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하나님의 침묵이 허락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재산은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 사람들도 그가 한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는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지만,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

이 질문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결론이 숨어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자신의 행동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집회서 5장은 바로 이 판단을 문제 삼습니다.

하나님이 잘못을 모르시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고 계시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9절부터는 바람에 흔들리는 사람, 두 가지 말을 하는 사람,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사람, 험담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재물과 죄의 문제였는데, 마지막에는 말과 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 이 두 주제가 한 장에 놓여 있을까요?

그 답은 스승이 반복해서 경계하는 한 가지 태도에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물과 힘, 자신의 판단과 말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이 장의 첫머리에는 자신의 재산을 믿고 「내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손을 입 위에 얹으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선언하는 입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여 말을 멈추는 입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5장 본문 읽기 →

재물이 충분하면 누구도 두렵지 않은가

집회서 5:1–3 본문 →

네 재물에 의지하지 말고, 「내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하지 마라.집회서 5:1 · 본디새김

본문은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재물에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은 재물을 소유할 수 있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있다는 사실과 그 재물이 자신의 삶을 궁극적으로 지켜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만족할 줄 아는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이 어떤 태도에서 나오는가에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재물에 의지하지 말라는 명령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신이 가진 것으로 충분히 안전하며 더 이상 누구의 도움이나 가르침도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자신감이 문제입니다.

이런 자신감은 다음 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네 마음과 네 힘을 따라 네 마음의 욕망대로 나아가지 마라.집회서 5:2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욕망과 판단이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힘은 그 욕망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됩니다.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얻을 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행해도 되는 것일까요?

집회서는 욕망과 능력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동의 정당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 나를 억누르겠느냐?」라고 말하지 마라. 주는 반드시 너를 벌할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5:3 · 본디새김

이 질문은 단순히 위험이 없다고 느끼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을 제어하거나 책임을 물을 존재가 없다고 여기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재물과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도 있고 사회적 책임을 일시적으로 면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이 한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8:11–18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좋은 땅에 들어가 배불리 먹고 재산이 늘어날 때,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부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습니다. 문제는 풍요 자체가 아닙니다. 풍요가 하나님을 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위험해지는 순간은 그것을 소유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다고 믿기 시작할 때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힘뿐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까지 잘못된 확신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죄의 허락으로 바꾸는 사람

집회서 5:4–7 본문 →

「내가 죄를 지었지만,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라고 말하지 마라. 실상 주는 오래 참고 있다.집회서 5:4 · 본디새김

어떤 일이 성공하면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이익을 얻었는데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 방법이 허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서는 즉각적인 결과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하나님이 곧바로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을 그분의 무관심이나 승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죄가 사라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이 아직 하나님께 돌아갈 시간이 있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용서를 믿는 것과 용서를 이용하는 것은 다르다

죄를 씻는 일을 두고 마음을 놓아 죄 위에 죄를 더하지 마라.집회서 5:5 · 본디새김
또 「그의 자비는 크다. 그가 내 많은 죄를 씻어 줄 것이다.」라고 말하지 마라. 자비와 분노가 그에게서 나오고, 그의 격분이 죄인들 위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5:6 · 본디새김

그러나 본문은 용서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죄를 계속 짓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바라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과, 앞으로도 죄를 지을 계획을 세우면서 하나님이 결국 용서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후자는 하나님의 자비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크기 때문에 자신의 많은 죄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는 외면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두 성품을 서로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분노 역시 그분이 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이 구절을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경고로 읽는 것은 본문의 논점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스승이 경계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슬퍼하며 돌아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용서를 미리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돌아갈 수 있는데 왜 내일로 미루는가

주에게 돌아가는 일을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뒤로 넘기지 마라. 주의 분노가 갑자기 터져 나오고, 벌을 내리는 때에 네가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5:7 · 본디새김

「하루하루 뒤로 넘기지 마라」라는 표현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음 날로 계속 넘기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날이 오늘일 필요는 없다고 여깁니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인간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여기서 스승이 정확한 심판의 시점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회개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돌아갈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오래 참으심 때문에 사람은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삼는 것, 그것이 이 단락에서 스승이 경고하는 가장 위험한 자기기만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4:6–7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죄를 용서하시는 성품과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가 함께 나타납니다. 집회서 5장은 그 성품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이용하여 다른 한쪽을 지워 버리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전도서 8:11은 악에 대한 판결이 신속하게 집행되지 않을 때 인간이 오히려 악을 행할 마음을 품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집회서 5:4–7은 그러한 잘못된 판단이 회개를 미루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 18:21–23에서는 악인이 자신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이 그가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집회서가 왜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주께 돌아가라고 명령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신약의 로마서 2:4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이 사람을 회개로 이끄는 일과 연결됩니다.

재앙의 날에는 재물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집회서 5:8 본문 →

불의한 재물에 의지하지 마라. 재앙의 날에 너는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5:8 · 본디새김

이 구절은 1절과 거의 같은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1절은 「네 재물에 의지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8절은 「불의한 재물에 의지하지 마라」라고 합니다. 이 반복은 1–8절을 하나의 단락으로 묶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재물에 대한 과신을 경고했습니다. 이제는 불의하게 얻은 재물에 대한 과신을 경고합니다. 그 사이에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과 죄를 지으면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이 문맥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불의하게 얻은 재물을 자신의 보호 수단으로 삼는 태도입니다. 그 재물이 지금은 강력한 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감추는 데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판단받는 날에는 그 재물이 최종적인 보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재앙의 날」은 반드시 한 사람의 사망일이나 죽음 이후의 심판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재난이나 징벌이 닥치는 결정적인 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스승은 지금 재물이 가진 영향력과 그때 재물이 가진 무력함을 대조합니다. 이 대조는 시편 49:6–9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사람도 재물로 자신의 생명을 영원히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재물은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지만, 불의한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다음 단락에서는 갑자기 바람과 길, 말과 혀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주제는 여전히 인간이 무엇을 신뢰하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바람마다 키질하고 길마다 걸어가는 사람

집회서 5:9–10 본문 →

온갖 바람에 키질하지 말고, 온갖 오솔길로 다니지 마라. 두말하는 죄인은 그렇게 한다.집회서 5:9 · 본디새김

키질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키질은 타작한 곡식을 공중으로 던져 바람으로 낟알과 겨를 분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살피지 않고 아무 바람에서나 키질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곡식을 제대로 가려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바람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힘이지만, 그 힘을 이용하려면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온갖 바람에 키질하는 사람은 바람이 부는 대로 행동을 바꾸는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갖 오솔길을 다니는 사람은 자신이 어느 길을 따라야 하는지 분명히 결정하지 못한 사람을 연상시킵니다.

문제는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닙니다.

사람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혜로운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바뀌었기 때문에 생각을 고치는 것과,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말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다릅니다.

집회서가 경계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앞에서는 재물이 충분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행동의 기준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에 두기 쉽습니다.

말이 하나가 되게 하라

네 깨달음에 굳게 서 있고, 네 말이 하나가 되게 해라.집회서 5:10 · 본디새김

앞에서는 온갖 바람과 오솔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과 하나의 말이 있습니다.

스승이 요구하는 것은 말의 진실성과 일관성입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사실을 바꾸거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말을 왜곡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상황마다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상황이 달라져도 진실을 버리지 않는 말입니다.

자신의 깨달음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이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다음 두 절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간의 느린 대답

집회서 5:11–12 본문 →

듣는 데는 빨라야 하고, 대답할 때는 오래 참으며 말해라.집회서 5:11 · 본디새김

앞에서 스승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에게도 오래 참으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인간의 죄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예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오래 참음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들은 뒤 신중하게 대답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즉시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즉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죄를 옳다고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때로 시간을 두고 듣고 생각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들어야 하지만 대답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11절의 두 명령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대비시킵니다.

듣는 데에는 빨라야 합니다.

그러나 대답하는 데에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이미 자신의 대답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반박할 내용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겉으로는 듣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셈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첫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실이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차단합니다.

잠언 18:13에서도 말을 다 듣기 전에 대답하는 태도를 어리석음과 수치에 연결합니다. 집회서 역시 지혜로운 판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말하는 능력만큼 듣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모르면 손을 입 위에 얹어라

네게 깨달음이 있으면 이웃에게 대답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 손을 네 입 위에 얹어라.집회서 5:12 · 본디새김

여기서 스승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말할 만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합니다.

알고 있는 것이 있고 이웃이 대답을 필요로 한다면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앞 장의 가르침과도 실제로 이어집니다. 집회서 4:23은 꼭 필요한 순간에 할 말을 억누르지 말라고 했고, 4:25는 배우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진지하게 대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손을 입 위에 얹어라」라는 표현은 단순히 잠시 말을 멈추라는 뜻보다 생생합니다. 말이 나오려는 입을 손으로 막는 행동입니다.

사람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무언가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능하게 보일까 봐 불확실한 정보라도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스승은 바로 그 순간 손을 입 위에 얹으라고 합니다.

욥기 40:4에서도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두 장면의 상황은 다르지만, 말을 멈추는 행동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태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할 수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일 뿐 아니라, 아직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야고보서 1:19에서는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권면이 나타납니다. 이는 집회서 5:11과 밀접한 주제적 연결을 보이지만, 이 사실만으로 직접 인용 관계를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은 어떻게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집회서 5:13–15 본문 →

영광과 수치는 말에 달려 있고, 사람의 혀가 그 자신을 무너뜨린다.집회서 5:13 · 본디새김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말로 신뢰를 얻을 수도 있고, 신뢰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거나 위로할 수도 있지만, 잘못된 말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3절의 후반부는 특별히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결과를 강조합니다. 사람은 말로 자신의 지위를 높이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꾸며 낸 말이 결국 그 사람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분노로 내뱉은 말이 오랜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남의 비밀을 이용해 영향력을 얻으려다가 자신이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알려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던 것이 오히려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재물에 대한 과신과 말에 대한 과신은 닮아 있습니다.

험담하는 사람과 도둑을 나란히 놓는 이유

험담꾼이라 불리지 말고, 네 혀 때문에 덫에 걸리지 마라. 도둑에게는 수치가 따르고, 두말하는 이에게는 혹독한 비난이 따르기 때문이다.집회서 5:14 · 본디새김

도둑은 다른 사람의 것을 몰래 가져갑니다. 험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두 행동은 서로 다르지만, 당사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이 험담을 문자 그대로 명예의 도둑질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행동에 따르는 수치와 비난을 병행하여 제시합니다.

여기서 스승의 관심은 험담의 내용이 언제나 사실과 다르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말이라도 그것을 언제,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전하는지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는 두말하는 죄인이 온갖 바람에 키질하고 온갖 오솔길을 다니는 사람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결국 비난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상황마다 말을 바꾸는 사람은 당장은 여러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신뢰를 잃게 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는 능력보다,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는 신뢰를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큰일에서도 작은 일에서도

큰일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분별없이 굴지 말고,집회서 5:15 · 본디새김

사람은 중대한 문제에서는 조심하면서도,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에서는 쉽게 방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약속은 지키면서도 작은 약속은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정직하게 말하면서도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별생각 없이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서는 분별력이 필요한 자리를 큰일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살피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날의 말과 판단에서도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은 제공된 본디새김 본문에서 쉼표로 끝납니다. 그리스어 본문 역시 이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6:1로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다른 전승의 추가분이 아니라 같은 본문의 일부이지만, 여기서는 주어진 본문의 범위를 따라 읽겠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집회서 5:1–15 본문 →

집회서 5장은 특별한 재앙이 일어나는 날보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에 깊이 생각해 볼 말씀입니다. 회개를 미루는 사람은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사람은 이미 아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보지 못합니다.

돌아가야 할 때에는 미루지 말고, 대답해야 할 때에는 서두르지 마십시오.

누군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답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그 문제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스승은 그에게 손을 입 위에 얹으라고 합니다. 그 행동은 무능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고, 그 말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처음에 자신의 재물을 바라보며 「내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하던 사람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손을 입 위에 얹습니다.

집회서 5장은 그렇게, 자신의 힘을 과신하던 사람에게 가장 작지만 중요한 행동 하나를 가르칩니다.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할 때, 말하지 않을 줄 아는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