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8 베타

고린도후서 6장

이 장 풀어 읽기

은혜를 받아들이는 때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받아 주는 때에 네 말을 들어 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보십시오,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아 주시는 때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

우리는 어떤 일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맡은 섬김이 비난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어려움과 고난과 막다른 처지에서도 꿋꿋이 견딥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소동을 겪을 때에도, 힘들게 일하고 밤을 새우고 굶주릴 때에도 견딥니다. 우리는 깨끗한 삶과 지식, 오래 참음과 친절함,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진실한 말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섬기며, 오른손과 왼손에는 의의 무기를 듭니다.

영광을 얻든 모욕을 받든, 나쁜 평판을 듣든 좋은 평판을 듣든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취급을 받지만 진실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람 같지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 같지만, 보십시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사람 같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픔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기뻐하고, 가난하면서도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했고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우리 마음이 좁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여러분의 마음이 좁아진 것입니다. 내 자녀에게 하듯 말합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응답하여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서로 맞지 않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과 악한 일이 어떻게 한데 어울릴 수 있겠습니까? 빛과 어둠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벨리아르와 어떻게 뜻을 같이하시겠습니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무슨 몫을 함께 나누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과 어떻게 뜻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안에 살고 그들 가운데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 나와 따로 서라. 더러운 것에 손대지 마라.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겠다.」

모든 능력을 지니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과 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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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왜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하나요?

앞 장의 마지막 권면은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말이었어요. 여기서는 그 권면을 이어 가며 ‘지금’을 두 번 강조해요. 구원을 받는 날짜를 계산하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는 지금 그 부르심에 응답하라는 말이에요.

6:7 의의 무기는 어떤 무기인가요?

앞에는 깨끗한 삶과 사랑, 진실한 말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요. 이런 흐름에서 양손의 무기는 어려움과 비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도록 단단히 준비된 모습으로 읽을 수 있어요. 다만 본문은 각 손에 든 무기의 이름이나 역할을 밝히지 않아요.

6:10 가난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부유하게 하나요?

4장 12절에서는 자신들에게 죽음이 일하는 동안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일한다고 했어요. 여기서도 가난과 슬픔을 겪는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섬김과 함께 나타나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실제로 세상의 모든 재산을 소유했다는 뜻으로 읽기 어려워요. 다만 바울은 여기서 그 모든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설명하지는 않아요.

6:14 맞지 않는 멍에를 함께 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뒤에는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아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함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져요. 이 대조는 하나님께 속한 삶과 그에 맞서는 것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줘요. 다만 바울은 이 절에서 특정한 관계나 모임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므로, 결혼이나 어떤 한 관계만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6:15 벨리아르는 누구인가요?

앞 절의 빛과 어둠처럼, 이 절에서는 그리스도와 벨리아르를 대조해요. 서로 뜻을 같이할 수 없는 두 편을 보여 주는 질문이에요.

6:16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일 수 있나요?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살고 그들 가운데 다니시겠다는 약속을 인용해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뜻을 같이할 수 없다는 말의 근거가 돼요.

6:17 더러운 것에 손대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나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사신다는 약속 뒤에, 더러운 것에서 떨어져 나오라는 명령이 이어져요. 그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되시겠다는 약속이 나와요. 구별되어 살아가라는 요청과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약속이 함께 있어요.