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장 · 타작마당의 밤

안식을 구하는 여자와 쉬지 않는 남자

룻기 3장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 안식할 곳을 찾으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일을 맡겠다고 약속한 남자가 쉬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룻이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보아스는 쉬지 않으려 합니다.

이 두 문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뜻밖에도 밤중의 타작마당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입니다. 이 장에는 위험을 무릅쓴 행동과 대담한 요청, 상대방에 대한 신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족의 권리 문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상대방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지만, 누구도 혼자서 그 미래를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63장 본문 읽기 →

「내가 너를 위해 안식할 곳을 찾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룻기 3:1–5 본문 →

이제는 나오미가 룻의 미래를 생각한다

2장에서 룻은 이삭을 주워 나오미와 함께 살아갈 양식을 마련했습니다. 보아스의 밭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수확철 동안 곡식을 주울 수 있다는 것과 앞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오미가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말했다. 「내 딸아, 네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내가 너를 위해 안식할 곳을 찾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룻기 3:1 · 본디새김

이 말은 룻기 1:9와 연결됩니다. 당시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각자 새로운 남편의 집에서 안식을 얻기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히 복을 빌지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안식할 곳을 찾아 주겠다고 합니다.

문맥에서 이 안식은 단순히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뜻하지 않습니다. 안정된 가정과 지속적인 보호, 앞으로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앞서 나오미는 자신에게 며느리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룻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변화의 계기는 보아스입니다.

그가 엘리멜렉 집안의 친척이라는 사실이 나오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계획이 있지만, 그 계획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까지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왜 하필 밤의 타작마당인가

나오미는 보아스가 그날 밤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키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타작은 곡식의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내는 일이고, 키질은 낟알과 쭉정이 등을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타작마당은 수확한 곡식을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앞 장에서 곡식을 베고 모으던 일이 이제 수확물을 처리하는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녀의 지시는 단순히 보아스를 만나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른 다음 옷을 입고 타작마당으로 내려가거라.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마칠 때까지는 네가 와 있다는 것을 모르게 해라.」룻기 3:3 · 본디새김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갖추어 입는 것은 자신을 단정하게 준비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향유나 기름을 바르는 일은 당시 몸을 단장하는 일반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행동을 룻이 애도 기간을 완전히 끝냈다는 공식적인 선언으로 읽거나, 보아스를 성적으로 유혹하기 위한 준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기름을 발랐는지, 그 준비에 정확히 어떤 상징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말은 더욱 뜻밖입니다.

「그 사람이 누우면 어디에 눕는지 잘 보아 두어라. 그러고는 가서 그 사람의 발치를 드러내고 거기 누워라. 그러면 그 사람이 네가 할 일을 알려 줄 것이다.」룻기 3:4 · 본디새김

나오미의 계획에는 보아스의 반응이 필수적입니다.

이 계획은 두 사람이 이미 합의한 만남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룻이 올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이 계획은 위험하지 않은가

왜 나오미는 룻에게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일을 시킵니까?

낯선 남자가 잠든 밤에 몰래 접근하여 그의 발치에 누우라는 지시는 실제로 위험을 수반합니다. 보아스가 룻의 행동을 오해할 가능성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발견했을 때 룻의 평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14절에서 보아스가 여자가 타작마당에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 만남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나오미가 룻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녀는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찾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미 보아스가 룻에게 친절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오미의 계획은 룻의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시도이면서도 위험을 수반하는 선택으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시는 대로 다 하겠어요.」룻기 3:5 · 본디새김

이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룻이 단순히 지시받은 대로 움직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치에 누운 여자, 그리고 자신의 뜻을 말하는 여자

룻기 3:6–9 본문 →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일

룻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 나오미가 지시한 행동을 실행합니다.

보아스는 먹고 마신 뒤 기분이 좋아졌고, 곡식 더미 끝에 가서 눕습니다. 룻은 몰래 다가가 발치를 드러내고 눕습니다.

대화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한밤중이 됩니다.

한밤중에 그 남자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한 여자가 그의 발치에 누워 있었다.룻기 3:8 · 본디새김

이때까지 서술은 보아스의 시점에서 룻을 식별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발치에 누워 있을 뿐입니다.

룻의 말은 나오미의 지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보아스가 물었다. 「누구냐?」 룻이 대답했다. 「저는 주인님의 여종 룻이에요. 주인님의 옷자락을 펴서 이 여종을 덮어 주세요. 주인님은 되찾아 주는 친족이시니까요.」룻기 3:9 · 본디새김

나오미의 계획은 룻이 발치에 누워 있으면 보아스가 다음 행동을 알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보아스의 지시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요청을 직접 말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러 왔다고 말하며 그녀를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룻은 이제 그 보아스에게 자신을 그의 옷자락으로 덮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보아스가 하나님께 구했던 보호가 자신의 구체적인 책임과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룻이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애정이나 일시적인 보호가 아닙니다. 그녀는 보아스에게 엘리멜렉 집안과 연결된 친족의 책임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의 대담함은 룻이 밤에 보아스를 찾아왔다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룻은 자신의 미래가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맡겨져 있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관계와 책임을 직접 요청합니다. 그녀는 보아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여종이라고 부를 만큼 사회적으로 낮은 처지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발치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 장면을 둘러싸고 성적인 암시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일부 해석은 이 장면에 성적인 함축이 있다고 봅니다. 반면 본문 자체는 룻이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고, 그가 깨어난 뒤 두 사람이 대화했다는 사실만 서술합니다. 두 사람이 성적으로 결합했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서술자는 의도적으로 독자가 그 밤의 불확실함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상황에서 보아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의 대답은 예상과 다릅니다.

그는 룻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에게 여호와야훼의 복을 빕니다.

조금 더 깊이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만으로 보아스가 판단력을 잃을 만큼 술에 취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식사를 마친 그가 기분 좋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고 서술합니다. 룻의 말에서 「옷자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나프(⁨כָּנָף⁩)입니다. 2장에서 카나프는 하나님의 ‘날개’였습니다. 3장에서 룻은 보아스에게 그의 카나프, 곧 ‘옷자락’을 펴서 자신을 덮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같은 낱말이 두 장면을 연결합니다. 에스겔 16:8에서는 옷자락을 펴서 덮는 행동이 언약과 관계를 맺는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룻의 요청 역시 혼인과 보호를 함께 암시하는 것으로 읽을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되찾아 주는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아스에게 룻과 반드시 혼인해야 하는 의무가 자동으로 발생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토지를 되찾는 친족의 책임과 신명기 25:5–10에 규정된 형제간 혼인 의무는 구별되는 제도입니다. 룻기에서는 가족의 재산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이어 가는 문제, 혼인의 문제가 이야기 안에서 함께 다루어집니다. 그 구체적인 연결은 4장에서 드러납니다. 성적인 함축에 대해서는 히브리어에서 발이나 발치와 관련된 표현이 문맥에 따라 완곡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논의됩니다. 룻기 4:13에서는 보아스와 룻이 혼인하고 동침하는 일이 분명하게 서술됩니다. 따라서 3장에서 이미 두 사람이 동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본문이 밝히지 않은 사건을 추가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3장의 긴장감을 지워 버리고 아무런 오해의 가능성도 없는 행동이었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습니다.

「네가 이번에 베푼 친절은 앞서 베푼 것보다 더 크구나」

룻기 3:10–13 본문 →

보아스는 왜 룻의 요청을 친절이라고 부르는가

룻의 요청을 들은 보아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보아스가 말했다. 「내 딸아,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기를 빈다. 가난한 젊은 남자든 부유한 젊은 남자든 뒤따르지 않았으니, 네가 이번에 베푼 친절은 앞서 베푼 것보다 더 크구나.」룻기 3:10 · 본디새김

룻은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할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남편의 집안과 관계된 보아스에게 친족의 책임을 요청했습니다. 보아스는 이 선택을 나오미와 죽은 가족을 향한 신실함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앞서 베푼 친절」은 무엇일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룻이 남편을 잃은 뒤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함께 유다로 온 행동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2:11에서 이미 그 일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친절은 나오미를 버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친절은 그 가족의 미래를 회복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었습니다.

친절은 단순한 호감이나 따뜻한 감정이 아닙니다. 관계에 대한 책임을 실제로 감당하는 행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룻이 보아스를 개인적으로 얼마나 좋아했는지, 혼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녀의 선택이 오직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만 나왔는지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보아스가 그 요청을 신실한 친절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유력한 남자와 훌륭한 여자

보아스는 이어서 말합니다.

「내 딸아, 이제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말하는 대로 다 해 주겠다. 네가 훌륭한 여자라는 것을 우리 성읍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 말이다.」룻기 3:11 · 본디새김

처음에 보아스는 재산과 일꾼을 가진 유력한 사람으로 등장했고, 룻은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야 하는 모압 여자였습니다. 두 사람의 사회적 처지는 크게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아스는 룻에게도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낱말을 적용합니다.

룻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인품과 행동에서는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특히 보아스는 룻의 훌륭함이 자신만의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룻은 외국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 준 신실함은 이미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모압 출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그 출신만으로 룻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룻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녀의 행동과 삶에서 발견합니다.

보아스가 감추지 않은 장애물

그런데 보아스의 대답은 여기서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내가 되찾아 주는 친족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일을 맡을 친족 가운데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단다.」룻기 3:12 · 본디새김

이 사실은 룻이 보아스를 찾아오기 전에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오미가 알고 있었는지도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보아스는 이 문제를 숨기지 않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라. 아침에 그 사람이 너를 위해 친족의 책임을 다하겠다면 좋다. 그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너를 위해 그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위해 그 책임을 다하겠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아침까지 누워 있어라.」룻기 3:13 · 본디새김

이 말에는 두 가지 태도가 함께 드러납니다. 하나는 공동체의 친족 관계와 그에 따르는 순서를 존중하려는 태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절차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자신이 책임을 맡겠다는 분명한 의지입니다.

룻의 신뢰에 대한 보아스의 응답은 단순히 그녀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아직 남아 있는 장애물을 정직하게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현실의 절차를 무시하거나, 좋은 의도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넘어서는 것을 본문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아스가 곧 하나님이라는 뜻도 아니고, 보아스가 룻의 모든 미래를 결정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서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둠에서 새벽으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가난한 젊은 남자든 부유한 젊은 남자든 뒤따르지 않았으니」라는 말은 보아스가 룻보다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두 사람의 정확한 나이 차이는 알 수 없습니다. 「유력한 사람」과 「훌륭한 여자」(⁨חַיִל⁩)에 쓰인 같은 명사는 힘, 능력, 역량, 재산, 훌륭함 등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나타냅니다. 보아스에게는 사회적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집니다. 반면 룻에게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 드러난 뛰어난 인품과 역량이 강조됩니다. 「훌륭한 여자」라는 표현은 잠언 31:10의 「훌륭한 아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와도 일치합니다. 잠언 31장이 그리는 여인은 부지런히 일하고, 집안을 돌보며,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펴는 인물입니다(잠언 31:13–20). 그러나 룻기 3:11이 잠언 31장을 직접 인용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두 본문이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며 훌륭한 여인의 삶을 구체적인 행동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읍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라는 원문의 표현에는 성문이 등장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문은 사람들이 모여 중요한 공동체 문제와 법적 사안을 처리하는 장소였습니다. 룻의 평판이 성문에 알려져 있다는 말은 그녀의 행동이 개인적인 공간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도 인정받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친족의 순서가 어떤 법적 관습과 구체적으로 연결되는지는 4장에서 밝혀집니다. 3장만으로 모든 절차를 재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약에서 맹세는 인간의 말을 하나님 앞의 책임과 연결하는 행위입니다. 레위기 19:12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보아스의 말에는 종교적인 장식 이상의 무게가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아야 할 밤,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침

룻기 3:14–17 본문 →

두 사람의 밤을 서술자는 어떻게 끝내는가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아침까지 누워 있다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 전에 일어났다. 보아스가 말했다. 「여자가 타작마당에 왔다는 사실은 알려져서는 안 된다.」룻기 3:14 · 본디새김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은 두 사람의 만남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일을 피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밤중에 남자가 잠든 곳으로 여자가 찾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실제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와 관계없이 소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소문은 특히 룻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평판을 보호하려 했다고 이해할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14절은 이 말을 누구에게 했는지, 룻이 일찍 일어난 것이 그 말 때문인지까지 밝히지는 않습니다. 또한 두 사람이 실제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은폐하려 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단위가 밝혀지지 않은 보리 여섯

보아스가 말했다. 「네가 두른 겉옷을 내밀어 잡고 있어라.」 룻이 겉옷을 잡자 보아스는 보리를 여섯 단위만큼 재어 룻에게 지워 주었다. 그러고는 보아스가 성읍으로 들어갔다.룻기 3:15 · 본디새김

다만 여기서 「여섯 단위」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의미는 룻이 집에 돌아와 나오미에게 하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룻이 말했다. 「그분이 이 보리를 여섯 단위만큼 제게 주셨어요. 제게 『네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마라』고 하셨거든요.」룻기 3:17 · 본디새김

바로 이 말에서 1장의 탄식이 다시 들립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득 찬 채 떠났는데, 여호와야훼께서 저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어요.」(1:21)

1장에서 나오미가 느꼈던 빈손의 상태와 3장에서 보아스가 채워 준 곡식이 직접 연결됩니다. 보리 여섯 단위로 죽은 남편과 두 아들이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또한 보아스가 친족의 책임을 아직 완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 돌아가는 것은 곡식만이 아닙니다.

그 곡식에는 보아스가 룻의 요청을 들었고, 그녀와 나오미를 위해 행동할 뜻을 밝혔다는 사실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나오미의 고통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섣불리 위로하는 대신, 보아스는 실제적인 양식을 보냅니다.

사람의 깊은 상실을 한 번의 친절로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딸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돌아오자 나오미는 묻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돌아오자, 시어머니가 물었다. 「내 딸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룻은 그 사람이 자기에게 해 준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룻기 3:16 · 본디새김

독자는 이미 보아스의 대답을 들었지만, 나오미는 이제 룻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제 두 여자는 보아스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그 약속이 어떻게 실행되는가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보리를 여섯 재어 주었다고 나오지만, 구체적인 계량 단위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2장에서 사용된 에파를 여기에도 적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무게나 부피를 특정하여 계산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섯이라는 숫자에 일곱째 날의 안식이나 완전함에 앞선 상태와 같은 상징을 부여하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 절이 그런 의미를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숫자의 상징성을 확정할 만한 문맥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오미의 질문은 원문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내 딸아, 너는 누구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룻의 신원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읽기는 어렵습니다. 그녀는 바로 「내 딸아」라고 부르며, 룻도 곧이어 보아스가 한 일을 모두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특히 룻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표현을 룻이 혼인한 여자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정해진 관용구라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앉아 기다려라」

룻기 3:18 본문 →

룻기 3장의 마지막 절에서 나오미는 룻에게 말합니다.

나오미가 말했다. 「내 딸아, 일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될 때까지 앉아 기다려라. 그 사람은 오늘 이 일을 끝내기 전에는 쉬지 않을 테니 말이다.」룻기 3:18 · 본디새김

그녀는 보아스가 룻을 보호하고 충분히 먹도록 해 준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룻에게서 보아스가 친족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보아스의 행동과 그가 한 약속에 근거한 기대입니다.

룻은 행동해야 할 때 행동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보아스의 대답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야 할 말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에 맞이하는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보아스에게는 그 반대의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는 말로 약속했습니다. 이제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끝맺음 — 새벽에 돌아온 룻과 기다리는 나오미

룻기 3:1–18 본문 →

처음에 나오미는 자신이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찾아 주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룻은 그 안식이 어떻게 마련될지 기다려야 합니다. 보아스는 그 일을 끝내기 전에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혼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친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두 여자의 미래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약속 하나가 주어졌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건네준 보리를 가지고 돌아왔고, 나오미는 그 말을 듣고 기다립니다.

한 사람은 쉬지 않고 움직일 것이고, 두 사람은 이제 기다릴 것입니다.

룻기 3장은 그렇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앞에 둔 채 새벽의 기다림 속에서 닫힙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