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29장

이 장의 자리 · 24–43장 · 지혜의 찬양

돈을 잃어도 지킬 수 있는 것

집회서 29장에는 재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이 나옵니다.

「형제와 친구를 위해 은전을 잃어라.」 돈을 잘 관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을 잃으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는 더욱 이상한 말이 이어집니다.

「자선을 네 곳간에 간직하여라.」 앞에서는 돈을 내어주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자선을 곳간에 보관하라고 합니다. 돈을 내어주는 일이 어떻게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이 장은 돈을 어떻게 벌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단순한 경제 교훈이 아닙니다. 재산을 지키는 일과 사람을 지키는 일이 충돌할 때, 무엇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화자는 자비를 베풀라고 하면서도 자비를 악용하는 현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하면서도 자신까지 파멸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이 긴장은 본문의 약점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한 바로 그 자리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지가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돈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드러납니다.

사람이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때에도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29장 본문 읽기 →

빌려주는 손과 돌려주는 손 — 자비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집회서 29:1–3 본문 →

본문은 돈을 빌려주는 행동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로 소개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이는 이웃에게 꾸어 줄 것이고, 이웃의 손에 힘을 보태는 이는 계명을 지킨다.집회서 29:1 · 본디새김

자비는 마음속의 동정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로 자신의 재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당장 필요한 것을 마련할 능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으면 어려운 시기를 견디거나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꾸어주는 행위는 상대방이 스스로 살아갈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15:7–11은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손을 펴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25:35–37도 가난해진 형제를 붙들어 주고 그를 통해 이익을 취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특히 이러한 율법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단순한 금융 거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는 일입니다.

이웃이 필요로 할 때 꾸어 주어라. 또 이웃에게 제때 돌려주어라.집회서 29:2 · 본디새김

첫 문장은 빌려주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두 번째 문장은 빌린 사람에게 말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 각각 책임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것은 「이웃」과 「때」입니다. 이웃에게 필요한 때가 있고, 이웃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중요하듯,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약속한 재산을 돌려받는 시기도 중요합니다.

빌려주는 자비와 빌린 것을 갚는 신실함은 서로 반대되는 덕목이 아니라, 하나의 신뢰 관계를 이루는 두 책임입니다.

약속을 굳게 지키고 그에게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언제든 네게 필요한 것을 얻을 것이다.집회서 29:3 · 본디새김

「굳게 지키라」는 명령은 자신이 한 말을 실제 행동으로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돈을 갚겠다고 약속했다면 그 말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믿고 돈을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지혜의 원리는 더 현실적입니다. 신실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서로 믿고 도울 수 있는 기반이 유지됩니다.

빌린 것을 갚지 않는 사람은 한 번의 돈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도와주었던 사람과의 관계를 잃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지킬 수 있습니다.

갚아야 할 돈이 횡재가 되는 순간

집회서 29:4–7 본문 →

4절은 돈을 빌린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폭로합니다.

많은 이가 꾼 돈을 횡재로 여겼고, 자기를 도와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겼다.집회서 29:4 · 본디새김

그런데 빌린 돈은 횡재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시기에 다른 사람이 잠시 사용하도록 맡겨준 돈입니다. 그것은 갚아야 할 의무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돈을 받은 순간 그 돈이 마치 자신에게 아무 의무 없이 주어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자신의 정당한 몫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고마움은 사라지고 갚아야 할 책임이 불편한 요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5절은 그러한 사람의 행동을 한 편의 짧은 이야기처럼 보여 줍니다.

돈을 받기까지는 이웃의 손에 입을 맞추고, 이웃의 돈을 얻으려고 목소리를 낮출 것이다. 그러나 갚을 때가 되면 시간을 끌고, 무성의한 말로 갚으며 형편을 탓할 것이다.집회서 29:5 · 본디새김

화자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단순히 무례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자신과 신뢰를 주고받아야 할 이웃으로 여기지 않고,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했을 가능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돈을 갚을 능력을 잃은 사람과, 갚을 수 있는데도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구별해야 합니다. 본문이 비판하는 중심 대상은 도움을 악용하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돈을 빌려준 이가 힘을 쓸 수 있으면 겨우 절반을 돌려받고, 그것을 횡재로 여길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꾼 자가 그의 돈을 빼앗은 것이고, 빌려준 이는 돈까지 치르고 그자를 원수로 얻은 것이다. 꾼 자는 그에게 저주와 헐뜯음을 갚고, 명예 대신 수치를 갚을 것이다.집회서 29:6 · 본디새김

여기서 4절의 「횡재」가 다시 등장합니다. 처음에 돈을 빌린 사람은 빌린 돈 전체를 횡재처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빌려준 사람이 겨우 절반을 돌려받고 그것을 횡재로 여깁니다.

같은 돈이 한 사람에게는 부당하게 차지한 이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겨우 되찾은 재산이 됩니다.

빌린 돈은 갚지 않으면서, 저주와 헐뜯음은 되돌려 줍니다.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것을 돌려주지 않고, 돌려주지 말아야 할 악한 말을 상대방에게 퍼붓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비의 행동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많은 이가 이런 악행 때문에 등을 돌렸고, 아무 대가 없이 빼앗길까 두려워했다.집회서 29:7 · 본디새김

돈을 빌렸다가 갚지 않는 행위는 빌려준 한 사람에게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 일을 본 다른 사람들까지 도움을 베푸기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신뢰를 배반하면 다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런 현실을 이유로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결론짓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

집회서 29:8–9 본문 →

8절은 앞의 이야기와 강하게 대조됩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에게는 오래 참아라. 자선을 베푸는 일에서는 그를 기다리게 할 것이다.집회서 29:8 · 본디새김

앞에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도움을 베풀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화자는 그러한 경험이 가난한 사람 전체를 향한 냉담함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앞으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을 위해 가난한 이를 도와라. 그의 궁핍을 헤아려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라.집회서 29:9 · 본디새김

도움의 기준이 상대방의 필요에 놓여 있습니다. 화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받을 자격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의 궁핍을 살피라고 합니다.

대출에는 돌려받아야 할 재산과 약속된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은 반드시 그 사람이 나중에 같은 금액을 돌려주리라는 기대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도움이 실제로 필요한지 살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근거 없이 의심하거나, 과거에 자신을 속인 다른 사람들의 책임까지 그에게 지워서는 안 됩니다.

「계명을 위해」 도우라는 말은 자비의 궁극적인 근거를 다른 사람의 감사나 보답에 두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훗날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궁핍한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배은망덕이 인간의 자비를 완전히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은 뒤 문장을 「그를 기다리게 할 것이다」로 옮깁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비평본은 부정어가 있는 메 파렐퀴세스, 곧 「그를 기다리게 하지 마라」를 채택합니다. 두 읽기 중 어느 것이 최초의 형태였는지는 여기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하고, 다음 9절에서는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하므로, 도움을 지체하지 말라는 방향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돌 밑의 은전과 곳간의 자선 — 무엇이 진짜 보물인가

집회서 29:10–13 본문 →

형제와 친구를 위해 은전을 잃어라. 돌 밑에서 녹슬어 없어지게 두지 마라.집회서 29:10 · 본디새김

화자는 기꺼이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형제와 친구를 위해 재산을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빌린 사람은 여전히 갚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내어주는 사람이 모든 도움을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투자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안전한 곳에 감추어 두었다고 해서, 그 돈을 가장 잘 사용한 것일까?

돌 밑에 보관된 돈은 다른 사람이 쉽게 가져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그대로 머무는 동안 궁핍한 형제나 친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본문은 그것을 녹슬어 없어지는 돈으로 묘사합니다.

재산을 잃지 않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그 재산으로 할 수 있었던 선한 일의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돈 자체는 보관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었던 때는 이미 지나갈 수 있습니다.

11절에서는 보물의 보관 장소가 달라집니다.

네 보물을 지극히 높은 이의 계명에 따라 두어라. 그러면 그것이 금보다 네게 더 이로울 것이다.집회서 29:11 · 본디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물의 양이 아니라 보물을 사용하는 기준입니다. 가장 많은 돈을 남기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자비와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 사용한 돈은 단순한 금전적 계산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자선을 네 곳간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자선이 온갖 고난에서 너를 건져 낼 것이다.집회서 29:12 · 본디새김

자선은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을 자신의 곳간에 간직하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은전을 돌 밑에 감추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자선을 자신의 곳간에 보관하라고 합니다.

돈을 내어주는 행위가 반드시 자신의 삶을 가난하게 만드는 손실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금보다 귀중한 것을 쌓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집회서 3:30과도 이어집니다. 그곳에서도 자선은 죄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토빗기 4:7–11 역시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나님 앞에 보물을 쌓는 행위와 연결합니다.

다만 본문의 약속을 경제적 보상에 관한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많은 돈을 돌려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은 어떤 재난도 당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으로 읽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튼튼한 방패를 능가하고 위력 있는 창을 능가하여, 원수에 맞서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집회서 29:13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자선을 의인화합니다. 사람이 가난한 이웃을 위해 행한 자선이 마치 전장에서 자신을 지켜 주는 전사처럼 묘사됩니다. 여기서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고, 창은 적과 맞서 싸우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자선이 이 두 무기보다 더 뛰어난 보호로 제시됩니다.

많은 재산이 있으면 위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언제나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산 때문에 다툼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탐욕으로 재산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집회서는 금과 은보다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일이 더 귀한 안전의 근거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에는 자선 자체가 독립적인 신비한 힘을 가진다는 설명보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귀하게 여기시며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사용한 재산이 헛되지 않다는 지혜문학적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재산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손에 쥐고 있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누구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르침 뒤에 다시 경고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채무를 책임지는 상황입니다. 자비를 베풀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위험에 내놓을 때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다른 사람의 빚을 짊어진 사람 — 보증의 위험과 책임

집회서 29:14–20 본문 →

14절에는 선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람은 이웃의 보증을 설 것이고, 부끄러움을 잃은 자는 그를 버릴 것이다.집회서 29:14 · 본디새김

보증은 단순한 호의의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그 채무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겠다고 약속하는 행위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자기 재산을 상대방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보증을 서는 사람은 자기의 재산과 신용을 다른 사람의 약속에 연결합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을 먼저 「선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위험에 내놓는 행동에는 분명한 선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증받은 사람이 약속을 저버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보증을 선 사람은 자신이 직접 사용하지 않은 돈 때문에 재산을 잃을 수 있습니다.

보증 선 이의 은혜를 잊지 마라. 그는 너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주었기 때문이다.집회서 29:15 · 본디새김

보증을 선 사람이 실제로 죽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재산을 위험에 노출할 만큼 큰 책임을 감수했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그는 단순히 서류에 이름을 써 준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 믿어 주었고, 자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대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16–17절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이 등장합니다.

죄인은 보증 선 이의 재산을 망칠 것이고,집회서 29:16 · 본디새김
고마움을 모르는 마음을 지닌 자는 자기를 구해 준 이를 저버릴 것이다.집회서 29:17 · 본디새김

재정적 손실과 관계의 배신이 연결됩니다. 화자는 단순히 채무 불이행이 얼마나 큰 경제적 문제인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죄로 규정합니다.

보증은 순탄하게 살던 많은 이를 망하게 했고, 바다의 물결처럼 그들을 뒤흔들었다. 유력한 사람들을 타향으로 몰아냈고, 그들은 낯선 민족들 사이를 떠돌았다.집회서 29:18 · 본디새김

거센 파도에 휩쓸리면 자신의 힘으로 움직임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보증 때문에 재산을 잃은 사람도 처음에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보증에 걸려들고 돈벌이를 좇는 죄인은 소송에 걸려들 것이다.집회서 29:19 · 본디새김

여기서 「돈벌이를 좇는」이라는 표현은 이익이 생기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증은 이웃을 돕는 선한 행동이 될 수 있지만, 무분별한 이익 추구와 결합하면 또 다른 위험이 됩니다.

20절은 이 단락의 두 관심을 한 문장 안에 묶습니다.

네 힘이 닿는 만큼 이웃을 도와라. 너 자신도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집회서 29:20 · 본디새김

자신에게 책임져야 할 가족과 생활이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재산의 범위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다른 사람의 채무를 짊어지는 것이 반드시 지혜로운 행동은 아닙니다. 반대로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이유로 모든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앞의 1–13절과 맞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명령과 자신도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명령을 함께 지켜야 합니다.

잠언 6:1–5와 11:15는 경솔하게 보증을 서는 행동을 강하게 경계합니다. 집회서 29장은 이러한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선한 사람이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서는 행위 자체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두 가르침은 보증의 위험을 다르게 강조하지만, 무분별하게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경계한다는 점에서는 만납니다.

자비는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며, 신중함은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화자는 재산을 잃은 사람이 실제로 어떤 처지에 놓일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 사람은 자기 집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고린도후서 8:13–14에서는 한쪽이 편안해지도록 다른 쪽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균형이 강조됩니다. 이는 집회서의 직접 인용이라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재산과 책임을 나누는 삶이라는 주제적 연결입니다.

물과 빵과 옷, 그리고 자기 몸을 가릴 집

집회서 29:21–23 본문 →

21절에서는 화자의 관심이 갑자기 바뀌는 것처럼 보입니다.

삶의 기본은 물과 빵과 옷, 그리고 벌거벗은 몸을 가려 주는 집이다.집회서 29:21 · 본디새김

이 전환은 우연한 교훈의 나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보증 때문에 생활이 무너지고 타향을 떠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연결이 생깁니다.

재산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돈의 액수가 줄어드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고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킬 능력을 잃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문맥상 중요한 것은 몸을 가리고 사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보호된 공간입니다. 집은 단순히 비와 바람을 막아 주는 건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생활을 지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이 아닙니다. 자기 몸을 보호하고, 편안히 머무르며,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도 필요합니다.

들보 지붕 아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남의 집에서 호화로운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낫다.집회서 29:22 · 본디새김

음식의 질만 비교하면 두 번째 사람의 생활이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자는 첫 번째 사람의 삶이 낫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비록 초라하지만 자신이 머무를 자리가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풍족한 음식을 먹더라도 남의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준이 바뀝니다.

화려한 음식보다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안정감이 중요해집니다. 「들보 지붕」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대조를 강화합니다. 정교하고 화려한 건물보다 단순한 지붕의 이미지가 앞에 놓입니다.

본문의 대조는 빈곤과 부유함의 단순한 우열이 아니라, 화려한 생활과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는 안정감 사이의 차이입니다.

적든 많든 만족하여라.집회서 29:23 · 본디새김

화자는 재산이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풍족함과 비교하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권합니다.

만족은 재산의 액수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져도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살 수 있고, 적게 가져도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의 만족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구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가 이 장에서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궁핍한 사람을 돕는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만족을 권한다는 이유로 그의 필요를 외면하는 것은 이 장 전체의 흐름과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집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 —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삶의 고통

집회서 29:24–28 본문 →

24절에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는 삶은 고달프고, 얹혀사는 곳에서 그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29:24 · 본디새김

그는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 뜻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불편한 일이 있어도 불평하기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참아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제적 의존이 사람의 말할 자유와 연결됩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단지 공간만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활에 관해 결정하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리까지 제한받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돈을 빌리는 사람이 공손하게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29:5). 그런데 이제는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이 아예 입을 열지 못합니다. 두 상황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서 나타납니다. 다만 5절의 사람은 뒤에 약속을 어기는 부정적인 인물이고, 24절의 사람은 불안정한 생활로 고통받는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25절은 더욱 씁쓸합니다.

너는 손님을 맞아들이고 마실 것을 내주어도 고마움을 받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 더해 쓰라린 말까지 들을 것이다.집회서 29:25 · 본디새김

자신이 남의 집에 의지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수고는 당연한 의무처럼 취급될 수 있습니다. 그는 도움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닙니다.

26절에서는 마침내 누군가의 직접적인 말이 등장합니다.

「얹혀사는 자야, 이리 와서 밥상을 차려라. 네 손에 무엇이 있거든 나를 먹여라.」집회서 29:26 · 본디새김

명령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이나 성품, 그동안의 수고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앞세워집니다.

그는 손님처럼 대접받기보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도움을 받는 처지가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을 낮추는 근거로 사용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줍니다.

27절은 더욱 잔인합니다.

「얹혀사는 자야, 귀한 사람 앞에서 물러나라. 내 형제가 나에게 손님으로 왔으니 묵을 곳이 필요하다.」집회서 29:27 · 본디새김

여기서 화자가 보여 주는 것은 물리적 공간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불안정성입니다. 그 사람은 오늘 밤 어디에서 잠을 자게 될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얼마나 성실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습니다. 집주인에게 더 중요한 손님이 오면 그는 물러나야 합니다.

그는 필요할 때 불려 와 일해야 하지만, 필요하지 않을 때는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취급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이 자신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사람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우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슬기를 지닌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무겁다. 남의 집에서 듣는 꾸지람과 돈을 빌려준 이에게 받는 모욕이다.집회서 29:28 · 본디새김

돈을 빌린 사람이 돈을 갚지 못해 채권자에게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남의 집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집주인에게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원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 그 관계 때문에 수치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화자는 그러한 대우가 단지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만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에게도 무거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사람의 존엄과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그러한 모욕의 무게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조금 더 깊이

물론 고대의 주거 관습과 오늘의 주거 제도는 다릅니다. 본문이 현대적 의미의 임차권이나 주거권을 직접 논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밥상 앞에 서 있는 사람

집회서 29:1–28 본문 →

집회서 29장은 마지막에 아무런 재산도 없는 듯한 한 사람을 남겨 놓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도움만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동안에도 존중받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자비는 돈을 주고받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에까지 미칩니다.

그래서 이 장을 다 읽고 나면 돌 밑에 감추어 둔 은전보다, 남의 집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는 그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손에는 할 일이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집회서가 처음에 말한 자비로운 손은 바로 그런 사람의 손에 힘을 보태는 손이었습니다.

그 손이 단지 돈을 내어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가 다시 자기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돌 밑에 보관한 은전보다 더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