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39장
이 장의 자리 · 24–43장 · 지혜의 찬양
모든 것이 제때에 드러날 때
하나님의 지혜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찾아 읽고, 예언의 뜻을 탐구하며,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세상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가 완성되는 자리는 책상 앞이 아닙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 뒤에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복이 메마른 땅을 적시는 강물처럼 내려오지만, 하나님의 노여움은 물을 짠물로 바꾸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불과 물, 먹을거리를 열거하다가 곧바로 우박과 굶주림, 독사와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생명을 살리는 물과 생명을 앗아가는 재난을 모두 하나님의 좋은 창조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집회서 39장의 중심 질문은 세상에 악과 고통이 없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까지 포함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입니다.
옛사람들의 지혜를 찾는 사람
그러나 자기 마음을 바치고 지극히 높은 이의 율법을 숙고하는 이는 옛사람 모두의 지혜를 찾아 나설 것이며, 예언에 몰두할 것이다.집회서 39:1 · 본디새김
이 장은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 장의 마지막에는 농부와 장인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서 지혜를 발휘하지만, 하루 대부분을 노동에 바치기 때문에 율법과 교훈을 깊이 연구할 여유가 적었습니다.
39장은 그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남는 시간에 정보를 조금씩 수집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을 그 일에 바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이의 율법, 옛사람들의 지혜, 예언, 이름난 사람들의 이야기, 속담과 비유와 수수께끼입니다. 이 목록에는 지혜의 서로 다른 원천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가르칩니다. 예언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는 앞선 세대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 줍니다. 비유와 속담은 인간의 행동과 삶의 질서를 간결한 언어로 전합니다.
참된 서기관은 하나의 짧은 문장에 모든 진리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앞선 세대에 걸쳐 전해진 말씀과 경험을 깊이 연구합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는 이름난 이들의 이야기를 간직할 것이며, 비유의 얽힌 뜻을 파고들 것이다.집회서 39:2 · 본디새김
속담의 숨은 뜻을 찾아 나설 것이며, 비유의 수수께끼를 다루며 지낼 것이다.집회서 39:3 · 본디새김
이것은 잠언 1:6에서 지혜의 목적을 설명하는 방식과 닮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의 말과 비유, 그들의 수수께끼를 깨닫는 것이 지혜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제시됩니다.
짧은 속담 하나도 처음 들으면 단순하게 보이지만, 실제 삶의 복잡한 상황에 적용하려면 충분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잠언에는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분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여러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잠언 26:4–5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의 어리석음에 따라 대답하지 말라고 하면서, 바로 다음 절에서는 그의 어리석음에 따라 대답하라고 합니다.
두 말씀을 기계적으로 읽으면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각각 어떤 상황에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숙고하면, 지혜가 단순한 규칙의 암기가 아니라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책으로만 배우지 않는 지혜
그는 높은 이들 사이에서 봉사할 것이며, 통치자 앞에 나타날 것이다. 낯선 민족들의 땅을 두루 다닐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집회서 39:4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율법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다른 민족과 인간 사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서기관을 고립된 학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전해진 말씀을 연구하면서도 실제 세상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구절은 모든 서기관이 반드시 통치자를 섬기거나 해외를 여행했다는 역사적 진술이 아닙니다. 본문이 그리는 이상적인 지혜자의 활동 범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이 다음으로 하는 일은 뜻밖입니다.
그는 더 많은 정보를 찾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 기도합니다.
지혜를 연구하는 사람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그는 자기를 만든 주를 이른 새벽에 찾는 데 마음을 쏟을 것이며, 지극히 높은 이 앞에서 간구할 것이다. 입을 열어 기도할 것이며, 자기 죄에 관하여 간구할 것이다.집회서 39:5 · 본디새김
지혜자는 많은 것을 아는 사람도 자신의 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으로 둡니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지식이 때로 사람에게 자신을 높이 평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알고, 복잡한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특별한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위대한 주가 원한다면”
위대한 주가 원한다면, 그는 깨달음의 영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는 지혜의 말들을 비처럼 쏟아 낼 것이며, 기도하며 주에게 감사 찬송을 할 것이다.집회서 39:6 · 본디새김
서기관은 수많은 문헌을 연구하고, 비유의 뜻을 탐구하며, 여행과 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하나님의 깨달음을 마음대로 얻어 낼 수 있는 권한을 주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깨달음의 영으로 가득 차는 일은 서기관의 공부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린 선물로 나타납니다. 바로 앞에서 지혜자는 얼마나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노력과 선물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지혜자는 하나님께 받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받은 지혜는 혼자 간직하는 소유물이 되지 않습니다.
말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찬송이 되어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7–8절은 그가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올바르게 이끌고, 하나님의 숨은 일들을 숙고하며, 주의 언약의 율법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랑하는 대상은 자신의 명석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지혜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드러내지만, 그 가르침의 근거를 자기 자신에게 두지 않습니다.
지혜자의 이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
많은 이가 그의 깨달음을 칭찬할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를 기리는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의 이름은 세세대대로 살아 있을 것이다.집회서 39:9 · 본디새김
앞에서는 서기관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이 강조되었습니다. 지혜자가 인정받는 이유는 권력이나 재산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전한 깨달음 때문입니다.
한 세대가 배운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그 지혜가 공동체를 유익하게 한다면 그 사람의 가르침은 자신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계속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장인들이 도시를 유지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장인의 손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떠받칩니다. 서기관이 전하는 지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판단과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비교는 장인의 노동이 한 세대에서 끝나고 서기관의 지혜만 영원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두 종류의 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1절은 서기관이 살아 있을 때 큰 이름을 남길 수도 있고, 안식에 들어도 그에게 넉넉하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표현의 그리스어 문장은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어 정확한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앞선 명성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죽은 뒤에도 남는 좋은 이름으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지혜자가 남기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통해 기억되는 깨달음입니다.
지혜를 설명하던 사람이 직접 찬송을 시작합니다
나는 더 숙고하여 낱낱이 이야기하겠다. 나는 보름달처럼 가득 찼다.집회서 39:12 · 본디새김
앞에서는 계속 “그는”이라는 말로 서기관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나는”이라고 말합니다.
지혜자는 지금까지 이상적인 서기관이 어떻게 연구하고 깨달음을 전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자신이 그 일을 직접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보름달처럼 가득 찼다”는 표현은 그가 전하려는 가르침이 마음에 충만하다는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 이어 가지 않습니다.
거룩한 아들들아, 내 말을 들어라. 들판의 시냇가에서 자라는 장미처럼 싹을 틔워라.집회서 39:13 · 본디새김
시냇가에서 자라는 꽃은 물을 받아 자랍니다. 그리고 꽃이 피면 그 아름다움과 향기가 주변으로 퍼집니다.
배우는 사람은 먼저 다른 곳에서 물을 얻듯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뒤에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전하는 존재가 됩니다.
다만 지혜자는 이 비유를 개인의 지적 성장에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유향처럼 향기를 풍기고, 백합처럼 꽃을 피워라. 향기를 퍼뜨리고 찬양의 노래를 불러라. 모든 일을 두고 주를 찬미해라.집회서 39:14 · 본디새김
이제 독자는 지혜를 배우는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으로 초대받습니다. 15절에서는 입술의 노래와 비파로 찬양하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노래해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지혜의 최종 목적은 지혜자 한 사람에게 감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일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보고 함께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일들은 모두 아주 좋다” — 창조를 바라보는 지혜
「주의 일들은 모두 아주 좋으며, 모든 명령은 저마다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집회서 39:16 · 본디새김
찬송은 하나님의 창조 전체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아주 좋다”라는 표현은 창세기 1:31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셨을 때 그것이 아주 좋았다는 선언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좋음을 선언합니다. 집회서는 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들이 각각의 때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이는 전도서 3:1–11의 가르침과 통합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일에 때가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알맞게 만드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제때에 살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로 물이 무더기처럼 섰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로 물 저장소들이 자리 잡았다.」집회서 39:17 · 본디새김
앞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어려운 비유와 수수께끼의 뜻을 끊임없이 탐구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고백과 “이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라는 단정은 다릅니다. 지혜자는 두 번째 태도를 경계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사건의 의미를 즉시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지금 이해되지 않지만 다른 때에는 그 기능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곧바로 무가치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이 무더기처럼 섭니다
여기에는 창조와 출애굽의 이미지가 겹쳐 있습니다. 창세기 1:9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납니다. 출애굽기 15:8에서는 바닷물이 무더기처럼 쌓이고 깊은 물이 굳게 섰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집회서의 지혜자는 이런 전통을 통해 물마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물은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물도 정해진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의 명령으로 그가 기뻐하는 모든 뜻이 이루어지며, 그의 구원을 줄일 이는 없다.」집회서 39:18 · 본디새김
창조와 구원이 하나의 흐름 안에 놓입니다.
하나님은 물을 만드신 분일 뿐 아니라, 물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보면 지혜자의 관심은 자연의 구조 자체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감추어진 일이 없습니다
「모든 육신이 하는 일은 그의 앞에 있으며, 그의 눈을 피해 숨을 수는 없다.」집회서 39:19 · 본디새김
이제 시선이 인간의 행동으로 옮겨 갑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한 행동이 가져올 결과조차 모두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하나님께 그런 무지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20절은 하나님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바라보셨으며, 그 앞에서 놀라운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놀라운 일도 하나님께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예상 밖의 사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저마다의 쓰임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집회서 39:21 · 본디새김
17절에서는 때가 강조되었습니다. 21절에서는 쓰임이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인간이 당장 알아보지 못하는 때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뿐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일들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조금 더 깊이
다만 “살펴질 것”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zētēthḗsetai는 “찾아지거나 구해질 것”이라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모든 것의 뜻이 제때 밝혀질 것이라는 고백일 수도 있고, 각 사물이 필요한 때에 쓰임을 위해 찾아질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두 읽기에서 공통적인 것은 인간이 지금 당장 모든 것의 용도를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편 104편은 하나님께서 물과 땅, 동물과 식물,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노래합니다. 그곳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 주는 세계입니다. 신약에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그분을 향한다는 주제는 이어집니다(로마서 11:33–36). 그러나 이 구절이 집회서 39장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 지식의 한계라는 공통 주제가 신약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같은 물이 땅을 살리기도 하고 황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의 복은 강처럼 덮었고, 홍수처럼 메마른 땅을 흠뻑 적셨다.」집회서 39:22 · 본디새김
물의 이미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건조한 땅에 물이 충분히 공급되면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하나님의 복을 강물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물의 이미지가 반전됩니다.
「이와 같이 민족들은 그의 노여움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가 물을 짠물로 바꾸었던 것처럼.」집회서 39:23 · 본디새김
집회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복을 베푸는 일만 포함하지 않습니다. 악을 심판하는 일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길이 누구에게는 곧고, 누구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의 길들은 거룩한 이들에게 곧은 길이며, 그와 같이 무법한 이들에게는 걸림돌이다.」집회서 39:24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선 물의 대조를 인간의 삶으로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길 자체가 두 종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길에 대한 사람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대상의 성격만이 아니라 그것과 관계를 맺는 사람의 태도도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것들은 처음부터 선한 이들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와 같이 나쁜 것들은 죄인들을 위해 창조되었다.」집회서 39:25 · 본디새김
여기서 나쁜 것들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재난을 가리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도덕적 악을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내셨다는 설명이 아닙니다.
생명에 꼭 필요한 것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들은 물과 불과 쇠와 소금과 고운 밀가루와 밀, 꿀과 젖과 포도의 피와 기름과 겉옷이다.」집회서 39:26 · 본디새김
이 목록은 특별히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물은 마시고 씻는 데 필요합니다. 불은 음식을 익히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쇠는 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고 보존하는 데 사용됩니다. 곡식과 밀가루, 꿀과 젖, 포도주와 기름은 먹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물질들입니다. 겉옷은 몸을 보호합니다.
여기서 “포도의 피”는 포도주를 가리키는 시적 표현입니다. 신명기 32:14에서도 포도의 피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거대한 바다와 하늘뿐 아니라 물 한 그릇, 소금, 빵, 옷도 하나님의 좋은 창조에 포함됩니다.
좋은 것들이 나쁜 것으로 바뀌는 이유
「이 모든 것은 경건한 이들에게 좋은 것이며, 죄인들에게는 이처럼 나쁜 것으로 바뀔 것이다.」집회서 39:27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좋은 물건 자체가 갑자기 악한 물질이 된다는 뜻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같은 것이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불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지만 집을 태울 수도 있습니다. 쇠는 농기구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을 해치는 무기도 됩니다. 포도주는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삶을 망칠 수 있습니다.
이런 예시들이 27절의 모든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특별히 경건한 사람과 죄인의 차이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만 이 가르침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죄인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가 이곳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에 대한 지혜자의 확신이지, 특정한 고난을 당한 사람의 죄를 밝혀내는 방법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물을 짠물로 바꾸는 표현은 시편 107:33–34와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강들을 광야로 바꾸시고, 비옥한 땅을 그곳 주민들의 악 때문에 소금 땅으로 바꾸신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역시 풍요롭던 지역의 황폐화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집회서 39:23이 어느 한 사건을 직접 지목한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는 왜 재난이 있는가?
「징벌을 위해 창조된 바람들이 있다. 그것들은 격분하여 자기들의 채찍을 더욱 강하게 했다. 끝이 닥칠 때 힘을 쏟아 낼 것이며, 자기들을 만든 이의 격분을 가라앉힐 것이다.」집회서 39:28 · 본디새김
이번에는 사람에게 큰 고통을 가져오는 것들이 등장합니다.
바람, 불, 우박, 굶주림, 죽음, 들짐승의 이빨, 전갈, 독사, 큰 칼입니다. 지혜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출애굽기 9–10장에서는 우박과 메뚜기 떼가 이집트에 대한 심판으로 등장합니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언약을 어기는 백성에게 기근과 질병, 전쟁 같은 재난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예언서에서도 자연재해와 전쟁은 때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집회서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하나님이 인간 사회를 도덕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재난은 모두 죄에 대한 형벌인가?
욥기는 의로운 사람도 극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이 반드시 죄 때문에 왔을 것이라고 설명하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욥기 42:7). 전도서 8:14는 의로운 사람들이 악인들이 받아야 할 일을 당하고, 악인들이 의로운 사람들이 받아야 할 일을 누리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집회서가 이곳에서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심판도 그 통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구체적인 고난이 왜 일어났는지 인간이 모두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재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의 계명에 기뻐할 것이며, 땅 위에서 필요한 일들을 위해 준비될 것이고, 자기들의 때가 오면 그의 말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39:31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지혜자는 재난을 가져오는 존재와 현상들을 마치 살아 있는 종들처럼 묘사합니다. 이것은 자연 현상과 파괴적인 힘을 의인화한 시적 표현입니다. 지혜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역사 속에서 인간이 두려워하는 힘조차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물은 무더기처럼 섰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바람과 불, 우박과 들짐승도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힘들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독립적인 신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높은 권위를 갖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확신했고, 숙고했으며, 글로 남겼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확신을 얻었고, 숙고했으며 글로 남겼다.집회서 39:32 · 본디새김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과 재난, 하나님의 복과 심판을 살펴본 뒤 지혜자는 자신의 작업을 돌아봅니다.
처음에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만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읽고 배울 수 있도록 기록합니다.
39장 첫부분에서 소개한 서기관의 일이 여기에서 실제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문장은 처음의 찬송과 거의 같습니다.
「주의 일들은 모두 좋으며, 주는 모든 필요를 그에 맞는 때에 채워 줄 것이다.」집회서 39:33 · 본디새김
16절에서는 주의 일들이 모두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33절에서는 주의 일들이 모두 “좋다”고 말하면서, 모든 필요를 알맞은 때에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처음에는 창조에 대한 선언으로 들렸던 말이, 마지막에는 복과 심판의 문제를 통과한 뒤 다시 제시됩니다.
“이것은 저것보다 더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것보다 더 나쁘다.』 하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제때에 좋은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39:34 · 본디새김
겉으로 읽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똑같이 좋으며, 실제로 더 나쁜 일이란 없다는 주장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이미 선과 악, 경건한 사람과 무법한 사람, 생명을 살리는 것과 사람을 해치는 것을 구별했습니다. 따라서 34절을 도덕적인 차이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읽으면 앞선 구절들과 충돌합니다.
문맥상 이 문장은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 안에서 각각의 것이 지닌 때와 쓰임을 인간이 성급하게 평가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고통이 결국 당사자에게 좋은 일로 밝혀진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런 개별적인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창조 전체를 바라보며 그분의 지혜와 통치를 신뢰하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어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그 고통이 반드시 유익한 것이므로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데 이 구절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제때에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될까요? 본문은 그 모든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서 선언했던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 인식의 한계 사이에 독자를 남겨 둡니다.
그 자리에서 지혜자는 다시 찬송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온 마음과 입으로 찬미를 불렀다. 너희는 주의 이름을 찬미해라.집회서 39:35 · 본디새김
모든 질문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와 역사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음에도, 그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 보름달처럼 가득 찬 지혜자의 노래
집회서의 이상적인 지혜자는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깊이 탐구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전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시냇가의 장미처럼 싹을 틔우라고, 백합처럼 꽃을 피우라고, 유향처럼 향기를 퍼뜨리라고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 노래에는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과 인간 삶의 필요가 있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재난과 심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에 남은 것은 재난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지혜자는 혼자서 많은 것을 알아낸 사람이었지만, 그의 지혜가 맺은 마지막 열매는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렇게 집회서 39장은 온 마음과 입으로 주의 이름을 찬미하라는 초대와 함께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