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24–43장 · 지혜의 찬양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람

집회서 26장은 뜻밖의 방식으로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좋은 아내를 얻은 남편의 날수가 두 배가 된다는 축복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상인이 죄를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로 끝납니다. 앞부분에는 부부 관계와 가정생활이, 뒷부분에는 궁핍한 전사와 멸시받는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교훈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을 따라 읽다 보면 하나의 질문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무엇이 사람의 삶을 든든하게 세우며, 무엇이 그 삶을 무너뜨립니까?

사람은 물건의 값을 정확히 계산하면서도 정작 가장 귀중한 것의 가치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 장의 언어는 고대 남성 중심 가정의 시각을 뚜렷하게 반영합니다. 아내는 주로 남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지에 따라 평가되고, 딸은 아버지가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관점을 오늘의 보편적인 관계 규범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26장 본문 읽기 →

두 배가 되는 날수 — 좋은 관계가 삶을 바꾸는 방식

집회서 26:1–4 본문 →

첫 문장은 축복 선언입니다.

선한 아내의 남편은 복이 있고, 그의 날수는 두 배다.집회서 26:1 · 본디새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성품이 일상 전체의 경험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시간이 끝없이 무겁게 느껴지고, 어떤 관계에서는 같은 세월도 풍성하게 경험됩니다. 날수가 두 배가 된다는 표현은 이러한 행복의 풍성함을 강조하는 지혜문학적 과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굳센 아내는 자기 남편을 기쁘게 하고, 그의 세월을 평화 속에서 채울 것이다.집회서 26:2 · 본디새김

단순히 온순하거나 남편의 요구에 잘 순응하는 여성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잠언 31:10의 능력 있는 아내를 가리키는 칠십인역 표현도 같은 형용사를 사용합니다. 잠언의 그 여성은 집안을 돌볼 뿐 아니라 밭을 사고, 물건을 만들어 팔며,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폅니다(잠언 31:16, 20, 24). 이 언어적 유사성은 집회서가 칭찬하는 강인함을 단순한 복종보다 넓게 이해할 근거를 제공합니다.

지혜로운 관계에서 평화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딘 결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안정감, 어려움을 함께 감당할 수 있다는 신뢰와도 관련됩니다.

선한 아내는 선한 몫이다. 주를 경외하는 이들의 몫으로 주어질 것이다.집회서 26:3 · 본디새김

「몫」이라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분깃을 뜻합니다. 아내를 소유물로 환원하기보다는, 당시의 언어로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을 귀중한 선물로 평가하는 문장입니다.

이 행복은 단순히 운이 좋아 얻은 개인적 만족으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집회서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주를 경외하는 삶 안에 놓입니다.

물론 이것을 주를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좋은 배우자를 얻는다는 보증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지혜문학의 축복 선언은 삶의 바람직한 질서를 제시하지만,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는 수학 공식은 아닙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마음은 즐겁고, 어느 때나 얼굴이 환하다.집회서 26:4 · 본디새김

부유함이 기쁨을 보장하지 않으며, 가난함이 반드시 기쁨을 빼앗는 것도 아닙니다. 집회서는 행복의 중심을 소유한 재산보다 마음의 상태와 관계의 평화에 둡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를 노래한 직후 본문은 정반대의 풍경을 보여 줍니다. 평화를 이루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말하려면, 무엇이 평화를 깨뜨리는지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갈과 혀의 채찍 — 관계를 무너뜨리는 힘

집회서 26:5–12 본문 →

5절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내 마음은 세 가지를 두려워했고, 넷째 앞에서는 나는 간청했다. 도시의 중상과 군중의 모임과 모함, 이 모두 죽음보다 고약하다.집회서 26:5 · 본디새김

모두 개인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판단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개인의 평판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신뢰를 잃으면 인간관계뿐 아니라 생업과 사회적 지위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여자와 질투로 맞서는 여자는 마음의 고통과 슬픔이고, 모두에게 미치는 혀의 채찍이다.집회서 26:6 · 본디새김

채찍은 사람의 몸을 때리지만, 말은 그 사람의 마음과 평판을 때립니다. 더욱이 이 채찍은 「모두에게」 미칩니다. 개인적인 질투가 언어를 통해 공동체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묘사하는 질투가 정확히 어떤 관계에서 생겨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른 여성과의 경쟁이나 부부 관계를 둘러싼 갈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본문은 특정한 가족 형태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모든 여성이 질투심이 많다는 일반화가 아니라, 경쟁심이 공격적인 언어와 결합할 때 사적인 갈등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는 관찰입니다.

악한 여자는 흔들리는 소 멍에다. 그 여자를 붙잡는 이는 전갈을 움켜쥐는 이와 같다.집회서 26:7 · 본디새김

멍에는 두 동물이 함께 힘을 내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그것이 흔들리면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함께 움직이는 일도 어려워집니다. 부부 관계를 멍에에 비유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삶을 감당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중심은 협력보다 불안정성에 있습니다.

두 번째 비유인 전갈은 위험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전갈을 손으로 움켜쥐면 붙잡았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접촉 때문에 독침에 찔릴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가까운 관계에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자신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그림으로도 읽힙니다. 다만 본문이 관계의 지배 문제를 체계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악한 상대와 가까이 지내는 일의 고통과 위험입니다.

8–9절에서는 술 취함과 성적 무절제가 이어집니다. 두 행동 모두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를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9절은 눈길과 눈꺼풀을 통해 음행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실제로 눈빛만 보고 다른 사람의 성적 행동을 판별할 수 있다는 객관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고대 지혜문학은 눈과 얼굴에 마음의 태도가 드러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서도 독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은밀한 욕망이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도덕적 경고이지, 외모를 근거로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딸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10절에서 화자는 딸을 향한 경계로 방향을 바꿉니다.

흔들리지 말고 딸을 철저히 감시해라. 자유를 얻어 제멋대로 처신하지 못하도록 해라.집회서 26:10 · 본디새김

화자는 딸의 성적 행동을 가정의 명예와 연결하고,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딸의 독립적인 판단이나 자유가 지닌 긍정적 가치는 이 대목에서 논의되지 않습니다. 이 지혜의 말씀은 고대 사회의 가족 구조와 권위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그 애는 목마른 나그네처럼 입을 벌리고, 가까이 있는 물이면 무엇이든 마실 것이다. 어느 말뚝 앞에서나 앉을 것이며, 화살 앞에서 화살통을 열 것이다.집회서 26:12 · 본디새김

목마른 사람이 가까운 물이라면 무엇이든 마신다는 이미지는 선택과 분별이 사라진 상태를 표현합니다. 이어지는 말뚝과 화살통 역시 문맥상 성적 행동을 암시하는 비유로 읽힙니다. 다만 각각의 이미지가 정확히 어떤 신체적 행동과 대응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화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욕망이 아무런 분별 없이 행동을 지배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고대의 가부장적 통제 방식과 본문의 도덕적 관심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신실함과 절제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일 수 없습니다. 잠언 5:1–23과 6:20–35도 남성을 향해 성적 절제와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을 오늘 읽을 때는 딸을 억압하는 행동의 근거로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행동을 책임 있게 선택하는 능력과 신뢰를 지키는 삶이라는 더 넓은 성경적 주제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에는 「세 가지와 넷째」라는 지혜문학의 열거 방식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표현은 잠언 30:18–19, 21–23 등에서도 나타납니다. 5절에 세 가지 사회적 위협이 열거되고 6절에서 질투하는 여성이 등장하므로, 6절을 넷째 위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5절의 문장만으로 그 대응 관계를 완전히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10절의 명령 앞의 표현은 딸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거리낌 없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성향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명령의 직접적인 대상은 모든 딸이 아니라, 화자가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본문의 남성 중심적 관점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무엇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마음

집회서 26:13–15 본문 →

13절에서 다시 아내의 아름다움이 등장합니다.

아내의 매력은 자기 남편을 즐겁게 할 것이고, 그 아내의 지식은 그의 뼈를 살지게 할 것이다.집회서 26:13 · 본디새김

「뼈를 살지게 한다」는 표현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낯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뼈는 사람의 깊은 생명력과 상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잠언 3:8에서는 지혜로운 삶이 뼈에 새 힘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며, 잠언 17:22에서는 상한 마음이 뼈를 마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뼈가 살찐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가 건강해진다는 뜻을 넘어, 사람의 깊은 곳이 기력을 얻고 든든해지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아내가 지닌 이해력과 판단력이 남편에게 생기를 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좋은 아내를 굳세다고 불렀던 이유를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본문이 찬양하는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할 만큼 지혜롭고 이해력 있는 사람입니다.

14절에서는 가치의 기준이 한 단계 더 깊어집니다.

말이 적은 아내는 주가 주는 선물이고, 가르침을 받은 마음과 맞바꿀 것은 없다.집회서 26:14 · 본디새김

앞에서는 혀의 채찍이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이제는 말을 삼가는 태도가 칭찬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침묵을 이상적인 덕목으로 평가하던 관습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말이 적은 아내」를 여성은 언제나 조용해야 한다는 보편적 명령으로 확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단순히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의 가치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의 가치는 어떤 물건과도 맞바꿀 수 없습니다.

15절에서는 그 가치가 저울의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아내는 매력 위에 더해진 매력이고, 어떤 무게도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의 값어치에 미치지 못한다.집회서 26:15 · 본디새김

「매력 위에 더해진 매력」은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성품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위축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상 자신의 행동에 적절한 한계를 알고, 수치스러운 일을 삼가는 태도입니다.

질투하는 사람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술 취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무분별하게 욕망을 따르는 사람은 선택의 기준을 잃어버립니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본문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내면의 힘입니다.

이러한 가치의 언어는 잠언 31:10에서 능력 있는 여성을 귀한 보석보다 값지다고 평가하는 방식과 통합니다. 잠언 31:26의 지혜로운 여성은 단순히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 입을 열어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잠언 16:32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들은 집회서의 성별 중심적 표현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절제와 지혜의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할 근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본문 자체의 직접적인 진술과 구별되는 정경적 읽기입니다.

해와 등불과 금기둥 — 아름다움이 형상이 되다

집회서 26:16–18 본문 →

16절부터 문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 떠오르는 해, 남편의 집을 꾸미는 선한 아내의 아름다움도 그와 같다.집회서 26:16 · 본디새김

지극히 높은 곳에 떠오르는 해는 어둠을 물리치고 주변을 밝힙니다. 그 빛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그 아래의 세상이 함께 밝아집니다.

선한 아내의 아름다움을 해에 비유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혼자만의 장식이 아니라 집 전체의 분위기와 모습을 바꾸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앞서 본문이 찬양한 것은 지식과 절제, 훈련된 마음이었습니다. 그 성품들이 가정을 아름답게 한다는 맥락에서 이 비유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17절에서는 하늘의 해가 실내의 등불로 바뀝니다.

거룩한 등잔대 위에서 환히 빛나는 등불, 다 자란 몸에 깃든 얼굴의 아름다움도 그와 같다.집회서 26:17 · 본디새김

등불은 놓이는 자리가 중요합니다. 아름답게 타오르는 불빛과 그것을 받치는 등잔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룹니다.

「거룩한 등잔대」라는 표현은 성소의 등잔대를 연상시킵니다(출애굽기 25:31–40). 성소에서 빛나는 등불의 아름답고 존귀한 이미지를 가져와 인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절이 집 전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면, 17절은 성숙한 몸과 얼굴의 조화에 시선을 모읍니다. 여기서 본문은 실제 외모의 아름다움도 긍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의 13–15절과 연결하여 읽으면, 외적인 아름다움이 인격적 성숙과 나란히 찬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세 번째 비유가 등장합니다.

은 받침 위에 선 금기둥들, 든든한 이의 가슴 위에 있는 아름다운 발도 그와 같다.집회서 26:18 · 본디새김

귀중한 재료로 이루어진 기둥이 든든하게 서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해는 온 세상을 비추고, 등불은 자기 자리를 밝히며, 기둥은 안정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세 이미지를 하나의 치밀한 상징 체계로 확정할 수는 없지만, 함께 놓으면 본문이 무엇을 아름답게 여기는지 드러납니다. 빛나고, 주변을 아름답게 하며, 든든하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묘사된 흔들리는 멍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흔들리는 멍에는 함께 움직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반면 금기둥은 안정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집회서가 끝내 찬양하는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매력만이 아니라, 삶을 든든하게 해 주는 성품과 함께 놓인 아름다움입니다.

조금 더 깊이

18절의 그리스어에는 「아름다운 발」과 「든든한 이의 가슴 위에」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대로 읽으면 발이 가슴 위에 놓인 것처럼 되어 신체의 배치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가슴」 대신 「발꿈치」를 전하는 그리스어 사본들도 있지만, 제시된 그리스어 본문은 실제로 「가슴」이라는 낱말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정확한 신체적 묘사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궁핍한 전사와 멸시받는 지혜자 — 고통과 죄를 구별하다

집회서 26:28 본문 →

18절 다음에는 곧바로 28절이 나옵니다.

다만 현재의 본문을 따라 읽으면 관심이 가정에서 사회 전체로 넓어집니다.

두 가지에 내 마음이 슬퍼했고, 셋째에는 내게 격분이 치밀었다. 궁핍 때문에 부족함을 겪는 전사, 깨달음 있는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받는 경우, 의로움에서 돌아서 죄로 가는 이다. 주는 그가 큰 칼을 맞도록 마련할 것이다.집회서 26:28 · 본디새김

전사는 능력과 용기를 지닌 사람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본문 속의 전사는 가난 때문에 부족함을 겪습니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곧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존중받아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멸시당하기도 합니다. 이는 지혜문학이 말하는 바람직한 질서와 현실 사이의 간격을 드러냅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지닌 가치와 실제 대우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화자는 이것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례에서는 반응이 달라집니다.

의로움에서 돌아서 죄로 가는 사람 앞에서는 슬픔을 넘어 분노가 일어납니다. 앞의 두 사람은 어려움을 겪거나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세 번째 사람은 의로운 길에서 돌아서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본문은 불행한 처지에 놓인 것과 의로움을 버리는 것을 같은 문제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것이 곧 죄는 아닙니다. 멸시를 받는 것이 곧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나 의로움에서 돌아서는 것은 도덕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에스겔 18:24는 의로운 사람이 의로움에서 돌아서 악을 행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과거의 의로움이 현재의 악을 자동으로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주는 좋은 아내를 주시는 분으로 등장하셨습니다(26:3, 14). 이제는 의로움에서 돌아선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지혜로운 삶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연결되는 것처럼, 의로움을 버리는 삶도 하나님의 도덕적 판단 앞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한 번 획득하면 영원히 안전하게 보관되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의로운 길을 선택하는 삶의 태도여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제시된 본디새김 본문은 19–27절을 포함하지 않는 그리스어 본문 계열을 따르므로, 이 절번호의 공백을 단순한 인쇄 오류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본문 전승에는 그 사이에 추가된 내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18절과 28절의 급격한 전환을 저자가 처음부터 의도한 정교한 문학적 장치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인의 저울 — 세상에서 지혜를 지키는 어려움

집회서 26:29 본문 →

마지막 절에는 전혀 다른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상인이 허물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고, 소매상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다.집회서 26:29 · 본디새김

상업에는 거래 상대방과의 이해관계가 따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직과 공정을 지키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레위기 19:35–36은 길이나 무게, 양을 재는 일에서 속이지 말고 공정한 저울과 추를 사용하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25:13–16 역시 서로 다른 무게의 추를 사용하여 사람을 속이는 일을 금합니다. 아모스 8:4–6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부정한 저울을 사용하는 상인들이 책망받습니다.

따라서 집회서의 경고는 상업 자체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기준이 흔들리는 위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화자는 상업적 이익을 다루는 일이 죄와 얼마나 밀접하게 얽힐 수 있는지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이 지점에서 15절의 저울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을 어떤 무게로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29절에서는 물건의 값과 거래를 다루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도덕적 온전함을 잃을 위험에 처합니다. 두 구절 사이에 직접적인 문학적 연결이 의도되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나란히 읽으면 분명한 통찰이 생깁니다.

거래의 세계에서는 물건의 가치를 매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정직함과 신뢰, 절제와 의로움입니다.

그것들을 포기하여 얻은 이익은 겉으로는 이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서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선택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는 일입니다.

이 경고는 다음 장으로 이어집니다. 집회서 27:1–3은 이익 때문에 죄를 짓는 문제와 사고파는 과정에 끼어드는 죄를 다루며, 주를 경외하는 삶이 무너지면 집도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완성되는가

집회서 26:1–29 본문 →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평화를 누리도록 돕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마음을 길러 왔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집회서 26장은 그 귀중한 마음을 어떤 무게로도 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마지막 그림으로, 은 받침 위에 서 있는 금기둥을 우리 앞에 세웁니다.

값진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기둥입니다. 집회서가 찬양하는 지혜로운 삶도 그와 같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힘으로 굳게 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월에 평화를 더하는 삶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