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2장 · 니느웨의 토빗 집안
의로운 사람은 왜 눈이 멀었는가
토빗기 2장은 풍성한 식탁으로 시작합니다. 포로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이 다시 모였고, 명절을 맞아 좋은 음식이 차려졌습니다. 토빗은 이 기쁨을 혼자 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데려오라고 부탁하며,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손님 대신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더욱 불편한 질문도 생깁니다. 죽은 사람에게까지 자비를 베풀었던 토빗은 왜 살아 있는 아내의 말을 믿어 주지 못했을까요?
토빗기 2장은 의로운 사람이 겪는 고난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의로움이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시험을 받는지도 보여 줍니다.
오순절의 식탁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
토빗은 에살핫돈이 왕이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와 아내 안나와 아들 토비야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오순절을 맞아 좋은 식사를 준비합니다.
에살핫돈이 왕이었을 때 나는 내 집으로 내려왔고, 내 아내 안나와 내 아들 토비야도 내게 돌아왔다. 우리 명절인 오순절, 곧 거룩한 칠칠절에 나를 위해 좋은 낮밥이 차려졌다. 나는 낮밥을 먹으려고 자리에 기대앉았다.토빗기 2:1 · 본디새김
오순절은 이스라엘의 칠칠절을 가리킵니다. 보리 수확과 관련된 첫 절기에서 일곱 주를 센 뒤 지키는 축제로, 신명기 16:9–12에 그 규정이 나옵니다.
이 절기는 단순히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자신의 풍요를 즐기는 날이 아닙니다. 아들과 딸, 종들과 레위 사람, 이주민, 고아와 과부가 함께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신명기 16:11). 따라서 토빗이 아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는 행동에는 분명한 율법적 배경이 있습니다.
내 앞에 밥상이 놓였고 반찬도 넉넉히 차려졌다. 나는 내 아들 토비야에게 말했다. 「얘야, 가거라. 니느웨에 포로로 잡혀 온 우리 형제들 가운데 온 마음으로 기억하는 가난한 사람을 누구든 만나거든 데려오너라. 그가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보아라, 얘야, 네가 올 때까지 너를 기다리겠다.」토빗기 2:2 · 본디새김
이 구절의 긴 그리스어 본문에는 「온 마음으로 기억하는」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기억의 대상을 밝히는 목적어는 없습니다. 문맥상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2에서 토빗 자신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억했다고 말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본문에 생략된 목적어를 확정된 문구처럼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토빗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동족을 식탁으로 초대하고 싶어 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빗은 가난한 사람에게 남은 음식을 나누어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자신과 함께 먹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인의 식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들 토비야가 돌아왔을 때, 토빗이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토비야는 우리 형제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을 찾으러 갔다가 돌아와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나는 그에게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아버지, 보십시오. 우리 민족 가운데 한 사람이 살해되어 장터에 내버려져 있습니다. 지금 바로 그곳에 목 졸려 죽은 채 있습니다.」토빗기 2:3 · 본디새김
식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 이제는 장터에 버려진 사람을 향해 가야 합니다.
본문은 누가 그 사람을 죽였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또 토빗이 원래 초대하려던 가난한 사람과 죽은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준비한 식탁의 의미가 이제 시험을 받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려는 마음은, 죽은 사람을 돌보는 일 앞에서도 계속될 수 있을까요?
명절이 슬픔으로 바뀌다
토빗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낮밥을 맛보기도 전에 그대로 두고 나갔다. 광장에서 그를 들어 옮겨 작은 집들 가운데 한 곳에 두었다. 해가 질 때까지 두었다가 그를 묻을 생각이었다.토빗기 2:4 · 본디새김
명절의 기쁨과 식사의 즐거움보다 버려진 사람의 시신을 거두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그 사이 그는 집에 돌아와 몸을 씻고 식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돌아와 몸을 씻고 슬퍼하며 빵을 먹었다.토빗기 2:5 · 본디새김
몸을 씻었다는 언급은 시신을 접촉하는 일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민수기 19:11–22는 죽은 사람의 몸을 접촉했을 때의 부정과 정결 절차를 다룹니다. 다만 토빗이 몸을 씻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절차가 모두 끝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돌아온 토빗은 예언자 아모스의 말을 기억합니다.
나는 예언자의 말, 곧 아모스가 벧엘을 두고 한 말을 기억했다. 「너희 명절들은 슬픔으로 바뀌고, 너희의 모든 길은 애가로 바뀔 것이다.」토빗기 2:6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아모스 8:10과 연결됩니다. 아모스 8:4–6에서 예언자는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곡식을 팔 때 부정한 저울을 사용하며, 가난한 사람을 돈으로 사들이려는 자들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절기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절기가 끝나면 다시 장사를 하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가 고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짓밟으면서도 종교적인 축제를 즐기려 했습니다. 반면 토빗은 가난한 사람과 함께 축제를 즐기려다가 죽은 사람을 돌보기 위해 그 축제를 중단했습니다. 둘 다 명절이 슬픔으로 바뀌는 장면과 관련되지만, 그 이유는 정반대입니다.
따라서 토빗이 슬픔 가운데 식사했다는 사실을 그가 아모스의 심판을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토빗은 자신의 명절이 슬픔으로 바뀐 경험 속에서, 오래전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심판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개인의 슬픔이 민족의 역사와 만나는 순간입니다.
토빗은 울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자 무덤을 파고 시신을 묻었습니다.
그런데 이웃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내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도 않은가?」 이미 이 일로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찾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말했다. 「달아나더니, 보라, 또 죽은 이들을 묻고 있네.」토빗기 2:8 · 본디새김
이웃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왕의 처벌입니다.
그러나 토빗이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동족의 시신입니다.
이 대목에서 토빗은 자신의 선택을 길게 변호하지 않습니다. 이웃들의 조롱에 대답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무덤을 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왜 해가 진 뒤에 장사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의 처벌을 피하려는 조심스러운 행동이었을 수도 있고, 절기나 장례 관습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로 단정할 만한 설명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모스 8:10의 히브리어 본문은 명절과 함께 ‘노래’가 애가로 바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디새김이 따르는 토빗기의 그리스어 전승, 곧 시내 사본에는 ‘길들’을 뜻하는 호도이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본디새김은 ‘너희의 모든 길은 애가로 바뀔 것이다’라고 옮겼습니다. 두 표현 가운데 무엇이 토빗기의 가장 이른 원형이었는지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한 바로 그날, 눈이 멀기 시작하다
토빗이 시신을 묻고 돌아온 날 밤, 그는 몸을 씻은 뒤 집 뜰의 담 곁에서 잠을 잡니다.
날씨가 더워 얼굴을 덮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담 위에 참새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위쪽 담에 참새들이 있는 줄 몰랐다. 그 새들의 따뜻한 똥이 내 눈에 내려앉아 백태가 생기게 했다. 나는 치료를 받으려고 의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약을 바를수록 백태 때문에 앞이 점점 더 보이지 않았고, 끝내 눈이 완전히 멀었다. 나는 네 해 동안 앞을 보지 못했다. 내 모든 형제가 나 때문에 슬퍼했고, 아키카르는 엘리마이스로 떠나기 전 두 해 동안 나를 먹여 살렸다.토빗기 2:10 · 본디새김
본문은 하나님께서 토빗의 눈을 멀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실명에 앞선 숨겨진 죄가 있었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서술자가 직접 알려 주는 원인은 참새의 배설물로 인한 눈의 이상입니다.
토빗은 병이 생기자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을 찾아다녔고 약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치료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토빗은 아침에 가난한 사람을 초대하려 했고, 낮에는 시신을 거두었으며, 저녁에는 그 시신을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눈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토빗이 행한 선행과 그가 겪는 불행이 거의 한 호흡 안에 놓입니다.
그는 왜 이런 일을 당했을까요?
하지만 본문은 이 질문에 원인과 보상의 공식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을 묻지 않았다면 눈이 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시험하려고 참새를 보내셨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의로운 행동을 한 사람이 심각한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장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네 해라는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이 기간 동안 토빗은 더 이상 이전처럼 일하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는 토빗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토빗을 먹여 살립니다.
그는 도움을 베풀던 위치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위치로 옮겨 왔습니다.
이것이 토빗의 존엄을 잃게 하는 일은 아닙니다. 본문도 그가 의로움을 상실했기 때문에 남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욥도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소개되지만 재산과 가족을 잃고 몸의 고통까지 겪습니다(욥기 1:1–2:8). 욥기의 독자는 욥이 겪는 고난의 배후에 관한 정보를 일부 제공받지만, 토빗기 2장의 독자는 아직 그러한 설명을 듣지 못합니다. 토빗의 실명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라는 해설 없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안나가 가족을 먹여 살리다
토빗이 앞을 볼 수 없게 된 뒤 안나는 일을 해서 품삯을 벌었습니다.
그 무렵 내 아내 안나는 여자들이 하는 일을 하며 품삯을 벌었다.토빗기 2:11 · 본디새김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안나는 천을 짜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일을 맡긴 사람들에게 보내고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족의 생계를 직접 책임지는 사람은 안나입니다.
아내는 자기가 만든 물건을 그 주인들에게 보내곤 했고, 그들은 아내에게 품삯을 주었다. 디스트로스 달 칠 일에 아내는 짠 천을 잘라 내어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들은 아내에게 품삯을 모두 주었고, 식사에 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었다.토빗기 2:12 · 본디새김
디스트로스는 그리스계 달력의 달 이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날짜가 어떤 특별한 절기와 연결되느냐보다, 안나의 일상적인 노동이 구체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토빗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을 자세히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일하고 품삯을 받는 모습을 자기 이야기 안에 담습니다.
안나의 노동은 추상적인 미덕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족이 먹을 것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독자는 이미 12절에서 그것이 정상적인 선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토빗은 염소가 어디서 났는지 의심하지만, 독자는 그 의심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소리는 들었지만, 아내의 말은 믿지 못했다
안나가 새끼 염소를 집으로 데려오자 염소가 울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내게 들어왔을 때 새끼 염소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를 불러 말했다. 「이 새끼 염소는 어디서 났소? 혹시 훔친 것이 아니오? 그 주인들에게 돌려주시오. 우리는 훔친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되오.」토빗기 2:13 · 본디새김
토빗은 가난해졌다고 해서 남의 물건을 훔쳐 먹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은 도둑질을 금지합니다(출애굽기 20:15). 토빗의 원칙 자체는 이러한 명령과 일치합니다.
문제는 그 원칙이 적용되는 방식입니다.
그는 아직 염소가 훔친 물건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품삯에 덧붙여 내게 선물로 준 것이오.」 그러나 나는 아내를 믿지 않고 주인들에게 돌려주라고 거듭 말했다. 이 일 때문에 나는 아내를 향해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아내가 내게 대답했다. 「당신이 베푼 구제는 어디 있소? 당신이 한 의로운 일들은 어디 있소? 보시오, 그것들이 당신에게서 잘 드러나고 있소.」토빗기 2:14 · 본디새김
이 대답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토빗은 사정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아내에게 설명을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과 믿지 못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 장면을 토빗이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눈이 멀었다는 단순한 비유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시각 장애는 실제로 겪는 고통이며, 잘못에 대한 형벌이나 도덕적 결함의 상징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제한된 정보만으로 아내를 부당하게 의심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수고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안나는 직접 노동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토빗은 이전처럼 가정을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없습니다. 본문은 토빗의 의심이 이러한 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없게 된 그가 아내에게 의지하면서도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관계의 긴장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안나는 남편의 고난을 보며 그의 선행이 무슨 유익을 가져왔느냐고 묻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남편에게 그가 말하는 의로움이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항의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안나의 반응은 단순히 믿음이 부족한 사람의 불평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으며, 자신이 정당하게 받은 선물을 도둑질한 물건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가 화를 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첫째, 안나는 남편이 행한 선행이 그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왔는지 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이 멀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아내가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안나의 말은 욥기 2:9에서 고난당하는 욥에게 그의 아내가 건네는 말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물론 안나는 욥의 아내와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토빗에게 하나님을 버리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둘째, 안나의 말은 토빗이 자신의 의로움을 아내에게는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낯선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고, 죽은 사람에게 장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먹여 살리는 아내에게는 신뢰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표현은 이러한 두 읽기를 모두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스어 문장에서도 안나가 토빗의 선행이 가져온 결과를 비꼬는지, 토빗 자신의 행동을 고발하는지 완전히 한 가지로 한정하기 어렵습니다. 두 의미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야 58:6–7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억압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며,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삶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요청도 함께 등장합니다. 토빗이 실천한 구제는 이러한 예언자적 가르침과 잘 어울립니다. 의로움은 죽은 사람을 묻는 용기에도 나타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말을 믿고 그 수고를 인정하는 태도에도 나타나야 합니다.
식탁에 남은 질문
토빗기 2장은 뚜렷한 해결 없이 끝납니다.
토빗의 눈은 여전히 멀어 있습니다. 안나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현실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가 어떻게 되었는지, 토빗이 아내에게 사과했는지, 두 사람이 화해했는지도 본문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토빗이 예전에 베푼 자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비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향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물어야 합니다. 의로운 삶은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내어 주는 일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해 애쓰는 사람의 자리도 알아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토빗은 그날 아침 가난한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식탁을 차렸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식사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집 안에는 다른 사람이 마련해 온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가져온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는 토빗이 있습니다.
토빗기 2장은 그 질문을 해결된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그저 새끼 염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던 집 안에서, 정직하게 일해 온 아내가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는 남편에게 묻도록 합니다. 「당신이 베푼 구제는 어디 있소? 당신이 한 의로운 일들은 어디 있소?」
그리고 토빗은 아직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