게 제공한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룻의 신실함은 특별한 선언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낮에 먹고 남긴 음식을 챙겼다가 집으로 가져와 시어머니에게 건넵니다. 룻은 자기 혼자 먹고살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갔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위해 마련해 준 양식이 이제 나오미에게도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양식은 나오미에게 새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제공되는 식초는 현대의 강한 조미 식초만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곡식과 함께 먹을 때 사용하던 신맛 나는 액체를 가리킵니다. 정확한 제조법이나 농도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에파는 곡식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특정한 무게로 환산하지 않습니다.
이름 하나가 바꾸어 놓은 저녁
나오미는 곡식보다 먼저 사람을 묻는다
룻이 돌아오자 나오미는 묻습니다.
시어머니가 룻에게 물었다. 「오늘 어디서 이삭을 주웠느냐? 어디서 일했느냐? 너를 알아봐 준 사람이 복을 받기를 빈다.」 룻은 자기가 누구와 함께 일했는지 시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오늘 제가 함께 일한 분의 이름은 보아스예요.」룻기 2:19 · 본디새김
이는 룻이 가져온 곡식이 평범한 하루의 이삭줍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특별해 보였음을 시사합니다.
나오미는 곡식을 보고 그 뒤에 있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알아봐 주다’는 10절에서 룻이 보아스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히브리어 동사에서 나옵니다. 두 여자가 각각 다른 자리에서 같은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린 셈입니다.
「오늘 제가 함께 일한 분의 이름은 보아스예요.」 이 대답은 룻에게는 그날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 준 밭 주인의 이름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립니다.
독자는 1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오미가 이제야 그 이름을 듣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단순히 좋은 밭 주인이 아니라 엘리멜렉 집안의 친척입니다.
나오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가족의 관계가 룻의 하루를 통해 다시 등장합니다.
「친절을 거두지 않으셨구나」
나오미는 말합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기를 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산 이들과 죽은 이들에게 베푸시는 친절을 거두지 않으셨구나.」 나오미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운 친척이고, 우리의 몫을 되찾아 줄 친족 가운데 하나란다.」룻기 2:20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나오미는 자신이 겪은 상실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재앙으로 이해했습니다(1:20–21).
그런데 이제 그녀는 하나님의 친절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남편과 아들들은 여전히 죽었고, 두 여자의 생계도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현재의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녀가 잃어버린 가족과 관련된 사람이, 자신과 함께 사는 룻을 특별히 돌보았습니다.
나오미는 이 일에서 과거와 현재가 다시 연결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이라는 표현도 그 점을 드러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나오미와 룻입니다. 죽은 사람들에는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포함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을 돌보고 그 집안과 관련된 책임을 이어 가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신실함으로도 여겨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오미의 말은 보아스의 행동을 살아 있는 두 여자에 대한 도움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가족과 이어진 관계 속에서 이해합니다.
앞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자신과 죽은 가족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서도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기를 빌었습니다(1:8).
나오미는 단순히 많이 받은 곡식 때문에 하나님의 친절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앞날과 관련된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어떤 친족인가
「몫을 되찾아 줄 친족」은 가까운 친족으로서 가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재산이나 권리와 관련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레위기 25:25에는 가난해져 자기 소유의 땅을 팔게 된 사람이 있을 경우, 가까운 친족이 와서 그 땅을 되찾아 주는 규정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에서 땅은 단순한 경제적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족과 지파에게 허락하신 상속 재산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친족이 땅을 되찾아 주는 일은 단순히 부동산을 구입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어려움에 빠진 가족이 자기 집안의 상속 몫과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2장은 보아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토지 거래를 해야 하는지, 룻과 혼인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그런 의무를 맡는 데 어떤 순서가 있는지를 아직 밝히지 않습니다.
그는 엘리멜렉 집안에 연결된 친족이며, 두 여자의 미래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룻은 하루 동안 곡식을 얻었습니다.
나오미는 그 하루에 가족의 미래와 연결되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안전한 밭에 머물라는 권유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모압 여자 룻이 말했다. 「그분은 또 제게 『내 남자 일꾼들이 내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일 때까지 그들 곁에 붙어 있어라』라고 하셨어요.」룻기 2:21 · 본디새김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말했다. 「내 딸아, 그 사람의 여자 일꾼들과 함께 나가는 게 좋겠구나. 그러면 다른 밭에서 사람들에게 해를 입을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룻기 2:22 · 본디새김
룻이 전하는 보아스의 말에는 남자 일꾼이 나옵니다. 반면 보아스가 앞서 룻에게 직접 말한 8–9절에서는 여자 일꾼들 곁에 머물라고 했고, 나오미도 여자 일꾼들과 함께 다니라고 권합니다.
룻이 보아스의 일꾼들과 함께 수확 기간을 보내도록 허락받았다는 큰 뜻은 분명하지만, 나오미는 특히 여자 일꾼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합니다. 보아스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모든 밭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룻은 처음에 자기를 좋게 보아 줄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며 밭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그녀에게는 계속 일할 수 있는 장소와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들, 앞으로 수확이 끝날 때까지 일할 수 있다는 허락이 있습니다.
그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내일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처지에서는 벗어났습니다.
하루의 만남이 한 계절의 보호가 되다
23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룻은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이 끝날 때까지 보아스의 여자 일꾼들 곁에 붙어 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룻기 2:23 · 본디새김
2장의 앞부분은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서술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은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이 끝날 때까지의 시간을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이 하루의 만남이 한 계절 동안 이어지는 관계로 바뀐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오미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모압을 떠났고, 이제는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밭에서 노동합니다. 룻의 신실함은 한 번의 결심에 머물지 않습니다. 일상의 지속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2장에서 보아스와 룻의 관계는 중요한 변화를 맞지만, 아직 혼인이나 새로운 가정의 성립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장이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한 외국인 과부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장소를 얻었고, 그 양식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체가 작지 않은 변화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의 「친절을 거두지 않은 이」가 여호와야훼를 가리키는지, 보아스를 가리키는지 문장 구조상 논의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여호와야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습니다. 이 경우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복을 빌면서, 그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친절이 계속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반면 보아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으면, 나오미는 보아스가 살아 있는 가족과 죽은 가족에게 계속 신실함을 베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두 읽기는 강조점이 다르며, 본디새김은 첫 번째 읽기를 택했습니다. 또한 신명기 25:5–10의 형제간 혼인 규정과 「몫을 되찾아 줄 친족」의 역할을 무조건 하나의 제도로 합쳐서는 안 됩니다. 그 규정은 죽은 남자의 형제를 중심으로 서술되며, 「몫을 되찾아 줄 친족」은 더 넓은 친족 관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가리킵니다. 이 두 제도와 가족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룻기 3–4장을 따라가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끝맺음 — 두 여자가 함께 살았다
두 여자는 보아스가 베푼 것을 단순히 곡식이나 음식으로만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낯선 여자 한 사람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룻은 배불리 먹고, 나오미는 가족의 미래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룻기 2장은 모든 가난한 사람이 룻처럼 좋은 밭 주인을 만나리라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보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날 이후 두 여자의 삶이 단번에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룻은 다음 날에도 밭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다음 날에도 이삭을 주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자신을 받아 줄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보아스의 밭에는 곡식이 있었고, 그곳에는 룻을 해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으며, 그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여자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룻은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이 끝날 때까지 그들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이 끝나면 나오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두 사람의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 여자는 낯선 땅과 고향 사이에서 길을 헤매고 있지 않습니다.
룻은 밭에서 일하고, 나오미는 집에서 그녀를 맞습니다.
그렇게 두 여자는 한 계절을 함께 살아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