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29장

이 장의 자리 · 24–43장 · 지혜의 찬양

돈을 잃어도 지킬 수 있는 것

집회서 29장에는 재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이 나옵니다.

「형제와 친구를 위해 은전을 잃어라.」 앞에서는 돈을 내어주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자선을 창고에 간직하라고 합니다. 돈을 내어주는 일이 어떻게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이 장은 돈을 어떻게 벌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단순한 경제 교훈이 아닙니다. 재산을 지키는 일과 사람을 지키는 일이 충돌할 때, 무엇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지가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돈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드러납니다.

사람이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때에도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29장 본문 읽기 →

빌려주는 손과 돌려주는 손 — 자비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집회서 29:1–3 본문 →

본문은 돈을 빌려주는 행동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로 소개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이웃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웃에게 힘을 보태는 사람은 계명을 지킨다.집회서 29:1 · 두루새김

자비는 마음속의 동정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로 자신의 재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웃에게 힘을 보태는」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입니다. 단순히 돈을 넘겨주는 행위보다 넓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다시 자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15:7–11은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손을 펴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25:35–37도 가난해진 형제를 붙들어 주고 그를 통해 이익을 취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특히 이러한 율법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단순한 금융 거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는 일입니다.

이웃이 필요로 할 때 돈을 빌려 주어라. 네가 이웃에게 빌린 돈은 제때 갚아라.집회서 29:2 · 두루새김

여기서는 「이웃」이 반복되고, 「필요로 할 때」와 「제때」가 서로 맞물립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중요하듯,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약속한 재산을 돌려받는 시기도 중요합니다.

빌려주는 자비와 빌린 것을 성실하게 갚는 태도는 서로 반대되는 덕목이 아니라, 하나의 신뢰 관계를 이루는 두 책임입니다.

약속을 굳게 지키고, 이웃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언제든 네게 필요한 것을 얻을 것이다.집회서 29:3 · 두루새김

「굳게 지키고」라는 명령은 자신이 한 말을 실제 행동으로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돈을 갚겠다고 약속했다면 그 말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믿고 돈을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서로 믿고 도울 수 있는 기반이 유지됩니다. 빌린 것을 갚지 않는 사람은 한 번의 돈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도와주었던 사람과의 관계를 잃을 수 있습니다.

갚아야 할 돈이 공짜로 얻은 돈이 되는 순간

집회서 29:4–7 본문 →

4절은 돈을 빌린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폭로합니다.

많은 사람이 빌린 돈을 공짜로 얻은 돈처럼 여겼고,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겼다.집회서 29:4 · 두루새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자신의 정당한 몫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고마움은 사라지고 갚아야 할 책임이 불편한 요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5절은 그러한 사람의 행동을 한 편의 짧은 이야기처럼 보여 줍니다.

돈을 받기 전까지는 빌려 주는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의 돈을 얻으려고 목소리를 낮출 것이다. 그러나 갚을 때가 되면 시간을 끌고, 성의 없는 말로 대답하며 형편을 탓할 것이다.집회서 29:5 · 두루새김

화자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단순히 무례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자신과 신뢰를 주고받아야 할 이웃으로 여기지 않고,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했을 가능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돈을 갚을 능력을 잃은 사람과, 갚을 수 있는데도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구별해야 합니다. 본문이 비판하는 중심 대상은 도움을 악용하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빌려준 사람이 힘을 쓸 수 있다면 겨우 절반을 돌려받고, 그것도 뜻밖의 이득으로 여길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돈을 빌린 사람에게 자기 돈을 빼앗기고, 돈까지 치르며 원수를 얻은 셈이 된다. 빌린 사람은 그에게 저주와 욕설을 돌려주고, 명예 대신 수치를 안길 것이다.집회서 29:6 · 두루새김

같은 돈이 한 사람에게는 부당하게 차지한 이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겨우 되찾은 재산이 됩니다.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것을 돌려주지 않고, 돌려주지 말아야 할 악한 말을 상대방에게 퍼붓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비의 행동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이런 악행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돈을 빌려 주는 일에서 등을 돌렸다. 그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돈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다.집회서 29:7 · 두루새김

한 사람이 신뢰를 배반하면 다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제적 신뢰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통찰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런 현실을 이유로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결론짓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휴레마는 우연히 찾아내거나 얻게 된 물건, 뜻밖의 소득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공짜로 얻은 돈」으로 풀어 옮깁니다. 6절의 「뜻밖의 이득」은 원문에서는 4절의 「공짜로 얻은 돈」과 같은 낱말입니다. 원문에서는 「갚다」라는 말이 반복되는 방식도 의미심장합니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

집회서 29:8–9 본문 →

8절은 앞의 이야기와 강하게 대조됩니다.

그래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오래 참아라. 자선을 베푸는 일에서는 그를 기다리게 할 것이다.집회서 29:8 · 두루새김

앞에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도움을 베풀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화자는 그러한 경험이 가난한 사람 전체를 향한 냉담함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나쁜 경험 때문에 신중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자비 자체를 포기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라. 그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해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라.집회서 29:9 · 두루새김

화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받을 자격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의 어려운 형편을 살피라고 합니다.

대출에는 돌려받아야 할 재산과 약속된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은 반드시 그 사람이 나중에 같은 금액을 돌려주리라는 기대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 도우라는 말은 자비의 궁극적인 근거를 다른 사람의 감사나 보답에 두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훗날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뒤 문장을 「그를 기다리게 할 것이다」로 옮깁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비평본은 부정어가 있는 메 파렐퀴세스, 곧 「그를 기다리게 하지 마라」를 채택합니다. 두 읽기 중 어느 것이 최초의 형태였는지는 여기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하고, 다음 9절에서는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하므로, 도움을 지체하지 말라는 방향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돌 밑의 은전과 창고의 자선 — 무엇이 진짜 보물인가

집회서 29:10–13 본문 →

형제와 친구를 위해 은전을 잃어라. 돌 밑에서 녹슬어 없어지게 두지 마라.집회서 29:10 · 두루새김

화자는 기꺼이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형제와 친구를 위해 재산을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빌린 사람은 여전히 갚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내어주는 사람이 모든 도움을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투자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돌 밑에 보관된 돈은 다른 사람이 쉽게 가져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그대로 머무는 동안 어려운 형편에 놓인 형제나 친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재산을 잃지 않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그 재산으로 할 수 있었던 선한 일의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11절에서는 보물의 보관 장소가 달라집니다.

지극히 높은 이의 계명에 따라 네 보물을 쌓아 두어라. 그러면 그 보물은 금보다 네게 더 이로울 것이다.집회서 29:11 · 두루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물의 양이 아니라 보물을 사용하는 기준입니다. 가장 많은 돈을 남기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자비와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 사용한 돈은 단순한 금전적 계산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자선을 네 창고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자선이 온갖 고난에서 너를 건져 낼 것이다.집회서 29:12 · 두루새김

자선은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을 자신의 창고에 간직하라고 합니다. 돈을 내어주는 행위가 반드시 자신의 삶을 가난하게 만드는 손실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금보다 귀중한 것을 쌓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집회서 3:30과도 이어집니다. 그곳에서도 자선은 죄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토빗기 4:7–11 역시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나님 앞에 보물을 쌓는 행위와 연결합니다.

다만 본문의 약속을 경제적 보상에 관한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많은 돈을 돌려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은 어떤 재난도 당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으로 읽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 자선은 튼튼한 방패보다도, 위력 있는 창보다도 더 힘 있게 원수에 맞서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집회서 29:13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자선을 의인화합니다. 사람이 가난한 이웃을 위해 행한 자선이 마치 전장에서 자신을 지켜 주는 전사처럼 묘사됩니다. 여기서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고, 창은 적과 맞서 싸우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자선이 이 두 무기보다 더 뛰어난 보호로 제시됩니다.

집회서는 금과 은보다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일이 더 귀한 안전의 근거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에는 자선 자체가 독립적인 신비한 힘을 가진다는 설명보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귀하게 여기시며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사용한 재산이 헛되지 않다는 지혜문학적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르침 뒤에 다시 경고가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짊어진 사람 — 보증의 위험과 책임

집회서 29:14–20 본문 →

14절에는 선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람은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서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보증을 서 준 이를 버릴 것이다.집회서 29:14 · 두루새김

보증은 단순한 호의의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그 빚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겠다고 약속하는 행위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자기 재산을 상대방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보증을 서는 사람은 자기의 재산과 신용을 다른 사람의 약속에 연결합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을 먼저 「선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위험에 내놓는 행동에는 분명한 선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증받은 사람이 약속을 저버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보증을 선 사람은 자신이 직접 사용하지 않은 돈 때문에 재산을 잃을 수 있습니다.

네 보증을 서 준 사람의 은혜를 잊지 마라. 그는 너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집회서 29:15 · 두루새김

보증을 선 사람이 실제로 죽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재산을 위험에 내놓을 만큼 큰 책임을 감수했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이 구절은 보증을 받은 사람이 상대방의 희생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16–17절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이 등장합니다.

죄인은 보증을 서 준 사람의 재산을 망칠 것이고,집회서 29:16 · 두루새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구해 준 이를 저버릴 것이다.집회서 29:17 · 두루새김

재산의 손실과 관계의 배신이 연결됩니다.

화자는 단순히 빌린 돈을 갚지 않는 일이 얼마나 큰 경제적 문제인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책임을 피하는 태도를 죄로 규정합니다.

보증은 순탄하게 살던 많은 사람을 망하게 했고, 바다의 물결처럼 그들을 뒤흔들었다. 힘 있는 사람들을 타향으로 몰아냈고, 그들은 낯선 민족들 사이를 떠돌았다.집회서 29:18 · 두루새김

거센 파도에 휩쓸리면 자신의 힘으로 움직임을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보증 때문에 재산을 잃은 사람도 처음에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보증에 걸려들고 돈벌이를 좇는 죄인은 소송에 휘말릴 것이다.집회서 29:19 · 두루새김

여기서 「돈벌이를 좇는」이라는 표현은 이익이 생기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증은 이웃을 돕는 선한 행동이 될 수 있지만, 앞뒤를 살피지 않는 이익 추구와 결합하면 또 다른 위험이 됩니다.

네 힘이 닿는 만큼 이웃을 도와라. 너 자신도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집회서 29:20 · 두루새김

자신에게 책임져야 할 가족과 생활이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재산의 범위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다른 사람의 빚을 짊어지는 것이 반드시 지혜로운 행동은 아닙니다. 반대로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이유로 모든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앞의 1–13절과 맞지 않습니다.

잠언 6:1–5와 11:15는 경솔하게 보증을 서는 행동을 강하게 경계합니다. 집회서 29장은 이러한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선한 사람이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서는 행위 자체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두 가르침은 보증의 위험을 다르게 강조하지만, 앞뒤를 살피지 않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경계한다는 점에서는 만납니다.

자비는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며, 신중함은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화자는 재산을 잃은 사람이 실제로 어떤 처지에 놓일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 사람은 자기 집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과 빵과 옷, 그리고 자기 몸을 가릴 집

집회서 29:21–23 본문 →

21절에서는 화자의 관심이 갑자기 바뀌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물과 빵과 옷, 그리고 벌거벗은 몸을 가려 주는 집이다.집회서 29:21 · 두루새김

재산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돈의 액수가 줄어드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고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킬 능력을 잃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화자는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생각합니다.

문맥상 중요한 것은 몸을 가리고 사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보호된 공간입니다. 집은 단순히 비와 바람을 막아 주는 건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생활을 지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이 아닙니다. 자기 몸을 보호하고, 편안히 머무르며,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도 필요합니다.

나무 들보로 받친 지붕 아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남의 집에서 호화로운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낫다.집회서 29:22 · 두루새김

음식의 질만 비교하면 두 번째 사람의 생활이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자는 첫 번째 사람의 삶이 낫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비록 초라하지만 자신이 머무를 자리가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풍족한 음식을 먹더라도 남의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화려한 음식보다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안정감이 중요해집니다.

「나무 들보로 받친 지붕」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대조를 강화합니다. 정교하고 화려한 건물보다 단순한 지붕의 모습이 앞에 놓입니다. 그 집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는 본문의 관심이 아닙니다. 그곳이 자신이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장소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가진 것이 적든 많든 만족하여라.집회서 29:23 · 두루새김

화자는 재산이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풍족함과 비교하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권합니다.

다만 이 구절의 만족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구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가 이 장에서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돕는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만족을 권한다는 이유로 그의 필요를 외면하는 것은 이 장 전체의 흐름과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 —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삶의 고통

집회서 29:24–28 본문 →

24절에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는 삶은 고달프다. 얹혀사는 곳에서는 입도 열지 못할 것이다.집회서 29:24 · 두루새김

그는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 뜻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불편한 일이 있어도 불평하기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참아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제적 의존이 사람의 말할 자유와 연결됩니다.

앞에서는 돈을 빌리는 사람이 돈을 얻으려고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29:5). 그런데 이제는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이 아예 입을 열지 못합니다. 두 상황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서 나타납니다. 다만 5절의 사람은 뒤에 약속을 어기는 부정적인 인물이고, 24절의 사람은 불안정한 생활로 고통받는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너는 손님을 맞아들이고 마실 것을 내주어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이런 쓰라린 말까지 들을 것이다.집회서 29:25 · 두루새김

자신이 남의 집에 의지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수고는 당연한 의무처럼 취급될 수 있습니다. 그는 도움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닙니다.

「얹혀사는 자야, 이리 와서 밥상을 차려라. 네게 가진 것이 있거든 나를 먹여라.」집회서 29:26 · 두루새김

명령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이나 성품, 그동안의 수고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앞세워집니다.

27절은 더욱 잔인합니다.

「얹혀사는 자야, 귀한 사람 앞에서 물러나라. 내 형제가 손님으로 왔으니 묵을 곳이 필요하다.」집회서 29:27 · 두루새김

여기서 화자가 보여 주는 것은 물리적 공간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불안정성입니다. 그 사람은 오늘 밤 어디에서 잠을 자게 될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필요할 때 불려 와 일해야 하지만, 필요하지 않을 때는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취급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이 자신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사람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우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슬기를 지닌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견디기 힘들다. 남의 집에서 듣는 꾸지람과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받는 모욕이다.집회서 29:28 · 두루새김

돈을 빌린 사람이 돈을 갚지 못해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남의 집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집주인에게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이나 집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 그 관계 때문에 수치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화자는 그러한 대우가 단지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만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에게도 무거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사람의 존엄과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그러한 모욕의 무게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밥상 앞에 서 있는 사람

집회서 29:1–28 본문 →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자비는 돈을 주고받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에까지 미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도움만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동안에도 존중받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집회서 29장은 마지막에 아무런 재산도 없는 듯한 한 사람을 남겨 놓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집에서 마음대로 입을 열 수 없습니다. 밥상을 차리고 손님에게 마실 것을 내주지만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같은 사람이 필요할 때에는 불려 오고, 자리가 필요할 때에는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이 장을 다 읽고 나면 돌 밑에 감추어 둔 은전보다, 남의 집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는 그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손에는 할 일이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집회서가 처음에 말한 자비로운 손은 바로 그런 사람의 손에 힘을 보태는 손이었습니다. 그 손이 단지 돈을 내어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가 다시 자기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돌 밑에 보관한 은전보다 더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