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지혜는 누구의 얼굴을 바라보는가

가난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돈을 빼앗지도 않고 거친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시선을 피하고,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고, 마침내 얼굴을 돌립니다.

집회서 4장은 이런 행동을 심각한 문제로 다룹니다.

스승은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빼앗지 말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을 애태우지 말고, 도움을 미루지 말며, 얼굴을 돌리지 말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말할까요?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 겪는 고통이 단지 소유한 재산의 부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호소해야 하는 상황, 언제 도움을 받을지 알 수 없는 기다림, 말을 걸어도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경험 역시 그 고통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집회서가 경계하는 것은 재물을 빼앗는 폭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도 관계를 끊어 버리는 무관심입니다.

지혜는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와 힘을 사용하는지를 묻습니다.

3장에서 자선이 죄를 씻는다는 가르침으로 끝났다면, 4장은 그 자선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의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지혜와 진실함을 배워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74장 본문 읽기 →

가난한 사람의 눈이 기다리고 있다

집회서 4:1–6 본문 →

얘야, 가난한 이의 살길을 빼앗지 마라. 궁핍한 이의 눈을 애태우지 마라.집회서 4:1 · 본디새김

본문은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단순한 호의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을 빼앗거나 주지 않는 행동은 그의 삶 자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필요를 채워 줄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언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기다립니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그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성이 난 마음을 더 뒤흔들지 말고, 궁핍한 이에게 주는 일을 미루지 마라.집회서 4:3 · 본디새김

가난한 사람의 눈을 애태우는 것은 그가 기다리는 도움을 미루는 행동과 관계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내일 음식을 주겠다는 약속은 오늘 먹을 음식을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당장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나중에 도와주겠다고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도움을 받는 시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3:27–28 역시 선을 베풀 능력이 있으면서 그것을 미루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집회서는 이 가르침을 기다리는 사람의 눈이라는 이미지로 더욱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이미 고통받는 사람을 더 괴롭게 하지 마라

굶주린 이를 슬프게 하지 말고, 곤궁에 빠진 사람을 성나게 하지 마라.집회서 4:2 · 본디새김

궁핍한 사람은 지쳐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반복해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처지에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때로 그 사람의 말투나 감정부터 문제 삼기 쉽습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꾸짖거나, 그렇게 말하면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성이 난 마음을 더 뒤흔들지 말라」는 명령은 이미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할 때가 있더라도, 적어도 그 고통을 더 심하게 만들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얼굴을 돌려도 창조주는 듣고 계신다

고통 속에서 애원하는 이를 물리치지 말고, 가난한 이에게서 네 얼굴을 돌리지 마라.집회서 4:4 · 본디새김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서 눈을 돌리지 말고, 누군가 너를 저주할 빌미를 주지 마라.집회서 4:5 · 본디새김
그가 쓰라린 마음으로 너를 저주하면, 그를 만든 이가 그의 간구를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4:6 · 본디새김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얼굴과 눈을 돌려 버리면, 가난한 사람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이릅니다.

가난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능력이나 사회적인 권한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가난한 사람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입니다.

그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정받는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외면하더라도, 그를 만드신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2:22–24와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그들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다만 가난한 사람의 모든 저주가 자동으로 정당해지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의 초점은 고통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을 외면하는 일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경고에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난한 사람에게서 눈과 얼굴을 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귀를 기울이고, 입으로 대답하고, 손으로 건져 내라고 명령합니다.

무관심하지 않는 것에서 실제로 행동하는 것으로 가르침이 깊어집니다.

머리를 숙일 때와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

집회서 4:7–10 본문 →

모임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높은 사람 앞에서 네 머리를 숙여라.집회서 4:7 · 본디새김
가난한 이에게 네 귀를 기울이고, 온유하게 평화로운 말로 대답해라.집회서 4:8 · 본디새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상대방의 지위를 존중하는 행동입니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는 행동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평화롭게 대답한다는 것은 그를 자신과 말을 주고받는 상대로 존중하는 일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필요를 설명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필요한 것을 얻더라도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집회서는 베푸는 행동과 베푸는 태도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는 이를 부당한 일을 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 내고, 네가 재판할 때 위축되지 마라.집회서 4:9 · 본디새김

가난한 사람의 어려움이 언제나 개인적인 불행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부당한 행동 때문에 가난해지거나 고통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나 일시적인 물질적 지원만이 아닙니다. 그를 억압하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 두려움 때문에 옳은 판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재판이나 분쟁 해결의 자리에서는 힘 있는 사람의 압력과 주변의 시선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때 공정하게 판단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욥기 29:12–17에서 욥은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도왔으며, 악한 사람의 손아귀에서 약탈당한 것을 빼냈다고 회상합니다. 이사야 1:17도 정의를 찾고 학대받는 사람을 도우며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옹호하라고 명령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과 그를 억압하는 불의를 바로잡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고아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은 누구의 자녀가 되는가

10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라는 명령이 가족의 언어로 바뀝니다.

고아들에게 아버지처럼 되고, 그들의 어머니에게 남편을 대신해 주어라. 그러면 너는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처럼 될 것이며, 그는 네 어머니보다 더 너를 사랑할 것이다.집회서 4:10 · 본디새김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들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부에게 남편을 대신해 주라는 말은 반드시 실제로 남편이 되거나 과부의 삶을 지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가족 안에서 남편이나 아버지가 제공하던 생계와 사회적 보호가 사라진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취약해지기 쉬웠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가족처럼 책임지고 보호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18은 여호와야훼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68:5에서도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이자 과부들의 보호자로 묘사되십니다. 집회서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행동을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본받도록 요청합니다.

여기서 스승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비교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가 경험할 수 있는 깊은 애정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본문은 그 사랑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보다도 크다고 표현합니다.

10절에서는 고아에게 아버지가 되라고 했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는 지혜가 자기 아들들을 높인다고 말합니다.

가족의 언어가 이제 지혜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지혜는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기르는가

집회서 4:11–16 본문 →

지혜는 자기 아들들을 높였고, 자기를 찾는 이들을 붙들어 준다.집회서 4:11 · 본디새김

여기서 지혜는 하나의 인물처럼 등장합니다.

이것은 잠언 1–9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지혜의 인격화와 연결됩니다. 지혜가 사람을 부르고 가르치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는 생명을 사랑하고, 새벽부터 지혜를 찾아 나서는 이들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다.집회서 4:12 · 본디새김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을 것이며, 그가 들어가는 곳마다 주가 복을 줄 것이다.집회서 4:13 · 본디새김

새벽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아직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지혜를 배우는 일이 삶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은 단순히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약속으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14절에서 지혜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예배하는 이들은 거룩한 이를 받들 것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주가 사랑한다.집회서 4:14 · 본디새김

「거룩한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하기오(ἅγιος)는 문법적으로 남성형과 중성형의 모습이 같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분을 뜻할 수도 있고, 거룩한 장소인 성소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전자로 읽으면 지혜를 섬기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 됩니다. 후자로 읽으면 지혜를 섬기는 일이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봉사와 연결됩니다.

두 읽기 모두 문법적으로 가능합니다. 뒤에서 주가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독법이 자연스럽지만, 이것만으로 성소라는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 주의 사랑을 받는 삶과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만의 능력을 키우는 길이 아닙니다.

지혜의 말을 따르는 이는 민족들을 심판할 것이며, 지혜에게 다가가는 이는 마음 놓고 살 것이다.집회서 4:15 · 본디새김

성경에서 심판한다는 말은 단순히 형벌을 내리는 일만이 아니라 판단하고 다스리며 정의를 세우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지혜로운 판단의 권위와 그에 따른 영예를 강조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승은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구하고 재판할 때 위축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 지혜의 말을 따르는 사람에게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네가 지혜를 신뢰하면 지혜를 상속받을 것이며, 그의 후손들도 지혜를 차지할 것이다.집회서 4:16 · 본디새김

다만 이것을 부모가 지혜로우면 자녀도 자동으로 지혜롭게 된다는 보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지혜가 한 사람의 삶에 머물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는 귀한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독자가 이런 지혜를 얻는 길이 편안할 것이라고 기대할 무렵, 17절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왜 지혜는 자신을 찾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가

집회서 4:17–19 본문 →

실상 지혜는 처음에는 그와 함께 굽은 길로 가고, 그에게 두려움과 겁을 안기며, 그의 마음을 신뢰할 때까지 자기의 교훈으로 그를 괴롭히고, 자기의 규정으로 그를 시험할 것이다.집회서 4:17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에서 그려진 지혜의 모습과 상당히 다릅니다.

지혜는 여기서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엄격한 스승처럼 행동합니다.

좋은 스승은 언제나 편안하게만 가르치는가

사람은 지혜를 원하지만,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과 습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기존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행동을 고쳐야 할 수도 있고,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 앞에서 오래 생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은 불편합니다.

자신의 무지를 발견하는 일은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고, 익숙한 판단을 바꾸는 일은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교훈은 배우는 사람에게 즐거움만 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사람의 생각을 흔들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합니다.

지혜는 무엇을 아는가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가를 변화시키려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곧은 길로 그에게 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고, 자기의 비밀을 그에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집회서 4:18 · 본디새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가르침이 오랜 배움과 실천을 거치면서 의미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앞 장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감추어진 것들을 함부로 캐묻지 말라고 했습니다(3:21–23). 여기서는 지혜가 스스로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태도와,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자신의 비밀을 억지로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정복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스승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관계에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길을 벗어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그 자신의 몰락의 손아귀에 넘길 것이다.집회서 4:19 · 본디새김

여기서 몰락은 마치 사람을 붙잡아 가는 힘처럼 묘사됩니다. 앞의 9절에서는 억압받는 사람을 부당한 일을 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 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지혜를 떠난 사람이 자신의 몰락의 손에 넘겨진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을 모든 실패와 불행이 지혜를 거부한 결과라는 주장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지혜가 제시한 길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사람에게 자기 행동의 파괴적인 결과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굽은 길은 지혜가 사람을 악한 길로 인도한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읽으면 앞뒤 문맥과 충돌합니다. 18절에서 지혜는 다시 곧은 길로 돌아와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길의 대조는 지혜가 처음에는 사람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길을 걷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 길의 의미를 밝히 보여 준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17절 후반부에는 중요한 해석상의 갈림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표현은 주어가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지혜가 그 사람의 마음을 신뢰하게 될 때까지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사람이 마음으로 지혜를 신뢰하게 될 때까지라는 뜻으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첫 번째 독법에서는 지혜가 사람의 신실함을 확인하는 과정이 강조됩니다. 두 번째 독법에서는 사람이 지혜를 깊이 신뢰하게 되는 과정이 강조됩니다.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지혜와 배우는 사람 사이의 신뢰가 시험을 통해 드러나거나 형성된다는 점은 같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와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때

집회서 4:20–28 본문 →

때를 잘 살피고 악을 경계해라. 너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마라.집회서 4:20 · 본디새김
죄를 불러오는 부끄러움이 있고, 영광과 은혜가 되는 부끄러움도 있기 때문이다.집회서 4:21 · 본디새김

우리는 흔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승은 모든 부끄러움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옳은 일을 포기할 수 있다

너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남의 낯을 봐주지 말고, 남을 어려워하다가 스스로 넘어지지 마라.집회서 4:22 · 본디새김
구원의 때에 할 말을 억누르지 마라.집회서 4:23 · 본디새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거나 비난받을까 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를 옹호하면 자신도 불이익을 받을까 봐 침묵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권력 있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부끄러움은 죄를 막는 감정이 아니라 죄에 가담하게 만드는 감정이 됩니다. 본문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감정 때문에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게 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구원의 때에」는 그리스어 엔 카이로 소테리아스를 옮긴 표현이며, 히브리어 사본에는 「적절한 때에」라는 읽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함할 수 있지만, 그보다 넓게 꼭 말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권리를 지켜야 할 때, 진실을 밝혀야 할 때,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아야 할 때에는 침묵이 중립적인 행동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앞에서 스승은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건져 내고 재판할 때 위축되지 말라고 했습니다(4:9). 이제는 그 일을 위해 필요한 말을 억누르지 말라고 합니다.

행동할 용기와 말할 용기가 서로 연결됩니다.

또한 잠언 31:8–9에서는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입을 열고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의 권리를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합니다. 집회서 4:23–28의 말할 용기와 진리를 위한 분투는 이 전통과 연결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

말로 지혜가 알려질 것이며, 혀가 하는 말로 교훈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4:24 · 본디새김

말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무엇을 알고 있고,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말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는 그 말에 또 다른 조건을 붙입니다.

진리를 거슬러 말하지 말고, 네 배우지 못함을 부끄러워해라.집회서 4:25 · 본디새김

진실을 말하려는 용기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식하게 보일까 봐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배우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라」는 말은 무지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라는 뜻이 아니라, 배우지 못한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진지하게 배움에 임하라는 가르침으로 읽어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하는 능력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는 그것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 진실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26절은 그 태도를 죄의 문제로 확장합니다.

네 죄를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강물의 흐름을 힘으로 거스르지 마라.집회서 4:26 · 본디새김

죄를 범한 사실은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동은 부끄러움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잘못을 고백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 부끄러움은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힘이 됩니다.

26절 후반부에는 강물의 이미지가 이어집니다. 이 비유가 앞의 죄 고백과 정확히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흐름을 억지로 거스르지 말라는 일반적인 경고일 수도 있고,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헛되이 저항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비유를 모든 저항이 잘못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다음 구절들에서 권력자에게 굽실거리지 말고 죽기까지 진리를 위해 싸우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저항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거슬러야 하고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지 분별하도록 가르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것과 굽실거리는 것은 다르다

또 어리석은 사람에게 굽실거리지 말고, 권력자의 낯을 봐주지 마라.집회서 4:27 · 본디새김

7절의 머리 숙임은 상대방에게 합당한 예의를 갖추는 행동입니다. 27절의 경고는 상대방의 지위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을 왜곡하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과 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권력이 진실보다 높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집회서는 예의와 비굴함을 구별합니다.

죽기까지 진리를 위해 싸워라. 그러면 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집회서 4:28 · 본디새김

진실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용기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앞의 6절에서 가난한 사람의 부르짖음을 그를 만드신 분이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진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위해 주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 약속을 진리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피해를 입거나 죽지 않는다는 보장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구절 자체가 「죽기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위험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위험 앞에서도 진실을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싸워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고니사이(ἀγωνίζομαι)는 분투하거나 힘써 겨루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반드시 무기를 들고 물리적으로 싸우라는 뜻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 명령은 진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하라는 권면입니다.

입술은 거칠고 손은 게으른 사람

집회서 4:29–31 본문 →

마지막 세 절에서 스승은 다시 일상의 행동으로 돌아옵니다.

혀로 거칠게 말하지 말고, 네 일을 할 때 굼뜨거나 늘어지지 마라.집회서 4:29 · 본디새김

말로는 강하게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진실을 위해 용감하게 말한다는 것이 거칠고 오만하게 말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지키려는 용기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또한 옳은 말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실제 행동의 부족을 대신해 주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지혜로운 말과 성실한 행동을 함께 요구합니다.

집 안에서는 사자처럼 굴지 마라

네 집에서 사자처럼 굴지 말고, 네 집안 종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 마라.집회서 4:30 · 본디새김

사자는 강한 힘과 위압적인 존재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스승은 바로 그런 모습을 자신의 집에서 드러내지 말라고 합니다.

특히 고대 가정에서 가장이나 주인은 집안의 다른 구성원과 종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예의를 갖추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던 사람도,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면서도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한다면, 그 사람의 겸손은 진실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얼마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가보다, 자신에게 맞설 힘이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본문이 종들의 존재를 당연한 사회적 현실로 언급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고대 사회의 종속 관계를 묘사한다고 해서 그러한 제도가 오늘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스승의 직접적인 관심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권한으로 다른 사람을 위협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절에서는 한 사람의 손이 등장합니다.

네 손이 받을 때는 뻗어 있고, 갚을 때는 움츠러드는 손이 되지 않게 해라.집회서 4:31 · 본디새김

여기서 「갚을 때」라는 표현은 단순히 자선을 베푸는 일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받은 것에 응답하거나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것을 갚는 책임까지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일에는 인색한 태도를 경계합니다.

신명기 15:7–11에서는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고하게 하거나 손을 움츠리지 말고 넉넉히 펴라고 명령합니다. 집회서 4장의 첫머리와 마지막 손의 이미지는 이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집회서 4:1–31 본문 →

집회서 4장을 오늘의 삶에 연결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누구를 보고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혜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옳은 일이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눈과 입과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집회서 4장의 마지막 장면에는 여전히 한 사람의 손이 남아 있습니다.

그 손은 무언가를 받기 위해 뻗어 있었습니다. 이제 스승은 묻습니다.

돌려주어야 할 때에도 그 손은 열려 있습니까?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