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7–10장 · 사라와의 혼인
눈물로 시작된 혼인, 기쁨을 기다리는 집
토비야가 라구엘의 집에 도착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그를 맞이한 라구엘은 죽은 사람을 만난 듯 울고, 아내 아드나와 딸 사라도 함께 웁니다. 반가운 친척을 만난 기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토비야의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집에는 또 다른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라는 이미 일곱 번 혼인했고, 일곱 남편 모두 첫날밤에 죽었습니다. 이제 여덟 번째 혼인이 이루어지려 합니다.
토빗기 7장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혼인이 성립되었는데도 아무도 아직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집에는 손님을 환영할 넉넉한 마음도 있고, 율법에 따라 혼인을 맺으려는 성실함도 있으며,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난 일곱 번의 죽음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장은 단순히 토비야와 사라가 혼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듭된 상실을 경험한 가족이 다시 한번 기쁨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젊은이가 내 형제 토빗을 참 많이 닮았구려」 — 낯선 사람에게서 가족을 알아보다
토비야는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라파엘에게 부탁합니다.
토비야가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라파엘에게 말했다. 「아사랴 형제, 나를 우리 형제 라구엘에게 곧장 데려가 주시오.」 라파엘은 그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뜰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발견하고 먼저 인사했다. 라구엘이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들, 참으로 반갑소. 건강한 몸으로 잘 오셨소.」 그리고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토빗기 7:1 · 본디새김
토비야가 라구엘을 「우리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서 「형제」는 같은 가문에 속한 친족을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
토비야와 라구엘의 가족은 모두 이스라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들은 고향 땅이 아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토비야의 가족은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온 납달리 지파의 후손입니다(1:3-5). 이처럼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친족 관계는 단순한 혈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함께 살던 땅과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확인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직 방문객들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라구엘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집으로 안내합니다.
이 환대가 먼저 이루어지고, 친족 관계에 대한 확인은 그다음에 이루어집니다.
라구엘은 토비야의 이름을 듣기 전에 그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드나는 그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니느웨에 포로로 끌려온 납달리 자손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이어서 토빗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아드나는 방문객의 이름부터 확인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백성에 속하는지, 누구를 아는지 차례로 묻습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그가 속한 공동체와 가족 관계를 통해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드나에게 대답했다. 「건강하시고 살아 계십니다.」 토비야가 말했다. 「제 아버지이십니다.」토빗기 7:5 · 본디새김
이 짧은 대답 하나로 낯선 방문객은 가족이 됩니다.
라구엘이 알아보았던 닮은 얼굴의 의미가 밝혀지고, 멀리 떨어져 있던 두 가정의 관계가 눈앞에서 이어집니다. 토빗기 7장의 혼인은 낯선 두 사람이 새 관계를 만드는 사건이면서, 흩어져 있던 두 가정이 다시 만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반가운 만남은 곧 눈물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7:2의 그리스어 인명 표기는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을 보면 비교 대상이 토비야의 아버지 토빗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라구엘은 젊은 방문객에게서 이미 알고 있는 친족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의롭고 구제하는 사람이 눈이 멀었다니」 — 선한 사람의 고통 앞에서
토비야가 자신이 토빗의 아들이라고 밝히자 라구엘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 입을 맞추고 웁니다.
그가 토비야에게 말했다. 「훌륭하고 선한 아버지의 아들아, 네게 복이 있기를 빈다. 아, 이 얼마나 비참한 불행이냐. 의롭고 구제하는 사람이 눈이 멀었다니.」 그리고 자기 형제 토비야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토빗기 7:7 · 본디새김
「의롭다」와 「구제하다」는 토빗기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토빗은 자신이 포로로 살면서도 동족에게 자선을 베풀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며, 죽은 사람을 장사 지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1:16-18). 그러한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친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태도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눈이 멀었습니다.
그는 토빗이 숨겨진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토빗이 의롭고 구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면서 그의 고통을 슬퍼합니다.
라구엘은 토빗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그의 의로움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토빗기의 독자는 토빗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의 선행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던 삶의 연속선상에서 그가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2:3-10).
욥기에서도 욥의 고통은 그의 숨겨진 죄가 드러난 결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욥기 1:1은 그를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독자는 욥의 고난을 그의 친구들처럼 단순한 죄의 결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토빗기 7장에서도 라구엘은 고통받는 토빗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는 울고, 토비야를 끌어안고, 토빗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합니다. 고통의 원인을 모두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고통받는 사람의 삶과 존엄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시오?」라는 질문이 남기는 여운
이 장에는 건강을 묻고 비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라구엘은 방문객들에게 건강한 몸으로 잘 왔다고 인사합니다(7:1). 아드나는 토빗이 건강한지 묻고, 토비야 일행은 그가 살아 있으며 건강하다고 대답합니다(7:4-5).
모두가 서로의 건강을 묻지만 토빗은 눈이 멀었습니다. 라구엘은 토비야가 건강하게 왔다고 반기지만, 이제 그를 기다리는 혼인에는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범한 인사로 건네는 「건강」과 「평안」이 이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소망이 되어 있습니다.
라구엘의 아내 아드나와 딸 사라도 토빗 때문에 웁니다. 이 장에서 사라가 처음으로 보여 주는 행동은 자신의 불행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앞서 사라는 자신이 겪은 비극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토빗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가족의 일원으로 등장합니다. 그녀에게 고통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슬퍼할 수 있는 마음도 있습니다.
세 사람이 울고 난 뒤 라구엘은 숫양을 잡고 방문객들을 환대합니다. 슬픔이 환대를 막지 않으며, 환대한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식탁에서 예상하지 못한 긴장이 시작됩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 잔치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
토비야와 라파엘이 몸을 씻고 음식을 먹으려고 기대어 앉았을 때, 토비야는 라파엘에게 사라와의 혼인을 청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토비야는 라파엘을 하나님의 천사라고 알지 못하지만, 그가 앞서 들려준 말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라구엘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직접 대답합니다.
라구엘은 그 말을 듣고 아이에게 말했다. 「먹고 마시며 오늘 밤을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을 권리는 너 말고는 아무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내게 가장 가까운 친족이니, 나도 마찬가지로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그 아이를 줄 권한이 없다. 얘야, 네게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마.」토빗기 7:10 · 본디새김
그러나 곧이어 분위기가 바뀝니다.
라구엘은 일곱 남편이 첫날밤에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7장에서 그는 그 죽음의 원인을 설명하거나, 이번에는 반드시 안전할 것이라고 보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너희 가운데서 일하실 것이다」라는 말은 이 장에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라구엘은 더 이상 단순히 친족의 권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주께서 일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라구엘은 과거의 일곱 번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결정한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라구엘에게 식사는 손님을 환영하고 즐겁게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토비야는 자신이 왜 이 집에 왔는지를 먼저 분명히 하고 싶어 합니다.
앞 장에서 토비야는 사라와의 혼인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그 두려움의 근거가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라구엘 자신의 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혼인 문제를 확실하게 결정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그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본문은 토비야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행동은 분명합니다. 그는 위험을 알면서도 혼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라구엘은 그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혼인을 결정하는 말에 새로운 근거를 덧붙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창세기 24:33과의 유사성이 뚜렷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찾으러 갔다가 리브가의 가족에게 환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차려졌을 때, 그는 자신이 온 목적을 말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환대받는 방문객이 식사보다 혼인에 관한 일을 먼저 처리하려 한다는 특징을 공유합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다른 사람의 혼인을 위해 파견된 사람입니다. 토빗기 7장에서 토비야는 자신이 그 혼인의 당사자입니다. 또한 리브가의 혼인은 가족의 동의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인식 가운데 진행되지만, 사라의 혼인에는 일곱 번의 죽음이라는 특별한 위험이 놓여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그 아이를 네게 주기로 결정되었다」 — 율법과 하늘의 뜻 사이에서
라구엘은 토비야의 요청에 응답합니다.
「나는 그 아이를 우리 형제들 가운데 일곱 남자에게 주었는데, 모두 그 아이에게 들어가던 밤에 죽었다. 이제, 얘야, 먹고 마셔라. 주께서 너희 가운데서 일하실 것이다.」 토비야가 말했다. 「저와 관련된 일을 분명히 정해 주시기 전에는, 저는 여기서 결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라구엘이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판결에 따라 그 아이를 네게 준다. 하늘에서도 그 아이를 네게 주기로 결정되었다. 네 자매를 맞아들여라. 이제부터 너는 그 아이의 형제이고 그 아이는 네 자매다. 그 아이는 오늘부터 영원히 네게 주어졌다. 얘야, 하늘의 주께서 오늘 밤 너희가 잘되게 하실 것이다. 또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 빈다.」토빗기 7:11 · 본디새김
이 선언에는 두 가지 근거가 나란히 등장합니다. 하나는 「모세의 책에 있는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도」 이루어진 결정입니다.
첫 번째 근거는 가족 공동체가 따라야 하는 율법의 질서와 관계됩니다. 라구엘은 토비야가 가까운 친족으로서 사라를 아내로 맞을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라구엘은 이 혼인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일로 확신하여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미 그 확신을 뒷받침할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토빗기 3:16-17에서 하나님께서 토빗과 사라의 기도를 들으시고 라파엘을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라구엘이 모든 사정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실제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의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라구엘의 선언은 앞서 토빗기 6:18에서 라파엘이 토비야에게 사라가 그를 위해 정해져 있다고 말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라파엘은 하나님의 파견을 받은 천사로서 그 혼인에 관한 확신을 토비야에게 전합니다. 라구엘은 사라의 아버지로서 그 혼인을 인정하고 실행합니다.
하늘의 뜻과 땅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결정이 이 장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혼인은 말에서 손으로, 다시 문서로 옮겨 간다
라구엘이 자기 딸 사라를 부르자 사라가 그에게 왔다. 그는 딸의 손을 잡아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 여자를 받아라. 율법과 모세의 책에 기록된 판결에 따라 네게 아내로 주는 것이다. 아내로 삼고, 건강한 몸으로 네 아버지에게 데려가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이루어 주시기를 빈다.」토빗기 7:12 · 본디새김
앞서 라구엘은 혼인에 관한 권리와 율법을 말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그 말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딸의 손을 잡아 신랑에게 넘겨주는 행위는 아버지가 혼인을 인정하고 딸을 새로운 혼인 관계로 보내는 장면입니다.
처음 토비야를 만났을 때 그는 토빗의 실명을 슬퍼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딸을 토비야에게 주면서 그가 건강하게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를 빕니다.
혼인은 라구엘의 집에서 이루어지지만, 라구엘의 시선은 이미 니느웨에서 기다리는 토빗의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7:11에서 이미 「자비와 평화」를 빈 그는 7:12에서도 하나님께서 평화를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여기서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가족에게 평화란 죽음의 위협 없이 부부가 함께 살아가고, 부모가 자녀를 잃지 않으며, 두 가정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삶의 온전함과 연결됩니다.
이어서 그는 혼인 계약 문서를 작성합니다. 라구엘은 하나님의 뜻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인간이 해야 할 책임을 생략하지 않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혼인을 선언하고, 딸의 손을 넘겨주며, 혼인 계약을 문서로 남깁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하는 일과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분명하게 이행하는 일은 이 장에서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그 문서는 혼인의 성립을 확인해 줄 수 있지만, 일곱 번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을 것까지 보증해 주지는 못합니다. 라구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자신이 보장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를 구합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토빗기 7:14 · 본디새김
앞서 준비했던 음식이 이제야 식탁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혼인 문제가 결정되기 전에는 미뤄졌던 식사가, 계약이 성립된 뒤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 식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지만, 사라는 이제 자신이 들어가야 할 방으로 향합니다.
이야기의 가장 깊은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혼인 규정에 대한 설명은 유산을 물려받는 딸이 자기 지파 안에서 혼인하도록 하는 민수기 36:6-9의 규정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규정 자체가 특정한 한 남자 친족에게 배타적인 혼인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므로, 라구엘의 말 전체를 그 율법 조항의 직접적인 반복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라구엘이 하나님에게서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늘의 결정을 어떤 특별한 환상이나 음성을 통해 직접 알았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라 — 혼인 이야기 속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
이 장에는 여러 사람의 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구엘은 방문객을 환영하고, 토빗을 위해 탄식하고, 혼인에 관한 율법을 설명하고, 축복합니다. 아드나는 방문객의 신분을 묻고 딸을 위로합니다. 토비야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혼인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혼인의 중심인 사라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부르자 나오고, 아버지가 손을 잡자 토비야에게 넘겨집니다. 이어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갑니다. 본문은 사라가 이 혼인을 기뻐했는지, 두려워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토비야를 바라보았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라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혼인을 거부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아버지와 토비야가 혼인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사라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기뻐했다고 가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고대의 가문 중심적인 혼인 관습과 관련됩니다. 혼인은 두 개인 사이의 관계인 동시에 가족 사이에서 결정하고 승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혼인 절차를 설명할 때 아버지와 남자 친족의 말과 행동이 중심에 놓일 수 있었습니다.
혼인 절차가 끝나고, 손님들이 식사를 시작한 뒤에야 서사는 사라가 앞으로 들어가야 할 방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 방에서 사라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 이해하는 사람은 아버지도, 토비야도 아닌 어머니 아드나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혼인의 정당성과 절차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사적인 방에서는 사라가 겪은 상실과 앞으로 맞이할 밤의 두려움이 중요해집니다.
율법과 계약서가 혼인의 외적인 질서를 확립한다면, 어머니의 눈물은 그 질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아픔을 드러냅니다.
「용기를 내라, 딸아」 — 어머니가 닦아 주는 눈물
혼인 계약이 작성되고 식사가 시작되자 라구엘은 아드나에게 다른 방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아드나는 가서 남편이 말한 대로 방에 잠자리를 펴고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딸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딸에게 말했다.토빗기 7:16 · 본디새김
첫 번째 눈물은 멀리 떨어진 친족의 고통을 향했습니다. 두 번째 눈물은 눈앞에 있는 딸의 미래를 향합니다. 그러나 일곱 남편의 죽음을 겪은 어머니가 이번 혼인을 앞두고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상황의 무게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용기를 내라, 딸아. 하늘의 주께서 네 슬픔 대신 기쁨을 주시기를 빈다. 용기를 내라, 딸아.」 그러고는 밖으로 나갔다.토빗기 7:17 · 본디새김
「용기를 내라」는 말이 처음과 끝에 반복됩니다. 아드나는 사라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명령하거나,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용기를 내라는 격려와 하나님께 드리는 소원입니다.
여기에 부모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모든 위험을 없애 줄 수는 없지만, 자녀가 다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슬픔 대신 기쁨을 주시기를
아드나는 사라에게 지난 일을 잊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의 혼인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사라가 겪은 슬픔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슬픔을 대신할 기쁨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여기서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사라가 단지 잠시 위로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지배했던 슬픔이 더 이상 그녀의 앞날을 결정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드나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실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딸이 슬퍼했다는 사실과, 그 딸에게 기쁨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하늘의 주께 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기도는 이사야서의 회복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 61:3에서는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주시는 일이 선포됩니다. 두 본문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사야 61장은 시온의 회복을 선포하는 본문이고, 토빗기 7장은 한 어머니가 딸의 혼인을 앞두고 드리는 소원입니다. 그럼에도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의 언어가 서로 통합니다.
율법으로 혼인이 성립되고, 기도로 그 앞날을 맡기다
이 장의 신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모든 불확실성이 즉시 사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라구엘은 혼인을 인정합니다. 아드나는 울면서도 딸에게 용기를 줍니다. 두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미래를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면서도, 지금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라구엘과 아드나는 그 응답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직 모릅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독자가 그들에게 더 강한 확신을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토빗기 7장이 끝날 때, 집 안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혼인 계약서가 작성되었고, 가족들은 두 사람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 방에는 사라의 잠자리가 놓여 있습니다.
아드나는 그 방에서 딸에게 두 번이나 용기를 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딸의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남긴 채 밖으로 나옵니다.
사라는 아직 그 방에 있습니다. 기쁨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눈물도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그 방에 남기고 나온 마지막 말은 기쁨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