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38장
이 장의 자리 · 24–43장 · 지혜의 찬양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인간의 한계
의사는 병든 사람을 고칩니다. 장례를 치르는 사람은 죽은 이를 묻습니다. 농부는 땅을 갈고, 대장장이는 쇠를 두드리며,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만듭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의 손으로 인간의 삶을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왜 의술과 죽음과 노동을 한 장에 모아 놓았을까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능력과 지식을 주셨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까?
집회서 38장은 이처럼 인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능력과 한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의사를 공경하라. 그도 주가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의사가 필요하니 마땅한 예우로 그를 공경해라. 주가 그도 창조했기 때문이다.집회서 38:1 · 본디새김
이 문장은 단순히 의사도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진술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구절들과 함께 보면, 의사라는 사람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 또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시는데 왜 의사가 필요한가?
치유는 지극히 높은 이에게서 오며, 의사는 왕에게서 선물을 받을 것이다.집회서 38:2 · 본디새김
치유가 하나님에게서 온다면 굳이 의사를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지혜자의 대답은 정반대입니다. 바로 치유가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의사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치유와 인간의 의술을 경쟁 관계로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고치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의사의 능력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그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히는 근거가 됩니다. 3절은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이 그를 높은 사람들 앞에서도 존중받게 한다고 말합니다. 왕에게서 선물을 받고 권력자들 앞에서 인정받는다는 묘사는 의술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땅에서 나온 약
주는 땅에서 약들을 창조했고,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들을 꺼리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38:4 · 본디새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단순히 먹을거리와 아름다운 자연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약재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인간의 삶에 유익한 가능성이 담겨 있고, 사람은 지혜를 사용하여 그것을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이 자연에서 나온 모든 물질이 안전하거나 효능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혜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아니라, 유익한 약재를 분별하고 사용하는 슬기입니다.
쓴 물을 달게 만든 나무
나무의 힘이 알려지도록 나무로 물이 달게 되지 않았느냐?집회서 38:5 · 본디새김
이 구절의 배경은 출애굽기 15:22–26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광야를 걸었습니다. 사흘 동안 물을 찾지 못하다가 마라에 도착했지만, 그곳의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백성은 모세에게 불평했고, 모세는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자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물질을 통해서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식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주는 자신이 이루는 놀라운 일들로 영광을 받도록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었다.집회서 38:6 · 본디새김
그 지식으로 사람들은 약재의 쓰임을 알아내고, 치료법을 익히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 줍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인간의 자랑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는 그것들로 병을 고쳤고, 그 사람의 아픔을 없앴다.집회서 38:7 · 본디새김
여기서 “그”가 누구인지 그리스어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어라면 그분이 약재를 통해 병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의사가 주어라면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재와 지식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치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인간은 그 치유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8절의 약재 혼합과 계속되는 일들, 땅 위에 임하는 평화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그의 일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은 원문의 문장 연결과 주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읽기가 갈리므로, 그것을 특정 직업의 영속성에 대한 확정적인 선언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고통이 줄어들고 사람이 다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식이 인간의 삶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 번역에서 “나무의 힘”이라고 옮긴 표현은 그리스어로 tēn ischýn autoû(ἰσχύς), 곧 “그의 힘” 또는 “그것의 힘”입니다. 나무를 가리킨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에 있는 특별한 효능이 알려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나무를 통해 물이 달게 된 사건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의 이야기 자체는 하나님의 행동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집회서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다는 읽기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반면 바로 앞 4절이 땅에서 창조된 약재를 언급한다는 점은 나무의 효능을 강조하는 읽기에 힘을 실어 줍니다.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마라의 나무를 오늘날 특정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검증된 약재로 간주할 근거는 없습니다.
기도한 다음 의사에게도 자리를 내주어라
앞에서는 의사와 약재의 가치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지혜자는 병든 사람에게 직접 말합니다.
얘야, 병이 났을 때 가벼이 넘기지 말고 주에게 기도해라. 그러면 그가 너를 고칠 것이다.집회서 38:9 · 본디새김
기도는 병을 무시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자신의 상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행동입니다. 이어지는 10–11절에서는 죄에서 떠나고, 손을 바르게 하며,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제물을 드리라고 권합니다.
병은 죄 때문에 생기는가?
지혜자는 병을 치료하는 문맥에서 회개를 말합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에서 질병과 죄의 문제가 연결되어 이해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연결을 모든 질병의 원인이 개인의 죄라는 명제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욥기는 의롭게 살던 사람이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통을 죄에 대한 응보로 설명하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욥기 1–2장, 42:7). 집회서 38장도 병든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권할 뿐, 모든 환자가 어떤 죄 때문에 병들었다고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의사에게도 자리를 내주어라. 주가 그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가 네 곁을 떠나지 않게 해라. 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집회서 38:12 · 본디새김
처음에는 의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문제였고, 이제는 자신의 병을 다루는 과정에서 실제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맥상 의사가 치료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도록 허용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의사가 들어와도 괜찮다는 소극적인 허락보다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의사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의사들의 손에서도 일이 잘 풀리는 때가 있다.집회서 38:13 · 본디새김
지혜자는 의사의 능력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고대 의술은 오늘날보다 치료할 수 있는 질병과 상처의 범위가 훨씬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의사의 지식이 귀중하더라도 그 지식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도 주에게 생명을 이어 가게 할 쉼과 치유를 잘 이루게 해 달라고 간구할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38:14 · 본디새김
환자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의사는 하나님께 자신의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간구합니다. 그리고 의사는 자신의 지식과 손을 사용하여 치료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 앞에 서 있지만, 해야 할 일은 서로 다릅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성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것이 인간의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책임을 올바르게 수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손에 떨어진다는 말의 역설
자기를 만든 이 앞에서 죄짓는 자는 의사의 손에 떨어지기를.집회서 38:15 · 본디새김
지금까지 의사를 공경하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갑자기 죄짓는 사람이 의사의 손에 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의사의 손에 떨어지기를”이라는 기원 또는 저주의 형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의사의 존재 자체를 악한 것으로 규정하기보다, 병들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이르는 일을 불행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해지는 히브리어 본문에 따르면 창조주께 죄짓는 사람을 의사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사람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앞선 의사 존중의 가르침이 더욱 직접적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은 의사를 멸시하라는 뜻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1절과 12절이 분명히 의사를 공경하고 필요할 때 곁에 두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지혜자는 전혀 다른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치료를 받아도 더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울어라. 그러나 슬픔에 삶을 빼앗기지는 마라
치료하는 손에서 시신을 감싸는 손으로
얘야, 죽은 이를 두고 눈물을 흘려라. 끔찍한 일을 겪는 사람처럼 애곡을 시작해라. 그에게 마땅한 예에 따라 시신을 감싸고, 그를 묻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라.집회서 38:16 · 본디새김
앞 단락에서 사람의 손은 병을 치료했습니다.
이제 사람의 손은 죽은 이를 감싸고 묻습니다.
본문은 두 상황을 직접 비교하지 않지만, 같은 장 안에 연이어 배치된 두 장면은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의사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을 언제까지나 붙잡아 둘 수는 없습니다.
시신을 돌보는 일이 왜 중요한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죽은 사람을 묻는 일은 매우 중요한 가족적·공동체적 책임이었습니다. 창세기 23장에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자 애곡한 뒤 매장지를 마련합니다. 창세기 50장에서는 야곱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이 길게 기록됩니다.
이 이야기들에서 장례는 죽은 사람을 아무렇게나 처리하지 않고, 그와 맺었던 관계에 걸맞게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행위입니다. 죽은 사람은 더는 자기 몸을 돌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남은 사람이 그를 감싸고 묻어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던 사람만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도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하루나 이틀 동안만 슬퍼하라는 뜻일까?
쓰라리게 울고 뜨겁게 통곡해라. 비방을 피하도록 하루나 이틀 동안 그에게 합당하게 애도해라. 그리고 슬픔 때문에라도 위로를 받아라.집회서 38:17 · 본디새김
그러나 여기서 “하루나 이틀”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야 하는 애도 기간의 절대적인 상한선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구약에서는 더 긴 애도 기간도 등장합니다. 야곱을 위한 애도는 이집트에서 칠십 일 동안 이어졌고(창세기 50:3),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은 삼십 일 동안 애도했습니다(신명기 34:8).
집회서의 표현에는 죽은 사람에게 합당한 예를 갖추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소홀하지 않게 애도하라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구절들은 애도의 기간보다 슬픔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문제 삼습니다.
슬픔에서 죽음이 나오고, 마음의 슬픔이 힘을 꺾을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38:18 · 본디새김
고대 지혜자는 깊은 슬픔이 사람을 쇠약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이를 현대 의학의 엄밀한 인과관계에 관한 진술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혜문학의 언어로, 슬픔이 인간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무거운 영향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어서 19절은 재난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도 말합니다. 죽은 이를 잃은 슬픔만이 인간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다른 고난도 슬픔을 더하고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네 마음을 슬픔에 내주지 마라. 마지막을 기억하여 슬픔을 물리쳐라.집회서 38:20 · 본디새김
16–17절에서 지혜자는 이미 깊이 울고 애도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20절은 슬픔 자체를 부정하는 명령보다, 슬픔이 남은 삶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권고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지혜자가 지키려는 것은 슬픔의 정당성과 살아 있는 사람의 삶, 이 두 가지입니다.
“내게는 어제, 네게는 오늘이다”
돌아올 길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너는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너 자신을 해칠 것이다.집회서 38:21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죽음이 가져오는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말합니다. 계속 슬퍼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네게 내려질 판결과도 같음을 기억해라. 「내게는 어제, 네게는 오늘이다.」집회서 38:22 · 본디새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들립니다. 죽음의 보편성을 압축한 격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죽은 사람을 바라보던 시선을 살아 있는 자신에게 돌리게 합니다.
죽음은 나도 마주해야 할 인간의 조건입니다.
이것은 전도서 7:2의 가르침과 통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죽음을 좋아하라는 뜻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그치라는 말
죽은 이가 안식에 들면 그를 기리는 일도 그쳐라. 그의 숨이 떠났을 때 그를 두고 위로를 받아라.집회서 38:23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죽은 사람을 다시는 기억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으면 앞의 가르침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집회서 자체가 조상들의 이름과 업적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44장 이하에서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을 길게 기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그치라고 권하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이라기보다, 슬픔 속에서 계속되는 애도의 행위로 이해하는 편이 문맥에 어울립니다. 죽은 사람을 소중히 기억하는 일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계속 애도에만 머무르는 일은 다릅니다.
지혜자는 죽은 사람을 잊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애도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를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다음 순간 우리를 일터로 데려갑니다.
서기관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기관의 지혜는 한가로운 여유에서 나오며, 자기 일을 줄이는 이는 지혜로워질 것이다.집회서 38:24 · 본디새김
지혜는 단순히 머리가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율법과 전승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말과 경험을 숙고하며, 배운 것을 가르치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그런 지혜를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종일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과 공부할 여유를 가진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 지혜를 연구하지 못합니다. 이는 사람의 지적 능력이 본래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 무엇에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쟁기를 잡고 뾰족한 소몰이 막대기를 자랑하며, 소를 몰고 소들이 하는 일에 매달리는 이가 어떻게 지혜로워지겠느냐? 그들의 이야기는 황소 새끼들에 관한 것이다.집회서 38:25 · 본디새김
실제로 본문에는 서기관이 추구하는 지혜를 다른 직업보다 높게 평가하는 위계적 시각이 있습니다. 이를 숨기거나 단순히 모든 직업이 평등하게 존중받는다는 현대적 주장으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농부가 아무런 지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농부는 밭고랑을 내는 일에 마음을 쓰고, 암송아지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밤에도 깨어 있습니다(38:26).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깊이 몰두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 몰두가 다른 종류의 공부에 사용할 시간을 남겨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밤에도 멈추지 않는 장인들의 손
지혜자는 추상적인 말로 장인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세히 바라봅니다.
인장을 새기는 장인
장인과 우두머리 장인도 모두 그러하여, 밤을 낮처럼 보내는 이들이다. 인장의 무늬를 새기는 이들도 그러하다. 그는 무늬를 다채롭게 바꾸려고 참고 견딘다. 그림을 본뜨는 데 마음을 쏟을 것이며, 일을 마치려고 밤에도 깨어 있다.집회서 38:27 · 본디새김
고대 사회에서 인장은 소유권과 권위, 문서의 진정성을 표시하는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인장을 만드는 장인은 작은 표면에 글자와 무늬를 새겨야 했습니다. 섬세한 손놀림과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형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 형상에 맞추어 재료를 다룹니다. 이것은 지적 활동이기도 합니다.
앞서 서기관이 지혜를 얻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다면, 장인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기술에 몰두합니다. 집중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배우고 익힌 능력을 사용합니다.
불과 쇠 사이에 앉은 대장장이
모루 가까이 앉아 가공하지 않은 쇠를 유심히 살피는 대장장이도 그러하다. 불에서 오르는 김은 그의 살을 굳게 할 것이고, 그는 화덕의 열기 속에서 씨름할 것이다. 망치 소리는 그의 귀를 새롭게 할 것이며, 그의 눈은 기물의 모양을 향해 있다. 그는 일들을 마무리하는 데 마음을 쏟을 것이며, 마지막까지 꾸미려고 밤에도 깨어 있다.집회서 38:28 · 본디새김
그의 일에는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힘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가열할지, 어디를 두드릴지, 어떤 형태로 마무리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대장장이의 몸은 화덕 앞에 있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향해 있습니다.
진흙을 빚는 토기장이
자기 일터에 앉아 발로 물레를 돌리는 토기장이도 그러하다. 그는 늘 자기 일에 마음을 쓰며,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정해진 수량이 있다.집회서 38:29 · 본디새김
고대 토기 제작에서는 재료를 준비하고 모양을 잡은 뒤 말리고 굽는 과정에 많은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진흙의 상태와 가마의 열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그릇이 망가질 수 있었습니다. 30절은 토기장이가 자신의 일을 완성하려고 마음을 쏟고, 가마를 관리하기 위해 밤에도 깨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세 장면에는 반복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장인은 자신의 일에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고 밤에도 깨어 있습니다.
지혜자는 노동을 묘사하면서 손의 움직임뿐 아니라 그 손을 이끄는 마음까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본문은 예상하지 못한 평가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망치 소리는 그의 귀를 새롭게 할 것이며”라는 표현은 채택한 그리스어 본문의 kainieî를 따른 것입니다. 이 낱말을 그대로 읽으면 ‘새롭게 한다’는 뜻이지만, 망치 소리와 귀의 관계에서 정확히 어떤 현상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른 그리스어 본문 전승에서는 귀를 소리 쪽으로 기울인다는 뜻으로 읽히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어느 쪽이 원래의 표현인지 이 자료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30절의 “선물을 완성하는 데”라는 표현은 원문의 뜻이 불확실한 부분입니다. 채택된 그리스어 chárisma는 일반적으로 선물이나 은혜로운 것을 가리키지만, 토기 제작의 문맥에서는 뜻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다른 본문에서는 그릇의 마감이나 표면 처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특정 제작 단계보다, 토기장이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인다는 문맥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도시가 세워지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자기 손을 믿었고, 저마다 자기 일에서 지혜를 발휘한다.집회서 38:31 · 본디새김
따라서 지혜자는 서기관에게만 모든 종류의 지혜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기관은 율법과 교훈과 비유를 연구합니다. 장인은 자신의 재료와 도구를 다루는 데 지혜를 사용합니다.
그들 없이는 도시가 세워지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머물러 살지도 걸어 다니지도 않을 것이다.집회서 38:32 · 본디새김
도시는 왕이나 재판관, 서기관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땅을 갈아 먹을 것을 생산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집을 짓고 도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생활용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창세기 4:20–22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가축을 기르는 사람, 악기를 다루는 사람, 구리와 쇠로 여러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인간의 문명은 다양한 활동과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형성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은 이 인정에 긴장을 더합니다.
도시를 지키는 사람은 왜 재판관의 자리에 앉지 못하는가?
그들은 모임에서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며, 재판의 규정을 숙고하지 않을 것이다. 재판관의 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며, 의와 판결을 밝히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비유를 다루는 자리에서도 그들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집회서 38:33 · 본디새김
도시가 그들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면서, 왜 공적인 판단과 가르침의 자리에서는 그들이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할까요?
여기에는 고대 사회의 교육과 직업 구조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서기관이 되려면 오랜 시간 문헌을 배우고 전승을 익혀야 했습니다. 그러한 공부에는 상당한 여유와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농부와 장인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일에 많은 시간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들이 공동체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사실과 정치적·법률적 권위를 행사하는 자리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집회서는 이 차이를 인정하지만, 그 구조 자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이 장인의 지적 능력 자체가 부족하다고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31절은 그들이 저마다 자신의 일에서 지혜를 발휘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지어진 것들을 지키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지어진 것들을 지킬 것이며, 그들의 간구는 자기 기술로 하는 일에 쏠려 있다.집회서 38:34 · 본디새김
높은 자리에 앉아 공동체를 다스리는 사람들과 실제로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세상에 지어진 것들”이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만들고 돌보는 생활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밭을 돌보고, 장인이 도구를 만들며,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는 일이 모여 인간의 일상이 유지됩니다.
여기서는 장인들의 관심과 간구가 자기 기술의 일에 향해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노동 자체가 곧 기도라는 선언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자기 일에 얼마나 깊이 마음을 두는지 표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와 인간의 일상적인 노동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의사들도 자신의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38:14). 장인들의 간구도 자신이 맡은 일에 쏠려 있습니다(38:34).
다음 39장은 서기관의 학문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두 종류의 지혜를 더욱 선명하게 대비합니다. 따라서 38장 마지막의 장인들에 대한 평가는 전체 논의의 종착점이라기보다, 서기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문학적 준비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1:1–5에서 하나님은 브살렐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시고, 금과 은과 구리를 다루며 여러 공예품을 만들게 하십니다. 브살렐은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아닙니다. 성막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장인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그의 기술을 하나님의 영이 주신 능력과 연결합니다. 집회서 38장도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의 전문적인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두 본문이 말하는 일은 다릅니다. 브살렐은 성막 제작에 참여하고, 집회서의 장인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듭니다. 그러나 두 본문 모두 지혜가 반드시 말이나 글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 하나의 연결은 창세기 2:15입니다.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그곳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맡습니다. 인간의 노동은 죄가 세상에 들어온 뒤에야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창조 이야기 안에서부터 인간은 자신에게 맡겨진 세계를 돌보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집회서 38장 마지막의 “세상에 지어진 것들을 지킬 것”이라는 표현은 그런 창조 질서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 도시를 지키는 이름 없는 손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맡겨진 일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능력을 무한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식과 능력을 성실하게 사용하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대장장이는 모루 앞에 앉아 쇠를 두드립니다. 화덕의 열기가 몸에 닿고, 망치 소리가 울립니다. 토기장이는 발로 물레를 돌리며 진흙을 빚습니다. 농부는 밭고랑을 내고, 밤에는 가축의 먹이를 챙깁니다.
지혜자는 높은 자리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아래로 내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바탕을 보여 줍니다.
그곳에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손을 움직이고, 기술을 익히고, 끝까지 일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그처럼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 돌보아지고 있습니다.
집회서 38장은 그 손들을 바라보며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